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 회)

7

 

백근식은 나이가 들면서 춘매라는 녀자가 운영하는 《사꾸라꽃》음식점에 가는 일이 잦아졌다. 술과 계집은 그의 울적한 마음을 풀어주군 했다. 교태를 부리는 춘매의 흰 넙적다리를 베개삼아 베고 누워 은은한 노래소리를 듣노라면 한순간이나마 인생의 쾌락에 잠기게 되였다.

춘매는 조선이름을 딴 일본인계집이다. 사람을 홀리는 미소와 정욕에 이글거리는 눈동자, 남자를 녹여내는데 필요한 모든것을 무불통달한 춘매는 한때 일본의 무서운 깡패조직이였던 《범나비단》두목의 정부였다. 이제는 그 노릇도 싫증난 모양인지 조선으로 건너와 변성명을 하고 대구에 일본음식점을 차려놓았다.

백근식은 이 계집에게 빠져 세월가는줄 모르고있다가 방치백이 서울에서 찾는다는 바람에 정신이 펄쩍 들었다. 자기의 목줄을 쥐고있는 방치백에게 잘못 보이면 순간에 파직되고 알거지가 될것이다.

그 손탁에서 벗어나자면 돈이 있어야 했다. 리치는 뻔하지만 어디서 계속 돈이 생긴단 말인가. 수단은 오직 수인들의 목줄을 잡고 흔들어대는수밖에 없다. 남쪽에 있는 가족이나 친척중에서 돈이 많은 수인들은 령치금을 뭉테기로 들여오는데 그런것을 《특별사면》이요. 병보석이요 하며 빨아낼수 있으나 정치범들에 한에서는 그런 엄두를 낼수 없었다. 그들에게서는 돈이 아니라 사상을 뽑아내야 했다. 그것은 상금과 표창, 승진의 길이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에는 직무태만이나 무능으로 락인되여 밥통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오늘 남쪽땅에서는 도덕과 량심이 시궁창에 박힌지 오래다. 자기의 리익을 위하여 친구든, 상급이든 물어메치기도 하고 서슴없이 죽이기도 한다.

누가 상대방을 능숙하게 틀어쥐고 자기에게 유리하게 부려먹는가, 누가 더 비굴하고 아부와 아첨에 능수가 되여 승진을 하고 재부를 긁어모으는가, 바로 이것이 돈과 권력이 살판치는 이 사회의 현실이고 생존방식인것이다.

대구교도소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백근식은 머리가 복잡했다. 자기의 한생은 가느다란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듯이 언제나 아슬아슬한 위험속을 뚫고 살아온 길이였다. 지금 염라국의 사자와도 같은 방치백이 자기를 부른다는게 결코 좋은 일일것 같지 않았다. 한것은 그동안 정치범들의 전향실적이 높지 못하기때문이였다.

방치백은 뜻밖에도 백근식을 반가이 맞아주었다.

《이리 가까이 오게. 그동안 <빨갱이>들과 혈투를 하느라고 수고가 많았네.》

전향실적을 따지며 줄욕을 퍼부어댈줄 알았던 방치백의 태도에서 백근식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래 <비수>라는자는 아직 전향할 기미가 없는가?》

방치백은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예. 그 자식은 감방안에서도 축구전술을 연구한답시고 감방바닥에 경기장까지 그려놓고 중 념불외우듯 하고있습니다.》

《허허허… 축구미치광이니 할수 없네. 그래서 내 좋은 방도가 생겨 자네를 불렀네.》

방치백은 껄껄 웃으며 너그럽게 말했다.

(이건 무슨 꿍꿍이조화속인가?)

백근식은 반신반의한 눈길로 방치백을 쳐다보았다.

《지금 서울에 서유럽의 축구감독 비또리오 뽀즈라는 사람이 와있네. 그는 한국계사람인데 잠간 친척집에 온 사람이야. 그와 함께 작전을 잘 짜보라구.》

백근식은 방치백의 말이 얼른 깨도가 되지 않아 상전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그 <비수>란 놈이 축구광신자인것만큼 뽀즈가 나서서 자기 나라로 데려가겠다고 하면 미끼를 물수 있네. 절대로 <전향서>같은 소리는 하지 말구. 이제 와서 그런건 필요없어. <비수>가 응하기만 하면 돼. 그때는 우리도 할 소리가 있네. <빨갱이>는 조국도 없다, 명예와 황금을 위해 사상을 버렸다, 어때?》

백근식의 얼굴은 환해졌다. 그 지긋지긋한 전향소리가 없는것이 천상에서 자기에게 구호신을 보내주지 않았는가 할 정도로 반가왔다.

《성공하고 서울에 올라와서 함께 일해보세.》

방치백은 슬쩍 미끼를 던졌다. 백근식은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황송하여 어쩔바를 몰라했다.

《그런데 그 뽀즈라는 사람한테 사례금을 주어야 하겠지요?》

백근식은 돈걱정이 들어 이렇게 비치였다.

《물론, 그건 하나의 도덕이니까.》

두말하면 잔소리라는 뜻이였다. 백근식은 속이 께름직했다. 과연 한상수가 뽀즈가 던지는 낚시의 미끼를 물겠는가. 실패하면 백근식 자기만 손해를 톡톡히 보게 될것이다. 그러나 돈을 쓰지 않고 어떻게 거사를 하랴. 방치백의 말대로 한상수를 전향시키고 서울로 올라간다면 이 작전에 들인 돈의 몇백배를 뽑아낼 자신이 있었다.

백근식은 방치백의 말을 명안이라고 극구 추어준 다음 자리에서 물러났다. 서유럽의 축구감독 비또리오 뽀즈라는 사람이 한상수를 데리러 교도소에 온다는 상부의 련락을 받은 백근식은 교도소 소장과 함께 그와의 면담을 주도세밀하게 짰다.

비또리오 뽀즈이시여, 제발 《비수》를 데려가주소이다. 그 나라 국민으로도 좋고 미합중국 국민으로도 좋소이다.

그다음 세계의 면전에 공개할것이다. 비전향장기수 한상수는 서유럽으로 갔다고, 《빨갱이》들한테는 조국이 없다고, 이 행성이, 이 우주가 그한테는 조국이라고… 하나된 조국이란 하나의 기만이였다고.

우연이랄가, 필연이랄가 당국에서는 이 천재일후의 기회를 고스란히 백근식에게 위임하였다. 한쪽으로 생각하면 이번에는 한상수가 이의를 표하거나 반대할 근거란 있음직해보이지 않았다. 그처럼 완강히 거부하는 전향이라는 요구가 없는 《체육에로의 자유로운 이동》이 아닌가. 그것도 저네들이 아니라 제3국의 요구에 의하여 어쩔수 없이 그렇게 되는것이다. 백근식은 행운이 차례지기를 속으로 빌었다.

한을손이 또다시 감방문을 열어제끼였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벙글거리며 한상수를 나오라고 했다. 그도 웃을 때가 있다는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교도소 소장님이 친히 부르세요. 빨리요.》

한상수는 허리를 짚고 천천히 일어났다. 이놈들이 왜 또 나를 부르는가.

한을손은 한상수를 교도소 소장방까지 데려다주고 나갔다. 넓고 깨끗한 방이였다. 넓은 유리창으로 해빛이 줄줄이 흘러들고 신선한 공기가 가슴을 후련하게 열어주었다. 한쪽 구석에 놓인 원탁우에는 사치한 유리고뿌들과 고려청자기주전자가 놓여있고 창턱에는 고무나무화분이 검고 윤기도는 두터운 잎사귀를 늘어뜨리고있다.

창문과 마주쳐있는 벽쪽에는 개인용 쏘파와 길다란 쏘파가 놓여있었다.

방안에는 세사람이 앉아있었다. 교도소 소장이 자기 자리에 앉아있고 백근식이와 다른 한명은 뜻밖에도 가느다란 은테안경을 낀 외국인이였는데 쏘파에 앉아있었다. 그들은 담배를 피우며 담소를 하고있었다.

한상수는 갑자기 머리가 핑 내둘리우는것 같았다. 눈부신 해빛, 신선한 공기, 정갈한 방안, 향기로운 담배연기… 지하동굴마냥 침침한 지옥같은 교도소안에 이런 방이 있었다는것이 놀라왔다.

《한선생, 인사하시오. 이분은 서유럽에서 오신분이시오.》

몸이 좋은 교도소 소장이 쏘파에 앉아있는 외국인을 가리켰다.

한상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한순간에 수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자기가 왜 서유럽사람과 상면해야 되는지 도무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이들이 또 무슨 모략을 꾸미였다는것만은 명백했다. 그것은 그동안 몸에 배인 타성이였다.

백근식은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고 한상수를 바라보았다.

외국인은 한상수를 유심히 뜯어보더니 알릴듯말듯 고개를 숙여 례의를 표시했다.

《한선생, 앉으시오.》

교도소장이 아직도 한상수가 서있음을 알아차리고 친절히 말했다. 한상수는 옆에 있는 쏘파에 천천히 앉았다.

《에, 한선생을 오라고 한것은…》 교도소장이 틀을 차리며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서유럽에서도 유명한 <까딸로니아구락부>책임감독인 비또리오 뽀즈선생이 면담을 요구했기때문이요.》

비또리오 뽀즈?… 축구감독?… 어디선가 듣던 이름이다.

소개받은 당자가 약간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이렇게 만나니 반갑습니다.》

한상수는 그의 류창한 조선말에 다소 어안이 벙벙해졌다.

노란 머리칼에 파란 눈을 가진 뽀즈는 리해할만 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말을 이었다.

《내가 이렇게 조선말을 잘하니 놀랄만도 할것입니다. 지난날 이 나라가 일본놈들에게 통채로 먹히웠을 때 우리 할아버지들은 이 땅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였지요. 그때 남부녀대하고 고국을 떠나 유럽을 방랑하던 우리 집은 지금 내가 사는 나라의 까딸로니아에 정착하게 됐지요.》

뽀즈의 목소리는 비감에 떨렸다.

교도소 소장도 백근식도 머리를 끄덕이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조상의 뼈가 묻힌 이 땅을 잘 알았습니다. 조선을 찾자, 조선사람의 긍지를 지키자! 나는 이렇게 결심했지요. 그래서 내가 찾은 길이 체육입니다. 체육이야말로 세계만방에 자기를 나타내고 명예와 영광을 획득할 자리가 아니겠느냐, 나는 체육으로 나의 조국을 받들고 빛내이자, 이렇게 결심했지요. 그때로부터 나는 체육에 미쳐서 돌아갔습니다. 서유럽에서 까딸로니아사람이라고 하면 자존심이 강한것으로써 유명합니다. 당신도 알다싶이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 알렉산드르 듀마의 장편소설 <몽떼 끄리스또백작>에 나오는 미인 메르쎄데스도 공명과 출세의 화신 페르낭도 협잡과 기만의 능수인 당글라르도 까딸로니아사람들입니다.》

뽀즈는 잠시 말을 끊고 한상수를 유심히 여겨보았다. 아마 반응을 기다리는 모양이다.

한상수는 여전히 조각상처럼 앉아있었다.

《나는…》 뽀즈는 계속했다.

《까딸로니아인이 된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우리 아버지는 한국인이지만 어머니는 까딸로니아의 미인 메르세드의 후손입니다.

까딸로니아구락부는 세계적인, 가장 이름이 높고 력사가 오랜 <바로샤>구락부의 자매구락부입니다.》

《!…》

한상수는 문득 자기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있음을 느꼈다. 그의 말은 옳다. 바로셀로나구락부를 일명 《바로샤》라고도 한다. 바로셀로나국제비행장에 내려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바로샤》구락부가 경기에서 이겼는지 졌는지 대뜸 알수가 있다고 한다. 그 정도로 까딸로니아사람들에게 있어서 축구는 광신적이며 《바로샤》구락부는 그들의 큰 관심사가 되고있다.

이 구락부가 경기에서 이기면 온 까딸로니아가 환희에 잠기고 지게 되면 온 도시가 슬픔에 잠겨있다고 한다.

유명한 축구구락부인 《바로샤》는 1899년 가을, 정확히는 10월 27일 바로셀로나에 거주하고있던 스위스상인 한스 캡퍼가 발기했고 그에 의하여 7일후에 창립이 선포되였다. 이 구락부의 성원수는 수만명이며 경기장은 11만 2천명의 수용능력을 가진 《캠프노오》경기장이다.

까딸로니아구락부가 세계적으로 이름높은 《바로샤》의 자매구락부라면 그 영향력을 가히 짐작할수 있었다.

뽀즈의 말은 계속되였다.

《한상수씨, 나는 축구광신자입니다. 사실 내 본명은 비또리오 뽀즈가 아닙니다. 당신도 알겠지만 비또리오 뽀즈는 이딸리아의 명성높은 축구감독입니다. 나는 그 감독을 숭상하던 나머지 또 그와 같은 이름난 축구감독이 되기 위해 그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비또리오 뽀즈라고 달았습니다.》

한상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리해가 되였다. 숭배자의 이름을 본따서 자기의 이름을 고친 실례는 적지 않았다.

《최근에 우리 까딸로니아구락부에서는 <바로샤>구락부의 후원밑에 세계적인 판도에서 전도유망한 선수들을 모집하고있습니다. 대체로 지금까지 축구력사가 오래고 발전되였다고 하는 유럽이나 아메리카에서는 아시아에 눈을 돌리지 않고있습니다. 허나 우리는 바로 거기에 우리 까딸로니아의 부흥을 위한 귀중한 보배들이 있다고 간주하게 되였습니다.》

한상수가 연거퍼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는 빛을 보이자 뽀즈의 얼굴이 환해졌다. 백근식은 닭알침을 꿀꺽 삼켰다. 교도소장의 눈길도 긴장해졌다.

비또리오 뽀즈의 말은 사실이였다. 세계적으로 이름이 높고 가장 력사가 오랜 축구구락부인 《바로샤》의 후원을 받고있는 까딸로니아축구구락부는 자기의 선수력량을 강화하기 위하여 세계적판도에서 선수선발사업을 맹렬히 벌리고있었다. 특히 축구력사는 짧으나 신생하는 세력으로서 그 누구도 눈길을 돌리지 않고있는 동아시아에 초점을 모았다. 아직 《축구거간군》들의 발길이 미치지 못한 미개척지인 동아시아에 후비가 있을수 있었던것이다.

뽀즈는 적지 않은 선수를 찾아냈다. 그는 조선에 관심을 높였다. 세계체육력사에서 아시아라면 조선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내고있었던것이다. 축구는 유럽이나 아메리카위주로 되여있었기때문에 선수선발도 대체로 그렇게 되여있었다.

그러나 60년대 초반기에 들어와 사정은 전혀 달라졌다. 축구전문가의 눈길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돌려지게 된것이다. 다른 나라의 구락부감독들이 아프리카에서 헤매고있을 때 뽀즈는 동아시아에 인재획득의 활촉을 박았다. 소기의 성과도 거두었다. 뽀즈는 친척방문면목으로 남조선으로 달려왔다. 뜻밖에 《법무부》에서 그를 찾아와 돈까지 찔러주며 《비수》라고 부르는 축구선수가 감옥에 있는데 꼭 데려가달라고 부탁했다. 뽀즈는 어안이 벙벙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감옥에까지 들어가있는가. 당국에서는 설사 선수로 데려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런식으로 《비수》라는 사람을 감옥에서 뽑아내도 좋다는것이였다. 믿져야 본전이였다. 그는 쾌히 수락하였다.

《비수》를 만나기전에 그가 있던 《태백》의 동료들로부터 선수로서의 그의 능력을 료해한데 의하면 그는 비상한 재능을 갖춘 축구선수가 분명했다.

《상수씨, 우리 스포츠인들은 마음만 통하면 한순간에 가까워지기 마련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뽀즈가 한상수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

한상수는 덤덤히 앉아있었다. 그것은 사실이다. 마음만 통하면야 한순간에 친구가 되는것이 체육인들이다.

그런데 이 사람의 속심은 무엇인가. 축구에 대한 이야기나 하자고 나를 만날리는 없다.

뽀즈는 성수가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지금 동남아를 다 돌아보고 오는 길입니다. 전도유망한 축구선수를 찾아서 말입니다.

드디여 이 <남한>땅에서 당신을 찾아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지금도 <명치신궁대회>때 도꾜에서 당신이 참가한 경기를 기억하고있으며 광복후 미국팀과 경기에서 발휘한 당신의 활약에 그들자신도 감탄하고있습니다.

<비수>! 이 별명이 모든것을 다 말해줍니다. 한번의 발길질에 뽈이 터져나가고 꼴문을 향해 들이찬 뽈이 그물을 째고 나갔다고 하여 당신을 <비수>라고 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이미 당신을 만나러 오기전에 당국자들과 합의를 보았습니다. 당신과 같은 재사를 감옥에 가두어넣고 육체를 사멸시키는것은 인류의 수치입니다. 한국에서는 지금 보석도 막돌로 생각하고 바다속에 처넣는 무지와 몽매의 행위가 벌어지고있습니다. 그러니 나와 함께 까딸로니아로 갑시다.》

그의 장광설은 끝났다. 뽀즈는 백근식을 돌아보았다. 이만하면 사례금에 대한 보상은 되지 않는가 하는 기색이였다.

불현듯 한상수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까딸로니아축구감독의 정체를 알아차린것이였다.

《그럼 전향문을 쓰지 않고도 갈수 있습니까?》

한상수는 미소를 머금고 넌지시 물었다.

《무슨 전향문말입니까?》

뽀즈는 리해가 안된다는듯 백근식을 돌아봤다.

《다시 말하면 사회주의를 지지하지 않고 <한국>을 지지한다는 전향서말입니다.》

《하하… 우리한테는 사회주의도 그 무엇도 필요없습니다. 오직 체육, 스포츠면 됩니다. 그런 근심은 하지 마십시오. 이제부터 당신은 우리 시민권을 가지게 될것입니다. 우리의 인권을 침해하는자는 그 누구든지 국제법에 의해 용서받지 못할것입니다.》

뽀즈는 열이 나서 력설했다.

《고맙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감옥에서 나가도 된다 그 말씀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뽀즈의 말에 백근식이도 얼굴이 불그레해져서 동감의 뜻을 표시했다.

교도소소장이 말참녜를 했다.

《한선생, 법무장관님께서도 이미 말씀이 계셨소. 우리가 지금껏 당신에게 욕되게 한것이 있으면 널리 리해해주시오.》

《뽀즈선생.》

한상수가 말했다.

《고맙습니다. 같은 체육인으로서… 하지만 보다싶이 나는 40이 가까와오고 이렇게 페인이 되였습니다.》

《그건 근심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선수가 아니라 감독을 시키려고 합니다. 이제 우리 까딸로니아에 가서 료양을 합시다. 료양은 건강을 회복시켜주는 보약이 아니겠습니까. 까딸로니아바다가는 참으로 아름답지요.》

《하지만 평양의 대동강보다야 아름답지 못하겠지요?》

한상수는 부드러운 미소를 또 지어보였다.

《평양의 대동강?…》

뽀즈는 의혹의 눈길을 들었다. 그는 대동강을 본적이 없었다.

《아, 내가 이렇게 감옥에 갇힌 몸이 아니였다면 당신을 대동강의 맑은 물과 청류벽, 릉라도나 양각도를 구경시켜주는건데…》

《이제 그런 날이 오겠지요.》

뽀즈는 의미없이 중얼거리였다. 어쩐지 동문서답의 말을 듣는듯 했다.

《뽀즈선생. 나도 그런 날이 오리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물읍시다. 아까 선생은 조국을 빛내이기 위해 체육을 시작했다고 했는데 그건 어떻게 리해해야 합니까?》

한상수는 또다시 상반신을 약간 뒤로 제끼고 한손으로 걸상을 잡은채 능청스럽게 물었다.

《조국?!…》

뽀즈의 입가에 경멸의 미소가 어리였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요. 그러나 스포츠인한테는 세계가 조국입니다. 당신은 오늘 우리 까딸로니아로 가지만 래일에는 영국의 만체스터 유나이트도축구구락부로 갈수 있습니다. 당신은 가는 곳마다 환대를 받을 것이며 많은 돈과 명예를 얻을것입니다. 그래 환대해주고 돈을 주는데를 따르지 않겠습니까. 스포츠인은 어느 한 나라에 국한된 공민이 아니라 세계의 공민입니다.》

한상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흥분할 때면 매양 그러하듯이 그의 볼편에서 가늘게 경련이 일어났다.

그야말로 이자는 가긍한 인간추물이였다. 방금전에 자기는 어려서부터 조상의 뼈가 묻힌 이 땅을 잘 알며 조선을 찾고 조선의 긍지를 지키기 위해 체육을 시작했노라고 지껄이더니 이제는 환대해주고 명예를 얻는데를 따른다고 한다. 이런 사생아, 체육시정배같은 놈을 나와 맞서게 하다니, 한상수는 이 어리석은자의 상판을 후려갈기고싶었다. 그러나 명색이 체육인이라니 체면을 보아주어야 했다.

《당신들이 알아야 할것은…》

그는 누구에게라 없이 석쉼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나의 조국, 조선만을 인정합니다. 나한테는 수만군중의 환대나 돈보다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어머니조국이 더 귀중합니다.》

너는 아마 모를것이다. 그 귀중한 조국이 두 토막이 나 신음하고있는것을, 그래서 나는 하나가 된 이 나라의 《비수》가 되고저 싸웠고 그것으로 하여 감옥에 갇힌 몸이 된것이다. 그런데 뭐 환대해주고 돈을 주는데를 따르라구? 스포츠인은 어느 한 나라에 국한된 공민이 아니라 세계의 공민이라구? 가련하고 어리석은 놈!…

《당신은…》 뽀즈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중얼거렸다.

《명예를 바라지 않습니까?》

《조국은 명예보다 더 귀중합니다.》

《스포츠인에게 있어서 조국은 전세계입니다.》 한상수는 터져나오려는 노성을 가까스로 참았다. 어디서 도깨비같은 놈이 굴러와 지껄이고있는것이다. 도깨비와 함께 있으면 멀쩡한 사람도 도깨비가 된다고 하더니 한상수 자신도 머리가 혼탕되는것 같았다. 이런 정신적으로 빈곤한자들이 축구감독이라니, 그래도 뭐, 인재를 찾으러왔다구?… 이런 얼빠진자에게 기대를 가지는자들 역시 어리석은자들인것이다.

한상수는 이자에게 자기 립장을 명백히 밝히기 위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요. 뽈은 국경을 넘어가 찰수 있지만 체육인에게는 자기 조국이 있어야 하오. 뽀즈선생, 이건 좀 다른 문제지만 그 어느 나라든 자기 선수들이 승리하면 온 나라가 명절처럼 흥성거리오. 당신은 그렇게 흥성거려줄 나라도 없는 사생아이니 가련하구려. 이 땅에도 민족의 긍지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뽀즈의 얼굴이 분홍빛으로 변했다. 파란 눈에서 불꽃이 튀였다. 성이 난 모양이다.

한상수는 거연히 머리를 쳐들었다. 조국도 모르는 가련한자들과 마주앉은것자체가 수치스러웠다. 뽀즈는 안절부절을 못했다. 《비수》와 상대하다가 그야말로 시퍼런 칼에 만신창이 되도록 찔리운것만 같았던 모양이다.

망신을 당할대로 당한 뽀즈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중얼거렸다.

《리해할수 없는 사람이요. 재부와 명예가 눈앞에 있는데두 감옥에서 시들겠다고 하니…》

《한상수, 다시 생각해보시오. 이건 한번밖에 없는 기회요.》

백근식이 뽀즈가 일어서자 절망에 차서 황급히 부르짖었다.

《교무과장, 나는 축구를 사랑하오. 그러나 그것이 내 삶의 전부가 아니요.》

한상수의 어조는 칼로 자르듯 했다. 금시에 백근식의 얼굴이 험악하게 이그러졌다. 쓰디쓴 참패를 당한것이였다.

감방으로 돌아온 한상수는 가슴이 후련했다. 또 한차례 놈들의 모략을 짓부셔버린 긍지때문이였다. 본래의 비또리오 뽀즈는 그역시 인정하는 이딸리아의 유명한 축구감독이였다. 제1차세계대전직전에 그는 영국에서 류학하고있었는데 영국축구에 대하여 특히는 만체스터 유나이트도팀에 완전히 매혹되여 귀국하라는 아버지의 권고도 거역하고 계속 축구전술을 연구하였다. 그는 아버지가 기차표까지 보내와서야 이딸리아로 돌아왔는데 그때부터 이딸리아축구를 발전시키기 위해 모든 정열을 쏟아부었다. 그는 주로 이딸리아 토리스구락부에서 감독으로 활동하였다. 그의 노력으로 이딸리아팀은 1934년과 1938년에 세계선수권을 보유하였으며 1936년에는 올림픽경기대회 축구경기에서 1등을 하였다. 그는 선수들에 대한 요구성이 매우 높았으며 심리학자이기도 하였다. 이미 오래전에 뽀즈에 대한 이러한 개인자료와 그의 축구전법들을 연구하고있던 한상수는 그를 존경하게 되였으며

그와 같은 유명한 감독이 되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는 교도소장방에서 은테안경을 쓴 외국인이 자기를 비또리오 뽀즈라고 소개했을 때 가벼운 흥분을 느끼였다. 허나 그 외국인은 뽀즈이면서도 뽀즈가 아니였다. 뽀즈의 숭배자에 불과했다. 다만 이웃나라의 국적을 가진 까딸로니아축구구락부 감독일따름이였다. 그의 말들은 화려하고 매혹적이였다. 축구선수들이라고 하면 어찌 세계에서 가장 오랜 력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바로샤》구락부를 모르겠는가. 선망과 동경의 대상인 《바로샤》!…

그 자매구락부에서 자기를 데리러 왔다는것을 알았을 때 처음에는 흥분했었다. 한마디만 승인하면 죽음의 심연이 항상 입을 벌리고있는 이 지긋지긋한 감옥살이에서 벗어날수도 있었다. 허나 한상수는 《뽀즈》가 다름아닌 남조선계 《외국인》이라는것과 그가 늘어놓은 《세계의 공민》이니 《돈과 명예를 주는데가 조국》이라는니 하는 따위의 궤변을 듣고는 몸이 싸늘해지는것을 느꼈다. 놈들의 모략은 어떻든간에 그는 자기의 진심을 말했다. 그것이 진실인것으로 하여 더욱 피가 끓었다. 자기의 모국을 모욕해도 분수가 있는것이 아닌가. 어쩌면 인간이 이렇게 이질화될수 있는가.

한상수는 자기의 마음속에 잠시나마 숨어있던 유혹의 낚시를 뽑아던지며 다시금 인간적존엄과 민족적자존심이 거연히 머리를 쳐드는것을 느꼈다.

(너절한 놈, 나를 조국도 민족도 모르는 인간추물로 만들겠다구. 어리석은 놈들!…)

한상수는 자기가 그 가짜 뽀즈의 멱살을 틀어쥐고 바람벽에 머리를 짓쪼아주지 못한것을 후회했다. 나도 자유와 명예를 바라는 인간이다. 지금도 감옥에 갇힌 몸이지만 축구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고 몸이 근질거린다. 아직도 축구에 대한 미련은 사라지지 않았다. 축구를 그처럼 사랑하지만 더 귀중한것이 있으니 그것은 목숨과도 같은 조국이다. 그런데 그 조국이 분렬되여있다. 그래서 축구의 《비수》가 통일의 《비수》로 된것이였다.

아, 어머니조국!… 뽀즈의 유혹을 물리친 지금에 와서 더욱더 그리워지는 품이였다. 그는 크나큰 자부심을 안고 맑은 하늘이 내다보이는 뙤창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되돌이

Twitter로 보내기 Facebook으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네이버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