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회)

제 1 장

12

 

날바다 한복판에 찢어발긴 걸레짝처럼 널려있는 해적떼의 소굴 대마도에 또 하루의 아침이 밝아왔다.

짙은 안개발속에서 수닭들의 거센 울음소리가 아침의 정적을 깨며 겨끔내기로 울리였다.

감때사나운 섬계집들이 아침밥 지을 물을 길으러 가며 쌈싸우듯 고아대는 소리도 간간이 들려왔다.

허나 대마도령주가 틀고앉은 이즈하라(대마도의 큰 고을중의 하나)의 중심부에 청색기와를 층층 겹올려 지은 관사안팎은 아직 고요했다.

관사주위에 공기돌처럼 널려있는 군막들도 괴괴한 정적에 묻혀있었다.

아까부터 관사의 대문앞에서 서성거리던 박달몽치처럼 다부지게 생긴 파수군은 입아귀가 찢어지도록 기껏 하품을 하고나서 슬며시 대문틈새에 깨꼬눈을 가져다붙이였다.

바로 그 순간 높직한 돌담에 쌓인 관사의 앞마당쪽에서 영문을 알수 없는 왜가리소리가 왝왝 터져나왔다.

《오멘―》

《도―》

《후꾸―》

파수군은 대문에 바싹 들어붙어가지고 여념없이 앞뜰의 광경을 훔쳐보고있었다.

넓다란 판사 앞마당에서는 웃동을 홀딱 벗어제낀 왜구 하나가 미친것처럼 고래고래 소래기를 질러대며 칼을 휘두르고있었다.

그가 바로 대마도의 최고통치자인 동시에 해적무리의 대두령인 오바 사다께였다.

사다께는 청돌처럼 탄탄해보이는 상체를 껑충껑충 날리며 연해 칼을 내리찍고 후려치고 비껴내리였다.

돼지멱따는듯 한 청으로 꼭같은 소리를 곱씹어 웨치였다.

《오멘―》

《도―》

《후꾸―》

그 소리인즉 곧 얼굴, 정수리, 배라는 말인데 자기의 칼은 언제나 적수의 급소만을 타격한다는 뜻이였다.

사다께는 북부 규수지방에서 기비요꼬메 (사탕수수의 재배 및 수확을 감시통제하는 하급관리)노릇을 하던 제 아비와 함께 아시까가막부를 위한 가렬처절한 싸움판에 뛰여들었던 그때로부터 40고개를 넘어선 오늘까지 수십년세월 단 한번도 검을 놓은적 없는 알짜배기 사무라이였다.

돌이켜보면 사다께에게 있어서 검은 가장 친근하고 믿음직한 인생의 길동무인 동시에 유일무이한 운명의 수호신이였다.

만약 이 세상에 검이라는 날카로운 물건이 없다면 사다께의 일생은 물에 물탄것처럼 더없이 슴슴하고 적막하였을것이였다.

검이 아니였다면 사다께는 40평생을 누벼온 전란속에서 절대로 생명을 부지하지 못했을것이였다.

검은 또한 사다께에게 있어서 오늘의 막강한 권세와 부귀, 눈부신 명예를 가져다준 고마운 은인이였다.

그가 만일 검이 아니라 붓을 택했다면 오늘까지도 자기의 조상들처럼 규수의 산골마을에서 항시 하브 (강한 독성을 가진 독사의 일종)떼의 위협을 받으며 사탕수수밭을 나돌아다니는 기비요꼬메노릇을 하고있을것이였다.

무자비한 검으로 점령지를 확대하고 적대세력들을 쓸어버렸기에 사다께는 오늘 다이묘(봉건제후)가문의 귀족출신으로 둔갑하여 나라사람들이 모두 아는 유명짜한 정객으로 될수 있었다.

검은 또한 희한한 래일을 눈짓해주는 희망의 혼이였다.

온 세상을 타고앉아 천하를 호령하려는 사다께의 엄청난 꿈을 검이 아닌 무엇으로 이룰수 있겠는가?!…

하기에 사다께는 작지 않은 섬을 방석처럼 깔고앉은 일류 고관의 지위에 올랐으나 지금까지 단 하루도 검을 놓아본적이 없었다.

전장은 이미 눈앞에서 사라졌어도 여전히 검의 언어를 심장에 새기고 무사도의 열렬철저한 기개와 정신으로 심신을 수련하면서 섬안의 모든 정사(정사의 주요항목은 물론 해적행위와 타민족에 대한 략탈로 일관되여있었다.)를 역시 무사도의 기백으로 과단성있게 처리해나가고있었다.

그와 함께 대마도의 군력을 가일층 강화하고 재력을 루거만으로 확장하여 자기의 통치구역을 계속 늘이며 나아가서는 권력의 자리까지도 타고앉을 웅대한 계획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있었다.

하기에 섬밖에서나 섬안에서나 조금이라도 사다께의 속심을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를 《귀신다께》라고 부르며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또 부러워했다.

사다께는 졸개들앞에서 때없이 자신을 《항우의 용력과 제갈공명의 지모를 한몸에 껴잡아 지닌 희세의 검객》이라고 거의 로골적으로 지껄이군 했다.

그것은 물론 자신의 능력과 욕망을 혼돈한 터무니없는 자기 과찬이였으나 그렇다고 하여 전혀 근거없는 말이라고 할수는 없었다.

얼추 보면 사다께는 밸통머리 사나운 우직한 메돼지같았으나 세세히 관찰해보면 분명 승냥이의 흉맹성과 여우의 약은 꾀를 한데 어울려가진 야심만만한 검객인 동시에 과대망상증이라는 고치기 힘든 병을 가진 허풍선이 정객이였다.

어딜 가나 매일같이 칼싸움이 벌어지여 이제는 피바람이 일어번지는 칼싸움이 하나의 즐거운 유희로, 뜻있는 사내들의 자아수양의 《교실》로 인정된 이 나라의 살벌한 공기.

무엇이든 물리치고 찔러죽여야 자기와 가문의 생존과 명예를 고수확장할수 있다는 잔악한 생활법칙이 가장 현명한 인생지론으로 공인된 이 나라의 썩은 토양…

과연 그러한 공기와 토양속에서 아름다운 꽃송이의 탄생같은 기적을 기대할수 있겠는가.

지금은 이 땅 어딜 가나 필수불가결적으로 사다께와 같은 악질, 괴질의 인간들이 수없이 생겨나고 형성되고 살판뜀을 하는 세월이였다.…

한식경이나 정신없이 날고 뛰며 끓어넘치는 정력과 비상한 칼재주를 유감없이 시위하고난 사다께는 호기있게 칼을 비껴내리더니 땀방울이 숭숭 내번진 시뻘건 얼굴을 장하게 들어올리였다.

관사의 뒤뜰에서 쓸어나와 사다께의 훈련모습을 경탄에 젖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가병들은 일제히 야생적인 탄성을 터치였다.

《반자이!》,《반자이!》

아까부터 나설듯말듯 바재이던 쌍상투를 틀어올린 해사하게 생긴 애젊은 시녀가 안타까운 종종걸음으로 사다께에게 다가왔다.

두무릎을 단정히 꺾으며 차종을 들어올리였다.

달크무레한 기문홍차를 천천히 마시고난 사다께는 졸개들에게 관사의 두리기둥에 초자로 휘갈겨쓴 《력발산 기개세》(용력은 산을 뽑을수 있고 기상은 천하를 덮을수 있다는 뜻의 항우의 말.)라는 글발을 가리켜보이였다.

보기흉하게 뒤번져진 웃입술을 너덜거리며 소리높이 웨치였다.

《너희들 듣거라. 일찌기 600년에 벌써 우리의 수이꼬녀왕은 수나라황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일본은 해뜨는 나라요, 우리는 해뜨는 나라의 천자들〉이라고 썼다.

녀왕의 그 말은 우리 일본남아들로 하여금 드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 해뜨는 나라의 천자들인 우리들은 마땅히 세상천하를 거머쥘 웅지를 안고 만고에 길이 빛날 큰일을 성취하기 위해 분골쇄신해야 한다.

내 말뜻을 알겠는가?》

《하잇―》

사다께의 드센 손탁에 주물리워 하나같이 침략열에 들뜨고 살륙의욕에 충만된 졸개들은 열광적으로 웨치였다.

대마도의 아침은 매일 이렇게 사다께의 고함소리와 칼부림소리, 거의 반정신이 나간 졸개들의 야생적인 웨침소리로 시작되군 했다.

사다께는 흐뭇한 미소를 띄우고 청바위처럼 단단한 웃몸에 천천히 하오리를 걸치였다.

이럴 때 후끈하게 달아있는 앞마당의 공기를 아츠럽게 찢으며 관사의 대문이 열리였다.

난쟁이나 겨우 면한 작달막한 키에 땡땡한 몸집이 잔뜩 가로퍼진 지또(령지관리인) 세가오 무라나가가 귤쪽같이 삐죽한 상판을 강하게 꺼떡거리며 띠뚝띠뚝 들어섰다. 그뒤로 무슨 변을 당했는지 상판과 앞가슴에 온통 피를 게바른 왜구 세놈이 각기 눈챠꾸(쇠사슬에 방망이를 단 흉기)와 구사리가마(쇠사슬끝에 낫과 쇠뭉치를 단 옛 무기)같은것을 질질 끌며 줄레줄레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금시 기분이 사나와진 사다께는 세모진 눈을 곤두세우며 왝 소래기를 질렀다. 세가오는 두손을 모두어잡고 황황히 사다께앞으로 다가왔다.

이즈음 어느 고장의 지또이든 주인대신 령지관리를 착실히 거행하는 놈은 하나도 없었다.

시국이 시국이니만치 지또라는 평화로운 직무를 맡은 놈들까지 칼을 뽑아들고 령주라는 우두머리를 보좌하고 대행하는 무뢰배들은 작은 패두노릇을 하고있었다.

《령주도노, 이놈들은 대륙에 나갔다가 어제 밤에 돌아온것들입니다.

하관이 오늘 아침도 일찌감치 바다가를 순시하느라고 나섰는데 이것들이 글쎄 저기 도래굽이에서 싸움질을 하고있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싸움질은 왜?》

사다께의 음성은 조금 누그러지였다.

그것은 사다께의 기분이 다소 가라앉은 표현이 아니라 가장 무서운 발작의 전조였다.

《예, 내막을 알아보니 이놈들은 저들끼리 따로 감추어가지고온 외국비단을 남몰래 노누메기를 하다가 서로 의견이 상치되여 싸움을 하는것이였습니다.》

소대가리같이 커다란 머리를 찌글사하고 서서 세놈의 왜구를 하나하나 노려보던 사다께는 옆구리에서 스르륵 칼을 뽑아들었다.

족제비굴에 갇힌 병아리새끼들처럼 파들파들 떨고있는 세 왜구앞으로 천천히 다가섰다.

사다께의 페장은 벌써 비릿한 피냄새를 흡인하기를 갈망하고있었다.

사다께는 칼끝으로 제일앞에 서있는 추접스럽게 생긴 왜구의 이마빡을 가리켜보이며 입을 열었다.

《네놈은 겐고가 아닌가?》

겐고는 퍽 오래전 어느 싸움터에서 부상을 입은 사다께를 등에 업고 30리 밤길을 달린바 있는 생명의 은인이였다.

겐고는 사다께가 자기를 알아본것이 너무도 고마와 단박에 주르르 눈물을 흘리였다.

《네, 소인이 바로 시즈마번(현재의 가고시마현 남부에 위치했던번)과 싸울 때 부상을 입으신 령주도노를 등에 업고 30리 밤길을 달렸던 겐고올시다.》

겐고는 사다께에게 자기의 충실성과 공적을 다시금 눈물겹게 상기시켜주기 위해 나오지도 않는 웃음을 띄우고 열심히 질벌거렸으나 사다께의 상통으로 보아 그것은 별로 효과가 있을것 같지 않았다.

《이놈! 나의 뜻을 어기고 군기를 문란시키는 경우 어떤 벌이 차례진다는것을 모르는가?

그가 누구든 나의 검은 용서를 모른다. 도―》

사다께의 칼이 허공을 가르며 힘차게 내리박히였다.

정수리뼈가 깨져나가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겐고는 비명 한마디 지르지 못하고 풀썩 무너져내리였다.

《오멘―》

사다께의 칼이 다시 휘파람소리를 내며 비껴내리였다.

또 한놈의 왜구가 피가 쏟아져내리는 얼굴에로 두손을 올리다말고 맥없이 나동그라지였다.

《후꾸―》

사다께의 칼이 또 한번 날카롭게 번뜩이였다.

마지막놈은 시누런 창자와 피덩이가 꾸역꾸역 쏟아져내리는 배를 그러안다말고 모재비로 나떨어지였다.

비릿한 피냄새가 진동하고 살벌한 공기가 떠돌았다.

하지만 사다께는 심상한 낯으로 피범벅이가 된 시체들을 대충 훑어보고나서 세가오쪽으로 고개를 돌리였다.

《이 더러운 놈들의 시체를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 개무리에게 던져주어라.

배신자, 졸장부들의 말로가 어떤가를 똑똑히 보여주란 말이다.》

사다께는 세가오의 대답말을 기다리지도 않고 관사를 향해 뚜걱뚜걱 걸음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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