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회)

7

 

백근식은 자기 방에 앉아 담배를 꼬나물고 신문을 한장한장 훑어보고있었다. 혹시 신문에 자기의 비행이 실리지 않았나 해서였다. 담당교도관을 통해 한상수가 아이들을 내놓지 않으면 특별사동의 수감자들이 련명으로 《법무부》에 상소하고 신문에 광고하겠다고 통고한 그때부터 백근식은 은근히 신문에 주의를 돌렸다. 뭐니뭐니 해도 아이들을 유괴한 일이며 전향하지 않으면 브라질로 팔아먹겠다고 한 사실이 신문에 공개되면 큰일이다. 그렇게 되면 사회는 죽가마처럼 끓게 되고 비난의 화살이 비발치듯 할것이니 방치백이 자기를 그냥 두지 않을것이다. 결국 그는 한상수를 전향시키려다가 덜미를 잡힌 격이 되였다. 처음에 백근식은 한상수의 말을 전해듣고 네놈이 감옥안에서 어쩔셈인가 하며 형편을 두고보려다가 감옥에 찾아온 옥야와 대들이싸움을 한 후부터 생각을 달리하게 되였다. 사태가 점점 험악해질것 같았다.

하여 그는 부랴부랴 유괴하여놓았던 아이들을 졸개들을 시켜 고아원에 처넣게 했다. 후에라도 불집이 일어나면 거리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을 고아원에 데려다주었다면 될것이다.

하지만 그후에도 백근식은 속이 께름해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일은 크게 번져지지 않았다. 후에 알아보니 고아원에 들어간 한상수의 아이들은 제발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허나 불은 꺼졌지만 불씨가 남아있으니 어느때 불이 일어날지 누가 알랴.

신문들에는 상품광고따위나 자살사건을 비롯한 범죄행위들을 쓴 기사들이 얼룩덜룩 실려있었다. 그는 마음이 한시름 놓였다. 그러다가 노루 제 방귀에 놀랐다는 생각이 들자 한상수에 대한 복수심이 불붙듯 일어났다. 문제는 그의 《빨갱이》신념을 꺾고 전향을 시켜야 한다. 백근식은 이런 생각을 굴리며 신문을 뒤적이다가 어느 한 보도기사제목에 눈이 끌렸다. 제8차 세계축구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서울에서 국제경기를 한다는 소식이였다. 순간 백근식의 눈앞에 한상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연기가 피여오르는 담배가치를 손가락에 끼운채 이마를 짚고 생각을 굴려보았다. 문득 도꾜에서 대학을 다닐 때 한 친구에게서 들은 격언이 생각났다.

《개구리는 황금옥좌에 앉혀놓아도 늪으로만 뛰여든다.》

한상수 역시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수 없듯이 축구를 떠나서 살수 없는 인간이다. 어차피 그를 전향시키는 출로는 축구에 대한 유혹의 낚시를 끊임없이 던지는것이다. 열번 찍어서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고 말은 매여놓아도 뛸 생각밖에 없는 법이다. 요즈음 북측에서 또다시 북남유일팀문제를 제기하고있는것만큼 이것을 기화로 낚시를 던져보자. 그는 모름지기 이 일에 무관심하지 않을것이다. 나이가 들고 페인이 된 그가 이제 다시 경기에 나설수는 없지만 전향하면 석방하여 감독을 시켜준다고 꼬일수 있지 않은가. 아니, 그런 수로는 안된다. 전향을 안하면 제 아이들을 브라질로 팔아넘기겠다고 최후통첩을 하였을 때도 용수부동이던자이다.

백근식은 어쨌든 한상수를 감옥밖으로 끌어내여 축구구경을 시키면서 서서히 그의 마음을 움직여보는것도 필요하다는 결론을 지었다. 여기에 지금 축구감독을 하고있는 박영진을 인입할 작전을 무르익혔다.

백근식은 그 길로 교도소장을 찾아갔다. 얼굴에 기름기가 번지르르하고 둔하게 생긴 교도소장은 백근식의 말을 듣더니 펄쩍 뛰였다. 엄정독거를 시켜야 할 수감자를 밖으로 내보낸다는것은 천만번 위험하다는것이였다.

백근식은 한치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교도소장의 벽돌색상판을 경멸어린 눈길로 쳐다보았다.

《여보, 교무과장, 어리석은자는 항상 남을 가르쳐주기를 좋아하고 현명한자는 배우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당신은 알고있소?》

교도소장은 어디서 얻어들은 유식한 말을 하면서 얼굴에 심술궂은 미소를 피우며 빈정거렸다.

순간 백근식의 이마에 퍼런 피줄이 일어났다. 신경이 돋을대로 돋고 속이 뒤집힐대로 뒤집힌 그는 저울추같은 주먹으로 살이 피둥피둥 진 교도소장의 면상을 후려갈기고싶었다.

《그럼 소장님은 한상수를 전향시킬 대상에서 제외시키잔 말인가요?》

《…》

《1010번은 축구에 대한 광신자입니다. 제8차 세계축구선수권대회를 런던에서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지금 동료들에 대한 생각으로 어찌할바를 모르고있습니다. 이런 기회에 그를 체육계로 끌고다닌다면 분명 심리상태에 변화가 일어날수 있습니다.》

백근식은 할수 없이 자세를 낮추고 교도소장을 설득시키느라 애썼다.

《그래서 서유럽감독이 개코망신을 당하고 달아났소?》

교도소장은 어림없다는듯 코웃음을 쳤다.

《1010번은 선수생활까지는 못하겠지만 감독은 얼마든지 할수 있지요. 그리고 우리는 그가 선수를 하는가 감독을 하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체육에 대한 바람을 계속 불어넣어 보자는것입니다.》

《하여튼 상부에 문의하여 허락을 받은 다음 생각해봅시다.》

교도소장은 백근식의 제의를 이렇게 일축해버렸다. 그런데 《법무부》에서는 뜻밖에도 백근식의 의도대로 하라는 지령을 내려보냈다.

그리하여 백근식은 한상수의 이른바 《바깥세상구경》을 주도세밀하게 작전하게 되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절커덕소리가 나더니 먹방문이 열리고 희끄무레한 빛발속에 교도관이 나타났다.

《한선생, 이젠 그만 주무시고 <집>으로 갑시다.》

한을손의 상냥한 목소리가 울렸다. 여느때는 승냥이처럼 날뛰던 놈이 오늘은 웬일인지 제법 살뜰하기까지 하다. 한상수는 한동안 영문을 알수 없었다. 리승만정권이 무너질 때는 마음 착하고 어진 간수였다는것을 보증서달라고 빌붙던 놈이 정권이 교체되고 정치범들에 대한 폭압이 강화되자 언제 그랬느냐는듯싶게 누구보다 조폭스럽게 놀아대며 수감자들을 못살게 굴었다. 하지만 한상수에게만은 불손하게 놀지 못했다.

《자, 일어나요. 그래두 제 집이 낫지.》

한을손은 여전히 문턱에 서서 재촉을 한다.

한상수는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절뚝거리며 천천히 특별사동 9호방 자기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을손은 감방문앞에 이르러서야 한상수의 손목에 찬 수정을 풀어주었다.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한선생, 오늘저녁은 꿈을 잘 꾸세요. 선생덕에 나두 좀 서울구경 해보게.》

한을손은 한쪽 눈을 찡긋해보이며 히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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