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 회)
제 1 장
7
근 열흘째 군영안팎은 무슨 큰 란리라도 만난듯 설설 끓어번지였다.
그도 그럴것이 박위는 죽촌에서 돌아온 그날로 군영군사들과 각 고을 군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군령을 하달했다.
1. 군영과 고을들에서는 상비군사의 수를 종전에 지적해준것보다 배로 확장하며 그들에 대한 교련을 적극 다그칠것.
2. 전함 역시 이미 제정해준 수보다 5척이상 더 무을것.
3. 가능한 수단을 다 동원하여 시급히 고을자체의 힘으로 염초와 화약을 만들도록 할것.
4. 새로 제시된 군사일의 내막이 절대로 외부에 류실되지 않도록 매사를 철저히 경계할것.
5. 이상의 령을 어기거나 태공하는자는 상하귀천에 관계없이 전시군법으로 엄중히 다스릴것이다.
…
그날부터 박위의 령을 받은 파발들이 북 나들듯 군영대문을 나들었다.
군사를 뽑으러 나가는 장교, 뽑은 군사를 달고 들어오는 장교, 대장쟁이, 목수, 풀무군 같은 장공인들을 찍어가지고 오는 장교, 장공인들을 이끌고 일터로 나가는 장교…
진종일 들고나는 사람들은 많기도 했다.
사람들만이 아니였다.
량식과 젓갈따위를 실은 마바리, 소바리들이 쉬파리떼를 구름처럼 달고 줄레줄레 밀려들어오는가 하면 빈 바리들이 왈랑절랑 줄을 쳐서 나가기도 했다.
군영밖의 광경은 더한층 야단스러웠다.
얼마전까지만도 열댓명의 목수가 증펀하게 퍼더앉아 언제까지고 끝날상싶지 않은 시시껄렁한 한담을 주고받으며 슬렁슬렁 톱질을 하고 망치질을 하던 바다가 배무이장에 사람사태가 났다.
백여명의 장공인들이 한꺼번에 쓸어들어 어기영치기영 통나무를 메나르는가 하면 스르릉스르릉 뚝딱뚝딱 배널을 켜고 박느라고 바다가가 노상 북적북적하였다. 거기서 두어마장가량 뒤로 나앉아있는 야산기슭에 띠풀이영으로 대충 웃설미만 씌워서 새로 만든 대장칸에서는 칼과 창, 활촉과 포탄깍지를 두드려 만드는 메질소리, 망치질소리, 풀무질소리가 밤낮없이 귀따갑게 울리였다.
대장칸과 이영을 맞대고 서있는 염초장에서는 염초를 끓이는 매캐한 냄새와 등황색연기가 쉬임없이 꾸역꾸역 솟아올랐다.
각 고을들에서도 판은 비록 군영보다 작으나 형편은 군영과 류사하였다.
대마도원정준비는 박위의 드센 손탁아래서 이렇게 시작부터 줄기차게 벌어지였다.…
불그레한 석양이 서켠하늘가에서 수시로 기괴한 무늬를 섞바꾸어 그리며 어룽대는 저녁무렵이였다.
하루종일 바다가에 나가 번잡한 일들을 하나하나 신칙하고 군영으로 돌아오던 박위는 대문앞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었다. 요즘에 들어 교련장으로 쓰는 대문앞마당에서 신입군사 수십명이 땀을 철철 흘리며 칼쓰기훈련을 하고있었다.
박위의 심신은 말할수없이 피로하였다.
잠시라도 처소에 들어가 허리를 펴고 누워있고싶었다.
하지만 신입군사들에 대한 교련도 홀시할수 없었다.
아니, 원정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고리중의 하나가 신입군사들에 대한 교련이였다. 사실 신입군사들에 대한 교련은 윤통이가 전적으로 맡았으나 그렇다고 하여 그 일을 전혀 들여다보지 않을수는 없었다.
박위는 잠시라도 자리에 누워보려던 애초의 생각을 고쳐먹고 교련장으로 다가갔다.
느티나무아래서는 두건을 질끈질끈 동여맨 신입군사들이 윤통의 거센 구령소리에 맞추어 서툴게 칼을 휘두르고있었다. 헌데 검술을 가르치는 윤통의 기상은 여간만 험상하지 않았다.
윤통은 가뜩이나 시꺼멓게 생긴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연해 짜증기가 실린 고함을 왝왝 질러대는데 군사들은 검술을 배우는것이 아니라 두려움에 짓눌리여 쩔쩔매고 돌아가는듯싶었다.
꼭 무슨 일을 칠 사람 같았다.
아니나다를가 날카로운 환도로 허공을 쿡쿡 찌르며 소리소리 지르던 윤통은 무엇때문인지 갑자기 칼을 홱 내던지였다.
사나운 시선과 손짓으로 대오속의 누군가를 가리켜보이며 된 욕설을 퍼부었다.
《야, 이놈아! 왜구의 멱을 찌르는 동작을 하라는데 그게 무슨 꼴이냐? 사냥놀이에 나와 메돼지를 튀기느냐, 버릇나쁜 녀편네의 궁둥짝을 조기느냐? 게다가 굼벵이 천장하듯 왜 그렇게 어기적거리는거냐?
에끼, 이 두부자루같은 놈! 천생 농군노릇이나 해먹을 놈이로다.…》
윤통은 과연 성미가 급한 사람, 전혀 자기의 속을 묻어둘줄 모르는 사람이였다.
엊그제도 그는 신입군사들에게 활쏘기를 가르치다가 별치도 않은 일에 부아가 나서 몇사람의 귀쌈을 불이 번쩍 나게 후려갈기고는 박위를 찾아와 푸념을 꺼내놓았다.
《이거 무슨 변을 내야지 쟈들을 가지고는 쇠통 안되겠습니다.
하나같이 두부자루같은 둔치들에게 검술을 가르치느니 차라리 소에게 경을 읽히는것이 더 헐할겝니다.
저눔들은 전부 내보내고 새놈들을 끌어들입시다.
아무리 바가지가 없다 한들 짚신짝으로 국을 떠먹을수야 없지 않습니까?》
그때 박위는 윤통의 언행이 적지 않게 불쾌했으나 부드러운 어조로 일러주었다.
《이보 부원수, 항간에 이런 말이 있소. 〈번개불에 콩 닦아먹으랴〉, 〈돼지꼬리 잡고 순대 달란다〉. 이건 어떤 일이든 조급하게 성사를 보려 해서는 안된다는 뜻이 아니겠소?
그러니 화가 나더라도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근차근 실속있게 가르쳐주어야 하오. 하루밤에 명궁이 된 사람이 어디 있고 날 때부터 검술을 가진 사람이 어디 있겠소?》
《그야 그렇지요.》
윤통은 얼마간 화가 가라앉은 뒤라 선선히 박위의 충고를 받아들이였다.
하지만 타고난 성미는 쉬이 고칠수 없는것인지 윤통은 지금 그날의 일은 감감 다 잊고 또다시 왝왝 고아대다못해 이를 사려물고 주먹까지 후들후들 떨고있었다.
윤통은 진정 딱딱하고 팩팩한 사람이였다. 하지만 그는 거짓과 불의를 미워하고 진실과 정의를 사랑하는 결곡한 인간이였다.
하기에 박위는 남달리 윤통을 사랑했다.
그에게 자주 꾸중을 하고 신칙을 하는것도 구경은 그를 남달리 믿고 애중하기때문이였다.
부드러운 미소를 띠우고 윤통이 하는양을 지켜보던 박위는 천천히 교련장 복판으로 나섰다.
아무말없이 땅바닥에 내던져진 윤통의 칼을 집어들었다.
하고는 윤통에게 꾸중을 들은 군사를 대오앞으로 불러내였다.
정말 두부자루라는 소리를 들을만 하게 몸집이 투실투실한 젊은 사내가 지싯지싯 골기없이 걸어나왔다.
균형없는 몸집은 비록 볼모양이 없었으나 가느스름한 눈에는 제법 열기가 도는것이 그저 어리숙한 촌보리동지같지는 않았다.
어디선가 꼭 만나본듯 했으나 얼추 기억되지 않았다.
박위는 살가운 어조로 물었다.
《너는 어느 골에서 살다가 군사로 뽑혔느냐?》
《예, 소인은 죽촌에서 살았사온데 저번의 란에 처자권속을 다 잃었소이다.
그래서 제 손으로 단 한놈의 왜구라도 때려죽이자구 자진해서 군사로 나왔소이다.》
《자진해서 군에 나왔다?! 그래, 네 이름은 뭐냐?》
《고들이라 하옵니다.》
《고들이?!》
박위는 그제서야 고들이라는 우습강스러운 이름을 가진 이 군사가 죽촌에 나갔을 때 죽은 안해를 그러안고 마치 산 사람에게 말하듯 하던 그 불행한 사내임을 알아보았다.
공연히 속이 섬찍해났다.
그날에 보았던 저대로인의 꺼룩한 모습과 숯덩이같은 언년이의 참혹한 모습, 백동이라는 아기에게 젖을 물린채 미친것처럼 울부짖던 파리한 녀인의 모습이 연줄연줄 떠올랐다.
아무런 론리적련관도 없이 문득 현중의 구겨진 얼굴모습이 묻어올랐다.
죽촌에서 돌아온 그날부터 지금까지 자리보전을 하고 누워있는 현중은 요즘 박위가 작은 사랑에 들어설 때마다 열에 떠서 부르짖었다.
《아버님! 언제면 우리 군사들이 리옥누님을 찾으러 갑니까?
소자에게 온갖 정성을 다하던 누님께서 짐승같은 왜구들에게 욕을 당하고있을것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져 견딜수 없습니다.》
박위는 벌써부터 아이 같지 않게 궁냥이 틔우고 인정이 깊은데다 배짱과 담기도 록록치 않은 아들녀석이 무등 대견하였다.
그와 함께 리옥의 절망적인 처지와 현중의 슬픈 심정이 새삼스레 가슴에 마쳐와 절로 발작적인 복수의식이 끓어올랐다.
허나 애어린 아들녀석에게 자기의 착잡한 심중을 루루이 털어보일수는 없었다. 하여 박위는 매양 그런 말이 나올 때마다 부러 엄한 표정을 짓고 마음에 없는 책망을 꺼내놓았다.
《이녀석! 되지 못한 소리 작작해라.
세상일이란 네가 생각하는것처럼 그렇게 간단한게 아니야.》…
잠시 괴로운 생각을 씹어나가던 박위는 고들의 우둥퉁한 얼굴에 눈못을 박으며 힘찬 어조로 말하였다.
《죽촌에서 네스스로 원쑤를 갚기 위해 군사로 나섰다면 누구보다 열심히 군사를 배워야 할게 아니냐.
그런데 이게 무슨 꼴이냐?
자고로 군사는 병기를 손에 들지만 다루기는 심장으로 한다고 일러왔다.
네가 진정 너의 처자를 무참히 살해한 왜구를 네 손으로 때려잡을 결심으로 심장을 불태운다면 어찌 검술이 그리도 늘지 않겠느냐.
어느때나 명심해라! 군사의 심장이 불타면 틀어잡은 검도 불타기마련이다.
불타는 검을 잡은 군사를 대적할자 누구라더냐. 자! 보아라!》
박위는 서슬푸른 장검을 번쩍 추켜들었다.
고들이도 부얼부얼한 얼굴에 결연한 빛을 띄우며 반사적으로 칼을 추켜올리였다.
박위는 불꽃튀는 시선으로 자기의 칼끝을 노려보며 웨치듯 말하였다.
《이렇게 일단 검을 추켜든 다음에는 머리를 곧추 들고 눈앞의 적을 노려보아야 한다.
왼쪽다리에 몸을 실을사 하되 두발은 너무 벌리지 말고…》
박위는 자기가 가르쳐준대로 다시 자세를 바로잡는 고들의 모습을 옆얼굴의 감각으로 포착하자 힘찬 어조로 계속하였다.
《그럼 나와 함께 본국검총도(오랜 전통을 가진 우리 나라 검법의 한개 종류)의 34가지 동작을 하나하나 훑어내려가보자.
제일 처음은 〈우내략〉!》
박위는 곧추 세웠던 칼을 오른쪽으로 힘차게 비껴내리였다.
고들이도 박위의 본을 따서 기운차게 칼을 비껴내리며 그의 문자말을 그대로 받아웨치였다.
《처음은 〈우내략〉!》
박위는 두세걸음 앞으로 내달리며 번개같이 칼을 내뻗치였다.
《다음은 〈진전살적〉!》
고들은 박위의 동작을 따라하며 또다시 그의 말을 받아웨치였다.
《다음은 〈진전살적〉!》
《초퇴방적!》(조금씩 물러나면서 방어한다는 뜻.)
《초퇴방적!》
《향우방적!》(오른쪽의 적을 막는다는 뜻.)
《향우방적!》
《룡약재연!》(룡이 못에서 뛰여나오듯 한다는 뜻.)
《룡약재연!》…
한참이나 뛰고 날며 칼을 휘두르던 박위는 34가지 동작을 다 해보이고나서 칼을 내리웠다.
박위의 흉내라도 내듯 서서히 칼을 내리운 고들은 무엇이 그리 흡족한지 우둥퉁한 얼굴모양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귀인성스러운 덧이를 빠끔히 드러내며 히뭇이 웃었다.
박위를 따라 칼쓰기를 해보니 자기가 노상 윤통의 구박이나 받을 못난이가 아니라는 확신이 드는 모양이였다.
역시 고들은 맺힌데 없는 사람이 아니라 눈썰미도 있고 자각과 열정도 있으며 다소 능청스러운데도 있는 진실하고 재미있는 사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한 인간을 외형에 준하여 서뿌르게 판단하고 따버리려 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그릇된 처사가 아니라 너무도 허무한 상실이요, 너무도 잘못된 계책이 아니겠는가?!…
윤통이 박위의 곁으로 다가왔다.
윤통은 박위의 손에서 칼을 뽑아내며 병졸들이 들을수 없을 정도의 낮은 소리로 웅얼거리였다.
《소관은 한껏 참느라고 했는데 어느새 또 악증이 터져나와 실수를 했습니다.》
박위는 좀전까지만도 어깨가 잔뜩 처져있던 고들의 얼굴에 신심이 서려도는것도 기뻤지만 윤통의 솔직한 자기반성도 마음에 들었다.
《헛허허! 그럴수도 있는거지. 이보 부원수, 이네들은 모두 이발도 나지 않은 어린애나 같은 군사들인데 굳은 고기부터 씹으라고 닥달을 해서야 되겠소? 차근차근 품을 들여 가르쳐주어야 하오.
그건 그게고, 내 보건대 저 죽촌의 두부자루도 꽤 쓸만 한 두부자루 같소그려.》
롱담을 그리 즐기지 않는 박위는 결코 롱으로 한 말이 아니였으나 모여선 군사들은 두부자루라는 박위의 소리에 와 웃음보를 터뜨렸다.
고들이 당자도 박위가 자기를 알아봐준것이 무등 자랑스러운듯 동료들을 둘러보며 눈이 없어지게 웃었다.
윤통이 다시 검을 들고 교련을 시작하자 박위는 군영앞마당을 나섰다.
습관적으로 바다가를 향해 걸음을 놓았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오천대정이 질그릇처럼 번들거리는 얼굴을 이리저리 문대기며 다가왔다.
그제서야 박위는 오늘 아침 자기가 오천을 김해관가에 보냈던 사실을 상기할수 있었다.
박위는 오늘 김해만이 아니라 군영의 린접고을들인 밀양과 창원관가에도 사람을 띄워 거의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었다.
군영군사들의 수효는 여느 고을에 비길수없이 많은데다 군영 앞동네의 장정들, 숱한 장공인들까지 생업에서 떼여 군사일에 동원시킨고로 군량이 어방없이 딸린다는것, 이제 한고비만 넘기면 군사들의 경작지에서 나오는 보리라도 풀어먹일수 있으니 그때까지만이라도 군량과 반찬감을 대달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물론 박위는 어느 고을이나 다 식량사정이 어렵다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군량부탁을 하자니 관가의 관리들과 백성들에게 여간만 미안하지 않았다.
허나 달리 어쩌는 수가 없었다.
지금은 우선 싸움준비부터 생각해야 할 때였다.
《그래, 너는 지금 김해관가에서 돌아오는 길이냐?》
걸음을 멈춘 박위는 궁금증이 가득한 어조로 물었다.
오천은 여느때없이 급급하게 인사를 차리고나서 볼메인 소리를 꺼내놓았다.
《아니올시다. 오기는 중낮때 왔는데 장군께서 영에 계시지 않기에 바다가를 한바퀴 돌고나서 다시 들어오는 길입니다.》
《길이 어긋났던게로군. 그래, 김해관가에 갔던 일은 어떻게 되였느냐?》
《예, 김해에 득달하는 길로 관가에 들어가 원님께 편지를 올렸습니다.
원님께서는 장군의 편지를 읽으시더니 그 자리에서 제창 구실아치들에게 군량과 반찬감을 내주라고 하더이다.》
《그래, 군량은 얼마 주고 반찬감은 또 얼마나 내더냐?》
박위의 얼굴은 금시 환하게 밝아지였으나 오천의 낯빛은 여전히 찌뿌둥하였다.
《군량은 수수, 보리 다 합해서 세바리가 되옵고 반찬감은 미역, 김, 젓갈까지 해서 한바리가 조금 넘습니다.》
《그게 적은 량이 아니로다. 너도 그걸 마련해가지고 오느라고 고생했겠지만 그걸 손모아 보내준 김해부사의 성의가 여간이 아니구나.》
박위는 얼마전에도 적지 않은 군량을 보내준 조호백이 다시금 아무군소리없이 많은 물자를 내준것이 무척 고마왔다.
왜구들의 무시로 되는 침략탓에 바다농사나 땅농사의 소출이 다같이 시원치 못한데다 아직 춘궁기를 넘기지 못한 때 그렇게 많은 식량을 연거퍼 보내준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러고보면 호백은 자기가 죽촌에서 한 당부와 추궁을 깊이 새기고 새로운 마음으로 군사일을 대하는것이 분명했다.
호백의 성의도 고마왔지만 그의 개준은 더욱 기뻤다.
허나 오천의 옥맺힌 마음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오늘 아침 오천이 김해관가에 들어가니 호백은 뒤뜰의 광앞에 산같이 쌓여있는 어물짐들의 수효를 세고있었다.
《절인 전광어가 스무짝이요, 생물도미가 열세두름이라, 말린 전복은 열닷통이요, 생물전어는…》
쉬파리떼가 윙윙 감돌아치건만 그에 아랑곳없이 노래가락마냥 말마디끝을 길게 끌어넘기며 신이 나서 짐짝들을 세여보던 호백은 오천이가 내주는 박위의 편지를 받자 금시 생콩씹은 상이 되였다.
편지를 다 읽고나서도 한참이나 눈을 까박거리며 무슨 생각인가를 굴리던 호백은 오천이로서는 알아들을수 없는 문자말을 비양기어린 음조로 씨벌거리였다.
《그런즉 다다익선(많을수록 좋다는 뜻)이라는 뜻인데, 흠…》
이어 호백은 밑도 끝도 없이 옆자리에 장부책을 들고 서있는 호장에게 꾸중 비슷한 소리를 쏟아놓았다.
《이 사람, 호장! 요사이 조세납부가 왜 그리 더디 되나? 공물의 징수형편도 말이 아닌데 진상마련까지 밀려돌아가니 대체 일을 어쩌자는게야? 고을형편이 여의치 못하다는것을 모르는게 아니야? 하지만 사사에 짓눌려 공사를 내밀지 못한다는게 말이 되느냐? 제밀…》
가만 들어보니 엿가락처럼 질질 늘어놓는 호백의 개도라지타령은 호장이 아니라 오천이 자기에게 하는 소리 같았다.
어찌 들으면 고을형편이 매우 곤난하나 군량만은 어김없이 보내노라는 뜻을 풍기는것 같았고 또 어찌 들으면 관가의 일만 해도 아름이번데 군영에서까지 무얼 자꾸 내라고 못살게 구느냐하고 짜증을 내는것 같기도 했다.
여하튼 호백은 진심에서 우러나와 군사일을 돕는것이 아니라 박위의 눈에 덧나지 않기 위해 얼림수를 쓰고있는게 분명했다.
오천은 아니꼽고 미심쩍은 생각을 종시 털어버릴수 없었다.
하여 마바리들을 끌고 관가에서 나오기 바쁘게 짐짝을 헤쳐보았다.
아니나다를가 쌀이라는것은 전부 좀이 나서 시큼시큼한 냄새가 풍기는것이요, 반찬감이라는것은 고작 미역꽁다리, 잡어젓따위인데 그나마도 지푸래기와 모래가 반나마 섞인것이였다.
오천은 금시 홍두깨같은 밸이 치밀어올랐다.
(이 량반이 우리 군사들을 아주 사람셈에 넣지를 않는구나. 자기는 전광어나 도미 같은것을 산처럼 쌓아놓고 먹으면서 우리에게는 내버려도 아까울것 없는 이따위 썩은것을 내준단 말이야?)
오천은 량식이고 반찬감이고 모조리 개굴창에 처박아넣고싶었다.
하지만 고을원이 군영장수에게 보내는 물건을 중도에서 제맘대로 내버린다는것은 너무나 무엄한짓이라 끓어오르는 분을 간신히 눌러참았다.
군영에 당도한 오천은 윤통에게(그때 마침 박위는 바다가에 나가있었다.) 모든 사연을 낱낱이 고하였다.
그러지 않아도 김해부사를 곱지 않게 보는 윤통은 그 당장 노기충천하여 짐바리를 이끌어온 배뚱뚱이호장을 불러들이였다.
무작정 형틀을 내오게 하고 그우에 호장을 끼엎어놓았다.
《네 이놈! 너희 관가것들은 기름기 찰찰한 흰쌀밥에 전광어, 도미도 파들파들한것만 골라먹으면서 우리에게는 이따위 썩은것만 퍼넘기니 이게 사람의 행실이냐, 개짐승의 소위냐.
더 길게 말할것 없다. 네놈이 어디 원님대신 매를 좀 맞아봐라.
여봐라, 저 호장놈의 북통같은 배가 늑대배때기처럼 훌쭉히 꺼질 때까지 사정보지 말고 매우 쳐라.》
윤통의 성급한 령이 떨어지자 잘 자란 참나무처럼 탄탄하고 미끈미끈한 군사들이 물에 적신 몽둥이를 꼬나들고 달려들었다.
철썩철썩 모진 매가 정월대보름 찰떡치는 소리를 내며 연거퍼 떨어져내리였다. 허여멀쑥한 호장의 볼기짝우에 당장 시꺼먼 먹구렝이가 얼기설기 휘감기였다.
얼마후 제가 나서지 않아도 좋을 일이건만 군영장수들에게 생색도 내고 희떠운 수작도 펴놓고싶어 자진하여 오천을 따라나섰던 허풍선이호장은 털뜯긴 장꿩꼴이 돼가지고 허청비청 군영대문을 빠져나갔다.…
오천은 한식경이나 열을 내여 전후사연을 알리였다. 분명 천둥같은 노성을 터칠줄 알았던 박위는 뜻밖에도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오천의 짐작과는 달리 박위는 선뜻 호백을 의심하고싶지 않았다.
한개 고을의 관장인 조호백이 그처럼 좀스럽고 비루한짓을 할수 있겠는가.
더우기 호백은 한고향사람, 박위 자기에게 목숨까지 구원받은 사람이였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오늘같이 의리없는짓, 몰렴치한짓을 할수 있겠는가.
오늘의 불미스러운 일은 필경 아래도리 아전놈들이 중간에서 롱간을 했거나 김해고을의 량식형편이 하도 어려운탓에 생긴것이리라.
생각은 이렇게 흘렀으나 어째선지 마음은 침침해났다.
박위는 저녁어스름이 밀려드는 앞동네의 부산스러운 골목길에 한참이나 못박힌듯 서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