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 회)

제 7 장

1

 

다음날이였다.

내무부 장관 정제관의 조종에 따라 정치깡패 왕초인 마지광의 무리 100여명이 서울지방법원으로 쳐들어갔다.

문지기가 대문을 열어주지 않고 무슨 사람들이냐고 묻자 《대문을 열지 못할테냐? 우린 반공을 하는 청년용사들이다!》 하며 을러멨다.

끝내 문지기가 대문을 열어주지 않자 수십놈의 괴한들이 두길 되는 돌담을 휭휭 날아들어와 문지기를 때려눕히고 대문을 열었다.

열려진 대문으로 사태치듯 쓸어든 깡패들은 법원의 앞마당에 모여서서 우선 구호를 부르며 소동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친공판사 홍병삼을 타도하라!》

《조봉암을 간첩죄로 처단하라!》

《공산당을 타도하라!》

《친공판사들을 내놓아라!》

깡패들은 법원의 유리창들을 박살내고 법정에 뛰여들어 기물을 부시였다. 그리고 법원의 복도와 사무실들을 개 싸다니듯 돌아치며 거칫거리는 사람들은 단매에 때려눕혔다.

그 시간에 치안국에서 형사과장이 법원에 나와있었는데 법원장의 우는소리에 명함장을 내들고 그들을 막아섰다가 명함장을 찢기우고 마당에 끌려나가 무리매를 맞고 쓰러졌다.

홍병삼과 두명의 배석판사들은 자기들을 찾아 눈에 피발이 서서 사무실을 뒤지는 깡패들을 피하여 한시간동안 구린내가 코를 찌르는 뒤간에 숨어 요행으로 폭행을 면하였다.

깡패들은 한시간가까이 란장을 쳐놓고 사라졌다. 그 다음날에는 대법원에까지 몰려가서 주먹을 휘두르고 기물을 까부시며 소란을 피웠다.

《1심재판장을 죽여라!》

《친공판사들은 즉살하라!》

깡패들은 대법원에서 소란을 피운 다음 서울시가지의 중심도로를 타고 어깨를 겯고 구호를 웨치며 이른바 반공시위를 벌렸다.

깡패들의 란동은 이로써 끝나지 않았다. 홍병삼과 배석판사들의 집으로 련일 협박전화가 날아들고 돌멩이들이 비발치듯 하였다.

홍병삼과 배석판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숨어버렸다.

며칠후 전라남도신문에는 진보당재판을 주관하였던 홍병삼판사가 남해가의 한 어촌마을의 4촌형되는 사람의 집에 숨어지내다가 재판결과에 흥분한 괴한들에게 끌려가 무참하게 타살되였다는 보도가 사진과 함께 크게 보도되였다. 결국 홍병삼은 목숨으로 량심을 지키고 민심을 지켜낸것이다.

깡패들의 법원돌입사건과 홍병삼판사의 죽음은 정계와 사회계를 법석 끓게 하였다.

리승만의 번견노릇을 더는 할수가 없어서 대법원장직에서 물러났던 김병로가 이 소식을 듣고 즉각 기자회견장에 나타나 분노를 터뜨렸다.

《이것은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사건이다. 여기에는 반드시 배후조종세력이 있을것이다. 그 원흉을 반드시 색출하여야 한다. 그놈들을 하수인무리인 정치깡패들과 함께 엄벌에 처하여야 한다. 그와 함께 이 문제는 반드시 국회에 상정되여 문책되여야 한다.》

김병로의 강한 주장에 서울에 올라와있던 로성팔이 무소속의원들과 함께 합세하였다.

민주당의 최고위원 곽상훈이 민주당도 이 사건을 덮어두어서는 안된다고 고병직을 설복하여 사건을 《국회》에 상정시키며 정제관과 류선민을 《국회》에 출두시켜 문책을 할데 대한 결의안을 제기하였다.

사회적여론이 날을 따라 거세지자 검찰은 하는수없이 깡패들을 일부 구속하였다.

사태가 복잡해지자 다울링과 버드가 이 문제에 즉각 개입하였다. 이 사건을 파고들면 여론의 화살이 저들에게까지 날아들것이며 그것이 불찌가 되여 집권층이 통채로 불타버릴수 있는 위기가 조성될것이라는 위태로운 타산으로부터 반격을 가하도록 리승만을 부추겼다.

리승만은 사회적규탄을 무릅쓰고 서울의 언론기관대표들을 경무대에 불러들였다.

《반공청년들의 애국적기개는 평가할만 한것이다. 그 방법에 있어서 과격한것이 있기는 하였으나 치안기관들은 절대로 그들의 애국결단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리승만은 짐짓 장중하게 특별성명을 발표하였다. 리기붕을 불러 《국회》에서 민주당과 무소속의 련합으로 상정시킨 문책결의안을 토의하지 말라고 호통을 쳤다. 리승만이 광기를 부리며 바람세를 몰아가자 오히려 자유당은 한술 더 떠서 친공재판규탄대책위원회라는것을 구성하고 곳곳에서 조봉암과 진보당사건에 대한 재판결과를 규탄하는 집회를 일시에 열게 하였다.

집회들에서는 깡패들의 법원란입과 홍병삼에 대한 타살이 《애국적인 의거》라고 높이 평가되는가 하면 홍병삼과 배석판사들이야말로 타도되여야 할 매국노들이라고 규탄을 하였다. 그리고 조봉암과 진보당소속 피고들에 대한 재판을 다시 열어야 하며 조봉암은 교수형에 처하여야 한다고 떠들어댔다.

리승만과 버드는 이렇게 정국을 또 한차례 반공의 돌개바람으로 위축시켜놓고 검찰로 하여금 1심재판정에서 변호인들이 제기한 발언을 문제삼아 조봉암에 대한 변호를 자청해나섰던 변호사와 그의 동료변호인들을 립건구속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위협하였다.

이런 속에서 조인수는 검찰청의 조종에 따라 정식 고등법원에 항소를 제기하고 2심재판을 요구하였다.

어느날에는 《동아일보》에 평양에서 조봉암에 대한 구출작전을 벌릴데 대한 북의 특수기관의 지령을 받은 녀특파원이 서해 장성쪽으로 들어오다가 체포되였다는 보도를 실어 또 한차례의 여론을 움씰거리게 하였다.

그 이튿날 《동아일보》는 그 녀자가 구류되여있던 모려관의 7층에서 창문을 열고 투신자결하였다고 보도하였다. 기사의 옆자리에는 피투성이가 되여 형체를 알아볼수 없는 녀자의 시체를 보여주는 사진자료까지 실었다.

그것은 되짚어보면 크게 생각하여보지 않아도 또 하나의 서투른 연극이라는 직감이 들게 하였으나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아가게 하는데는 효과가 컸다. 무죄로 풀려나갔던 조봉암의 전우들이 다시 련행되여 서울형무소로 끌려왔다.

변호인들과 간수부장 김정두를 통하여 조봉암은 자기를 중심에 세워놓고 남조선전역에서 벌어지고있는 《빨갱이때려몰기》를 낱낱이 투시하고있었다.

조봉암은 여전히 덮쳐들고있는 백색테로의 광란으로 착잡한 생각에 잠겨들군 하였다. 5년간의 실형언도를 받으면서 그는 리승만이 몇년간 자기를 옥에 가두어넣고 집권말기를 무난히 넘기고저 할것이라는 당초의 예견이 옳았다고 생각하였다. 날이 바뀜에 따라 생각이 달라졌다. 강치부를 무대에 등장시킨것이나 1심판결뒤끝에 벌리는 미친바람을 접하면서 그러한 환상과 미련은 사라져갔다. 리승만과 그와 야합한 외세가 기어이 자기 목을 노리고있다는것을 이제는 똑똑히 통감하고있었다.

조봉암은 새로운 투쟁을, 보다 엄혹한 싸움에 어차피 달라붙어야 한다는것을 깨닫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갖추어나갔다. 순간도 탕개를 늦추거나 헛눈을 팔아서는 안되는 싸움에 다시 진입하면서 투사의 심장은 여전히 세차게 뛰고 승리에 대한 락관은 백배해졌다.

(해볼테면 해보자! 이 조봉암은 끝까지 버티여낼테다!)

그는 이렇게 속으로 되뇌이군 하였다.

(어떻게 할것인가? 어느 고리에 힘을 넣어야 하는가?)

조봉암은 적들이 노리고있는 약한 구석을 찾아내려고 정신력을 집중하였다.

재판의 진행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되살려보았다. 기소장의 조항들을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었으며 증언자들의 발언과 조인수검사와 홍병삼재판장의 일거일동에 대하여서도 되살려보며 분석하였다. 암중모색끝에 조봉암이 찾아낸 중심고리는 강치부라는 결론을 내렸다.

2심판결에서 강치부의 역할은 더욱 커질것이다. 그가 결정적인 발언권을 가지고있을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강치부가 1심때처럼 황당하기 그지없는 거짓말을 되풀이하고 그에 2심재판정이 동조하여나선다면 재판의 결과는 참담하여질수밖에 없다.

2심재판정에 홍병삼 같은 판사가 다시 들어앉게 되리라는 담보가 없다. 아니,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을것이다. 리승만이 정치깡패들을 풀어놓아 지방법원을 기습하고 홍병삼판사까지 죽음에로 몰아갔다고 하니 2심재판을 주관할 판사들로 어떤자들이 선정되겠는가는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갔다.

문제는 강치부가 재판정에서 자기를 되찾아 량심의 목소리를 내게 하는것이다. 지금 사형을 선고받은 강치부가 무슨 생각을 하고있을가? 그에게 사형대에 세우지 않겠다는 담보를 주었을것이다. 바로 그것때문에 강치부는 2심에서도 립장을 바꾸지 않으려고 할것이다.

정말 강치부에게 그렇게 황당한 죄상을 들씌워놓고 세상을 들썩거리게 해놓고도 올가미를 벗겨줄가? 안될 말이다. 그 인간의 처리에 여론의 초점이 모아져있겠는데 리승만일파가 아무리 둔감하기로 그를 살려주는 모험은 하지 않을것이다. 그래, 강치부는 크게 속고있다.

조봉암은 증언대에서 흐느껴울던 그의 모습이 자주 그려지군 하였다. 분노에 앞서 웬일인지 불쌍하고 가련하게만 생각되여 가슴이 미여지는듯 아프기만 하였다. 죄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애초에 자기라는 인간이 모함에 걸려들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생겼겠는가.

강치부가 당하는 고통은 이 조봉암으로부터 시작되는 남다른 희생이다. 강치부가 《북의 특수기관에 고용》되였다는 고백도 이 조봉암을 물어메치기 위한 리승만일파의 간계로부터 시작된 고문과 협박과 회유에 의한 날조이다.

지난 시기에 강치부에 대한 조봉암의 견해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지만 불의를 미워하고 사람구실을 해보자고 애쓰던 사람이였다.

조봉암이 북에 드나드는것은 칠성판을 등에 지고 다니는 위험천만한 일이니 물러서라고 타이르면 첩보대가 밀어주는 일이고 자기도 머저리는 아니니 하는껏 해보다가 돌아앉겠다고 대답하군 하였다. 자기는 지금까지 북에도 남에도 나쁜짓을 하지 않고 다만 돈벌이만 할뿐이니 량쪽의 어느 곳에서도 자기에게 죄를 물을게 없다는것이였다.

《첩보대경리자금조성》이라는 말부터 듣기가 좋지 않다고 하면 어데 가서든 돈벌이하기는 매한가지가 아니겠느냐고, 이놈의 사회에 곱게 돈벌이시켜주는데가 어디 있느냐고, 조심조심하겠노라며 다짐을 하던 사람이다. 이따금 두툼한 돈뭉치를 가지고 와서는 살림과 운동에 써달라고 그게 자기 목숨을 건져준 죽산선생께 정갚음을 하는 일이 아니겠느냐며 빙그레 웃군 하였다.

그러던 인간이 지금은 의리도 량심도 헌신짝처럼 버리고말았다.

(목숨이 그리도 중한것일가? 마을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지주놈을 응징하려고 목숨을 걸고 나섰던 인간이 아닌가! 그가 다시 그 시절의 정의로운 모습을 찾게 할수는 없을가? 진보당을 구원하기 위하여서도 그리고 나, 조봉암과 너, 강치부가 살기 위하여서도 너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떻게? … 어떻게 해야 놈들이 깊이 파서 처넣은 죽음의 함정에서 그를 구할수 있을가?)

어느날 감방에 들어와 바깥소식을 전하여주던 간수부장 김정두가 강치부소리를 꺼내놓았다.

강치부는 사형선고를 받은 이후에 형무소의 사형수감방으로 옮겨갔다. 그쪽 호동의 간수부장이 하는 말이 완전히 기가 죽어 식음도 전페하고있다는것이다. 어떤 때는 그 무슨 알수 없는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다가도 이발을 부득부득 갈기도 하는게 완전히 미쳐버린것 같다고 한다.

조봉암은 마침이라싶어 이미 생각해두었던 부탁을 했다.

《간수부장, 그에게 한마디 전해줄수 없을가?》

《뭐, 몇마디 전하는것쯤이야…》

《음, 한마디요. 항소하라, 이거요. 꼭 항소하라고 하시오.》

《예, 전합지요. 그런데 그깐 놈 살려놔서는 뭘 합니까? 선생님을 잡아먹을라구 하던 놈인데… 간수들도 다 뒈질 놈이라고 손가락질이지요. 그런 놈은 죽어도 싸요.》

김정두는 조봉암의 부탁을 듣더니 이렇게 제가 속이 끓어올라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그게 어디 제 하고파 한짓이겠소. 그 사람은 원체 고지식한 사람이였소. 그러니 뻔한 일이 아니요. 애매한 사람이 죽어가는걸 그대로 보고만 있어서야 되겠소.》

《예, 그건 글쎄 저도 짐작되는 일입니다. 허지만 제 죽을줄은 모르고… 그놈 한짓이 꼭 제 손가락으로 제 눈 찌르기지요.》

《간수부장, 억울하게 피해보는 인간들을 도와주는게 인정이요. 제가 좀 모함을 당했다고 옛 지기가 숨꺼지는걸 보구도 돌아선다면 그게 무슨 사람의 법도라 하겠소. 물에 빠진 인간은 막대기를 쥐게 해야지 꼭뒤를 누르는 일을 해서는 안되오.》

《에- 죽산선생님은 그저 이러신다. 물어메치려구 하던 놈까지 정을 퍼주시구… 그놈 이걸 알기나 할가? 내 선생님의 부탁을 꼭 들어주리다.》

이렇게 떠나간 간수부장이 며칠이 지나 또 찾아왔다. 그리고는 희색이 만면해서 말하였다.

《죽산선생님, 그 사람이 항소를 제기했수다. 그쪽에 변호사가 오늘 왔다가 가는걸 나도 봤습니다.》

《고맙소, 감사하오. 그 사람은 루명을 쓰고있소. 나를 죽이자고 하니깐 그 사람을 때려가지고 루명을 씌워 내세운거요. 이제 항소를 하면 살아날거요.》

《그렇게 될가요?》

《아, 물론! 나를 보오. 사형을 구형해놓았지만 무기소지라는걸 내놓고는 무죄로 되지 않았소. 그 사람은 백지장처럼 깨끗하고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이요.》

《예… 그렇군요. 원, 어째서 모두 제명만큼 살게 하지 못하고 서로 물고뜯고 죽일내기를 하는지.》

《그러니 간수부장도 좋은 일을 많이 하시오. 사람이 생전에 좋은 일을 해야 죽어도 극락에 간다는 말이 참 바른소리요. 이제 그 사람이 풀려나가면 간수부장에게도 단단히 인사차림을 할거요. 사람의 정이란건 엎음갚음이요.》

《하, 그 말씀이 지당합지요. 그 강치부라는 사람이 좀 사는 사람인가요?》

김정두는 인사차림이라는 소리에 귀가 벌쭉해져서 버썩 다가든다.

《아, 그럼! 북으로 왔다갔다하며 돈을 벌던 사람이요. 그 사람이 딴소리는 했지만 그거야 하구퍼서 한 소리겠소. 이제 두고 보오. 그 사람 처도 사귐성이 좋은 녀자인데 한번 만나보오. 김부장의 신세갚음은 성의껏 해줄거요.》

《예, 그렇군요.》

김정두는 조봉암이 하는 소리에 귀맛이 바싹 동해서 제 먼저 달라붙었다.

《선생님, 또 한마디 보내주시는게 어떨가요? 전일에 선생님의 부탁을 전달해주니 눈물을 쫘르르 쏟더랍니다. 이번에는 선생님의 뜻을 직접 글로 적어주십시오. 쪽지를 전해주기가 쉽고 편하지요. 저쪽 간수부장도 전해주겠노라 약속했습니다.》

《쪽지를 써달라?》

조봉암은 쪽지라는 소리에 쉽게 대답을 하지 않았으나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 사람 저 사람 입을 거치느라면 자기 의사가 와전될수도 있고 전달하여주기도 여의치 않을것이다.

조봉암이 고개를 끄덕이자 간수부장은 감방에서 나가 담당간수에게 조봉암을 자기 사무실로 호송해오라고 지시하고 떠나갔다.

조봉암은 간수부장방에서 그가 내주는 펜으로 강치부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하고싶은 말은 많았으나 만약의 경우를 타산하여 짤막하게 썼다.

《항소했다는 말을 들었소. 꼭 이기시오. 이기자면 진실을 그대로 밝히고 그 진실을 끝까지 지켜내야 하오. 이건 우선 임자자신의 생명을 구하는 유일한 길이요. 그리고 나와 우리 동지들을 구해내고 나아가서 진보당을 살려내는 길이요. 임자 어깨에 무거운것이 얹혀있다는것을 잊지 말고 정의롭던 옛 모습을 되찾아주기 바라오.》

다음날 김정두는 쪽지가 본인에게 정확히 전달되였으며 강치부가 매우 감지덕지해 하더라고 말하였다.

조봉암은 속 한귀퉁이가 가볍게 들리는것을 느끼며 때마침 창턱에 날아온 동박새들과 즐겁게 속삭이였다.

《이젠 강치부가 제 모습을 찾는가부다. 사람이란 원체 이 세상에 태여날 때 너희들처럼 한껏 소리쳐 운단다. 그건 말이다. 나도 세상일에 참여하게 되였다는 주장이고 평생토록 제 소리를 내겠다는 언약이기도 하지.》

그런데 그날로부터 한주일후 또다시 상서롭지 않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담당간수가 하는 말이 자기네 간수부장과 사형수호동의 간수부장이 행방불명되였다는것이다.

그 소식에 조봉암의 얼굴은 컴컴해졌다. 강치부에게 보낸 쪽지편지가 사달이 나지 않았는지 못내 걱정스러웠다. 한편으로는 자기가 그 어떤 모략에 말려든것 같기도 해서 찜찜하기 그지없었다.

편지의 구절구절을 되살려보면서 자자구구 따져보니 거기에는 확실히 별일은 없을것 같았다. 그런데 쪽지편지가 강치부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놈들의 손에 들어갔다면 리되는 일은 없을것 같다. 쪽지를 가지고 또 무슨 모략을 꾸밀수도 있는것이다.

조봉암은 2심재판에 대처하기 위한 준비를 보다 면밀히 세웠다.

담당변호사가 이따금 그를 찾아오군 했는데 간수들과 경찰들의 립회속에 만나는지라 다른 소리는 없었으나 1심후반때 처음 만났을적보다는 매우 의기소침하여있었다. 분위기가 1심때보다 매우 험악해졌고 2심에 나선 판사들은 하나같이 고약한 놈들이라는것이였다.

《일없소! 힘껏 해보기요. 난 자신이 있소! 나에게는 법정도 전투마당이요.》

조봉암은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헌헌하게 웃군 하였다.

조봉암은 이번 재판도 효과적인 투쟁무대로 만들 결심을 굳게 다지고있었다. 그는 이미 1심재판에서 법정을 새로운 전투장으로 만들려고 했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다고 총화하였다.

진보당이 해산되고 그 기관지마저 페간당하였으며 진보당선전이 완전히 봉쇄된 오늘의 환경은 당의 강령과 정책을 심도있게 선전할수 있는 공개적이며 합법적인 연단이 있다는것이 불행중 다행이라 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법정에 모여드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그가 지지자이건 원쑤이건 할것없이 당의 립장을 알게 되고 그것이 그들의 입을 통하여 한입두입 건너 사회에 널리 전해진다면 당은 그냥 살아서 움직이는것으로 된다고 확신하였다.

조봉암은 자기의 담당호송경찰까지도 마음이 움직이는것을 보면서 자기가 내세운 싸움의 정당성을 되새기군 하였다.

1심재판의 선고가 끝나 돌아가는 날 호송경찰은 그전보다도 퍽 노근노근해져서 제가 먼저 말을 건늬여왔다.

《죽산선생님, 제가 사실은 경찰중에서도 지독한 놈으로 알려져 선생님을 모시게 되였습지요. 그런데 이렇게 여러달 선생님 모시고 다니고나니 선생님에게 흠뻑해지고말았습니다. 이걸 어쩌노? 진보당이 다시 서면 거기 가서 파수라도 서볼가요?》

조봉암이 경찰의 넉살좋은 말에 속이 흡족해져서 껄껄 웃었다.

롱조가 다분했으나 거기에는 진심이 어려있었다. 대답을 듣고싶어 하는 진지한 기미도 보이였다.

《아니, 경찰제복을 그대로 입고 도와주오. 진보당은 보수가 없다오.》

그 말에 호송경찰은 아쉬운듯 혀를 차더니 이렇게 벌쭉거리며 응수하였다.

《보수없다면 안되지요. 우리 애들 자그만치 다섯인데 어떻게 키웁네까? … 에, 그럼 우리 집 두 아들과 세 딸중 절반은 벌이 시키고 절반은 진보당 일하게 합지요. 그러다가 진보당세상되면 보수받으며 살게 아니나요.》

조봉암은 새삼스러워졌다.

경찰제복을 입은 사람까지 진리와 정의에 눈을 뜨면 자기의 길을 찾아 사람다운 모습을 찾고저 한다. 세상은 달라지고있다. 민심도 크게 변화되고있다. 이제는 사회도 새로운 모습을 지향하며 굼뜨지만 움직이고있다. 사회적변혁에 우리 진보당도 한몫을 하였다.

당은 이미 민중의 심장에 뿌리를 내렸다. 그 뿌리에서 이제 싹이 돋아나고 줄기가 뻗어오르고 거목이 되여 또 열매를 주렁지게 하면서 무성하게 대지를 덮을것이다. 한사람이라도 적진에서 떼여내여 진보당의 편, 정의의 길에 세워야 한다.

(싸우자! 싸워야 한다! 재판의 승패에는 난 관심이 없다. 사람들은 나를 역풍의 정치인이라 불러준다. 역풍의 정치가! 역풍의 사나이! …

나는 한생토록 거세찬 역풍을 안고 압제와 불의와 매국에 도전하여왔다. 나는 내 심장의 고동이 멈출 때까지 역풍으로 독재에 도전하며 수난자의 고행을 락으로 삼으며 민중의 노복으로 살것이다!)

조봉암은 새로운 투쟁의욕과 용기를 안고 2심재판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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