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회)

제 4 장

1

 

옥야는 오래간만에 집안팎을 쓸어내고있었다. 그들이 결혼했을 때 아버지가 남산재밑에 사준 양옥집이였다.

아담하고 정갈한 보금자리였는데 남편이 없다보니 꼭 나간집 같았다. 하얀 행주치마를 가뜬히 동이고 머리수건을 쓴 옥야의 모습은 여전히 알뜰한 주부였다. 남편은 감옥살이를 해도 산 사람은 생활을 꾸려야 했다. 눈물이나 흘리며 주접에 싸여있는것이 남편이 바라는것이 아니였다. 부엌을 치우고 방안을 털어낸 다음 토방마루에 걸레질을 했다. 어느덧 그의 하얀 이마에 송골땀이 뽀얗게 맺혔다. 은옥이가 집안을 곧잘 닦아내군 했지만 이제는 초등학교 졸업반이여서 공부가 바쁜 모양이다.

옥야가 삽으로 마당의 구뎅이를 메우고 비자루질을 하는데 불쑥 어머니가 나타났다.

《뭘 하느냐?》

《집안을 좀 치우댔어요.》

옥야는 비자루를 한쪽에 세워놓고 머리수건을 벗어 몸을 활활 털며 엷은 웃음을 지었다.

《애들은 어디 갔느냐?》

어머니는 토방마루에 앉으며 집안을 둘러본다.

《은옥인 학교에 가고 일국인 나가 노는가 봐요.》

옥야는 세면기의 물에 손을 씻고 수건으로 문지른 다음 어머니의 곁에 앉았다.

《너두 이젠 늙었구나. 흰머리칼이 생기는게…》

어머니는 넙적한 손으로 딸의 머리를 쓸고 또 쓸었다.

《어머니두 참. 제 나이 몇인데 벌써 늙었다고 하세요.》

옥야는 오래간만에 시름을 털어버리고 웃었다.

《너무 마음고생을 해서 생긴가부다.》

어머니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그었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옥야의 얼굴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왜 병원에 나가지 않았느냐?》

옥야는 그 물음에 가슴이 질리였다. 차마 어머니에게 병원에서 권고사직을 당했다는 말을 할수가 없었다. 어제 퇴근때에 병원원장이 오라고 해서 그의 방으로 들어갔더니 래일부터 병원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옥야가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니 원장은 구구한 소리를 했다. 한마디로 《빨갱이》가족은 의사노릇을 할수 없다는것이였다. 옥야는 처음 그 소리를 들으며 앞이 캄캄했으나 인차 자신을 다잡았다. 의사노릇을 안하면 산 사람의 입에 거미줄을 치랴 하는 배심이 들었다. 하여 오늘은 마음놓고 집을 거두는중이였다.

그는 어머니의 물음에 대답을 못했다는 생각이 들자 《휴가를 받았어요.》하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어머니는 또다시 한숨을 쉬고 나서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가보라고 해서 왔다. 당장 출국수속을 해야 한다는데… 떠나야지?》

《떠나다니요? 어딜요?》

옥야는 처음듣는 소리처럼 되물었다.

《미국으로 가는것 말이다.》

어머니의 어조에는 어딘가 애원이 섞였다. 옥야는 조용히 한숨을 내긋고 그린듯이 앉은채 대답을 안했다. 사위의 일로 하여 심뇌하던 아버지가 얼마전부터 가산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기 나라로 귀국하는 병원원장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해갈 생각이였다. 복은 마중나가고 화는 피하랬다고 사위의 일로 해서 언제 불똥이 튈지 모른다고 타산한 아버지가 미리 선손을 쓴것이다. 아버지는 완고했다. 외동딸인 옥야를 이 살벌한 땅에 절대로 남겨둘수 없노라고 선언했다. 그것은 옥야에게 있어서 청천벽력이였다. 나서자란 이 땅을 떠나고싶지도 않거니와 더우기 남편을 감옥에 두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그러나 아버지는 고집불통이였다. 사위가 《빨갱이》로 감옥살이를 하고있는데 무슨 화를 당하자고 여기에 있겠는가. 옥야가 정 응하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결박하여 짐짝처럼 싣고 갈 잡도리였다. 옥야는 조롱에 갇힌 새의 신세가 된 자기 처지를 놓고 울었다. 떠나가면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할수도 있는 남편, 자기때문에 감옥에 갇혀 갖은 악형을 받으면서도 도리여 용서해주고 리해해준 고마운 남편이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에 혼자 떨어져있으면서 보고싶고 그리울 때마다 남편을 찾아가고싶은 마음이였다. 매일 만나지 못해도 감옥담장밖에서 저안에 남편이 있겠거니 생각하며 그이의 숨결을 느끼고 소식을 듣기만 해도 더 바랄것이 없었다. 그리고 모든 정성을 기울여 그이의 옥바라지를 해야 했다.

《일국이 아버지와 의논해 보겠어요.》

옥야는 파릿한 낯색으로 이렇게 말했다.

《의논은 무슨 의논이냐. 감옥에 갇혀있는 그 잘난 남편을 기다리다 다 늙고말겠는데.》

어머니의 목소리는 격해졌다.

《어머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나때문에 그렇게 된 사람보고…》

옥야는 어머니를 나무랬다. 마음이 서글퍼졌다. 아무리 그가 감옥에 있다해도 남편이 아닌가. 자기는 죽어도 남편앞에 지은 죄를 보상할수 없는 몸이였다.

《정 그렇다면 미국에 가서 마음이라도 안정하고 오면 어떠냐?》

어머니는 타협안을 내놓았다. 옥야는 말없이 고개만 저을뿐이였다. 어머니는 꺼지게 한숨을 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딸의 정상을 보니 더 말할 기력도 없는 모양이다.

옥야는 마루에 얼어붙은듯 앉아있었다. 마음이 심란했다. 남편도 없는데 부모들까지 미국으로 가면 황막한 들판에 홀로 내던져진 신세가 되고만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집에 얹혀서 생활을 꾸려나갔고 남편의 옥바라지도 그럭저럭 해왔다. 그런데 이제 부모들이 떠나면 남겨놓은 돈과 재산으로 얼마간 살아갈수는 있을것이다. 아니 짐짝처럼 꿍져서라도 기어이 끌고가겠다고 펄펄뛰는 아버지가 안가겠다고 끝까지 버티는 딸에게 무엇이 고와서 살아갈 밑천을 남겨놓겠는가. 물론 어머니가 아버지몰래 얼마간 놓고 갈수 있겠지만 일자리까지 쫓겨난 지금 어떻게 살아가겠는지 앞이 막막하기만 했다. 그럴수록 남편이 마음을 돌려먹으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도대체 그 전향서라는 종이장 하나가 무얼가. 어떤 죄수들은 약차한 돈을 찔러주고 지장을 찍고 감옥을 나온다지 않는가. 글쎄 그게 무어라고 그다지도 고집을 부린단 말인가. 물론 백근식이나 《법무부》차장처럼(옥야는 남편의 체포를 《법무부》차장의 배신으로 인정하고있었다.) 살아서는 안되지만 그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뽈을 차고 가정을 꾸려나가면 될게 아닌가. 그 차디찬 감방에 앉아 20년세월을 보낸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할가. 물론 남편이 그렇게 한들 장본인인 자기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아이들때문에 속수무책으로 있을수는 없었다. 어쨌든 남편을 만나야 할것 같았다.

다음날 아이들을 친정집에 맡기고 집에 쇠를 잠근 다음 옥야는 대구로 떠났다.

그는 백근식의 방에서 남편이 들어오기를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다. 꿈에서조차 보기 싫은 백근식이였지만 그리운 남편과 말이나마 길게 나누자고 놈에게 돈까지 찔러주며 부탁해야 했다.

옥야의 사정이야기를 듣던 그는 서무진네 가족이 미국으로 간다는 소리에 음험한 눈길을 내리깔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우에 놓인 돈봉투를 도로 밀어놓으며 자기가 남편을 보내주겠노라고 했다.

후렁후렁한 수인복을 입은 남편이 나타나자 옥야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부룩한 수염, 두드러진 관골, 고문에 터지고 찢긴 상처자욱… 전보다 더 못쓰게 되였다. 눈물이 쿡 솟구쳤다. 그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씻고 남편앞으로 다가섰다.

《여보!》

남편의 눈에 반가와하는 빛이 어렸다. 옥야는 헝겊으로 감싼 남편의 두손을 감싸잡으며 무릎을 꿇었다. 그 손을 얼굴에 대고 부볐다.

《그래 아이들은 잘 있소?》

《예, 앓지 않고 잘 자라요.》

목이 메여 말이 잘 나가지 않았다.

가정과 안해의 신상에 부닥친 이야기를 다 듣고난 한상수는 한동안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래 당신은 어떻게 할 작정이요?》

《전 결심을 못하겠어요. 그래서 당신을 찾아왔어요.》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제발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마음을 고쳐먹어달라고, 이렇게야 어떻게 살겠는가고, 당신없이 내가 어떻게 살며 무슨 가정의 행복이 있겠는가고 부르짖었다.

안해의 심중을 들여다본듯 한상수는 옥야의 자그마한 손등에 자기의 손을 올려놓았다.

《여보, 미안하오. 당신을 한껏 행복하게 해주자고 한 일이 이렇게 되였구만.》

옥야는 황급히 남편의 입에 손을 가져다댔다.

《아니예요. 그런게 아니예요. 저때문에, 저때문에… 제가 벌을 받을 녀자예요. 그런 말씀을 하시면 전 견디지 못해요.》

옥야의 목소리는 울음절반, 애원절반으로 범벅을 이루었다.

한상수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그건 당신잘못이 아니요. 이런 비극은 미국놈들이 우리 조국을 둘로 갈라놓았기때문이요. 또 이렇게 되는걸 바라는자들이 이 땅에서 주인행세를 하기때문이요. 나는 그것을 반대했을 따름이요. 옥야!》

한상수는 옛시절처럼 다정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당신이 가정일에 부딪겨 수고하는줄 내가 왜 모르겠소. 또 내 옥바라지도 하느라 고생하고, 그걸 생각하면 내 가슴도 터지는것 같소. 하지만 앞으로 더 큰 시련을 겪을수도 있소. 그렇다고 맥을 놓지 마오. 마음을 든든히 먹고 맞받아 헤쳐나갈 생각을 해야지. 내 옥야마음을 아오. 나를 떠나 다른데서 행복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는것을… 우리 사랑이야 그렇게 맺어진게 아니겠소.》

《여보!》

옥야는 두팔로 한상수의 목을 와락 그러안으며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이때껏 입속에서 맴돌던 말마디들이 그만 모래우에 쏟은 물처럼 잦아들었다.

그는 울었다. 동그란 어깨가 세차게 오르내렸다.

그는 지금껏 남편이 자기를 용서해준다는것 그리고 믿고있으며 여전히 사랑해준다는것을 페부로 느끼였다.

그이상 더 바랄것이 없었다. 무엇을 요구할것도 없었다. 다만 남편이 빨리 나와 함께 있었으면 하는게 소원이였다. 다른 집들처럼 아이들과 손목을 잡고 놀러도 나가고 사진도 찍고 경기장구경도 갔으면 했다.

아, 그러나 그런 날이 언제면 올가.

문이 열리며 백근식이 나타났다.

《남편을 설복하라고 이 큰 방을 내주었더니 사랑을 나누고있군.》

그는 입을 비죽이 이그러뜨리고 비양조로 시까슬렀다. 아마 엿들은 모양이다.

옥야는 남편의 가슴에서 떨어져나와 눈물을 닦았다. 걸상에 앉은 백근식은 담배를 붙여물며 그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래 상수군, 이제 서무진씨까지 미국으로 가면 어쩔셈이요. 옥야씨와 아이들은 어떻게 되겠소. 옥야씨는 상수군때문에 병원에서 쫓겨났소. 부모들의 후원을 받던 옥야씨가 이제 살아갈 일을 생각해보오. 사실 오늘 찾아온것은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가겠다는 이야기를 하자고 한것인데 차마 말이 나가지 않은 모양이요. 그래서 내가 대신 알려주는거요.》

옥야의 낯빛이 하얘졌다. 그는 백근식을 쏘아보았다. 어째서 돈도 받지 않고 이 방에서 면회를 허락했는지 그 속심을 알았던것이다. 남의 가정문제까지 저들의 목적에 리용하려는 비렬한의 속내를 다시금 깨달았다. 내가 말을 안하길 얼마나 잘했는가. 하마트면 이들과 합세해서 남편의 가슴에 못을 박을번 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쳐왔다.

옥야는 백근식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그의 입에서는 뜻밖이라고 할 정도의 말마디들이 차겁게 울려나왔다.

《그런건 상관하지 않아도 돼요. 난 이미 결심했어요.》

백근식은 그만 뒤통수를 호되게 맞은듯 멍한 표정으로 옥야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한상수는 감방으로 돌아오자 벽에 머리를 기대고앉아 눈을 감았다. 눈앞에는 옥야의 얼굴만이 꽉 차있었다.

그렇게도 어질고 눈물이 헤프던 그에게 그런 담찬것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을 하니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옥야!…》

그는 안해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보았다. 엊그제도 오철남이로 하여 깊이 자책한것이지만 오늘의 옥야모습을 보니 마냥 첫 사랑이 너울치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것만 같았다. 그저 사랑이라는 면사포속에 누이동생의 응석을 받아주듯 했을뿐이였는데 어쩌면 그리 높이 돋보이는지 몰랐다. 생활의 세파를 겪어보지 못한 녀자, 비바람 한번 맞아보지 못한 연약한 온실의 화초라고만 생각했던 옥야였다. 그러면서도 사랑했던 녀자였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박우갑의 그 유언과도 같은 말마디가 떠올랐다. 아, 내 조국을 통일한답시고 동분서주했지만 가까이에 있건, 멀리에 있건 이런 깨끗한 인간의 정을 가진 사람들이 내곁에 있다는것을 왜 몰랐던가.

그 인간의 정이 휘저어도 휘저어도 마르거나 흐릴줄 모르는 샘물처럼 영원한것임을 그는 이제야 비로소 깨닫는듯 했다. 그래서 우리 수령님께서 나와 옥야의 사랑을 두고 그처럼 뜨겁게 말씀하신것이 아닌가.

불현듯 어버이수령님의 자애로운 영상이 해님처럼 어려온다. 우리 부부를 한품에 품어주시고 믿어주신분, 우리의 사랑을 이어주시고 지켜주신분, 분렬된 조국을 두고 그리도 가슴이 아프시여 북과 남으로 갈라져있던 우리의 사랑을 통일의 상징처럼 내세워주신 어버이, 통일을 위한 이 길에 옥야부터 내세웠어야 수령님의 그 믿음에 보답하는것으로 되지 않는가.

한상수는 한줄기의 해빛이 비쳐드는 철창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앉았다. 그는 두손을 무릎우에 얹고 고개를 떨구었다.

(수령님,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조선의 뽈을 차겠다고 서울에 왔다가 아무것도 한일없이 철창속에 갇힌 몸이 되였습니다. 그러나 믿어주십시오. 저희들의 사랑을 찾아주신 그 은정을 안고 안해와 함께 통일의 원쑤들과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한상수는 고개를 들었다. 눈물에 젖은 그의 눈은 열기로 번뜩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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