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5 회)
제 1 장
5
박위는 이를 악문채 페허로 변한 죽촌마을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동구밖 등성이우에 굳어져있었다.
성벽처럼 동네를 둘러쌌던 무성한 대나무숲도, 올망졸망하게 박혀있던 수십채의 정갈한 초가마가리도 거의다 타버린듯 거칠것없이 번번한 마을터에서는 시꺼먼 연기타래와 뽀얀 재가루가 어지럽게 밀려다니고있었다.
천타는 내, 나무타는 내, 짚새기 타는 내…
별의별 역스러운 내가 코가 아리도록 풍겨왔다.
아까부터 군영군사들과 린근 동네 백성들은 애처로운 비명을 흘리는 부상자들과 시체들을 등성이쪽으로 날라올리고있었다.
등성이우의 펑퍼짐한 공지에는 벌써 숯등걸처럼 타고 끄슬리여 보기에도 끔찍한 시체들이 줄느른히 놓여있는데 거기서는 사람들의 애절한 울음소리와 넉두리소리가 귀따갑게 울려왔다.
한식경이나 칼자루를 움켜쥔 손을 후들후들 떨며 사위를 두릿거리던 박위는 자기도 모르는새 스적스적 공지쪽으로 걸음을 떼놓았다.
맨땅우에 퍼더앉아 초점없는 시선으로 멀리 어딘가를 바라보며 끅끅 마른 울음을 터치고있는 어떤 로인이 제일먼저 눈에 걸리였다.
로인은 박위가 다가서는줄도 모르고 도간도간 넉두리를 늘어놓는데 그의 무릎우에는 숯등걸처럼 타버린 잔약한 소녀의 시체가 놓여있었다.
로인의 울음소리, 넉두리소리는 박위의 귀가 아니라 심장을 꾹꾹 들쑤시였다.
《언년아, 네 아비어미도 다 왜구의 칼에 찔려 비명횡사를 했는데 네년마저 이렇게 처참하게 죽으면 이 할아비는 어쩌란 말이냐?!
어허이구, 저 악귀같은 왜구들을 어떻게 쳐죽여야 분풀이가 될가보냐. 어허이구…》
얼추 내리드리웠던 로인의 얼굴이 서서히 다시 들리였다.
그제서야 박위는 그가 저대를 하도 잘 불어 린근동네에까지 《저대로인》으로 알려진 늙은이임을 알아볼수 있었다.
언제나 술이라도 마신것처럼 불깃한 얼굴에 환한 웃음을 담고 돌아가던 시원시원하고 유쾌한 로인.
헌데 지금 그의 얼굴에서는 예전의 모습이라고는 꼬물만큼도 찾아볼수 없었다.
왜구들은 로인의 유일무이한 재산이며 희망이며 행복인 손녀딸을 이렇다할 목적도 없이 그저 심심풀이로 등허리를 찔러 불속에 처넣은것이였다.
세상에 홀로 남은 저대로인은 이제 무엇을 여생의 지주로 삼고 살아가겠는가. 어찌어찌하여 생활의 터전은 다시 회복한다 해도 예전의 그 남다른 흥과 기분은 어떻게 되찾을수 있겠는가?…
박위의 가슴은 예리한 이발에 깨물리기라도 한듯 모질게 아파났다.
욱신욱신 들쑤시는 뇌리속으로는 지방순행을 떠나기 며칠전에 이 고장을 찾아왔던 일이 어제런듯 생생히 밟혀왔다.
그날 중낮때 죽촌에 나와 화살재로 쓸 대나무들을 돌아보고난 박위는 리옥의 집에 들려 살림형편을 살펴보고나서 마을을 나섰다.
사위는 그리 어둡지 않은데 동천에는 벌써 열나흘 밝은 달이 두둥실 떠있었다.
그리 바쁘지 않은 걸음이라 천천히 말을 몰아 동구밖에 이르니 길옆의 등성이우에서 구성진 저대소리가 흘러내리였다.
오래만에 들어보는 저대소리는 은근히 박위의 마음을 끌어당기였다.
말에서 내린 박위는 교교한 달빛을 밟으며 슬밋슬밋 등성이우로 올랐다.
뜻밖에도 등성이우의 풀밭에는 숱한 사람들이 하얗게 모여앉았는데 그 복판에는 다발좋은 흰 수염을 가슴노리까지 내리드리운 어떤 로인이 올방자를 고이고앉아 멋스럽게 턱을 들까불며 저대를 불고있었다.
박위는 달그림자를 끌며 천천히 사람들께로 다가갔다.
박위가 다가온것을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저대를 불던 로인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새삼스레 의관을 정제하고 박위앞으로 다가왔다.
두손을 배허벅에 올려 읍을 하고나서 깊숙이 허리를 꺾었다.
《장군께서 이렇게 루추하기 그지없는 우리 골에 오시여 미거한 백성들까지 찾아주시니 영광이오이다.》
로인의 하도 격식바른 인사말에 다소 거북해진 박위는 제꺽 화제를 돌리였다.
《로인장, 오늘은 명절도 아닌데 무슨 일로 이렇게 동네사람들이 모여앉아 흥을 돋구고있소?》
로인은 빙그레 웃음을 띄우며 흥뜬 어조로 대답했다.
《예, 왜구들이 이 땅에 얼씬 못하도록 우리들을 지켜주시는 장군께서 죽촌마을에 래림하신 오늘이야말로 소인들에게는 큰 명절이올시다.》
《아니, 그건 어떻게 하는 말이요?》
박위는 어벙벙해났다.
허나 로인은 여전히 웃음기를 띄우고 손세까지 써가며 계속했다.
《장군께서 손수 검을 드시고 바다가에 서계시니 이 고장에는 왜구들이 얼씬도 못하고있지 않소이까.
장군의 그 수고와 마음이 하도 고마워 소인들은 변변치 못한 음식이나마 성의껏 마련해가지고 이렇게 모였소이다.
장군께서 별장댁아씨의 집을 나서시거든 술 한잔이라도 올리려고…》
박위는 로인의 말허리를 꺾으며 청을 높이였다.
《그러니 모두들 나를 기다리고있었단 말이요?》
《그렇소이다.》
《허어― 이런 변 봤나?!》
박위는 허허탄식같은 소리를 흘리며 어느결에 자기를 빼곡이 에워싼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문득 리옥의 집을 나설 때 황부루의 옆허리를 나는듯이 째고 지나가던 밤톨만 한 애녀석의 모습이 떠올랐다.
바로 그놈이 리옥의 집앞을 지키고있다가 자기가 집을 나서자 바람같이 달려와 로인에게 선통을 한 모양이였다. 박위는 자기를 대접하기 위해 늦도록 목을 지키고 기다린 이 고장 사람들의 성의가 고마왔다.
그들의 분에 넘치는 기대와 믿음도 감사했다.
그것이 어느 정도 송구스럽기도 했다.
박위는 이미 저대로인의 인생경력을 소상히 알고있었다.
그는 본시 전라도 어느 해변가마을에 살았는데 어부노릇을 하던 아들과 해녀노릇을 하던 며느리가 바다에 나갔다가 한날한시에 왜구들의 죽창에 찔려죽은 뒤 하나밖에 없는 손녀를 끌고 이 고장에 온 사람이였다.
그는 왜구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떤다는 박위장군의 군영가까이에 오면 손녀딸이라도 등탈없이 키울수 있다고 생각한것이였다.
그의 타산은 틀리지 않았다.
한해가 가고 두해가 흘러도 왜구들은 죽촌어방에 얼씬도 못했다. 살재미도 나고 옛적의 흥도 살아올랐다.
그럴수록 죽촌의 평화를 철벽으로 지켜주는 박위와 군영군사들이 무등 고마왔다.
무엇으로든 그들에게 인사를 차리고싶었다.
하여 그는 박위가 모처럼 마을에 찾아오자 기회를 놓칠세라 동네사람들을 휘동하여가지고 소박하게나마 정성껏 음식마련을 한것이였다.…
박위는 그들의 심정이 십분 리해되였으나 그들의 성의를 받아들이자니 미안쩍기도 하고 거북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순박한 백성들의 곡진한 성의와 소청을 마구 뿌리치기도 어려웠다.
박위는 로인네들이 이끄는대로 돗자리우에 마련해놓은 주안상앞에 마주앉았다.
그들이 권하는대로 술잔을 받아들었다.
박위가 사양없이 술을 마시자 사람들은 무슨 큰 은혜라도 입은듯이 감지덕지해하며 어떻게 하나 박위를 기쁘게 해주려고 저저마다 수선을 떨었다.
연방 술을 권하고 새삼스레 인사말도 올리던 저대로인은 문득 등뒤에서 감도는 계집애의 손을 잡아끌어 박위앞에 세워놓았다.
자못 무량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년이 바로 전라도 바다가 문암촌에서 애비에미를 다 잃은 소인의 손녀딸이올시다. 비록 초년에 부모를 잃고 외로이 자라기는 하오나 장군의 하해같은 덕으로 요즘은 아무 걱정없이 편히 지내고있소이다.
이애 언년아, 어서 장군께 큰절을 올려라.》
초롱초롱한 눈으로 로인과 박위를 번갈아 바라보던 언년은 붕어처럼 입을 나불거리였다.
《장군께서 내내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우리 고을에 계시면서 백성들을 잘 지켜주시기 바라나이다.》
이미 저대로인이 인사말을 준비시켰댔는지 언년은 제법 그럴사한 인사말을 숨 한번 톺지 않고 줄줄 내리엮었다.
《나어린 년이 여간 여돌차지 않구려. 그래그래, 네 청대로 내 오래오래 이 고을에 있으마. 헛허허…》
박위는 언년이와 사람들을 둘러보며 껄껄 웃었으나 가슴은 더욱 후더워났다.
이어 저대로인은 박위의 건강과 무공을 축하하여 한곡조 불어 올리겠노라며 대나무로 만든 저대를 들어올리였다.
희푸른 달빛에 한껏 젖은 여름의 저녁하늘로 구성진 저대소리가 은은히 울려퍼지였다.
처음에는 만경창파가 밀려오는듯 근감한 소리가 울리더니 어느결에 파도소리같은것은 슬며시 사라져버리였다.
파아란 하늘가에서 꽃구름이 피여나는듯, 우거진 숲속에서 새들이 우짖는듯 맑고도 청쾌한 음조가 굴러나왔다.
곡조는 다시 바뀌여 수많은 사람들이 기쁨과 감격에 겨워 환성을 터치며 설레는듯 한 격동적인 음향이 흘러나왔다.
여겨들으면 분명 하나의 생활적인 줄거리를 가진 곡조였으나 박위에게는 그것이 단순한 음악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자기의 격발된 마음탓인지 곡조에는 필경 이 고을 군사들에 대한 백성들의 고마움의 노래, 래일에 대한 당부의 의미, 언제나 군사들과 뜻을 같이할 의지가 슴배여있는듯싶었다.
박위는 힘주어 칼자루를 움켜잡으며 서서히 시선을 들었다.
허공중에 높이 달린 달은 눈이 시도록 밝았다.
달빛에 젖은 대나무숲도 사람들도 더없이 아름다왔다.
그보다는 이 나라 백성들의 깨끗하고 절절한 마음, 소박하고 열렬한 심정이 더더욱 아름답게 마쳐왔다.
정녕 생각도 많아지고 맹세도 깊어지는 잊을수 없는 밤이였다.…
…칼자루를 단단히 움켜쥔채 추억의 갈피를 뒤번지던 박위는 숫제눈을 꾹 감아버리였다.
갈비뼈가 우직우직 조여드는듯 한 모진 아픔이 전신에 동통같은것을 불러일으키며 몰밀려들었다.
전신의 피가 발밑으로 새버린듯 한 강한 허탈감도 느껴졌다.
(아, 내 이제 무슨 낯으로 이 사람들앞에 나선단 말인가?!…
나에게 그리도 또랑또랑한 음조로 감사의 인사말을 올리던 그날의 여돌찬 계집애는 숯덩이가 되여 나딩굴고있다.
나에게 보다 큰 무공을 축하하여 저대를 불어주던 그날의 유쾌한 저대로인은 슬픔에 잠겨 오열을 터치고있다.
나에게 지성으로 술을 권하고 감사를 드리던 그날의 마음착한 동네사람들은 반수이상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사람들조차 절망과 슬픔, 아픔과 분노에 싸이여 그날의 명랑하고 쾌활하던 기색은 찾아볼수 없다.
아, 정녕 이 일을 어찌해야 하는가?!)
연해 거친 숨을 내불며 말뚝처럼 굳어져있던 박위는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황망히 저대로인의 곁에서 물러섰다. 허나 몇걸음 나가지 못하여 또다시 가슴저린 광경과 맞부딪치였다.
그리 크지 않은 소나무밑에 산발한 어떤 녀인이 퍼더앉아 이미 죽은 아이에게 젖을 물린채 연방 아이를 들척거리는데 보매 녀인은 반정신이 나간것이 분명했다. 그는 박위의 존재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개개 풀어진 눈으로 아이를 내려다보며 쉬임없이 중얼거렸다.
《백동아, 어서 젖먹어라. 어서. 이 소견없는 어미가 건너마을 피서방네 집에 잔치일을 봐주느라고 밤새 나가있었으니 얼마나 배가 고팠느냐. 어서 먹어라. 응, 어서. 그런데 네 할머니와 네 아비는 어딜가구 너 혼자 먼지투성이뜨락에서 돌멩이처럼 뒹굴고있었느냐. 응, 백동아.》
박위는 황급히 백동 어미의 곁을 지나쳐버리였다.
박위는 몇걸음 못 나가서 다시금 우뚝 굳어지였다. 웬 젊은 사내가 펑퍼짐한 바위우에 죽은 녀인을 눕혀놓고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나직이 웅얼거리고있었다.
《이 사람아, 이제는 그만 눈을 뜨고 일어나게나. 고들이가 왔어.
임자 지아비가 왔단 말이여. 임자의 황달병에 민물고기가 약이라기에 황산강에 밤고기사냥을 나갔었는데 그새에 이렇게 왜구의 칼에 란탕이 되였으니 아, 이 일을 어쩌면 좋소?!
이제는 정말 임자가 이세상사람이 아니란 말이요? 어허이구!…》
박위는 무엇에 다쫓기기라도 하듯 거의 반달음을 치여 등성이를 내리였다.
이렇다할 작정도 없이 성큼성큼 걸음을 놓아 옛 마을터에 들어섰다.
가슴은 그냥 칼로 에이는듯 쓰리고 아리였다. 수치감과 분노는 기름을 들쓴 불길마냥 머리끝까지 확확 치달아올랐다. 참으로 섬나라 왜구들은 강도질을 해도 제일로 더럽게 하는 천하의 악한들이요, 도적질을 해도 비길데없이 너절하게 하는 세상에 다시 없는 추물들이였다.
왜구들은 어느때든 인가에 달려들면 남녀로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부터 죽인다.
철퇴로 때려죽이고 칼로 찔러죽이고 화살로 쏘아죽이고 불로 태워죽이고…
무자비한 살륙전을 끝낸 뒤에는 로략질을 시작하는데 쌀이든 천이든 재물이라고 생긴것은 비자루로 쓸어내듯 반반히 털어낸다.
그다음엔 영낙없이 불을 싸지른다.
집과 허청칸, 장독대와 울타리, 지어 마을주변의 논과 밭, 숲까지도 말짱 태워버린다.
하여 왜구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사람의 씨가 마르고 짐승의 종자가 사라진다. 기름진 농토는 황무지로 변하고 무성한 숲은 번대숭이로 변한다.
이즈막 세월 귀신의 화보다 더 무서운 왜구의 란을 당한 이 나라 사람들은 도처에서 설음과 분노로 터갈라진 가슴을 치며 울부짖고있었다.
《더이상 참을수 없다. 단군의 후예들이요, 고구려의 후손들인 우리 고려의 백성들이 왜구에게 이처럼 무서운 변을 당하고도 어찌 더이상 참을수 있겠는가. 우리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 나라에는 호미보다 검이 더 많아야 함을, 농사일보다 군사일이 백배로 더 중함을.
백성들이여, 우리도 분연히 떨쳐일어나 손에 손마다 검을 틀어잡자!…》
…재가루를 푸석푸석 밟으며 무작정 앞으로 걸어나가던 박위는 군영의 부원수인 윤통과 김해고을 부사인 조호백이 급급히 마주오는것을 띄워보자 무춤 걸음을 멈추었다.
윤통과 호백은 죽촌에 변이 났다는 급보를 받자 이곳에 나와 마을을 돌아보다가 좀전에야 박위가 동네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뒤쫓아온 모양이였다.
얼굴색이 남달리 검다고 하여 《흑면장수》로 불리우는 윤통은 더 말할것 없고 매끈한 얼굴이 노상 씻은 배추줄기처럼 해말쑥하던 조호백도 컴컴하게 낯색이 죽어있었다.
키가 후리후리하고 동작이 날랜 윤통에게 뒤질세라 급급히 걸음을 재우치던 호백은 제 먼저 박위앞에 다가서며 비통한 어조로 말꼭지를 떼였다.
《장군께서 영을 비우신 때 고을 경내에서 이런 참변이 생겼으니 무슨 말로 용서를 빌고 죄를 청해야 할지 실로 백골난망이올시다.》
김해부사는 고을의 행정과 군정을 함께 껴잡아보는 관헌인만큼 응당 오늘의 참변앞에서 죄의식을 느끼고 책임을 져야 했다.
하지만 박위는 호백이보다 자기의 직하부하인 윤통이가 더 원망스러웠다.
박위는 윤통에게 먼저 준절한 청으로 질책을 퍼부었다.
《부원수는 본관이 영을 비운 사이 바다길순시는 어떻게 조직했고 순라군, 파수군은 어떻게 돌리였기에 청청하늘에서 이런 날벼락이 떨어졌소?!》
꺽뚜룩한 키를 곧추 세운채 먼산바라기를 하고 서있던 윤통은 매눈처럼 예리한 시선을 호백에게 돌리였다.
《모든 일이 다 하관의 잘못으로 하여 생긴것이니 무어라고 발명할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변을 놓고 제일 큰 책임을 느껴야 할 대상은 김해관가라고 생각합니다. 털어놓고말해서 김해관가는 우리 군영이 곁에 있는 덕에 지금껏 군사일에는 큰 물력을 들이지 않고도 이렇다할 피해가 없이 편히 지내왔습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군영의 덕을 고맙게 여기고 고을 경내의 군사일에 각근한 관심을 돌리는게 례절이 아니겠습니까.
하관은 이 자리에서 김해관가가 우리 군영에 조달하기로 된 군량과 반찬감을 수량대로 내지 않은것은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주지하는바이지만 원래 죽촌까지는 김해군사들이 맡아 지키고 죽촌 다음촌부터 우리 군영이 맡게 되여있습니다.
그런데 일은 김해관가에서 맡은 죽촌에서 터졌습니다.
그러니 소장은 명백히 한계를 갈라가지고 책임을 묻고 죄를 따지는게 옳을줄 압니다.》
워낙 성정이 메마르고 성격이 팩팩한 윤통은 호백의 체면이나 립장 같은것은 알은체도 않고 콩이야 팥이야 빠개가며 마구 내쏘았다.
호백의 희좁은 얼굴은 금시 구워놓은 가재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자존심이 몹시 강한데다 량반의 지체를 대단하게 따지고드는 호백은 저보다 월등등급이 낮은 윤통에게 거의 야비한 질책을 당한것이 참을수없이 분해난것이였다.
호백은 눈을 까뒤집고 새된 청을 톺아올리였다.
《부원수는 말이면 다 하는줄 아오?
우리 관가에 설혹 여하한 과실이 있다손쳐도 어떻게 그렇게 짜게 말할수 있소?
죽촌백성들이 허다히 죽고 잡혀간고로 억장이 무너져내린 이 관장에게 꼭 그렇게 혹독한 질책을 해야 속이 시원하겠소?!》
윤통이 역시 호백의 생억지를 곱게 흘려버릴 사람이 아니였다.
그는 원래 참을성이 없는데다 옳지 않은 경우를 정당화하려드는 사람앞에서는 그가 누구든 더욱 열을 올리는 성미였다.
《아니, 하관은 책임한계를 갈라가지고 정확히 죄를 따지자는건데 부사께서는 무엇때문에 당치도 않은 변명을 꺼내여 삼태기로 앞을 가리듯 합니까?》
호백은 너무도 기가 막히여 입을 딱 벌리였다. 설핀 수염몽치가 매달린 뾰족한 아래턱이 걷잡을수없이 달달 떨리였다.
《삼태기로 앞을 가리듯 하다니?!
부원수는 뉘게다 감히 그런 상스러운 말을 가져다붙이는게요, 엥?》
《누구긴 누구겠소? 김해부사 당신에게 하는 말이요.》
《무엇이 어째?》
《큰소리는 왜 치우? 내가 당신의 호령에 기가 질릴 사람 같소?!》
두사람은 수닭처럼 마주서서 길길이 뛰였다.
박위는 재가루가 날리는 페허우에서 네 밀둥 내 밀둥하던 끝에 청을 높여가지고 싸움을 하는 호백이와 윤통이가 다같이 한심하게 생각되였다.
박위는 재티가 뽀얗게 앉은 커다란 주먹으로 공기를 갈라던지며 목청을 높이였다.
《그만하지 못하겠소? 공들은 이런 마당에서 옥신각신하는것이 창피하지도 않은가?
더우기 부원수는 나라의 록을 먹으며 전수히 군사일만 보는 무관인데 패전한것이나 다름없는 오늘의 일앞에서 계속 책임한계와 방비구간만 따지는게 옳겠소? 길게 말할것없이 부원수가 바다길을 책임적으로 지키기만 했어도 이같은 일은 없었을게 아니요?》
윤통은 아무 대꾸없이 다시 먼산바라기를 시작하였다. 얼굴빛은 여전히 사나왔으나 박위의 질책에는 별로 의견이 없는듯싶었다.
박위는 호백이쪽으로 돌아섰다.
《부사에게도 할말이 있소. 방금 부원수가 꼭지를 떼다 말았지만 부사는 군사일에 너무 무관심한게 탈이요.
한가지만 찍어말한다면(이번 사건과는 무관계하지만) 우리 경상군영에서 새로 모집한 군사들에게 필요한 군장을 보장해달라고 청탁한게 어느때 일이요?
그런데 부사는 청탁을 받을 때는 아무 말 없다가 뒤에 돌아가서는 관가의 벼슬아치들에게 〈나라의 법에 군사로 뽑힌자는 자비로 복장과 장구를 갖추게 되여있으니 국법대로 시행하는게 옳지 않는가.〉고 시비 비슷한 소리를 했다는데 어디 말 좀 해보우. 요즘 모집한 신입군사들이란 태반이 왜구의 란을 만나 류랑걸식하던 농군들과 어부들, 관청과 대가집에 매여살던 관노, 사노들인데 덩그렇게 불쪽만 차고온 그 사람들이 무슨 수로 군장을 장만한단 말이요?
우리 관헌들이 바로 이런 식으로 군사일을 외면했거나 등한시했기때문에 오늘과 같은 가슴아픈 실패를 당하게 된게요.
당부컨대 부사는 진정으로 고을의 군사일에 전심전력해주시우.
지금같은 때 군사일을 정사의 첫째 항목에 놓지 않고 의연히 그 어떤 요령이나 발림수로 굼때려든다면 후날 돌이킬수 없는 랑패를 당하게 된다는것을 잊지 마오.》
박위는 오늘의 이 기회에 호백의 치명적인 결함을 고쳐주기 위해 진심으로 애타게 자기의 속마음을 터놓았다.
허나 호백은 박위가 오늘일을 기화로 자기를 아예 거부기처럼 납죽하게 짓눌러놓으려고 부러 기를 돋구는듯싶었다.
아래턱, 웃턱도 없이 마구 날뛰는 윤통을 애써 두둔해주는것 같기도 했다.
호백은 여간만 속이 알찌근하지 않았으나 속마음과는 달리 무슨 큰 인생사의 리치라도 깨달은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흔연히 대답했다.
《장군의 충고를 골수에 새기고 일후로는 군사일에 각별히 관심을 돌리리다.》
《부디 그래주시우.》
호백이 달게 충고를 접수하자 박위는 자기 역시 누구들을 질책할만큼 떳떳치 못하다는것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였다.
언제나 속마음을 가리울줄 모르는 너무도 단순하고 고지식한 박위는 즉시 침통한 어조로 자기반성을 하였다.
《사실 오늘의 변이 생긴데는 누구보다 본관의탓이 제일 크다고 해야 할거요. 어제 저녁 본관이 회군하던 길에 부산관가에 들려 늦도록 술을 마시지 않고 밤길을 잡아 곧바로 군영에 왔더라면 모름지기 오늘같은 변은 없었을거요.
그렇게 놓고보면 오늘일의 책임은 본관에게 있으니 그쯤 여기고 더이상 책임문제를 거론하지 맙시다.
오늘의 건에 대한 장계는 본관이 직접 올리겠소.
후일 우에서 내리는 추궁도 본관이 다 받겠소. 그러니 부사는 여러생각 말고 살아남은 동네사람들의 생활과 죽은 사람들의 장례일을 잘 살펴주도록 하시우.》
박위가 시원스레 모든 책임을 맡아나서자 호백은 눈에 띄우게 화색을 피웠다. 이어 호백은 사뭇 헌걸스럽게 활개짓을 치며 아직도 곡성이 랑자한 등성이쪽으로 올라갔다.
벌레라도 씹은듯 상을 찡그리고 호백의 뒤모습을 쏘아보던 윤통은 불식간에 박위께로 고개를 홱 돌리였다.
《장군께서는 무엇때문에 저 좁쌀여우같은 김해부사의 죄까지 다 껴안으려고 합니까?
저 사람은 우리 일에 리익보다 해를 더 끼칠 사람입니다.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물이 더러우면 발을 씻는다는거야 삼척동자에게도 명백한 인생리치가 아닙니까.
저 사람은 절대로 가까이해서는 안될 요물입니다.》
군사일에서는 사소한 빈틈도 없지만 생활상에서는 지나치리만큼 관후한 박위는 윤통의 일면적인 사고방식이 무등 답답하게 생각되였다.
허나 그것은 한두번의 추궁으로 고쳐줄 일이 아니였다.
박위는 부드러운 어조를 골라 타이르듯 말하였다.
《부원수, 옛 병서에 장수는 다섯가지 덕을 지녀야 하는바 그중에서 첫째가 사람을 믿고 어짐을 발휘하는것이라 했소.
우리는 변이 생길 때마다 벌을 내리여 사람을 떼내칠것이 아니라 흐린 마음이라도 잘 닦아주고 잘 이끌어주어 한사람이라도 더 많이 군사일에 인입해야 하오.
더우기 이 고을 부사로 말하면 한개 고을의 지방장관으로서 절대로 빗나가서는 안될 사람이 아니겠소.
그는 몇해전까지만 해도 칼을 잡았던 상원수요. 그러니 우리로서는 누구보다 믿고 의지해야 할 장수란 말이요.》
윤통은 검스레한 입술을 삐주름히 빼물며 길게 한숨을 내불었다.
그는 자기대로 박위의 일면적인 사고방식이 안타까왔다.
윤통은 박위의 과감하고 호방한 성격을 부러워하고 진중하고 너그러운 성품을 존경했다.
하지만 박위의 인정과 관용이 누구에게나 차등없이 베풀어지는것은 질색이였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선과 악의 충돌, 진실과 위선의 알륵은 계속될것인즉 인간은 응당 매 사람들에게 선과 덕을 무턱대고 고루 베풀수 없다는것이 윤통의 굳어진 견해였다.
윤통의 체험에 의하면 선한 인간에게 돌려지는 덕은 대개 덕으로 되돌아오지만 악한 인간에게 베풀어진 덕은 해와 악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항간에는 길러준 개 발뒤꿈치 문다는 말도 나돌고 덕을 악으로 갚는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윤통의 단순하면서도 예리한 시선에 비낀 호백의 정신적인 초상은 결코 아름답지 못했다.
어딘가 겉과 속이 다른 사람 같았다.
자기의 리익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불의의짓도 마다하지 않을것 같기도 했다. 누구보다 어질더분하면서도 누구보다 정의와 진실에 대해 크게 떠들고 다니는 사람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하기에 그는 호백의 일이라면 무턱대고 의혹을 품고 달려들었다.
그런데 박위는 지금처럼 안팎의 공기가 어수선한 때 호백이 같은 인간을 그저 좋게만 리해하려드니 윤통으로서는 여간만 안타깝지 않았다.
윤통이 다시한번 모난 말로 호백을 타매하려고 입술을 감빠는데 그 눈치를 알아채기라도 한듯 박위는 성큼 걸음을 떼놓았다.
반사적으로 박위를 따라서려던 윤통은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마다 늘 그러하듯 삐주름히 입술을 빼물며 스르시 굳어지였다.
꺼멓게 끄슬리여 도대체 무슨 나무인지 알수 없는 아름드리거목의 휘청거리는 가지에 올라앉은 참새들은 이 마을의 참변이 너무도 놀라와 날아가는 재주도 잊어버린듯 아까부터 솜덩이처럼 굳어진채 자그마한 눈만을 깜빡거리고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