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회)

4

 

《1010번 면회!》

소지가 와서 감방안이 들썩하게 소리쳤다.

《누가 왔소?》

《아이들이 왔어요.》

《아이들이?…》

《두애예요.》

한상수는 무엇때문인지 불길한 예감부터 갈마든다.

(그럼 은옥이와 일국이가?!…)

한상수는 기쁨보다도 속이 불안했다. 여기는 아이들이 올데가 아니였다. 그 애들이 왜 왔는가? 무슨 일이 있는가. 옥야는 어디로 가고 아이들이 왔는가. 어떻게 되여 아이들이 아버지를 만나러왔는가. 제발 다른 일이 없었으면!…

한상수는 아래도리가 후들거리는것을 겨우 발을 옮겨디디며 면회실로 갔다. 유리창너머 두 아이가 오도카니 서있었다. 한 애는 몸이 날씬하고 키가 큰 처녀애였고 다른 애는 순하게 생긴 사내였다. 은옥이는 아이때 모습을 알아볼수 있었으나 일국이는 처음보는 얼굴이였다. 첫 이발이 나올 때 면회탁우에 조가비같은 발자국을 남겨놓아 이 아버지의 마음을 울렸던 아들, 한상수의 가슴은 또다시 비둘기떼가 날듯이 화드득 뛰였다.

이 애들이 왜 왔을가. 살결이 눈같이 희고 몸매가 버들잎같이 나긋나긋해보이는 딸애는 신통히 제 에미를 빼물었다. 그 애는 앞에 다가온 사람이 분명 자기 아버지인가 하여 긴 속눈섭아래 호수같이 그윽한 눈으로 경계하듯 쳐다보기만 했다. 일국이는 무서운 모양인지 슬금슬금 누나의 뒤로 숨어버린다. 아마 아버지란 사람이 자기와 어떻게 련결되여있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어느 그림책에 나오는 동굴속의 무서운 사람을 보는것처럼 두눈에는 공포까지 어렸다.

《은옥아, 일국아!…》

혈육의 정은 어쩔수 없었다. 부지중 입에서 제것같지 않은 목소리가 튀여나갔다. 아이들을 안을듯 두손을 벌리고 다가갔다. 아이들은 저도 모르게 뒤걸음을 쳤다. 유리막이가 있어 더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얘들아, 손이라도 잡아보자.》

한상수는 분도기크기만 한 구멍난 유리칸사이로 손을 내밀었다.

은옥이는 수염많고 무섭게 생긴 이 사람이 아버지가 분명한가를 다시금 확인이라도 하듯 입을 오무리고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어머니는 어디 가고 너희들만 왔느냐?》

《어머닌 미국갔는데 뭐.》

누나의 등뒤에 숨어있던 일국이가 볼부은 소리를 했다.

그때에야 한상수는 언젠가 면회왔던 옥야가 아버지한테서 편지가 왔는데 미국에 한번 다녀오겠다고 하던 말이 생각났다. 그러면 아직도 돌아오지 못했는가?…

《그럼 너희들은 어느 집에서 사느냐?》

《삼촌네집에서.》

이번에도 일국이가 중얼거렸다.

《삼촌이라니? 어느 삼촌?》

한상수는 의아한 어조로 물었다. 아이들은 대답을 못했다. 이름을 모르는 모양이였다. 그러니 안해가 누구네 집에 맡겨놓고 간것 같았다. 정신은 삼거웃처럼 혼탕되여버렸다. 도대체 이건 무슨 일인가. 그러나 아이들앞에서 그것을 내색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이 짧은 면회시간에나마 아이들과 함께 가정적분위기에 있고싶었다.

《은옥인 몇살이냐?》

한상수는 미소를 지으며 처녀애에게 물었다.

《열두살!》

아들이 제꺽 대답했다.

《일국이 넌?…》

《난 여덟살!》

《학생이겠구나.》

《1학년이예요. 난 졸업반이구.》

이번에는 은옥이가 한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들은 차츰 유리간막이앞으로 다가왔다.

자기 아버지임이 육친적으로 느껴지는 모양이다.

《공부들은 잘하느냐?》

《네.》

두 아이가 일시에 대답했다.

《용타!》

한상수는 가슴이 후더워올랐다.

《아버지!》

은옥이가 서늘한 눈길을 들어 아버지를 올려다보며 조용히 불렀다.

《왜 그러느냐?》

《엄만 미국에 잠간 갔다오겠다고 했어요. 외할아버지가 아버지때문에 편지했거든요.》

은옥은 맑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어머니를 욕하지 말라는 뜻이였다. 이젠 저애도 다 자랐다는 생각이 가슴을 저미게 했다.

《씨, 엄만 거짓말쟁이야. 빨리 오겠다고 하구선.》

일국이는 여전히 불만인듯 입을 삐죽거렸다.

《그렇게 빨리 올수 있니. 미국이 얼마나 멀다구.》

은옥이는 오히려 어머니를 두던하며 동생을 나무랬다.

《비행기타면 빨리 온다고 했어.》

둘은 또 싱갱이질이다.

《됐다 됐어. 일국이 말이 옳다.》

한상수는 또다시 가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은옥이는 좌우를 재빨리 살피고나서 무슨 긴요한 말이라도 할듯 아버지앞으로 다가오더니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버지, 내 말 좀 들어보세요. 글쎄 얼마전에 일국이와 내가 학교에 갔다와서 엄마가 왔나 보려고 집에 와서 놀고있는데 웬 아저씨 둘이 차를 타고 오지 않았겠어요. 그 아저씨들은 사탕이랑 과자랑 가지고와서 우리들에게 주면서 하는 말이 아버지가 이제 곧 감옥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겠어요. 우린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그 아저씨들이 하는 말이 아버지는 원래 큰 죄를 졌대요. 그러나 잘못했다고 쓴 종이장에 도장만 누르면 엄마랑 함께 살수 있다고 했어요.》

은옥은 어른처럼 감옥에 오게 된 사연을 사리정연하게 말했다.

《아버지, 우린 차타고 왔어요.》

일국이는 자랑이나 하듯 참견을 했다.

한상수는 가슴이 왈칵 무너지는듯 했다. 아이들이 놈들의 모략에 걸려든것이였다.

《그 다음엔 그 아저씨가 또 뭐라든?》

《그 아저씬 차를 타고 오면서… 아버지가 자기네 말대로 도장을 찍지 않으면 우린 브라질로 간다고 했어요.》

《?!…》 한상수는 그만 억이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온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놈들은 아이들까지 끌고와 전향을 강요하는것이다. 아, 천추에 용서 못할 비렬한 놈들, 부모와 자식간의 정마저도 이 악마의 소굴에서는 음모의 미끼로 되여야 하는가. 그는 피나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제 하고싶은 소리를 다 했다.

《거기 가면 서울보다 살기 좋다고 했어요.》

《갈 때는 비행기타고 간다고 했는데 뭐.》

《그래두 우린 안가겠어요.》

《도장만 찍으면 보내지 않겠다구 약속했는데 뭐.》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꿈속에서처럼 들린다. 손에 야들야들한 감촉이 왔다. 어느새 일국이가 다가와서 아버지의 손을 어루만지고있었다. 은옥이도 옆에서 눈물이 가랑가랑하여 쳐다본다.

한상수는 맥이 탁 풀려 비칠했다.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을것만 같아 정신을 가다듬으며 유리문을 꽉 그러잡았다. 무서운 노성을 터뜨려 이 땅, 이 하늘을 들부시고싶었다. 그는 눈을 꾹 감았다.

《아버지, 왜 그래요. 예?…》

은옥이가 싸늘하게 식어가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일국이도 겁에 질려 눈이 커졌다.

《일없다. 갑자기 머리가 아파서 그랬다.》

숨쉬기가 점점 가빠졌다. 놈들은 자기가 이러기를 바라고있다. 고통과 괴로움에 몸부림치다가 그것을 이기지 못해 전향서에 도장을 찍게 하려고 하고있다. 사람들, 아니 부모와 자식간의 끊을수 없는 애정을 가지고 투전을 하고있다. 그러다가 놈들은 아이들을 머나먼 이국땅으로 팔아버리려고 한다. 그 애들은 그곳에서 배고픔과 병마에 시달리다가 이 아버지를 원망하며 죽어버리길 바라고 아버지는 그 자식들을 생각하며 피가 말라 죽기를 원한다. 한상수는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놈들이 이처럼 잔혹하고 악착스러울줄은 몰랐다.

《아버지!》

은옥이가 아버지의 고통을 알아차리기라도 한듯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이 그러는데 브라질로 가면 죽는대요. 저는 책에서 봤어요. 코브라라는 독뱀도 있고 사람을 통채로 삼키는 악어도 있대요.》

《아버지, 나두 가기 싫어. 무서워!》

일국이가 금시 울음이라도 터뜨릴듯 입술을 씰룩거렸다. 그 애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날창이 되여 가슴을 쿡쿡 찌른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주저없이 주어섬긴다.

《아버지, 아버지는 뭘 잘못했나요?》

은옥이가 눈물어린 목소리로 묻는다.

《아버진 잘못한게 없다.》

《그런데 그런 옷이랑 입구 왜 여기에 있나?》

이번에는 일국이가 입이 삐죽해서 두덜거렸다.

아, 이 어린것들에게 어떻게 무슨 말로 대답해줄수 있으랴.

《아버지.》 은옥이가 또다시 아버지를 부른다.

《오냐.》

《아버진 정말 잘못한게 없지요?》

《그럼. 어머니에게 물어보렴. 아버지가 왜 여기에 있는가를…》

《그런데 엄만 왜 아버지말만 꺼내면 우실가요?》

은옥이는 흑진주같은 까만 눈망울을 반짝이며 또 묻는다. 또다시 가슴이 얼얼해온다. 안해는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어째서 감옥에 있는가를 아직은 말하지 못할것이다. 《아버지가 불쌍해서 그랬겠지. 그러나 좀 더 있으면 나아질게다.》

한상수는 아이들을 안심시키려고 흔연스레 말했다.

《그럼 아버지, 종이장에 손도장을 찍어주세요. 그까짓 뭐라고 못찍겠나요. 손도장 찍어주고 엄마랑 함께 살자요. 예?》

은옥이가 애원한다.

《아버지, 여기 도장있어.》

누나의 옆에서 듣기만 하던 일국이가 아래주머니에서 나무도장을 꺼내여 유리구멍에 나와있는 아버지의 손에 쥐여주었다. 한상수는 얼결에 그것을 잡았다. 일국이는 무슨 장한 일이라도 한듯 씩 웃었다.

《너 그 도장 어디서 났니?》

은옥이의 놀란 눈길이 동생을 쏘아본다.

《그 아저씨가 우리 집 마당에서 말할 때 집에 들어가 농짝 빼람에서 꺼냈는데 뭐.》

일국은 금시 시무룩해서 누나의 눈치를 슬슬 살피는것이였다.

《누가 너보고 이걸 가져오라고 했니?》

은옥은 동생을 맵짜게 다몰아댔다. 잘하자고 한 노릇이 누나한테 된 욕을 먹게 된 일국이는 고개를 푹 떨구어버렸다.

도장을 쥔 한상수의 손은 중풍이라도 만난것처럼 후들후들 떨렸다. 모름지기 일국이는 이 목도장만 있으면 아버지가 감옥에서 놓여나올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놈들은 이렇게 천진란만한 어린것들까지 자기의 전향을 위해 리용하고있는것이다. 한상수의 가슴은 또다시 놈들에 대한 격분으로 끓어번졌다. 그는 손안에 든 목도장을 꽉 그러쥐고 허공을 쳐다보았다.

《아버지, 찍지요?》

은옥의 간절한 목소리가 꿈속에서처럼 아슴푸레 들려온다.

《…》

한상수는 입을 꽉 다물고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만약 입을 열면 아이들의 순진한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대답할것만 같았다. 그는 아이들의 얼굴을 용기를 가다듬고 마주보았다. 두 아이의 애절한 눈길이 가슴을 사정없이 찌른다.

그는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냈다. 그것은 그대로 고문이였다. 아니 생살을 저며내는것보다 더 괴로운 고문이였다.

얘들아, 너희들은 이 아버지가 종이장에 도장을 누르는것을 왜 그리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줄 모를게다.

전향서에 도장을 찍는것은 순간이면 된다. 그러나 수년세월 이 아버지가 그것을 부정하며 온갖 고초를 겪는것을 너희들은 다 모를게다. 내가 거기에 도장을 찍는것은 조국을 배반한다는 공개적인 선언이다. 나라가 둘이 되던 셋이 되던 오직 일신의 안일과 향락만을 추구하겠다는 반역의 증거이다.

내가 만약 그 종이장에 도장이나 지장을 찍는다면 아버지는 살아있어도 죽은 목숨과 같고 이 땅에서 머리를 들고 살아갈수 없게 된다. 아버지는 남의 물건을 다친것도 없고 누구를 때린적도 없다. 다만 하나된 조국을 위해서 미국놈들을 몰아내기 위해 싸웠을뿐이다. 이것이 곧 《죄》로 되였다. 놈들은 이제 너희들마저 남의 나라로 팔아먹으려 하고있다. 너희들을 제물로 삼아 이 아버지를 짐승만도 못한 변절자로 만들려고 하고있다. 아버지는 죽어도 그렇게는 못한다. 비록 철창속에 갇힌 몸이지만 아버지는 사람답게 살다가 죽을것이다. 그러나 이 마음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납득시킬수 있으랴. 한상수는 참으로 괴로왔다. 불행하게도 감옥에 찾아온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지는 못할망정 실망을 주게 되였으니 이 철없는것들이 얼마나 아버지를 원망하랴.

한상수는 뼈만 남은 메마른 손으로 유리막앞에 가까이 다가선 일국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코마루가 오똑하고 입귀가 야무지게 맺힌 일국은 눈을 아래로 깐채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있었다. 문득 언제인가 옥야가 면회와서 한 말이 떠올랐다.

동네아이들과 마당가에서 딱지치기를 하며 놀던 일국이가 옆집아이를 때리여 코피를 터뜨렸다는것이였다.

사연인즉 아이들이 놀다가 제 아버지에 대한 타령이 나왔는데 옆집에 사는 같은 또래의 아이가 불쑥 일국에게 《너의 아버지 이마에 뿔났지?》하고 빈정거렸다. 동네아이들이 까르르 웃어댔다.

《뭐, 우리 아버지가 뿔났다구?》

일국이는 모욕감에 두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빨갱이>들은 이마에 뿔났다구 했어.》

일국이가 사납게 나오는 바람에 그애는 기가 죽어 중얼거렸다.

《이 새끼야, 너 우리 아버지 이마에 뿔난것 봤니?》

《못봤어. 감옥에 간걸 어떻게 보니.》

《바보새끼야, 그런데 왜 우리 아버지 이마에 뿔났다고 했어. 사람이 어떻게 이마에 뿔이 날수 있니. 너 알지도 못하면서… 맞아보간.》

일국은 주먹으로 그애의 코등을 세차게 쳤다. 금시 그 애의 코에서 피가 줄줄이 흘러나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옥야는 일국이를 세워놓고 동무를 때렸으니 찾아가서 잘못했다고 빌라고 했다. 그러나 일국은 끝내 빌지 않았다는것이였다.…

한상수는 지금 눈앞에 있는 아들이 기특한 생각이 들어 《일국아, 너 얼마전에 옆집 아이를 때려 코피를 터뜨렸다는게 사실이냐?》하고 다정히 물었다.

일국이는 고개를 들어 아버지를 얼핏 쳐다보았다. 아버지가 어떻게 그 일을 아는가 하는 눈치였다.

《길남이 그 새끼, 악나게 노니까 때렸죠 뭐. 그런데두 엄만 내가 잘못했다구 용서를 빌라는거예요.》

일국은 불만에 차서 투덜거렸다.

《그래 빌었느냐?》

한상수가 대견스러워 넌지시 물었다.

《빌긴 왜 빌어요. 잘못하지두 않았는데.》

일국은 어처구니가 없다는듯 아버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것 봐라. 아버지도 너처럼 잘못한게 없다. 잘못한게 없는데 어떻게 잘못했다고 손도장을 찍겠느냐.》

《그런데 어째서 아버진 감옥에 있나요?》

지금껏 잠자코있던 은옥이가 오돌차게 물었다.

《그건 너희들이 큰 다음에 알게 될게다.》

한상수는 두 아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아버지, 그럼 우린 어떡해요?》

은옥이가 눈굽에 이슬을 담고 또다시 안타깝게 물었다.

《!…》

한상수는 말문이 막혔다. 할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한상수는 아이들의 손을 천천히 놓았다.

《아버지, 우린 브라질 안갈래. 아버지와 함께 살래.》

일국이가 몸을 흔들며 떼를 쓴다.

아, 이거야 사람의 정신을 뽑아버리는 일이지 뭐란 말인가. 그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아이들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심장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것만 같다. 무슨 말인가 하여 아이들을 달래여야 했으나 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눈물이 쿡 솟구쳤다. 그냥 있으면 아이들앞에서 목놓아울것만 같았다. 그는 더 견딜수가 없어 몸을 돌리였다.

《아버지, 그냥 가면 우린 어떡해요.》

아버지의 거동을 눈여겨보던 은옥이가 놀란 소리를 질렀다. 입이 얼어붙은듯 도무지 대답을 할수가 없었다.

《아버지, 가지마!》

일국이가 쿨쩍거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찢겨진 생살에 소금을 뿌리는듯 쓰리고 아팠다. 그는 눈을 감은채 발걸음을 떼였다.

《아버지!―》

두 아이가 일시에 소리쳤다. 그 애절한 부르짖음이 화살처럼 날아와 가슴에 박혔다.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숨이 콱 막혀왔다. 온몸이 쇠돌에 눌리는듯 했다. 걸을수도 돌아설수도 없었다.

(얘들아! 잘 가거라. 죽지 않으면… 다시 만나자!)

가슴이 터져나가는것만 같았다. 그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술을 과하게 마신것처럼 걸음이 잘되지 않는다. 등뒤에서 아버지를 찾는 아이들의 처절한 부름이 그냥 귀전을 때리며 따라왔다.

한상수는 어떻게 감방으로 돌아왔는지 몰랐다. 교도관이 열어주는 문안으로 발을 옮겨놓는 순간 그는 허물어지듯 쓰러져버렸다. 오철남이 깜짝 놀라 웬일인가고 물었으나 그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한동안 실신한듯 누워있노라니 점점 정신이 맑아졌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손가락같은 나무도장이 쥐여져있었다. 일국이가 전향문에 찍으라고 주머니에서 꺼내여 아버지의 손에 쥐여준 도장이였다. 한상수가 서울에 와서 《태백》의 축구선수로 첫월급을 타던 날 안해가 도장방에서 새겨온것이였다. 이 도장을 전향문에 찍고 어머니와 함께 살자고 어린것이 손에 쥐여주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은 또다시 란도질을 당하는듯 했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뜨거운 피가 터져나가는듯 했다. 이 야만들을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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