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 회)

2

 

옥야는 빈방에 홀로 앉아있었다. 방안은 썰렁했다. 친정집에 맡긴 아이들을 찾아와야겠으나 어쩐지 일어나고싶지 않았다. 그저 렬차를 타고 오면서부터 들리느니 온통 남편의 목소리뿐이였다. 면회를 갔다온 일이 꼭 꿈속에서 벌어진 일만 같았다. 어쩐지 이제는 남편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였다. 옥야는 남편을 만나기전에는 남자들과는 말 한마디 번질줄 몰랐다. 남학생들의 곁을 지날 때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평양에 수학려행을 갔을 때 자기를 위기에서 구원해준 한상수의 모습은 그의 작은 가슴에 지울수 없는 존재로 인찍혀졌다. 더우기 쓰러진 왜놈을 짓밟고 떳떳이 고개를 쳐들고 웨치던 모습은 그 누구도 대비하지 못할 거인의 모습을 그려보게 했다. 처음에는 생명의 은인으로 존경하던 마음이 급기야 막을수 없는 사랑으로 번져졌다. 그 사랑은 오늘도 변함이 없었다. 한번 다진 맹세를 변치 않는 바로 여기에 남편의 참모습이 있고 생의 전부가 있는것이 아닐가. 사랑에서도 축구에서도 통일을 위한 운동에서도… 그러니 자기가 품고있던 가정의 행복에 대한 생각들이 어떻게 먹어들수 있겠는가.

옥야는 부지중 한숨이 쏟아졌다. 한두해도 아닌 몇십년이란 세월을 옥살이로 보낸다는것은 너무도 억울하고 기가 막히는 노릇이 아닐수 없다. 언제 어떻게 될지. 수감자들의 목숨을 노리는 위험이 항시적으로 따르는 곳에서 어떻게 래일을 담보하며 살아간담…

언젠가 옥야가 면회를 갔을 때 면회실에 나타난 남편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피멍이 든 얼굴, 뼈만 남은 손목, 게다가 남편은 말을 못했다. 그는 손짓으로 단식투쟁을 하다가 교도관들의 강제급식에 의해 후두를 다쳤다고 했다. 그래도 남편은 변함없는 마음을 담아 옥야의 두손을 감싸쥐고 어루만졌다. 옥야는 남편에게 손을 맡긴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남편은 옥야의 손바닥을 펴고 자기의 손가락으로 한자두자 글을 썼다.

《나는… 굴하지… 않을것이요!》

옥야는 손바닥에 씌여지는 글을 읽으며 오열을 씹었다. 남편은 미소를 짓고 울지 말라고 옥야의 손을 말없이 흔들었다. 그랬던 남편이였다. 그런 남편에게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밖에서 문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옷매무시를 바로 하고 뜨락으로 나가 대문을 여니 겉옷을 팔에 걸친 정창식이 미소를 머금고 서있었다. 처음으로 감옥에 있는 남편의 소식을 알려준 고마운 사람이였다.

《계셨군요.》

《들어가시자요.》

옥야는 방안으로 안내했다.

《아니, 여기 마루가 좋습니다.》

정창식은 토방마루에 걸터앉았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축간 옥야의 얼굴에서 심상치 않은 기색을 읽은 정창식은 집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은옥 아버지한테 갔다오는 길이예요.》

《그래요? 선생님 몸은 어떻습니까. 앓지 않습니까?》

옥야는 남편을 극진히 존경하는 그에게 모든것을 말하고싶었다. 옥야는 가정사정이며 남편을 만나던 일까지 모두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난 정창식은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가 움쭉 일어섰다.

《사모님, 이렇게 혼자서 빈방을 지키지 말고 거리로 나갑시다. <모나리자>다방에서 저의 처가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두분이나 재미있게 노세요. 저야 뭐…》

옥야는 어설픈 미소를 입가에 지으며 사양했다.

《그러지 마십시오. 오늘 우정 시간을 냈습니다. 아이들이 있었으면 좋았을걸. 자 갑시다.》

옥야는 사양하다가 정창식의 성의를 무시하는것 같아서 할수없이 일어섰다.

그들은 거리에 나섰다. 저녁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갔다. 정창식은 걸으면서 자기 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저의 처는 교사랍니다. 녀대학생이였던 그가 나와 한 감방에 있는 외삼촌의 옥바라지를 다닌것으로 하여 인연이 맺어졌답니다. 그의 외삼촌이 나에게 조카딸자랑을 많이 하였지요. 결국 감옥안에서 내 가슴에 사랑이 움텄다고 할수 있지요. 사람에게 있어서 사랑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인간적향취가 아닐가 하고 생각해요. 난 감옥에 있을 때 애인의 사랑이 언제나 나를 지켜보고있다는 생각에 힘을 얻기도 하고 또 그앞에 부끄럽지 않게, 떳떳하게, 량심에 어긋나지 않게 살려고 애썼지요. 그러고보면 사랑은 인간에게 있어서 지탱점이기도 하지요.》

그가 왜 그런 말을 꺼내는지 리해가 갔다. 아무리 바깥세상과 격페된 감옥이라 할지라도 사랑의 힘은 막지 못한다는 말이다. 바로 남편에 대한 나의 사랑과 믿음이 변함없기를 바라는 눈물겨운 마음이다. 다방의 아치형문이 바라보이는 한적한 곳에 이르자 정창식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사모님!》

옥야는 발끝만 보며 걷던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정창식의 의미심장한 눈빛이 자기를 지켜보고있었다. 옥야는 그가 지금 다방에 들어가기 앞서 긴요한 말을 하려 한다는것을 알았다. 어쩐지 긴장해졌다.

정창식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사모님, 전 선생님과 한 감방에 있으면서 어떻게 되여 선생님이 잡혀들어오시게 되였는지 잘 압니다.》

옥야는 흠칫했다. 온몸에 전률비슷한것이 지나갔다. 다음은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어서 이 자리를 피했으면 하는 생각뿐이였다. 그러거나말거나 정창식은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것을 알고 한상수가 밤잠을 자지 못하고 괴로와하던 일이며 사형장으로 나가면서 박우갑이 유언처럼 남긴 말도 다 해주었다.

《전 왜 선생님이 그토록 괴로와하고 사모님을 잊지 못해하는지 다는 모릅니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똑똑히 알고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김일성장군님께서 선생님과 사모님의 사랑을 알고계시기때문입니다. 선생님은 사모님을 이끌어주지 못한것으로 하여 더욱더 가슴아파했습니다.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 함께 나섰으면 더 힘이 되고 더 굳건한 사랑으로 이어지게 되고 지금같은 일도 없었을게 아닙니까. 선생님은 사모님이 이제라도 이남의 사회현실을 똑똑히 가려보고 새로운 생활속에 뛰여들기를 바라고있습니다. 우리 집에도 좀 오십시오. 곁에도 좋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창식은 웃음어린 어조로 말을 끝내고 옥야의 팔을 이끌었다. 옥야는 그의 이끌림에 따라 발을 옮기면서 정창식의 말을 음미해보았다. 면회를 갈 때마다 남편이 하던 말과 같은 소리다. 그는 다방에 들어가면서도 줄곧 한생각에만 옴해있었다.…

옥야는 정창식부부와 헤여져 아이들이 기다리는 친정집으로 돌아오면서 또다시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정창식의 말은 위기에 봉착한 옥야의 인생에 깊은 파문을 던져주었다. 한마디로 옥야가 남편의 통일성업을 이제라도 리해하고 적극 도와나서야 한다는것이였다. 그 말을 하기 위해 정창식이 자기를 우정 찾아온것이다.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자기는 아직도 남편의 뜻을 리해하지 못하고있었다. 지금껏 자기 인생에서 남편이 귀중하다는것을 알았을뿐 남편의 뜻을 받들어야 행복하다는것을 모르고있었다. 그 불찰로 하여 남편이 감옥으로 들어가게 된것이였다.

그러니 자기는 얼마나 어리석고 가련한 인간이였던가. 정창식의 안해는 처녀로서 외삼촌과 함께 옥살이를 하는 청년을 사랑하고 옥바라지를 했는데 자기는 철부지소년처럼 남편의 목에 매달려 응석을 부리다가 모진 광풍에 쓰러진 신세가 되고말았다. 옥야는 마음이 괴로왔다. 자기에 대한 혐오감으로 하여 얼굴을 들수가 없었다. 며칠후에 옥야의 친정집은 미국으로 떠났다. 영원히 부모와 함께 살줄 알았던 옥야는 리별의 슬픔에 목메여 울었다. 딸을 부둥켜안고 떨어질줄 모르던 어머니와 헤여지는 그 시각에 굳이 눈물을 안보이려고 고개를 비트는 아버지를 보니 옥야는 더욱 설음이 북받쳤다.

그렇게 헤여진 아버지가 떠난지 한달후에 편지를 보내여왔다. 사연인즉 미국회에 있는 아버지의 친구들이 남편의 석방을 도와주겠다고 하니 빨리 미국으로 오라는것이였다.

옥야는 눈앞이 번쩍 트이는것 같았다. 남편이 감옥에서 나올수만 있다면 천리든 만리든 달려갈 생각이였다.

더우기 힘이 막강한 미국이니 어쩌면 남편을 석방시킬수 있을것 같기도 했다. 또한 아버지가 고마왔다. 사위가 《빨갱이》라는것을 알게 되자 당장 감옥에 처넣으라고 호통치더니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어들게 마련인듯 미국에 가서도 석방운동을 벌리는것 같았다.

옥야는 정창식을 찾아갔다.아버지의 편지를 보이며 미국으로 떠날 의향을 말했다. 편지를 읽고나서도 한동안 묵묵히 앉아있던 정창식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미국행은 부질없는짓입니다. 그네들은 결코 도와주지 않을것입니다.》

《그래두 가보겠어요. 혹시 도와줄지 알게 뭐예요.》

옥야의 어조는 완고했다. 그는 미국에 있는 아버지친구들을 믿고싶었다.

정창식은 더 말하지 않았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래기라도 잡는 격이 되여 리성을 잃다싶이 허둥거리는 옥야를 더 만류할수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였다.

출국수속을 끝낸 옥야는 아이들을 데리고 정창식의 집을 찾아갔다.

《창식씨, 그동안 우리 애들을 돌봐주세요. 아무래도 이얘들을 놓고 가야 할가봐요.》 옥야는 눈물이 그렁해서 말했다.

《아이들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다만 미국에 가서 부모님들이나 만나보고 인차 돌아와야 합니다.》

정창식의 어조는 의미심장했다.

《알겠어요.》

열두살이 된 은옥이와 여덟살밖에 안된 철없는 일국이를 정창식에게 맡기게 된 옥야는 가슴이 쓰라려 눈물이 자꾸 솟구쳤다. 만약 남편의 신상에 불행이 없다면 부모들을 만나러가는 이 려행이 얼마나 즐거우랴. 아니 남편이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부모들이 애당초 낯설은 타향으로 떠나지도 않았을것이다. 물론 정창식의 부부가 부모된 심정으로 잘 돌봐주겠지만 남의 집에 아이들을 맡기고 가는 옥야의 마음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두 아이의 어깨를 잡고 삼촌 말 잘 듣고 공부 잘하고 쇠를 채운 집에 자주 찾아가 마당에서 놀면서 돌보아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알겠어요. 어머니. 좋은 소식 가지고 오세요.》

은옥이는 철이 얼마간 들었다. 어머니가 감옥에 있는 아버지때문에 미국으로 간다는것을 알고있는 그애는 오히려 먼길을 떠나는 어머니를 걱정해주었다.

《엄마, 빨리 갔다와야 해.》 자기도 함께 가겠다고 떼를 쓰던 일국이도 제법 큰 애처럼 선선히 떨어졌다.

《응, 엄만 인츰 온다.》

옥야는 다시금 두 아이를 껴안아주며 눈굽을 문질렀다.

다음날 그는 미국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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