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8 회)
5
한상수는 한밤중에야 소지의 등에 업혀 감방으로 돌아왔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였다. 현진택을 내세웠던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백근식은 분통이 터져 한상수에 대한 무자비한 고문을 들이댔다. 이번에는 제가 직접 웃동을 벗어던지고 고문도구를 들었다.
한상수는 쇠못이 박힌 몽둥이로 어찌나 맞았는지 온몸이 팅팅 부었다. 그러나 그는 감방에 돌아와서도 신음소리 한마디 내지 않았다. 다만 량쪽 감방에다가 백근식의 야수적폭행을 통보했을뿐이였다.
다음날 오후에 한상수가 감방에 누워있는데 철문이 절커덕거리더니 새 수인 한명이 방에 들어섰다. 박박 깎은 머리에 안경을 쓴 젊은이였다.
한상수는 누운채 새로 들어온 젊은이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얼굴은 고문을 받아서인지 몹시 상했으나 젊은이다운 기품을 그대로 간직하고있었다. 넓은 이마에 높은 코날, 부드러운 미소가 어려있는 입술, 예리함과 지혜로움이 함께 느껴지는 눈을 가진 청년이였다. 그의 앞가슴에는 광목천에 시꺼먼 먹으로 방금 쓴듯 한 《1450》이란 번호가 붙어있었다.
《이리 와서 앉소.》
한상수는 자기가 처음 이 방에 들어왔을 때 얼떨떨해있던 생각이 나서 가라앉은 어조로 말했다. 젊은이가 다가와 앉았다. 둘사이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한상수는 말할 기력이 없어 입을 다물고있었고 젊은이는 첫 대면에 먼저 말할수가 없어 침묵을 지켰다.
얼마후에 젊은이가 먼저 《많이 다치신 모양이군요.》하며 근심스럽게 물었다.
《견딜만 하오.》
한상수는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눈을 감아버렸다. 몸이 무수한 바늘로 사정없이 찌르는듯 했고 고열이 났다. 자기 방에 또 한명의 수감자가 생긴것이 반가왔으나 그 기쁨을 나눌 형편이 못되였다. 그저 몸이 둥둥 떠다니는것만 같았다.
이때 옆방에서 바람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가락맞게 들려왔다. 김성교가 보내는 신호였다. 그 신호를 받아야겠는데 몸을 움직일수 없다.
《통방을 할줄 아오?》
한상수가 기여드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
젊은이는 얼굴을 붉혔다.
《그럼 할수 없군.》
한상수는 신호소리가 울려오는 바람벽쪽으로 간신히 몸을 끌었다.
《한상수, 기운을 내라. 왜 대답이 없는가?》
김성교가 안타깝게 찾는 소리였다.
《한상수 듣는다.》
한상수는 천천히 손등으로 대답신호를 보냈다.
《고문을 이겨내여 장하다. 우리는 오늘저녁부터 강제전향반대투쟁으로 넘어간다. 무기한 단식투쟁을 선포했다. 끝까지 견지하라.》
김성교는 이 신호를 반복했다.
《알았다. 동지들!》
한상수는 통방을 하면서도 격정이 북받쳐 어깨를 떨었다. 무기한 단식투쟁! 엄숙하고도 고결한것이 가슴을 꽉 채웠다. 신념을 지켜 동지들을 위해 죽기를 각오한 투쟁이 시작되는것이다.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젊은이가 궁금한듯 물었다.
《오늘저녁부터 어려운 싸움이 벌어지오. 아 참, 우린 아직 통성을 못했지. 이름을 어떻게 부르오?》
한상수는 심중한 얼굴로 말하다가 그제야 생각난듯 물었다.
《오철남이라고 합니다.》
청년은 어줍게 대답했다.
《난 한상수라고 하오. 운명을 같이 합시다. 당장 단식투쟁에 들어가게 되는데 잡도리를 잘해야 하오.》
오철남의 낯빛은 대뜸 긴장해졌다.
《그러니까 음식을 전혀 먹지 않는단 말입니까?》
《그렇소. 단식으로 정치범들에 대한 폭행에 항의하는 투쟁이요. 감방에선 이 싸움이 최후의 투쟁이요.》
한상수는 일순 이 청년은 이번 집단단식투쟁에서 제외시켜야 하지 않을가 하는 생각을 했다.
지난날 이런 싸움끝에 여러명이 목숨을 잃은적이 있는데 투쟁경험이 없는 오철남이가 어떻게 이 시련을 이겨내겠는가.
오철남은 침묵을 지켰다. 그의 낯이 졸지에 컴컴해졌다.
《그래 어떻게 되여 감옥에 들어오게 됐소?》
한상수는 감방벽에 등을 비스듬히 기대인채 물었다.
《미국문화원방화사건과 관련하여 체포되였어요.》
오철남은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띄우고 대답했다.
《자네가 미국문화원을 불질렀단 말인가?》
보기에는 부자집도련님처럼 아련하게 생긴 청년이 어벌찬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재차 반문했다.
《저야 뭐 심부름이나 했지요.》
《장하오!》
한상수는 오철남이네들이 더없이 장해보였다. 얼마나 끌끌한 우리의 새 세대들이 자라나고있는가.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잠에서 깨여나지 못하고 미국을 《해방자》, 《원조자》, 《벗》으로 생각하고있을 때 그놈들의 소굴에 불을 지름으로써 미국은 결코 우리의 우방도 벗도 아니라는것을 만천하에 고발하고 자만자족에 빠져 오만방자하게 노는 침략자들을 징벌하였으니 얼마나 의로운 행동을 단행하였는가. 이들이 지펴올린 반미항전의 불길은 곧 수백수천만 이 나라 청년들의 가슴에 불씨를 안겨주어 마침내 료원의 불길마냥 이 남녘땅에 세차게 타오를것이다.
《그래 몇년형이요?》
《10년입니다.》
《뭐? 10년?》
《저야 제일 적게 먹었지요. 주동에 섰던 사람들은 총살형을 받았어요.》
《뭐라구?…》
한상수는 억이 막혀 두눈을 흡떴다. 금시에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듯 한 격분이 솟구쳤다. 아무리 그악한 놈들이기로서니 이처럼 의로운 젊은이들을 총살한단 말인가. 미국놈들이 이 땅에서 저지른 행위들에 얼마나 분격하였으면 한창 학업에 전념할 대학생들이 그런 의거를 단행하였겠는가. 남의 나라 땅에 기여들어 주인행세를 하며 우리 민족을 학대하는자들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수 없어 그런 결단을 내린 학생들의 장거를 높이 평가해주고 내세워야 할 대신에 오히려 그들에게 총살형을 내리고 징역살이를 시키는 당국자들, 이놈들이야말로 미국의 하수인, 희세의 민족반역자들이다.
한상수는 생각할수록 분노로 들먹거리는 가슴을 진정할수가 없었다. 놈들은 이 오철남이까지도 감옥에 가두어넣고 육체를 마멸시키며 반미통일의지를 꺾으려 하고있다. 그러나 놈들이 제아무리 발광을 해도 결코 이 젊은이의 견결한 의지를 꺾을수는 없을것이다.
한상수는 어느정도 마음이 진정되자 저으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철남인 이번 단식은 그만두라구.》
《왜 말입니까?》
오철남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처음이니 견디기 힘들거요.》
《아니, 참가하겠어요.》
세차게 도리질을 하는 오철남의 목소리는 뜻밖에도 옹골찼다. 그러한 오철남을 보는 한상수는 내심 대견한 생각으로 가슴이 훈훈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 마음속의 우려는 감출수 없었다.
저녁부터 특별사는 일제히 단식투쟁으로 들어갔다. 투쟁구호는 정치범들에 대한 교무과장의 야만적인 폭행을 중지하지 않는 한 온 수감자들은 무기한 단식으로 맞설것이라고 선언했다. 식구통으로 들어온 보리밥덩어리들이 다시 복도로 내던져졌다. 교도관들은 펄펄 뛰며 어디 밥을 먹지 않고 몇날이나 견디나 보자고 을러멨다.
다음날도 여전히 소지가 날라온 보리밥덩어리가 그냥 나갔다.
《정말 그럴테야. 굶어죽어봐야 알겠어?》
교도관들이 악에 받쳐 고함을 질러댔다.
《한교도관, 교도소장에게 말하오. 교무과장이 정치범들을 학대하지 않겠다고 사죄하면 단식을 중지하겠다고…》
옆방에 있는 김성교가 하는 말이였다.
《쳇, 교무과장이 너희들한테 사죄를 해? 어림두 없는 소리야. 어디 처먹지 않고 견디나 보자.》
한을손의 옆에 선 교도관이 코웃음을 치며 나갔다. 잠시후에 몇놈의 교도관이 우르르 나타나 김성교의 감방문을 열어제끼고 그를 끌어냈다. 어느 방에선가 《살인고문 중지하라!》, 《교무과장은 사죄하라!》하는 웨침소리가 련이어 터졌다. 그러자 온 특별사동이 그 소리를 되받아 살인고문을 중지하라고 웨쳤다. 특별사동은 벌둥지를 쑤셔놓은것처럼 되였다. 교도관들이 또 다른 감방문을 열고 몇사람의 수감자들을 끌어냈다. 강제급식을 하려는것이였다.
단식투쟁을 시작한지 사흘이 되자 온 특별사동은 무덤속처럼 괴괴해졌다. 모든 수감자들은 정신이 혼미하여 늘어져있었다. 한상수자신도 모진 고문을 당한데다가 단식까지 하자 입조차 벌릴 힘이 없었다. 그래도 젊은이가 젊은이였다. 오철남은 입술에 조갈이 들어 험하게 트고 부풀어올랐지만 한상수를 정성스럽게 간호했다. 하면서도 끼니때마다 식구통으로 콩보리밥덩어리가 들어올 때면 몸을 흠칠흠칠 떨며 입맛을 다시군 했다. 그랬다가 한상수와 눈길이 마주치면 면구스러운듯 얼굴을 붉히군 했다. 그도 사흘째되는 저녁에는 기진맥진하여 자리에 누워버리고 말았다. 하루종일 말을 하지 않았다. 견디기가 힘든 모양이였다.
《선생님, 이러다가 굶어죽지 않을가요?》
오철남이 누운채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한상수는 얼른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굶어죽을수도 있었다. 그래서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는것이 아닌가.
《죽을수도 있지!》
한참후에 한상수가 대답했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싸우다 사형장에서 죽으면 몰라라 이렇게 눈을 펀히 뜨고 굶어죽는게…》
오철남은 맹랑한 노릇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였다.
《이것도 싸움이요. 이제 이 고비만 넘기면 되오. 이런 싸움에서 의지도 강해지고 인내력도 생기는 법이요.》
한상수는 아직도 감방생활에 익숙하지 못하고 의지가 여린 이 청년에게 무엇인가 힘이 될 말을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입을 열었다.
《철남이, 원쑤와의 싸움에서 목숨이 두려워 잔꾀를 부리거나 한발 물러서면 절대로 이길수 없소. 놈들에게 조금이라도 허술히 보여서는 안되오. 약점을 보이면 놈들은 더 기고만장하여 사납게 굴거든. 놈들이 심하게 나오면 우린 더 세차게 맞서야 하오. 그래야 우리를 우습게 보지 못하오.》
한상수는 불현듯 박우갑이가 자기를 일깨워주던 때가 생각나서 가슴이 뜨거워올랐다. 이젠 자기가 오철남을 이끌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자각했다.
오철남은 한상수의 말에 공감이 되였던지 묵묵히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얼마후에 한상수는 오철남에게 포대기 한쪽 끝을 뜯어보라고 했다. 오철남이 자리에서 일어나 엉금엉금 기여가서 한상수가 대준 곳을 뜯어보니 종이에 싼 소금이 나왔다. 단식투쟁때마다 조금씩 물에 타서 마시면 한결 기운이 솟는다고 하면서 묘리를 가르쳐주던 정창식이가 감추어놓은것이였다. 교도관들이 불의에 검방을 하기때문에 어느 한가지도 마음놓고 보관할수가 없었다.
《저 공기에 있는 물에 소금을 조금 타서 마시오. 그럼 정신이 들게요.》
한상수가 조용히 말했다. 오철남은 한쪽에 있는 물공기에 소금을 조금 넣어 푼 다음 한상수의 터갈린 입술에 가져다댔다.
《난 괜찮소. 어서 마시오.》
《선생님부터 마시십시오. 그래야 저도 마실게 아닙니까.》
오철남이 굳이 권해서야 한상수는 소금물을 조금 목구멍으로 넘기였다. 확실히 흐릿하던 정신이 맑아지는듯 했다. 동공이 풀렸던 오철남의 눈동자가 또릿또릿해졌다.
《어떻소?》
한상수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확실히 정신이 듭니다.》
오철남도 신기스럽다는듯이 얼굴에 밝은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것 보오. 죽을수가 있으면 살수도 있는 법이요. 이제 놈들이 철남이를 끌어다가 강제급식을 시킬수 있소.
그때는 먹지 않겠다고 뻗대지 말고 처넣는대로 먹어야 하오. 만약 먹지 않겠다고 버둥거리면 음식이 후두로 들어가 생명이 위험할수 있소. 알겠소?》
《알겠습니다.》
한상수가 선배들이 가르쳐준 경험을 오철남에게 알려주고있는데 복도에서 급한 발자국소리들이 울렸다. 끌려갔던 동지들이 감방으로 돌아오는 모양이였다. 그는 김성교가 돌아오지 않았는가 하여 그의 방에 통방신호를 보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웬일일가? 정신을 잃었는가?… 한상수는 잠시후에 다시 벽을 두드렸다. 그래도 소식이 없었다. 왜그런지 불길한 예감이 뇌리에 갈마들었다. 이때 한상수의 방 반대쪽에서 신호가 왔다. 그는 급히 바람벽에 귀를 가져다대고 통방신호를 들었다. 얼굴이 금시 재빛이 되였다. 가슴이 왈칵 무너져내리고 눈앞이 빙빙 돌았다. 김성교가 잘못되였다는것이였다. 놈들이 강제로 인공급식을 시키다가 동맥을 터쳐놓아 그 자리에서 피를 쏟고 숨졌다고 하였다.
아, 김성교동지가 죽다니?!… 한상수는 눈앞이 캄캄해왔다. 자기때문에 그가 죽은것이였다. 한상수가 처음 감방에 들어왔을 때 공화국의 체육인답게 잘 싸우도록 도와주라고 당부하던 동지, 살인경기를 할 때에는 몰매를 맞으면서도 경기를 하지 말라고 웨치던 고마운 동지, 그런데 이제는 이 세상에 없다. 원쑤놈들은 이렇게도 통일의 열혈투사들을 무참하게 학살한단 말인가. 이 원쑤를, 이 살인귀들을 어떻게 복수한단 말인가. 한상수는 너무도 절통하여 있는 힘을 다내여 주먹으로 철문을 마구 두드리며 울부짖었다.
《이 인간백정놈들아, 김성교동지를 살려내라아!…》
그가 미친듯 절규해도 어느 교도관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기가 질린 모양이였다. 한상수는 끝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