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회)

제 2 장

1

 

장단고을을 지나 취적교를 건는 박위와 여삼은 개경의 동대문인 숭인문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야트막한 등성이로 군마를 쳐몰았다.

군마들은 융단같은 잔디가 고루 깔려있는 등성이마루에 오르자 투투 투레질을 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말안장에서 뛰여내린 박위는 등성이앞코숭이쪽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파란 풀밭에 다문다문 박혀있는 노란색, 빨간색의 이름모를 들꽃들이 오랜만에 개경으로 올라온 박위에게 미쁜 웃음을 지어보이고있었다.

하나같이 시누런 비단조끼를 차려입은탓에 조금 건방져보이는 산벌들은 윙윙 이쪽으로 다가오며 엷고 투명한 나래로 단조롭기는 하나 더없이 열정적인 군악을 울리여 박위의 상경을 환영했다.

개경은 실로 정다운 고장, 한창나이때의 잊지 못할 추억이 어려있는 소중한 곳이였다.

까닭없이 울렁거리는 가슴을 안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박위는 송피를 벗겨낸 자리가 버짐자리처럼 듬성듬성 널려있는 아름드리 소나무밑에 이르자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너무도 눈에 익은 송악산의 자태가 가슴을 지지며 안겨왔다.

아름다운 녀인이 조금 부른 배를 솟구고 단정하게 누워있는것처럼 보이는 송악산줄기의 모습, 그래서 재미나는 사랑의 전설도 많고 사랑의 노래도 수없이 엮어낸 개경의 자랑 송악산이였다.

허나 송악산이 그토록 자랑스러운것은 사랑의 전설과 노래가 많은탓만이 아니였다. 뭐니뭐니해도 송악산이 자랑스러운것은 거창한 봉이와 줄기마다 이 나라 백성들의 애국의 넋이 진하게 슴배여있기때문이였다.

감개에 젖은 박위의 시선은 벌써 송악산마루에서 시작되여 동서로 길게 뻗어내린 개경의 라성(고구려와 고려시기 일부 성곽들은 외성과 내성으로 쌓아 2중으로 방비를 강화하였는데 그런 경우 외성을 라성이라 하고 내성을 견성이라 하였다.)을 더듬고있었다.

개경의 라성은 지금으로부터 4백여년전 고려의 애국명장 강감찬이 수도방위를 목적으로 무려 30만의 군민을 동원하여 쌓은 장성이였다.

성돌마다에는 검푸른 이끼가 두텁게 덮이고 돌틈마다 살구나무, 메대추나무, 쑥덤불 같은것이 박혀있는 고색이 창연한 라성.

하지만 여겨볼수록 라성의 곳곳에서는 그 시절 애국명장과 수십만 군민의 애국열정이 후덥게 끼쳐나오는듯싶었다.

오, 정녕 금덩이와도 바꿀수 없는 하나하나의 성돌들에는 얼마나 뜨거운 애국의 피와 땀이 어려있는것인가.

그것은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 해도 사라지지도 마르지도 않을것이며 이 나라 력사와 더불어 길이 전해지리라.…

《그러니까 저 성이 바로 강감찬장군께서 쌓으셨다는 그 유명한 라성이오니까?》

개경걸음이 난생처음인 여삼은 발에 닫고 눈에 띄우는 모든것이 희한하여 사위를 두릿거리며 제 혼자 시시벌거리던 끝에 종시 박위의 사색을 깨쳐놓았다.

박위는 여전히 라성쪽을 바라보며 조금 눌린듯 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래, 저 성이 바로 강장군과 그 시절 군민의 애국의 혼령이 스며있는 라성이다. 군사를 최대의 국사로 여기고 몸과 마음을 깡그리 군사일에 몰바친 강장군은 고려국의 첫째가는 명장이였다.》

말을 마친 박위는 다시 혼자생각에 휘감기였다.

소나무들의 우듬지에서는 바람을 안은 솔가지들이 솨솨 파도소리같은것을 내며 설레이고있었다.

그 소리는 박위의 사색을 해치기는커녕 더욱더 깊은 세계로 떠밀어갔다.

(강장군의 애국의 넋과 그 시절 군민의 애국지심은 지금도 저 송악산은 물론 이 나라 하늘땅 그 어디나 뜨겁게 배회하고있는데 나를 위시한 현세의 장수들은 과연 그네들의 혼령앞에서 떳떳이 머리를 들고 자기의 애국심에 대해 말할수 있는가?…

왜구들은 장장 백수십년세월 도적고양이 반찬광나들듯 우리 땅을 나들며 이 나라 사람들에게 이루 다 말할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들씌우고있는데…

지어 개경의 관문이라고 해야 할 승천부의 개태사에 달려들어 태조대왕의 화상까지 훔쳐가는 특대형의 만행도 서슴지 않고있는데…

고려의 국난, 민족의 수난을 막지 못하고있는 우리 장수들이 어떻게 선조들의 영령앞에, 오늘의 백성들앞에 그리고 래일의 후손들에게 떳떳할수 있겠는가?…)

얼마후 박위는 여삼을 뒤에 달고 개경장안의 중심부에 위치한 번잡스럽기 짝이 없는 공랑(고려시기 나라에서 상인들에게 점포용으로 빌려주던 저자거리.)을 에돌아 비교적 인적이 드문 소로길에 들어섰다.

여삼은 두고두고 입에 올릴수 있는 개경의 요란한 장거리를 구경하지 못한것이 못내 아쉬워 기름내, 술내 같은것이 풍겨오고 싸구려소리와 다툼질소리가 소란스레 울려오는 공랑쪽을 연해 돌아보았다.

여삼의 바글거리는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깊은 생각에 잠긴채 묵묵히 말을 걸키던 박위는 문득 고개를 돌리더니 밑도 끝도 없는 소리를 꺼내놓았다.

《이애 여삼아, 오천이녀석이 요즘에 정말로 취금이에게 미쳐돌아가는 모양이더냐?》

여삼은 박위의 뜻밖의 물음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부모의 사랑도 형제간의 우의도 모르고 외토리로 막돌처럼 굴러다니며 자라난 여삼은 오천을 알게 된 후 그를 친형이상으로 따르고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오천은 경상군영에 내려와 처음으로 여삼을 알게 되자 생활처지와 자라난 환경도 자기와 엇비슷하고 손재주도 비상한 여삼이가 불쌍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여 친동생처럼 살뜰히 위해주었다.

올해 초봄 여삼이가 장가를 갈 때 있은 일이였다.

부모도 형제도 없고 혼례식문세에도 깜깜인 여삼은 택일(날받이)을 해놓고도 어벙벙해서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럴 때 여삼을 찾아온 오천은 언제나 그러하듯 싱글벙글 웃으며 장담을 했다.

《여삼아, 잔치준비는 내가 다 할테니 너는 아무 걱정말아라. 부처님처럼 곱게 앉아있다가 상도 받고 새색시도 받으란 말이다, 핫하하!…》

그날부터 오천은 파발마뛰듯 쉴새없이 뛰여다니였다.

납페(남자측에서 녀자집에 보내는 례장.)로 쓸 무명도 구해오고 잔치상에 놓을 꿩과 기러기도 안아왔다.

썩 후날에야 여삼은 그 모든 물건들은 오천이가 밤마다 손에서 피가 나도록 호미와 낫따위를 벼리는 야장일을 해주고 얻어온것임을 알게 되였다.

물론 군영군사들과 박위도 여러가지로 여삼의 잔치준비를 거들어주었다.

하여 잔치는 제법 격식있게 거행되였다.

헌데 구고레(신부가 시부모에게 재배를 하고 페백을 드리는 의식.)를 할 대목에 이르러 그만 말썽이 생기였다.

여삼에게는 신부의 절을 받고 페백을 받을 부모가 없는것이였다.

여삼의 눈에는 대바람 눈물이 핑 고이였다. 신부의 얼굴도 컴컴하게 흐려지였다.

난중한 빛으로 신랑신부를 갈마보던 오천은 시부모가 앉아야 할 자리에 제가 넌떡 들어앉았다.

사람들을 둘러보며 축축하게 젖은 청으로 말했다.

《나로 말하면 여삼이 형님이요, 형님인즉 부모없는 이 사람한테는 부모나 다를바 없으니 신부의 인사는 내가 받겠소.》

그러자 혼례나 장례때면 의례히 까다롭고 복잡한 례식절차를 따지는것으로 한몫 보는 동네의 나배기들이 무슨 큰일이라도 난듯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났다.

《세상에 이런 깍두기판이 어디 있나?!… 아무리 의형님이라 해도 장가를 못 간 총각이 어떻게 시부모행세를 하는가 말일세.》

《신부나 신랑이나 다 섭섭하겠지만 주자가례에 없는 절차를 따로 만들어낼수는 없느니.》

오천은 금시 얼굴이 뻘겋게 달아가지고 버럭 증을 내였다.

《그러니 부모없이 자란 불쌍한 사람은 구고레구경도 못한단 말이요?

백사람, 천사람이 시비를 해도 소용없소.

나는 지금도 이 사람의 형님노릇을 하고 앞으로도 형님행실을 할테니 걱정들 말고 썩썩 물러나시오.

얼른 구고레를 해야겠소.》

오천은 여러 시비군들을 다 물리치고 끝끝내 자리를 지키고앉아 신부가 페백으로 올리는 대추쟁반을 받았다.

페백을 받는 부모들이 의례 그러듯 대추 한알을 맛본 다음 《다남다복》(아들을 많이 낳고 복을 많이 받으라는 뜻.) 하라는 내용의 덕담까지 격식대로 했다.

여삼이도 울고 신부도 눈물을 흘리였다. 오천이도 눈굽을 씻었다.

여삼과 신부는 저들의 서러운 심정을 깊이 헤아려준 오천이가 고마와서 울었고 오천은 불쌍하게 자란 여삼의 행복한 장래를 축복하여 눈물을 흘리였다.

여삼이가 오천을 친형처럼 믿고 따르는것은 그가 단지 인정이 깊기때문만이 아니였다.

검술과 활쏘기도 능하고 무슨 일이나 다 자신만만하게 해제끼는데다 성격까지 시원시원한 오천은 정녕 같은 사내로서도 반할만 한 사람이였다.

하기에 여삼은 틈만 생기면 오천을 따라다니며 무엇을 배워달라고 떼질을 내기도 하고 실지 이일저일을 배우기도 했다.

지어 여삼은 오천의 조금 휘저울사 하는 걸음새와 말끝마다 《그까짓것》이라는 군소리를 붙이군 하는 그의 말투까지 본따려들었다.

헌데 요즘 여삼을 대하는 오천의 태도는 돌변하였다.

우정 틈을 내여 찾아가도 만날새가 없노라고 손을 홰홰 내저으며 어디론가 바삐 가버리였다.

술을 마시러 집에 나가자고 해도, 제수(여삼의 안해)가 모셔오란다며 손을 끌어도 당치도 않는 구실을 대고 피하였다. 서운했다.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여삼은 요즘에야 오천이가 취금이한테 빠지여 자기를 멀리하려 한다는것을 느끼게 되였다.

(사내들이란 녀자가 생긴 뒤에야 제 본색이 나오는 모양인가?

남들은 다 그렇다 한들 오천형님이야 그럴수 있는가?

나같이 그닥 속이 너르지 못한 놈도 녀자의 정보다 사람의 도리와 인정을 더 중히 여기는데 오천형처럼 대활하고 난다뛴다 하는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쉽게 녀자한테 엎어져서 인정이고 우의고 다 줴버릴수 있는가?…)

요즘에 와서 여삼은 오천이를 찾아다니기도 멋적었다.

확실히 오천과 여삼이 사이는 예전같지 않았다.…

여삼은 오천에게 해가 될 소리를 꺼내기도 딱하였고 거짓말을 제일로 싫어하는 박위를 속이기도 어려워서 한참이나 끙끙 갑자르며 대답을 꺼내지 못했다.

허나 말을 묻어두고는 잠시도 참지 못하는 성미인데다 저로서도 오천이가 적지 않게 못마땅한 여삼은 종시 꼬부장한 속내를 털어놓고야말았다.

《소인이 제 눈으로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동네아낙네들의 말을 들어보니 오천대정은 요즘 무슨 채단(신랑쪽에서 신부에게 보내는 포목 및 비단.) 같은것을 마련하느라고 바삐 뛰여다닌다고 하더이다.

소갈머리없는 아낙네들의 종작없는 소리를 그대로 곧이들을수는 없겠사오나 오천대정이 늘 염초장밖으로 나다니는걸 보면 그런 소문이 노상 허랑한 말 같지는 않소이다.》

박위의 예쁘게 생긴 입에서 허거픈 웃음소리가 불려나갔다.

《허어― 지금같은 때 명색이 군사라는 놈이 채단마련을 하느라고 나떠다닌다?! 괴이하도다.》

박위는 사실 오천에 대한 소문과 자기의 의심이 근거없는것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호젓한 기회에 여삼에게 넌지시 오천에 대해 물었었다.

그런데 오천이와 제일 가깝게 지내는 여삼이마저 오천을 서운하게 생각하는 꼴이였다. 하고보면 돌아가는 소문은 결코 랑설이 아니요,

자기자신도 헛의심을 한게 아니였다.

새삼스레 속이 언짢아지였다.

박위는 물론 오천을 대단하게 여기지는 않았으나 자기로서 할수 있는껏 중히 여기고 내세워주었었다.

최무선장군의 당부도 잊을수 없었지만 최무선의 뜻대로 오천이가 군사일에 자기의 힘과 지혜를 깡그리 바치리라 믿어의심치 않았기때문이였다.

그런데 오천은 제쪽에서 먼저 까치배때기같은 흰소리를 잔뜩 늘어놓고나서 이제 와서는 언제 그랬던가싶게 취금이를 끼고 제멋대로 나돌아치고있었다.

박위의 가슴은 진정 저리였다.

(아무리 배운것 없는 상놈이래도 속심지가 바로 박힌 놈이라면 운우의 정이라는것이 인간의 도리나 뜻보다 더 귀할수 없다는것쯤은 알아야 할게 아닌가.

참으로 오천이라는 녀석은 항간의 속된 말 그대로 마파람에 돼지불알 놀듯 하는 놈이야.…)

얼마후 장거리뒤쪽의 안침진 주막집에서 늦은 조반겸 이른 점심을 먹은 박위는 거기에 여삼을 떨구어두고 보행으로 왕궁을 향하였다.

급급히 길을 다그치여 만월대 축대우에 올라서니 제일먼저 한쪽벽이 허물어진 궁궐의 회경전(봉건관료들이 조회를 하던 곳.)과 꺼멓게 끄슬린 춘궁 (태자가 살던 곳, 동궁이라고도 함.)이 시선에 걸리였다.

아직도 20여년전(1361년)에 개경에 범했던 홍두적이 궁궐에까지 밀려들어와 불을 질렀던 흔적을 채 가시지 못한것이였다.

몇걸음 더 옮기자 이제는 쓰지 않는 건물인 대관전의 무너지다만 벽체에 누군가가 커다란 글씨로 써넣은 절구 두수가 안겨왔다.

 

만호장안 넓은 거리

재가루되여 남은것 없는데

고궁의 터전에

오동나무 한그루 천연하구나

내 비록 늙은 나이나

기필코 개경의 재건을 보고야말리

그때 훈풍이 다시 불면

오동나무 너 나의 거문고 될지어다

 

추연한 마음으로 거듭 시를 읊어보던 박위는 때마침 곁을 지나가는 중수도감(궁궐의 개건공사를 책임진 아전.)을 띄워보자 그를 불러 시의 사연을 물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시는 퍽 오래전에 왕명으로 입궐했던 안가성을 가진 어느 고을 부사가 외적의 화를 당한 궁궐의 모습이 너무도 기가 막히여 땅을 치며 통곡을 하고나서 분연히 써놓고 간것이였다. 박위는 중수도감에게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싶었으나 도감이 바쁜 태를 내는데다 때마침 자기의 련락을 안고 궁궐에 들어갔던 금오위(국왕을 호위하며 수도를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앙상비군의 하나.)의 장군이 다가서는 바람에 더이상 말을 나눌수 없었다.

금오위장군은 소문으로만 알고있던 박위를 만나게 된것이 무척 반갑노라고 새삼스레 긴 인사를 늘어놓고나서 궁궐의 환관들이 전해준 소식을 되뇌이였다.

《…전하께서는 오늘 옥체 미령하시여 편전에 드신고로 일체 외인들과 상면할수 없다고 합니다.》

가능한껏 한줄기의 가능성이라도 잡아보려는 시도는 물거품이 되고말았다.

이제는 리성계를 직접 찾아가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맥없이 만월대를 내려선 박위는 되도록이면 리성계에 대한 좋은 인상만을 살리기 위해 애쓰며 륙부아문(여섯으로 나누어진 중앙관청.)이 즐비하게 늘어서있는 대궐앞거리에 들어섰다.

내직에 있을 때는 아침저녁으로 오가던 길이요, 지난 4월 원정군의 열병식에 참가하기 위해 상경했을 때도 찾아왔던 곳이건만 어디가 어딘지 쉬이 가려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퇴락한 옛 건물사이에는 예전에 보지 못했던 덩실한 집들이 비좁게 끼여들었는가 하면 휑하게 비여있던 공지들과 격구장터에는 울긋불긋한 새집들이 빽빽이 들어앉아있었다.

전에없이 간고하고 어수선한 이때 불과 몇달사이에 이처럼 웅장화려한 건물들이 숲처럼 솟아난것은 자랑스럽거나 흐뭇하기는커녕 놀라움과 의혹만을 불러일으켰다.…

박위는 한참이나 거리를 오르내리던 끝에 간신히 중서문하성(국왕의 명령과 지시에 따라 나라의 모든 일을 처리하는 최고행정기관.)을 찾아내였다.

중서문하성에 들어서니 텅 빈 방안에 홀로 앉아 무슨 문집같은것을 뒤적거리던 해사하게 생긴 낯선 관리는 큰 비밀이라도 일러주듯 리성계는 도평의사사에 가있노라고 소곤소곤 말하였다.

여기서 박위는 다시한번 크게 놀랐다.

원래 도평의사사는 필요할 때마다 소집되군 하던 높은 관료들의 비상설적인 림시합의기관이였다.

헌데 지금은 상설관청을 가진 최고행정기관으로 되고 거기에 리성계가 항시적으로 틀고앉아 전반정사를 본다는것이였다.

이 시기 리성계는 자기의 세력기반을 든든히 축성하고 왕권을 최대한 제약하기 위해 도평의사사를 중서문하성과 6부의 권한까지 대행하는 상설적인 최고행정기관으로 격변화시키였다.

하지만 자기의 심신을 온통 군사일에 쏟아붓고있는데다 노상 지방에 나가사는 박위는 시시각각으로 변천되는 조정의 형세와 야심가들의 속심을 구체적으로 알수 없었다.

어벙벙한 기분으로 중서문하성을 나선 박위는 다시 이 골목, 저 골목을 휩쓸고다니던 끝에 간신히 도평의사사를 찾아내였다.

하느님의 코배기라도 찌를듯이 높이 치솟은 합각지붕들, 여의주를 희롱하는 청룡, 황룡이 부각된 두리기둥들, 거울처럼 반들거리는 대청마루와 육중한 화강석섬돌들…

도평의사사는 여느 관청에 비길수 없이 덩지도 컸지만 웅장화려하기도 이를데 없었다.

공연히 노기등등해서 눈알을 희번득거리는 파수군들과 싱갱이를 하다못해 불호령을 터치고서야 겨우 대문안에 들어선 박위는 섬돌우로 오르려다말고 우뚝 굳어지였다.

관청안에서 비단관복을 지르르하게 흘려입은 십여명의 재상들이 틀스러운 걸음으로 쏟아져나온것이였다.

재상들은 어떤 중대한 국사를 론하고 나오는듯싶은데 이상하게도 그들의 낯색은 저마끔 달랐다.

요즘에 와서 저들의 정치적변절을 합리화하기 위해 불교에서 말하는 견성(사람이 자기 본성을 알게 된다는것.)과 유교에서 말하는 양성(사람이 자기 본성을 키워나간다는것.)은 같은 뿌리와 목적을 가진것이라는 얼치기리론을 쳐들고다니는 조준과 윤소종 같은 관리들은 희색이 만면했다.

허나 임금에 대한 충정과 깊은 지식으로 하여 세인의 찬탄과 존경을 받고있는 수문하시중 정몽주의 퉁퉁한 얼굴과 판 삼사사 리색의 병색이 도는 갱핏한 얼굴에는 깊은 수심이 떠돌았다.

박위는 맨뒤에서 풀기없이 걸어나오는 리색에게 다가갔다.

리색은 몸집이 체소하고 체질도 약한데다 내성적인 성격이여서 얼추 보매 매우 유약해보이였다.

그러나 실상 리색은 유학과 문학에 깊은 조예를 가진 학자인 동시에 강력한 국가건설을 위해 제나름대로 애면글면하는 성실하고 강직한 정치가였다.

리색은 이미 공민왕시절에 벌써 교육기관을 질적으로 갱신하여 쓸만 한 인재들을 양성하며 불교행사에 재물을 랑비하는 현상을 철저히 없애는 동시에 강력한 수군을 건설하여 왜구를 격멸할것을 임금에게 제기했었다.

박위는 그의 모든 견해가 다 마음에 들었으나 그중에서도 군사를 중시하는 리색의 선견지명과 과단성있는 정치용단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당시 박위는 룡호군의 중랑장이였고 리색은 어보(임금의 도장.)를 간수하고있는 밀직사의 우대언(임금의 지시를 받고 내는 관직.)이였다.

그들은 벼슬품계와 나이도 훨씬 차이나고 출신도 문관, 무관으로 각각 다른터에 어울려지낼 기회는 많지 못했다.

하지만 박위는 리색의 장계내용을 알게 된 그날로 리색을 찾아가 자기의 존경심을 숨김없이 표명하였다.

리색도 박위의 군사적지략과 용맹, 사내다운 기개와 후덕한 인품에 대해 널리 들어 아는 까닭에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장수와 사귀게 된것을 무척 기뻐하였다.

그날로 두사람은 십년지기처럼 친숙해지였다. 그후로도 박위와리색은 만날 때마다(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사심없이 세상사를 론하고 정을 나누었다.

헌데 그처럼 정열적이던 리색이 오늘은 이 웬일인가.

의혹과 불안에 싸여 리색을 여겨보던 박위는 때마침 자기앞을 지나치는 리색에게 성큼 다가섰다.

《판 삼사사(국가재정을 총찰하는 관직.)대감!》

그제서야 박위를 알아본 리색은 다소 공허해보이는 눈에 가까스로 반색의 빛을 떠올리였다.

《오, 박장군! 어수선한 이때… 수고로이 상경하셨소그려.…》

(어수선한 이때라니 무엇을 뜻하는 소린가?)

박위는 공연히 입안이 말라들고 혀가 굳어졌다.

재상들이 모두 밖으로 나가자 용기를 내여 말을 꺼냈다.

《대감! 그새 옥체건강하시고 가내일동 무고하시나이까? 헌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대감의 안색이 그리 좋지 못하오이까?》

한식경이나 새털같은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가를 바라보던 리색은 동문서답같은 소리를 꺼내놓았다.

《내 나이 60에 이르는 오늘까지 밤낮없이 나라일을 두고 뼈를 깎아왔네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이를만 한 가치가 없네그려.…》

워낙 내성적인데다 깊은 수심에 싸이고보니 길게 말하고싶은 의욕이 나지 않는듯 리색은 다시 하늘가로 시선을 들어올리며 난데없이 옛시를 읊조리였다.

 

이 세상 모든 일이

참으로 아득하다

사람노릇 하기 힘들다는

옛말 바로 그대로구나

 

리색은 별로 흐리지도 않은 하늘을 새삼스레 둘러보며 혼자소리처럼 웅얼거리였다.

《박장군, 자고로 먹장구름이 떠돌 때는 된소나기가 쏟아질 조짐이라 하지 않았소.

이제 된소나기가 쏟아지면 이 땅에는 일진광풍이 일고 탁류가 덮일게요, 어허 기막힌지고…》

검버섯이 점점이 널린 리색의 여윈 얼굴에서 진액같은 눈물이 줄줄 흐르고있었다. 리색은 분명 그 어떤 날씨타령을 하는것이 아니라 날로 어지럽게 번져지는 조정의 일을 개탄하는것이였다.

잠시후 리색은 박위의 존재를 감감 잊어버린듯 작별인사도 없이 허위허위 대문쪽으로 걸음을 옮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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