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 회)

제 6 장

5

 

류선민이까지 물러가자 뒤따라 비서가 들어와 미국대사 다울링이 찾아왔다고 보고하였다.

《다울링대사가?》

리승만은 심기가 불편스러운듯 입술을 메돼지주둥이처럼 삐쭉 내밀었다.

《왜 왔다고 하는고?》

리승만은 예고도 없이 찾아온 다울링대사가 그리 반갑지 않아 퉁명스럽게 물었다.

《찾아온 용무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음-》

리승만은 언제나 미소를 빼물고 나타나는 다울링의 허여멀끔한 얼굴을 잠시 눈앞에 떠올려놓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왜 왔을고? … 그녀석은 갈수록 기분잡치게 하는 구렁이같은 녀석이야. 조봉암을 걸고 또 흥정하려나? 200만을 꿀꺽하고도 아직 허기졌다는거야? 이젠 바다를 건너갈 때가 되였다는거겠지. 욕심두 곰의 발바닥같군. 에, 당초에 한량이 없는 놈일세그려.》

리승만은 이렇게 혼자소리로 두덜거렸다. 그는 다울링이 찾아온 진짜 사유를 어림짐작으로 넘겨짚고있었던것이다.

양놈들이 애초에 서울을 향해 하늘길에 오를 때 그 무슨 사명감이요, 동맹관계요 하고 떠들며 어깨를 으쓱거려보이지만 하지나 무쵸때로부터 지금까지 서울에 들어선 놈들은 어느 놈이라 할것없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온 돈귀신들이다. 그놈들에게는 식민지공국의 령주자리가 치부의 수단일따름이다. 권세팔아 돈 옭아낼 궁리만 하는 돈벌레들이다.

다울링이 우표수집이라는 고상한 취미가 있는듯 소문나있고 또 서울에 와서도 열심히 우표를 수집하고있지만 한갖 세상여론의 매서운 눈총을 피하기 위한 요술일따름이다.

다울링이 서울에 오고싶어 미국회 상원과 백악관 비서실을 부지런히 드나든것은 크게는 다른 리유가 없다. 서울독재자의 집권을 보장해주는 덕으로 열심히 딸라를 모아들일수 있다는것이 리유의 하나다. 서울대사의 자리란 백만장자로 만들어주는 자리라는것이다.

리승만은 지금까지 여러번 다울링에게 백성의 피와 땀과 눈물로 모아들인 딸라를 가방에 가득 채워 넘겨주군 하였다. 그 액수가 지금까지 합계를 하면 수백만이라는 거액에 달한다. 조봉암의 일때문에만도 다울링에게 두차례나 금붙이와 딸라를 찔러주었다.

다울링은 서울에서 근무를 불원간에 끝내게 된다. 이해말이면 먄마주재 대사로 있는 맥코노이라는 인물이 서울대사로 오도록 이미 내정되여있다고 한다. 미국회 상원에 있는 후견인들이 리승만에게 귀띔을 해온 소식이였다.

일확천금의 마지막기회를 노리고있던 다울링은 제딴으로 비위살 두텁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였으나 용기를 내여 다시한번 흥정을 걸어볼 생각을 해낸것이다. 밑져야 본전이요, 십중팔구는 뒤주머니를 불룩하게 채울수 있다. 수백만금의 불로소득인데 체면따위가 뭐란 말인가. 흥정거리란 리승만에게 지금 첫째가는 관심사로 목에 가시처럼 박혀있는 조봉암의 처리문제였다.

때마침 미국무성에서 보내온 전보지시도 있어 적당한 부분을 공개하여 우선 리승만의 귀에 들어가도록 하였다. 그리고 리기붕을 비롯한 리승만의 주변인물들도 만나 리승만의 사지를 죄여놓은 다음 이렇게 적당한 일거리를 챙겨가지고 달려온것이다.

《만나셔야지요?》

다울링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프란체스까가 어느새 방에 들어와 령감의 찌그러진 상통을 살피다가 조용히 건의하였다.

리승만은 내키지 않았으나 하는수없이 고개를 한번 힘겹게 끄덕거렸다.

《5분후에…》

방금전에 류선민과 정제관앞에서 미국정치의 앞면이요, 뒤면이요 신이 나서 엮어대며 배심좋게 히쭉거리기는 했으나 정작 다울링이 이 시각에 나타났다는 소리에는 저으기 신경줄이 팽팽해지는것을 어찌할수 없는 주구였다.

나이로 보면 손주벌이요, 지식으로 보나 정치경력으로 보나 상대가 안되는 풋내기들이지만 그놈들이 한번 으름장을 놓거나 앵돌아지는 경우에는 또 제3, 제4의 서해무인도의 총격사건이나 무쵸와 밴플리트가 벌려놓은 《레이버디》작전 같은것이 벌어져 자기 뒤통수에 언제 연덩이가 날아들지 모른다.

그러니 리승만의 눈에는 애꾸러기같은 녀석들로 비쳐들기도 했지만 실상은 미국대사야말로 리승만에게는 함부로 건드리거나 눈을 흘겨서는 안되는 사자의 코등같은 존재였다.

《그걸 가져오게.》

리승만은 비서가 나가자 눈시울을 붙인채로 한마디 했다.

《또요? … 정초에도…》

프란체스까가 리승만의 분부에 토달거리였다.

이해 정초에 리승만은 조봉암의 체포와 관련한 국무성의 압력을 타산하여 다울링을 돈으로 어루만져놓은바가 있다.

《어쩌겠나.》

《그래두 그렇지요. 한해에 두번이나… 줄수록 냠냠이라고 하더니.》

프란체스까가 여전히 령감앞에서 걸음을 떼지 않고 눈을 빨았다.

리승만의 비밀자금은 프란체스까가 직접 관리하고있다. 프란체스까가 사용하는 방의 커다란 금고에는 백성의 혈세로 마련하여놓은 딸라가 각이한 규모의 가방이나 트렁크에 채워져있다.

백성은 지금 그 돈 한푼이 없어 굶어죽고 얼어죽고있다. 행정부는 아직 전쟁의 피해도 가셔내지 못하고 금고가 바닥이 난채 부채만 허리부러지도록 걸머지고 휘청거리고있다. 헌데 이 경무대의 안방귀신인 프란체스까는 오로지 령감의 권력유지를 위한 일에 령감의 손짓에 따라 그 귀한 돈을 마구 뿌리고있는것이다.

《얼른 가져오게. 양놈들이란 사흘 굶은 승냥이 한가지니 벌린 아가리에 먹이를 넣어줘야 물러설게 아닌가. 이것도 정치야.》

리승만의 푸념질에 프란체스까도 마지못해 뒤문으로 사라졌다가 자그마한 개인용 사무가방을 들고 왔다.

《좀더 큰걸로!》

리승만이 녀편네가 들고 오는 가방을 흘끔 보더니 밸머리가 살아올라 어성을 높였다.

프란체스까가 령감의 역증에 눈을 내리깔며 토달거렸다.

《아유 참! 그 사람 욕심도 크지. 사실이야 조봉암을 제거하는 일은 벌써 오래전부터 <쌍-프>작전이요 뭐요 하면서 저들이 오히려 이쪽보다 한수 더 떠서 벌려온 일이 아니나요. 그런데 아직도 일도 치지 못한 주제에 입만 넙적거리니…》

《어쩌겠나? 저놈이 시치미를 뚝 떼고 조봉암을 놓고 설레발을 치면 워싱톤의 상전들은 덩달아서 이 우남이 어쩌고저쩌고 소동을 부리겠는데… 재앙거리는 미리감치 털어버려야 해! 괜히 몇푼 아꼈다가 게도 구럭도 다 놓쳐서야 될말인고. 그 돈이야 원체 이러루한 일에 써먹자고 꿍져두는게 아니겠나.》

리승만이 구차스럽게 질질거리자 프란체스까가 내키지 않은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이내 자그마한 트렁크를 무겁게 들고 나왔다.

리승만은 일부러 딸라트렁크를 집무탁앞에 올려놓고 초인종을 눌렀다.

비서의 안내로 방안에 들어선 다울링은 책상우에 있는 트렁크에부터 피끗 눈길이 끌렸으나 인차 외면하고 아닌보살하였다. 저도 어쩔새없이 울대가 움씰거렸으나 그것도 순간이였다. 그는 군소리없이 짤막히 말을 꺼냈다.

《국무성은 조봉암과 관련한 각하의 립장을 리해하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들의 면담은 길지 않았다. 그 무슨 새로운 화제거리도 없었고 오래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다울링도 리승만도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손을 잡았다.

조봉암의 생사가 리승만의 집무탁에 있는 딸라트렁크로 군설명이 없이 결속이 되였다.

다울링을 바래주고난 리승만은 프란체스까의 부축임을 받으며 이내 침실에 들어갔다.

《에, 그놈 집요하군. 그놈 성화가 꼭 추석전 모기 한가지야. 저놈들은 어쩌면 하나같이 저렇게도 신통히 욕심쟁이누. 놀부 뺨칠 놈들이야. 자유요, 민주요 다 헛나발이고 념불이지. 돈이라면 발가벗고 십리 갈 작자들이야. 하긴 저 돈귀신같은것들이 돈 모으는 재미없이야 웨 이런 곳에 와서 신역을 치를고…》

리승만은 침대에 네활개를 쭉 펴면서 중얼거렸다.

리승만의 그 볼부은 소리에는 진실이 있었다. 오래동안 미국사람들이 던져주는 빵부스레기를 씹어온 리승만은 미국사람들의 체질을 정확히 리해하고있었다.

애당초 저 미국의 대사에게 그 어떤 고결한 리상이라든지 미국의 존엄과 국익에 대한 사명감 같은것이 있을리가 만무다. 그들에게는 눈앞의 리해관계, 자기를 중심으로 하는 실리만이 현실적매력을 느끼게 할뿐이다. 미국의 존엄이든지 국익은 더 많은 물질적부를 걷어모으는데 필요한 한갖 치부의 수단일뿐이다. 그자들은 외교관이라는 호화스러운 패쪽을 이마에 붙이고 미국이라는 힘과 위엄을 돈과 바꾸러 다니는 정치의 장사군들이였다.

《흠흠.》

리승만은 황금이라면 쪽을 못쓰는 양인들의 치사스러운 심보에 역스러움을 금치 못해 누운 자리에서 연해연방 코소리를 뿜어올렸다.

《아유, 줘놓고 속쓰려하실건 뭐나요? 그래도 이젠 그 조씨를 마음놓고 처리할수 있게 되잖았어요. 버드와 다울링까지 푹 삶아놓았다구 편히 생각하세요. 각하두 그게 정치라 하지 않았나요.》

《딴은 그래… 그래그래, 그게 정치구말구…》

프란체스까가 령감의 머리맡에 앉아 머리칼을 쓸어주며 위로하자 리승만도 기운이 쇠한듯 헐떡거리며 맞장구쳤다. 그는 이내 코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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