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2

 

대구형무소 간수부장 백근식은 책상우에 놓여있는 한장의 사진을 내려다보며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정치범《1010번》 한상수! 창백한 얼굴, 수척하여 약간 두드러져보이는 관골, 검실검실한 수염이 덮인 든든한 턱, 푹 빠진 눈확속에서 날카로운 눈길이 백근식을 지그시 쏘아보고있었다.

백근식은 버릇대로 손가락마디를 와드득와드득 꺾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슴이 뛰였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가? 원쑤를 여기서 만나다니!…

어느때이건 기어이 복수를 하리라고 벼르던 인물이였다. 그런데 지금 자기는 그의 생사여탈권을 손에 쥐게 된것이다. 하늘이 가져다준 기회인가!

백근식은 복수의 쾌감에 벌써부터 마음을 다잡을수가 없었다. 자기를 파멸시키려고 하던자를 오히려 자기가 죽일수 있다는 기쁨때문이였다.

불현듯 그의 눈앞에는 5년전 일이 선히 떠올랐다.

서울축구단 《태백》의 재정감독이였던 백근식은 축구단의 운영자금을 잘라먹은 일로 하여 검찰에 기소되게 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그 흑막에 대해서는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은 백근식과 서울지방법원의 검사인 방치백사이의 유착관계로 인한것이였다.

그무렵 축구협회 회장 김정식이 차사고로 절명되였다. 김정식은 민족적인 감정이 강하여 친미세력들이 눈에 가시처럼 여기던 인물이였다. 축구선수들은 물론 수많은 축구애호가들의 존경을 받고있던 김정식의 죽음은 사회계에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다. 그의 죽음은 순수한 차사고가 아니라 테로라는것이였다. 뜻밖에 북에서 온 한상수가 김정식의 죽음을 해명하는 일에 앞장섰다. 한상수에 의해 김정식이 승용차를 타고 창경원의 밤꽃구경을 가는 기회에 홍화문로타리에서 대형차가 옆으로 질주하며 밀어제낄 때 운전칸에 백근식이가 앉아있었다는것이 확인되였다. 한상수를 비롯한 축구선수들은 김정식테로사건을 해명할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한상수에 의하여 덜미를 잡힌 백근식은 상전의 지시로 대구형무소 간수로 피신했다. 몇달후에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이 사건은 막을 내렸다. 백근식은 그후에도 서울에 나타나지 못하고 감옥안에서 숨어살다싶이 했다.

그러던 며칠전 백근식은 《법무부》차장으로 된 방치백으로부터 서울로 올라오라는 호출을 받았다. 방치백은 그를 곧 자기 방으로 불렀다.

《차장님, 그간 귀체 만강하셨습니까?》

백근식은 차장의 방에 들어서자 그만 감격이 북받쳐 허리를 꺾어 인사를 했다. 자기를 잊지 않고 찾아준 고마움때문이였다.

《오래간만이요. 그새 잘 있었소?》

방치백은 숱진 눈섭을 내려뜨리고 백근식을 바라보며 동정하듯 부드럽게 말했다.

《저는 차장님께서 어느때든지 저를 잊지 않고 부르실줄 믿었댔습니다.》

백근식은 손수건으로 눈굽을 문지르며 물먹은 소리를 했다.

《그래서 이렇게 부르지 않았나. 그동안 형무소에서 뭘 했는가?》

《간수노릇을 했습니다.》

《그런 보잘것 없는 말직에 있었단 말이지. 자네의 수완이 아깝네.》

《그렇다고 해서 뭐 갑자기…》

《하긴 그래. 대번에 장관자리를 비워두었다가 자네한테 줄수야 없지. 어때 나와 함께 일해보지 않겠나?》

백근식은 황송하기 그지없었다. 그것은 그가 바라던 일이기도 했다.

《지금까지두 차장님의 지시대루… 차장님이 보살펴주고 이끌어주셔서… 그렇게 되면 더 바랄게 없습니다.》

백근식은 머리를 조아렸다.

《허허… 자넨 역시 도의를 알거든. 인간이 은혜를 입을 때는 백골이 진토될 때까지 잊지 않겠다고 하지만 처지가 펴이면 그것을 아는 사람은 쉽지 않아. 나는 도리를 아는 사람을 첫째루 놓네.》

《그점만은 믿어주십시오.》

《좋아. 그럼 자넨 이제부터 대구형무소 간수부장일세.》

《간수부장이요?》

백근식은 고개를 쳐들고 의아쩍은 목소리로 반문했다.

《왜, 싫은가?》

《아니 그런게 아니라…》

백근식은 우물쭈물했다. 사실 그는 감옥이 지긋지긋했다. 그런데 기껏하여 형무소소장도 아닌 간수부장을 하란 말인가.

《내려가서 정치범들을 전향시키는데 성과를 올리게. 주리를 틀든 사지를 찢어놓든 어떻게 해서라도 그들을 전향시켜 자유세계의 국민으로 만들도록 하게.》

방치백은 또박또박 못을 박아 말하였다. 그럴 때는 벌써 벗어날수 없는 올가미에 든다는것을 백근식은 잘 알고있었다. 백근식은 온몸이 긴장되고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차장님, 차장님의 분부라면 무조건 하겠습니다.》

《좋아, 내 믿음이 틀리지 않았구만. 역시 자네는 나의 믿음직한 딸레이랑(프랑스의 외교관)이야. 내 말은 단순히 법무부 차장의 말이 아니라 대통령, 아니 미국사람들의 뜻이라는걸 잊지 말아주게.》

《명심하겠습니다.》

백근식은 어떤 의미인지도 생각할새없이 머리만 조아렸다.

《그럼…》 방치백은 약간 어조를 낮추었다.

《정치범들의 전향공작에서 성과를 올리고 서울에 와서 나와 함께 일하세. 서울고등법원에 자네가 일할 자리는 얼마든지 있네.》

방치백은 미소를 지으며 백근식의 간지러운데를 긁어주었다.

《그렇게만 믿어주신다면 제 멸사봉공하겠습니다.》

백근식은 눈물이 글썽하여 방치백을 쳐다보며 열렬히 부르짖었다.

《허허허… 알겠네.》

방치백은 사뭇 만족한듯 껄껄 소리내여 웃고나서 지나가는 소리로 이제 며칠후에 자네의 구면친구인 한상수를 보낼테니 그자를 전향시켜야 한다고 한마디 던졌다.

《누구라구요?》

백근식은 처음에 무슨 소린가 하여 눈이 떼꾼해서 되물었다.

《벌써 자네의 원쑤를 잊었나? 한상수는 전쟁때 인민군대에 나갔다가 최근에 다시 서울에 나타났는데 그자의 처가 우리를 도와주었소.》

《그 옥야라는 녀자가 말입니까?!》

백근식은 급기야 모든것을 알아차렸다.

《그렇네. 그자를 즉시 체포해서 재판을 했으니 곧 대구형무소에 처넣겠네. 이젠 자네 책임일세.》

방치백은 그루를 박았다.

이러한 연고로 하여 백근식은 대구형무소 간수부장으로 된것이였다.

형무소소장은 《법무부》에서 직접 점찍어 간수부장으로 내려보낸 백근식을 소홀히 대하지 못했다. 형무소 소장의 말에 의하면 벌써 한상수라는 수인이 도착했다는것이였다.

백근식은 형무소에 내려오자 바람으로 정치범들이 들어있는 특별사동을 돌아보고나서 한상수의 담당간수를 불렀다. 한을손이였다.

《자네가 담당한 사동에 한상수라고있지?》

《예, 어제 입방했습니다. 1010번입니다.》

《그자의 동향이 어떤가?》

《현재는 죽은듯 조용합니다. 그 방에 사형수와 함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안심해서는 안돼. 그자는 권투와 유술을 겸비한 유명한 축구선수야.》

《아, 그렇습니까?》

《당신같은건 그자의 발길질 한번에 배창이 터질수 있어.》

《아니 그자가 그렇게 세찹니까. 개자식, 그 어떤 항우장사도 이 뱀대가리한테 걸리면야 뼈도 못추리지요.》

한을손은 백근식이가 자기를 업수히 여기는것 같아서 이를 갈며 뇌까렸다.

《물론.》 백근식은 몸을 뒤로 젖혀앉으며 잠시 말을 끊었다.

《아무리 날고뛰는자라 해도 그자는 수인에 지나지 않아. 한칼에 베여죽일수도 있고 종신불구자로 만들수도 있지. 그런건 간단해. 지금 우리 한국은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어. 우방국들도 우리를 비난하거든. 요는 뭐냐? 우리를 지지하게 하는거야. 그래서 <빨갱이>들로부터 자유세계를 지키자는거야.》

《예. 예. 이제야 그 높으신 뜻을 알겠습니다.》

한을손이 다시 머리를 조아린다.

《북의 <빨갱이>세력과의 투쟁!…》

백근식은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앞을 왔다갔다하며 구술을 하듯 엮어댔다.

《이것은 간단치 않아. 사생결단의 정신을 가지고 정치범들과 싸워야 해. 그렇게 할수 있는가?》

《예. 각오가 되여있습니다.》

한을손은 또다시 몸을 힘있게 펴며 소리쳤다. 불현듯 백근식의 눈앞에는 서울대법원의 으리으리한 쏘파에 틀고 앉아있는 《법무부》방차장의 눈길이 날카롭게 번쩍했다. 가슴이 섬찍했다.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면 그자는 자기를 짓밟아 버릴것이고 부산항 하역장이나 청량리 하수도관을 뒤지게 할것이다. 처자들은 일조에 거지가 될것이고 자기는 일자리를 찾아 헤매게 될것이다. 나중에는 남산송림에 목을 매고 자살할지도 모른다.… 《한국》의 정치, 이것은 네가 사느냐 내가 죽느냐 하는 도박이다. 그것은 차장이나 내나 같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정치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짓밟히우고 쓰러박히고 죽어야 한다. 백근식은 이 순간 자기가 살륙전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어느 순간이든지 암흑의 나라에 처박혀 속절없이 썩어지리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력사에는 제편끼리 출세와 공명과 책임회피를 위하여 피를 물고 싸운 실례가 얼마나 많은가.

장관은 차장에게, 차장은 과장에게, 과장은 하급공무원들에게 넘겨씌워 목을 따는것이 오늘의 남쪽현실이다.

그래서 그는 한을손에게 권력의 쾌감에 심취되여 일장 훈시를 하다가 문득 말을 끊은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다시 생각했다. 래일을 생각한다는것, 이것이야말로 어리석은자의 인생관이다. 오늘을 즐기라. 오늘의 권력을 마음껏 휘둘러 보잘것없는 수감자들이 무릎을 꿇는것을 보고 쾌감을 느끼라. 내 권력의 보호자인 《한국》의 정치체제가 있는한 나는 마음껏 권력을 향유할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백근식은 자기가 별로 의젓해진듯 해서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백근식은 제가 무슨 《법무장관》이나 된듯 너그러워져서 한을손의 어깨우에 손을 얹었다.

《한간수, 그러니 자네는 이제부터 자기 직무에 더 분발해야 해. 알겠나?》

《알겠습니다. 부장님!》

한을손은 엊그제까지만 해도 같은 형무소에서 잡범간수노릇을 한 백근식을 괴여올리는것이 억울한 생각이 들었지만 주인을 쳐다보는 충견같은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수단과 방법을 다해…》 백근식이 재삼 오금을 박았다.

《정치범들의 의지를 꺾고 전향시키는것이 상부의 일관한 전략이다.》

《부장님, 제 목숨을 다해 부장님을 협력하겠습니다.》

한을손은 부동자세로 부르짖었다.

한을손을 내보낸 백근식은 지나온 나날을 더듬으며 감회에 잠겼다.

… 백근식은 부산일대의 어촌들에 수십척의 배를 가진 선주의 맏아들로 태여났다.

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어느 사립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백근식은 학업에 전심하지 않고 아버지가 보내주는 돈을 방탕한 생활에 탕진해버리군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에게 돈을 보내주지 않았다.

백근식은 할수없이 대학을 중퇴하고 부산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는 집에 돌아와 허송생활을 하며 부산일대에서 소문난 깡패들과 휩쓸려 돌아갔다. 어느덧 그는 그들의 모사로 되였다. 대부호의 아들, 동경대학간판, 뛰여난 권모술수, 용의주도한 기질,이것이 깡패들의 인기를 끌었던것이다.

그무렵에 서울의 깽들로부터 《만철회사》부총재의 첩인 미노꼬라는 묘령의 녀자가 일본으로 건너가기 위해 부산땅에 들어서는데 그 녀자의 왼쪽 세번째손가락에 다섯카라트짜리의 다야몬드반지가 끼워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되였다.

백근식은 그 반지를 탈취하려고 결심했다. 그러자면 그 녀자의 신변을 호위하기 위해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는 두명의 경관을 처리해야 했다.

어떻게 할것인가?…

그러던중 그 녀자가 오랜 려로의 피곤을 풀기 위해 부산에서 며칠동안 휴식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간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절호의 기회였다. 백근식은 쾌재를 불렀다. 허영심과 호화로운 생활에 습관된 녀자, 남편을 잃은 젊은 녀인의 슬픔, 20대 미모의 녀성들이 남자들에 대하여 품고있는 애정에 대한 갈구! 이것을 리용해야 한다.

《다 듣거라. 중국 단동깽들한테서 산 이 정보를 일본깽들에게 팔아먹는다는건 조선깽의 수치다. 이제부터 내 혼자서 그 녀자의 손가락에서 다야몬드반지를 뽑을테다.》

백근식은 호기있게 소리쳤다. 깽들은 눈이 떼꾼해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빈틈없이 준비를 갖추고 혼자서 그 녀자가 들어있는 부산《해운호텔》로 들어갔다. 사각모에 제국대학생복차림인 백근식은 어느모로 보나 혈기왕성한 미남자였다. 그의 출현은 인차 뭇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는 언제나 미노꼬가 식사를 할 때마다 맞은편 식탁에 앉아 도수낮은 샴팡을 천천히 마시군 했다. 대학생의 얼굴에는 헤아릴수 없는 고뇌와 슬픔이 어려있었다. 처음 미노꼬는 그 대학생에게 무관심했다. 그러나 식사때마다 슬픔에 잠겨있는 그를 보자 부지불식간에 녀성본능의 그 어떤 동정비슷한 감정이 가슴속에서 싹트게 되였다.

어느날 식당안으로 들어온 대학생은 그 녀자가 있는 식탁으로 다가오더니 가볍게 고개를 숙여 례의를 표시한 후 빈자리를 보며 여기에 앉아도 일없겠는가고 물었다.

미노꼬는 대학생을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며 그렇게 하라고 했다. 이렇게 그들사이는 이어졌다. 대학생은 미노꼬와 식사를 하면서 자기의 불우한 처지에 대하여 말했다. 일본에서 사랑하는 애인을 잃고 슬픔에 못이겨 서울로 가다가 부산경치가 하도 아름다와 마음의 안정이라도 할가 하여 잠시 머물렀다는것이다. 어쩌문 자기의 처지와 비슷할가, 미노꼬는 대학생을 동정하였다. 녀성의 젊은 남자에 대한 동정, 그것은 사랑의 최초의 감정의 하나다.

미노꼬는 호위경관들이 곁에 붙어있는것이 시끄러웠다. 그래서 경관들을 내보냈다. 일단 이성사이에 련모의 감정이 싹트면 그것은 벼겨가 타듯이 서서히 보이지 않게 급속도로 타번지게 되는것이다. 가슴속에 그런 사랑의 감정이 타번지기 시작한 어느날 대학생은 그 녀자의 손가락에 낀 다야몬드반지를 들여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자기도 애인에게 이런 반지를 사주었는데 그를 안장할 때 저세상에 가서도 자기를 잊지 말라고 그대로 보내주었다고 했다.

미노꼬는 그 말에 목이 메였다. 이런 사나이, 이런 남자의 사랑을 받는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대학생은 미노꼬에게 그 반지를 자기에게 팔아줄수 없는가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반지를 보며 저세상사람이 된 애인을 추억하겠노라고 했다. 녀자는 거절했다. 대학생의 심정은 리해되지만 자기 역시 이 반지를 보며 남편을 추억하겠노라고.

대학생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그렇게 되자 마음이 여린 그 녀자는 동요하게 되였다. 대학생은 그 기미를 알아차리고 더욱 간절히 요구했다. 돈을 요구대로 주겠으니 제발 팔아달라고, 하느님이 은총을 베풀듯이 도와달라고 별 감언리설을 다했다.

《그럼 드리겠어요.》

미노꼬는 할수없이 승낙하였다.

《고맙습니다. 본값의 열배를 드리겠습니다.》

《아유! 열배씩이나!…》

미노꼬는 그 수자에 저도 모르게 환성을 질렀다.

그날 저녁 대학생은 지페를 넣은 트렁크를 들고 그 녀자의 침실로 찾아갔다. 대학생은 트렁크채로 그 녀자에게 넘겨주었다.

미노꼬는 트렁크안에 가득 들어있는 지페뭉치를 대충 꺼내본 다음 손가락에서 반지를 뽑아주었다.

대학생은 반지를 품에 소중히 간직하고 유유히 그 녀자의 방을 나섰다. 한개의 반지를 팔아 거액의 자금을 손에 넣게 된 미노꼬는 흥분하여 대학생을 바래주기 위해 방안에서 나왔다. 그 순간 아래방에 숨어있던 그의 졸개들이 미닫이문을 열고 그 트렁크를 감쪽같이 훔쳐냈다. 대학생을 바래주고 방으로 들어온 미노꼬는 정신없이 소리를 질렀다. 돈이 든 트렁크가 없어진것이였다. 경관들이 달려왔으나 허사였다. 사실 트렁크안에 들어있던 지페도 절반은 가짜였었다. 그 가짜돈마저 도로 가져가고 다야몬드반지를 손에 넣은 백근식은 대번에 영웅처럼 떠받들리게 되였다.

성공에 도취한 백근식의 가슴속에서는 다른 야심이 꿈틀거리였다. 그는 지체없이 그 야심을 실현하는데로 나아갔다. 대학생이 호텔에 다시 나타났을 때 미노꼬는 중병을 앓고있었다. 대학생은 무슨 병인가고 물었다. 그 녀자는 돈을 잃은 사연을 말했다. 대학생은 그 녀자의 불행을 진심으로 동정한 나머지 자기의 품안에 고이 간직했던 반지를 꺼내여 그에게 넘겨주었다. 처음에 그 녀자는 믿어지지 않는듯 그것을 선뜻 받을념을 못했다. 허나 대학생이 자기는 녀자의 불행을 보고 참지 못한다고, 우리 아버지는 서울에서 일등가는 부자이니 아무 생각말고 받으라고 했다. 다만 자기가 바라는것은 이 반지를 부인이 다시 끼고 여기 내지에도 불행한 한 청년이 있었다는것을 잊지 말아달라고 했다.

대학생의 은근하고도 진정에 넘친 그 목소리는 그 녀자를 감동시켰다.

그들은 그날밤 바다가를 거닐며 서로의 불우한 신세를 한탄했고 대학생은 그 녀자를 위로하며 끌어안았다.

그 녀자는 대학생의 얼굴을 눈물로 매닥질을 하며 입을 맞추고 자기의 몸을 맡겼다. 그때로부터 그들은 바다가에서, 숲속에서, 침실에서 마음껏 향락을 누리였다. 처음에는 아무리 신비하고 아름다운 녀인이라 해도 육체를 점령해버리면 인차 싫증을 느끼는 백근식이였다. 달밝은 어느날 밤 해운대의 외진 으슥한 바다가에서 미노꼬의 육체를 마음껏 짓이긴 백근식은 그 녀자의 목을 눌러죽이고 반지를 빼앗은 다음 시체를 바다물속에 던져버리고 말았다.…

자취를 감추었던 백근식은 광복이 되자 다시 고향도시에 나타났다.

부산항구에는 왜놈들이 저희 나라로 실어가기 위해 가져다놓은 갖가지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아직 나라가 서지 않은 때여서 주인이 없는 그 물건은 벼락맞은 소고기처럼 되여 장사치들과 불량배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어 창고의 물건을 훔쳐가기 시작하였다. 백근식도 졸개들을 휘동하여 누구한테 질세라 자동차로 창고의 쌀을 실어내는데 열을 올리였다.

이무렵 부산의 좌익세력들은 자위대를 조직하고 나라의 재산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창고를 지키였다. 그들은 팔에 《자위대》완장을 끼고 말을 타고 일본놈들한테서 빼앗은 칼을 휘두르며 넓은 항구를 순찰하면서 창고를 털어내는자들을 무자비하게 징벌하였다. 백근식도 그때 현장에서 《자위대》의 칼에 어깨를 맞고 쓰러졌었다.

당장 목에 칼을 받아야 할 위기일발의 순간 다행히 자기 졸개의 삼촌이 자위대장이여서 죽음을 면했다. 지금도 이따금 부산항구에서 시퍼런 칼로 자기의 목을 치는 꿈을 꿀 때마다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여나군 한다. 그때로부터 백근식의 가슴속에는 좌익세력에 대한 뿌리깊은 원한이 사무쳤고 복수의 일념이 불타오르군 했다. 한상수를 놓고보더라도 개인적으로는 자기의 원쑤였다. 한상수때문에 서울에서 쫓겨났으며 5년간을 대구땅에 구겨박혀 잡범간수로 근근히 살았다.

한상수, 어디보자. 나는 기어이 너를 굴복시키고 승진할것이다.

백근식의 가슴속에서는 복수의 희열이 끓어올랐다.

되돌이

Twitter로 보내기 Facebook으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네이버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