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5 회)
제 7 장
3
《재판장!》
재판시작을 알리는 재판장의 선언이 울리자 강치부의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판정에 제기합니다. 첫째, 증인으로 남으로 파견되여왔다는 그 특파원녀성을 신청합니다.》
《기각합니다.》
《리유는 무엇입니까?》
변호사가 깔끔하게 따지고들었다.
《검사가 이미 그에 대하여 밝혔고 신문들에도 보도되였습니다. 그는 투신자살하였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다면 피고 강치부에게 그 녀자의 시신에 대한 확인을 시켰으면 합니다.》
《이젠 기일이 너무 지나갔습니다.》
《사진이라도 볼수 없을가요? 신문에도 짤막한 보도만 났을뿐 그 녀자의 죽음을 확인할수 있는 증거는 없습니다.》
《증거란 그 녀자가 죽었다는 방첩대의 자료보고와 예심자료뿐입니다.》
재판장이 둘러맞추는 수작에 장내에는 비웃음소리가 났다.
《좋습니다. 둘째, 강치부피고인이 첩보대에 제출한 귀환보고서, 남북거래물품목록, 강치부가 감금되여있던 아지트에 대한 현장검증을 요청합니다.》
《기각합니다.》
재판장이 단마디로 일축하고는 잇달아 변명하듯 설명하였다.
《그것은 이미 1심재판에서 해야 할 검증절차입니다. 2심은 1심판결이 오심이 아닌가를 판단하고 오심이라면 해당한 판결을 다시 내릴뿐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기각리유는 첩보대의 내부공작에 대하여 사법부가 관여할수 없다는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방첩대가 넘겨준 기소장에 준할따름입니다.》
《리해되지 않습니다. 만약 사법부가 첩보대의 내부공작에 개입할수 없다면 무엇때문에 첩보대소속 인물을 이 법정에서 심문하고 판결을 내립니까? 어떻게 되여 법정수사권이 없는 방첩대가 기소장을 제기합니까? 그리고 내부공작에 개입하지 않고서 어떻게 옳고 공정한 판결을 내릴수 있습니까?》
재판장은 젊은 변호인의 사리정연한 공박에 말문이 막혀있다가 또 억지를 부리기 시작하였다.
《그건 말이요. 여기서는 그 사람들이 넘겨준 자료에 준하여 판결한단 말이요.》
《그렇다면 재판정의 재확인절차는 어떻게 밟아야 합니까?》
《하여간 방첩대란 비밀성역이요. 안되오! 기각입니다.》
《좋습니다. 당신이 정 사절한다면 이 문제는 넘어갑시다.
셋째, 피고 강치부의 고백을 확증하려면 반드시 미8군방첩대장 버드를 증인으로 내세울것을 다시금 강경히 제기합니다.》
이 문제는 벌써 조봉암의 변호인들속에서도 강력히 제기된 문제였다. 그런데 재판관은 버드는 외국인이므로 증인채택이 어렵고 또 지금은 직무이동으로 서울을 떠났으므로 그를 법정에 내세울수 없다고 일축하여왔던것이다.
사실 버드는 법정에서 자기 이름이 거들어지고있다는 보고를 받자 이내 서울을 떠나 도꾜로 가버렸던것이다. 버드는 떠나면서 리승만에게 북특파원까지 만들어냈으므로 재판은 《대통령》의 의도대로 끝나게 되였다고 장담하였다.
리승만은 처음에는 버드가 조봉암재판을 결속한 다음 떠났으면 좋겠다는 의향을 내비치였다. 그러나 재판이 어차피 올해를 넘길것으로 전망되는데다가 자기가 법정에 끌려나가면 미국의 영상이 크게 흐려진다는 버드의 핑게에는 더 어쩔수 없어 나머지일은 자기가 처리하겠으니 안심하고 떠나라고 등을 떠밀어주었다.
《미군의 고위인물을 재판정에 내세울수는 없습니다. 기각합니다.》
재판관은 변호사가 두말을 못하게 두부모베듯 딱 잘라버렸다.
《증인심문을 마감지으려고 합니다.》
재판장이 재판일정을 다그치려고 하자 이번에는 조봉암의 변호인단의 책임자가 항의하듯 받아넘겼다.
《마지막증인인 최금룡씨가 아직 증언을 못하지 않았습니까?》
《최금룡? 최금룡증인, 증언대에 오르시오.》
재판장이 시들한 어조로 말하자 새까만 양복에 진홍빛넥타이를 졸라맨 매끈하게 생긴 젊은이가 이 시각을 기다려온듯 증언대의 계단을 억센 걸음으로 성큼성큼 오르고있었다. 2심재판의 변호인단 증인으로 자청해나선 최금룡이였다.
최금룡은 증언대에 올라서자 먼저 피고석에 있는 조봉암과 그의 전우들에게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방청석을 둘러보았다.
연경은 애인의 따뜻한 눈길을 접하자 어쩐지 은연중 불안해지는것을 금할수 없었다. 이제 최금룡이 저 단상에서 무슨 청천벽력같은 일을 칠것만 같아 아니아니한 조바심이 그냥 가슴을 파고드는것이였다.
이윽고 변호사의 질문이 시작되였다.
《주소와 직무는?》
《인천법률상담소에서 법률봉사를 하고있습니다.》
《그전에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죽산선생님의 개인서기로 있었습니다.》
《1심때 검사증언에서 자신이 피고 조봉암의 사위라고 한것 같은데 검사의 증인심문때 피고 조봉암의 곁을 떠난 리유를 밝혔던것 같습니다. 진보당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였다지요?》
《옳습니다.》
《피고 조봉암에 대한 기소장에서는 무엇이 불만스러웠습니까?》
《거야 뭐 많지요. 그런데 이미 1심과 2심에서 여러가지 문제들이 밝혀졌으므로 나는 이번 증언에서 죽산선생님의 곁을 떠난 문제를 놓고 보다 진실을 밝히고저 합니다.》
《그래요? … 말해보시오.》
최금룡은 변호사와 비교적 례사로운 어조로 주고받았다.
사람들은 야릇한 호기심을 가지고 그를 지켜보았다.
최금룡은 잠시 장내를 다시 둘러보며 가슴속에 고즈넉이 차오르는 흥분을 가라앉히였다.
《나는 오늘 진보당을 떠난 리유를 놓고 법정을 통하여 진실을 밝히는 문제를 둘러싸고 내가 소속되여있는 사회단체인 민주쟁취청년동맹과 진지한 협의를 거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알려진바와 같이 죽산선생님을 한없이 흠모하고 존경하는 민중의 한사람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따님을 련인으로 사귀고 정을 나누어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죽산선생님이 가장 힘들어하시던 그 시절에 진보당을 단호히 뛰쳐나오게 되였는가? 물론 여러가지 리유가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리유는 진보당의 강령과 정책을 도저히 접수할수 없었기때문이였습니다.》
《아, 좋습니다. 그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혀주기 바랍니다.》
재판관이 그 말을 기다리기나 한듯 얼른 호기있게 그를 부추겼다.
《진보당의 주요투쟁목표는 나라의 평화적통일입니다. 물론 이는 환영합니다. 문제는 다음입니다. 진보당은 민주주의를 리념으로 내세웠고 실현방도로서 자유선거를 통하여 권력을 잡으며 당원들을 국회에 진출시켜 통치권의 평화적교체를 이루는것을 들고나왔습니다.
선생님은 지난 10여년세월 하루같이 이 목표와 전략을 기치로 추켜들고 미국과 리승만이 쌓아올린 독재의 성벽에 끝내 파렬구를 열어놓았습니다. 드디여 우리 민중이 민중사회건설과 평화적통일이라는 민족재생의 기치를 접수하고 따라서게 되였습니다. 선생님에게 바쳐진 민중의 지지표가 그걸 증명해줍니다.
오늘 선생님의 리상은 우리 민중을 새 사회에 대한 열망으로 분기시키고있으며 바로 그것으로 하여 선생님은 우리 이남민중의 존경을 받게 되였습니다. 선생님을 무한히 아끼고 사랑하는 민심은 이 재판정에도 그대로 력력합니다. 선생님의 아름다움은 피와 생명을 바쳐온 그 리상으로 하여 무한히 고귀하고 순수하며 그래서 선생님은 우리모두의 심장과 심장들에 벗으로, 은인으로, 스승으로, 길잡이로 되고있는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무춤 말을 멈춘 최금룡은 조봉암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이였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범상치 않은것을 안고 법정에 나선 젊은이가 진지하게 펼쳐놓은 증언으로 하여 숙연한 정적에 휩싸여있었다.
다시 고개를 쳐든 최금룡의 눈빛이 서서히 불타올랐다. 그는 보다 박력있는 어조로 말을 계속하였다.
《선생님께로 달리는 우리의 걸음은 괴로워도 아파도 여기서 멈춰세워야 합니다. 왜서이겠습니까? 오늘의 시대가 부식해놓은 력사적과제를 투시해야 할 민중의 눈을 흐려놓기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이 시대가 제기한 과제를 선생님이 추켜든 리상과 전략으로써는 해결할수 없다는것입니다. 그것은 자본사회의 온갖 악덕을 합리화하여주는 무익한 정치의 유희에 불과합니다. 괴로워도 우리는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최금룡이 잠시 말을 끊자 장내가 소란해졌다.
조봉암마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서 숨을 거칠게 내쉬였다. 그는 급하게 뒤채이는 심장의 동통을 느끼고 가슴을 끌어안았다. 최금룡에게로 실망과 놀라움이 찬 눈길을 보내며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곡절많은 인생길에 하많은 수난과 좌절속에서도 꺾임이 없이, 후회가 없이 투사의 보람과 긍지를 얹어두고 오는 조봉암이였다. 부끄럼없는 한생, 자부심을 가질만 한 평생길을 그는 감옥의 길고긴 밤을 지새우면서 무한한 감회속에 돌아보군 한다. 그런데 미소를 짓고 더듬어보던 그 한생을 최금룡이, 이제 정치라는 깊디깊은 심연의 어귀에 발이 잠길듯말듯 하는 햇내기가 감히 가차없는 일격으로 부정해버린것이다. 예리한 서리발이 서린 최금룡의 부르짖음은 조봉암의 속을 순간에 활 뒤집어놓았다.
《음-》
부지중 꾹 다문 입새로 신음소리가 뿜어져나왔다. 감정도 리성도 정지된듯싶었다. 심장은 그냥 쌍방망이질 하였다.
(정치의 유희라니?! 어떻게 우리의 피어린 싸움을 애들 놀이로 볼수 있단 말인가.)
조봉암의 가슴속에 노여움이 부그그 괴여올랐다.
조봉암의 전우들도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도 아연해서 최금룡에게 눈총을 쏘고있었다.
반대로 판사들과 검사, 청중속의 조봉암반대세력은 조봉암과 진보당을 잔뜩 추켜올리다가 《시궁창에 처박아놓는》 최금룡의 재기있는 말솜씨에 크게 경탄해마지 않았다.
《멋지다! 그냥 조겨봐라!》
어느 구석에선가 부추기는 소리다. 그 수작에 호응하듯 휘파람소리, 해괴한 소리들이 터져나왔다. 흐덕흐덕 웃어대는 축들까지 있다. 그들은 고소를 금치 못했다. 특히 조봉암의 투쟁에 대하여 걸고든 인물이 자신을 조봉암의 제자라고, 그의 사위감이라고 공개해버린 청년이라는것에 더없이 통쾌해하였다.
조봉암의 면상에 어떻게라도 흠집을 만들어주고싶어 안달이 났던 재판장은 소란스러워진 법정분위기가 흡족해서 그를 부추기듯 입만 헤- 벌리고있었다.
장내에서 유독 연경이만이 이제 저 말뒤에 이 법정을 뿌리채 뒤엎을 파격적인 폭발이 일어번질것이라는 비장한 예감에 사로잡혀 최금룡의 당당한 모습을 아슬아슬하게 쳐다보고있었다. 저것은 이제 쏟아놓을 폭우의 전조에 불과할뿐이다.
《그렇습니다. 지금 진보당은 가장 포악한 독재가 란무하는 이 사회에 정당정치라는 민주주의분칠을 해주고있습니다. 진보당은 그 승리가 묘연한 선거놀음으로 민중을 현혹시키고 헛된 기대를 주고 나중에는 뼈아픈 상실과 좌절만을 남겨놓았습니다.
우리 민중은 여러차례의 선거놀음을 통하여 이 땅에 지배자로서 외세가 있는 한, 무지하게도 영구집권을 꿈꾸는 독재자와 그에 기생하는 권력층이 도사리고있는 한 절대로 민중사회건설도, 폭압권력의 종식도, 나라의 통일도 있을수 없다는것을 벌써 깨달아야 했을것입니다.
보십시오, 이 재판놀음을! 이것이 어디 불법무법에 대한 법의 심판정입니까? 이것이 과연 인간세상의 악에 대한 선의 심판입니까? 이것도 부정의에 대한 정의의 심판이란 말입니까?
재판장! 그리고 여러분! 어디 한번 대답해보십시오. 그래 우리 민중의 량심이며 이 사회의 정의인이신 죽산선생님이 죄가 있어 저 피고석에 앉아계십니까? 정의와 진보의 기치를 든 진보당이 정말 불법단체가 되여 줄기도 올려보지 못하고 백색의 서리에 스러졌습니까? 저놈들은 죽산선생님을 교수대에 올리기 전에는 절대로 이 재판을 끝내지 않을것입니다.
눈을 뜨십시오! 각성해야 합니다! 환상, 환상에서 깨여나십시오!
저놈들의 뒤에는 미국이 있습니다. 오늘의 이 모략극도 미국대사 다울링과 리승만의 합의에 따라 미8군방첩대장 버드의 조종하에 벌어져왔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를 립증할수 있는 충분한 자료가 있습니다. 미국놈들이 이 땅에서 주인행세를 하는 한, 미국의 침략정책의 하수인으로 복무하는 가장 철저한 미국의 주구, 희세의 폭군, 권력미치광이가 존재하는 한 절대로 이 땅에서 정치의 평화적교체도, 나라의 평화적통일도 이룩될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 사회를 변혁하는 출로가 있는가? 있습니다, 출로가 있습니다! 우리 민주쟁취청년동맹은 그 출로를 찾았습니다!》
최금룡은 이렇게 열차게 부르짖으며 두팔을 높이 쳐들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재판장이 히물거리던 웃음발을 지우고 황급히 경고하였다.
《증인!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가? 여기는 법정이요. 신성한 법정을 우롱하는가? 증언을 끝냈으면 내려가시오. 그러나 방금까지 한 괴이한 소리에 대하여서는 책임져야 할거요.》
《그렇소. 나는 자기의 발언을 책임질 각오가 되여있소.
여러분! 나는 우리 동맹의 이름으로 이 증언대를 빌어 성명합니다. 시대의 탄식에 귀를 기울이는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해결방도가 묘연한 구호는 가련한 인생들의 넉두리에 불과할뿐입니다.
나는 청년동맹의 이름으로 우리 사회의 전위부대인 청년학생들에게 열렬히 호소합니다. 우리는 항쟁을 주장합니다. 뭉쳐진 주먹으로 철권통치를 쳐부셔야 합니다. 출로는 하나, 대중적항쟁입니다!》
최금룡의 힘찬 선언이 계속되자 재판장이 악을 썼다.
《뭐야? 항쟁이라구? 신성한 이 법정에서 감히 북의 혁명론을 선동해? 저놈을 당장 체포해!》
《재판장! 천만의 망발이요. 대중적항쟁은 이 더러운 사회가 만들어낸 시대어요. 당신들이, 바로 당신들이 우리 청년학생들을 항쟁의 포도로, 피의 결사항전에로 떠밀고있소. 당신들, 압제자들이 우리 젊은 세대를 항쟁에로 부르고있단 말이요. 당신들은 우리 민중을 깔보고있소, 너무너무 깔보고있소. 항쟁만이 살길이라는것은 10여년간 전제정치의 총화라는것을 명심하시오.
아버님! 유토피아의 꿈에서 깨여나십시오. 저놈들과 빌어도 보고 달래도 보고 사정도 말겨루기도 해보았으나 결과는 무엇입니까?
강화섬의 바위쇠로인이 벌써 선언했습니다. 막수를 써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옳습니다! 우리 사회의 부패와 독재는 내과적약물치료가 아니라 외과적인 수술방법으로만이 청산할수 있습니다. 이 사회는 들부셔야 깨집니다. 장쾌하게 내리꼰지는 폭포만이, 누리를 휩쓰는 불바다만이 철저하게 썩고 병든 부패정치를 깨끗이 쓸어버릴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님, 아버님은 응당히 자신의 평생에 대하여 긍지를 가지셔야 합니다. 아버님은 대중적항쟁이 바야흐로 무르익은 우리 시대를 불러온 선각자입니다. 아버님과 진보당은 혁명을 키워준 밑거름이 되였습니다. 항쟁의 화약고를 마련하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세대는 아버님을 사랑하며 존경합니다.
우리 젊은 세대는 맹세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 화약고에 불을 달것입니다!》
《발언중지! 발언중지! 경찰, 뭘 하는가? 저자를 체포하라, 어서!》
재판장이 너무 급해 엉치를 들썩거리며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경찰이 증인석으로 뛰여올라왔다.
재판장을 쏘아보고있던 최금룡이 경찰을 향하여 준엄하게 경고하였다.
《경찰, 다가서지 말라! 아래에 내려가 기다려! 돌아섯! 말을 안 듣겠는가?》
최금룡의 호령에 주춤거리던 경찰이 다시 다가들었다.
《좋다! 그렇다면 나도 방법이 있다.》
최금룡은 품에서 그리 크지 않은 수지병을 꺼내더니 라이터를 들어보였다.
《이건 신나병이다. 네가 감히 내 몸에 손을 대려 하면 여기에 불을 달겠다. 그래 나와 함께 여기서 죽어버릴테냐?》
경찰은 분신자결을 각오한 최금룡의 손에 들린 신나병과 라이터를 눈이 퀭해서 보다가 기겁하여 비명을 지르며 바삐 물러섰다. 청중석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최금룡이 방청석을 향하여 돌아서서 우렁차게 웨쳤다.
《우리 청년동맹은 독재와 반독재의 결사의 대결이 치렬하게 벌어지고있는 바로 이 법정에서 우리의 동맹을 공개하며 외세와 권력집단에 첫 포문을 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나는 동맹의 결정집행을 위하여 이 법정에 나섰습니다.
우리는 기어이 전체 청년학생들을 궐기시켜 힘으로 새 사회를 만들어내고야말것입니다. 젊은 세대의 뭉쳐진 주먹으로 리승만독재의 종말을 선언할것입니다.
아버님, 믿어주십시오! 멀지 않아 때가 옵니다. 우리의 드센 주먹이 이 땅에 민주의 새봄, 통일의 새봄을 마련하고야말것입니다. 저는 바로 이것을 위하여, 나라의 통일을 위한 준비를 위하여 진보당에서 탈퇴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버님의 둘째사위는 예나제나 소나무로 살아왔습니다. 래일도 모레도 불사조로 살아가렵니다! 절대로 철새가 아니였으며 앞으로도 아닐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저의 증언을 끝마치려 합니다.》
억센 부르짖음이 팽배해질대로 팽배해진 법정의 분위기를 갈가리 찢어버렸다.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청년투사의 심장의 호소와 담대한 모습앞에서 사람들은 크나큰 격정에 휩싸여있었다.
최금룡은 자기가 조직앞에 열렬히 청원하여 걸머진 어려운 임무를 다 끝내자 얼굴에서 긴장을 풀고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사실 최금룡이 주요핵심인물로 활약하고있는 청년결사에서는 재판정에서 자기들의 폭력투쟁주장을 만천하에 선포하는것과 관련하여 심각한 론쟁이 있었다.
반대론자들은 재판정에서 지금까지 숨겨온 자기들의 조직명칭까지 공개하고 이남의 전체 청년학생들을 폭력에 의한 독재정권타도에로 궐기시키는것은 시기상조이며 놈들에게 탄압의 구실을 주고 조봉암에게도 리로울것이 없는 실효가 적은 객기라고 반대하였다.
그러나 최금룡은 또다시 온 사회가 혼란과 무질서에 빠져들 래년도의 선거전을 반년가까이 앞두고있는 이 시각이야말로 적들과의 공개적인 싸움을 정정당당하게 선포하고 청년학생대중을 항쟁의 거리로 불러내기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력설하였다.
끝내 최금룡과 그의 지지자들의 립장이 조직의 결정으로 채택되였다. 그 장소는 독재세력과 반독재세력의 예리한 싸움마당으로 세인의 초점을 모으고있는 재판정으로 눌러졌다. 임무의 중요성과 가능성을 타산하여 자기를 내세워줄데 대한 최금룡의 열렬한 결사의 탄원도 전우들의 눈물속에 통과되였다.
최금룡은 만약의 경우를 타산하여 조직의 결정을 원만히 수행하지 못하고 좌절될 때에는 분신자결로 청춘들의 심장에 불을 지르려고 속다짐하고 이 자리에 나섰는데 다행으로 할 소리를 다하고나니 마음속이 그지없이 홀가분하여졌다. 그는 자기의 크지 않은 싸움이 이제 열배, 백배로 증폭되여 이남전역의 청년학생들의 가슴들을 흔들어놓으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최금룡은 물기가 그렁해서 자기를 쳐다보는 연경이를 눈길로 더듬어 고개를 의미심장하게 끄덕여보이고나서 돌아섰다.
최금룡은 계단을 천천히 내려와서 호송경찰에게 신나병과 라이터를 넘겨주고 그가 내미는 수갑을 받았다. 그는 법정을 떠나면서 자기를 경탄과 혹은 적의와 혹은 동정과 혹은 사랑과 미더움을 담아 바래주는 청중을 향해 수갑을 찬 두팔을 올리며 구호를 웨쳤다.
《리승만독재를 타도하라! 미국은 물러가라! 조국의 평화통일 만세! 항쟁 만세!》
재판장은 서둘러 휴정을 선포하고 도망치듯 법정을 떠나갔다.
《금룡씨!》
순간 애끓는 처녀의 부르짖음이 뜨거운 열기가 소용돌이치는 법정안을 쩡- 가르며 울렸다.
연경이가 자리에서 솟구치듯 일어났다. 청중의 눈길을 한몸에 걷어안은채 최금룡이 잡혀가는 법원마당으로 바삐 달려나갔다.
뜻밖의 광경에 부닥치자 조봉암은 모든 생각이 갑자기 얼어붙고말았다. 눈앞이 뿌얘졌다. 아직은 그 의미가 묘연한 비장한 흥분과 감동에 휘말려들어 최금룡이 끌려나간 출입문만 바라보았다. 가슴이 쓰려왔다. 소나무로 살아왔고 불사조로 살아가리라는 그의 심장의 부르짖음이 그냥 뇌리를 때렸다.
조봉암은 이날 형무소에 돌아간 후에도 최금룡의 생각에 시달렸다. 그가 법정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웨치던 말들이 그냥 그의 뇌리를 쿡쿡 쑤시였다. 재판장과 경찰의 제지를 박차고 자기 동맹이 준 결사의 과업을 끝까지 해내던 그 불사신같은 모습이 산악처럼 장엄하게 눈앞을 가리웠다.
(내가 무엇을 몰랐는가. 내가 무엇을 잘못하였는가.)
무수한 생각들이 눈앞에서 흩날렸다. 자신에게 실망하고 자신을 잃어간다는것은 비통한 일이였다. 그러나 지금 조봉암은 자기의 지난날이 허무하게 생각되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최금룡이 바로 자기에게 새로운 눈을 번쩍 틔워준것이다.
(금룡아! 이 어리석은 조봉암이 이제야 뭔가 깨도가 되는것 같구나!)
그는 새로운 눈, 금룡이가 틔워준 눈으로 자기의 한생을 랭정하게 돌이켜보았다. 그것은 자기의 한생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고통스러운 추억의 몸부림이기도 했으나 거기에서 벗어날수도 없었다.
(제3의 길? … 현실정치… 민주주의… 역풍의 정치가? … 정치는 예술이라구? …)
조봉암은 쓰겁게 중얼거리였다. 그는 난생처음으로 그렇게도 비상한 꿈과 용기와 희열을 안고 줄달음쳐 헤쳐온 고난과 역경과 꺾임없었던 투쟁의 자욱자욱을 비판적안목에서 되돌아보았다. 자기가 긍지를 가지고 주장하고 투쟁하여왔으며 민중의 사랑과 기대를 받아오던 그 모든것을 길지 않은 시간에 신랄하게 부정하여버린 최금룡의 절통한 부르짖음이 그냥 흉벽을 사정없이 찌르고 뼈와 살에 에여들었다.
나는 왜 내가 그토록 젊은 시절에 풍운을 휘저으며 그렇게도 신봉하여마지 않았던 붉은기를 《제3의 길》이라는 보자기에 꽁꽁 싸매놓아야 했던가. 리유는 많으나 주되는것은 반공을 《국시》로 선언한 리승만과 미국놈들이 무서웠기때문이였다. 리승만이 권력의 쌍기둥으로 세워놓은 반공과 반북에 짓눌렸기때문이였다.
비겁성! 비겁한 정치가! … 그 비겁성을 반영해나선 《제3의 길》…
흥! 그래, 현실정치라는 구호란 한낱 기회주의의 변형된 요설이였구나. 그 비겁성이 미국놈들이 이 땅에서 제멋대로 백성을 주무르게 하고 리승만처럼 량심이 결핍된 사대매국노가 정치권을 롱락하고 이 땅의 정의를 유린하며 희세의 악마로 백성의 머리우에 군림하게 하였다.
(왜 나는 저 금룡이처럼 시원스럽게 미국은 물러나라고 그놈들의 상판에 대고 주먹질을 못해왔을가. 왜 나는 리승만을 타도하라고 민중에게 소리쳐보지 못했던가. 그 역시 비겁하였기때문이였다. 나의 무기력이, 우리의 유약한 싸움이 미국놈들과 그 앞잡이들을 더 오만방자하게 버릇을 굳혀주었다.
그놈들이 우리 민중을 숫보고 우리 정치를 아이들의 유희처럼 조롱하고 날이 갈수록 포악하고 철면피해지는것은 결국 우리의 주먹이 무른탓이다. 우리의 정신력이 박약했던탓이다. 우리의 구호, 우리의 맥박이 가늘었기때문이다.
우리는 초연을 피하고 순풍에 돛을 올리려고 애써왔다.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후회란 때늦어도 력사의 교훈은 옳게 찾아내야 한다.)
그는 그냥 뼈를 깎는 때늦은 가책과 번민에 몸부림치면서 자신에게 준엄한 선고를 내렸다.
(그런데도 역풍의 정치인이냐? 사라질 때가 되였다. 그런즉 저 금룡에게는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답답하고 진부해보였을가. … 최금룡! 자네가 옳은것 같네. 음- 괴로워도 난 그걸 인정해야 할가보네.)
조봉암은 자신의 고뇌를 누가 엿보기라도 하는듯 감방을 휘휘 둘러보았다.
그는 최금룡의 그 영웅적인 의거가 장차 료원을 휩쓸게 하는 불씨가 되리라는것을 의심치 않았다. 항쟁을 호소한 최금룡의 법정선언은 이제 남조선전역에 전해져갈것이다. 도시와 마을을 한바퀴 휘저으면서 젊은 세대들의 가슴에 불을 달아줄것이다. 미구하여 이 땅전체가 항쟁의 불길에 타번지게 될것이다.
그래… 벌써 화약고에 최금룡은, 우리의 자랑스런 새 세대들은 불을 달았다. 화약고는 터지고야말것이다. 압제의 사슬에 칭칭 묶이운 이 암흑의 동토대가 그 불길에 해빙의 새봄을 맞게 될것이다. 독재로 황페화된 불모의 땅에 싱싱한 정의의 새싹이 뿌리내려 민주의 새 력사가 펼쳐질것이다.
불현듯 볕에 타고 세파에 찌들린 강화섬 소꿉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은 원체 선거놀음에 큰 기대를 걸지 않고있었다. 그들은 죽산이 선거에 패하자 속세를 버리고 사찰에 숨어버렸다는 풍설을 듣고 피로 새긴 련판장까지 들고 오기는 했으나 선거전에서의 우리의 승리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종이장이나 가지고서는 절대로 총칼을 이겨낼수 없다고 분명하게 주장을 밝혔다.
이태전에 서울을 떠나 망명의 길에 오른 천령배의 모습도 비껴들었다. 감옥에서 풀려나온 후 불암산수림속에서 마주섰을 때 뭐라고 괴롭게 자신을 타매하였던가. 자기는 지난 5년간 감방에서 자기의 한생을 특히는 해방후에 벌린 자기의 투쟁을 심각히 자체검토하고 뼈저린 가책을 받았다고 하였다. 그때 벌써 천령배도 명백히 찍고 넘어갔다. 미군이 존재하는 한 이 척박한 극우의 풍토에서 정당정치란 하나의 형식에 불과하다고 의미심장하게 우리의 투쟁을 부정하였다. 그때라도 우리는 자기의 투쟁을 전면적으로 검토하고 《제3의 길》에 대한 미련을 버렸어야 하지 않았는가.
그러면 바위쇠며 천령배가 터놓은 진심의 목소리는 무엇이였던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호소하였던가? 이 사회를 바라보며 이 사회의 병페를 가셔내는 방도가 그들에게 없었던가?
오늘 재판에서 최금룡이 그를 상기시켰다.
1심재판때 《배꼽철학》을 풀어낸 강화도의 소꿉친구 바위쇠가 분통해서 연탁을 두드리며 하던 부르짖음이 귀전을 때렸다.
《빌어도 안되고 소리쳐봐도 안되니 그 다음에는 우리 농사군들도 막수가 있다. 호미, 낫을 벼려들고 나쁜 놈들 찍어넘기는 막수가 있다. 이걸 명심해라. 우리 강화사람들은 예로부터 쟁기쓰는 법을 잘 안다!》
그래, 바위쇠의 말이 옳다.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농사군들이 눈물과 고초속에 찾아낸 결론이다.
미군을 몰아내고 독재를 들어내자!
그렇다! 이제는 막수를 써야 한다. 민중의 그 열망과 의지를 찾아내고 거기에 불씨를 던져 항쟁의 노도를 일으키려는 젊은 투사들! 너희들이야말로 민중을 알고 통일과 민주의 새시대로 가는 지름길을 개척하는 새날의 주인들이다.
최금룡! 아, 이 땅의 려명을 향해 항쟁을 부르짖는 나의 미더운 사위, 금룡아! 너야말로 시대의 선각자이다!
단숨에 기성을 앞지른 젊음이 대견스러웠다. 부럽기도 하였다.
저들은 시대를 밝게 조명해주는 한줄기의 광휘로운 빛이다. 그러고보면 이 시대는 결코 낡고 부패한것만이 꽉 차있는 력사의 지경밖은 아닌듯싶다.
아니다. 이 시대에도 청춘의 넋은 줄기차게 굽이치고있다. 시대는 결코 로화되지 않았다. 시대가 바뀔수록 저렇듯 보다 아름답고 씩씩하고 과단성있는 청춘들이 대를 이어주고있거늘 이 시대라고 어찌 로화될수 있으랴. 겨레의 앞날을 비관하지 말자. 보다 창창한 래일을 저들 젊은 넋들이 불러오고있지 않느냐.
조봉암은 그렇듯 소중한 최금룡이 지금 감방에서 낡은 시대를 고집하는 사냥개들에게 물어뜯기우고있을것을 생각하니 뼈가 부스러지는 아픔이 온몸을 죄여들었다.
최금룡의 세대는 구시대인들이 마땅히 당해야 하는 희생과 피를 대신하고있다.
조봉암은 자책과 번민에 휩싸여 뙤창너머 비껴든 하늘을 망연히 쳐다보며 애타게 입속으로 부르짖었다.
(이놈들아, 금룡이를 다치지 말아. 그네들은 이미 매장되여야 했을 너희들, 구실 못한 우리 세대를 대신하여 고행의 가시밭길에 들어선 정의의 사자들이다. 금지옥엽으로 아껴야 할 시대의 청순한 애잎이 이제 바야흐로 거목으로 될 때 이 민족, 이 사회도 번성하려니… 아서라, 그들을 다치지 말어라!)
조봉암은 며칠후 2심재판의 선고를 들으면서 다시금 최금룡이 이 재판은 자기를 교수대에 끌어가기 전에는 절대로 끝나지 않을것이라고 하던 말을 되새겨보았다.
조봉암과 강치부에게는 사형이 선고되였던것이다. 그리고 1심판결에서 무죄로 되였던 그의 전우들에게도 모두가 15년이상의 중형이 언도되였다.
사기적이며 강도적인 재판이였다.
강치부의 허위자백까지 참고한 1심에서도 조봉암에게 5년의 유죄판결을 내렸는데 강치부가 그 자백마저 뒤집어엎은 2심에서 추가된 죄도 없이 보다 혹독한 극형을 선고한것은 너무도 어불성설이였다.
그래서 온 법정이 깜짝 놀라 한동안 소요속에 휩싸였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튀여나왔다.
그러나 조봉암은 최금룡이 통절하게 부르짖던것을 생각하며 태연자약하게 앉아있었다. 구태여 망연자실도 없이 태연한 표정으로 판결을 받았다.
최금룡은 참으로 옳은 말만 하였다.
환상! 환상! … 모든 실책과 좌절은 거기서 시작된것이였다. 애초에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할수 있다고 덤벼든것부터가 환상이였다.
장관노릇 할 때 벌써 나는 교훈을 찾았어야 했었다. 얼마나 천진하도록 단순하였던가. 농림부 장관이 되면 토지문제도 해결하고 공동조합도 조직하여 농민들을 세기적질곡으로부터 해방시킬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끝내 빛을 보지 못한채 물러나고말았다. 《국회》부의장이 되여 《국회》의 민주화를 실현하고 《대통령》을 길들여보려고 했으나 대다수의 《국회》의원들이 얻어맞고 숨어버리고 피살당한것으로 하여 그것마저 흐지부지되여버렸다.
52년과 이태전에 선거를 통한 권력의 평화적교체에 한가닥의 희망을 얹고 뛰여들었으나 그 역시 요사스러운 미국놈들의 간계와 독재의 칼날에 좌절되고 종당에는 오늘과 같이 사형선고로 결말을 보게 되였다.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우리가 겪고있는 이 모진 수난도 원쑤에 대한 환상이 가져온 응당한 보상이다.
고금동서를 살펴봐야 그 어느 력사에도 독재자가 웃으면서 제발로 옥좌에서 내려선적은 한번도 찾아볼수 없다. 우리의 력사를 돌이켜보아도 악정만 일삼던 포악한 군주들이 파멸직전의 마지막순간까지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버둥거린 례는 얼마든지 있다.
어째서 독재자들은 자기의 잔명이 끝났다는것을 알면서도 마지막순간까지 종신집권의 망상을 버리지 못한채 오로지 피로 얼룩진 칼부림으로 자기 이름을 력사에 어지럽게 새기려드는가. …
조봉암의 사색이 드높은 감정의 앙양속에 불길처럼 타올랐다.
재판관이 악을 쓰며 떠들어댔다. 제놈이 내린 판결의 《법적 타당성》에 대하여 설명하는것이다.
조봉암은 그놈의 사설이 한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깊은 사색의 심연에 묻혀 자신을 채찍질하였다.
력사의 그 어느 갈피에도 리성적인 독재자는 없었다. 그러니 사회적변혁에로 가는 출로란 다르게 될수는 없다.
최금룡의 말이 옳다.
항쟁이다. 오직 폭력으로써만 폭압적인 권력을 청산할수 있다.
힘은 힘으로, 피는 피로써!
우리는 이 명백한 변혁의 철리를 망각한탓으로 독재자와 미국것들이 떠드는 《자유와 민주》라는 거짓된 환상에 어리석게도 푹 마취되여왔다. 결국 독재자의 칼날을 받게 되지 않았는가.
시대가 변하고있다. 조봉암은 어수선해지는 기분을 느끼고있었다. 무엇인가 자기라는 존재가 시대의 변두리에 밀려난듯 한 소외감을 금할수 없었다.
조봉암은 바닥없이 깊어지는 사색의 심연에 빠져들어 젊음과 기백과 힘이 넘치는 최금룡의 불사신같은 모습을 눈앞에 떠올리고 그와 조용히 대화를 주고받았다.
(금룡아, 네가 말했지? 나와 진보당은 변혁의 밑거름이 되여 민중을 각성시키고 독재에 도전하는 새로운 풍토를 마련해주었다고… 고맙다, 정말 고맙구나! 금룡아! 내 어깨를 딛고 폭풍을 일으켜다오. 우리가 마련한 화약고에 독재의 아성을 들부실 변혁의 불을 기어이 달아다오! 내 너희들의 기대대로 마지막까지 싸우련다.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너희들의 밑거름이 되여주련다! 마지막까지 내 책임을 다하련다!)
조봉암은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섰다.
《재판장!》
조봉암이 일어나자 재판장이 무례하게 그의 말을 가로챘다.
《최종발언은 래일로 미루겠습니다.》
조봉암은 힘있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또 하나의 진지가 점령되였다. 새로운 참호를 신속히 차지하여야 한다.
조봉암은 여전히 차분하게 재판장의 말을 받았다.
《최종발언을 할 필요가 없소. 나는 피고전체를 대표하여 대법원에 항소한다는것을 선언하는바요.》
조봉암은 시시각각으로 성큼성큼 다가드는 죽음을 의식하면서도 리승만을 대상으로 하는 성전을 끝까지 벌려나가리라 굳게 마음을 다지고있었다.
이렇게 되여 고등법원의 재판은 끝나고 재판은 대법원에로 넘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