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회)

제 1 장

6

 

박위는 무거운 사색에 짓눌린채 이제는 명색뿐인 어질더분한 골목길을 따라 스적스적 걸음을 옮기였다.

푹석푹석 재가루가 솟아오르고 으직으지직 그릇쪼각들이 부서져나갔다.

눈앞으로는 눈보라같은 재티가 연기처럼 뽀얗게 밀려들었다.

한여름때 몰아치는 이 재난의 눈보라.

과연 언제부터 이 나라의 평화로운 강토에 이처럼 으스산한 원한의 눈보라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던가?…

…왜구가 처음으로 고려땅에 나타난것은 지금으로부터 백수십년전인 1223년 5월 어느날이였다.

먼저 김주(김해)를 습격하여 숱한 재물을 략탈하였다.

첫 도적질에서 성공하자 재미도 나고 자신도 생긴 왜구들은 그후 련속 경상도 여러 고을을 기습하였다.

역시 공으로 재물이 생기는 도적질, 강도질은 밑천 안 들이는 생산, 유쾌한 오락이였다. 놈들은 갈수록 도적질의 회수를 높이였다. 판도 넓히였다.

이렇게 되자 고려정부는 원침략군과 싸우는 어려운 형편에서도 지방군을 동원하여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면서 감분위록사 한경운을 비롯한 중앙관리들을 일본에 파견하여 강도행위를 금지할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그때마다 일본측은 저들의 죄행을 사죄하기도 하고 화친을 바란다는 막부의 편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워낙 거짓말을 떡먹듯 하는 왜구들, 도적질, 강도질에 한껏 재미를 붙인 왜구들은 말로는 사죄요, 화친이요 하면서도 계속 고려땅 각지에 기여들어 파괴와 략탈을 감행하였다.

륙지에서만이 아니라 바다와 강에서도 고려의 세공선들과 조운선들을 련속 덮치였다.

1350년대에 이르러 왜구의 해적질, 강도질은 그전에 비길수없이 폭이 커지였다.

예전에는 소규모의 도적떼가 경상도 남쪽해안의 1~2개 고을이나 몇몇 섬들에 도적고양이처럼 기여들었다면 1350년 이후로는 백여척의 대선단과 수백명 지어 수천명의 대무리가 서해와 남해의 수십개 고을을 목표로 두억시니떼처럼 밀려들었다.

개경가까이에 위치한 섬들인 자연도, 상목도에 쳐들어와 민가를 불사르고 백성들을 학살하였다.

강화도근처인 파음도와 교동도에도 그리고 동해연안의 큰 고을인 강릉에도 략탈의 검은 마수를 뻗치였다.

지어 수도 개경의 문어구인 승천부(개풍)에까지 밀려들어 몇달동안이나 온갖 지랄발광을 다 하며 돌아치기도 했다.

고려조정은 더이상 소규모적인 방어전이나 외교적인 방법에 매달릴수 없었다.

압록강을 넘어온 북방의 외적들을 성과적으로 분쇄하고 북방정세를 어느 정도 수습한 고려군은 1364년 5월 드디여 왜구격멸을 위한 첫 대규모전을 벌리였다.

첫 대전에서 경상도 도순문사 김속명이 인솔하는 고려군은 진해현에 기여든 왜구 3천명을 일격에 생쥐무리 뚜드려잡듯 때려잡았다.

1372년 6월에는 만호 조인벽이 함주와 북청일대에서, 같은해 7월에는 백전로장 최영이 홍산일대에서 각각 수천명의 왜구를 소멸하였다.

1377년 5월에는 당시 김해부사였던 박위가 황산강하류에서 왜구의 전함 수십척을 침몰시키고 같은날 경상도원수(당시) 배극렴은 하까다지방의 령주이며 왜구의 한 괴수를 단칼에 찔러죽이였다.

그후에도 고려군의 대규모적인 왜구소탕전은 수십차에 걸쳐 계속되였다.

하건만 왜구의 침입은 오늘까지도 근절되기는커녕 더욱더 광포한 양상을 띠고 계속되고있었다.

작은 방망이로도 때려보고 큰 철퇴로도 조겨보고 좋은 말로도 타일러보고 엄한 소리로도 꾸짖어보았으나 왜구들은 그때마다 잠시잠간 움츠러들었다가는 또다시 피묻은 대가리를 쳐들고 이리떼처럼 달려들었다.

하기사 피맛을 볼대로 본 승냥이가 방망이찜질을 몇번 당했다 하여 금시 입맛을 돌리고 풀이나 열매 같은것을 먹으며 얌전하게 제 굴속에 죽치고 앉아있을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장차 어찌해야 왜구로 인한 이 땅의 랑자한 류혈, 이 하늘에 뒤덮인 재티를 말강스럽게 걷어낼수 있겠는가?

…방향없이 걸음을 옮기던 박위는 마을의 유측, 초가지붕우에 하얀 박꽃송이가 서글프게 웃고있는 초가마가리앞에서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그제서야 박위는 자기가 리옥의 집(어찌된 일인지 유독 리옥의 집만은 성한채로 서있었다.)앞에 다달았음을 의식하였다.

박위는 옷자락을 활활 나붓기며 성급히 뜨락안으로 들어섰다.

혹시나 하는 그 어떤 막연한 기대감이 언뜰 떠올랐다.

허나 뜰안에 들어서자마자 그 기대감은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버리였다.

활활 열어젖힌 아래방문과 웃방문, 텅빈 방안… 방안에서는 써늘한 랭기같은것이 산산하게 쓸어나왔다.

얼없이 휑뎅그렁한 방안을 들여다보던 박위는 갑자기 울너머 소로길쪽에서 무질서한 발자국소리가 들려오자 맥없이 고개를 돌리였다.

뜻밖에도 오천이와 여삼에게 량팔을 떠들리운 현중이가 병자마냥 비치닥거리며 질질 끌려오다싶이 이쪽으로 오고있었다.

살아있는 아들을 명백히 가려보았으나 왜서인지 다행스럽기 전에 더욱 불안하였다.

박위는 오천이네들이 뜰안에 들어서자 현중을 노려보며 거친 청으로 물었다.

《너는 어쩌다가 그 모양꼴이 되였느냐?》

현중이도 오랜만에 아버지를 만나보건만 반색을 띄우기는커녕 뽀얗게 먼지가 게발린 낯을 보기 싫게 찡그리며 비명같은것을 흘리였다.

《아버님, 리옥누님이 종시… 잘못된것 같습니다, 으흑흑…》

박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으나 심상한 낯빛을 허물지 않은채 조금 청을 높이였다.

《리옥이가 어찌되였다는게냐? 어서 똑똑하게 말을 해라.》

현중은 무슨 말인가를 꺼내려고 이리저리 입술을 궁싯거리더니 종시 말을 담지 못하고 오열을 터뜨리였다.

여삼이가 제꺽 발을 달았다.

《도련님은 어제 밤 군영의 작은 사랑에서 기침을 하다가 오늘 새벽 죽촌소식을 듣자 즉시로 군사들과 함께 이곳에 왔답니다. 오자마자 집집의 재무지를 다 헤쳐보고 뒤산 숲속까지 샅샅이 훑어보았는데 댁 아씨는 시신조차 없더랍니다.》

이미 그 비슷한 짐작은 하고있었으나 그것이 사실이라는것이 명백해지자 극심한 아픔과 허탈감으로 하여 금시 심장이 쭈그러드는듯싶었다.

박위는 꺼지는듯 한 음성으로 다시 말을 꺼내였다.

《그러니 리옥이가 왜구에게 잡혀갔다는 소리가 아니냐?》

《대체로 그리된것 같습니다.》

박위와 리옥의 관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여삼은 리옥의 실종이 마치 제 잘못이기라도 한듯 고개를 비틀어꺾으며 골기없이 대답했다.

박위는 띠끔띠끔 들쑤시는 가슴을 안은채 천천히 앞마당 구석쪽에 어우러진 무성한 구기자덤불앞으로 다가갔다.

언제인가 리옥이 커다란 놋대접에 새빨간 구기자차를 담아들고 와서 하던 말이 불쑥 떠올랐다.

《현중 아버님, 거제섬에서 키우던 구기자뿌리를 여기에 옮겨심었더니 열매가 얼마나 잘 달렸는지 덤불이 온통 빨갛게 보일 지경입니다.

변변치 못한 솜씨로나마 차를 달였는데 성의로 알고 들어주십시오.

그전에 의생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구기자차는 단맛도 있지만 쓴맛, 아린맛도 있어 마시기는 그리 쾌하지 못하나 혈을 보하고 기를 성하게 하는 좋은 약이라고 하옵니다.》

그때 박위는 병약한 리일경에게 바쳐지던 리옥의 정성이 자기에게 돌아온것이 슬프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여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끝에 반롱조로 응수하였다.

《쓴맛을 그리 탓할 까닭은 없느니, 고진감래라고 쓴맛을 본 뒤에 단맛이 찾아오는 법이지.

이것은 약물의 리치이기도 하지만 인생사의 리치이기도 하겠지, 헛허허…》

그후에도 리옥은 기회가 생기는대로 박위에게 제 손으로 달인 구기자차를 대접하군 하였다.

헌데 그처럼 각근한 정성으로 사연많은 이 구기자를 가꾸던 속이 깊고 마음씨 착한 이 집의 녀주인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생각탓인지 뽀얗게 재티를 들쓴 구기자덤불도 연해 몸서리를 치며 상실의 아픔을 하소하는듯싶었다.

잠시후 박위는 얼혼이 다 빠진듯 한 현중을 군영으로 데려가라고 이른 다음 저 혼자 바다가로 걸어나갔다.

체소한 여삼이가 저보다 한뽐이나 더 키가 큰 현중을 질질 끌다싶이하며 등성이쪽으로 사라지자 오천은 급급히 박위의 뒤를 따랐다.

때는 들물때라 한껏 높아진 바다는 살찐 가슴을 소리없이 들먹이며 코가 시글도록 청신한 바람을 말아올리고있었다.

바람결을 타고 비릿한 해감내도 풍겨왔다.

저 멀리 아득한 물마루우에서는 연한 연기처럼 보이는 아지랑이가 가물가물 눈이 시글게 피여오르고있었다.

인적없는 도래굽이의 펑퍼짐한 바위우에 올라선 박위는 퍼런 불찌가 번뜩이는 눈으로 물마루쪽을 노려보고있었다.

저 물마루너머 어디엔가 왜구의 소굴인 대마도(쯔시마)가 있을것이였다.

죽촌을 말끔히 짓이겨놓은 왜구들은 지금 저 물마루너머 대마도에서 또 한차례의 강도질에서 성공한 도적패의 쾌감을 나누며 희희락락 하고있을것이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슬픔과 분노를 씹으며 이렇게 빈주먹만 떨고있어야 하는가?…)

박위는 피가 나오도록 아프게 입술을 사려물며 옆구리의 칼을 더듬어잡았다.

불현듯 손녀딸의 시꺼멓게 끄슬린 시체앞에서 꺼이꺼이 마른 울음을 울던 저대로인의 처량한 모습이 떠올랐다.

죽은 애기에게 젖을 물리고 울던 실성한듯 한 아낙네의 얼굴과 안해의 시체를 정차게 매만지며 가슴저린 사연을 읊조리던 고들이라는 사내의 두리두리한 모습이 겹쳐지였다.

그 모든 수난자들은 말로써가 아니라 자기들의 처절한 모습으로 박위 자기를 준절히 꾸짖는듯싶었다.

《장군, 우리는 지금껏 군영군사들을 성벽처럼 든든히 믿어왔소이다.

그런데 왜구들은 군영군사들쯤은 허술히 알고 우리 동네에 달려들어 숱한 사람들을 죽이고 잡아갔으니 이제 우리는 누구를 믿고 살아가야 합니까.

구천에 사무친 이 원한을 누구에게 빌어 풀어야 합니까?》

《장군! 왜구들의 칼은 고려백성들의 피로 붉어졌는데 장군의 검은 노상 옆구리에 곱게 매달려있으니 그 물건은 대체 어디에 쓰는것이옵니까?》

박위는 어느 사이엔가 지르감았던 눈을 번쩍 뜨며 신음소리 같은것을 내불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건만 으득으득 이를 갈며 감사납게 부르짖었다.

《왜나라도적떼가 이제는 군영발치에까지 기여들어 수다한 사람을 살해하고 잡아가고 지어 우리 나라 장수의 딸까지 끌어가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는 단순히 불행과 고통이기 전에 민족의 수치, 군대의 망신이 아닌가.

이제 와서 무엇을 더 캐고 따질것 있다더냐.

귀신은 경으로 떼고 도깨비는 방망이로 떼라 했거늘 왜구의 침노를 막자면 다른 수란 있을수 없다.

대마도에 짓쳐나가 군력으로 도적떼의 소굴을 짓뭉개버려야 한다.

그래야만이 백수십년 쌓이고 엉킨 우리 백성들의 피맺힌 원한도 풀고 군대의 수치도 씻을수 있으며 고려국의 존엄과 기상도 떨칠수 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이번의 변란도 저 대마도놈들의 소위라고 생각합니다.》

등뒤에서 오천의 저력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도 강렬한 흥분탓에 잠시후에야 오천의 존재와 그의 말뜻을 어렴풋이 의식한 박위는 여전히 물마루쪽을 노려보며 몰풍스럽게 대답했다.

《누가 그걸 모른다더냐?!》

오천은 박위의 흥분을 전혀 감촉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박위이상으로 격동되였는지 전에없이 자신만만한 걸음으로 다가서며 말을 이었다.

《장군께서 이미 통촉하시는바이지만 대마도에는 흉악한 왜구들이 보쌈에 엉킨 송사리떼처럼 득시글거리는데 우리는 그것들이 쳐들어올 때마다 몇놈씩 잡고있으니(그나마도 빈번히 놓치기까지 하면서) 이런 방식으로는 십년, 백년이 가도 왜구의 란을 막지 못할것입니다.

도적떼를 근멸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우리 군대가 대마도에 나가 놈들의 소굴을 짓뭉개버리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우 량반들은 보잘것없는 일개 대정치고 너무나 푼수에 넘치는 소리를 하는 오천에게 《에끼, 이눔! 뉘게다 감히 어줍잖은 수작을 늘어놓는게냐!》 하고 된욕을 퍼붓는것이 상례였다.

허나 담대하고 배짱이 실한 사내, 군사일에 밝은 사내를 제일로 쳐주는 박위는 오천이가 전혀 방자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도리여 신통하게 자기와 견해를 같이하는 그가 무등 대견하고 기특했다.

잠시 믿음어린 시선으로 오천의 구리빛얼굴을 돌아보던 박위는 불현듯 귀인성스럽게 생긴 작은 입술을 아프게 감쳐물었다.

들뛰던 심장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랭정한 사고와 판단이 떠오른것이였다.

(옛적부터 군사를 쓸 때 지피지기하면 백전불패라 하였다. 적을 알고 자기를 알아야 백번 싸워 백번 다 이길수 있다는 리치를 내 어찌 순시도 망각할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현하 대마도의 형세는 어떠하고 우리 군대의 형편은 어떠한가.

날바다 한복판에 떠있는 대마도는 견고한 방어시설과 칼벼랑으로 둘러막혀있는 거의나 요새화된 섬이다.

게다가 섬에는 수백척의 전함과 실전경험이 풍부한 만여명의 정예한 군사가 항시 출동태세를 갖추고있다.

하지만 우리 경상도에는 통털어야 수십척의 전함과 수백의 군사(그나마도 갓 들어온 군사들까지 포함하여)밖에 다른 아무것도 없다.

이 정도의 병력과 군력을 가지고 대마도를 칠수 있겠는가.

아니, 승리보다 참패를 얻기가 더 쉽다. 그렇다고 나라에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할 형편도 못된다.

두달전인 지난 4월 18일 고려군의 주력이라고 할수 있는 수만의 정예한 군사들이 방대한 물자와 장비를 갖추어가지고 료동원정을 떠났다.

임금과 최영대감도(올해 봄 최영은 리인임을 제거한 후 조정의 최고벼슬인 문하시중으로 승탁되였다.) 원정군을 지휘하기 위해 서경(평양)에 나가있다.

그렇다면 대마도원정은 먼 후날로 미루어야 하는가.

아니, 이제 더이상 대마도원정을 미룬다는것은 우리 군대의 자제력의 발현으로 되는것이 아니라 비겁쟁이들의 맥빠진 침묵으로 해석될것이다.

무조건 가급적으로 대마도를 쳐야 한다.

물론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할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큰일이라도 누구든 먼저 나서는 사람이 있어야 성사된다.

내가 먼저 여기 경상땅에서 최상최대의 힘을 발동하여 원정준비의 첫 기치를 추켜들자.

그러느라면 리성계대감이 이끄는 료동원정군도 일을 성사시키고 돌아올것이요, 임금과 최대감도 개경으로 올것이다.

그때는 나라의 힘을 크게 빌수 있을것이며 따라서 대마도원정은 빠른 시일안에 실현될것이다.)

사색이 예까지 치달아오르자 또다시 세찬 격동이 취기처럼 전신에 퍼지였다.

박위는 엄엄하게 굳어진 얼굴로 오천에게 다가섰다.

확신에 넘친 어조로 말하였다.

《더 길게 말할것 없다. 우리는 한시바삐 준비를 차려가지고 대마도를 쳐야 한다.

왜구만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 민족이 얼마나 자기의 존엄을 귀중히 여기며 우리 군대의 검이 얼마나 위력한가를 똑똑히 보여줘야 한단 말이다.》

오천은 아무 응대도 없었다.

하지만 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빛으로 보아 그도 박위의 원정결단에 비낀 높은 기개와 배짱에 크게 감복하고 공감한것이 분명했다.

기척없이 설레이던 바다는 이 나라 사나이들의 높은 뜻과 억센 기상에 호응이라도 하듯 급기야 솨솨 소리를 높이며 집채같은 파도를 말아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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