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 회)

2

 

요즈음 백근식은 무서운 꿈에 시달렸다. 잠에서 깨여난 그는 자기에 대한 한상수의 뿌리깊은 원한을 두고 생각에 잠기군 했다. 탈옥을 시도했다는 리유로 만기복역이 끝난 한상수의 형기를 연장시키자는 제기를 자기가 했다는것을 한상수는 언젠가는 알게 될것이다. 한상수는 반드시 보복을 할것이다. 설사 그가 감옥에서 죽는다해도 그의 처와 자식들은 자기를 가만두지 않을것이다.

백근식은 이러한 불안속에 어두운 운명이 입을 쩍 벌리고 자기를 노려보고있는것만 같아 저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럴 때마다 《하지만 나는 한상수를 기어이 전향시키고야말테다.》하고 으스러지게 주먹을 꽉 틀어잡군 했다. 그러면 마음이 좀 가라앉긴 했지만 여전히 불안초조한 심정을 감출수 없었다. 그래도 자기의 목줄을 거머쥐고 으르렁거리던 방치백이 늙어서 은퇴를 한것만은 다행이였다. 그러나 이리를 피하니 호랑이가 나선다고 우에 앉은자들은 하나같이 백근식을 못살게 굴었다. 백근식은 그 등쌀에 못이겨 이따금 돈도 찔러주고 뢰물도 꿍져보내주었으나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새로 올라앉은 《법무부》차장은 별명이 《당일에 한함》이라더니 먹을 때뿐이다. 당국에서도 비전향장기수들때문에 골머리를 앓는지 본인당자가 버티면 가족친척들이 대신 전향서에 손도장을 찍어도 된다는 지령까지 내려보냈다. 지어 그전날 교도소장이 펄쩍 뛰던 정치범들의 《사회참관》도 마음대로 할수 있게 되였다.

전향공작의 창구가 훨씬 넓어진것이다.

드디여 백근식의 머리우에 뒤덮여있던 먹장구름속에서 우뢰가 울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부른다는 련락이 온것이다. 백근식의 가슴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방치백이 은퇴한 후 새로 상전이 된 교도소 담당차장은 전향문제때문에 교무과장들을 솥안에 넣은 콩알처럼 들볶아댔다. 이자는 걸핏하면 교무과장들을 파면시키겠다고 을러메군 했다.

전향실적이 낮은 백근식은 언제나 전전긍긍하며 살아왔다. 그러는사이에 어느덧 환갑에 이르렀다. 륙십갑자가 한바퀴 돌아온다고 하여 일명 회갑이라고 하는 나이에 이르고보니 인생의 허무감과 서글픔이 갈마들었다. 옛날사람들처럼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 락향하여 향촌에 묻혀있으면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다가 그 땅에 묻히면 더 바랄것이 없지 않겠는가 하고 위안도 가져보았지만 그에게 있어서 늙마에 필요한것은 자식보다 돈이였다. 돈이 없으면 그 모든것이 허망한것이였다. 더우기 백발이 성성한 지금에 와서 염라국의 사자와도 같은 새 차장이 자기를 부르는것은 벌써부터 나쁜 조짐이였다. 그가 결코 자기의 마지막인생을 즐겁게 해줄리 만무했다.

차장의 방에 들어선 백근식은 깊숙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원로에 수고가 많았소.》

차장은 널다란 책상앞에서 비대한 몸을 약간 움직여보였다.

《차장님, 그간 몸은 별고 없었습니까?》

백근식은 마치 구면처럼 인사를 했다. 이제는 서울승진은 코집이 틀렸지만 밥탁은 유지해야 하므로 비굴한 웃음을 띄우고 차장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앉으라구.》

백근식이 여전히 조심스러운 자세로 서있자 차장은 턱짓으로 옆의 쏘파를 가리켰다.

《담배를 피우라구.》

차장은 담배까지 권한다.

그들은 말없이 담배연기만 내뿜었다.

이윽고 차장이 두터운 도수안경너머로 실눈을 짓고 백근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네 금년나이가 어떻게 되던가?》

《예?!…저…》

백근식은 당황했다. 차장이 무엇때문에 나이를 묻는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자네 나이말일세.》

차장이 반복했다.

《뭐 한일도 없이 환갑이 되여옵지요.》

백근식은 얼굴을 붉히며 어색하게 대꾸했다.

《환갑? 벌써 그렇게 되였나? 하긴 세월은 류수와 같은걸세.》

자기의 지나온 경력을 돌이켜보는지 차장의 얼굴에는 한가닥 회심의 빛이 지나갔다. 백근식은 차장이 어떤 속궁냥이 있어서 나이를 물어보는지 알수가 없었다.

《내가…》 차장이 입을 열었다.

《자네를 알게 된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나역시 환갑이 넘었구. 자네도 또한 환갑을 맞이하게 되였으니 정말 감회가 깊네그려.》

백근식은 속이 답답해났다. 이 령감이 도대체 무슨 수작을 하자는거야. 제길헐것, 변죽만 치면서… 그러거나말거나 차장은 여전히 세월타령이다.

《인생이란 살고보면 허무해, 그렇지 않은가?》

《예?!… 글쎄 그런데까지는 아직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생의 마무리를 어떻게 하는가 하는거야.》

이제야 본론이 시작되는구나. 전향수자가 작다고 주리를 틀겠지. 차장은 마치 철학가나 시인들처럼 세월이 어떻고 인생이 어떻다고 수작질하더니 불쑥 《그런데 교무과장, 자네가 대구교도소에서 전향시킨자가 몇명이나 되더라?…》 하고 살멱을 잡았다.

백근식은 그만 이마에 진땀이 솟았다. 그는 떠듬떠듬 주어섬기기 시작했다.

《가만.》 차장은 백근식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고 중도에서 무찔러버렸다.

《그러니까 우리는 자네를 믿고 정치범들을 전향시키라고 교도소 교무과장을 시켜주었더니 도리여 그들을 고스란히 먹여주고 환대하여주었구만. 한두해도 아닌 26년동안을!…》

차장의 목소리에는 가시가 돋혀있었다. 가슴이 섬찍했다. 금시에 그의 칼날같은 눈길이 몸을 휘감는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너는 환갑이 될 때까지 국가의 쌀과 공금을 축내면서 감옥의 그늘밑에 살아온 기생충에 불과한 인간이야. 환갑이 되였다고 무사히 사직서를 낼줄 알았어? 이 뻔뻔스럽고 철면피한 자식, 나는 정치범들이 있던 독방에 너를 잡아넣겠다.》

좀전의 아량과 너그러움은 언제 있었느냐는듯싶게 차장의 두눈은 갑자기 먹이를 본 야수의 눈처럼 충혈지였다. 갱핏한 몸을 앞으로 기울사하고 두손을 맞잡은채 공손히 버티고선 백근식은 그만 눈앞이 캄캄해졌다. 가슴이 활랑거리고 무릎이 떨렸다. 이마와 코등에 식은땀이 내돋았다.

《차장님, 제 이번에 내려가서…》

그는 말끝을 맺지 못했다. 이젠 차마 《전향시키겠다.》라는 말을 하기조차 끔찍했다. 그는 지금 차장이 누구에게 모를 박고 압의 도수를 높이는지 잘 알고있었다. 대구교도소에서 제일 오랜 장기수인 한상수를 두고 하는 소리다. 이젠 틀렸다. 26년동안이나 전향시키지 못했는데 하늘과 땅이 뒤집히지 않고서야 어떻게 하루이틀사이에 꺾어놓는단 말인가. 차라리 죽여버린다면 몰라두…

《왜 말을 못해!》

차장은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지는듯 앞탁을 쾅 치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 바람에 재털이가 공중제비로 나가 떨어졌다. 이 남《한》땅 교도소들과 구치소들에 저런 밥버러지가 얼마나 많은가.

저런자들을 믿고 정치범들을 전향시키자고 하니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 모양, 그 꼴이 아닌가. 안되겠다. 이러다간 내 운명도 어떻게 끝장날지 모른다. 차장의 곤두선 눈섭은 여전히 푸들푸들 떨렸다. 그는 백근식에게 30분이나 줄소나기로 욕설을 퍼붓고는 한상수의 이름을 입에 올리며 이제 어떻게 하겠느냐고 따졌다. 이제 무슨 방도가 있겠는가. 백근식은 절망에 잠겨 고개를 푹 꺾고 차장의 처사만 기다렸다. 생각하면 억울하기 그지없다. 그는 한상수를 전향시키기 위해 26년동안 할수 있는 모든것을 다했다. 그런데 차례지는것은 감옥의 공금을 축낸 죄로 한상수대신 독방에 들어가라는것이였다. 당장 까무라칠것만 같았다.

《어찌겠어. 방도가 있는가?》

차장이 재차 따졌다.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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