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4 회)
제 7 장
2
으리으리하게 꾸린 고등법원의 법정에 들어서던 조봉암은 이미 와있는 자기의 전우들에게 눈인사를 보내다가 피고석의 말석에 우두커니 서있는 두사람을 보자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들중 한 사람은 자기의 담당간수부장 김정두였던것이다.
김정두의 곁에 나란히 서있는 사람은 분명 그와 함께 행방불명되였다고 하던 강치부가 갇혀있는 사형수감방의 간수부장일것이다.
그들을 2심법정에서 이렇게 만나는것이 뜻밖이였다. 이미 예상은 하였지만 또 하나의 께름직한 사태에 어수선한 기분이 앞섰다.
조봉암은 호송경찰의 안내로 자기 자리로 예측되는 앞자리에 가서 앉으면서도 눈이 자꾸 김정두쪽으로 돌아갔다. 김정두가 자기의 눈길이 닿을 때마다 흠칫흠칫 놀라는것만 같았다.
조봉암은 자기에게로 향해지는 각이한 눈길들에 접했다.
검사석에는 의연히 항소를 제기한 1심담당검사와 그의 보좌관들이 차거운 표정으로 앉아서 쌀쌀하게 바라본다.
변호석에 앉은 여러명의 변호사들이 따뜻한 눈길을 보내오고있다.
방청석을 둘러보니 앞좌석에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 분명히 적의가 서린 눈총으로 자기를 쏘아보고있다. 아마 고등법원이 의도적으로 우익적인 단체에서 방청객을 선발하여 앞자리를 메워놓은것 같았다.
그들뒤로 효경이, 연경이, 김봉무, 류선녀를 비롯하여 다시 피고로 법정에 끌려나온 전우들의 가족들이 한줄로 나란히 앉아있었다. 1심때 면목을 익혔던 사람들도 보였는데 그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로성팔이 이전이나 다름없이 방청석의 뒤자리에 앉아있다가 조봉암이 고개를 돌리자 그의 눈길을 붙잡고 손을 높이 들어 격려의 인사를 보낸다.
조봉암은 그들에게 몰밀어 허리를 굽혀 인사를 보냈다.
《기립!》 하는 구령소리가 크게 울렸다.
새롭게 특별히 엄선된 고등법원의 판사들이 팔자걸음으로 틀스럽게 재판정으로 나왔다. 하나같이 몸집이 굵고 개기름이 번들거리는 상통들이다.
볼살이 축 늘어진 새 재판장이 법정안을 한바퀴 둘러보고나서 2심재판을 시작하겠다고 위엄있게 선언하였다.
조봉암은 이 재판의 결과가 어렵지 않게 내다보였다.
첫 순서로 조인수가 일어나서 항소를 제기한 리유에 대하여 밝히고 조봉암과 강치부 그리고 기타 피고들에 대하여 1심에서 제기한 기소와 검사구형을 반복하였다. 그러면서 강치부와 관련한 보충자료는 특무대에서 보내온 기소장을 그대로 인용하였다고 설명을 붙였다. 보충된 자료라는것은 평양에서 특파원자격으로 침투하여왔다는 녀성에 대한 상세한 소개와 서울형무소의 두 간수부장이 범했다는 죄행에 대한것이였다.
조인수는 조봉암이 간수부장 김정두를 통하여 강치부에게 보낸 쪽지를 펴보이면서 이것자체가 강치부의 1심진술을 뒤집어보려는 의도밑에 감행된 또 하나의 범행이라고 설명하였다.
조인수는 그 편지는 망책 조봉암이 련락관 강치부에게 내린 지령서와 같다고 하면서 자기 손에 입수되기까지의 과정을 밝혔다. 그에 의하면 김정두로부터 넘겨받은 쪽지를 사형수호동 간수부장이 강치부에게 전달하고 그가 읽어볼 때 담당간수에게 걸려들었다는것이였다.
조봉암은 조인수검사가 사건을 너무 쉽게 설명하는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분명 두 간수부장중에서 한놈은 모략가들의 밀령을 받고 함정을 파놓고 다른 간수부장과 자기를 유인한것 같았다.
조봉암의 추리가 옳았다.
1심판결후 완전히 삶을 포기하고 미친 넉두리나 늘어놓고있던 강치부가 어느날 느닷없이 항소를 제기하자 검찰이 이를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겁이 덜컥 난 강치부의 간수부장이 자기가 강치부에게 항소를 할데 대한 조봉암의 말을 전해주었다는것을 실토하였다.
이렇게 되자 검찰은 강치부가 갇혀있는 호동의 간수부장으로 하여금 강치부에게 보내는 조봉암의 비밀편지를 유도해낼데 대한 임무를 주었다.
결국 김정두도 검찰의 꾀임에 속아넘어가 사형수호동의 간수부장이 시키는대로 조봉암에게서 쪽지를 받아가지고 강치부에게 전달하도록 넘겨주었던것이다.
조인수는 두 간수부장에게 《직무유기죄》, 《간첩방조죄》에 걸어 5년간의 징역형을 구형하였다.
조인수의 기소장랑독과 검사구형이 끝나자 재판장이 두 간수부장을 번갈아 세워놓고 법정심문을 하였다. 간수부장들은 기소장에서 제기된 자료들을 고스란히 시인하였다.
2일재판에서는 재판절차에 따라 증언청취가 시작되였다.
조인수는 북에서 내려왔다는 녀성의 증언을 육성록음으로 듣자고 하면서 록음기를 연탁에 설치하였다.
조인수는 록음기를 돌리기 앞서 《북에서 파견된 녀성특파원》은 사정에 의하여 법정에 내세울수 없다고 하면서 그의 증언을 이 육성록음으로 대신한다고 설명하였다.
이어 록음기에서는 녀성의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저는 평양시 근교에 있는 북특수기관의 아지트안내일군 한민자입니다. 저는 지난 기간 인천첩보대에 적을 둔 강치부선생이 북에 들어올 때면 매번 그의 때식을 보장하고 려행할 때에는 동행하면서 강치부선생의 체류를 보장해주었습니다. 당시 저의 임무는 강치부선생을 가까이에서 돌봐주면서 그에 대한 밀봉교육의 결과를 타진하며 비밀요원으로서의 가치를 평가하여 보고하는것이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6월말 저는 강치부선생이 체포되였고 우리 특수기관의 고등요원으로 활약하고있던 조봉암선생의 생명도 경각에 달하였다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그후 저는 조봉암선생과 강치부선생을 구출하기 위한 특수연구조에 망라되여 대책연구를 하다가 비상대책안이 완성되자 특파원으로 파견되여왔습니다. 서울 중구의 남대문앞에서 접선자를 만나 본부의 지령문과 공작금을 전달한 후 돌아가게 되여있었던것입니다. 저는 서해해상을 고속정으로 통과하고 장성군에 상륙하여 서울로 들어오다가 관악산입구에서 기동경찰대의 불심검문에 걸려 체포되였습니다.》
소리의 낮고높음이 분명하고 말마디를 꼭꼭 씹으면서도 부드럽고 노래가락처럼 청아하게 뽑아내는 녀인의 《고백》이 이어지는데 돌연 피고석에서 격노한 웨침이 으리으리하게 꾸려놓은 장내를 쩌렁 흔들었다.
《그쳐라!》
청중의 시선이 일제히 웨침이 터져나온 곳으로 집중되였다.
강치부였다. 강치부의 성난 부르짖음에 기겁한듯 록음기가 절컥 소리를 내며 때맞춰 멈춰섰다. 울음까지 뒤섞어가던 그 녀성의 고백이라는것도 그로써 끝났다.
2심재판을 위하여서는 《조봉암구명운동을 위하여 북의 특수기관이 비상대책을 세웠으며 그 집행을 위하여 녀성특파원이 파견》되였다는 사실만 만들어내면 충분하였던것이다.
그런데 조인수는 시작부터 너무도 뜻밖의 도전에 부닥친셈이다.
(저놈이 자리를 차고 일어난 리유가 무얼가? 후줄근해있던 놈이 어째서 독을 쓰며 반발하는건가?)
조인수는 불안부터 앞섰다.
《피고 강치부, 앉으시오. 당신이 발언할 기회는 따로 있소.》
재판장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강치부는 그냥 버티고 서있었다.
《저 녀자를 법정에 내세워라, 당장! 특파원은 무슨 놈의 특파원이야? 걷어치워! 한민자는 뭐고? 내가 평양에 가본적이 없고 아지트란 구경도 못했는데 내 안내일군이라고? 이제는 네놈들 못하는 지랄이 없구나! 지금두 이 강치부가 네놈들 시키는대로 도장을 꾹꾹 찍어주는 팔부짜리인줄 알아?》
그것은 일종의 폭탄선언이였다.
그 폭탄선언에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하여 쥐 죽은것 같던 법정이 이내 일시에 벌집이 터진듯 소란스러워졌다.
조봉암과 그의 전우들도 배를 끌어안고 껄껄 웃으며 원쑤들이 벌려놓은 유치하기 그지없는 놀음을 마음껏 야유하였다.
조인수를 비롯한 검사석에 앉은자들과 재판석에 위풍당당하게 배를 내밀고 앉아있던 고등법원의 판사들은 기절초풍해서 눈들이 모두 얼음판에 자빠진 소처럼 머룽머룽해졌다.
조인수도 사실은 북에서 왔다는 그 특파원이라는 녀인을 만나보지 못하였다. 만나자고 하니 미군방첩대에서는 그 녀자가 투신자결하였다고 했다. 그래 하는수없이 미군방첩대에서 보내온 심문자료와 록음테프만 가지고 기소장을 만들어가지고 이 자리에 나타났던것이다.
그런데 말 꺼내놓기 바쁘게 엉터리라는것이 빵짝이 났다.
(개자식들! 미국것들이 하는 일이란 전탕 이 꼴이라니깐! 이거야말로 낫으로 눈 가리기 아니야? 이런 일이야 강치부의 사전동의를 받아내야지.)
필경 막뒤에서 강치부 하나만 가지고는 신빙성을 보여줄수 없으니 또 하나의 모략을 꾸며낸 모양이다.
조인수로서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는 희비극이였다.
(에잇, 머저리들! 그까짓! 일은 될대로 다된것 같다. 이쪽은 또 패했다. 리승만이나 버드가 아무리 용을 써도 저 사람을 꺾어버리지는 못한다. 시라소니같은것들! 밥통같은것들!)
조인수는 버드의 막 생겨먹은 상판을 눈앞에 떠올려놓고 속으로 귀먹은 욕을 퍼부었다. 강치부의 연극놀이를 들려줄 때부터 고단수요 뭐요 싱겁게 주절대며 이 땅의 사람들을 우습게 여기더니만 오히려 일을 뒤틀어지게만 해놓는다.
이놈의 재판은 시작부터 아이들의 유희나 다름없다. 어느것 하나 세상여론을 그럴듯이 업어넘길만큼 완벽하지 못하여 코코에 피고측에 언질을 잡혀 망신만 당해온다.
사실 미군방첩대가 연출한 특파원놀음이 무대에 오르기 바쁘게 들장이 난것 역시 조선사람을 우습게 여기는 버드의 독선과 오만이 가져온 마땅한 결과였다. 특파원놀음을 벌릴 때 림처한중령을 비롯한 미군방첩대의 관계자들속에서도 론의가 분분하였다. 어떻게 꾸며대건 신빙성이 없고 위험한 도박이라는데로 의견들이 모아져 버드에게 조심스럽게 전달되였다.
그러자 버드는 사납게 눈을 부라리며 고아댔다.
《뭘 신빙성이요 뭐요 하면서 골골거리는거야? 특파원이라는 인물을 재판정에 내세우지 않으면 될게 아닌가. 이런 일도 있수다 하는 정도의 효과만 거두면 되는거야. 록음이나 잡은 다음에는 없애버려! 그러면 만사가 오케이가 될게 아닌가. 적당한 계집을 골라 록음할 때 평양특파원답게 평양말씨와 서울말씨를 뒤섞어놓으면 그까짓것들이 가려들을수가 있는가. 그건 당신네 솜씨에 달린거야. 흰것도 검은것이라고 열번만 우겨대면 검은것으로 보이는 법이요. 이게 고단수야. 시간이 없소!》
이렇게 되여 특파원놀음이 벌어졌는데 결국 또 한번 법정을 웃음판으로 만든것이다. …
재판장이 재판봉을 들고 여러번 앞탁을 두드렸다.
《정숙! 정숙!》
그리고는 강치부에게 호령하였다.
《피고 강치부! 게 앉지 못할가! 발언권도 주지 않았는데 웬 소란이야? 이제 또 한번 그랬다간 퇴정이야.》
뚱뚱이는 영문도 모르고 어리뻥뻥해있다가 또 한차례의 조작극이라는 판단이 가자 강치부를 퇴정시키는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뭐야? 이 강치부를 보고 북의 련락관이라고 우겨대다못해 이제는 날 안내하던 평양특파원이 왔다? 놀이하겠으면 좀 똑똑히 해라! 으하하…》
강치부가 갑자기 발작적으로 웃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웃음을 뚝 그치더니 재판장을 부릅뜬 눈으로 쏘아보았다.
《이놈! 내가 소란을 피운다구? 뭐 특파원계집이 나를 밀봉세뇌교육을 주었다구? 내가 그 수작을 그대로 넘길것 같애? 으하하…》
강치부는 또다시 미친듯이 웃어댔다.
립석경찰이 달려오더니 방망이로 그의 어깨를 바스러지도록 내리쳤다.
《이놈, 왜 사람을 쳐? 바른소리하는 사람을… 이놈!》
옆에 앉아있던 신창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망이를 홱 나꾸채며 준절하게 경찰을 꾸짖었다.
강치부는 웃음을 뚝 그치더니 방망이에 맞은 어깨팍을 한손으로 움켜잡으며 으드득 이발을 갈았다.
《이놈들, 두고보자! 어디 낯짝이나 똑똑히 보자! 이놈들! 내 염라국에 가서라도 네놈들을 기어이 끌어가 지옥의 기름가마에 처넣고야말테다!》
강치부는 호송경찰에게 끌려나가면서도 그냥 악에 받쳐 욕설을 퍼부었다.
증인심문이 다시 벌어졌다. 검사측의 증인들은 대체로 1심재판에 나섰던 사람들이였다. 저조하기 그지없는 열의를 보이였다. 검사의 물음대로 시들한 어조로 형식적으로 대답하군 하였다.
반면에 서른명의 진보성이 강한 법조인들로 무어진 변호인단의 변론은 보다 째여있었다. 기세가 쟁쟁하고 론조가 날카로웠다. 검사의 기소장에 조항조항마다 재론할 여지가 없는 궤변이라는 락인이 찍히우고 그것이 사개가 딱딱 들어맞는 법론거로 분석되였다. 변호인단은 조봉암과 그의 전우들의 무죄를 법률적해석에 기초하여 강경하게 주장하였다.
2심재판에서 이채로운것은 강치부의 맥빠진 굴종의식에 쓴입을 다시고 변호권을 내놓았던 강치부의 담당변호사가 그의 무죄를 들고나선것이다.
재판날자가 늘어날수록 고등법원의 법정도 완전히 리승만일파의 흉계를 강도높이 폭로규탄하는 성토장처럼 되여갔다.
가관은 맨 처음에는 재판이 또다시 기울어진다고 오그랑수도 쓰고 법석 고아대기도 하던 재판장과 판사들까지 천정을 멀거니 쳐다보기만 하면서 재판에 대한 로골적인 무관심을 보이고있는것이였다. 리승만의 지령을 집행해야 되겠으나 너무도 엉성하고 협잡투성이재판이라 저들 힘으로는 어쩔수 없다는 식이였다.
어느날 또 하나의 뜻밖의 일이 벌어져 검사와 판사들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었다.
그날 증언대에는 변호인단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강치부가 속한 인천첩보대의 한 장교가 올랐다. 그는 방첩대가 첩보대에 소속된 사람을 법정에 감히 내세웠다고 주먹을 흔들면서 강치부는 돈벌이밖에 모른 사람이였다고 울분에 차서 증언하였다. 아마 평소에도 방첩대의 방자한 행패에 염통에 피가 차있었던 모양이였다.
현역군인의 배짱있는 선언에 혼비백산해진 재판석이 저들끼리 뭐라고 협의하는 흉내를 냈다.
청중들은 비로소 그 문제의 중대성을 깨닫고 술렁거렸다.
재판장은 서둘러 휴정을 선포하였다.
강치부가 이제 어떻게 자기 범행을 평가하겠는가.
법정에 몰려든 사람들의 이목이 점차 강치부의 발언에 집중되였다. 그의 발언에 따라 판결이 내리고 조봉암과 그의 전우들의 운명이 판가름될것 같았다.
검사측도 조심스러워진듯 인차 강치부를 내세우지 않았다.
강치부는 2심재판이 시작되여 퍼그나 시일이 흘러서야 다시 변호인단의 증인으로 채택되여 다리를 절룩거리며 증언대에 오르게 되였다.
그가 증언대에 오르자 법정은 숨소리 하나없이 고요속에 잠기였다.
강치부는 한참 장내를 두리두리 둘러보다가 조봉암의 격려의 빛이 어린 눈길에 별안간 《형님!》 하고 피타는 소리로 불렀다.
《이놈은 백번 찢겨죽어도 할 소리가 없는 놈이요!》
그는 꺾어질듯 고개를 푹 떨구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강치부의 웨침과 울음에 청중은 흠칫 놀랐다. 그 울음소리, 그가 흘리는 눈물이 청중의 심금을 일시에 찡- 울려놓았던것이다.
눈물만큼 심중을 흔들어놓을수 있는 인간의 언어는 없다. 눈물이야말로 인간의 백길 마음의 밑바닥에서 솟구쳐오른 인간 아름다움의 속삭임이요, 심장이 퍼올린 순결무구한 정의 응결이다.
이제까지 이 재판에 참가하여온 방청객들에게 파렴치한 비렬한으로, 얼치기같은 인간으로 조소와 경멸을 받아왔던 강치부가 눈가에 맺히여 점점이 떨어지는 구슬같이 맑은 눈물로 어지러운 락인을 한순간에 다 지워버린것이다.
강치부를 쳐다보는 수백쌍의 눈들이 별안간 따뜻해지면서 무엇인가 기대와 련민이 어린 눈길을 보내였다.
그 눈물앞에서 포악해진것은 이 재판정에서 인간의 리성과 감성따위를 줴버린자들뿐이였다. 그런자들은 한생을 다 바쳐도 심장이 뿜어올린 눈물의 의미를 느낄수 없다. 짐승에게는 눈물의 의미를 리해할수 있는 사유능력이 있을리 만무하다. 하기에 이미전에 인간만이 가지는 고유한 감성을 잃어버리고 랭혈의 동물로 되여버린 재판장은 인간 아름다움의 가장 고급한 이 언어마저 무시하여버렸다.
《피고 강치부! 무슨 추태인가?》
한바탕 가슴후련하게 통곡을 하고난 강치부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고문과 협박과 고민으로 여위고 어깨도 처지고 눈정기조차 잃어버렸던 강치부가 아니였다. 치욕과 수치감에 얼룩졌던 얼굴이 아니였다. 재판장을 쏘아보는 그의 두눈이 금시 불줄기를 내뿜을듯 열기로 번뜩이였다.
《추태라구? 내 이제 말해주마! 검사, 이놈! 너도 새겨들어! 죽음을 선고받은 이놈이 뭐가 무서워 말 못하겠니? 내 진정 바른말을 하겠으니 귀구멍들을 우비고 똑똑히 들어라!》
그때 그의 담당변호사가 날쌔게 일어났다. 이제라도 만약 재판장이 《발언중지!》 하고 명령하면 일이 뒤틀릴수 있을것이기때문이였다. 그러지 않아도 재판장이 재판봉을 들려던 순간이였다.
원래 강치부의 발언은 처음부터 이렇게 흘러나오지 않게 이미 검사와도 약속이 되여있었다. 재판정에도 그렇게 미리 통보되여있었다.
강치부는 그간 고문과 협박, 공갈과 회유속에서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고백을 한다는 방첩대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검사와도 여러차례에 걸쳐 실동훈련도 해보고 이 자리에 나섰던것이다. 그러나 강치부의 선택은 결코 방첩대의 요구를 받아들이려는것이 아니였다. 그는 이미 자기로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조봉암에 대한 자기의 립장을 늦게나마 량심에 저촉되지 않게 표명하고싶어 재판정에 다시 나설데 대한 검사측과 방첩대의 요구를 접수하였던것이다.
한편 담당변호사도 이미 강치부와 남몰래 약조가 되여있었다.
《피고 강치부, 재판정에서 재판질서를 어기면 발언권을 박탈당할수도 있습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하고싶은 말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정확히, 침착하게 다하는것이 중요합니다.》
재판장은 강치부의 발언권을 취소시킬수 있는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있었는데 절호의 순간에 변호사의 재빠른 앞발치기에 의하여 저지당하자 쓴입을 다시였다.
《예, 그렇게 노력하겠습니다.》
강치부가 애정과 고무가 담긴 담당변호사의 가벼운 책망에 자기의 실수를 느끼였다. 그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숨을 가라앉히였다. 치솟는 울분을 몽땅 토해놓고싶었으나 변호사가 귀에다가 또박또박 새겨준 말이 진정제처럼 피를 식게 하고 리성을 회복하게 하였다.
이 순간 그에게는 검사가 기소장에서 그대로 밝힌 조봉암의 쪽지편지의 구절구절이 되새겨졌다. 놈들이 계략을 꾸미는데 써먹은 조봉암의 쪽지가 강치부의 마음에 반석같이 들어앉아 그에게 빼앗겼던 인간의 얼을 찾아주었던것이다.
조봉암은 진실을 그대로 밝히고 그 진실을 끝까지 지켜내는것이 곧 자신과 조봉암과 진보당을 지키는 유일한 방도라고 강조한것이다. 변호사도 이 비슷한 내용의 말을 열번이상 곱씹어 해주었다.
미군방첩대는 이번에도 일을 서투르게 꾸몄다. 그들은 조봉암이 쓴 쪽지편지가 두 간수부장을 거쳐 강치부의 손에 들어가게 한 다음 덮치는것이 효과적이라고 속단하였다. 그들이 무엇을 망각하였는가. 이른바 《조봉암의 지령서》만들기와 전달에만 신경을 쓰던 나머지 조봉암의 필적이 강치부의 혼란스러운 정신에 어떤 기적을 불러내겠는지는 미처 타산하지 못하였던것이다.
(형님, 고맙수다! 내 이제야 뭐가 뭔지 알게 되였수다. 더는 속지 않구 내 하고싶은 말을 하겠소. 이래두 죽구 저래두 죽을 놈이 마지막으로 사람다운 구실을 해보겠수다. 날 믿어주우!)
강치부는 조봉암을 향하여 이렇게 속깊이 다짐하며 천천히 말을 시작하였다.
《여러분! 저는 지금껏 사자밥을 지고 인천첩보대 경리과에 끌려가 고기도 잡아주고 한때는 남북밀무역도 하였습니다. 저는 죽산형님이 체포된 때로부터 두어달이 지나 미군방첩대에 구속되여 심문을 받았지요. 처음에 그들은 저를 북에 포섭된 간첩으로 몰아가는것이였습니다. 특히 조봉암선생을 제가 포섭하여 북특수기관의 고등비밀요원으로 활동하도록 하였다는것을 자백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건 전혀 근거가 없는 거짓말로서 저는 받아들일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무슨 수로 죽산형님과 같은 큰분을 후려낸단 말입니까? 말도 안되는 일이지요. 저기 저 보이는 삼각산은 들어옮겨도 죽산어른의 마음은 움직일수가 없지요. 그런즉 엄두나 낼 일입니까? 그리고 내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엄청난 일에 감히 발을 들이밀수 있겠나요.》
강치부의 말은 오래동안 끌어온 재판을 완전히 뒤집어엎는 보다 충격적이며 위력한 선언이였다. 장내가 술렁거렸다.
검사도 판사들도 완전히 넋을 잃어버렸다.
《정숙! 정숙! 립석경찰들은 질서를 바로잡으시오.》
당황망조한 재판장이 강치부에게 을러멨다.
《피고는 거짓증언을 하면 형벌이 추가된다는걸 모르는가?》
《알고있다!》
강치부가 씹어뱉듯 사납게 대답하였다.
《그런데 어째서 1심에서 다 시인한것과는 딴소리를 하는가?》
《바로 그걸 말하려구 이 자리에 다시 나선거다. 1심때 난 방첩대에서 고문도 당하고 협박도 당하고 속히우기도 했다.》
《허튼소리! 피고의 고백서에 지장이 꾹꾹 찍혀있는데 이제 와서 뒤집을상싶은가? 그 증거를 대라!》
《뭐야?!》
재판장의 으름장에 복통이 터진듯 강치부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증거라구? … 내 보여주마.》
강치부는 기가 뻗쳐 죄수복을 와락 벗었다. 그의 잔등과 가슴, 허벅다리에 온통 멍든 자리가 아직도 험상하게 남아있었다.
《봐라, 이렇게 맞았다! 방첩대놈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놓았다.
여러분! 내 이제 바른소리 하겠수다. 글쎄 그놈들이 날 때리면서 하는 소리가 간첩노릇 했다고 지장을 찍으라는것이였소. 그 다음에는 조봉암이 리승만의 지시로 죽게 되여있으니 협조하라는것이였소.
난 한달반이나 겨우 숨이 붙어있게 매를 맞으면서도 내가 유일하게 형님으로 믿고 따르는 죽산어른을 배신할수 없어 그냥 버티였소. 그런데 죽산형님이 내가 련락관이였고 자기도 간첩이였노라 다 불었다는거요. 그러며 방첩대놈들이 그냥 때리며 한다는 말이 조봉암은 이미 다 죽게 된 놈이니 내가 말하건 입다물건 관계없다, 다만 네 문건에 한구절 남기자고 하니 손도장이나 찍으라고 그냥 얼리구 때렸다우. 당신들이 한번 내 처지에 있어보시우. 난 정말 뗑했수다.
한번은 심문관이 죽산선생의 자필로 된 자술서라는것을 보여줍디다. 거기에는 죽산선생님이 전쟁전부터 나를 련락관으로 삼고 북과 련계를 가져왔다는 내용이 있었지요. 그놈이 한다는 소리가 일이 이렇게 되였는데 빨리 끝내고 시원히 대만에 가서 살라는거였지요. 조봉암어른이야 아무래도 죽을 사람이고 또 본인이 자백까지 했는데 량심에 꺼릴것도 없다나요. 미8군방첩대장이 수표한 <생명담보서>까지 보여주더군요. 나중에는 그 버드란 놈까지 와서 날 얼리더군요.
결국 이 못난 놈이 량심을 시궁창에 줴던지고 방첩대놈들이 만들어준 각본대로 허위진술하고 손도장을 찍은거웨다. 검찰심문에도 시키는대로 응했소. 그리고 법정에 와서 죽산형님을 눈앞에 보면서도 인두겁을 쓰고 감히 하지 못할짓만 하였소.》
《가만!》
모략의 흑막이 한꺼풀, 한꺼풀 벗겨져나가자 더는 입다물고있어서는 안되는 구차스러운 자기 직분에 떠밀린 조인수가 그의 말을 가로챘다.
《당신은 내앞에 와서도 모든것을 다 시인했소. 그 사실도 부인할셈이요? 헌데 이제 와서 그걸 뒤집는 동기는 뭐요? 똑똑히 밝히시오.》
《내가 이제야 정신을 차린거요. 이제야 내가 속히우고 머저리노릇 했다는걸 알게 된거요.》
조인수가 강치부의 솔직하면서도 명백한 대답에 몰리자 재판장이 얼른 그를 지원하여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어제까지는 머저리였다는건가?》
《옳다! 어제까지는 머저리였다. 재판을 받으며 보니 죽산형님이 죽는게 아니더라. 죽산형님이 날 물어먹구 자기도 간첩이라 자수했다는 말도 말짱 거짓말이더라. 애당초 그 소리 믿구 복통이 터져있은 내가 머저리였지. 결국은 나만 네놈들이 꿍져준 더러운 죄보따리에 깔려 너들이 쳐놓은 덫에 치였더라.》
그때 조인수가 그의 말을 가로채며 걸고들었다.
《피고 강치부! 아직도 재판정을 우롱하는가! 피고 조봉암에게서 협박을 당한것은 왜 감추려 하는가!》
《뭐야?! 협박? 그래 네놈이 내 입에서 그런 소리 꺼내보려구 꾀이는거야? 옳다! 난 죽산형님이 전해준 그 고마운 편지를 받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죽산형님이 날더러 사람구실하라구 그 귀한 글 보내주었는데 내가 그 정마저 저버린다면 무슨 사람이야? 난 지금 똑똑한 정신으로 말한다. 그래서 난 항소를 했다. 자기의 무죄를 밝히기로 한거다. 죽산형님에게 속죄도 하고…
어떤 때는 감방벽에 골을 콱 박고 죽어버리고싶었으나 내가 이렇게 해놓고 없어지면 죽산형님께 어떻게 속죄할가 하는 생각에 지금까지 살아온다. 그래서 방첩대놈들 하라는대로 말하겠노라 하고 이렇게 내 발로 걸어온거다.》
재판장이 강치부의 입에서 재판을 완전히 깨버리는 말이 거침없이 쏟아져나오자 더는 듣고만 있을수 없어 강짜를 부리기 시작하였다.
《피고 강치부의 발언을 중지시킵니다.》
그러자 변호인석에 있는 변호사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들어봅시다.》
재판장은 그들의 제기를 묵살하여버렸다.
《발언중지!》
재판장은 이제 재판을 휴정하는 경우 여기저기서 날아들 주먹질부터 생각하며 겁에 질려있었다. 1심재판장 홍병삼의 죽음이 그를 압박하고있었다.
강치부의 입을 저대로 열어놓다가는 2심재판은 완전히 패배하리라는것이 명백하였다. 어떻게 하든지 재판이 다시 헤여날수 없는 파국에 빠져들기 전에 강치부의 입을 다물게 하는수밖에 없었다.
원체 재판장이나 그옆에 앉아있는 배석판사들은 모두 벌써 오래전에 량심이라는건 시궁창에 구겨박고 사는 놈팽이들이였다.
재판장은 판사들과 몇마디 주고받고나서 자기에게로 쓰거운 조소를 보내고있는 청중을 향하여 생억지를 부렸다.
《피고 강치부를 퇴정시켜 법원서기가 책임지고 당장 병원으로 데리고 가시오. 의학적감정을 받을 필요가 있소. 제가 지장을 찍고 제입으로 인정한 사실을 이제 와서 부정하는걸 보면 분명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마도 사형선고를 받고 머리가 돈것이 틀림없습니다. 사형수들속에서 흔히 보게 되는 신경발작증세라고도 볼수 있습니다. 따라서 본 재판정은 방금 피고 강치부의 정신상태에 대한 전문병원의 법의감정을 받을것을 합의하였습니다. 데려가시오, 즉시!》
재판장은 방청객들을 향하여 변명조로 설명하고나서 위엄있게 명령을 떨구었다.
완전한 말장난이요, 억지였다. 그러나 위기에 빠져든 재판을 살리고 막바지에 이른 순간을 모면하는데는 궁여지책이기는 해도 재판장으로서는 매우 《기발한 방책》이기도 하였다. 보나마나 강치부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정신분렬증이라는 진단을 받아올것이였다.
우익계의 방청객들이 두세번 박수까지 쳐주면서 재판장의 갑작수와 정황처리에 찬탄을 표시하였다.
법정의 흐름과 분위기를 뒤바꾸게 하는 재판장의 약빠르고도 파렴치한 횡포에 방청객들은 경악하였다.
호송경찰이 수갑을 절렁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증언대의 계단을 올랐다.
재판장의 퇴정선언에 어리뻥뻥해있던 강치부는 호송경찰이 수갑을 내밀어서야 정신이 펀뜩 들었다. 그는 수갑을 와락 잡아채며 호통을 쳤다.
《뭐가 어쨌다구?! … 내가 머리가 돌았다구? 야, 이 똥물에 튀겨죽일 놈아! 네놈도 같고같은 협잡군이구나. 좋다! 내 몇마디만 더하고 갈란다. 사형수의 마지막부탁이니 들어다오.》
강치부가 호송경찰에게 절절히 부탁하였다.
경찰도 그에게서 처음 보는 불사신같은 기개에 어찌할바를 몰라 주춤거렸다.
강치부는 장승처럼 우뚝 허리를 펴고 서서 사자처럼 울부짖었다.
《야, 이 송장사촌같은 놈아! 네놈도 사람질하기가 싫어진 놈팽이구나. 왜 내 입을 틀어막자고 한사코 안달이냐? 너희들 기어이 죽산어른을 릉지처참하자는거겠다? 어림두 없다!
저 어른을 다쳐서는 못쓴다. 저분은 우리 백성이 손끝으로 지켜주고 받들어야 할 귀인이다. 간첩은 무슨 놈의 간첩이란 말이냐? 난 이번에 재판정에 들락날락하면서 똑똑히 보았다. 정치라는게 뭔지도 조금 알게 됐다. 그래, 평화통일하자는게 <북동조>야? 민중세상 만들자는게 <국가전복>이야? 이 쓸개가 쑥 빠져버린 놈아, 어디 대답해봐라!》
강치부가 숨을 헐떡거리다가 잠시 말을 그치자 재판장이 다시 지시하였다.
《경찰! 뭘 하는가? 임무를 수행해!》
그러자 비켜섰던 호송경찰이 강치부에게로 다가갔다.
강치부가 눈을 흡뜨고 성난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여, 경찰! 내 몇마디만 더하자.》
여차직하면 너 죽고 나 죽고 해볼것 같은 강치부의 험악한 기상에 경찰은 어기가 질린듯 주춤거렸다.
《여러분! 속지 마시오. 더는 저놈들에게 속지 마시오! 나도 더는 속지 않을테요. 죽산형님이 선거때 백성의 속이 후련한 소리를 했소. <갈지 못하고는 이대로 살수 없다, 혁신만이 살길이다!>, 바로 이겁니다. 배고프다, 못살겠다 울고우는 백성의 신음소리가 망신인줄 이제는 알아야 될게 아닌가.
북녘사람들은 풍청풍청 사는데 이남사람들은 아직도 조반석죽이고 귀 막고 눈 감고 입 다물고 살아야만 하니 이제는 계산이 돼야 할게 아닌가 말이요. 8. 15는 같이 맞았는데 이남은 왜 아직도 이 꼴이요? 도대체 어느 놈의 쪼간이요? 북녘사람들이 이남백성 사는 꼴 하도 불쌍해서 쌀 주겠다, 천 주겠다, 비료 주겠다, 세멘트도 주겠다… 년년이 손을 내밀어주는데 지금 웃놈들은 그게 시뻘겋다고 도리질이요.
갈아버려야 해요. 그게 무서워 저놈들이 이런 재판을 벌려놓은겁니다. 내 감옥에 엎디여 한해가까이 지내면서 우리 형님이 내든 구호를 백번도 천번도 더 외워보았소. 갈아야 합니다, 갈아야 해요!
자, 경찰! 날 이젠 교수대로 끌어가게. 난 이미 내 겨레앞에 죽을죄를 지은 죄인이니 벌을 받아 마땅하네. 하지만 이렇게 명치에 얹혀있던 한을 다 토설했으니 죽어도 눈을 감을수 있겠네.》
강치부는 범같은 기상에 위압이 되여있던 경찰에게 손목을 내밀었다. 그는 증언대의 계단을 내려 조봉암의 앞으로 가서 허리를 깊이 숙여 큰절을 하였다.
《형님, 신의주감옥에서 죽을번 했던 제 생명을 구해주더니 이번에는 미국놈들 군화발에 다 깨져버렸던 이놈의 혼을 건져주었소그려. 부디 오래 사시우. 난 먼저 떠나가오. 오래오래 살아서 꼭 민중세상 만들어주소. 통일된 강토에서 우리 남쪽백성도 북쪽사람들과 의좋게 지내며 복을 누리게 해주소. 사실말이지 그 땅이 참 별천지요.》
사람들은 누구나 강치부의 비장하고도 절절한 당부를 들으며 비상한 감동속에 눈굽을 적시였다.
권력의 압제에 일시나마 꺾였던 인간, 허나 오늘은 인간의 아름다움과 고결함을 되찾아 압제의 쇠사슬을 끊어버리고 대공에 솟구쳐오른 불사조가 되여 악마들을 궁지에 몰아넣은것이다.
《강치부! 임잔 죽지 않을걸세. 끝까지 힘을 잃지 말게!》
조봉암이 그를 바래주러 자리에서 일어나자 피고석에 있는 조봉암의 전우들이 뒤따라 일어났다. 가족들과 방청객들도 일어서서 인간의 모습을 훌륭하게 되찾은 불운하고도 의로운 인간을 뜨거운 눈길로 바래웠다.
강치부는 그게 고마워 눈물이 그렁해가지고 쉬이 걸음을 옮기지 못하였다.
《빨리, 빨리!》
재판장이 악쓰는 소리였다.
강치부는 가슴을 내밀고 다리를 절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법정을 떠나갔다.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재판장은 급기야 그 울음소리에 쫓겨 자리에서 일어나 바삐 뒤문으로 사라졌다.
이날 저녁 조봉암은 옛 모습으로 환생한 강치부를 두고 커다란 격동과 비감에 휩싸여있었다.
삶이란 얼마나 신성하고 아름다운것인가. 인간의 모습이란 원체 얼마나 순결하고 정직한것인가. 강치부가 바로 인간의 그 아름다움을 되찾게 되였으니 참으로 장한 일이다.
그는 강치부도 반드시 옥에서 풀려날수 있을것이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그것은 인간 아름다움이 안아온 빛나는 승리였다. 인간리성의 고결한 승리였다. 그는 인간의 정의와 량심을 되찾은것으로 하여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았으며 사랑과 존경과 지지를 받았다. 이제 그 아름다움이 그를 칭칭 얽어맨 쇠사슬도 끊어버리게 할것이다. 환생한 인간 강치부가 태여난 보람을 마음껏 누려갈 그날을 맞이하게 될것이다.
《강치부! 용타! 우리 이제 옥문을 부시고 나가서 북과 같은 별천지를 만들기 위하여 마음과 힘을 합쳐가자!》
조봉암은 뙤창가에 찾아와 지저귀는 동박새들과도 즐겁게 담소하였다.
《너희들도 좋아하는구나. 난 정말 기쁘다. 내 친구 강치부가 환생하였단다. 너희들도 기쁘지? 암, 기쁘구말구. 우린 여전히 친구다. 하기야 강치부는 달리는 될수 없는 내 친구지.》
《진- 진진- 진-》
새들도 앙증한 꼬리를 달싹거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