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제 1 장

11

 

아침밥을 먹는둥마는둥하고 상을 물린 박위는 한잠도 자지 못했건만 아직 잠에서 채 깨지 못한 사람처럼 비척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사랑채 뒤뜰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왔다.

핑핑, 편전(작은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 딱딱 널판자로 만든 목표판에 화살이 들어가박히는 소리도 들려왔다.

박위는 무심결에 뒤뜰쪽으로 걸음을 놓았다.

여삼의 챙챙한 목소리가 아침의 청쾌한 공기를 가르며 날아왔다.

《도령의 활솜씨가 그새 퍼그나 늘었소이다. 두번씩이나 거퍼 오중몰기(다섯번 쏘아서 다섯번 다 맞힌다는 뜻.)를 했으니 군영의 활잡이들 못지 않소이다.》

박위는 한잠도 자지 못한탓에 골속에서 날벌레의 나래소리같은것이 징징 울렸으나 무겁던 기분이 다소 가셔지는듯싶었다.

조정의 형세야 어찌됐든 여전히 제나름대로 다사하고 분주한 여삼이의 현중에 대한 극진한 관심이 고마왔다.

요즘에 이르러 더욱 극성스럽게 무술을 익히려드는 현중의 열정과 속마음도 갸륵하였다.

(현중이녀석이 또 아침활쏘기련습을 하러 나온 모양이군.

여삼이녀석은 색시가 요즘 애기설이를 한다면서 어제 저녁 집으로 나갔다더니 어느새 또 군영에 들어왔노?!

타고난 신분도 량반상놈으로 현격하게 차이나고 나이도 10년이상이나 벌어진 여삼이와 현중이가 노상 한동아리가 되여 돌아가는것은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박위는 뒤뜰쪽으로 몇걸음 더 나가다말고 스르시 멈춰섰다.

소년의 단순한 심리가 비껴있는 현중의 볼메인 소리가 울려왔다.

《쳇, 그런데도 우리 아버님은 내 활솜씨가 서툴다구 장참 꾸중이시라우.

그건 그게구… 저기 대마도라는 왜섬에 왜구들이 디디구 쌓였다던데 그게 적실한 소리우?》

《적실하다마다… 썩은 물웅뎅이에 벌레알 끼듯 씨글씨글하답디다.》

《그렇다한들 살살 새들어가서 사람 하나 빼내는 일이야 못하겠소?》

《그게 식은죽먹기로 되겠소이까?

손칼을 들고 칼상어잡으러 나가는 격으로 허술하게 준비를 해가지고 나섰다가는 랑패보기가 십상이외다.

또 이왕지사 대마도로 갈바에야 숱한 군사들이 한꺼번에 쳐나가서 섬안의 왜구들을 쥐무리잡듯 모조리 쳐죽이고 잡혀간 우리 백성들을 말짱 찾아와야 할게 아니오니까?》

《제기, 차비 삼년에 제떡 쉬겠네.

우리가 노상 준비만 하는 사이 잡혀간 사람들은 열번도 더 죽어나가겠소.》

박위는 칼끝에 찔리기라도 한듯 가슴이 띠끔해났다.

문득 얼마전에 현중의 진맥을 보기 위해 군영에 들어왔던 청수하게 생긴 늙은 의원이 점잖게 뇌이던 말이 떠올랐다.

《어줍잖게 들릴지 모르겠사오나 시생이 지금껏 병자에게 손을 대서 못 고친 병이 별반 없소이다.

헌데 장군댁 도령은 신체에 병통이 생긴게 아니라 마음속에 은혈이 들었소이다.

이런 경우 백약이 무효요 화태, 편작의 의술이래도 어쩌는수가 없습니다.

자고로 마음에 생긴 병은 마음을 풀어서 치료해야 합니다.

도령의 나이 아직 년소하시니 상사병은 아닐게고… 대체 무엇이 도령의 마음속에 돌덩이처럼 응어리지여 그리도 풀리지 않소이까?》

박위는 늙은 의원의 오리무중한 소리가 꼭 변변치 못한 자기의 의술을 가리우기 위한 구차스러운 변명처럼 들리였다.

허나 현중은 무슨 큰 리치라도 깨달은듯 영민하게 생긴 눈을 빛내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얼마전에 소자의 누님께서 왜구들에게 잡혀갔습니다.

소자의 병은 필시 누님을 찾아온 뒤에야 빠질줄 압니다.》

박위는 코끝이 매워나 슬며시 고개를 비틀었다.

현중의 책상우에 정히 포개져있는 구겨진 천덩이가 (그것은 리옥이 못다지은 현중의 무관복인데 무엇때문인지 현중은 죽촌에 나갔던 날 가지고와서 자기의 책상우에 올려놓고있었다.) 눈뿌리를 지지며 안겨왔다.

박위의 가슴은 더욱 쓰리였다.

현중의 작은 가슴에 항시 무엇이 끓고있는지 불을 보듯 명백했다.…

…지금도 박위의 심정은 그날 그때와 다를바 없었다.

때이르게 속이 여문 아들이 기특하다는 생각에 앞서 노상 선혈같은것이 뚝뚝 떨어져내리는 현중의 가슴은 그 어떤 말로도 위로할수 없을것이라는 느낌이 재삼재사 굳어지였다.

한참이나 멍하니 굳어진채 사색의 페지를 번져가던 박위는 관습의 힘에 이끌리여 바다가로 걸음을 내짚었다.

바다는 노호하고있었다.

집채같은 파도는 주먹같은 포말을 수없이 날리며 껑충 뛰여올랐다가는 내리꽂히듯 미끄러져내리였다.

무너졌다가는 다시금 솨― 으스산한 소리를 지르며 솟구쳐올랐다.

박위는 검푸른 파도가 연연 드달려와 골받이를 해대는 앞코숭이가 꼭 전함의 선수처럼 묘하게 쳐들린 바위우에 올라섰다.

눈길은 저도 모르는새 격파 날뛰는 바다를 건너 저 멀리 대마도쪽의 하늘가로 나래쳐올랐다.

대마도쪽의 하늘에서는 비기운을 머금은 검층층한 구름장들이 겹겹으로 뭉치여 아무런 규칙성도 없이 마구 뒹굴고있었다.

사납게 태질하는 바다, 시꺼먼 구름장들이 뒤덮인 하늘…

그래서인지 천지가 어두워지고 세상이 좁아진듯싶었다.

귀를 기울이면 저 멀리 하늘가 비구름장사이로 리옥의 애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올듯싶었다.

안해의 최후의 웨침소리가 파도소리에 어울리여 메아리쳐오는것 같기도 했다.

잡혀간 죽촌백성들의 처량한 울음소리, 왜구에게 화를 당한 수천수만의 이 나라 백성들의 령혼의 울부짖음이 파도의 목소리를 빌어 울리는것 같기도 했다.

파고 심은듯이 굳어진채 한참이나 속을 짓태우던 박위는 물바래에 젖어 눅눅해진 전복자락을 무겁게 날리며 염초장으로 향했다.

원정준비에서 첫째로 걸린것이 염초이기때문인지 아니면 언제나 자신만만해서 돌아가는 오천이가 별스레 보고싶어서인지 자신으로서도 자기의 마음을 정확히 가늠할수 없었다.

띠풀이영으로 웃설미만 대충 해씌운 너렁청한 염초장안에서는 여러 사람이 공기돌처럼 널려앉아 한담을 나누고있었다.

《이 사람 구서방, 내 눈으로 직접 오천대정이 임자 딸을 끌고 두이산속으로 들어가는걸 보았다니.…》

마흔살이 불원하건만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계집의것처럼 해망스러운 옥보라는 수다쟁이가 신바람이 나서 어수룩한 구서방을 몰아대고있는 판이였다.

구서방은 사람이 어지고 고지식하기는 하나 다소 의뭉스러운데도 있고 한창나이때는 어떤 시골글방에서 어깨너머로 글자깨나 외워두기도 한 까닭에 제깐에는 매사를 기품있게 처신하려 드는 사람이였다.

헌데 언제나 구서방을 놀려먹는것으로 한재미 보려드는 옥보가 느닷없이 알지도 못하는 딸년의 비행을 사람들앞에서 꿰여올리자 그만 말문이 막혀버리였다.

잠시 순박하게 생긴 눈을 슴벅거리며 빠져나갈 길을 모색하던 구서방은 일부러 옥보의 약을 올릴 심산인지 점잖게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딴전을 피웠다.

《이보게 옥보, 그런 생먹은 소리를 누가 곧이 듣겠나.

우리 딸년은 지금 토방우에 앉아 저녁거리 보리쌀에서 뉘를 고르고있는데… 두이산은 무슨 말라 비틀어진 두이산인가?!》

옥보 역시 아무렇게나 둘러치는 구서방의 딴청에 홀홀히 넘어갈 사람이 아니였다.

《저렇다니… 명색이 아비요, 한창때는 글자깨나 읽었다는 사람이 딸년의 흠절을 무턱대고 가리우자고만 하니.

두고보게, 그러다가 이제 취금이한테 큰 탈이 생기지 않나…》

《탈이 생기다니? 대체 우리 취금이한테 무슨 탈이 난단 말인가! 사람이 허랑하기는…》

《이 사람아, 가시내가 머슴애하구 밀려다니면 나중가서 어떤 탈이 나는지 아직 모르나?!

누구한테 물어볼것없이 님자가 젊었을 때 일을 한번 생각해보게나,

핫하하.》

옥보가 자지러지게 웃어대자 모두들 어깨를 들썩거리며 따라웃었다.

박위는 시시껄렁한 그들의 대화에 더이상 귀를 주고싶지 않았다.

큰 기침을 톺아올리며 성큼 염초장안으로 들어섰다.

그제서야 박위를 알아본 염초장사람들은 서둘러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일어서더니 너푼너푼 허리를 꺾었다.

박위는 괴괴한 염초장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한유한 태도가 저으기 불쾌했으나 아무말없이 염초장복판에 우뚝하게 걸려있는 염초가마앞으로 다가갔다.

시꺼먼 끄스름이 더깨로 앉은 가마의 속안은 휑하게 비였는데 터실터실한 솥가리에는 거미줄이 얼기설기 엉키여 흐느적거리고있었다.

화약을 만드는데서 가장 힘겨운 일은 염초를 뽑는것이였다.

염초는 대개 부엌에서 나오는 재나 오래된 집, 오래된 절간의 마루밑에서 긁어낸 먼지를 물에 타서 끓이는 방법으로 얻어내였다.

얼핏 생각하면 부엌의 재나 마루밑의 먼지 같은것은 어디서나 헐하게 얻어낼것 같으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먼지는 더 말할것 없고 재라는것도 매일 무더기로 나오는것이 아니였다.

그나마도 농군들이 봄내, 여름내 진거름을 만드는데 쓰고 염초장 장인들과 군영군사들이 매일과 같이 염초가마에 쏟아붓다보니 군영앞동네는 물론 김해일판의 부엌재와 먼지가 말짱 동이 나버리였다.

염초가마는 벌써 며칠전에 산산하니 식어버리고 염초장일군들은 매일 이렇게 시시부시한 한담으로 날을 보내고있었다.

박위는 애초에 원정에 쓸 화약은 전량 조정에 건의하여 얻어올 작정을 했었다.

그런데 오천이가 화통도감의 현재형편에서 다량의 화약을 얻어내기는 어려운 일이니 자기에게 사람만 떼주면 수요되는 화약을 거지반 자체로 만들겠노라고 장담을 하고 나섰다.

박위는 오천의 장담이 그대로 믿어지지는 않았으나 아직 조정에 손을 내밀 형편이 못되는데다 오천에 대한 기대감도 없지 않아서 군말없이 그가 달라는대로 사람도 주고 염초가마며 풀무따위들도 얻어주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꼴인가. 요즘 아무리 일감이 없다 한들 염초장을 책임진 대정이라는 놈이 자기가 맡은 일은 아주 덮어놓고 백주에 계집을 끼고 나갔다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박위의 속은 우걱우걱 괴여올랐다.

언제인가 오천에게 틈이 나는대로 취금을 찾아가 정을 나누라고 권유했던 자기의 진정이 모욕으로 되돌아온것 같기도 하여 기분은 더욱 불쾌하였다.

(그러니 무식한 상사람들은 다 이렇게 사람의 정의나 도의 같은것을 옳게 새기지 못하는 막된것들인가?!

그건 그게고… 사실상 지금형편에서 오천이라는 녀석이 오만가지 재주를 다 부린다 해도 원정에 소요되는 염초를 다 뽑아낼수는 없을게다.

그러고보면 일개 대정에 불과한 오천이녀석의 일을 두고 지나치게 왼심을 쓰는 내가 도리여 부질없는 사람이 아닐가?)

입귀를 꾹 짓문채 두서없이 생각을 펼쳐나가던 박위는 들어설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말없이 염초장을 나섰다.

비릿한 해감내를 머금은 누습한 해풍이 불어와 숱좋은 채수염을 훨훨 날리였다.

아직도 채 마르지 않은 전복자락을 퍼득퍼득 물어뜯었다.

가슴은 여전히 연덩이를 삼킨것처럼 무죽하고 기분은 그냥 진연기를 쐬운것처럼 울울했다.

눅눅한 모래불을 걷어차며 스적스적 바다쪽으로 걸음을 놓던 박위는 부지불식간 걸음을 멈추었다.

뇌리속에서 돌연 기름불같은것이 펑끗 일어번지였다.

그것은 필경 새로운 발견의 섬광이 아니라 울울한 가슴속에서 터져나온 발작적인 충동의 불길이였다.

(이제는 더이상 임금이나 최대감에게 기대를 걸수 없다.

그렇다고 하여 오천이같은 상사람들과 시골구석에 골박히여 버들쩍거린다는것은 뒤가 뻔드름한 일이다.

지금처럼 똑똑한 결심이 없이 일을 하다가는 범을 그린다고 소문을 내놓고 개모양을 만들어놓는것과 같은 결과를 빚어낼것이다.

지체없이 대담하게 오늘의 난국을 타개하고 결정적인 출구를 개척하기 위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항간의 속된 말에도 길고 짧은것은 대보아야 한다고 했거늘 내가 직접 상경하여 리성계대감을 만나는게 어떨가?

현재의 정황에서 조속히 원정을 단행하자면 리대감을 움직이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지 않는가.

리대감을 직접 만나 임금과 최대감을 축출하게 된 동기를 저저이 들어보는것 역시 나쁘지 않을것이다.

그래야만 의혹과 불신을 해소할수 있으며 앞으로의 모든 군사행정에서 견해의 일치를 도모할수 있을것이다.

사실 리대감은 누구보다 왜구와의 싸움을 많이 해본 장수로서 왜구격멸의 필요성과 의의를 누구보다 잘 알것이다.

그는 료동원정도 왜구의 대거침입이 우려되여 포기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박위는 대마도원정의 성사를 두고 너무도 속을 태우던 나머지 그처럼 원망스럽고 의문스럽던 리성계를 되도록이면 좋게 생각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리성계의 지지와 동의, 구체적으로는 그의 도움이 있어야 대마도원정이 성공할것이라는 현실적인 타산이 굳어질수록 더더욱 리성계가 중시되였다.

박위는 갑자기 무엇에 들레이기라도 한듯 서둘러 군영쪽으로 걸음을 돌리였다. 때는 마침 점심참이였다.

군영앞동네도 고요하고 군영안팎도 조용한데 대문앞 느티나무밑에서는 몸집이 두리두리한 웬 사내가 저 혼자 날고 뛰며 칼을 휘두르고있었다.

그는 보습을 끄는 황소마냥 씨근거리면서도 연해 큰소리로 중얼거리였다.

《옳지, 네놈이 오른쪽으로 덤벼들 때는 〈우내략〉을 하나 먹고싶은 모양이구나. 엣다, 〈우내략〉이다.》

《그렇지, 네놈들이 한꺼번에 밀려들 때는 〈룡약재연〉을 한번 써야겠구나. 자, 이번에는 〈룡약재연〉이다!》

그는 언제인가 윤통에게 《두부자루》라는 별명을 얻어가진 고들이였다.

고들은 지금 점심참이 되였다는것도 모르고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칼쓰기훈련을 하고있었다.

험하게 낯을 찡그리고 휙휙 칼을 휘두르는 모양이 그의 눈앞에는 정말로 집안식구들을 도륙낸 왜구들이 나타난듯싶었다. 박위의 가슴은 뜨거워났다.

왜구의 침입은 이 땅에 파괴만을 가져온것이 아니였다.

왜구의 침노로 하여 이 땅에는 병기만이 인간의 존엄과 행복을 지킬수 있다는 인생의 새로운 철리를 피로써 체득한 용맹한 복수자들이 숲처럼 무성하게 자라나고있었다.

고들이와 같은 너무도 평범한 이 나라 백성들은 저들이 흘린 붉은 피로 정의의 칼을 갈며 판가리결전을 준비하고있었다.

박위는 겉모양과는 판판다르게 웅심깊고 열정적인 고들이가 정녕 대견하였다.

어깨라도 정히 두드려주고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지금부터 부지런히 길차비를 다그쳐야 래일 아침 일찌감치 개경길을 잡을것이였다.

박위는 한결 기운차게 활개짓을 치며 대문앞으로 다가섰다.

고들의 웨침소리는 박위의 잔등을 따갑게 지지며 계속 힘차게 울려왔다.

《이놈들아, 이번에는 〈진전살적〉을 한대 먹어라.

이것은 네놈들의 칼에 찔려죽은 불쌍한 우리 녀편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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