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0 회)
제 5 장
1
백근식은 뜻밖에 선선히 응하며 앞장서 걸음을 옮겼다. 곁에 있던 한을손이 한상수의 등을 밀었다.
《앉게.》
백근식은 사뭇 친절하게 걸상을 권했다. 한상수는 걸상에 천천히 앉으며 입을 꾹 다물고 놈을 주시했다. 백근식은 한상수의 시선을 피했다. 아무리 후안무치한자들이라 하더라도 20년동안이나 족쇄를 채워 고통을 주고도 그것이 모자라 또다시 감옥에 처넣겠다는 리유가 당당하지 못하기때문일것이다.
《우린 당신이 받았던 형이 만기되여 내놓기는 싫어도 어쩔수 없었는데 방금전에 <법무부>에서 출소정지령이 내렸어.》
《?》
《리해가 안될테지. 당신은 <탈옥미수죄>로 재기소되여 형기가 연장되였소.》
백근식은 상대방의 얼굴에서 그 어떤 미세한 반응이라도 찾을듯 예리하게 살폈다.
《탈옥미수죄?》
한상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생각 안나? 런던경기인지 뭔지 할 때에 감방문을 들부시다 못해 교도관이 문을 열려고 하자 힘내기로 밀어제끼며 복도로 뛰여나오던 일을!…》
《…》
그것은 사실이였다. 런던경기때 조선이 우승후보팀인 이딸리아를 이기고 8강자팀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도 격동되여 감방복도로 뛰여나와 조선만세를 소리높이 불렀던것이다. 그 일로 하여 한상수는 《탈옥미수죄》라는 어마어마한 감투를 쓰고 사흘동안이나 징벌방에서 고초를 겪었다. 이제 놈들은 그것을 구실로 한상수를 또다시 잡아둔것이다. 그야말로 앙천대소할 일이였다.
한상수의 얼굴은 분노에 이그러지고 숨결이 거칠게 오르내리였다. 당장이라도 그 유명한 발길차기로 백근식의 급소를 내찌르고싶었다. 백근식은 한상수의 표정에서 그 어떤 조짐을 느꼈던지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그는 저도 모르게 간담이 서늘해졌다. 애당초 한상수와 잘못 맞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쩔수 없는 일이였다. 이미 자기의 운명은 고삐를 놓친 수레를 타고 내리막길로 내닫고있는중이였다.
그 수레가 뒤집혀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랴.
2년전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이후 당국에서는 갑작스럽게 교도소에 《전향공작전담반》을 내오고 《생명을 꺾어도 좋으니 비전향자를 없애라.》는 지시를 하달하였다.
그리하여 인류형법사에 《한국의 사상전향테로》로 악명을 떨친 전대미문의 전향공작의 새로운 서막이 시작되였다.
공작반놈들은 《한국》의 교도소들에서는 《빨갱이》사상을 가진자가 한명도 있어서는 안된다,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빨갱이》들을 돌려세우라, 전향공작과정에 생긴 인명사고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것이 《청와대》의 《특별지령》이라고 하면서 죽든가 아니면 전향하여 살든가 두 길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공공연히 위협하였다.
낮에는 복도를 돌아치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밤에는 한명씩 불러내다 잔인한 고문을 들이댔다. 처절한 비명소리가 그칠사이가 없었고 고문으로 숨지는 사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 등 죽어가는 사람이 꼬리를 물었다. 신념을 안고 정치적생명을 고수하느냐 아니면 신념을 버리고 육체적생명을 부지하느냐 하는 판가리싸움이 벌어졌다.
밖에서는 《사회안전법》을 휘둘러 이미 만기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비전향장기수들이 재범할 우려가 있으니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는 구실로 무자비하게 체포하여 청주보안감호소로 끌어갔다.
놈들은 1972년 11월 21일 《유신헌법》을 만들어낸 후 《형사소송법》, 《형사소송특별조치법》, 《호적법》 지어 《소년법》까지 개악하였으며 1974년 1월 8일에는 《긴급조치》1, 2호라는 또 하나의 비상경계령을 선포하고 민주주의적권리와 생존의 자유를 요구하는 인민들에 대한 야수적인 폭압을 전면적으로 강화하였다.
놈들은 여러가지 파쑈적살인악법들을 만들어내는 한편 폭압기구들을 대대적으로 늘이고 남조선전역을 군사, 경찰, 정보, 특무망으로 뒤덮었으며 테로가 성행하는 생지옥으로 전변시키였다. 그러니 제놈들이 내놓은 법도 제손으로 떡주무르듯 하는것이였다. 판결을 해놓고 그 판결대로 형을 마친 사람도 비위에 거슬리면 재판도 없이 눈섭 한오리 까딱않고 더 잡아놓는것이 《법치국가》라는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였다. 이런것을 두고 무법천지라고 하는것이다.
한상수는 몸을 젖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천연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하긴 감옥안에 있으나 밖으로 나가나 우린 매일반이요. 그러니 불쌍한건 당신이요.》
한상수는 백근식을 쏘아보았다. 그의 입가에 랭소가 떠돌았다.
《왜?》
미처 리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였다.
《전향하지 않는 우리 수감자들때문에 당신의 밥통이 떨어지게 됐으니 말이요.》
백근식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긴 그렇소. 나역시 당신을 전향시킨 다음 서울로 올라가게 되였는데…》
그는 말끝을 흐리마리하고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피워물었다.
《그러니 참 야단은 야단이요. 인간이 인간아닌자들한테 질수는 없는 일이고… 만약 내가 전향을 한다면 당신보다 더 못한 놈이 되지.》
한상수는 기가 막힌듯 껄껄 웃었다.
《뭐라구? 그럼 난 뭐야?…》
백근식은 고개를 홱 돌려 한상수를 쏘아보았다.
《당신은 인간이 아니라 악마요.》
《닥쳐!》
백근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감옥이 떠나가게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엔 맥이 빠져있었다.
《부끄럽소. 내가 타민족한테 이런 일을 당한다면 그래도 지금같지는 않을게요. 그런데 명색이 조선사람이라는게… 같은 민족끼리 사상이 다르다고 20년, 30년 족쇄를 채워 감옥에 가두고 그 사상을 버리라고 강요하는것이 이 세상 동서고금 어느 력사에도 없을것이요. 력사는 오늘의 야만적행위를 빠짐없이 기록할것이며 우리의 후대들은 먼 미래에 가서도 수치스러운 오늘의 당신들을 단죄할것이요.》
한상수의 목소리는 증오와 격분으로 하여 떨렸다.
《그러니까 끝내 감옥귀신이 되겠다는건가?》
백근식은 기가 꺾인 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신은 몇번이나 말해야 알겠는가. 나는 그렇게 살고싶지 않아. 나는 김일성장군님의 뜻을 따라 통일애국에 나선 몸인데 이 길로 끝까지 가야 할것이 아닌가. 이 길에서 죽는다 해도 결코 다른 길을 걸을수 없어. 의리를 지키는 계선까지는 사람이고 의리를 버리는 순간부터 개, 돼지가 되는거야. 이 한상수는 백번 죽어도 이 의리만은 베고 죽는거야. 한마디 충고한다면 20년나마 이 한가지를 가지고 나와 겨루어왔는데 아직도 그걸 모른다면 당신은 정말 어린애만도 못해.》
한상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는 자기의 감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교도소밖은 만기복역을 마치고 출소하게 된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하여 온 가족친척들로 붐비였다. 한사람씩 철문에 나타날 때마다 그들은 눈물겨운 환성을 올리며 그를 에워쌌다.
옥야는 두손을 모두어잡고 이제나저제나 남편이 나오기를 가슴을 조이며 기다렸다. 한사람, 또 한사람… 숨이 가빠왔다. 은옥이, 일국이 그리고 박영진이와 정창식도 같은 심정이 되여 긴 목을 빼들고 조급해했다. 드디여 마지막사람이 나오고 육중한 철문이 닫기였다. 어찌된 일인가. 혹시 급병이라도 만난게 아닐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서로들 부둥켜안고 밀려가버린 텅 빈 마당엔 그들 다섯사람만이 못박힌듯 서있었다. 누구도 말을 꺼내기 저어했다. 박영진이가 교도소측에 알아보겠다고 달려갔다. 잠시후 어깨를 떨구고 나온 그는 한상수의 형기가 연장되였다고 말을 하고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 옥야는 가슴을 떠박질리우는 충격에 더 서있지 못하고 외마디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어머니!》
곁에 있던 은옥이가 어머니를 부둥켜안으며 소리쳤다. 한참만에야 두 자식의 부축임을 받으며 일어선 옥야는 옷매무시를 바로잡았다.
《됐다.》
얼굴이 해쓱해진 옥야는 박영진이와 정창식에게 고개를 숙이였다.
《안됐어요.》
《어머니, 뻐스에 오르자요.》
일국이가 어머니의 팔을 잡고 소형뻐스쪽으로 이끌었다. 옥야는 아들의 팔을 밀어놓았다.
《아니다. 아버지를 만나고 가야겠다.》
그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당국이 행하는 불법무도한 반인륜적행위이니 이제 와서 울고불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지만 남편을 만나보기라도 해야 발걸음이 떨어질것 같았다.
얼마후에 옥야는 은옥이와 일국이를 앞세우고 면회실에 나타났다. 백근식은 20년을 기다리던 안해와 자식들간의 상봉에서 그 어떤 극적인 변화가 있을수 있다고 생각하였던지 그들의 면회를 허락했다.
한상수가 면회실에 나타났을 때 옥야는 아무리 마음을 도사려 먹었지만 눈물은 걷잡을수 없이 쏟아졌다.
《아버지!》
은옥이와 일국이가 약속이나 한듯 함께 부르며 아버지앞으로 다가갔다.
《너희들이 왔구나.》
한상수는 입가에 애써 웃음을 띠우고 앞으로 내밀어진 두 자식의 손을 잡았다. 얼마만에 잡아보는 손인가. 전향의 《미끼》로 여기로 왔던 어릴 때 그 야들야들한 손을 잡아보고는 처음 만져보는 손이다. 눈물이 쿡 솟구쳤다. 살결이 눈같이 희고 몸매가 곱고 버들잎처럼 나긋나긋해보이는 예쁜 처녀가 된 은옥이와 눈길이 부리부리하고 어깨팍이 쩍 버그러진 청년이 된 일국이를 보니 한상수는 다 자랐구나 하는 대견한 생각이 들었다. 옥야가 면회와서 해마다 달라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어서 낯이 설다는 생각은 없었다. 이렇게 손을 잡고 마주서있으니 아버지와 자식간의 육친의 정이 못견디게 사무쳐왔다.
은옥이는 올해 스물세살, 의학대학을 졸업하게 되고 일국이는 대학에 입학할 준비를 한다고 한다. 얼마전에 면회왔던 옥야가 기쁨에 넘쳐 한 말이였다. 20여년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면서도 자식들을 공부시키느라 산전수전 다 겪었을 옥야의 수고가 헤아려져 절로 머리가 숙어졌다. 더구나 오늘은 석방되는 남편을 만나리란 기쁨을 안고 찾아왔던 옥야가 절망에 잠겨 돌아서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딘가 안해와 자식들앞에 죄를 지은것만 같았다.
《어떻게 된 일이예요? 부부가 살아서 생리별을 하면 마른 벼락을 친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게 됐나요?》
옥야는 손수건으로 눈굽을 문지르고나서 숨가삐 물었다.
《그렇게 됐소. 그야말로 생벼락을 맞은 셈이지. 놈들은 나를 <탈옥미수죄>에 걸어 형기를 연장했구려.》
《<탈옥미수죄>라니요?!》
옥야는 깜짝 놀라 부르짖었다.
《허허허… 이 몸으로 감옥을 어떻게 빠져나가겠소. 본심이야 뻔하지. 전향을 거부한 보복이요.》
남편은 어이가 없는듯 껄껄 웃으며 크게 놀라와하지 않았다. 옥야는 억이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가. 수인이 형기를 마치면 세상밖으로 내놓는것이 법의 본도가 아닌가. 하물며 감옥에서 20년을 살아온 사람을 또다시 붙잡아놓다니…
하긴 이놈들이야 수인이 실어증을 막으려고 감방벽에다 대고 무슨 말이라도 하면 《빨갱이》선전을 했다고 트집을 잡고 감방안에서 일어나 서성거리기만 해도 도망치려 했다는 구실을 잡아 징벌방에 가둔다니 이것이 법의 불모지가 아니고 뭐겠는가.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기가 막혔다.
《그럼 상소라도 하세요.》
옥야는 눈물어린 시선으로 남편을 쳐다보며 말했다.
《상소? 그건 쓸데없는 짓이요. 놈들의 법이야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요. 문젠 내 의리와 량심을 버려야 출소를 시키겠다는건데 20년동안 죽음앞에서도 지킨것을 어떻게 포기하겠소. 내가 만약 그것을 버리고 나간다면 이 애들은 물론 당신도 나를 받아주지 않을거요.》
한상수의 어조는 석쉼하게 울렸다. 옥야는 그제야 모든것을 깨달았다. 남편이 살아서는 결코 이 감옥에서 나올수 없다는것을 알아차렸던것이다.
온몸이 얼어들고 천길 물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것만 같았다.
《여보, 너무 상심마오. 설사 내가 이 감방에서 영원히 나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 애들이 있지 않소. 이 애들이 아버지가 조국앞에서 통일을 위해 어떻게 살며 싸웠는가 하는것을 자랑스럽게 추억한다면 나는 더없이 행복할것이요.》
옥야를 위로하는 남편의 목소리에는 신심과 락관이 어려있었다.
《알아요, 그건 저두 알아요.》
옥야는 고개를 쳐들었다. 남편을 쳐다보는 그의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한상수는 안해의 얼굴에 정찬 시선을 준채 힘있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다음 아이들에게 시선을 옮기고 한동안 애무하듯 하다가 간절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아버지로서 너희들에게 부탁한다. 량심으로 살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이 되여라. 그리고…》
한상수는 잠시 말을 끊었다. 자식들을 이윽히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근엄한 빛이 어리였다.
그는 또박또박 찍어서 말을 이었다.
《이 아버진 조국앞에, 자식들앞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여기서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굳세게 싸울것을 너희들앞에서 다짐한다.》
《아버지!》
오누이는 목메여 부르짖으며 아버지의 품에 안길듯 앞으로 다가들었다. 한상수는 흐느끼는 그들을 굽어보며 다정한 음성으로 부탁했다.
《얘들아, 이제는 너희들도 어른이 되였으니 어머니를 잘 돌봐드려야 한다.》
《알겠어요.》
일국이가 주먹으로 눈굽을 뻑 문지르며 대답했다.
《여보, 아이들 걱정은 마세요. 당신처럼… 저두 꿋꿋이 살겠어요. 밝은 날이 올 때까지 기다리겠어요.》
옥야가 초연히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젖어있었으나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슬픔의 한계를 넘어선것이다.
《고맙소.》
한상수는 안해가 한없이 돋보였다. 이제는 비바람에 흩날리는 온실의 화초가 아니였다. 광풍이 불어도 꿋꿋이 서있는 소나무처럼 굳센 의지를 가진 녀자로 되였다. 그는 안해가 참말로 아름다운 녀성임을 새삼스럽게 느끼였다. 그 아름다움은 별빛같은 눈동자나 백옥같은 살결에서 풍겨오는것이 아니였다. 그것은 20여년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며 겪은 가지가지 경난속에서 깨닫고 수양되고 체득한데서 떠올린 전혀 새로운 아름다움이였다.
옥야는 남편과 헤여질 때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 밤이 깊어 자식들이 잠든 후에야 이불속에서 소리를 죽여가며 슬피 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