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회)

제 1 장

15

 

짙은 어둠이 덮여있던 뙤창이 하얗게 벗겨지였다.

사위는 귀멍멍할 지경으로 고요한데 어디선가 이름모를 바다새들의 명쾌한 울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비릿한 해감내와 싱긋한 나무잎새냄새같은것이 바다바람을 타고 느긋하게 쓸어들어왔다.

여기 도적떼의 소굴에도 고려땅이나 다름없이 맑고 신선한 아침이 밝아오고 새울음소리며 나무잎내 같은것이 풍긴다는것은 실로 기이한 일이였다.

밤이 가면 아침이 오고 아침이 오면 새가 우짖고 싱긋한 바람이 불어오는것은 너무도 엄연한 자연의 리치건만 자연은 과연 인간세상이 아닌 짐승들의 세계에도 자기의 순결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숨김없이 펼쳐보일수 있단 말인가.

리옥은 뒤엉킨 심리, 어벙벙한 기분에 사로잡히여 별로 흐트러지지도 않은 머리를 비다듬어넘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뙤창가로 다가섰다.

체념이 깃든 시들한 시선으로 아무런 목적도 의욕도 없이 창밖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창밖의 자연이 한폭의 그림처럼 선명하게 안겨왔다.

하얀 꽃무더기를 한가득 품어안고 그 어떤 심원한 사색에라도 잠긴듯 미동도 없이 서있는 애젊은 때쭉나무.

그 나무의 상가지우에서 술래잡기라도 하듯 빙글빙글 돌아가는 숫제 랑군처럼 보이는 호구니와 숫색시처럼 보이는 호구니…

여기서도 여름의 자연은 아름다운 화폭을 펼치고 즐거운 음향과 싱그러운 향기를 날리며 약동하건만 리옥의 가슴은 더더욱 아프게 비틀리고 허우룩하게 무너져내리였다.

갑자기 참대쪽을 깔아놓은 복도의 바닥이 쿵쿵 울리였다.

리옥은 변함없이 뙤창너머에 시선을 던진채 까딱없이 서있었으나 가슴은 걷잡을수없이 활랑거리였다.

공포와 불안의 한순간이 지나가자 자기는 이미 죽음을 결심한 사람이라는 옹골진 마음이 돌덩이처럼 단단하게 뭉쳐지였다.

출입문이 펄썩 열리였다.

키는 무척 작고 몸집은 대단히 뚱뚱한데 대가리는 귤쪽처럼 삐죽한 왜구가 바싹 다가왔다.

전혀 알아들을수 없는 왜말로 쑤얼거리였다.

《고려처녀! 령주도노께서 몸소 너의 숙소에 래림하셨다. 인사를 올려라!》

리옥은 서서히 고개를 돌리였다.

방안에 들어선 놈은 두놈.

보매 령주의 막하 부하인듯 한 뚱뚱보는 절구통에 귤쪽을 접해놓은듯 한것이 첫눈에 벌써 저급한 지능을 가진 아둔패기라는것이 헨둥 알리였다.

허나 그놈의 뒤에 잇꽃무늬가 조잡하게 그려진 푸른색비단관복을 지르르하게 흘려입고 족도리같은 관모를 눌러쓴 놈팽이는 쇠덩이같이 단단해보이는 몸집에 독사의 눈알같은것이 판들거리는것이 여간만 독하고 사나울것 같지 않았다.

리옥은 심상한 낯빛으로 장님 은빛보듯 두놈의 모양꼴을 훑어보고나서 다시 고개를 돌리였다.

화가 동해오른 지또는 가느다란 눈을 지릅뜨며 서툴기 짝이 없는 고려말로 다시금 그 무슨 례의를 강박했다.

《무스메, 어서 령주도노께 인사를 올려라!》

리옥은 불뭉치같은것이 치밀어오르는듯 한 충동을 느끼는 순간 매서운 눈길로 지또를 노려보며 쏘아붙이였다.

《나는 당신들에게 강제로 끌려온 사람이요.

아무런 죄도 없이 강제로 잡혀온 사람이 누구에게 뭐라고 인사를 한단 말이요?》

《이년이 뉘앞에서 감히…》

지또는 리옥의 항변이 실지로 골이 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이 기회에 사다께에게 보다 잘 보일 심산으로 자기의 분노를 턱없이 과장하며 당장 후려치기라도 할것처럼 수선을 떨었다.

사다께는 지또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것으로 졸개의 과장기가 농후한 저급한 행동을 제지시키고나서 방구석쪽에 놓여있는 까만 옻칠을 한 자그마한 밥상앞에 다가갔다.

밥상에는 기름떡과 연어회, 대순볶음 같은것이 조금조금 담겨있는 나무그릇들이 올망졸망 놓여있었다.

그런대로 성의를 넣어 차려준 상이건만 어디에도 사람의 손이 닿았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물그릇만이 반나마 비여있었다.

비양기어린 미소를 띄우고 소대가리같이 커다란 머리를 끄떡거리던 사다께는 자못 틀스럽게 올방자를 고이고 앉았다.

허옇게 뒤집어진 웃입술을 너덜거리며 흠할데없이 류창한 고려말로 씨벌거리였다.

《흠! 며칠동안 줄곧 입을 봉하고있단 말이지. 지독하군.

그러니까 적국의 음식은 죽어도 먹지 않는다, 이런 뜻이란 말이지?!

너는 정말 죽고싶은가?!》

사다께의 음성은 나직했으나 그 나직한 말속에 얼마나 끔찍한 행동의 뿌리가 들어있는가를 잘 아는 지또는 제쪽에서 먼저 흠칫 놀라며 리옥을 쳐다보았다.

리옥은 싸늘한 랭기가 풍기는 하얀 얼굴을 여전히 뙤창쪽에 돌린채 또박또박 그루를 박아 말했다.

《그렇소. 생도 내가 요구하는것이고 의도 내가 원하는것이요.

그러나 두가지를 다 얻을수 없다면 난 기꺼이 생을 버리고 의를 취할것이요.》

만약 리옥이가 아니라 수하의 어느 누가 이런 말을 했다면 사다께는 즉석에서 《오멘!》하고 멱따는 소리를 지르며 칼을 날렸을것이다.

허나 사납고 독할 망정 절대로 우직하지 않는 사다께는 이 처녀가 얼마나 값비싼 존재이며 이 녀자를 통해 얼마나 많은것을 벌어들여야 하는가를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게다가 처녀의 도고한 기품은 난생처음 보는것이여서 그의 쌀쌀한 언행이 다소 화를 돋구기는 하지만 여간만 신기하지 않았다.

리옥의 나무랄데없이 깨끗한 얼굴과 몸매를 걸탐스럽게 여겨보던 사다께는 별안간 소대가리같은 상판을 뒤로 젖히며 껄껄 웃어댔다.

《핫하하! 리별장의 딸이요, 박위의 안으서감이라더니 과시 담기가 보통이 아니군. 그럴듯해, 그럴듯하단 말이야. 으핫하하!》

사다께의 전혀 뜻밖의 소리에 리옥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리였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고려와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있는 여기 왜구의 섬에 골박혀있는 이놈이 내가 누구의 딸이라는것은 어떻게 알며 누구의 안으서감이라는 말은 또 무슨 소린가?)

리옥의 청초한 얼굴에 떠오르는 미세한 표정의 변화를 놓칠세라 여겨보던 사다께는 우야 멋을 내느라고 쓰고나온 관모가 아무래도 불편스러워 조금 뒤로 제껴놓고나서 한결 여유있는 청으로 말을 이었다.

《생과 의중에서 하나를 택하라면 의를 지키겠다?!

녀자가 그렇게 의를 중히 여긴다는것은 갸륵한 일이다. 아주 좋아.

헌데 너는 우리에 대해 심히 그릇인식하고있는것 같은데…

우리는 네가 생각하는것처럼 의리도 모르고 도리도 안중에 없는 무지막지한 사람들이 아니야.

우리에게는 우리의 의가 있고 우리의 도가 있단 말이다. 그러니 크게 걱정할것 없다. 너는 생도 구할것이며 의도 잃지 않을것이다.》

《?!…》

사다께는 자기의 거침없이 흐르는 말재주를 스스로 흡족해하며 성수가 나서 뒤말을 심어나갔다.

《에또― 그러면 내 이제 우리의 용건을 말해주겠다.

듣자니 너는 경상도원수 박위와 매우 친좁게 지낸다던데 사실인가?》

창날로 쿡 찌르는듯 한 사다께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리옥은 숨이 꾹 막히는듯싶었다.

이제는 그저 놀라운것이 아니라 그 놀라움속에서 상서롭지 못한 추측이 연줄연줄 묻어올랐다.

(이놈은 우리 군영과 김해고을의 내막을 자상히 알고있는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혹시 우리 김해땅에 이놈과 줄이 닿아있는 렴탐군이 박혀있는게 아닐가?… 정말 모든것이 우연치 않다. 죄없는 생사람도 마구 때려죽이는 짐승같은 왜구들이 무엇때문에 저들의 병졸을 쏘아죽이기까지 한 나를 손톱눈 하나 다치지 않고 예까지 고이 데리고왔는가?

왜 지금까지도 살상의 《죄》를 전혀 따지지 않는가?

과연 무엇때문에 죽촌에서 잡아온 사람들은 죄다 마구칸같은데 쓸어넣으면서 나만은 유독 이렇게 깨끗한 방에 혼자 들여앉히고 귀빈처럼 대하는것일가?…)

리옥의 대답말을 별로 기다리는 빛도 없이 턱주가리의 칼자리를 슬슬 매만지며 침묵을 지키던 사다께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자기의 거대한 음모전반을 놓고볼 때 너무도 지엽적인것이여서 (그러나 가장 중요한 첫 공정이였다.) 타인으로서는 전혀 음모의 륜곽을 짐작할수 없는 첫 미끼를 슬쩍 뿌려던지였다.

《털어놓고말해서 우리는 너에게서 큰것을 바라지 않는다.

무슨 거짓말을 하라는것도 아니요, 어떤 요란한 물건을 내라는것도 아니다. 박위는 지금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너로 하여 무척 근심하고있을게다.

그러니 간단하게라도 그지간의 너의 소식을 박위에게 알리라는것이다. 그것은 너도 소원하는바일줄 안다.》

《?!》

《너는 물론 우리의 청을 이상하게 생각할수 있으나 사실상 의문날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이번에 데려온 고려백성들중에 리별장의 딸이 끼워있는줄은 전혀 몰랐다. 본의는 아니라도 한 나라의 장수인 박위와 가깝게 지내는 녀자를 예까지 잡아온것은 우리로서 매우 미안쩍은 일이요, 떳떳치 못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죄겸 너의 소식을 박위에게 알려주자는것이다.》

《?!》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짓고 한가지 거짓말을 꺼내놓은 사다께는 그 거짓말을 사실처럼 묘사하기 위해 수다한 거짓말을 꺼내놓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째서 너를 포함한 고려백성들을 예까지 데려왔으며 인차 되돌려보낼수 없는가.

에또― 그것은 박위와 화평교섭을 하기 위해서이다.

터놓고말해서 우리는 오늘날에 이르러 지치기도 했지만 마음이 달라지여 이제는 피차 검을 놓고 평화적인 교역을 하며 의좋게 살았으면 한다. 그런데 호전적인 성향이 농후한 박위가 우리의 청을 옳게 리해하고 쉽사리 응낙하겠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평화를 원하는데 박위는 계속 옛적의 원한을 따지며 검을 휘두른다면 우리로서는 여간만 괴롭지 않을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가지로 신중히 따져본 끝에 박위가 평화교섭에 응해나설 때까지 고려사람들을 이곳에 그냥 눌러앉힐 결심을 내리였다. 그런즉 너의 편지는 박위에게 보내는 문안편지인 동시에 량국간의 력사적인 평화교섭의 첫시작으로 될것이다.》

사다께는 장광설을 끝내기 바쁘게 리옥의 반응을 슬며시 살펴보았다.

사다께의 검은 속심을 전혀 알리 없는 리옥은 아미를 나부시 내리깐채 제나름대로 무거운 생각에 잠기였다.

(이놈의 수작이 절반만 사실이라 해도 얼마나 좋겠는가.

평화교역! 그것은 파괴도 살륙도 없고 불과 피도 없는 생활을 전제로 하는것이다. 헌데 그것이 과연 이들의 본의겠는가?…)

아무리 되굴려 생각해보아도 믿음이 가지 않았다.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의혹과 불안만이 갈수록 불어올랐다.

(…벌써 백수십년전부터 고려에 대한 침략과 략탈을 일삼아온 왜구들이 이제 와서 갑자기 검을 놓고 제 먼저 화평을 운운한다는것이 과연 있을수 있는 일이겠는가?…

이놈들이 진정으로 화평을 원한다면 우선 먼저 우리 고려국 조정에 찾아가 지난날의 대죄를 일일이 반성하고 앞날의 맹세를 진심으로 다져야 할것이다.

그런데 화평을 원한다는 놈들이 무엇때문에 죽촌을 불태우고 숱한사람들을 죽인단 말인가?…

정녕 무엇때문에 여기 섬구석에 똬리를 틀고앉아 일개 시골녀자에 불과한 나를 내세워 화평교섭의 첫 꼭지를 떼겠노라고 구차스러운 소리를 하는가.

화평수작은 필경 거짓이다. 흉물스러운 이놈들은 나를 미끼로 무서운 음모를 꾸미려는것이 분명하다.)

예까지 생각이 이르자 절로 숨결이 높아지였다.

치밀어오르는 분노와 짙어가는 의혹속에서 리옥의 사색은 줄차게 내뻗치였다.

(혹시 이놈들이 나를 구렝이 닭알녹이듯 해가지고 현중 아버님과 군영군사들을 어째보려는것이 아닐가?…

그렇다면 나는 이 마당에서 무턱대고 죽을 생각만 하면서 만사를 체념해야 하겠는가.

아니야, 오늘의 이 일이 나 하나의 목숨에 관계되는것이라면 내가 죽는것으로 끝장낼수 있지만 이것은 그렇게 단순하게 처리할수 있는 일이 아니야.

이 일은 분명 현중 아버님과 군영군사들의 운명과 관련된 일이다.

크게 본다면 우리 고려국의 안위와 운명에 관한 문제이다.

그렇다면 기어이 살아서 가능한껏 김해땅에 박혀있는 왜구의 세작을 알아내고 여기 도적굴의 속내를 내탐하여 군영에 전하는것이 옳은 도리일것이다.

그것이 내 사랑 고려를 위해 내가 할수 있는 마지막일일것이다.

자결은 어느때든 할수 있는 일, 내 생의 마지막과제를 끝낸 뒤에도 얼마든지 할수 있는 일이다.)

리옥의 결심은 드디여 쇠덩이처럼 굳어지였다.

사실상 자기가 생의 마지막과제로 내세운 그 모든 일은 너무도 막연한것이여서 마치 하늘의 구름을 끌어내리려는것처럼 허황하게 생각되기도 했으나 절대로 외면할수 없는 일인것만은 명백했다.

불안과 절망에 싸여있던 리옥은 생활의 준엄한 목표를 설정하였다.

실행행로는 오리무중했으나 타산은 비교적 정확하였다. 허나 다음순간 지나치게 결곡하고 정열적인 녀자들이 쉽게 편견에 빠지듯이 리옥이도 그만 한가지 착오를 범하였다.

그것은 놈들의 궁냥이 어찌됐든 자기의 행적을 몰라 안타까와할 박위에게 한쪼각의 소식이라도 전한다면 피차가 다 한시름 놓을것이라는 극히 단순한 생각에 사로잡힌것이였다.

솜씨있는 화공이 섬세하게 붓질을 하여 그려놓은 한폭의 정교한 인물화마냥 까딱없이 굳어져있던 리옥은 그 어떤 마술에서 풀려나기라도 한듯 고개를 들어올리였다.

사다께앞으로 미끄러지듯 다가갔다.

전혀 예상밖의 일이라 사다께의 세모진 눈에 금시 의혹의 자욱이 허옇게 매달리였다.

그러거나말거나 리옥은 사다께앞에 작고 고운 버선발을 멈추더니 나부시 무릎을 꺾고 앉았다.

좀전과는 훨씬 다르게 누그러진 어조로 말을 꺼냈다.

《실례인것 같은데 난 지금 몹시 시장하오. 무엇이든 조금 먹어야 생각도 하고 글도 쓸것 같으니 내가 술을 뜨는 동안 잠시 자리를 피해주었으면 하오.》

의혹과 놀라움이 비꼈던 사다께의 떡판같은 얼굴에 기쁨의 혈조가 징그럽게 번져지였다.

리옥이 자기가 던진 미끼를 연추채로 삼킨것이라고 짐작한것이였다.

여직껏 검둥개 굿구경하듯 아무런 흥심도 없이 사다께와 리옥을 갈마보던 지또의 가느스름한 곰눈도 휑하게 커지였다.

지또는 고려처녀가 제아무리 도고하다 해도 사다께의 비상한 계략의 그물에는 걸려들지 않을수 없노라는 뜻의 비굴한 웃음을 띄우며 칼자리가 얼기설기 흘러간 상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사다께는 상당히 휘여내기 어려울줄 알았던 리옥이가 이처럼 수월하게 굽어들자 다소 어정쩡한중에도 여간만 기쁘지 않았다.

계집이란 역시 제아무리 도담하고 총명하다 해도 단순하고 편벽한 물건이요, 자기의 계략으로 말하면 하늘과 감응하는것이니 의당뒤끝은 이렇게 될법 아니냐 하는 자기나름의 판단과 자부심이 무덕무덕 괴여올랐다.

그러거나말거나 리옥은 유연하게 팔을 내뻗치여 기다란 저가락으로 기름떡 하나를 꿰들었다.

기름이 찰찰 흐르고 달짝지근한 냄새가 몰몰 풍기는 기름떡이건만 정작 입에 넣으니 모래덩이처럼 깔깔하고 써벅써벅한것이 쉬이 씹어넘길수 없었다.

리옥은 전혀 식욕이 느껴지지 않았으나 이몸에 힘을 주어 강다짐으로 기름떡을 씹어나갔다.

마당삼이라도 얻은 놈처럼 희색이 만면하여 노냥노냥 기름떡을 씹고있는 리옥을 유심히 뜯어보던 사다께는 처녀의 목언저리에 박혀있는 까만 기미를 띄워보자 왜서인지 흠칫 몸을 떨었다.

투실투실한 상판에서 어룽거리던 웃음기는 씻은듯이 사라져버리고 세모진 눈에서는 이상한 불꽃이 파랗게 부서지고있었다.

뙤창너머로 내다보이는 진회색하늘에서는 시꺼먼 비구름장들이 서리서리 뒤엉키며 이쪽으로 달음박질쳐오고있었다.

머지않아 무서운 폭우가 터질 조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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