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8 회)
제 8 장
3
류선녀는 자기 방에 이불을 뒤집어쓴채 누워있었다. 여기저기를 천방지축 뛰여다니며 속을 썩여서 그런지 며칠째 신열이 났다. 어제 저녁부터는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신음소리까지 내며 앓았다.
효경이, 연경이가 머리맡에서 불덩이같은 그의 이마우에 찬물에 적신 수건을 놓아주며 온밤을 꼬바기 밝혔다.
보름달처럼 둥글납작하고 살결맑던 볼이 핼쓱하게 깎이고 입술에는 까스스 보풀이 일어있었다.
지금 응접실에서는 효경이자매가 식전바람에 달려온 신창균과 함께 아버지면회를 가기 위하여 부산스럽게 들락날락하고있다.
3심항소판결이 끝나자 조봉암에게 면회가 허용되였다. 한주일에 한번씩 30분의 면회시간이 차례진다.
면회요구자가 너무 많아 신창균과 윤기중이 엄격하게 선정하고있다.
효경이자매에게는 매번 5분간의 시간이 배당된다. 그 짧은 시간에 말도 몇마디 해보지 못하고 철창을 사이에 두고 아버지의 손목만 애끓게 잡고있다가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군 한다.
그래 오늘은 신창균과 윤기중이 특별히 가족만 만나게 할수 있도록 다른 면회신청자들을 설복하여 물러서게 하였다. 신창균이 그 소식을 가지고 왔던것이다.
효경이와 연경이는 그 소식을 듣자 무척 고마워서 아침식사도 건늬고 면회준비를 서두르고있었다.
그게 끝나자 연경이가 류선녀의 방으로 들어왔다.
《선생님!》
연경이는 류선녀의 이마에서 수건을 갈아주려고 하다가 이마에 손을 얹었다.
《어마나, 아직도 열이 떨어지지 않았군요? 병원에 가야 되지 않을가요? 우리 가는 차편에 함께 가다가 서울대병원에 떨어지는게 어떠세요?》
《괜찮아요. 속내의도 가지고 가겠지?》
류선녀가 이불속에서 나오려는것을 연경이가 만류하였다.
《예.》
《보신탕은 다시 덥혔구?》
《예, 덥혔어요. 아버지를 만날 때까지 식지 않을거예요.》
《찹쌀엿은 가져가지 말아요. 내 생각해보니 운동량이 부족되는 그곳 생활에서 단음식이 좋지 않을것 같애요. 혈당에 문제가 생길수 있어요. 선생님을 만나면 어제 이웃의 엿장수할머니가 정성껏 찹쌀엿을 만들어왔더라고 말씀드려요.》
여기저기서 매일같이 조봉암에게 자기들의 성의를 고이고싶어 가난한 살림에 지성품을 한두가지 들고 찾아온다. 그중에서도 조봉암일가와 오랜 기간 정을 나눠온 신당동사람들과 고향인 강화섬사람들이 제일 극성이다.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쩌나… 선생님이 가시지 않으면 아버지가 무척 섭섭해하시겠는데…》
연경이가 모처럼 차례진 가족면회에 류선녀가 빠지는것이 속상해서 바재이였다.
《됐어요. 어서 떠나요. 신부장님은 돌아가셨어?》
《아니요. 우리와 함께 가시다가 윤기중선생님댁에서 떨어지겠다고 했어요.》
《그래요? … 부장님께 내가 좀 뵙잔다고 해요.》
《예.》
연경이가 나가서 신창균을 들여보냈다. 류선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앉았다.
《아니, 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까? 바람간수를 잘해야지요.》
신창균도 류선녀가 몸져누웠다는 말을 들었던것이다.
《제가 지금 어디 누워있게 되였습니까? 신부장님, 따님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저와 같이 법무부에 좀 가주시지 않겠습니까?》
《법무부에요?》
《예, 죽산선생님의 일때문에 오빠를 만나야겠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부장님께 긴히 부탁을 드릴 일도 있구요. 무슨 바쁘신 일은 없으십니까?》
《아니요. 죽산선생님 위한 일보다 더 바쁜 일이 어데 있겠습니까? 헌데 그 몸으로 어떻게 간다고 그럽니까? 사실 오늘 가족면회에 참가하셔야 하는건데…》
《됐습니다. 면회나 자주 가서 뭘 합니까? 따님들이 가는데…》
《하긴 그렇지요.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선녀선생이 이 집을 지켜주는게 사실 우리에게는 큰 힘입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마음뿐입니다. 하는 일없이 걱정만 끼칩니다. 따님들을 바래워주세요. 저도 떠날 차비를 하겠습니다. 따님들이 걱정할가봐 좀 천천히 나가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십시오.》
신창균이 문을 열고 나가자 이어 자매가 들어왔다.
《다녀오겠습니다, 선생님!》
《잘 갔다와요. 아버님께 전해요. 여기 걱정은 말고 운동을 많이 하시라고요. 꼭 기쁜 소식이 있을거라구요. 그리고 효경이, 이번에 아버님 만나면 너무 울지만 말아요. 아버님이 상심하시지 않게 될수록 인상을 밝게 해요.》
《예, 명심하겠습니다, 선생님!》
류선녀의 다심한 깨우침에 효경이는 눈물이 그렁해서 대답하였다.
《또 또…》
류선녀의 핀잔에 자매는 생긋 웃었다.
그들은 류선녀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돌아섰다.
《가만!》
류선녀가 그들을 다시 돌려세웠다.
《내 언제부터 말하자던게 있는데…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지 말았으면 해요.》
《?…》
《아버님이 감옥으로 가실 때 나에게 하신 말씀이 있어요. 진보당이나 세워놓고는 새살림을 꾸릴 생각이 계셨다구요. 나는 믿어요, 이제 그럴 때가 오리라는것을… 그러니… 그날을 믿는다면 그렇게 부르지 말아요!》
《?…》
자매는 뜻밖의 소리에 그 의미를 씹어보듯 서로 눈이 둥그래졌다. 연경이가 먼저 류선녀의 말뜻을 헤아리고 품에 와락 안기며 목메여 불렀다.
《어머니!》
뒤이어 효경이도 류선녀의 손을 끄당겨 더운 눈물이 이랑을 지어내리는 볼에 갖다붙이며 정을 담아 속삭이였다.
《어머니! 저희들도 그렇게 부르고싶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저희들은 난생처음으로 되는 곡경을 치르고있는 이 어려운 시기에 어머니가 이렇게 함께 있어주시는것으로만도 눈물이 나군 했는데… 어머님! 딸들이 올리는 절을 받아주세요.》
효경이와 연경이는 류선녀의 앞에서 정하게 큰절을 하였다.
류선녀는 자매의 절을 받아주며 입가에 자애에 겨운 미소를 담았다.
그러나 이들자매는 감사의 인사를 올리면서도 류선녀가 이 시각에 어떠한 결단을 내리였는지, 그 의미가 얼마나 엄청난것인지는 미처 모르고있었다.
류선녀는 련 며칠째 고열에 시달리면서 이불속에서 평생에 가장 고되고 복잡다단한 고민과 절망과 번뇌와 비애를 씹으면서 운명적인 선택을 굳게 가다듬어왔다. 남다른 고뇌와 량심과 절개가 비껴있는 선택이였다.
그는 행복에 대한 자기의 애끓는 기대와 믿음마저 조봉암을 노린 너무도 서슬푸른 권력의 칼날에 란도질당하고있다는것을 뼈아프게 통감하고있었다. 조봉암이 감옥으로 가고 1심재판이 벌어질 때에만 해도 죽산선생은 반드시 풀려나올것이며 그러면 오랜 세월 그렇게도 애타게 갈망하여온 사랑이 성취되리라는 기대가 철석같았다. 그것은 그를 이 신당동에 그대로 눌러앉게 하고 새로운 희망에로 그를 고무하고 용기를 북돋아주고 힘을 보태준 주되는 빛이고 자양이였다.
그러나 류선녀는 법이라는것이 이렇게도 썩어빠지고 사회라는것이 이렇게도 악덕으로 빚어있는줄은 몰랐다.
리승만일파와 그와 야합한 미국놈들이야말로 악착한 강도들이였다. 그놈들은 조봉암을 기어이 교수대로 끌어가기 위하여 갖은 오그랑수와 협잡을 다하고있다. 재판을 아무리 해봐야 종당에는 조봉암을 제거하는것으로 막을 내리게 될것이다.
죽산선생님은 절대로 죄인이 아니며 따라서 그분은 반드시 승리하고 돌아오리라는 간절한 기대는 더럽고 부패한 이 사회에 대하여 너무도 몰지각한데로부터 생겨난 너무도 천진란만한 꿈이고 환상이였다.
독재세력은 민중이 사랑하는 아들을 교살하고 자기들의 사랑에도 끝까지 차단봉을 내리려고 피를 물고 발악하고있다.
어떻게 보듬어온 소중한 사랑인가. 바야흐로 열매를 맺게 되였는데 끝내 무르익히지 못하고 이렇게 스러지고만단 말인가. 아니, 절대로 그렇게는 되지 않을것이다! 네놈들이 우리를 갈라놓으려고 아무리 기를 쓰고 그악을 부려도 우리의 사랑은 깨버릴수 없다. 나는 그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것이다. 나와 죽산은 사랑에서 절대로 패하지 않을것이다. …
가정학이라는 학문의 상아탑과 현모량처를 최대의 미덕으로 내세우는 녀성의 세계속에서 단아하고 선한것만을 지향하던 그의 성정이 차돌같이 올차게 다져지고 이 세상의 불의에 대한 증오가 가슴속에서 활활 타올랐다.
류선녀는 죽산선생님에 대한 영원한 사랑이야말로 그를 끝끝내 형장에 끌어가기 위하여 버둥질하는 온갖 원쑤들에 대한 도전이고 징벌이며 그분의 삶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와 애정이라는것을 믿어마지 않았다.
오랜 나날의 뼈저린 회한과 고통스러운 동요속에서 류선녀는 마침내 자기의 길을 찾았다. 자기의 이 선택을 두고 세상이 또 어떤 질타를 보내오든 이제는 두렵지 않았다.
(그래, 난 절대로 비켜서지 않을테다! 살아도 죽어도 죽산과 더불어!)
류선녀는 자매의 손목을 꼭 그러잡은채 또다시 이렇게 마음다지고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