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회)
4
인간의 생명은 강한것이다. 불굴의 인간 한상수는 죽음의 세월을 이겨내고 한줄기 해빛을 받아안게 되였다.
드디여 그는 장장 수십년간의 옥살이를 마치고 청주보안감호소의 철문을 나서게 되였다. 홍안의 시절 우리 나라 축구계에서 《비수》로 그 명성이 자자하던 한상수도 이제는 70고개를 바라보는 나이여서 왕년의 그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었다. 성성한 백발, 얼기설기 지나간 깊은 주름살들, 그의 강직한 성미를 말해주듯 한일자로 억세게 다물린 입, 언제나 예리하게 반짝이는 두눈… 누가 그를 보고 경기장을 종횡무진으로 달리던 축구선수라고 하랴.
감호소철문밖에 서있는 버드나무잎은 따스한 해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밤사이에 내린 소낙비로 청신해진 공기는 마음을 상쾌하게 만든다. 가까이에서 청아한 새소리가 고요를 깨뜨리며 울려온다. 그것은 마치 감옥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축복이라도 하는듯하여 사람들을 기쁘게 했다.
감호소철문밖에는 출소자들의 친척, 친우들, 《민가협》을 비롯한 인권단체들과 사진기, 촬영기를 든 기자들로 붐비였다.
이윽고 철문이 삐―익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얼마후에 출소하는 사람들이 철문밖으로 천천히 걸어나왔다.
한상수도 야릇한 흥분으로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걸음을 옮겼다. 그는 바늘로 찌르는듯한 해빛에 눈이 부시여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아버렸다. 손채양을 하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감호소마당에서 늘 보던 하늘이였다. 그러나 속박에서 풀려난 지금의 하늘은 유난히도 푸르렀다. 볼수록 자유에 대한 갈증으로 타던 그의 가슴에는 환희의 물결이 숨가쁘게 밀려왔다. 해빛이 그리도 밝고 공기가 그리도 달고 하늘이 그처럼 넓은것을 처음 깨닫는듯 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 눈앞이 뿌옇게 흐려왔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자기가 울고있음을 알았다. 그것은 철쇄에서 풀려난 기쁨의 눈물이 아니였다. 오늘을 보지 못하고 최후를 마친 동지들에 대한 생각, 통일된 조국을 찾지 못한 자책과 회오의 눈물이기도 했다.
《아버지!》, 《선생님!》, 《상수형!》
저쯤에서 기쁨에 넘친 목소리가 각이하게 울려왔다. 한상수가 눈을 슴벅이며 고개를 돌리니 몸집이 우람한 일국이, 은옥이 그리고 늙은이가 된 박영진이 헐떡거리며 뛰여오고 그뒤로 정창식이, 오철남이, 낯모를 사람들의 얼굴도 보인다.
어느사이에 사람들이 한상수를 둘러쌌다. 중년부인이 된 은옥이는 어린애처럼 아버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운다. 한상수는 딸의 머리를 뼈만 남은 손으로 쓰다듬으며 사람들을 기쁨에 젖은 눈길로 둘러본다. 고행의 흔적인듯 그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고랑을 이루었다. 몸은 여위고 강말랐지만 자세가 꿋꿋하고 표정은 억세여 보였다. 사람들은 뜨거운것을 삼키며 그를 부둥켜안았다. 모두 격정이 사무쳐올라 위로의 말을 못했다. 그저 손수건으로 눈굽을 문지르며 손을 잡고 흔들기만 했다.
이때 기자들이 와르르 밀려들어 한상수의 앞에 마이크를 들이댔다. 섬광이 번쩍거리고 촬영기가 돌아가는 소리로 주위가 소란했다.
《한형, 끝내 이겨냈구만. 정말 장하오.》
박영진이 한상수를 부둥켜안은채 잔등을 두드리며 부르짖었다.
《장하다구?…》
한상수는 나직이 반문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국을 통일시키지 못하고 한뉘 감옥살이를 한 내가 무엇이 장하단 말인가.》
《한형은 신념을 지킨것만으로도 우리 민족이 떠받들만 하오. 아직 통일이 되지 못한거야 상수형 책임만이 아니지 않소.》
《책임이 있지. 나한테도 있고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다 책임이 있소. 기자선생들, 이 말을 꼭 전해주시오.》
한상수의 목소리는 의미심장하게 울렸다. 그의 표정은 어둡고 침침했다.
《알겠어요. 전 방송공사기자예요. 유명한 축구계의 <비수>가 감호소에서 나오게 된것을 우리 방송공사를 대표하여 축하하는 영광을 지녀요.
이렇게 가족들과 친구되신분들이 선생의 출소를 환영하여 마중나오셨는데 부인되신분은 누구신지요? 소감을 듣고싶어요.》
《…》
한상수는 그제야 옥야가 생각나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가 보이지 않았다. 어찌된 일인가?…
《선생님, 저기에 은옥 어머니가 와있습니다.》
옆에 있던 정창식이 조용히 말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그리로 쏠렸다. 감호소철문밖에 있는 한그루 로송아래에 흰옷입은 녀인 하나가 서서 옷고름을 눈가로 가져가고있었다.
옥야!… 순간 한상수의 심장은 세찬 충격을 받고 고동쳤다. 그는 천천히 옥야앞으로 다가갔다. 하얀 치마저고리, 바람에 흩날리는 백발, 얼굴에 그물처럼 얽힌 주름살, 그중에서도 주글주글해진 목언저리가 아프게 눈을 찔렀다. 백옥같던 그 얼굴에 나타난 모든 로쇠의 흔적들이 페부를 찌르고 심장을 쥐여짜듯이 그러쥐는것이였다.
이 녀자를 어찌 그 옛날의 아련하게 아름다운 옥야라고 할수 있으랴. 애틋한 정을 끌던 통통하던 두볼과 언제나 별빛처럼 정기를 뿜던 그 눈동자는 퇴색해지고 영채를 잃었다. 다만 그의 량볼에 다른 사람의 눈에 잘 띠우지 않는 아주 작은 보조개가 잔주름속에서 희미하게 나타날뿐이였다. 아, 이렇게 우리의 한생은 덧없이 흘러갔는가.
한상수는 옥야앞에 이르자 말없이 그의 팔목을 그러잡았다. 섬약하고 갑삭한 옥야의 몸이 막대기처럼 꽛꽛한 한상수의 품에 안겼다. 백발의 할머니가 된 옥야는 철모르는 소녀마냥 흐느끼였다. 옥야를 부둥켜안은 한상수도 경풍을 만난듯 와들와들 떨뿐 입을 열지 못했다. 다만 손을 들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옥야의 머리를 얼없이 쓰다듬고있었다. 칠칠그믐밤같이 까맣게 윤기흐르던 머리칼이였다. 이제는 그 칠흑같은 머리칼은 한오리도 찾아볼수 없다.
한상수는 가슴이 터지는듯했다. 이것이 세월이 가져다준 탓만이겠는가. 진한 눈물이 옥야의 백발우에 점점이 떨어졌다. 아, 내 눈물이 옥야의 머리를 다시 검게 할수만 있다면 열, 백날이라도 이렇게 굳어져 눈물을 쏟으련만…
이윽고 다소 진정이 된 옥야가 남편앞에 무릎을 꿇었다.
《여보, 저의 절을 받아주세요.》
《아니 이러지 마오.》
한상수는 황급히 안해의 두팔을 잡아일으켰다. 오히려 안해에게 절을 해야 할 한상수였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며 아이들을 키운 안해인가.
한상수의 일행은 모두 소형뻐스에 올랐다. 옥야는 남편곁에 앉았다. 다시는 떨어지지 않으려는듯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처녀시절처럼 자기의 머리를 그의 어깨에 기대였다. 얼굴에는 온갖 시름을 가셔버린 밝고도 깨끗한 미소가 어려있었다.
뻐스는 서울을 향해 달리였다. 화창한 봄이였다. 차창밖으로는 신록이 깃드는 산천이 천천히 흘러갔다. 사람들의 가슴마다에는 한상수의 출소로 하여 새봄의 정취를 더욱 이채롭게 해주었다. 한상수는 차창으로 보이는 새파란 봄하늘을 정신없이 바라보고있었다. 문득 그 하늘중천에 박우갑, 김성교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 나라의 통일제단에 애국의 넋을 바친 그들, 조국의 분렬을 막고 통일을 위해 선혈을 뿌린 그들을 생각할수록 눈뿌리가 홧홧 따가와오고 쓰라려오는 가슴을 다잡을수 없다. 달리는 뻐스안에서 즐겁게 담소하던 일행은 숙연한 분위기에 잠겼다. 한상수는 안해가 주는 손수건으로 눈굽을 문지르고나서 사람들에게 얼굴을 돌리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미안하오. 갑자기 돌아오지 못한 동지들생각이 나서…》
《정말 생각하면 기가 막히는 일이요. 그렇게 컸던 대망의 꿈과 사랑을 버리고 한생 감옥에서 살다니!…》
박영진이 쓰라린 상실의 아픔을 느끼듯 조용히 뇌이였다.
《그게 어디 나 하나뿐이요. 그러나 나는 감옥에서 참다운 인생의 진리를 배웠소. 사랑도 명예도 귀중하지만 조국이 더 귀중하다는것을, 인간에게서 고결한 삶은 통일을 위한 투쟁에 바치는것이라고말이요!》
인생을 총화하는 한상수의 말은 듣는 사람들의 심장을 울렸다. 그것은 자기 인생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있는 사람에게서만이 느낄수 있는 신념의 목소리였다. 뻐스안은 물을 뿌린듯 조용했다. 모두가 한상수의 금언같은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걸어온 한생에 대하여, 이제 걸어갈 삶의 길에 대하여…
×
그때로부터 수년후에 한상수는 박영진이와 함께 서울경기장을 찾아갔다. 그날은 북남유일팀선수선발경기를 하는 날이였다. 경기장입구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박영진이 사람들에게 뭐라고 하자 입구에서 붐비던 사람들이 일시에 조용해지며 길을 쭉 내주었다. 아마 비전향장기수라고 박영진이 소개한것 같았다. 모두가 존경과 선망의 눈길로 한상수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점직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모여선 사람들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군중들속에서 박수가 터졌다. 한상수는 몸둘바를 몰라했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그는 재삼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가슴이 후더워오르고 눈굽이 저릿해졌다.
《한형, 어서 들어갑시다.》
박영진이 곁에서 조용히 귀띔했다.
한상수는 그들이 열어놓은 길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안내원이 어느새 알고 한상수일행을 초대석으로 데리고갔다. 관람석에 앉은 수만관중들이 자기를 보고 손저어주는것만 같았다. 전쟁전 이 경기장에서 《태백》팀에 속하여 미국팀과 첫 경기를 할 때 관중들은 평양에서 온 한상수를 보고 경기장이 떠나가도록 환호했다.
그런데 40년이 지난 오늘 그처럼 소망이던 북남유일팀을 구성하기 위해 선수선발경기를 하게 된것이다.
경기장안은 곳곳에 울긋불긋 장식구호들이 세워져있고 관중들은 손에손에 작은 기발을 들었다. 귀에 익은 《아리랑》선률이 가슴을 더욱 부풀어오르게 했다. 문득 《하나가 되자, 하나가 되여 세계를 뒤흔들자!》라는 대형구호가 한상수의 눈을 끌었다. 그는 불현듯 가슴이 세차게 들뛰였다. 그가 항상 마음속으로 웨치던 구호였다.
드디여 북남선수들이 경기장에 입장하였다. 관중들은 폭풍같은 박수와 환호를 터치였다. 한상수도 저 선수들처럼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였다. 아, 그리운 북녘의 벗들이여, 평양의 열풍이 확 안겨온다. 마음이 둥둥 뜬다. 눈물이 앞을 가리워 보이지 않는다.
《한형, 저 기발을 보오.》
곁에 앉은 박영진이 흥분에 넘쳐 나직이 속삭였다. 한상수는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게양대에 오른 통일기발이 푸르청청한 하늘을 배경으로 힘차게 나붓기고있었다. 눈같이 흰바탕에 하늘색조선지도를 새긴 기발이였다. 그 기발은 통일된 민족의 상징이였다. 심장이 쿵쿵 뛰였다. 통일에로 돌진하는 겨레앞에서 펄펄 휘날리는 저기발! 관중들의 손에 든것도 통일기였다.
그들은 그 기발을 흔들며 조국통일을 웨치고있었다.
한상수는 창공에 나붓기는 통일기발을 우러러보며 마음속으로 웨쳤다.
세계여 보아라, 우리 조선이 어떤 나라인가를. 이제 머지 않아 우리 조선은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령도따라 이 행성우에 가장 존엄있고 가장 슬기로운 하나가 될 불패의 강국으로 솟아오르게 될것이다!
어느덧 백발이 성성한 한상수의 눈굽에 뜨거운 이슬이 맺혔다.
그는 자기가 몇년후에 위대한 장군님의 품에 안기게 되리라는것을 그때는 아직 생각지 못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