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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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세상을 흔들어놓는 사건과 사변들이 끊임없이 일어나 사람들을 놀래우고 하많은 사연들을 품은 인간들의 다양한 생활이 벌어지는것과는 아랑곳없이 세월은 흘러 한상수가 감옥살이를 시작한지도 어언 12년이 지났다. 그 모진 감옥살이는 40대의 끌끌한 장년을 늙은이로 만들어놓았다. 빡빡깎은 머리에는 바늘같은 흰머리칼이 희끗희끗 보이고 손등과 얼굴에는 고문으로 생긴 상처자욱들이 로쇠에서 오는 반점처럼 진갈색을 띠고 나타났다.
요즈음은 놈들까지도 어지간히 지쳤는지 저들스스로 즘즛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더 모질고 세찬 전향바람을 예고하는 징후이기도 했다.
한상수는 소지가 가져다주는 차입물을 받았다. 안해가 아니라 박영진이가 들여보낸것이였다. 차입물은 여름옷가지와 마른음식 몇가지였다. 얼마전에 안해가 면회와서 박영진이 런던경기에 갔다고 하더니 벌써 돌아온 모양이다.
차입품을 들여다보느라니 친구의 마음이 뜨겁게 안기여왔다.
그렇게 모진 말을 해주었음에도 박영진은 오늘까지 변함없이 한상수의 뒤를 봐주고있었다. 또한 이름있는 체육감독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어떻게 해서라도 감형 아니면 석방시켜보려고 무진 애를 쓰고있는것이 고맙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한상수자신은 아직도 그를 통일애국투쟁에 이끌어주지 못하고있으니 자책이 컸다.
확실히 자기는 박영진을 대함에 있어서 감정을 앞세웠고 도량이 크지 못했다.
《자, 철남이, 친구가 보내온 차입물일세. 오늘은 배꼽이 나오도록 먹어보자구.》
한상수는 빙그레 웃으며 오철남에게 권했다. 그도 배가 고픈지라 사양없이 다가앉았다. 그들에게서 차입물은 네것내것이 따로없었다. 변하기 쉬운 빵부터 먹었다. 세상에 인생을 알려거든 배고픈 고생을 해봐야 한다고 하더니 감옥에서 배고픔은 총알보다 더 무서웠다. 이 살인적인 기아를 그들은 견디여냈다. 서로 겪어온 가지가지의 일들을 이야기하며 견디여냈고 그것마저 동이 나면 감방바닥에 그려놓은 꼬니판에다 밥알을 뭉그려서 굳힌 쪽을 가지고 꼬니를 두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면 한결 배고픔이 덜해졌다. 무엇인가 감방에서는 취미가 있어야 했다.
《선생님, 이게 뭡니까?》
오철남이가 먹던 빵을 내보였다. 한상수는 얼른 빵을 받아들고 헤쳐보았다. 빵속에서 차곡차곡 접은 종이가 나왔다. 한상수는 누가 보지 않는가 하여 시찰구로 다가가 복도를 내다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서둘러 종이장을 펼쳐보니 깨알같은 글이 씌여져있었다. 한상수는 가슴이 후두둑 뛰는것을 느꼈다. 박영진이가 써보낸 편지였다.
《선생님, 제가 감시할테니 어서 편지를 보십시오.》
오철남이 자리에서 일어나 시찰구로 다가갔다. 한상수는 서둘러 편지를 읽었다.
《…상수형, 오늘도 모진 옥고를 치르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 이미 출소한 정창식군을 통하여 지옥같은 옥살이를 하면서도 조금도 꺾이지 않고 꿋꿋이 이겨내며 오히려 밖에 있는 저에 대하여 걱정해주었다는 말을 듣고 저와 철숙이 어머니는 깊은 자책속에 밤을 지새운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상수형, 저는 이번 제8차 세계축구선수권대회가 진행되는 런던에 갔다왔습니다. 런던에서 돌아오자바람으로 상수형에게 경기소식도 알려줄겸 그렇게도 그리고 그리는 이북소식을 한시바삐 전하자고 이곳으로 달려왔으나 면회를 불허하기때문에 려관방에 앉아 이렇게 붓을 들었습니다.》
한상수는 가슴이 후둑 뛰였다. 그는 손에 편지를 든채 무릎걸음으로 뙤창쪽에 다가갔다.
《한형, 저는 이번에 런던에 가서 이북의 현우섭이를 만났댔습니다. 우리가 서울로 가기 위해 38˚선을 넘던 날, 부디 가지 말라고 만류하던 현우섭이… 이북의 축구감독이 된 그는 나의 손목을 잡고 놓을줄 몰라 하며 한형의 안부부터 물었습니다. 내가 그동안의 소식을 전하고 감옥에 있다고 하자 현우섭은 한동안 말없이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가 <우리 비수가 누구라고… 어버이수령님께서 그처럼 믿어주시는 축구선수인데…>라고 하면서 눈물이 그렁해있더군요. 그리고 다음과 같은 사연을 전해주는것이였습니다.
몇해전에 제8차 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사업을 알아보시던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런 때 우리 공화국의 <비수>가 있었으면 단단히 한몫 할수 있겠는데 참 아쉽게 되였다고 못내 섭섭해하시며 광복된 새 조선에서 첫 세계청년학생축전에 한형을 참가시키던 일을 회고하셨답니다. 은옥 어머니로 하여 선수명단에서 제명됐던 일이며 축전에서 조국의 영예를 떨친 사실을 하나하나 추억하시던 그이께서는 그 동무가 참 걸작이였다고, 그는 서울의 한복판에서 나는 대동강물을 먹으며 자란 조선의 축구선수라고 당당하게 말했다고 하시였습니다.
그러시고나서 그후에 남조선팀과 미국팀간의 경기가 있었는데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여주고 뽈차는 친구들과 애인을 공화국의 품으로 데리고 온다면서 38˚선을 넘어갔다고, 전쟁이 일어나자 손에 총을 잡고 원쑤격멸에 나선 불같은 열정을 가진 동무라고 하시면서 그동무야말로 북남유일팀의 첫 서막을 열어놓은 애국자라고 하셨답니다.》
한상수는 편지를 더 읽을수 없었다. 수령님께서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계시다니, 철없이 헤덤비며 저지른 일을 애국적소행으로 평가해주시다니!…
한상수의 두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졌다. 이 시각도 그이께서는 집떠난 자식을 잊지 않고 계신다!
뵙고싶었다. 그리운 그 품에 달려가 안기고싶었다. 언제 한번 잊어본적없는 자애로운 영상…
《수령님!》 한상수는 목메여 불렀다. 아, 내 죽어도 받아안은 이 사랑과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리라!
눈물을 닦아낸 한상수는 다시 편지에 눈길을 박았다.
《상수형, 기뻐해주십시오. 이번 제8차 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이북의 축구가 <아시아축구의 혜성>으로 나타나 세계를 뒤흔들었습니다. 이북팀은 아시아, 아프리카, 오스트랄리아의 대표로 출전하여 세계8강자팀이 참가한 준준결승경기까지 올라가 이번 세계축구선수권대회 우승후보팀인 이딸리아와의 경기에서 1 대 0으로 이겼습니다. 지금 세계는 이북팀에 대한 경탄과 찬사로 들끓고있습니다. 우리 이남축구선수들도 너무 기뻐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불렀습니다. 과연 어떻게 되여 지구상에서 청소하고 작은 나라라고 불리우던 공화국이 전쟁에서 미국을 이기고 체육에서 세상을 놀래우는 기적을 이룩하였겠습니까. 그것은 조선민족을 이끄는 위인의 령도가 있고 이북의 참다운 제도가 있기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상수는 편지를 더 읽지 못하였다. 얼마나 바라던것이냐. 조선민족이 세상을 놀래울 그날을 얼마나 기다렸더냐.
그는 주먹으로 눈굽을 닦고 다시 글줄을 더듬었다.
《…상수형, 현우섭은 또 말했습니다. <통일은 멀지 않았다. 우리는 비수가 조국의 아들답게 변함없이 싸우리라고 믿는다>하며 통일되는날 다시 만나자고, 그때 우리 <비수>와 함께 마음껏 뽈을 차자고, 통일이 될 때까지 죽지 말고 살아서…》
한상수는 또다시 마음이 격해져서 편지를 읽을수가 없었다. 《통일》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울렁인다. 그의 눈앞에는 현우섭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그는 《우섭이!》하고 친구의 이름을 목메여불렀다.
한상수는 박영진의 편지를 손에 쥔채 감방의 작은 뙤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손바닥만 하게 보이는 그 하늘은 류달리 푸르청청했다. 저 하늘 멀리에 그리운 평양이 있고 그곳에 어버이수령님께서 계신다고 생각하니 또다시 가슴이 뭉클 젖어들었다. 불현듯 두고 온 생활이 못견디게 그리웠다. 하루훈련을 끝내고 대동강반을 걸으며 전술을 토론하던 일, 그러다가도 옷을 활활 벗어던지고 대동강에 쩜벙 뛰여들어 떠들썩거리며 미역을 감던 일, 휴식일이나 명절때가 되면 모란봉잔디밭에 모여앉아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며 세계축구의 패권을 잡자고 얼마나 열정에 넘쳐 호기를 부렸던가. 더우기 세계청년학생축전에서 광복후 처음으로 축구 1등을 하고 조국에 무전을 치며 눈물을 흘리던 일이 어제런듯 삼삼히 떠오른다. 그때 어버이수령님께서 나라일에 그토록 바쁘신 가운데서도 조국의 영예를 떨치고 돌아온 축전참가자들을 환영하는 축하연회까지 마련해주시였었다. 아, 조국!… 그 품에 안겨살 때는 그 은혜로움, 그 귀중함을 다는 몰랐던 한상수였다. 돌이켜보면 광복후의 나날들은 생활의 기쁨과 즐거움이 무르익던 황금시절이였으며 참다운 인민주권의 혜택을 공기처럼 받던 나날이였다. 때로는 투정질하는 자기를 엄하게 질책도 하고 따뜻이 안아 인생의 상상봉우에 올려세워주며 애국이란 무엇인가를 깨우쳐준 어머니조국, 그 은혜를 눈에 흙이 들어간들 잊을수 있으며 단두대에 선들 그 믿음을 배신할수 있으랴.
한상수의 가슴속에는 이 순간 또다시 조국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으리라는 철석같은 각오가 자리잡았다.
편지는 계속되였다.
《… 저는 요즈음 생각이 더욱 깊어집니다. 어떻게 되여 이북의 축구가 이렇게 높이 올라섰을가. 그것은 북의 정치가 좋기때문이라는것을 나는 이제야 알게 되였습니다. 상수형의 말은 옳았습니다.
조선이 하나가 되여 김일성장군님의 정치를 받을 때만이 축구다운 축구도 할수 있고 사는 보람을 가질수 있다는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어찌하여 상수형이 자기의 청춘과 사랑과 명예를 버리고 한목숨 바쳐 싸우고있는가를…
지난날에는 제가 이 현실을 날카롭게 투시하지 못하고 행동좌표를 옳게 세우지 못한채 방황하였지만 지금은 한형이 가는 길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길을 따라 갈것입니다. 내가 가다가 못가면 자식들이 끝까지 갈것입니다.…》
한상수는 편지를 더 읽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북받쳐오르는 격정을 참을수 없었다. 그는 주먹으로 감방문을 마구 두드렸다.
한을손이 뛰여와 무슨 란동이냐고 소리를 질렀다.
《교도관 문 좀 열어주. 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리 조선팀이 8강자가 되였단 말이요.》
《그랬으면 어쨌단 말이야.》
그제야 한을손은 영문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뇌까렸다.
《교도관, 당신두 기쁘지 않소. 세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이딸리아를 이긴건 큰 사변이요. 이건 조선민족의 경사요. 이걸 다 알게 해야겠소. 어서 문을 좀 열어주!》
한상수는 체육의 세계와는 담을 쌓고있는 돌부처같은 한을손의 마음을 움직여보려고 무진 애를 쓰며 사정을 했다.
그러나 한을손은 막무가내였다.
《또 경치지 말고 진정하오. 그러다간 <탈옥미수죄>에 걸려요.》
한상수는 이놈과는 싱갱이질을 해야 필요없음을 깨달았다. 다른 수를 써야 했다.
《좋아, 그럼 날 교무과장에게 데려다 달라.》
《왜?…》
《할 말이 있다.》
《무슨 말?》
《그건 당신이 알바가 아니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