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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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전상무위원회는 시인민위원회의 어느 한 방에 자리잡고있었다. 한상수는 방문을 두드렸다. 그리 넓지 않으나 탐탁하고도 무게있게 꾸려진 방이였다. 넓은 량수책상우에는 3대의 전화기가 품위있게 놓여있고 필통에는 각이한 필기도구들이 화살처럼 꽂혀있었다.
방안에는 장발한 머리와 은테안경을 끼고 로씨야식 가죽잠바를 입은 사람이 큼직한 대통을 입에 물고 맛스러게 흡연을 하고있었다. 축전상무에서 중요위치에 있는 사람이였다. 그는 안개처럼 피여오르는 연기속으로 실눈을 짓고 문턱에 있는 한상수를 찌글써 쳐다보았다.
《동문 누구요?》
《축구선수 한상수입니다.》
《음…》 《가죽잠바》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러더니 습관적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왔소?》
《축전에 가지 못하게 된 리유를 알고싶어서 왔습니다.》
《축전에 가지 못하는 리유를 알고싶어서 왔다. 그건 동무자신이 생각해보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할수 없군. 야박스러워도 말해야겠는걸. 동무가 미리 알고있어야 할것은 우리 프로레타리아계급성은 칼날같이 날카롭고 철저해. 그런데 동무는 <경평축구대항전>때 서울에 가서 세브란스병원의 부원장이라는 친미분자의 딸과 련애질을 했다며?!…》
그는 한상수를 노려보며 따지였다.
《우리는 이미 사랑하는 사이였습니다.》
한상수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폭발직전의 무서운 그 무엇이 깃들어있었다.
《가죽잠바》는 제김에 격분한듯 책상을 꽝 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게 바로 계급성이 없는 표현이야. 프로레타리아트가 부르죠아처녀와 련애를 하다니. 그러니 동무를 어떻게 믿고 외국에 보내겠는가. 우리는 그렇게 못해. 축구를 못해도 계급성을 버릴수 없어. 그리고도 뭐 축전에 가지 못하는 리유가 뭐냐구? 나가!…》
《가죽잠바》는 한손을 들어 문쪽을 가리키며 열병환자처럼 광기를 부렸다. 《좋습니다. 축전에 가라고 해도 나는 가지 않을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섰던 공격수의 위치는!…》
한상수는 더 말을 못했다. 억울하고 분하여 말이 나가지 않았다.
《공연한 근심. 동무가 없어도 우리는 축구를 해. 동무가 무슨 대단한 존재라구. 건방지게. 우리는 설사 축구에서 지더라도 계급성만 철저하면 돼. 나가!》
그는 또다시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한상수는 더 참을수 없어 문을 차고 나왔다.
《저런 반동놈의 새끼!》
《가죽잠바》는 방안에서 고함을 질렀다.
한상수가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있던 친구들이 둘러싸며 중구난방으로 물었다.
《어떻게 됐어?》
《뭐라구 그래?》
《축전에 가지 못하는 리유는 계급성이 없다는걸세.》
한상수는 쓰거워 이렇게 내뱉고는 곧장 집으로 돌아섰다. 집이 가까와올수록 어머니를 볼 일이 난처하여 대동강반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들이 축전에 간다고 소가죽구두까지 사오며 좋아하던 어머니의 얼굴을 어떻게 마주본단 말인가. 한상수는 강반의 수양버들아래에 놓여있는 돌걸상에 주저앉았다. 강물을 희롱하던 석양은 저멀리 맑게 개인 하늘밑으로 사라지고 양각도쪽에 물오리떼들이 까맣게 내려앉아 먹이를 찾느라 부지런히 자맥질을 한다. 강가 여기저기에 밀짚모자를 쓴 낚시군들이 한가스럽게 앉아있다. 하루일을 마친 젊은이들이 쌍쌍이 강반을 거닐고있었다.
한상수는 불현듯 그 어떤 말 못할 애수가 온몸을 휘감는듯 했다. 격정의 파도가 가슴속에서 사그라지자 금시에 마음이 쓸쓸해졌다. 문득 옥야의 자태가 눈앞에 떠올랐다. 이 순간에도 옥야는 눈이 까매서 자기를 기다리고있을것이다. 그와 헤여진지도 2년이 되여온다. 《경평축구대항전》때 서울역에서 그에게 곧 다시 오겠다고 철석같이 약속을 해놓고 지금까지 편지한장 보내지 못했다. 옥야는 어떻게나 지내고있는지… 불시에 가슴을 조이는 그리움을 그 무엇으로도 달래일수 없었다.
《여기 있는걸 찾았구만.》
등뒤에서 현우섭의 걸걸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는 한축구단에서 한상수와 함께 뽈을 차는 친구였다. 한상수는 여전히 강물에 시선을 던진채 덤덤히 앉아있었다. 현우섭은 말없이 한상수의 옆에 앉았다. 그의 얼굴도 밝지 못했다. 둘도 없는 딱친구를 떨구어놓고 혼자서 축전에 갈수 없는 안타까움이 현우섭의 얼굴에 짙게 어렸다.
《내 방금 삼촌을 만나보고 오는 길이야.》
이윽고 현우섭이 입을 열었다. 삼촌이란 《가죽잠바》를 두고 하는 소리였다. 한상수는 여전히 묵묵히 앉아있었다.
현우섭이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가죽잠바》에 대한 신뢰가 자취없이 사라진 지금 심장은 다시 불타오를것 같지 않았다.
《한가지 너한테 물어볼것이 있다. 지금도 서울에 있는 처녀한테서 편지가 오니?》
현우섭이 심중한 어조로 직방 물었다. 그제서야 한상수는 고개를 홱 돌려 현우섭을 쏘아보며 되물었다.
《그건 왜 물어? 편지가 오던 안오던 그 어르신네가 무슨 상관이야?》
《문젠 그 편지때문이다. 38선이 막혀있는 현 시국에서 남쪽의 부르죠아처녀한테서 편지가 온다는건…》
《걷어치우라구. 편지가 오면 어쨌다는거야. 남의 사생활을 걸고들지 말게.》
한상수는 격하여 소리를 질렀다.
《진정하라구. 넌 지금 지나치게 흥분하고있어. 이봐 상수, 우리 이제 함께 가서 삼촌한테 용서를 빌자구. 서울처녀와 사랑을 포기하겠다고 하면 축전에 갈수 있어.》
현우섭은 성질이 화약같은 친구를 설복하느라 무진 애를 썼다.
한상수는 그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의 눈에 비수같은 날카로운것이 번쩍했다.
《사랑을 포기한다구?!… 우섭이, 내 사랑, 내 명예를 짓밟은 그 <가죽잠바>를… 나는 기어코…》
한상수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적의에 찬 숨가쁜 소리를 내지르다가 더 말을 못하고 발길을 떼였다. 현우섭은 아연하여 그 자리에 얼어붙은듯 서있었다.
한상수는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가슴이 미여지는듯 하여 방바닥에 얼굴을 묻고 매운 눈물을 뿌렸다. 그는 자기가 축전에 갈수 없다는것을 상상조차 못했었다. 자기의 가치가 이렇게도 헌신짝같이 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디에도 필요없는 존재로 되였다. 뽈을 잘 차서 내 나라를 빛내여보겠다는 그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한상수는 다음날부터 훈련에 나가지 않았다. 하루종일 대동강가를 거닐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며칠을 그렇게 마음속으로 번민했다. 오랜 생각끝에 그가 얻은 결론은 자기의 인간적존엄을 짓밟고 축구선수로서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여기를 떠나야 한다는 가슴아픈 일이였다. 나는 여기에 필요없는 인간이다. 내 사랑이 기다리는 곳으로 가야 한다!
집으로 돌아온 한상수는 농짝문을 열고 경기를 다닐 때 지고다니는 배낭을 꺼냈다. 애지중지하는 뽈과 축구화부터 배낭속에 넣었다. 그가 사품들을 찾아 부지런히 배낭속에 넣고있는데 문득 등뒤에서 《뭘 하느냐?》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울렸다. 한상수는 그만 와뜰 놀랐다. 언제 방안으로 들어왔는지 어머니가 《뭘 하느냐말이다.》하고 재차 따졌다. 그 목소리는 채찍처럼 머리를 호되게 후려쳤다.
굳어져있던 한상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형언할수 없는 노여움과 슬픔이 깃들어있었다.
한상수는 그만 어머니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군채 목이 메이는 소리로 띠염띠염 말했다.
《어머니, 용서하세요. 난 축전에 가지 못하게 됐어요. 옥야를 사랑한것때문에…》
《나두 들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지친듯 조용했다. 그는 허물어지듯 아들앞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엄하게 물었다.
《그래서 너는 어디루 가겠단 말이냐?》
한상수는 침묵을 지키다가 괴롭게 입을 열었다.
《내 축구를 인정하는 곳으로 가렵니다.》
《미국놈들한테로?!…》
어머니의 목소리는 조용했으나 한상수에게는 벼락치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는 흠칫 놀라 고개를 쳐들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칼날같은 눈길이 무섭게 아들의 얼굴을 지켜보고있었다. 한상수는 그 눈길에 기가 질려 고개를 푹 떨구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다시 머리우에서 들렸다.
《그래선 못쓴다. 너를 키워준 이 대동강을 버리고 가면 어딜 간단말이냐. 네가 말하지 않았느냐. 서울의 기자들앞에서 뽈을 잘 차게 된것은 이 대동강물을 먹으며 자랐기때문이라고…》
어머니의 목소리는 젖어있었다.
《어머니!》
한상수는 불시에 격정이 솟구쳐 어머니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떨었다.
그 이튿날 아침이였다. 마당에서 승용차멎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대문을 두드렸다. 한상수는 곱지 않은 심사를 가지고 마지 못해 문을 열었다. 체육단단장과 제낀옷을 입고 넥타이를 단정하게 맨 또 한사람이 서있었다.
《마침 있었구만. 상수동무, 어서 옷을 입고 나오우.》
서글서글하고 사람좋은 단장이 말했다. 뒤에 있는 사람은 그저 빙긋이 웃을뿐이였다. 한상수는 약간 랭랭한 눈길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하아, 이 친구 빨리…》
단장이 독촉했다.
《어딜 가자는겁니까?》
한상수는 맞갖지 않게 물었다.
《어딘 어디야. 가보면 알게 돼.》
단장의 말이다.
《아니, 그만두겠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축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습니다. 체육단에서도 나오겠습니다.》
《상수동무.》 넥타이를 맨 사람이 말했다. 《지금까지 여의치 못한 일들이 있었다면 용서하시오.》
《아니, 저는 동지한테서 용서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한상수는 점점 뿔을 세웠다.
《허허… 보통옹고집이 아닌걸. 자, 어서 차비를 하우.》
그 사람은 껄껄 웃으며 한상수의 어깨를 철썩치고 등을 떠밀었다. 더 우길수 없었다.
이윽고 승용차는 집을 떠났다. 차창밖으로는 낯익은 건물들이 쉬임없이 흘러갔다. 드바삐 걸어가는 사람들,
화물자동차들, 종을 울리며 달리는 궤도전차들… 거리는 활기에 넘쳐 들끓고있었다. 넓은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간 대형구호가 류다르게 눈앞으로 안겨온다.
《영명하신 김일성장군 만세!》
《모두다 새 민주조선건설에로!》
한상수는 이상하게 가슴이 찡해지는것을 느꼈다. 암흑속에서 광명으로 나온듯 모든것이 눈부시고 희한하게 생각되였다. 승용차는 해방산기슭의 어느 한 건물앞에서 멎었다. 북조선체육련맹청사였다. 차에서 내린 한상수는 체육단단장과 넥타이를 맨 사람의 뒤를 따라 청사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어느 한 방으로 안내되였다. 넓고도 정갈한 방이였다. 윤기가 도는 응접탁에 앉아있던 사람이 일어나 한상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검은색의 닫긴형양복을 입고있는 일군은 어디로 보나 품위있고 점잖아보이였다. 한상수는 대번에 주눅이 드는것을 느꼈다. 왜 그런지 가슴이 울렁거리기까지 했다. 일군은 한상수에게 다가와 그를 쏘파에 앉혀주었다. 함께 온 사람들도 자리에 앉았다. 잠시 방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자기 책상앞으로 천천히 다가간 그 일군은 몸가짐을 바로하고 정중히 입을 열었다.
《한상수동무에게 한가지 전달할 일이 있어서 불렀습니다.》
한상수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번에…》 하고 일군은 계속했다.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할 대표들을 료해하시다가 일부 편협한 일군들에 의하여 한상수동무가 명단에서 빠진것을 아시고 축전대표로 참가시킬데 대한 은정깊은 배려를 돌려주시였습니다.》
《?!…》
한상수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믿어지지 않았다. 김일성장군님께서 나를 어떻게 아시고… 그 일군이 한상수의 앞으로 다가왔다.
《상수동무, 축하하오. 쁘라하축전에서 조국의 명예를 힘껏 빛내여주기 바라오.》
일군은 한상수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한상수는 그때에야 정신이 들었다. 꿈을 꾸는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중얼거렸다.
《장군님께서 저를… 정말…》
《그렇소.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 동무를 몸소 대표단명단에 넣어주셨소.》
한상수는 급기야 고개를 떨구었다. 뜨거운 눈물이 사정없이 솟구쳐나왔다.
《상수동무.》 일군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동안 고심이 컸지. 면목이 없소. 장군님께서 가르치심을 주지 않았더라면 우린 얼마나 큰 과오를 범했을지 모르오.》
일군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는 집무실은 숙연한 정적이 흐르고있었다. 방안에는 여러명의 일군들이 쏘파에 앉아 이제나 저제나 수령님의 말씀을 기다리고있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들이 제기한 대표단명단을 오래도록 깐깐히 보고계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 일군들에게 시선을 옮기시며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수고들 했소. 이만 하면 대표들이 우리 의도대로 구성된것 같구만. 특히 문화예술인뿐아니라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들을 축전에 참가하도록 한것이 좋소.》
그이의 치하를 받은 일군들은 얼굴이 밝아졌다. 사실 처음으로 국제무대에 진출하는 축전참가대상자를 선정하는것때문에 여간만 고심하지 않았는데 수령님께서 만족해하시는것이였다. 일군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런데 말이요. 축구선수들의 명단에 청진의 <기계다리>는 있는데 어째서 <경평축구대항전>때 명성을 떨친 평양의 <비수>는 빠졌소?》
수령님께서 일군들을 자애에 넘친 시선으로 바라보시며 물으시였다. 체육련맹에서 온 일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군님, 그 동무가 서울에 가서 뽈은 잘 찼는데 서울의 녀대학생과 련애를 했습니다.》
체육련맹 일군은 얼굴을 붉히며 말씀올렸다.
《그렇소? 그러니까 그 동무가 경평축구경기때 뽈도 잘 찼지만 어느새 남쪽처녀를 후려챘구만. 과연 <비수>답소. 하하…》
수령님께서는 사뭇 즐거우신듯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일군들도 미소를 머금고 그이를 우러렀다.
《얼마나 좋은 일이요. 미국놈들이 아무리 38˚선을 가로막아도 우리 청춘들의 사랑은 막지 못하오. 조국이 통일되면 우리 그들의 잔치를 크게 차려줍시다.》
수령님께서는 한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담으시고 기쁨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체육련맹일군은 얼굴이 점점 흙빛이 되여 몸둘바를 몰라했다. 련맹에서 바로 그 서울처녀와 련애한것 때문에 명단에서 제명했는데 수령님께서는 오히려 그 일을 두고 못내 대견해하시는것이 아닌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시 말씀을 이으시였다.
《지난해 <경평축구대항전>때 남조선기자들앞에서 한 <비수>의 말이 아주 걸작이요. 기자들이 어떻게 되여 그처럼 뽈을 잘 차게 되였느냐고 물었는데 그는 대동강물을 마시며 자랐기때문이라고 대답했소. 하하…》
수령님께서는 또다시 통쾌하게 웃으시였다. 일군들은 모두 흐뭇해있는데 체육련맹 일군들만은 머리를 떨구고있었다.
이윽고 수령님께서 웃음을 거두시고 련맹일군들을 넌지시 바라보시며 서울처녀와 련애한것때문에 축전참가명단에서 뺐는가고 물으시였다.
《그 이후에도 남쪽에서 편지가 계속 오고있다고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아무 말씀없이 안색을 흐리시였다. 방안에는 무거운 정적이 깃들었다. 일군들은 모두 죄송스러운 표정을 짓고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윽고 그이께서 사뭇 안타까우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래서 어쨌단 말이요. 처녀가 총각한테 사랑의 편지를 쓰는건 너무도 당연하지 않소. 그것때문에 축전에 보낼수 없다면 우리는 사랑도 모르는 편협한 사람들이란 말이요?》
체육련맹 일군들은 죄책감에 잠겨 고개를 더 깊이 떨구었다.
《말해보오. 그 편지때문에 명단에서 제명했소?》
장군님의 어조는 의분에 젖어있었다.
《장군님, 사실 저희들은 그 동무가 축전에 참가했다가 만약 적들이 처녀를 미끼로 그를 남으로 유인해가면 정치적손실이…》
《무슨 소리를 하오. 그렇게도 제 사람을 믿지 못하겠단 말이요. 정말 분하오.》
수령님께서는 일군의 말이 채 끝나기도전에 손을 저어 그의 말을 자르시였다. 그러시고는 가슴이 답답하신듯 양복의 웃단추를 풀어놓으시며 창가로 다가가시였다. 방안에는 납덩이같은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어버이수령님의 절절한 음성이 다시 울렸다.
《동무들, 생각해보오. 만약 동무들의 말대로 그가 처녀를 찾아 남으로 나간다고 하여 대동강물을 마시며 자란 사람이, 평양에 어머니를 둔 사람이 미국놈편이 되겠는가. 난 그를 믿소. 민족을 위한 뽈, 조선의 뽈을 차게 해야 하오. 보내야 하오. 그 <비수>를 축전에 꼭 보내시오.》
수령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시였다.
《알겠습니다.》
일군들은 자책감과 뜨거움에 잠겨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렀다.…
방안은 숭엄한 감정에 휩싸여있었다.
한상수는 북받쳐오르는 격정을 어쩌지 못해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뭐길래 장군님께서 그처럼 마음을 쓰시였단 말인가. 그런데도 나는, 이 못난놈을 믿지 않는다고 남으로 달아나려고 하였으니 얼마나 배은망덕한 놈인가,
나는 반역의 길을 걸으려 했다. 천추에 씻지 못할 역적의 죄를 지을번 했다. 생각할수록 깊은 회오와 자책이 가슴을 아프게 때렸다. 그는 고개를 버쩍 쳐들었다.
《장군님!》하고 그는 목메여 부르며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뜨거운 눈물을 하염없이 방바닥에 떨구며 어깨를 세차게 떨었다.
(장군님! 장군님의 하늘같은 은덕을 어떻게 갚는단 말입니까.)
《상수동무, 우리의 인생을 구원해주신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의 은정을 잊지 말고 조국의 명예를 떨칩시다.》
일군도 손수건으로 눈굽을 문지르며 조용히 말했다.
며칠후 한상수는 대표단의 한 성원으로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기 위하여 쁘라하로 떠났다.…
한상수의 이야기는 끝났다. 감방안은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두사람의 눈굽에는 감동에 젖은 물기가 번뜩이였다.
《김일성장군님은 그런분이시군요.》
이윽고 정창식은 목이 메이는 어조로 나직이 뇌이였다.
《자넨 정말 행복한 사람이구만. 김일성장군님의 그런 은정을 받아안은 자네야말로 이제 죽어도 원이 없겠네. 장군님께서 아시는 동무가 부럽네.》
박우갑도 부러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민족을 위해 뽈을 차라고 하신 장군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이렇게 잡혀있으니… 면목이 없습니다.》
한상수의 목소리는 또다시 자책에 잠겨있었다.
감방안에 침묵이 흘렀다. 박우갑과 정창식도 생각에 잠겨 철창가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박우갑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한동무, 동무는 죽지 말고 살아서 장군님께 다진 맹세대로 우리 조선을 빛내이기 위해 뽈을 차야겠소.》
박우갑의 말은 의미심장하였다. 그 말은 한상수의 가슴에 큰 충격을 주었다.
《알겠습니다.》
한상수는 새로운 각오를 안고 뜨겁게 대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