(제 20 회)

제 2 장

5

 

맴 매앰 맴―

느티나무의 우듬지에서 귀따거운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리고있었다.

그 자지러진 소리에 그만 기혼이라도 하였는지 이따금 나무가지속에서 손가락만큼이나 큰 청벌레들이 뚝뚝 떨어지였다. 징그럽게 구불거리며 나딩굴었다.

박위는 아까부터 누구인가 자기의 등뒤에서 서성거리고있다는것을 감촉했으나 깊은 고뇌에 눌리워 그에 관심을 돌릴수가 없었다.

한참후에야 사색에서 채 헤여나지 못한 흐릿한 시선을 등뒤로 돌리였다.

뜻밖에도 부원수 윤통이 시꺼먼 얼굴을 짓수굿한채 무슨 생각엔가 옴해있었다.

윤통이가 사색에 잠긴것도 의아했지만 그의 얼굴이 흐려있는것도 의아쩍었다.

내내 호랑이의 간이라도 빼올것처럼 딩딩해서 돌아가던 그가 어떻게 되여 갑자기 후줄근해졌는가.

박위는 부드러운 어조로 나직이 물었다.

《부원수는 어디 갔다오는 길이요?》

《둔전을 한바퀴 돌아보고 오는 길입니다.》

윤통의 말소리는 첫술부터 곱지 못했다.

(둔전을 돌아보았다?!)

박위의 기분은 삽시에 흐려지였다.

박위는 요즘 군영군사들 거의 전부가 둔전에 붙박이로 나가있다는것을 이미 알고있었다.

신입군졸들까지 교련을 전페하다싶이하고 수수밭으로 밀려다니는것을 볼 때마다 박위는 어느때든 한번 윤통을 단단히 책망하리라 벼르군 했다.

허나 요즘 줄창 바다가에 나가 살다싶이 하는데다 기분 또한 무겁고 착잡한 까닭에 윤통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까박까박 잊어버리군 하여 지금껏 벼르기만 하고 추궁을 하지 못했었다.

윤통이자신이 제발로 찾아와 둔전소리를 꺼림없이 꺼내놓는 지금 더이상 태만에 가까운 그의 과실을 용허할수 없었다.

노상 속이 시꺼멓게 타있는 박위라 입을 여니 대바람 몰풍스러운 소리가 쏟아져나왔다.

《그러니 여직껏 수수밭 김은 채 잡지 못했단 말이겠소?!》

《예, 보리농사라는건 한해농사가 시원치 못해 태반이 쭉정이라 골라골라 베느라니 자연히 일이 더디되고 수수밭이나 조밭은 범이 새끼를 칠 지경으로 풀이 무성해서 썩썩 일축이 나지 않습니다.

언제 일이 끝나겠는지 아직은 겉가량도 할수 없습니다.》

윤통은 아무런 자책감도 없이 제쪽에서 도리여 못마땅한투로 대답했다.

《그러니 부원수는 군사들을 장참 둔전에만 비끄러매둘 심산이요?

우리 군사들을 전부 농군으로 돌려앉힐 작정인가 말이요?》

《그럴리야 있습니까. 군사들의 수효는 날을 따라 늘어나는데 관가에서 보내주는 군량으로는 어방없이 모자라니 자연 농사일에 무관할수 없습니다.

군사들도 우선 먹어야 사는게고…》

박위는 뒤로 돌려잡았던 주먹을 앞으로 쭉 내뻗치며 윤통의 어정쩡한 소리를 중도에서 무질러버리였다.

《여보 부원수, 군사는 먹자고 사는게 아니라 싸우자고 먹는게요.

농사일이 아무리 바쁘다 해도 싸움준비보다 더 중할수는 없소.

나는 우선 부원수의 전에없던 그 태만이 리해되지 않소.

농사일같은거야 번을 짜서 교대로 하든가 싸움에 나설수 없는 나배기군사들을 따로 골라 시킬수도 있는데 무엇때문에 참깨, 들깨 다 섞어가지고 한대중으로 내모는거요? 우리 군사들은 태반이 신출내기들인데 활이나 검이 익숙치 못한 손에 다시 호미, 낫 같은것을 한가득 들려놓았으니 이제 싸움이 나면 농쟁기들을 휘두르게 하겠소?

부원수가 그런 리치를 모를 사람인가?

대체 어떻게 되여 그런 암담한 생각을 가지게 되였소? 우선 그것부터 말 좀 해보우.》

윤통의 거무틱틱한 얼굴에 다시 못마땅한 기색이 뚜렷이 떠올랐다.

박위는 근간에 이르러 너무나 달라진 윤통이 불만스럽기 전에 무척 의아쩍었다.

(사람이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조급하고 팩팩하기는 하나 진실하고 고지식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부원수가 어째서 이렇게 엇드레질, 뜸베질을 하는가?

윤통이 워낙 그런 사람인것을 내 여직껏 가려보지 못했는가?…)

이 시각 윤통은 윤통이대로 자기의 인생에서 일찌기 겪어보지 못한 중난한 번민에 시달리고있었다.

얼마전 윤통은 삼촌의 졸곡제사(죽은지 석달만에 지내는 제사)를 보려고 창원에 내려왔던 최칠석의 하인으로부터 칠석이가 보내는 비밀한 편지를 받았었다.

윤통은 최칠석이가 현임재상이요, 자기의 삼촌인 윤소종의 문생인것으로 하여 대강 면목은 알고있었다.

하지만 칠석은 어디까지나 박위의 벗이였다.

헌데 칠석이 무엇때문에 박위가 아니라 자기에게 그것도 비밀히 편지를 보낸단 말인가?…

칠석의 편지는 대략 이러했다.

《…부원수도 잘 알다싶이 해암은 나의 둘도 없는 지우지만 그에 앞서 이 나라에 없어서는 안될 기둥뿌리 장수들중의 한사람이요.

그런데 지금 누군가가 해암을 모해할 목적으로 괴이한 소문을 지어돌리고있소.

소문인즉 박위가 대마도원정준비를 차린다는 허울뒤에서 왕권을 뒤집어엎을 반정을 준비한다는거요.

나는 물론 그따위 헛소문을 절대 믿지 않소만 조정백관의 심정이 다 나와 같을수야 없지 않소.

소문이 돌고돌던 끝에 그것이 조의(조정의 견해)처럼 굳어진다면 장차 어떤 화단이 생길것인가는 부원수도 십분 짐작할게요.

지금 나도는 소문만 해도 아짜아짜한데 요즘 군자시의 소윤이 들고 일어나 박위가 군자시관리들을 참혹하게 모욕하던 끝에 임금과 리대감을 비방하였다고 먹어대여 일은 한층 더 복잡해질듯 하오.

…내 이미 해암이 개경에 왔을 때 원정준비를 일시 덮어두는것이 좋으리라고 권유했으나 종시 받아들이지 않았소.

아니, 도리여 절교를 선언하는것으로 가슴아픈 대답을 하였소.

해암의 성격이 강직함은 이미 알지만 그렇게까지 강경하고 무자비하게 나올줄은 미처 예기치 못했댔소.

…누가 뭐라든 나는 여전히 해암을 나의 소중한 지우로, 이 나라의 귀중한 장수로 깊이 존경하고 사랑하오.

부원수의 심정 역시 나와 다를바 없으리라 생각하오.

하오니 부원수가 해암의 곁에서 사사건건 심중히 조처하여 모쪼록 불길한 일이 나지 않게 해주기를 바라오.

물론 해암은 쉽게 자기의 결심을 철회하려 하지는 않을거요.

그렇다고 하여 해암의 머리우에 날벼락이 떨어질것을 번연히 알면서 곱게 팔짱을 끼고 구경만 한다면 그대나 나나 어찌 우의와 도의를 아는 인간이라고 할수 있겠소.

나는 물론 여기서 할수 있는껏 일을 바로잡아보겠지만 가까이에 있는 부원수가 더 애를 써야 할줄로 아오.

되도록이면 원정준비를 뒤로 미루게 함으로써 박장군의 창창한 앞길에 사소한 랑패도 없도록 해주오.…》

편지를 다 읽고난 윤통은 너무나 기가 막히여 한참이나 후들후들 몸을 떨었다. 박위에 대한 칠석의 우의에 감동되기 전에 박위를 모해하려 한다는 은페된 음모군들이 찢어발기고싶도록 가증스러웠다.

(아마 나만큼 박장군을 잘 아는 사람은 없을게다.

헌데 그리도 나라일, 군사일에 극성이고 그리도 사람들앞에 결곡한 박장군이 역신음모를 꾸민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대체 어떤 개아들놈이 그따위 말방귀같은 헛소문을 지어냈을가?…

가만있거라, 그게 혹시 조호백의 작간이 아닐가?!…)

윤통의 창끝처럼 날카로와진 신경은 아무런 론리적련관도 없이 호백이쪽으로 쏠리였다.

그러자 대뜸 호백이가 헛소문을 날조하여 조정에 꽂아넣었을것이라는 제나름의 견해가 굳어지였다.

당장 읍으로 짓쳐나가 호백의 멱살을 끌어내고싶었다.

하지만 아무런 근거도 없이 한개 고을의 관장을 마구다지로 죄인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절대로 소란을 피우지 말라던 칠석의 당부도 무시할수 없었다.

강렬한 흥분이 조금 가라앉자 이번에는 박위에 대한 경탄이 새삼스레 솟아올랐다.

(그러니 박장군은 조정에서 나돈다는 험한 소문을 알고있으면서 아무 내색없이 원정준비를 계속 내밀고있지 않는가!…

조정의 여론이 심화되면 자기의 신세를 망치게 된다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실로 박위라는 인간이 난 사람은 난 사람이로다.

헌데 그처럼 강건한 장수가 터무니없는 험턱을 쓰고 군직에서 밀려나게 된다면 밀직부사나 내가 가슴아픈것은 차치하고 우리 고려군에 얼마나 큰 손실인가!…

절대로 일이 그렇게 번져지게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온몸을 내대서라도 박장군에게 밀려드는 음산한 비구름을 제껴버려야 한다.

그러자면 우선 밀직부사의 말대로 원정준비를 당분간이라도 덮어두게 하는것이 상책인데 박장군이 내가 권유한다고 하여 쉽사리 마음을 돌려먹겠는가?…)

윤통은 자기의 신상에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대마도원정의 제창자, 지휘자는 어디까지나 박위인것만큼 그 어떤 변이 생긴다면 모든 죄는 박위에게 쏠리기마련이였다.

그런데다 윤통의 가문은 대대로 개경에서 높은 벼슬을 지내는 문벌좋은 집안이였다.

윤통의 당삼촌인 윤소종만 놓고봐도 그는 현재 조정의 재상으로서 리성계의 각별한 애중을 받는 뜨르르한 량반이였다.

물론 윤소종은 제 조카를 가문에 없는 무식한 무관놈이라고 실큼하게 여기고 윤통은 저대로 제 삼촌을 권력자의 사타구니에 붙어 대궁밥을 얻어먹는 비루한 인간이라고 시큰둥하게 여기는 까닭에 두사람의 사이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허나 그들의 관계가 어떠하든 지금 한창 기름진 몸뚱이에 날개까지 돋혀가지고 무서운것없이 퍼덕거리는 재상의 당조카를 해치려고 날뛰는 얼빠진 작자는 없을것이였다.

하기에 윤통은 오직 박위의 운명을 두고 머리를 썩이였다.

그러던중 마침내 제나름의 그럴사한 궁냥을 떠올리였다.

다음날부터 윤통은 자기의 궁냥을 행동으로 옮기였다. 그는 우선 수하의 군사들을 김매기와 가을을 핑게로 전부 둔전에 내몰았다.

벼락에는 바가지라도 뒤집어쓴다고 지금 당장 원정준비의 분위기를 다소라도 해소시키려면 그런 방법이라도 써야 했다.

그 다음은 박위에게 이른바 최후통첩을 들이댈판이였다.

헌데 최후통첩이라는것이 자기의 진심에서 우러나온것이 아니라 순수 전략적인 수단에 불과한것이라 정작 실행하자니 솔직하고 고지식한 윤통으로서는 여간만 괴롭지 않았다.

며칠을 바재이던 윤통은 박위를 주저앉히려면 최후통첩을 하는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재삼재사 자신을 납득시키고나서 오늘 드디여 박위앞에 나선것이였다.…

…헌데 정작 박위와 마주서고보니 자기의 최후통첩이라는것이 그지없이 범박하고 유치한 아이들의 놀음같은것이여서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다 박위가 먼저 둔전문제를 걸고 된우박을 퍼붓자 천백번 정당한 그의 추궁에 대거리도 할수 없었고 최후통첩은 더구나 꺼내기 어려웠다.

하지만 윤통은 누구앞에서나 자기 할말은 하고야마는 사람이였다.

이 마당에서 마음을 늦추고 뒤로 물러선다면 자기의 비밀한 작전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갈것이였다.

모질게 마음을 도슬러먹은 윤통은 마침내 짓물었던 입술귀를 풀며 최후통첩의 서두를 떼놓았다.

《하관은 지금까지 장군의 높은 뜻과 강건한 의지를 누구보다 깊이 존경하고 따랐습니다.

그러나 하관의 마음은 이제 와서 전혀 달라졌습니다.》

윤통의 착잡한 심사와 비밀한 궁냥을 알리없는 박위는 그의 단도직입적인 소리에 흠칫 놀라기까지 하였다.

《그건 어떻게 하는 소리요?!》

워낙 말주변이 없는 윤통은 이렇다할 전제도 없이 제창 문제의 정면으로 돌입했다.

《지금 조정에서는 우리 군영의 원정준비를 두고 반정준비라 한다는데 어쩌면 그럴수 있습니까!

옛적부터 도와주는 손은 적고 시비하는 입은 많다고 하지만 이건 시비를 해도 너무하지 않습니까?》

박위는 윤통의 전에없던 언행이 어디에 뿌리를 둔것인지 비로소 환하게 헤아려지였다.

윤통이 어디서 반정소문을 얻어들었는지 자못 의문스러웠다.

이제 그 소문이 군영에 퍼지여 장교들과 군졸들까지 알게 되면 위불없이 그들의 기세도 쭈그러들것이라고 생각하니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흥분한 윤통은 점점 더 청을 높이였다.

《하관은 참을수 없습니다. 더이상 데데한 소문을 뒤에 달고 다니지 못하겠단 말입니다.》

《그러니 부원수는 어쩌겠다는거요?》

박위의 청수한 얼굴은 컴컴하게 흐려들었으나 그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훨씬 더 침착하고 부드러웠다.

윤통은 커다란 주먹으로 허공을 꾹꾹 찌르며 다시 말을 잇는데 지나치게 흥분한탓인지 그의 말은 박위의 물음에 전혀 동닿지 않았다.

《우리가 대마도를 공격하자는것은 국치를 씻고 국난을 막으며 국명을 떨치자는건데 여기에 어떻게 역적모의라는 딱지가 붙을수 있습니까?》

《부원수, 우리의 뜻이 정당하고 우리의 마음이 결백한데야 무엇이 두려울것 있소?》

《아무리 뜻이 정당하고 마음이 청청하다 해도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데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무엇때문에 하지 않아도 별일 없을것을 부등부등 하겠다고 하다가 세상에서 제일 험한 험턱을 들쓰고 신세를 망치겠습니까?》

《그러니까 부원수는 헛소문이 무서워서 원정을 포기하자는거요?》

《포기하자는게 아니라 껄렁한 소문이 잦아들 때까지 덮어두자는겁니다.》

《명백히 말해두오만 원정준비는 순간도 덮어둘수 없소.》

《그렇다면… 하관은 소지(관청에 내는 글)를 바치고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뭐라구?!》

박위는 너무도 예상밖의 타격에 그만 신음소리같은것을 흘리며 입을 딱 벌리였다. 눈앞이 잉그르르 돌아갔다.

윤통의 시꺼먼 얼굴이 둘 혹은 셋으로 보이였다.

지금까지 자기의 오른팔로 확고하게 믿어온 부원수가 정면으로 원정준비를 반대하던 끝에 모든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가겠다고 할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박위였다.

과연 복은 외곬으로 오고 화는 쌍으로 든다고 한 옛사람들의 말은 틀린것이 아니였다.

리성계를 위시한 조정의 일부 량반들은 원정준비를 도와주기는커녕 요리저리 발뺌을 하고 지어 엄청난 모해까지 하려드는데 누구보다 든든하게 자기 뒤를 받쳐줄줄 알았던 윤통은 주저없이 탈퇴를 선언하지 않는가.

너무도 가혹한 타격이였다.

외로운 섬에 홀로 남은듯 한 극심한 소외감이 몰밀려들면서 전신의 기운이 와르르 풀리였다,

박위는 긴숨을 내불며 멀리 바다가쪽으로 시선을 날리였다.

(인간이란 결국 이런것인가.…

유리한 형세가 조성되면 허장성세하며 분주를 피우다가도 불리하거나 위험한 때에 닥치면 아던정 보던정없이 뒤를 사리는 비루하고 비겁한 존재란 말인가?…

다른 사람도 아닌 윤통이가 어쩜 이럴수 있는가. 아니, 어쩌면 윤통의 사고방식이 현명할지도 모른다.

대마도원정은 누가 시킨것도 아니요, 누가 간절히 원하는것도 아니다.

무엇때문에 남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지어는 역신의 험턱까지 들쓰며 끝끝내 고집하겠는가.

이미 백운이 권하였고 지금 윤통이가 주장하는대로 원정을 일시 덮어두거나 포기한다면 나의 육신은 편할것이다.

벼슬자리를 길게 유지하면서 그럭저럭 부귀를 누릴수도 있으리라.)

박위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준수한 모습이 선명히 떠올랐다.

안해 최씨와 리옥의 아름다운 자태도 방불하게 다가왔다.

죽촌의 저대로인과 《두부자루》고들이, 백동이 엄마라 부르는 젊은 녀인의 파리한 얼굴모양도 연줄연줄 솟아올랐다.

그들모두는 자기의 개성적인 표정과 각이한 거동으로 무엇인가를 소리없이 격렬하게 호소하고있었다.

박위는 소스라치듯 놀라며 번쩍 눈을 치떴다.

절로 도리머리가 힘차게 저어지였다.

(아니, 그래서는 안된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목숨도 가정도 티끌처럼 바칠것을 맹세하고 검을 잡은 내가 시련과 난관이 닥쳐왔다 하여 겁을 먹고 물러선다면 어느 누가 나를 일러 이 나라의 뜻있는 사내라 하겠는가.

가자, 나 혼자서라도 기어이 가자.

걸음걸음 죽음이 뒤덜미를 당기고 시시각각 츠렁바위, 가시덤불이 앞을 막는다 해도 변함없이 완강하게 돌진해나가자.)

불시에 성이라도 난것처럼 윤통이쪽으로 홱 돌아선 박위는 준절한 어조로 그루를 박아 말하였다.

《부원수의 결심이 진정 그러하다면 내 말리지 않겠소.

나는 누가 뭐라고 하든 설사 죽음이 닥친다 해도 절대로 이 길에서 물러서지 않을테니 부원수는 마음이 내키는대로 하오.

누구보다 깊이 믿었던 또 한사람의 장수가 나와 뜻을 달리한다는것은 그지없이 애석한 일이나 나는 여직껏 마음에 없다는 사람을 억지로 비끄러매둔적은 한번도 없소.》

《아니, 그러니?!…》

이번에는 윤통이가 깜짝 놀라며 떠드박거리던 끝에 종시 말끝을 여물구지 못했다.

사실 윤통은 자기가 사퇴를 원하는 소지를 바치겠다고 하면 박위가 펄쩍 뛰며 팔소매를 당길줄 알았다.

원정을 아예 포기하지는 않는다 해도 (원정의 완전한 포기는 윤통이자신도 절대로 바라지 않았다.) 음험한 소문이 잦을 때까지 원정준비를 얼마간이라도 덮어두자는 의견은 따를줄 알았었다.

헌데 박위는 여전히 강하게 원정을 주장할뿐아니라 자기의 손을 끌어당기기는커녕 무슨 배신자를 따버리듯 주저없이 결별을 선언하는것이 아닌가.

윤통은 애초의 궁냥이 빗나간것이 아쉽기 전에 서슴없이 자기를 털어버리는 박위의 소위가 원망스러웠다.

무엇인가 억울하기도 하였다.

(박장군이 어쩌면 이럴수 있는가.

아무리 내가 소지를 바치겠다고 한들 한마디의 만류도 없이 대뜸 찬성을 하고 결별을 선언한다는것은 인정으로 봐도 너무 박절한 처사가 아닌가.

그러니 박장군은 이 윤통을 지금껏 그렇게 헐값으로 여겨왔는가?…)

박위에 대한 원망이 한물 슬어들자 이번에는 연하게나마 자기반성감이 떠올랐다.

(나는 우선 박장군을 원망하기 전에 그의 믿음을 도용하여 속에도 없는 최후통첩을 꺼리낌없이 뇌까린 나자신의 너절하고 고약한 심보를 꾸짖는게 옳지 않을가?…)

윤통은 눈살을 찌프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무엇인가 남에게 몹쓸짓을 하고난것처럼 기분이 찜찜했다.

대마도원정을 두고 주야로 애면글면하는 박위에게 힘을 보태주지는 못할망정 그에게 또하나의 아픈 상처를 새겨준 자신이 부끄럽고 죄스러웠다.

그러자 필사의 의지로 기어이 험난한 길을 헤쳐가려는 박위의 인품이 더욱 돋우보이였다.

그만큼 박위의 운명이 불안스럽기도 했다.

윤통의 발밑으로는 하얀 알을 입에 문 개미들이 길다랗게 행렬을 지어 질서있게 이동하고있었다.

얼마 안있어 비가 내릴 조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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