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 회)

3

 

백근식은 담배를 꼬나물고 창밖에 시선을 보낸채 생각에 골몰하고있었다. 그의 매끈한 얼굴에는 피로가 잔뜩 어렸다. 한상수때문에 골머리가 아팠다. 처음에는 뽈이나 차던 단순한 녀석이기때문에 쉽게 돌아설줄 알았다. 그래서 고문도 하지 않고 점잖게 대하면서 안해가 밀고자라는것을 대주기도 하고 삼성그룹산하회사사장도 만나게 하고 지어 서유럽의 축구감독까지 데려다가 유혹시켜보기도 했으나 개구리상통에다 물끼얹기였다. 어떤 때는 당장 때려죽이든가 총으로 쏴죽이고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일었으나 그렇게 할수도 없었다. 이거야말로 호미난방격이였다. 그가 《법무부》차장의 특별관심속에 있는 인간이 아니라면 벌써 결단이 났을것이다. 그는 확실히 지난날 자기가 생각했던 그런 인간이 아니였다. 그때는 축구선수로서 단순했고 어리석을 정도로 순진하기만 한 사람이였었다. 그렇게 생각한것으로 하여 벌써 피해를 톡톡히 보았다. 그는 치면 칠수록 더 강하게 맞섰다.

《빨갱이》가 되면 그렇게 강해지는가?

그 무서운 병에 걸리면 부모처자도 모르는 그런 인간으로 변한단 말인가?

백근식은 담배연기를 진하게 내뿜으며 자기와 맞다든 정치범들을 하나하나 그려보았다. 그들에게는 분명히 리해할수 없는 공통된것이 있었다.

그것은 자기 사상에 대한 완강한 믿음이였다. 또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도 서슴없이 내대는것이였다.

과연 그 사상이란것이 마약과 같은것인가.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교도소 소장이 자기 방으로 오라고 했다. 아까 교도소정문안으로 승용차가 들어오는것 같더니 우에서 누가 내려온 모양이다. 그는 무겁게 몸을 일으켰다.

(또 전향실적을 따지겠지…)

소장방에 들어서던 백근식은 그만 그자리에 굳어졌다. 새까만 양복에 검은색안경을 쓴 사람이 쏘파에 비스듬히 앉아있었다. 풀숲에서 독사를 본듯 가슴이 섬찍했다.

《자네 오래간만이군.》

빙그레 웃으며 말을 건네는 사람은 방치백이였다. 군사정권이 선후 다른 장차장들은 다 파면되였지만 여전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있는 그가 이렇게 교도소에까지 내려오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차장님, 그동안 옥체만강하셨습니까?》

재빨리 자신을 수습한 백근식은 활등처럼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덕분에 잘 있었네. 자네도 기상을 보니 두루두루 괜찮은 모양이구먼.》

《…》

백근식은 벌써부터 이마에 땀이 솟았다.

《허허… 자네 지내 긴장해지는것 같군. 그래 자네가 이곳 교도소 교무과장이 된지 얼마나 되더라?…》

《형무소로부터 계산하면 몇년됩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몇년이야?》

백근식은 방치백의 찌르는듯 한 소리에 속이 떨려났다. 톡톡히 계산을 할 잡도리였다.

《8년째됩니다.》

《정확히 8년 6개월이야. 안그래?》

방치백은 손끝으로 쏘파모서리를 다독이며 백근식의 말을 정정했다.

《그… 그렇습니다.》

《인간관계란 뭐냐 하면 호상성이야. 상하관계도 같지. 과업을 주면 집행하고 그러면 승진이든가 상을 주구. 그렇지 않으면 파면을 당하구… 자네 내 말뜻을 알겠나?》

《예, 예, 알고있습니다. 제가…》

《자네 교무과장으로서 그동안 몇놈이나 전향시켰나?》

방치백은 가소롭다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따졌다.

《한 서너명…》

《서너명? 정확히 말해. 누구? 어느 놈?…》

《저, 저…》

백근식의 이마에서는 진땀이 빠질빠질 내돋았다.

탕! 책상치는 소리가 울렸다. 백근식은 와뜰 놀라 무의식중에 한걸음 물러섰다.

《이놈아, 오늘 내가 왜 여기에 온줄 아는가?》

방치백은 손가락을 꼿꼿이 세워 백근식의 앞으로 내흔들었다.

《어떻게 했길래 미국대사관에서까지 한상수의 전향을 다그치라는 독촉을 오게 하는가 말이다.》

백근식은 너무도 놀라 고개를 들고 떼꾼해진 눈으로 방치백을 바라볼뿐 말을 못했다. 방치백은 몸을 삑 돌려 까치다리를 했다.

《지금 그의 녀편네가 미국으로 가서 제 애비와 국회의원을 추동하여 한상수를 석방하기 위해 돌아치는걸 알기나 해? 미국대사관에까지 전화를 걸어오고있어. 그 량반들이 빨리 손을 쓰라는 독촉이 불같아 내가 내려왔어.》

처음 듣는 소리다. 여기서야 그런걸 어떻게 알겠는가, 우리가 그놈의 녀편네까지 책임져야 한단 말인가.

백근식은 이마의 땀을 손수건으로 문질렀다.

《면목이 없습니다.》

《면목이 문제가 아니야. 대통령께서 아직도 량심수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얼마나 대노하신줄 아는가?》

백근식은 《대통령》소리까지 나오자 오장륙부가 졸아드는것 같았다. 그는 입이 얼어붙어 고개를 떨군채 서있었다.

《교도소장, 이젠 할수 없소. 이 사람 믿고 대구에 정치범을 두었다가는 안되겠소. 그래서 전향할 가능성이 있는자들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대전으로 이송하오. 특히 그 <비수>라는자를 빼놓지 마오. 보내준 서유럽감독을 놓쳐버린 주제에, 넌 교도과장 자격이 없어.》

백근식은 또다시 눈앞이 아찔했다. 방치백은 실패한 《제3국에로의 자유로운 이동》공작도 백근식에게 몰아부치는것이였다. 결국 백근식은 무능하기 짝이 없는 허수아비로 락인된 셈이였다. 백근식은 이 순간을 놓치면 자기 운명이 끝장나리라는 생각이 뇌리에 파고들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순간을 모면해야 한다. 백근식은 머리에 피뜩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차장님, 한가지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백근식이 용기를 내여 입을 열었다.

《뭔데?…》

《한상수 그자만은 남겨주기 바랍니다.》

《그 <비수>라는자 말인가?》

《그렇습니다.》

《무엇때문에?… 그만큼 비수에 찔려 피투성이가 되고도 정신이 안들었는가?》

방치백이 어이가 없다는듯 빈정거렸다.

《이제야 칼자루를 잡았습니다.》

《허허… 칼자루를 잡았으니 상대방을 찌르면 된단 말이지. 그런 오뉴월 잠꼬대같은 소리 하지 마오. 그자만은 자신있다고 호언장담하던 때가 언제요.》

방치백은 더욱 엄하게 따졌다.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저에게 마지막주패장이 있습니다.》

백근식은 방치백의 다리아래에 무릎을 꿇고 앉아 얼굴을 쳐들고 애원했다.

《마지막주패장이라,… 그게 뭔데?》

방치백은 어디 한번 들어보자는듯 덤덤히 앉아있는 교도소장을 건너다보았다. 백근식은 방치백이 호기심을 보이자 급급히 자기의 안을 이야기했다.

옥야가 남편때문에 미국으로 갔으니 두 아이를 남의 집에 맡기였을것이다. 그 녀자가 오기전에 아이들을 내세워 수감자의 심리를 자극시키겠다는것이다.

방치백이 잠시 생각을 굴리는듯 했다. 《부자간의 심리를 리용하겠단 말이지. <빨갱이>는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니야. 진짜 <빨갱이>는 부모처자도 모르거든. 오직 자기 사상에만 충실한 특수한 단백질로 제조되였단 말이야.》

방치백은 자기 유식을 뽐내듯이 이렇게 지껄이다가 선심을 쓰듯 다시 말을 이었다.

《좋아. 그럼 당신에게 마지막기회를 주겠소. 한번 솜씨를 발휘해보오.》

《고맙습니다. 차장님.》

백근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황송해하며 경례를 붙였다.

《그러나 교무과장, 매사에 빈틈이 없어야 하오.》

교도소장은 또 무슨 시끄러운 일이 벌어질가보아 백근식에게 미리 오금을 박았다.

《걱정마십시오. 생각이 다 있습니다.》

백근식은 의기양양해서 대답했다. 자기 방으로 돌아온 그는 곧 날파람있는 몇몇 교도관들을 모이도록 했다.

《이제부터 수감자 1010번에 대한 전향공작작전을 조직하겠소. 이건 우리의 운명과 관련되는 중대문제요.》

백근식은 이렇게 엄포를 놓고 서울로 올라가서 여사여사하라고 했다. 그리고 매사에 주의하라고 신칙하는것을 잊지 않았다. 교도관들은 황황히 물러갔다.

백근식의 두눈에는 표독한 빛이 번쩍이였다.

되돌이

Twitter로 보내기 Facebook으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네이버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