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회)

3

 

어느덧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가부다 했더니 인차 추위가 닥쳐왔다. 겨울은 감옥에부터 먼저 찾아오는 법이다. 그 사이에 파면되였는가 하고 생각했던 한을손이 면구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특별사에 나타났다. 제 말로는 몇달동안 서울에 올라가 닥달질을 받았다고는 했지만 그 말의 진실성여부는 알수 없었다. 어쨌든 한을손은 수감자들에게 전처럼 기승을 부리지 못했다.

추위를 막느라고 수인들자체로 비닐쪼박을 댄 감방의 뙤창이 부르르 떨었다. 금시에 찬바람이 뼈속에 스며들었다. 밖에서 눈보라가 이는가부다. 여전히 비닐박막을 때리는 소리가 을씨년스럽다. 겨울은 수감자들에게 있어서 어느 계절보다 더 고통스러운 시기이다. 간수들은 저들이 요구하는 전향서를 쓰지 않는다는 리유로 살점을 뜯어내는 혹한속에 알몸으로 세면장에 앉히고는 찬물을 쏟아붓고 구두발로 걷어차면서 희롱하는것을 하나의 오락으로 여긴다. 식구통으로 던져주는 보리밥덩어리는 얼음덩어리처럼 딱딱하게 굳어져있고 손발은 물론 뺨이나 귀에 얼음이 박혀 빨갛게 부풀고 터져서 피가 배여나온다.

그러나 한상수는 생을 위한 결사적인 투쟁을 어느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온몸을 맨손으로 문질러 피부를 단련시키고 혈맥을 통하게 하는 운동은 물론 체조를 하거나 감방안을 수십바퀴도는 운동을 매일 하군 했다. 그러느라면 엄혹한 겨울은 물러가고 봄이 온다. 봄은 역시 희망과 용기를 주는 계절이다.

한상수는 감방안에 박우갑이가 놓고간 포대기를 덮고 누워서 그윽한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이맘때면 뽀얀 운무가 서린 대동강에서 쩡쩡 얼음장이 터지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울리고 모란봉의 경상골에는 노란 나리가 제일먼저 아기입술을 벌린다. 그다음 경쟁이라도 하듯 진달래, 철쭉꽃, 살구꽃들이 앞을 다투어 피여나고…

그러나 여기 감방안의 봄은 아직 멀리에 있다. 감방천정에서는 허연 성에가 푸실푸실 떨어지고 뙤창에서는 황소바람이 들어온다. 봄이 왔다고 하지만 한상수는 박우갑이가 사형장으로 나가면서 벗어주고간 내의를 벗을 념을 못한다.

그러나 계절은 속일수 없었다. 운동시간에 감옥뜨락에 나가면 어디선가 봄의 훈향이 15척담장을 넘어 흘러든다. 어떤 때는 따뜻한 해볕이 호듯호듯 내려쪼여 졸음을 청하기도 한다. 아, 봄은 이렇게도 좋은것인가!… 언젠가 한상수는 운동시간에 감옥뜨락에 나갔다가 변두리에 파란 풀이 돋아난것을 보았다. 한상수는 그것이 신기스럽게 보였다. 엄혹한 겨울에도 죽지 않고 수감자들이 운동을 하느라고 밟은 딴딴한 땅속에서 봄풀싹이 솟구친것이였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록색주단같은 풀우에 맨 발을 벗고 올라섰다. 싱싱하고 부드러운 촉감이 체내에 홀러든다. 그것은 억센 생명력이였다. 그 어떤 광란앞에서도 굽힐줄 모르는 불굴의 상징인듯싶어 한상수의 마음은 후더워났다.

그 봄에, 한상수가 감옥에 들어온지 여섯해가 되는 그 봄에 감옥밖에서는 뜻밖의 사변이 일어났다. 무엇때문인지 간수들은 얼마전부터 수감자들에 대하여 악착스럽게 학대하지 않았다. 어느날엔가는 담장밖에서 함성이 터지고 뒤이어 총소리가 몰방으로 울렸다. 감방안은 삽시에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간수들은 낯빛이 시커멓게 죽어 황급히 뛰여다녔다. 감옥문밖에 모래가마니가 쌓여지고 철조망이 늘어졌다. 간수들이 총을 들고 살벌하게 돌아치며 교대로 보초를 섰다. 밖에서는 여전히 함성소리가 울려왔다. 웬일인가? 어떤 정세가 도래했는가?…

한상수는 궁금하여 옆방에 있는 김성교한테 통방을 보냈다. 그에게서 놀라운 답전이 왔다. 밖에서 리승만독재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전국민적인 봉기가 일어났다는것이였다. 한상수는 세찬 격동에 휩싸였다. 자기도 달려나가 그들과 합세하지 못하는것이 안타까왔다.

감옥안은 들끓었다. 쉴새없이 통방이 날아가고 날아왔다. 봉기군들의 함성소리는 점점 더 높아갔다.

운동시간이 되자 뜨락에 나온 수감자들은 약속이나 한듯 김성교에게로 모여들었다. 그는 흥분하여 정세추이에 대하여 간단히 말했다. 봉기는 4월 19일 마산에서부터 시작되였는데 지금 서울, 대구, 광주, 청주 등 온 남녘땅에 번져가고있다고 했다.

한상수는 운동시간이 끝나자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흥분으로 하여 온몸이 둥둥 뜨는것만 같았다. 과연 리승만통치를 뒤집어엎을수 있겠는지… 그것이 초조케 했다. 만약 리승만《정권》이 거꾸러지면 통일은 곧 실현될것이다. 나라도 민주화가 될것이고…

감방문에 자물쇠를 채우려던 한을손이 웬일인지 슬그머니 철문턱에 걸터앉았다.

《한선생!》 이윽고 한을손이 약간 어색해하면서 입을 열었다.

《왜 그러오?》

했으나 한을손은 한동안 우물쭈물하더니 주위를 돌아보며 조용히 물었다.

《통일이 되면 우리는 어떻게 되지?》

한상수는 그제야 이자의 심중을 짐작할수 있었다. 요즘 한을손은 마음이 몹시 복잡한 모양이다.

《어떻게 되다니. 악질간수들이야 인민의 심판을 받게 되지.》

한상수는 속이 뜨끔하라고 시침을 따고 침을 놓았다. 한을손은 금시 풀이 죽어서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하긴 그럴거야. 나같애도 그냥 둬두지 않을테니까. 인간이라면 누구한테나 복수심이 있으니까…》

《옳게 말했소.》

《그런데…》 한을손이 주저주저하며 또 입을 열었다.

《극악한 반공두목인 김구선생도 북에서는 용서해주었다고 하던데?…》

《그건 사실이요. 하지만 간수들이야 김구선생하고는 대비도 안되지.》

한상수는 한을손을 바싹 조이였다. 한을손은 얼굴이 점점 까맣게 질려 대꾸를 못했다.

《하지만…》하고 한상수는 조이던 올가미를 약간 늦추었다.

《이제부터라도 통일을 위해 도우면 과거를 묻지 않을수 있소. 그러나 못되게 놀면 언제든지 인민의 심판을 면치 못해.》

《고맙소. 한선생, 진정으로 말해줘서…》

한을손의 얼굴은 약간 어두운 빛이 가셔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또다시 좌우를 살펴보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한선생, 우리 같은 종씨로서 서로 도와주는게 어때? 내 한형한테는 모든걸 눈감아줄테니까.》

《나역시 찬성이요. 그러나 나한테만 그렇게 해서는 안되겠소. 모든 수감자들에게 나와 꼭 같이 대해주는 조건에서 앞으로 고려하겠소.》

한상수는 아예 오금을 박았다.

《하여튼 한형, 세상이 바꾸어지면 마음착하고 어진 간수였다는것을 보증서달라구요.》

한을손은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빌붙었다. 자기의 운명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놀아대는 이자의 꼴이 역겨웠으나 한상수는 가슴이 뿌듯해졌다. 당장 세상이 뒤집어지는것 같았다. 포악하던 간수들도 주눅이 들고 식사질도 좀 나아졌다. 운동시간도 늘어났다. 면회시간을 제멋대로 단축시키거나 차입품을 가로채는것도 없어졌다. 수감자들은 당장 출소라도 되는듯 환희와 기쁨에 휩싸였다. 독방에 갇혀있던 정치범들이 서로 다른 방으로 가서 정세이야기도 하고 밖에서 들여온 신문도 돌려가며 읽었다.

드디여 리승만독재정권은 타도되였다. 정치범들은 격정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불렀다. 이제는 자유의 몸이 될 날도 멀지 않은듯 싶었다. 인민의 힘은 무서운것이다.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한상수도 면도를 말끔히 하고 하루하루 감옥문이 열릴 날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 기쁨은 때이른것이였다. 허정내각, 장면내각을 거쳐 5. 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더니 남조선전역은 리승만독재정권시기보다 더 무서운 감옥으로 전변되였다. 《국가보안법》, 《반공법》의 시퍼런 칼날이 사람들의 머리우에 군림했다. 놈들은 조금이라도 저들의 비위에 거슬릴 때에는 무자비하게 칼날을 휘둘러대군 했다. 형무소는 교도소로 바꿔지고 간수는 교도관으로 이름이 변했다. 정치범들의 전향을 전문으로 맡아보는 교무과가 생기고 교무과장이 그 우두머리로 되였다. 4. 19봉기로 하여 잠시 기가 죽었던 백근식은 교무과장이 되여 그 어느때보다도 전향바람을 세차게 일으켰다.

어느날 복도한끝에서 삐이걱 하는 감방문닫기는 소리가 온 사동을 뒤흔들었다. 그 다음 소지가 척 늘어진 수감자 한명을 업고 한상수의 감방앞을 천천히 지나갔다. 불빛이 희미해서 누군지 알아볼수가 없었다. 누군가 또 고문을 당한 모양이다.

(누굴가? 어느 동지일가?)

이때 옆방에서 통방이 날아왔다. 통방내용은 비통한것이였다. 방금 고문을 받고 들어온 《1029번》수감자가 감방안에서 자결을 했다는것이였다. 또다시 고문을 받다가 자기도 모르게 전향문에 손도장을 누를가봐 옆방의 동지들에게 자기는 죽음을 택하였다는 통방을 간신히 날리고 세멘트벽에 머리를 짓쫏고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한상수의 눈에서는 비분의 눈물이 걷잡을수 없이 흘러내렸다. 1029번으로 불리우던 사람은 키가 크고 안경을 낀 언제나 조용한 사람이였다. 북에서 중학교 교장으로 사업하다가 전쟁이 일어나자 달려나와 용감하게 싸운 지식인이였다. 후퇴도중 어쩔수 없이 체포된 그는 10여년간 갖은 악행을 당하면서도 전향하지 않고 굳세게 신념을 지켜온 투사였다. 그랬던 그가 더는 견디지 못하고 제스스로 목숨을 끊은것이였다. 그의 자결은 비겁성의 표현이 아니라 자기의 목숨으로 신념을 지킨 고결한 최후인것이다. 옆방에서 다시 통방이 날아왔다. 한상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며 통방의 내용을 한자한자 가슴에 새기였다.

 

            산에 나는 까마귀야 시체보고 울지 말아

            몸은 비록 죽었어도 혁명정신 살아있다

 

빨찌산추도가였다. 박우갑이가 사형장에서 장렬한 최후를 마친 날에도 동지들은 울면서 이 노래를 온 사동에 통방했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투지를 가다듬었고 복수를 맹세했다. 자기도 한을손이와 같은 악질간수들, 백근식이와 같은 인간교형리들을 영원히 용서하지 않을것이라는 결심을 다졌었다.

《1010번, 잠 안자고 뭘해?》

대전교도소에서 전근해왔다고 하는 직일교도관이 사담당교도관 한을손이와 함께 감방을 순찰하다가 시찰구에 눈알을 들이대며 시비를 걸었다.

한상수는 돌아앉은채 아무런 대꾸도 안했다.

《야 1010번, 내 말이 말같지 않아. 왜 대답이 없어?》

직일교도관이 트집을 잡았다.

한상수는 더 참지 못하고 홱 돌아보았다. 그리고 가시돋힌 목소리로 쏘아부쳤다.

《잠을 자고 안자는건 내 자유요. 그런 자유까지 침해하는게 교도관인가?》

《뭐뭐, 뭐라구?… 자유? 이 새끼가 자유의 맛이 얼마나 값비싼것인지 모르는 모양이구나.》

직일교도관이 성이 나서 펄펄 뛰였다. 그러나 한을손은 모르는척 하고 복도입구쪽으로 걸어갔다.

《여, 한교도관. 빨리 열쇠 좀 가져와. 이 새끼를 아예 죽여버리겠어.》하고 그자는 기광이 나서 더욱 날쳤다.

한상수는 얼굴에 싸늘한 빛을 띠우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만약 감방문을 열고 들어서면 단매에 거꾸러뜨릴 잡도리를 했다. 이밤 또 한명의 동지를 잃은 그는 복수심에 불탔다. 너 죽고 나 죽고 할 판이다.

《박교도관, 진정하라구. 그 자식 건드리지 않는게 좋아. 워낙 표범같은 놈이야.》

복도문쪽에서 한을손이 제 동료를 타일렀다. 한을손의 충고가 어느 정도 작용을 했는지 그자는 성풀이를 하지 못해 씩씩거리다가 어디 보자고 뇌까리며 가버렸다.

다음날 아침이였다. 한상수는 감방에서 란동을 부렸다는 죄로 취조방으로 끌려갔다. 놈들은 그의 두손을 뒤로 결박하고 거꾸러 매달아놓은 다음 검도련습용 목칼로 머리통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정신을 잃으면 캄캄한 먹방에 처넣었다가 의식이 들면 다시 끌어내여 구타하군 했다. 그래도 끼때가 되면 푸석푸석한 콩밥덩어리를 던져주군 했다. 그러면 량팔을 뒤로 묶이운채 엎디여 입으로 콩밥을 씹어삼키였다. 그래야만 살수 있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한상수는 3일만에 겨우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한평도 채 안되는 관속같은 방이지만 다시 내 방으로 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지긋지긋한 먹방에 비하면 자기의 감방은 《락원》이라고 할수 있었다. 이 작은 공간에 수년간 그의 체취와 숨결이 슴배여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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