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2 회)
3
한상수가 청주보안감호소에 온지도 벌써 여러해가 지났다.
청주보안감호소는 각이한 투쟁경로를 거친 사람들의 집합체였다. 한상수처럼 애당초 교도소에서 바로 끌려온 사람, 출소하여 나갔다가 재범할수 있다고 《인정》되는 비전향자들, 어쨌든 당국이 내놓은 《사회안전법》희생자들, 다시말하여 재판을 다시 하지 않은 《수인》들이였다. 여기도 독거감방이 있고 전향공작의 칼날이 시퍼렇게 살아있다. 그러니 교도소와 별다른 곳이 아니였다.
한상수는 부지중 가을의 우수와 같은 쓸쓸함과 적막감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분명 여기서 생의 종말을 맞아야 할것 같았다.
불현듯 대구에서의 마지막날 밤이 떠올랐다.
옥살이 26년 3개월이 흘러가던 그밤, 교도소담장밖의 뽀뿌라나무는 왜 그리도 가지를 흔들며 속살거리고 어느 곳에선가 서글프게 우는 귀뚜라미소리는 왜 그리도 한상수의 가슴을 흔들었던지…고독과 슬픔을 늘쌍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던 그 귀뚜라미소리, 그밤에는 애절한 흐느낌같기도 하고 천리를 가든 만리를 가든 잊지 말라 간절히 당부하는것 같던 그 소리에 한상수는 눈굽을 적시였다. 그렇다. 함께 있다가 최후를 마친 전우들을 잊지 말라고 귀뚜라미는 분명 울고있었다. 아, 내 어찌 그들의 넋을 잊으랴. 조국통일의 길우에 자기의 생명을 서슴없이 바친 그처럼 강하고 억세고 거룩한 인간들, 박우갑, 김성교!… 그들은 죽었어도 넋을 동지들의 가슴에 영원한 생명으로 주고있다. 그들은 확실히 자기자신보다 큰 사람들이였다.
한상수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동지들! 믿어주오. 이 한상수는 동지들이 보여준 그 절개, 그 넋을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간직하고 싸울것이요.)
그는 어디에 묻혀있을지 모를 그들의 령전앞에 선 심정으로 오래동안 감방문가에서 떠날줄 몰랐다.
어느날 그는 뜻밖에도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감옥살이 수십년만에 받아보는 두번째 편지였다.
첫번째는 차입물속에 들여보낸 박영진의 편지였고 이렇게 공개적으로 받아보는 편지는 처음이다.
한상수는 사연이 어떻든지간에 편지를 받으니 희한스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서울의학대학 권미선》이라는 녀자였다.
한상수는 무작정 반가왔다. 바로 이 대학에서 안해와 딸이 공부를 했고 졸업했던것이다.
봉투에 씌여진 글씨를 보니 동글납작한게 퍽 깨끗하고 여물어보였다. 그는 서둘러 편지를 개봉하였다.
존경하는 한상수선생님께 드립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단 한번도 뵈운적없고 알지 못하는 한 녀대학생이 이렇게 외람되게 편지를 쓴다고 욕하지 마십시오.
저는 서울의학대학에서 공부하고있는 권미선입니다.
나이는 스물셋, 소아과를 전공하여 이 땅의 어린이들을 병없이 키워 내세우려는것이 저의 소박한 꿈이예요.
저의 아버지는 서울메리아스회사 사장이시고 어머니는 부양이예요. 오빠 셋은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원, 대학교수, 외국류학간 오빠도 있어요. 저는 3남 1녀로서 먹고사는데 근심이 없는 집의 고명딸이랍니다.
제가 감옥에 계시는 선생님께 편지를 쓰게 된것은 처녀로서는 한창때이고 보다는 곧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짚어야 하는 지금에 와서 어떻게 하면 탈선되지 않는 인생길을 걸을수 있겠는가 하는 가르치심을 받고싶어서입니다. 저는 얼마전까지만도 학생의 본도에 맞게 공부만을 착실히 해왔습니다. 공부만 잘하면 자기의 꿈과 리상을 실현할수 있다고 생각하며 주위세계와 담을 쌓았습니다. 집에서 대학으로 오가는 통학길, 그 한길외에는 다른 길에 눈을 팔지 않았습니다. 어찌보면 현대의 규방처녀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이 사회를 렌트겐처럼 투시해보아야 한다는 의혹감과 저의 생활에 대한 재분석과 재평가를 내려야 한다는 결심이 서게 되였습니다.
금년 방학기간 저는 제방에 앉아 말못하는 어린이들의 병진단에 대한 림상실험보고서를 쓰고있었어요.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습니다. 돌아보니 대학교수인 오빠가 나를 쏘아보고있었어요.
심상치 않은 오빠의 그 서슬푸른 기색에 나의 가슴은 화닥 뛰였습니다. 오빠는 그런 나를 얼없이 바라보더니 그 기색과는 다르게 맥빠진 소리를 했습니다.
《미선아, 청아가 죽었다!》
나는 무슨 소린가 해서 오빠를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청아가 죽다니? 죽었다는건 무슨 말인가?… 너무도 뜻밖의 일을 당하면 현실 그자체도 먼 세계의 일처럼, 마치도 달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여겨지는가 봅니다. 미처 깨닫지 못하는 나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던 오빠는 돌아섰어요. 저는 지금도 오빠의 그 행동이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턱을 넘어서며 오빠는 말했습니다.
《넌 분통같이 꾸려놓은 이 방에서 무엇을 바라는거냐. 어린 아이들을 위한다고?… 거리에 나가보아라. 너의 학우들이 지금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있다. 너의 대학 상옥이란 녀대생이 미군병졸에게 욕을 당했다. 그것을 계기로 서울의 모든 대학이 총궐기하여 떨쳐나섰는데 청아가 <백골단>의 쇠몽둥이에 맞아 숨졌구나. 넌 그래 여기서 무얼 한다는거냐. 미군을 몰아내고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떨쳐나선 학우들이 거리에서 피를 흘리는데 어린이의 병에 대한 림상이 어쩌구 어째?!… 이 사회의 병집부터 들여다보아야 한다.》
저의 손에서 철필이 떨어졌습니다. 청아가 죽다니… 소꿉시절부터 함께 자라고 문리과대학에서 공부하는 저의 남동무였습니다. 저는 황황히 거리로 달려나갔습니다. 포도우에 피를 뿌리면서도 주먹을 휘두르며 목터지게 미군을 규탄하는 학우들의 모습을 보며 저는 피나게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청아의 죽음은 상아탑속에 파묻혀 옴지락거리던 저의 인생관에 대한 총결산이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행동으로 넘어가자니 주춤거리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지금껏 운동권내에 발을 들여보지도 못한 제가, 리념써클의 개념조차 모르는 제가 욕망만으로 하루아침에 자반뒤지기를 할수야 없지 않습니까. 저는 동무들과 어울려도 보았지만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았습니다. 얼마전에야 저는 우리 동무들이 이 땅에 있는 여러 교도소들과 감호소들에 계시는분들에게 편지를 보낸다는것을 알았습니다. 편지를 받아보는분들이 누군가고 하니 바로 수십년간 옥고를 치르는 선생님들과 같은분들이라는거예요. 저의 가슴은 충격으로 높뛰였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10년도 아닌 20년, 30년이나 감옥살이를 하는분들이 우리 남한땅에 계시다니 과연 그분들은 어떤 사람들일가. 어떤 사상을 가진분들이기에 당국이 그처럼 수십년간을 가두어둔단 말인가.
인간답게 살수 있는 권리를 사상이 다르다는 리유로 평생동안 박탈당하신분들, 전향을 하지 않는다고 물리적인 폭력을 당하시다가 감옥에서 돌아가신분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향서에 강제로 지문이 찍힐가보아 두 손을 불판에 덮어 지문을 없애버렸다는 선생님들도 계신다지요. 저는 정말 바보인듯싶어요. 자연스럽게 《반공》을 배우면서 이 세상에 선생님같은분들이 계신다는것을 모르고 지냈으니… 저는 그날밤, 한잠도 들지 못했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이 시대의 아픔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는 이때부터 고민이 시작되였습니다.
과연 옳바른 삶, 참된 삶은 무엇일가. 제 나이보다 5년이나 더 많은 30년세월을 감옥에서 계시는 선생님은 어떤 바램을 안고계실가. 화분의 봉선화처럼 연약한 저, 아직 운동권에 나서기도 무서워하는 저… 저는 생각했어요. 정의란 무얼가, 진리란 무얼가. 사람이 태여나면서 지니고있는 성정이야 얼마나 깨끗합니까. 아기들의 맑은 눈동자, 토실토실한 살결, 어머니의 젖밖에 모르는 입술에 그 어떤 티검불이라도 낀다면 보는 사람들조차 마음이 좋지 않을거예요. 그럴진대 그 깨끗한 마음에 비끼는 사회악이 자라는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리란것은 불보듯 명백한것이 아니겠나요. 저 역시 그 어떤 일가견이 없이 맹목적인 순응에 포화된 속물이였어요.
만약 제가 불굴의 투사로 변한다고해도 이 사회를 위해 한목숨 내대고 절개를 지키는 그런 각오가 있는가고 자문해볼 때 부끄럽지만 이것이다 하고 웨칠만 한 아무런 명분도 없는거예요. 이렇게 놓고보면 선생님들이 지켜가시는 그 리념은 무엇일가요. 사람이 자기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하는 그 리념이 있을 때 그것은 사랑을 지키는 춘향의 절개와도 같은 행복이라고 생각됩니다.
선생님, 목숨과도 바꾸어야 하는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의와 진리이겠지요. 그것을 깨닫지 못한 이 어리석은 소녀가 그것을 깨닫자고 감히 이렇게 선생님의 주소를 알아가지고 편지를 쓰는것입니다. 하지만 선생님, 지켜봐주세요. 이제부터 저는 인생의 새 출발을 하렵니다. 선생님과 같은 참인간, 참사람들이 걸으시는 그 자욱을 짚으며 한발자국 한발자국 걸어가보렵니다. 비록 단테의 《신곡》에서 나오는 지옥의 길이라 할지라도 큰맘 먹고 과감히 걸어보겠어요.
선생님, 제 편지가 선생님마음에 조금이라도 불편을 드렸다면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선생님, 환절기가 다가옵니다. 계절이 바뀌는 때가 어른들에게는 가장 위험한 때라고 하는데 겨울이 다가오는 이때 부디 감기에 류의하시여 꼬옥 건강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권미선 올림. 1982년 10월 30일.
한상수는 편지를 손에 든채 눈을 꾹 감았다. 편지의 글줄이 미선의 고운 목소리처럼 귀전에 울려오는것만 같았다.
권미선! 스물세살의 녀대학생, 아직 한번도 본적이 없는 얼굴이다. 목소리 역시 들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정이란것은 일부러 맺어지겠다고 해서 되는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음과 뜻이 통하면 생면부지라 해도 순간에 이어지고 끊을수 없는것으로 튼튼해지는것이다.
시대는 변했다. 권미선이와 같은 화분의 봉선화들이 모진 광풍을 맞받아 일어서고있는것이다.
(그때의 옥야는 이 권미선이와 달랐지.…)
그랬었다. 그 나이때 옥야는 세상을 너무도 모르는 고무풍선에 불과했었다.
한상수는 편지를 보내준 권미선이가 고마왔다. 그 솔직한 마음이 가슴을 울렸다. 그에게 힘이 되는 편지를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감옥안에서 쓴 편지가 본인의 손에 언제 가닿겠는지…
그후에도 권미선의 편지는 계속되였다. 이제는 편지마다에서 그 숨결과 맥박이 그대로 느껴지는듯싶었다.
처음의 편지는 처녀의 고충과 고심에 대한 조언을 바란것이라면 지금에 와서는 감옥안의 고독을 풀어주려는 갸륵한 마음이 실리여있었다. 거리와 대학가에서 일어나는 가지가지의 이야기는 물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던 첫사랑의 비밀까지 아기자기하게 터놓았다.
은옥이와 일국이 그리고 그의 동무들이 써보낸 편지들도 드문했다. 편지의 내용은 한결같이 감옥에서 고생하는 한상수에 대한 동정과 신뢰, 존경과 고무였다. 마지막에는 자기 인생의 길잡이로 따르겠다는 결의까지 있었다. 한상수는 가슴이 뿌듯해졌다. 놈들이 제아무리 발광을 해도 통일애국위업을 위해 싸우는 장기수들의 의로운 투쟁소식은 감옥담장을 넘어 바깥세상으로 날아가는것이다. 이 땅은 결코 악마들만 있는 곳이 아니다. 인정의 세계, 선의 세계도 있다. 감옥안에서 발산한 고결한 빛은 부지불식간에 그 세계에 침투되고있는것이다. 그러고보면 누군가가 감옥은 혁명대학이라고 한 말이 옳은듯싶다. 그렇다. 신념과 의리는 인간을 더 아름답고 억세고 고결한 세계에 높이 올려세운다.
그것을 천만금에 비기겠는가. 삶과 죽음의 계선앞에서 인간은 자기를 나타내게 되며 한고비한고비 시련을 이겨낼 때 참다운 인간으로, 통일애국투사로 수양되는것이다.
이따금 보호소에서도 교도소와 마찬가지로 교도관들이 불시에 달려들어 감방안을 뒤지군 했다.
그날도 무엇때문인지 한상수가 있는 감방안을 샅샅이 뒤지던 교도관이 그동안 받은 편지묶음을 집어들고 《이게 뭐야?》하고 소리를 질렀다.
《보면 모르겠소. 편지요.》
한상수는 놈의 거동이 아니꼬와 마뜩지 않게 대꾸했다. 놈은 한장한장 편지봉투에 씌여진 주소를 대충 훑어보더니 《전탕 대학생계집들한테서 온것이군.》하며 바닥에 홱 뿌려던졌다. 삽시에 편지가 감방안에 하얗게 깔렸다. 한상수는 격분이 욱 치밀었다. 놈은 기광이 나서 구두발로 편지를 마구 짓밟으며 방안을 돌아쳤다.
《아!》
한상수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 어떤 고문앞에서도 몰랐던 신음소리였다. 교도관은 깜짝 놀라 한상수를 쳐다보았다.
《왜 편지를 밟는가? 이게 어떤 편지인줄 아는가?》
황급히 편지를 주어 모아드는 한상수의 눈에서 불이 펄펄 일었다.
《그래 련애편지라도 되는가? 밑씻개나 할 종이장을 가지고…》
교도관은 입가에 얄궂은 웃음을 지으며 시까스르더니 밖으로 나갔다. 한상수는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귀중한 보물처럼 편지를 챙그리였다. 이 편지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것인가. 편지마다에는 매 인간의 순결한 넋이 깃들어있는것이다. 도덕의 불모지인 이 감호소에서 편지를 짓밟은 교도관들을 욕한다는것 자체가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편지를 다시 꽁꽁 싸매놓고 한명한명 편지를 보내온 청년들의 얼굴을 제나름으로 그려보았다. 이제 그들은 이 땅에 뒤덮인 암흑을 불사르며 거세차게 일떠설것이다. 비록 몸은 철창속에 있어도 뿌린 씨앗은 무성한 숲으로 될것이다. 어느덧 그의 눈앞에는 통일의 길로 줄달음쳐나가는 새 세대의 억센 대오가 도도히 굽이치는듯 했다. 가슴속에서도 쿵쿵 심장이 박동을 울린다.
온몸에 투지와 신심이 솟구쳐오른다. 그것은 수십년간 원쑤들에게 굴하지 않고 싸워온 보람과 긍지이기도 했다.
그무렵 투쟁은 감방안에서뿐아니라 밖에서도 벌어지고있었다. 거리에서 청년학생들의 시위투쟁이 격렬해진 모양인지 그들의 함성소리와 최류탄터지는 소리가 감호소안에까지 들려왔다.
한상수가 대구에서 청주보안감호소로 이송된 그해부터 어느 한해도 빠짐없이 벌어지는 시위투쟁이였다. 올해는 그 투쟁이 더 세찬것같았다. 수감자들은 여기저기에 모여 정세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1985년에 들어와서 남조선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반미자주화와 반파쑈민주화투쟁이 그 어느때보다도 세차게 벌어져 전두환일당을 헤여날수 없는 궁지에 몰아넣고 그들의 통치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있었다. 대낮에 서울 《미국문화공보원》, 《미국상공회의소》, 서울사무소를 습격점거하고 《성조기》를 불에 태우고 미군장령차에 돌탕을 먹이기도 했다. 남조선인민들과 청년학생들이 《민족통일, 민주쟁취, 민중해방》의 구호밑에 남조선전역에서 폭풍같이 일떠서자 전두환도당은 그 무슨 《간첩단사건》을 날조하여 인민들속에 동족간의 반목과 대결의식을 불어넣는 한편 《남침위협》의 막뒤에서 새 전쟁준비책동에 매달리였다. 그러나 남조선인민들과 청년학생들은 놈들의 온갖 탄압과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경찰들과 투석전을 벌리면서 롱성과 시위투쟁을 과감히 벌리였다.
한상수는 흥분하였다. 그는 정세의 추이를 긴장하게 주시하면서 밖의 소식을 안타깝게 기다렸다.
그럴즈음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는 권미선이한테서 편지가 왔다. 편지는 두툼했다. 그의 낯익은 글씨를 보는 순간 가슴이 세차게 울렁거렸다.
한상수는 서둘러 편지를 개봉하였다.
《선생님, 저 미선입니다. 선생님 편지 잘 받았어요. 마음이 급해 인사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이렇게 란필을 올리니 리해해주세요.
오늘은 제 일생에서 가장 기쁜날중의 하나예요.
선생님, 밝은 맘으로 읽어주세요. 지금 옆에서 8살짜리 조카애가 떠들기에 조용하라고 소리쳤더니 그애는 깜짝 놀랐다고 투정질을 하는군요. 그래도 할수 없어요. 한시바삐 이 기쁜 소식을 선생님께 전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거든요.
선생님, 그새 저는 많이 바빴어요.…》
이렇게 시작된 미선의 편지는 요즘 서울에서 격렬하게 벌어지는 청년학생들의 시위투쟁에 대하여 상세하게 썼다.
《선생님, 전 사회의 한사람으로 이 사회에 대해 용납할수 없었지만 단지 분노했을뿐 그 분노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있었습니다.
며칠전 일이였어요. 저는 거리에서 울리는 청년학생들의 함성소리를 들으며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고있었어요. 퇴근시간이 되여 집으로 돌아오는데 거리는 마치 방금 폭풍이 지나간듯 스산했어요. 아스팔트우에 군데군데 흘린 피자욱, 깨여진 기와장, 팔매돌, 병사리들이 뒹굴고있었어요. 그 광경을 보니 이 대오에 함께 참가하지 못한 자책감이 가슴을 찌르더군요.
이때 누군가 나에게로 급히 달려오며 <선생님, 좀 도와주십시오.>하고 숨가쁜 소리를 하더군요. 돌아보니 옆집에 사는 대학생총각이였어요. 나는 그의 손에 이끌리여 거리의 어느 한 집으로 들어갔어요. 방안에는 머리에 붕대를 감은 여러명의 대학생들이 누워있더군요. 저는 가슴이 섬찍했어요. 그런데 한쪽에서 머리칼이 희끗희끗한 어머니 한분이 앉아 부상당한 학생에게 주사를 놓고있겠죠. 붕대도 그 어머니가 다 감아주신것 같았어요.
<지혈제가 없어요?>
어머니는 나를 쳐다보며 물었어요. 내가 의사라는것을 대뜸 알아차린 모양이예요. 나는 얼굴을 붉혔어요. 가방에 지혈제가 없었거든요.
<지혈제가 있어야겠는데 어쩌면 좋아요?>
…어머니는 안타까와 어쩔바를 몰라했어요. 대학생 하나가 얼굴이 백지장같았어요. 피를 너무 흘린 까닭이였어요. 나는 더 생각할사이 없이 밖으로 뛰여나와 내가 근무하는 병원으로 달려갔어요. 얼마간의 약을 구해가지고 다시 나타나니 어머니는 얼마나 기뻐하겠나요.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문밖을 나서니 밤이 이슥했어요. 시위때문에 전차도 마비되였는지 거리는 괴괴한 정적만이 흐르고있었어요. 더구나 밤안개가 콱 끼여 옆에서 뺨을 쳐도 모를 지경이였어요.
몸을 실실이 감도는 모스링같은 안개는 황홀하기도 했지만 또한 두려움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어느 모퉁이에서 칼을 든 괴한이 불쑥 나타나 찌를것만 같더군요. 제가 무서움에 잠겨 부들부들 떨고있노라니 어머니가 나의 손목을 잡고 태연히 걸음을 옮기며 어서 가자고 했어요. 다행히 우리는 집이 한방향에 있었어요.
<어머니, 그 대학생들과 잘 아는 사이예요?>
나는 걸음을 옮기며 혹시 아들의 친구되는 학생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이렇게 물었어요.
<아니예요. 그저 거리에 나왔다가 부상자들이 생기길래… 나두 한때는 의사였거든요.>
어머니는 조용히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어요. 저는 부지중 얼굴이 뜨거웠어요. 어머니와 나는 너무도 대조적이였으니까요. 거리에서 청년학생들이 시위를 하고있지만 저는 병원문을 박차고 나오지 못했거든요. 참말로 비겁쟁이였지요. 그러나 어머니는 늙으신 몸으로 거리에 나와 부상당한 대학생들을 자진하여 치료했던거예요. 얼마나 아름답고 돋보이는 행동이예요.
어머니는 여전히 나의 손목을 꼭 잡은채 걸음을 옮기며 다시 입을 열었어요.
<난 첫눈에 선생이 의사라는걸 알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무섭지 않아요? 시위자들을 치료했다면 당국에서 좋아하지 않겠는데…>
어머니는 나를 걱정해주더군요. 나는 처음으로 만나는 어머니에게 정이 끌리여 솔직하게 말하고싶었어요.
<좀 가슴이 떨리긴 했댔어요.>
<그랬을거예요. 나도 처음엔 가슴이 떨리여 시위가 일어나는 날에는 거리에 얼씬두 못했어요. 시위에 나갔던 아이들이 돌아가지 않을 때는 밤깊도록 가슴을 조이며 기다리기도 했지요. 그런데 이제는 나도 대학생들과 함께 이 거리에 나서고싶어요. 의사선생, 우리 힘자라는껏 통일을 위해 싸우는 젊은이들을 도와주자요. 그들이 얼마나 장해요.>
시내물처럼 잔잔하면서도 상냥하게 울리던 어머니의 어조는 점차 흥분에 넘쳐있었어요. 저도 모르게 나도 가슴이 벅차오르더군요. 정말 어머니가 장해보였어요.
<의사선생.> 어머니는 다시 이야기를 했어요.
<누군가 닭모가지를 비틀어두 새벽은 온다고 했어요. 옳은 말인것 같아요. 지금은 캄캄한 밤이지만 반드시 새벽은 와요. 우리가 그 어둠을 깨우는 려명이 되자요.>
어머니의 목소리는 절절했어요.
(어둠을 깨우는 려명이 되자!)
저는 가슴이 확 불타올랐어요. 언젠가 선생님이 저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신 말씀이 아닌가요. 그런데 이 밤 생면부지의 한 어머니에게서 그 말씀을 다시 듣게 되니 저의 심정이 어떠했겠는지 선생님도 짐작하실줄 믿어요.
<어머니, 좋은 말씀해주셔서 고마와요. 저두 그렇게 살자고 맹세했어요. 수십년간 감옥에 계시는 선생님께서 이미 저에게 그렇게 살라고 말씀했거든요.>
저는 진정으로 그 말씀을 다시 깨우쳐주는 어머니가 고마와 이렇게 말했어요. 그런데 걸음을 옮기던 어머니가 그 자리에 얼어붙은듯 서버리는게 아니겠어요. 그리고는 숨찬 목소리로 물었어요.
<이제 그 말을 누구한테 들었다구요?>
<청주보안감호소에 계시는 한상수라는 선생님이 편지로 저에게 당부하셨지요. 그분은 30년동안을 감옥살이를 하시면서…>
<아!…>
어머니는 외마디신음소리를 하시면서 나를 와락 부둥켜안았어요. 그리고는 눈물로 저의 뺨을 매닥질하면서 목메여 말했어요.
<미선아, 내가 우리 은옥아버지의 말을 듣고 고마운 너를 찾아가려고 했더니… 이렇게 만났구나!>
<어머니, 그럼 한상수선생님의?!…>
<그래. 내가 그 령감의 로친이다. 우린 끝내 한길에서 만났구나!>
<어머니!>
<미선아!>
우리는 생사를 모르던 모녀가 헤여졌다가 만난듯 서로 뜨겁게 껴안고 울었어요. 상봉의 기쁨에 못이겨 울고 보호소에 계시는 선생님생각에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고 울었어요.
어느덧 지척도 분간 못하게 휘감던 안개는 언제 사라졌는지 거리의 륜곽이 점차 희미하게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밤하늘에는 하나 둘 별들이 나돋았어요. 그 별들은 안개를 비웃듯 제빛을 발휘하느라고 온 힘을 쏟는것 같았어요.
우리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거리를 걸었어요.
<어머니, 전 감옥에 계시는 선생님의 말씀 가슴에 새기고 어둠을 깨우는 려명이 되기 위해 이 길을 끝까지 걷겠어요.>
저는 마음속으로 우러나오는 진심의 말을 했어요.
<그래요. 나는 미선이가 그 길에서 열심히 뛰고 씩씩한 모습으로, 옳은 마음으로 담차게 살기를 바래요.>
선생님, 그후에 집에 갔댔어요. 은옥언니랑 일국오빠랑 만났구요. 우린 한집안식구처럼 친해졌어요. 다음 일요일에 박영진아버님과 정창식아저씨네 집에 놀러 가기로 약속했어요.
너무도 많은 말을 해서 선생님마음 불편하잖겠는지 모르겠어요.
선생님, 선생님은 제가 사랑하고 존경하는분이십니다. 이 사실 잊지 마시고 부디 귀한몸 잘 돌봐주시기를 미선은 당부해요.…》
편지를 다 읽은 한상수는 한동안 덤덤히 앉아 봄날의 어스름이 깃드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불덩어리를 삼킨듯 가슴속에서 뜨거운것이 세차게 사품치고 두눈에 눈물의 안개가 핑 돌았다. 무엇인가 고맙고 장하다는 생각과 함께 첫 사랑을 하던 그때처럼 열렬한 애정이 북받쳐올랐다.
<아, 여보!…>
아, 얼마나 큰 아픔과 우여곡절을 겪으며 투쟁의 길에 나선 옥야인가. 시대의 가녁에서 헤매이며 통일의 걸림돌이 될번 했던 안해, 마침내 그는 남편의 뜻을 깨닫고 통일운동에 서슴없이 뛰여든것이다. 이제 그는 이 길에서 물러서지 않을것이며 자식들을 투쟁의 길에 내세울것이다. 이제는 옥야가 안해일뿐아니라 동지가 되였다. 한상수의 얼굴은 흥분과 행복감으로 하여 환히 빛났다. 아, 이제는 나도 남편구실을 했는가. 이것이 삶의 보람이라는 걸가, 투쟁의 긍지이라는걸가. 다시 심장이 쿵쿵 고동쳤다. 나라와 민족의 아들로서 억척같은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조국통일을 위해 끝까지 싸우리라 굳은 맹세를 다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