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 회)

4

 

《한형!》하고 찾는 은근한 목소리에 한상수는 고개를 들었다.

한을손이 감방문을 열고 무슨 꾸레미를 옆구리에 낀채 들어왔다.

《한형?… 내가 어떻게 당신의 형이 되는가. 수인이 감히 교도관한테…》

한상수는 어이가 없어서 껄껄 웃었다.

《웃지 마오. 누가 듣겠소. 실은 한형한테 좋은 일이 생겨서…》

한을손은 여전히 복도쪽을 두릿거렸다. 이자가 왜 이런 노죽을 부리는지 알수가 없었다.

《어쨌든 교도관나으리, 그런 말은 삼가하오. 나는 당신같은 사람한테 형님대접을 받고싶지도 않거니와 설사 나에게 당신같은 동생이 있다면 불행으로 생각하겠소.》

《차 이런, 왜 이리 빈정대요?》

《당신이 나때문에 <빨갱이>로 몰릴가봐 그래.》

《너무 그러지 마오. 나도 조선사람이요. 내 가슴속에서도 조선사람의 피가 흐르고있단 말이요.》

《조선사람의 피가 흐른다고 해서 다 좋은 사람은 아니요. 최근에 자네가 수감자들에게 그리 악착스럽게 놀지 않는다고 생각은 하고있지만 아직은 두고 봐야겠소. 통일이 된 다음에 인민의 심판대에 오르기전에 처신을 잘하오.》

한상수는 이따금 살갑게 노는 한을손이 정신을 차리도록 오금을 박았다.

《차, 마음착하고 어진 사람한테 너무 그러면 죄돌아요. 그러지 말고 이 양복이나 입어요.》

한을손이 꿀발린 소리를 하며 가지고 온 꾸레미를 풀었다. 양복과 와이샤쯔, 넥타이, 칠피구두까지 있었다.

《이건 뭐요?》

한상수가 의아한 눈길로 물었다.

《귀한 손님이 한선생을 만나러 왔어요.》

《그렇다면 난 이 수인복을 입고 만나겠소. 수인이 수인복을 입는거야 당연한 일이 아니요.》

《고집부리지 말아요. 자, 입어요. 시간이 없어요.》

한을손이 급해맞아 재촉했다.

《걷어치우라구. 안 입겠소.》

한상수는 단마디로 거절했다. 또 무슨 흉계를 꾸미려는 모양이다.

《왜 이리 야단이요. 좋은 일이 있다는데. 후에 이 한을손을 잊지 말고 생각하여주오.》

한을손이 안타까운듯 얼리려들었다.

《어쨌든 입지 않겠소.》

그들이 이렇게 말씨름을 하고있는데 신사양복을 입은 교도관 두놈이 나타났다.

《한교도관, 시간이 없소. 교무과장한테 경칠려고 그래. 옷을 입지 않겠다면 그냥 끌고가자구.》

한상수는 놈들의 강압에 못이겨 수인복을 입은채 감방문을 나섰다. 무엇인가 께름한 생각이 들었다. 한상수는 뿌연 전등빛이 빛을 뿌리는 감방복도를 천천히 걸어갔다. 이 순간 동지들은 시찰구로 나를 바라볼것이다. 만약 내가 고급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구두까지 신고 복도를 걸어간다면 동지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아무리 믿는 동지들이래도 의혹을 감추지 못할것이다. 잠시라도 동지들의 가슴에 의혹을 준다면 나는 용서받을수 없는 인간이다. 놈들은 그것을 노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째서 놈들은 이렇게 옷을 입히지 못했는데두 서둘러 끌고가는것일가.

한상수는 교도관들의 호송하에 감옥밖으로 나왔다. 마당안에는 고급승용차가 대기하고있었다. 그는 교도관들이 하라는대로 할수 없이 승용차안으로 들어갔다. 교도관 하나는 운전사옆에 앉고 나머지 두명은 한상수를 가운데 앉히고 뒤좌석을 차지했다. 교도관 한놈이 한상수의 옷에서 피비린내가 나는지 손수건으로 코를 막았다. 승용차는 불빛이 명멸하는 대구시내의 번화가를 지나 으슥한 골목길에서 멎었다. 그리 크지 않은 양옥식 집앞이였다. 승용차의 발동소리가 멎기도전에 우유빛현관등밑으로 어여쁘게 생긴 한 녀인이 나와 나푼하고 절을 했다.

한상수는 이것이 비로소 고관들만 출입하는 비밀료정이라는것을 알아차렸다. 승용차에서 내릴 때 교도관들이 지금껏 차고있던 수갑을 풀어주었다. 순간 몸이 날아갈듯 하고 숨이 나가는것 같았다. 잠시동안이지만 속박의 사슬이 풀려나간것이였다. 집안에서는 붉은등, 파란등이 사람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얼을 뽑아내는것 같았다. 한쪽에서는 간장을 녹이는듯 한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그런지 갑자기 어지럼증이 났다. 그는 교도관들을 따라 겨우 어느 한 문에 이르렀다.

땅에 찰찰 끌리는 조선치마저고리를 단정히 입은 애젊은 녀급이 사뿐사뿐 앞장서 걸어가더니 미닫이문을 열고 무릎을 꿇었다.

《응, 왔느냐?》

웅글은 사나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녀급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옆으로 살그머니 비켜서서 한상수를 방안으로 들여보냈다. 담박하게 꾸려진 검소한 방이였다. 바닥에는 돗자리를 펴고 아래벽쪽에는 10장생병풍을 둘러쳤다. 방가운데는 상감문양에 옻칠을 하여 거울처럼 알른거리는 길고도 넙적한 상이 놓여있었다. 가운데 놓인 신선로에서는 안주가 보글보글 끓고 상우에는 이름도 알수 없는 고급료리들이 가득 차려져있었다. 상좌에 두사람이 마주앉아있었으나 그들은 김이 서린 목욕탕안에 있는것처럼 잘 보이지 않았다. 그저 눈이 흐리고 뗑한 기분이였다. 얼마만인가. 이런 방안에서 음식을 마주한것이… 울컥하고 욕지기가 올라왔다. 빈 위가 받아들이기에 너무도 놀라 역작용을 한것이였다. 한상수는 반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휘청거리였다.

《앉으세요.》

노래의 은은한 선률처럼 그렇게 살뜰하고 다정한 녀자의 목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손이 한상수의 량허리를 부여안아 자리에 앉혔다.

한상수는 무의식적으로 그 녀자가 하라는대로 했다. 먹고싶은 생각보다 잠시 누워서 쉬고싶었다. 그는 첫 타격에 정신육체적으로 노그라지고 말았다. 매 사람옆에 젊고 아릿다운 녀인들이 앉았다.

《한선생!》

저쪽에 앉은 사람이 한상수를 쳐다보았다. 어디선가 듣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한상수는 정신이 피뜩 들었다. 김이 서리여 잘 보이지 않다가 그것이 없어지자 거울안에 사람의 형체가 나타나듯 목소리임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백근식이가 선량하게 웃고있었다.

《뭐 다르게 생각하지 말게. 내 오늘 배꼽 떨어진 날일세. 그래서 이렇게…》

《허, 그렇구만. 고맙소.》

한상수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고양이가 쥐에게 선량성을 베풀 땐 그것은 잡아먹자는 수작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자, 그럼 들게. 교도소 교무과장이 담당한 수인에게 관용을 베푼다고 하여 잘못될것은 없으니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어. 민주화가 대두한 때이거든.》

한상수가 수인복을 입고 피비린내를 풍기고있음을 알아차린 백근식은 돌연 얼굴을 찡그리며 문가에 서있는 한을손에게 소리쳤다.

《왜 내가 시키는대로 하지 않았어?》

《죽어두 그냥 가겠다고 뻗대는 바람에…》

한을손은 금시 사색이 되여 황급히 중얼거렸다.

한상수에게 신사양복을 입히지 못한 죄책감이 든 모양이다.

《그럼 할수 없지. 자, 술을 부어라.》

백근식은 녀급들에게 분부했다. 그들은 사람을 홀리는듯 한 교태를 부리며 새노란 놋잔에 술을 부었다.

《드세요 선생님.》

한 녀급이 한상수의 턱밑에 술잔을 가져다댔다.

《허허… 아가씨들은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구려. 나는 수인이요.》

한상수는 어이없어했다.

《아이참, 우리가 모르는줄 아세요. 서울장안에서 아니, 온 남한땅에서 축구선수 <비수>라면 전설같은 인물로 아는걸요.》

《<비수>! 하긴 그래. 내가 <비수>야. 곪을대로 곪은 이 사회를 사정없이 쭉 째버리는 시퍼런 칼이란 말이요.》

《아이 무서워라!》

녀급들이 일부러 엄살을 부리며 자지러지는 소리를 쳤다.

《하하… 너무 겁날것 없다. 이젠 그 비수도 녹이 쓸었다. 술이나 마시자.》

백근식이가 화제를 돌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쪽에 앉아서 한상수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던자가 드디여 입을 열었다.

《옳소이다. 자, 우리 백과장님의 생신날을 축하해서… 가만 월매, <권주가>나 한곡 뽑지.》

《그러셔요? 그럼 이 월매가 <권주가>를 부르오리다.》

녀급은 기다리고나 있은듯이 술잔을 들고 랑랑한 목소리로 권주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받으시오 받으시오 이 술 한잔 받으시오

                이 술은 술이 아니라 먹고 노는 금로주라

                …

 

녀급들이 각기 술을 들고 사나이들한테 다가왔다. 《권주가》를 부르던 녀급이 한상수의 목을 보동보동한 손으로 감싸안더니 입에다 술잔을 가져다댔다.

한상수는 천천히 녀급의 손을 거머쥐였다.

《아이야!…》

녀급이 비명을 질렀다. 술잔이 쟁강하고 떨어졌다.

《아이, 무슨 손이 그래요. 꼭 장작개비예요. 아니, 쇠집게!…》

《하하…》

마주 앉아있던 두 사나이가 그 모양이 즐거운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어느새 백근식의 앞에 앉아있던 대머리에 몸집이 유들유들한 사나이가 취기가 오르기 시작하였는지 한상수가 마시겠으면 마시고 싫으면 그만두라, 우리는 놀겠다, 즐기겠다는듯 녀급들의 허리를 안고 돌아갔다. 녀급들이 연송 아양을 떨며 남자들의 목에 매달렸고 술잔들이 철철 넘쳐났다.

한상수는 또다시 구토감이 났다. 입을 다물고 겨우 참는데 《한상수씨.》하고 이제껏 녀급들과 놀던 대머리가 언제 그랬더냐 싶게 입을 열었다.

이건 또 뭔가. 이자가 어떻게 내 이름을 아는가. 백근식이도 그저 한선생이라고 불렀을뿐인데…

《내가 누군지 모르겠소?》

《모르겠소.》

한상수는 딱딱하게 대꾸했다. 어디서 보았던자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럴수 없겠는데. 그럼 내가 좀더 설명해주지.》

그자는 계속했다.

《1947년도 당신이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였을 때 나를 찾아왔던 일이 생각나지 않소?》

《?!…》

아, 《가죽잠바》!… 틀림없었다. 그때 사무실에 앉아 호통을 치던자였다. 그의 머리에 번개치듯 16년전 일이 떠올랐다. 아무리 세월이 흐른들 어찌 그때 일을 잊을수 있으랴. 현우섭의 삼촌… 그렇다. 바로 그자다. 어느 때든지 한번 만나기만 하면 복수를 하리라고 벼르던 놈이다. 그런데 그자가 어떻게?!…

《그렇소. 내가 바로 그때의 <가죽잠바> 현진택이요.》

그자는 득의양양하여 꺼리낌없이 지껄였다. 순간 걸고드는듯 한 그 목소리가 한상수의 가슴을 송곳처럼 찔렀다. 한상수는 고개를 쳐들었다. 강철처럼 랭철한 판단력을 동원시켜보아도 어떻게 리해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아득히 흘러가버린 세월과 더불어 가죽잠바를 입고 한상수에게 옥야를 사랑한다고 하여 계급성을 부르짖으며 가슴에 마구 란도질을 해대던 그 가증스러운자의 모색이 떠오른다. 그놈이 바로 이 낯판대기가 유들유들한 놈팽이였다는것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 프로레타리아계급성의 화신처럼 떠들던 놈, 축구는 져도 계급성은 버릴수 없다고 소리치던자가 어떻게 여기에 와서 앉아있단 말인가.

취기가 올라 얼굴이 불기우리해진 현진택은 턱을 슬슬 쓸었다.

《한상수씨, 잘 믿어지지 않겠지요. 특히 이 맑스주의자가 어떻게 되여 이남에 와있는가 하는것이… 허나 인생이라는건 순풍에 돛을 달아야 하는거요. 그렇지 않으면 파산을 면치 못하거든. 난 지금 삼성그룹의 한 회사 사장이요.》

《회사사장이라!》

한상수는 말꼬리를 길게 뽑았다. 그의 복잡다단한 인생행로는 다 모르지만 이자가 변절자라는것은 대뜸 알수 있었다.

《내 말을 마저 들어보시오. 나는 전쟁때 미강점지구에서 지하투쟁을 하고있다가 동지들과 함께 <치안대>에 체포되였소. 나는 내 눈앞에서 우리 동지들의 육체가 갈가리 찢어지고 생매장당하는것을 보았소. 나도 말로는 당신이 알고있는것처럼 계급성이요, 신념이요 하고 투쟁도 했고 곧잘 웨치기도 했소. 허나 나는 인생체험을 통해 인간이 살고 본 다음에 신념도 있지 죽으면야 하나의 썩은 고기덩어리에 불과하다는걸 알게 됐소.》

《…》

한상수는 석상처럼 까딱 안하고 앉아서 현진택을 노려보고있었다. 이제야 그는 놈들의 잔꾀를 속속들이 알아차렸던것이다.

한상수는 광복후 이자때문에 당한 고통을 생각하면 찢어죽여도 씨원치 않을것 같았다.

《그래서…》 이윽고 한상수는 나직이 응수했다.

《당신은 동지들의 죽음을 보면서 그것이 무섭고 그래서 살아야 되겠다는 욕망으로 변절의 길을 걸어왔겠소?》

《변절이 아니라 전향이지. 다시 말하면 내 인생관대로 자유민주주의사상을 받아들였단 말이요. 상수씨, 신념이란 뭐겠소. 자기가 믿는 마음인데 믿음이 허물어지면 제꺽 바꾸는것이 현명한 처사가 아니겠소. 예로부터 내려오는 말이 바람따라 돛을 달라고 했소. 그러니…》

《그러니 나더러 어찌라는거요?》

《어쩔것 있소. 그까짓 전향서에 도장을 찍고 볼판이지. 상수씨, 이젠 마음을 돌리시오. 솔직히 말해서 당신이 전향했다고 해서 북에서는 눈섭 한오리 까딱 안해. 세상에 당신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라. 나같은 혁명가도 전향을 하는데 항차 당신이야…》

《걷어치우라!》

한상수는 듣다 못해 끝내 노성을 터뜨렸다.

《한선생, 진정하오. 현사장님의 말씀에는 귀중한 인생철학이 있소.》

백근식이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인생철학이 있다구?… 그건 이놈의 변절넉두리에 불과해. 이놈은 북에 있을 때 그 누구보다 프로레타리아트요, 계급성이요 하고 부르짖은 놈이야. 그리고 내 안해를 친미분자의 딸이라고 타매하던 놈이 뭐 어쨌다구?…》

한상수는 현진택이가 숨돌릴 틈을 주지 않고 서슬푸른 어조로 들이대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자가 어쩔사이없이 두손으로 멱살을 거머쥔채 세차게 흔들며 다시 부르짖었다.

《이 변절자, 배신자!… 너는 이제도 신념을 주절댔는데 이놈아, 그 더러운 입에 신념이란 말을 담지 말라. 똑똑히 알라. 신념은 그 자체가 목숨이다. 우리의 신념을 모독한 네놈을 내 오늘 죽여버릴테다.》

한상수는 현진택을 힘껏 밀어버리였다. 현진택은 뒤로 벌렁 넘어지며 10장생병풍을 박살냈다. 주안상이 뒤집어지고 녀급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한상수는 옛말에 나오는 장수처럼 두다리를 떡 버티고 방안 복판에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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