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회)

제 1 장

10

 

창밖에서는 이름모를 풀벌레들이 괴자누룩한 밤의 정적을 썰며 쉬임없이 바스락거리고있었다. 어디선가 이따금 개짖는 소리가 컹컹 광활한 대기를 공허하게 울리며 어렴풋하게 들려왔다.

그린듯이 단정하게 앉아 개경에서 보내온 최칠석의 편지를 세번째로 읽어내려가던 박위는 갑자기 종이를 와락와락 구기였다.

머리가 통채로 물레에 태우기라도 한듯 빙글빙글 돌아갔다.

가슴속에서는 연방 돌담같은것이 와르르와르르 허물어져내리였다.

박위는 꺼지는듯 한 한숨을 길게 내불며 내심깊이로 부르짖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고?

그렇게도 장한 기세로 료동에 출정했던 원정군이 어찌하여 중도에서 걸음을 되돌려 개경으로 왔는가.

설사 불가피한 사정이 있어 돌아왔다면 무엇때문에 원정군은 오는 걸음으로 임금을 들어내고 최영대감을 밀어냈는가.

아아, 이 일이 과연 꿈 아닌 생시의 일이란 말인가?!)

의혹과 절망, 불안과 위구심이 집게처럼 아프게 뇌리를 조이고 가슴을 비틀었다.

그런 중에도 지난 4월 어느날의 일이 어제런듯 생생히 떠올랐다.

그날 중낮때 개경의 동쪽 교외에서는 료동으로 출동하는 원정군의 열병의식이 거행되였다.

임금과 최영이 조정의 재상들을 거느리고 단우에 올라서자 떠나갈듯 한 환성이 터지였다.

이어 백마를 탄 리성계와 조민수가 수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단아래로 흘러갔다.

숲처럼 펼쳐진 기치창검이 위엄있게 번쩍거리였다. 무수한 군기들이 펄럭이였다.

고취악대는 장쾌한 군악으로 군사들의 위세를 한층 돋구어주었다.

그때 박위는 여러 장수들과 함께 단우에 올라있었다.

최영은 왜구의 침노가 그칠새 없는 남도의 군영들에서는 원정군에 군사를 보내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했으나 박위는 적지 않은 군사들을 떼내여 원정군에 포함시키였다.

박위가 보낸 군사들은 그자신이 직접 손때를 묻혀 키운 패기(당시 이름있는 장수들이 개별적으로 거느리고있던 사병)들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생력군(기운이 왕성한 군사)들이였다.

그들을 떼내자니 아쉬운 마음 금할수 없었으나 나라의 존엄을 떨치고 선조의 옛 강토를 수복하는 성스러운 국사앞에서 사사로운 욕심을 따로 차리고싶지 않았다.

아니, 남쪽의 긴장한 정세만 아니라면 자신부터 선참으로 원정군에 뛰여들고싶었다.

사실 료동원정은 하루이틀새 몇몇 고위관리들의 결심에 의해 결정된 단순한 군사문제가 아니였다.

엄밀하게 따져보면 원의 지배를 무너뜨리고 새로 일어선 명나라의 사신 설사가 고려에 도착한 그때부터 명나라와 고려사이에 심각한 정치외교상의 알륵과 마찰이 시작되였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그때 설사는 공민왕에게 비단 40필과 명나라 황제 주원장이 보내는 편지를 올리였다.

주원장은 편지에서 자기가 여러 봉건세력들을 통합하고 원의 지배를 뒤집어엎은 다음 새 나라의 황제로 등극하게 된 경위를 루루이 설명하고나서 이렇게 부언하였다.

《…나는 덕이 옛날의 현명한 임금들만 못하여 사이가 돌아오게는 하지 못하나 그러나 천하에 두루 알게 하지 않을수 없다.》

아무리 뜯어보아야 자세를 한껏 낮추고 쓴 겸허한 첫 인사편지였다.

하다면 주원장을 아무런 술수도 야욕도 없는 겸손하고 진실한 황제로 보아야 하겠는가.

아니다. 이때 벌써 주원장은 일종의 보이지 않는 계략을 펼치기 시작한것이였다.

새로 명나라가 섰다고는 하나 명나라안에는 아직 적지 않은 몽골귀족들이 그대로 남아있는데다 사막지대로 쫓겨난 북원은 여전히 옛땅을 회복할 야망을 버리지 않고있었다.

한편 북원과의 태줄을 완전히 절단하지 않은 료동지방의 할거세력들인 납합출과 홍보보는 의연히 명나라를 적대시하는 립장을 취하고있었다.

이처럼 명나라는 사방에 적을 가지고있는데다 대외적으로는 고립되여있고 대내적으로는 인정되지 못한것으로 하여 자기의 적수들을 견제하자면 당분간 고려에 접근하는 정책을 취해야 했다.

하여 주원장은 그리도 겸손하게 공민왕에게 선물도 보내고 편지도 보낸것이였다.

고려정부는 명나라의 속심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명이 가까이 지내려고 하는 조건에서 그것을 반원투쟁에 유리하게 리용할수 있다고 보았다.

고려와 명나라는 각기 제나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신과 사신단을 자주 교환하면서 대체로 순조로운 관계를 유지해나갔다.

헌데 1373년초 명나라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고려사신단은 료동지방을 통과하지 말고 바다길로 오라는 거의 명령식의 통보를 보내여왔다.

같은 해 7월에는 주원장이 직접 《고려는 사신을 보내여 명나라의 내정을 렴탐하고있다.

명은 마땅히 대군을 동원하여 고려를 징벌할것이다.》라는 터무니없는 강억지와 오만무례한 위협을 늘어놓았다.

명나라는 저들의 세력기반을 구축하고 내부의 불안정을 어느 정도 수습하자 드디여 본색을 드러내놓은것이였다.

명나라의 대국주의적압력과 침략적기도가 날로 로골화되여가고있을 때 고려에서는 전혀 뜻밖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1374년 11월 본국으로 돌아가던 명나라사신 림밀과 채빈은 개주참(봉황성)에 들리여 진종일 술을 퍼마시며 온갖 야료와 행패를 다 부리였다.

고려의 호송관 김의는 보다못해 그들에게 점잖게 처신할것을 권고하였다.

그러자 림밀과 채빈은 술병으로 김의의 정수리를 내리깠다.

격분한 김의는 응당한 보복으로 즉석에서 채빈을 처단하였다.

이렇게 되자 명나라는 제쪽에서 도리여 사신살해사건을 코에 걸고 고려에 대한 위협공갈의 도수를 더한층 높이였다.

1380년대에 들어서면서 명나라의 행패는 더욱 우심해졌다.

1388년 2월 명나라는 드디여 철령이북의 고려땅을 전부 료동에 귀속시켜야 한다는 날강도적인 요구를 들고나왔다.

명나라통치배들은 본래 철령이북지방은 원나라의 개원로가 관할하던 쌍성총관부에 속한 지역이므로 원이 망한 정황에서 응당 저들이 차지해야 한다는것이였다.

명나라는 말로만 귀속을 주장한것이 아니라 실지 군대와 관리들을 강계일대에 보내여 철령위설치를 구조적으로 완비하려고 날뛰였다.

얼마후 정부특사의 명색으로 개경에 도착한 료동백호 왕득명은 정식으로 철령위설치를 통고하였다.

고려정부는 더이상 외교적경로에만 매달려있을수 없었다.

명나라의 침략적기도를 분쇄하고 나라의 존엄과 자주권을 수호하자면 강력한 군사력을 발동하는 길외 다른 방법이 없었다. 때마침 부패무능한 리인임일당을 제거하고 문하시중의 최고벼슬에 오른 최영은 일부 관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려군의 료동공격을 국책으로 선포하였다.

이것은 오만무례한 명나라통치배들에게 선제타격을 가함으로써 그들의 침략야욕을 일거에 분쇄할수 있는 가장 적극적방도인 동시에 지극히 정당한 조국수호전략이였다. 이것은 또한 료동지방의 거의 모든 군사들이 명나라군사들과 함께 북원의 주력을 격파하기 위해 멀리 포의아해(현재의 내몽골자치구 만주리남쪽)에 나가있는 조건에서 승산이 명백한 맵시있는 군사작전이였다.…

…헌데 원대한 포부와 양양한 조국수호정신을 안고 기세충천하여 떠났던 원정군은 위화섬에 이르러 돌연 걸음을 돌리였다.

원정군의 부사령관격인 리성계는 회군의 리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여름철에 군사를 일으킨것은 시기를 잘못 택한것이다.

왜냐하면 장마로 하여 활에 먹인 아교가 풀리고 대군이 병에 걸릴수 있기때문이다.

…그밖에 대군이 나라지경을 벗어난 기회에 왜구가 남쪽으로 쳐들어올수 있기때문이다.…》

박위는 리성계의 회군리유가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임금의 윤허도 없이 갑자기 군사를 돌려세운 그의 모호한 태도는 쉬이 리해되지 않았다.

개경에 들어서자바람 원정군을 동원하여 임금을 내쫓고 최영을 귀양지에 밀어낸 너무도 무엄하고 가혹한 행위는 더더구나 리해되지 않았다.

박위는 스르시 눈을 감으며 몇번이나 되뇌여본 소리를 처절한 음성으로 다시금 웅얼거리였다.

《최대감의 원정용단은 지극히 정당하고 장한것이였다.

청렴결백하고 전투적인 그의 생활은 무관들모두가 따라배워야 할 인생거울이였다.

최대감은 또한 오래전부터 리성계를 애중하고 이끌어준 은인이요 오늘에는 원정군의 지휘권까지 사심없이 넘겨준 인생의 대선배다. 그런 최대감에게 설사 간과할수 없는 과실이나 흠절이 있다 해도 리성계가 어찌 군력까지 동원하여 그를 내쫓을수 있는가?!

모를 일이다, 정녕 모를 일이다.…》

박위는 우두두 몸을 떨며 다시 눈을 치떴다.

꼬리를 들까불며 피여오르는 초불이 커다란 불덩이처럼 확대되여 안겨왔다.

(리성계, 리병사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박위는 벼슬살이 초기에 얼마간 내직에 있기는 했으나 대체로는 외직에 나가 지낸탓에 노상 동북면에서 활약하다싶이 한 리성계를 생활적으로 파악할 기회가 없었다.

다만 10여년전 어느 초가을 전라도 운봉에서 중앙군과 지방군의 협동작전으로 수천의 왜구를 요정낸 뒤 잠시잠간 만나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리성계와의 첫 상면이자 마지막교제였다. 허나 박위는 오래전부터 리성계의 래력과 그의 전투공적에 대해 잘 알고있었다.

리성계를 고려군대의 큰 기둥으로, 최영 다음가는 명장으로 깊이 존경해왔었다.

당시 27살의 젊은 장수였던 리성계는 오늘까지 근 30년간 적과의 수많은 싸움에서 련전련승하여 수시중의 높은 벼슬에까지 올랐다.

실로 리성계는 소문만 듣고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존경할만 한 고려군의 거물급장수였다.

그러한 리성계가 세인이 경악할 엄청난 군변을 청천백일에 창출했다는것은 놀라운 일이기 전에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일이였다.

그처럼 깊이 존경하던 인간을 한순간에 증오한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사랑에서 증오로 가려면, 존경에서 격분으로 가려면 다문 몇개의 세부라도 계단으로 놓여야 하지 않겠는가?!…

…최칠석은 편지에 《…자고로 짧은 혀바닥에 긴 목을 달아매고 죽은 수다쟁이가 한둘이 아님을 공도 잘 알고있으리다.

하고싶은 말은 많으나 그 많은 말을 다해야 리보다는 해가 더 많을듯 하여 이만 필을 거두리다.》라고 썼었다.

임금의 추방동기와 최영의 삭탈동기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의도적으로 피한것이 분명했다.

칠석의 전에없이 소심한 태도는 자기에 대한 불신의 표시처럼 생각되여 박위는 오랜 지우인 칠석이조차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불안과 걱정은 역시 왕실과 조정의 래일, 나라와 군대의 장래였다.

자기 또한 장차 누구와 더불어 군사일을 론하고 떠밀어야 할지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돌아가지 않는 수레바퀴를 떠밀어올리듯 힘겹게 사색을 이어나가던 박위는 천근추라도 들어올리듯 무겁게 몸을 일으켜세웠다.

기다란 그림자를 끌며 아무 목적도 없이 너렁청한 방안을 거닐기 시작했다.

박위는 지금까지 대바르고 결곡한 성품탓으로 인생에서 적지 않은 풍파와 경난을 겪었었다.

하지만 언제한번 자기 인생을 두고 비관하거나 실망해본적이 없었다.

사람이 원체 강건하기도 했지만 고려군대와 조정의 상좌에 최영과 리성계 같은 거물급의 장수들이 튼튼히 틀고앉아있기에 마음은 늘 든든했던것이였다.

박위는 또한 자기가 옳다고 믿는 일이면 주저없이 결심을 내리고 완강하게 내밀군 했는데 그것 역시 그의 드틸줄 모르는 의지의 발현이기도 했지만 보다는 상층관료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탓이였다.

언제인가 오천이가 군사들과 백성들이 떨쳐일어나면 못해낼 일이 없노라고 했을 때 박위는 군말없이 그의 주장을 치하해주었는데 그 역시 오천의 말이 전적으로 믿어져서가 아니라 임금과 최영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기때문이였다.

헌데 갑자기 임금과 최영이 권력의 자리에서 밀려나고보니 박위의 사고에서는 커다란 혼란이 일어나지 않을수 없었다.

사고에서 방향상실이 일어나자 가슴속에서는 극심한 좌절감과 소외감이 눈보라처럼 차겁게 회오리쳤다.

(아, 나는 이제 누구를 믿고 군사일을 해나간단 말인가?!)

불시에 숨이 꾹 막히는듯 한 생리적인 고통이 엄습해오는 순간 박위는 드르륵 사랑채 문을 활짝 밀어제끼였다.

사위는 먹물을 타놓은듯 캄캄했다.

하늘에는 별 하나 없고 대기에는 바람 한점 없었다. 가슴은 더욱 답답해났다.

문설주를 틀어잡은채 한참이나 캄캄한 허공을 노려보던 박위는 채수염을 부르르 떨며 침통한 어조로 부르짖었다.

《아, 천지신명이시여,

바라고 또 바라옵건대 세상사의 가불가를 옳게 밝혀주시고 의와 불의를 밝게 살펴주옵소서.

아사달민족의 래일과 대마도원정의 앞길을 참되게 이끌어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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