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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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는 장마비가 줄금줄금 내리고있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철창밖에서 봄의 훈향이 실리여오는것 같더니 어느새 봄이 가고 여름이 온것이다. 감방벽에는 곰팽이가 허옇게 돋아나고 온몸에서는 진득진득한 땀발이 솟았다. 숨막히는 악취와 무더위!… 여름은 여름대로 수인들에게 고통을 준다. 최고 34℃까지 오르는 감방온도에서 심장부담을 받는 수인들은 때로 질식되기도 했다. 어떤 날은 페활량이 큰 한상수도 헐떡거리다가 환기통에 코를 박고 숨을 쉬기도 했다. 그러다가 밤이 되여야 기온이 낮아지며 그 고통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그 다음날에도 또다시 한증탕에 앉은것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헐떡거린다. 이것은 말그대로 하나의 고문이였다. 게다가 뜨물같은 짠 소금국을 먹었더니 물이 당겨서 견딜수가 없었다. 물을 달라고 요구하면 몇방울씩 주어 간을 말리였다. 전향만 하면 물을 얼마든지 주겠다고 이죽거릴 때마다 한상수는 짐승같은 놈들에 대한 분노로 온몸에서 불이 이는듯 했다.
요즈음 한상수는 아이들생각이 더 났다. 그럴 때면 정신나간 사람처럼 하루종일 감방벽에 몸을 기대인채 멍하니 앉아있군 했다. 눈앞에는 울고있는 은옥이와 일국이의 얼굴이 얼른거리고 아버지를 부르는 아이들의 애절한 목소리가 귀전을 그냥 때린다. 그것은 고문을 당하는것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언젠가 백근식은 한상수에게 너도 인간이냐고 소리친적이 있었다. 그렇다. 나도 인간이다. 피가 있고 살이 있고 열이 있는 인간이다. 심장은 돌덩어리가 아니다. 나 역시 자식을 귀중히 여기는 아버지다. 아이들의 소식을 모르니 더더욱 피가 마르는것 같았다.
아이들을 만나고 감방으로 돌아온 그날 한상수는 오철남에게 모든 사연을 이야기했다. 분노한 오철남은 즉시에 좌우감방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타전했다.
《감옥측은 한상수동지를 전향시키기 위해 두 아이를 유혹하여 아버지와 상봉시켰다. 전향하지 않는 경우 아이들을 브라질로 팔아넘길 흉계를 꾸미고있다. 누구든지 모든 가능성을 다하여 면회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사회의 여론을 환기시키기 바란다. 급히 이 사실을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 183번지에 살고있는 정창식씨에게 알려달라.》
특별사동의 모든 감방에 즉시 이 사실이 전달되여 수감자들의 격분을 불러일으켰다. 곧 놈들의 흉계를 파탄시키기 위한 련대투쟁이 조직되고 한상수에 대한 동정타전이 날아왔다. 한상수는 가슴이 뻐근하였다. 동지들이 고마왔다.
《선생님, 너무 상심마십시오. 놈들은 은옥이와 일국이를 팔아먹지 못합니다.》
오철남은 부리부리한 눈길로 한상수를 쳐다보며 안심시켰다.
《!》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인간이 아닌 악귀같은 놈들이 무슨 짓인들 못하랴. 한상수는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스럽기 그지없었다.
《놈들도 아이들이 감옥에 와서 아버지가 전향하지 않으면 브라질로 팔려간다는것을 공개한걸 알고있는것만큼 제 손으로 제 무덤을 파지는 않을것입니다. 그러니 교무과장놈에게 미리 침을 놓읍시다.》
오철남은 뜻밖에도 론리가 명백한 기지있는 청년이였다. 한상수는 오철남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사회여론이 터지기전에 아이들을 처리한다면 큰 일이였다.
다음날 아침 한상수는 담당교도관인 한을손을 불렀다.
《왜 그래?》
한을손은 어정어정 다가와 시찰구에 낯짝을 대고 흥심없이 물었다.
《나를 교무과장에게 안내하라.》
한상수는 나직하면서도 날카롭게 말했다.
《교무과장?…》
한을손은 이렇게 반문하며 잠시 생각을 굴리는듯 했다. 한상수의 표정에서 심상치 않은 조짐을 느꼈는지 《왜?…》하고 되물었다.
《교무과장에게 할 말이 있다. 여러말 말고 빨리 문을 열어.》
한상수의 목소리는 위압적이였다. 한을손은 무엇인가 뒤가 켕기는지 주저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지금 과장님은 안계시는데 혹시 내가 전달하면 안되겠나?》
《좋아, 그럼 당신이 교무과장에게 직접 말하라. 우리 아이들을 당장 내놓지 않으면 특별사동수감자들의 련명으로 <법무부>에 상소하며 신문을 통해 사회에 공개하겠다구. 우린 이미 보도매체와 인권단체에 통보했으니 모가지가 무사하려면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라구 해.》
한상수는 놈에게 엄한 소리로 으름장을 놓았다.
한을손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스쳤다. 그러나 놈은 자신을 수습하고 《무슨 날벼락맞을 소리를 하는거야. 우린 청백해. 어디서 그따위 소리를 주어듣고… 》하고 뇌까리며 허둥지둥 자리를 피했다. 그런 일이 있은지 며칠이 지났으나 아직 아무 소리가 없었다.
백근식이도 조용하고 면회자들도 나타나지 않았다.
한상수는 안해가 없는것이 답답했다. 아이들의 말에 의하면 어머니가 미국에 갔다고 한다. 미국으로 함께 이주하자는 아버지의 강요를 뿌리치고 서울에 남아있던 그가 아이들을 남의 집에 맡기고 떠난데는 무엇인가 절박한 용무가 있었던것같다.
그가 살붙이들을 남의 집에 맡겨놓고 머나먼 타향으로 떠날 때 눈물인들 얼마나 흘렸겠는가.
그는 불시에 안해에 대한 련민의 정이 솟구쳤다.
근래에 와서 박영진이와 정창식이도 보고싶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한번도 나타나지 않는다.
한상수는 가족이 아닌 사람은 면회를 할수 없고 설사 면회를 하는 경우에는 전향공작에 나서겠다는 서약을 해야 한다는것을 모르고있었다.
더우기 백근식은 한상수에 대한 면회를 일체 불허하였다. 자칫 잘못하면 아이들에 대한 저들의 모략이 들장나 어떤 화단을 일으킬지 모를 일이였기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