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회)

제 9 장

3

 

 

이날 해떨어질무렵에 류선녀와 연경이 변호인단과 함께 대법원을 향해 재항소신청서를 가지고 서둘러 차를 몰아갔다. 같은 시각에 형무소의 감방에서는 조봉암이 류선녀가 정성들여 지은 흰바지저고리에 흰고무신을 신고 가슴에는 《2310》이라는 수인번호를 달고 《죽산조》에게 마지막으로 모이를 주고있었다.

《어서 모이를 쪼아라. 울지만 말고…》

새들도 무엇인가 불안하였던지 모이는 먹지 않고 녹두알같은 눈으로 조봉암을 말끄러미 쳐다보며 슬프게 우짖기만 하였다.

《진- 진진- 진- 진진-》

《어서 먹으라는데. 너희들이 먹는 모양 마지막으로 보고싶다.》

그래도 새들은 그냥 조봉암만 올려다보았다.

《음- 너희들도 작별하기 싫은 모양이구나. 어찌겠니, 그만 헤여져야 하는걸… 다시는 여기로 오지 말아. 여기는 너희들이 올데가 아니다. 숲을 찾아가거라. 거기가 너희들 보금자리다.》

불현듯 조봉암은 뒤에서 나는 인기척에 돌아섰다.

언제 들어섰는지 형무소 소장이 두 경찰과 나란히 서서 지켜보고있었다.

죽음이 드디여 그 피묻은 아가리를 쩍 벌리고 마지막 한걸음을 넘어오고있었다.

《선생님의 감방에 <죽산조>가 날아든다는 소문이 돌더니 저 새들입니까?》

형무소 소장이 찾아온 용무를 선뜻 꺼내놓지 못하고 뙤창가에서 아직도 처량하게 울고있는 새들을 보면서 물었다.

《그렇소. 나하고 그사이 정이 들었지. 새들도 정을 떼기 힘들어하는구만. 때가 되였소?》

《예.》

형무소 소장이 조봉암에게 수갑을 채우려는 경찰을 제지시켰다.

《그만두라.》

경찰들이 물러서자 조봉암이 걸음을 옮겼다.

《갑시다.》

감방의 문턱을 넘어서던 조봉암이 찰나에 떠오른 생각이 있어 주춤거렸다.

《소장, 부탁이 있소.》

《말씀하십시오.》

《우리 집에 좀 전해주시오.》

《그럽지요.》

조봉암은 차입품속에 건사한 책갈피에서 류선녀가 두고 간 결혼동의서용지를 찾아냈다.

그는 결혼동의서를 책우에 펴놓고 잠시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네모가 방정한 글체로 자기 이름이 써있다. 그옆으로 나란히 적혀있는 이름이 불시에 죽음이 닥쳐든 이 시각 그의 눈에 아프게 박혀들었다. 이 이름을 정성을 다하여 새겨갈 때 녀인의 마음속에 일어번졌을 애모와 련민과 남다른 비애가 짚이우자 속이 확 끓어올랐다.

《류선녀!》

조봉암은 입속으로 그 소중한 이름을 뜨겁게 불렀다.

너무도 곡절많은 생애의 마지막토막에 선뜻 몸가까이 다가들어 고락을 같이하여온 녀인, 마음속에 봄볕처럼 따스히 스며든 사람!

그 나날들에 녀인이 보여주었던 모습들이 일시에 눈앞으로 주마등처럼 비껴갔다.

참으로 류선녀의 사랑은 그 어떤 자극적인 인연이 없이 소리없이 조용히 다가들어 오리오리 따사롭게 몸과 마음에 감겨든 봄볕같은 사랑이였다.

(선녀, 고마운 사람아! 난 당신께 한만 남기는구려.)

쓰라린 자책과 후회가 그의 가슴에 회오리처럼 쓸어들었다.

그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동의서에 눈길을 박은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귀전을 때리고 뇌리를 흔들고 심장을 울리는 세찬 메아리가 머리우에서 울린 천둥우뢰처럼 가까이에서 들렸다.

《저를 아껴주세요! … 저에게 행복을 주세요! … 저 악귀같은 놈들은 저에게서 제일 소중한것을 빼앗아내려고 날뛰고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어이 지켜내렵니다! 우리의 사랑을 지켜내렵니다! 그건… 그건 목숨보다 귀한겁니다!》

이것은 전날에 류선녀가 이 결혼동의서를 들고 왔을 때 남기고 간 말이다.

녀인을 눈물속에 떠나보내고는 사랑과 행복에 대한 그의 결바른 성정과 의미를 다시 뜨겁게 느끼며 까닭모를 자책과 고민에 빠져들군 하였다. 녀인의 애절한 부탁을 생각하며 사랑과 행복의 참의미를 굴려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제 감옥에서 풀려나간다면 남은 여생을 다 바쳐 그 고결하고 아름다운 녀인을 열배, 백배로 아껴주고 행복하게 해주고싶은 즐거운 갈망과 공상에 잠기기도 하였다.

그런데 결국 이렇게 그 녀인의 순결한 사랑과 행복에 대한 간절한 소원을 남겨놓은채 꺼지게 되였다.

(선녀를 두고 이렇게 연기처럼 사라지는것이 옳은 일일가? 내가 그 불같은 사랑에 아무런 보답이 없이 저세상으로 훌쩍 떠나는것이 과연 사나이다운 선행으로 될가?)

원쑤들로부터 우리의 사랑을 지켜내겠다고 오연하게 부르짖던 녀인의 말이 이 순간 의미심장한 의미로 가슴을 쩌릿이 울려주었다.

(아, 선녀! 나의 사랑아! 그대의 정, 그대의 목소리, 그대의 눈동자를 내 안고 가리다! 변치 않을 나의 사랑을 받아다오! 옥같이 순결한 그 사랑을 믿는다면 영원히 아껴주고 지켜주어야 하리라.)

조봉암은 결혼동의서에 있는 류선녀라는 이름 석자를 흐릿해오는 눈을 슴벅거리며 잠시 들여다보다가 조심스럽게 밀어놓았다.

부패한 통치배들이 부식한 이 사회의 모든것을 도전하여온 그였다. 그놈들이 이 땅의 민중에게 강요한 그 어떤 구속도 격식도 그는 접수할수 없었다. 결혼동의서라는 법적절차와 문서장도 이 땅의 권력자들이 만들어낸것이니 조봉암은 가장 숭고하고 가장 정다운 녀인에게 보내는 심장의 대답을 여기에 남기는것이 신성한것에 대한 모독처럼 생각되였다.

조봉암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소장, 미안한대로 종이와 쓸것을 좀 주오.》

《얼른 간수부장방에 가서 종이 한장, 연필 한자루 가져오라.》

조봉암의 부탁이라 군소리없이 접수한 형무소 소장이 담당간수에게 명령하였다.

간수가 이내 하얀 종이와 연필을 들고 와서 조봉암의 앞에 놓아주었다.

그는 종이에다가 자기 심장을 통채로 옮겨놓듯 또박또박 그리고 한자한자를 정성스럽게 적어나갔다.

《효경아! 연경아! 봉무! 나는 선녀선생님을 어머니라고 불러준 너희들의 마음을 고맙게 생각한다.》

조봉암은 두장의 종이를 형무소 소장에게 넘겨주고 문턱을 넘어섰다. 조인수가 형무소 의사와 례복차림에 성경책을 든 목사와 함께 기다리고있었다.

사형집행을 맡은 집행관이 나무걸상에 앉아있는 조봉암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상례대로 조봉암의 이름과 나이, 성별, 출생지에 대한 질문을 짤막히 하였다. 그 다음에는 형무소 소장이 판결문을 다시 랑독하고 대법원의 항소기각결정을 전달하였다.

조봉암은 입을 성벽처럼 꾹 다문채 다가온 죽음을 태연히 기다리고있었다.

목사가 성경책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도를 한 후 그가 나직이 물었다.

《어느 대목을 읽어드릴가요?》

《나는 무신론자요. 그러나 정 들려주겠으면 목사님이 나에게 제일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대목을 하나 읽어주시오.》

《그러리다.》

목사는 쉰 목소리로 대답하고 성경책을 뒤적거리였다. 한 대목을 찾아내자 비통한 목소리로 설명하였다.

《이 대목은 예수가 변절자 유다의 밀고로 원쑤들에게 체포되여 로마총독 빌라도의 앞에 나섰을 때의 대목입니다.

<…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한대 저희가 큰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

…>》

성경책에서 고개를 든 목사의 눈굽에 눈물이 번쩍거렸다. 마치도 성경의 한구절이 아니라 자기의 혼을 그대로 담은듯싶었던것이다. 목사도 조봉암이라는 사형수가 어떤 인물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하늘은 이미 그에게 무죄를 선고한것이다. 그래서 하느님도 예수의 이름으로 노성을 터뜨리고있는것이 아니냐.

《목사님, 감사합니다.》

《이것은 하늘이 당신께 보내는 고별의 노래올시다.》

목사는 옷소매로 눈굽을 찍어내며 거연한 자세로 앉아있는 조봉암에게 깊이 허리를 숙이고 물러났다.

《유언을 남겨주기 바랍니다.》

사형집행관이 이렇게 말하자 조봉암이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숙연한 사색에 잠겼다.

(유언이라…)

이 순간 그의 뇌리로 지나온 한평생이 번개치듯 피끗피끗 지나갔다.

3. 1인민봉기의 만세소리에 강산이 진동하던 그 시절부터 싸움속에 보내온 평생이였다. 결말은 이렇게 피로써 끝나가고있다.

적은 적이다. 포악한 승냥이들이다. 권력에 환장한 포악한 사탄의 미친 무리이다. 제놈들의 리권을 위해서라면 민중전체를 도살할수 있는 민족의 백정들이다.

그런데 이 간악한 파쑈도배들에 대하여 나는 어떻게 생각하여왔던가.

설마… 설마… 리승만이 제아무리 집권욕에 미쳐있기로, 간신배족속들이 독재에 아부하여 설레발을 치기로 남들의 눈이 있고 귀가 있는데 설마…

미국에 대해서는 또 얼마나 관대하였던가. 롤만까지 침뱉고 돌아선 강도의 무리들에게 추파를 던지고 영어까지 배우며… 그들이 손들어주기를 기다리며…

순간 그의 귀전에 그 모든 후회와 비감과 구슬픈 명상을 쳐던지며 장엄한 선률이 울리였다.

조봉암은 입속으로 그 우뢰같은 음악에 따라 조용히 가사를 뇌여보았다.

 

일어나라 저주로 인맞은 주리고 종된자 세계

우리의 피가 끓어넘쳐 결사전을 하게 하네

억제의 세상 뿌리빼고 새 세계를 세우자

짓밟혀 천대받은자 모든것의 주인이 되리

이는 우리 마지막 판가리싸움이니

인터나쇼날로 인류가 떨치리

 

그래, 결사전이다. 판가리싸움이다. 나는 최후의 이 순간까지 나의 위업의 정당성을 주장할것이다.

조봉암은 그 장엄한 선률속에서 조용히 유언을 남겼다.

《나는 해방후 15년간 리승만과 싸워왔소.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인가? 력사는 반드시 다시 선고를 내릴거요! 그리고 난 한생 정치에 몸을 담고 깨끗하고 아름답게 살아보자고 애를 썼소. 어떻게 사는것이 정치하는 사람으로서 아름다운 삶이겠는가. 그러면 나, 조봉암은 정치가로서 아름답게 살아왔느냐. 아마 그 대답도 우리 후세인간들이 해줄거요.》

조봉암은 자기의 말을 조인수가 다 받아적을 때까지 도간도간 사이를 두면서 마지막말을 남기고는 또다시 얼굴 가득히 함뿍 미소를 지었다.

《조인수검사, 난 임자가 내 말의 의미를 되씹어볼 때가 오리라는것을 믿소.》

불시에 움푹 꺼져든 조인수의 눈확에 그자신도 의식할새가 없이 눈물이 고여올랐다.

《죽산선생님!》

조인수는 너무도 여유작작한 조봉암의 모습앞에 목구멍이 잠겨 간신히 대답하였다. 그는 가슴을 압박하는 무서운 고통에 짓눌린듯 고개를 푹 떨구었다.

조봉암재판에 말려든이래 오늘까지 크나큰 번민속에 시달려온 조인수였다. 그는 조봉암의 손목을 부여잡고 이제 자기는 조상의 땅 창녕에 가서 속죄를 하며 조용히 농사나 짓다가 죽겠다고 고백하고싶었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이 지켜보는지라 입을 반쯤 열고 개풀린 눈으로 조봉암의 모습을 쳐다볼뿐이였다.

조봉암은 그에게 웃음을 남기고 안방문을 열듯이 무거운 철문을 밀고 교수대가 있는 침침하고 을씨년스러운 형장으로 들어섰다.

그의 귀전에는 다시금 폭풍의 노래, 결사의 노래가 비장하게 울리고있었다. 그는 노래를 심장으로 부르며 마지막길에 올랐다.

눈을 흡뜬것은 조인수였다. 사형수의 입가에 함뿍 담겨진 미소가 그의 눈시울을 그냥 쿡쿡 찌른다. 찌르르- 흉중을 훑어내리는 공포와 비로소 심장에서 삐져오른 가느다란 외줄기의 가책이 불시에 그의 넋을 쓰러뜨렸다. 그는 비칠거렸다. 입에 거품을 물고 허둥거렸다.

여기에 들어서면 사형수들은 례외없이 육체도 얼도 절반은 죽어버린다. 웃음은커녕 비명을 지르고 부들부들 떨면서 저승길에서 행여나 돌아서보려고 몸부림을 친다.

그런데 조봉암은 대평원의 락조를 련상케 하는 장엄하고도 숭고한 최후를 당당히 보여주며 떠나간다.

이 시대를 거머쥐고 만년장설에 얼어붙은 암흑천지에 우뢰를 몰아와 지각을 흔들며 한생을 크게 살아온 인걸이기에 생의 찬란한 빛을 거두는것도 저리도 기세당당하고 장쾌한것일가.

밟고선 땅이 흔들리고 세상천지가 깨지는것만 같다.

그는 한순간 온몸을 와들와들 떨다가 반넋이 나가 사형장문을 걷어차고 밖으로 내달았다. 미친개처럼 입을 벌리고 헐떡거리며 달리다가 불시에 무르팍이 매시시해져서 땅바닥에 털썩 넘어졌다. 그통에 돌부리에 박힌 이마빼기에서 삽시에 검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조인수는 입귀로 흘러드는 쩝쩔한 피를 퉤퉤 내뱉으며 이마빼기를 움켜쥐고 일어나앉았다. 얼빠진 놈처럼 앞을 막아선 기루마산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태양이 산마루에 걸터앉아 피빛락조를 화염처럼 뿜고있다. 서켠하늘에서 뭉게뭉게 떠돌던 목화송이같은 흰구름들이 처음에는 연분홍빛으로 곱게 피여오르더니 미구하여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한다. 점차 서쪽하늘에 비낀 붉은 노을은 연한 구름이 파도처럼 깔린 하늘중천으로 뻗어오르며 하늘전체를 진한 혈조로 물들인다. 노을은 하늘뿐아니라 기루마산을 통채로 불의 화염속에 타오르게 한다. 거기서 이어진 대지전체를 붉은빛으로 끌어안는다.

감옥의 우중충한 건물들과 이끼낀 담벽도 그 세찬 불길속에 휩싸여 불타오르는것 같았다.

부지중 조인수는 그 붉은빛에 혼비백산해진듯 목갈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거렸다.

《아-아- 막 타는구나! 불붙는구나! 아-아- 죽산선생님!》

 

일곱달후의 이야기

조봉암이 산화한 그날로부터 일곱달이 지나갔다.

드디여 리승만의 폭정 13년이 종막을 내리게 되는가. 새날의 해돋이가 시작된것이다.

1960년 3월 15일.

종신《대통령》의 개꿈에서 헤여나지 못한 리승만은 또다시 《대통령선거》에 후보로 출마하여 고병직과 맞불질하였다. 리승만은 고병직이마저 바로 4년전에 신익희를 없애버리듯이 제껴버리고 제4대 《대통령》자리를 타고앉았다.

마침내 민중의 주먹이 불끈 쳐들렸다. 그 주먹은 조봉암을 비롯한 시대의 선각자들이 벼려낸 주먹이였다.

조봉암이 피워남긴 꽃송이들도 독재의 아성을 짓부시는 총탄이 되고 폭탄이 되여 터져올랐다.

《리승만을 타도하라!》

《썩은 정치 타도하라!》

피어린 항쟁이 시작되였다.

독재의 총탄을 맞받아 나아가는 항쟁의 선두에는 최금룡이 지도핵심으로 있던 민주쟁취청년동맹이 있었다.

진보당의 맥을 이은 사회대중당건설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우달수와 신창균도 지지세력을 이끌고 항쟁에 떨쳐나섰다.

그 진두서렬에서 연경이와 효경이며 김봉무며 류선녀도 투쟁의 기발을 들고 보무당당히 나아갔다.

강화섬의 바위쇠도 몽득이도 한생토록 땅과 바다물에 닳고 절은 두손에 호미와 낫을 기치창검처럼 추켜들고 도도한 항쟁의 흐름에 합세하였다. 막수로서 강화섬의 경찰파출소와 자유당지부를 까부셨다.

《리승만을 타도하라!》

《미국은 우리 일에 참견말라!》

격노한 민중이 추켜든 주먹은 폭탄보다 위력하였다. 그 주먹앞에서 땅크도 도망치고 포신도 휘여졌다. 봉기자들의 노호한 함성은 천지를 진감하였다.

그 높은 기개, 그 거세찬 전진에 위세를 뽐내던 미강점군도 박쥐처럼 어둠을 찾아 숨어들었다. 천하 안하무인이던 리승만은 꺼이꺼이 곡을 하다가 항복을 하고 하와이로 줄행랑을 놓았다. 종신토록 권력의 자리를 내놓지 않겠다고 미국을 등에 업고 온갖 악행만 저질러온 독재자가 조봉암을 쓰러뜨린 때로부터 반년을 가까스로 넘기고 영원히 이 땅에서 쫓겨난것이다.

민중의 거세찬 요구와 압력에 의하여 진보당사건은 무효로 선언되였다. 피고석에 앉았던 사람들에게는 명예회복과 함께 보상이 내려졌다.

반면에 독재의 파수군으로 권력에 기생하여온 고등법원의 판사들과 대법원의 판사들은 죄상에 따라 줄줄이 감옥에 끌려가고 검찰총장과 정제관도 오라를 지고 철창에 갇히였다.

권력의 노복으로 살아온 조인수도 마땅한 징벌을 면치 못하였다. 고향땅에 가서 농사나 지으며 여생을 보내려던 소원마저 풀지 못하고 조인수는 재판을 받고 1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력사는 리승만과 함께 그에 아부하여 민중을 우롱하고 정의에 도전한 간신배들에게도 패자의 락인을 찍어놓은것이다.

이해 추석이였다.

이날 수많은 사람들이 서울 망우리의 조봉암의 묘소로 모여들었다. 진보당의 핵심들과 당원들과 지지자들이 꽃다발을 들고 물결쳐왔다. 강화도에서 찾아온 바위쇠와 몽득이를 비롯한 농사군들도 있었고 청년대학생들도 있었다. 나어린 소년, 소녀들도 있었다. 로성팔과 류선민을 비롯한 정객들도 있었다. 묘소를 에워싼 조객들가운데는 강치부의 처의 모습도 보였다.

묘소주변은 울긋불긋한 꽃송이들로 꽃밭처럼 단장되여있었다.

소복단장을 한 류선녀가 두쌍의 젊은이들을 좌우에 거느리고 꽃밭속에 둥그렇게 솟아있는 봉분앞에 서있었다. 그들은 효경이 내외와 연경이와 최금룡이였다.

집권세력의 야수적인 고문에 거의 페인이 되였던 최금룡은 4월인민항쟁이 터진 그날로 감옥에서 풀려나와 지금까지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다가 어제 저녁에야 병원측의 만류를 무릅쓰고 퇴원하였다.

그들의 곁에는 최기오가 힘들게 몸을 지탱하고 서있다. 반년이라는 세월을 넘기지 못한탓으로 산화한 평생의 의로운 벗의 죽음이 너무도 애통하여 어제 밤 홀로 이곳에 와서 눈물을 쏟았는데 지금도 턱부리로는 그냥 고드름이 녹아내리듯 맑은 방울이 뚤렁뚤렁 떨어지고있었다.

상돌앞에 세워진 커다란 화환의 댕기에 써있는 글발들이 꽃속에서 빛나고있다.

《죽산의 심장은 고동을 멈추었다.

허나 그 메아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죽산의 삶은 꺼지였다.

허나 그 삶의 향기는 세기를 진동하며 전해지리라.

동지일동.》

어느 한 화환의 댕기에는 이렇게 써있었다.

《창녕조씨조상들앞에 부끄럽게도 권력의 시녀로 살아온 수난자가 감히 죽산의 명복을 비나이다.》

이것은 얼마전에 재판을 받고 옥살이를 시작한 조인수가 처를 통하여 진정한 화환이다. 그가 가져온 화환을 효경이와 연경이가 받을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그런데 녀인이 자기 남편의 간절한 부탁이고 속죄라고 하면서 눈물까지 흘리며 너무 사정하기에 받아놓았다. 창녕조씨조상까지 거들며 화환을 보내온 조인수의 속죄의 의미는 조인수와 조봉암만이 알고있었다.

조인수는 조봉암에 대한 재판이 결속된이래 자주 조봉암과 나누었던 대화를 생각하군 했다. 이 랭혈의 인간의 꿈자리에 나타나는 조상들은 하나같이 조인수를 조씨가문을 더럽힌 패덕한이라고 꾸짖는다.

저지른 죄악의 공포심으로부터 찾아온 가책인가? 권력의 회초리에 아부하고 몰리다가 쪼각쪼각 여지없이 부서진 인생이 세월의 갑작변이에 날래게 날개를 펴보려는가? 아니면 정녕 4.19의 노도에 휘딱해진 량심이 구린내나는 한생을 되돌아보며 속죄의 피눈물을 뿌리는것일가?

조인수는 병들고 부패한 력사가 부식한 독재의 파수군이였다. 량심을 팔아 권세를 사서 살아온 시정배였다. 독재의 압제와 부패한 정치에 질식된 그의 넋이 이제 시대의 타종에 소생의 볕을 보려는지 두고봐야 알 일이다.

《아버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최금룡이 마치도 살아있는 조봉암과 마주선듯 목이 갈린 어조로 아뢰이였다.

그러자 봉분의 두리에 운집해있던 숱한 조객들이 물뿌린듯 잠잠해졌다.

《아버님, 기뻐하십시오. 아버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인가? 력사는 반드시 다시 선고를 내릴거요!>

자신의 삶에 대한 평가도 후세인간들이 할것이라고 아버님은 말씀하셨지요?

그렇습니다. 한해도 못되여 력사는 심판을 내렸습니다.

아버님은 민중의 마음속에 민중이 드리는 꽃다발속에 영원히 꺼지지 않을 아름다운 삶을 지닌 승자로 계십니다.

하지만 리승만은 이방의 땅 하와이에 도주하여 고국땅에 묻힐수도 없는 력사의 패자가 되였습니다. 우리 민중은 민심을 등지고 평생을 어지럽혀온 독재자의 치욕을 절대로 벗겨주지 않을것입니다.

아버님, 우리 동맹은 독재타도의 기발이 되여 나아갔으며 지금은 아버님이 생전에 그렇게도 애타게 열망하시던 평화통일의 대로에 당당히 기발을 올렸습니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

아버님께서 남기신 평화통일의 메아리를 우리는 이 구호로 기발에 새겨들고 전진합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우리의 투쟁을 보다 높은 승리에로 밀고나갈 방략이 부족하고 력량이 편성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미국놈들이 4월항쟁을 역전시키기 위한 또 한차례의 대모략을 준비하고있다는 풍설이 돌아가고있으나 우리는 그에 대처할 만단의 준비가 돼있지 못합니다. 아버님이 계시여 4월항쟁의 타수가 되여주시였더라면 얼마나 다행이였겠습니까. 우리 젊은 세대들은 이 준엄한 시기에 아버님을 목메여 부릅니다.

아버님, 우리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버님께서 저희들에게 남겨주신 당부대로 민중속에 들어가 민중에 의거하여 민중의 힘을 키워 전진할것이며 마침내 아버님이 평생을 바치신 민중세상을 건설하고 조국의 평화통일을 안아오고야말것입니다.

아버님! 부디 편히 잠드소서.》

최금룡이 상돌앞에 엎디여 절을 하자 조객들이 일제히 그를 따라 절을 하였다.

그들의 머리우에서 10월의 태양이 불타고있었다.

솜같이 희고 정갈한 구름이 푸른 하늘에서 북녘을 향해 뭉게뭉게 흘러가고있다. 사람들은 떠가는 구름을 보면서 달려오는 통일을 그리고있었다.

문득 한쌍의 동박새가 나타나 사람들의 머리우를 빙글빙글 돌아갔다.

《진- 진진- 진- 진진-》

사람들은 저마끔 비감에 젖어있던 얼굴을 들고 머리우를 그냥 맴도는 동박새들을 쳐다보았다.

새들은 봉분우에까지 낮추 날아와 애절한 울음소리를 내다가는 작고 예쁜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높이 쏜살같이 솟아오른다. 그러다가 다시 해빛을 함뿍 받은 나래를 반듯이 펴가지고 봉분우를 유유히 돌다가 상돌우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아! <죽산조>, <죽산조>다!》

불쑥 누군가의 입에서 탄성이 튀여나왔다.

비애에 휩싸여있던 군중은 또 한번 크게 움씰거렸다.

상돌우에 날아든 동박새들이 조봉암이 숨을 거둔 때로부터 한해가 지나간 오늘에 뭘 안다고 여기에 날아왔으련만 조봉암과 《죽산조》들사이에 맺어진 인연을 전설처럼 들어온 사람들은 너나없이 깊은 감회에 잠겼다.

《진- 진진- 진- 진진-》

예나제나 은방울소리같이 티없이 맑고 은은한 노래가락이건만 비애에 잠겨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소리가 처량한 흐느낌처럼 가슴들을 또 한차례 우벼내는것이였다.

동박새들은 통일제단에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 바친 렬사의 비장한 생을 노래하듯 꽃속에 묻힌 봉분을 향해 아롱다롱한 고운 깃을 촐싹거리며 《죽산! 죽산!》 하고 목메여 애타게 부르며 비통하게 우는것 같다.

애달픈 상념에 취해있던 사람들은 상돌앞에 앉아서 골을 떨며 구슬프게 우짖는 동박새를 숙연한 침묵속에 보면서 또 한차례의 눈물을 쏟았다.

《죽산조》! … 너는 우느냐, 웃느냐.

무엇이 슬프더냐, 무엇이 기쁘더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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