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1 회)
제 6 장
4
판결소식을 즉시에 보고받은 리승만은 노기등등해졌다.
리승만은 경무대에 류선민과 정제관을 당장 끌어오라고 호령을 내렸다.
정제관을 대기실에 앉혀놓고 류선민부터 불러들인 리승만은 첫 마디부터 청이 비린 노성부터 터뜨렸다.
《이봐, 법무! 임자 누구의 장관이지?》
류선민은 보름전에 리승만으로부터 장관임명장을 받았다. 장관대리로 임명된 때로부터 3년이 되여온다.
그사이 법무부 장관직을 맡아볼 사람을 끝내 골라내지 못한 리승만은 하는수없이 류선민에게 온전한 감투를 씌워주었다. 리승만이 3년을 뒤주머니에 구겨박아온 장관감투를 이제 와서 씌워준데는 다른 리유도 있었다. 그것은 조봉암에 대한 재판을 자기의 의도대로 그리고 무난하면서도 빨리 끝낼것을 바라는 속심이였다. 임명장을 줄 때 로골적으로 내비치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자기가 3년만에 안겨준 장관감투에 감지덕지해서 조봉암처리를 일사천리로 끝낼줄 알았는데 결과가 뜻밖이였던것이다.
리승만은 재판결과에 대한 보고를 경호실장 곽영주에게 듣자 류선민을 때려죽일 놈이라고 귀먹은 욕설을 퍼붓고는 당장 끌어오라고 불호령을 내렸던것이다.
류선민이 입을 다물고있자 리승만은 성을 벌컥 냈다.
《대답해봐! 누구의 장관이야? 조봉암의 장관 아니야? 조봉암을 옥좌에 앉히고싶어 안달이 난게 아니야?》
리승만이 워낙 배포가 큰 류선민이 《내 목 쳐주소.》 하듯 그냥 입을 다물고있자 불맞은 승냥이처럼 주단우를 오락가락하였다.
《법은 하난데 검사는 사형이요, 판사란 놈은 5년 징역이요 하니 어느게 옳다는 소리야, 앙? 법무는 어느쪽이구? 간첩건이라는건 그 죄상이 유무를 따질것도 없이 무조건 사형을 떨구어야지 법이 허술하면 이 서울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데 법관이라는 놈이 한다는 수작이 북에서 주는 공작금인줄 알고 받을지라도 진보당일에 썼다면 뭐, 전리품이야? 그게 리적이 아니야? 역도를 살려주면 우리 법은 왜 있는고? 홍병삼이라 했더라? 이제 밥통떨어질 나세도 됐다던데… 아니, 그놈 정신이 쑥 빠진 놈 아니여? 그놈 모가지 몇 된다고 법가지고 그따위 롱간이야? 그놈부터 주리를 틀어야 해! 그놈이 친공판사가 틀림없어. 조봉암이 법조계에 박아넣은 끄나불이 적실해. 진보당에 특수당원이라는게 있다더니 그놈이 틀림없어!》
《각하!》
류선민은 리승만이 귀청을 째는 악청으로 그냥 방안이 떠나갈듯 제잡담 고아대자 잠자코 입을 다물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떠밀려 입을 여는수밖에 없었다.
《자중하여주십시오.》
《허, 이 사람아! 나더러 자중하라? 이게 자중하게 될 일이야? … 두말말고 검찰에서 항소를 하게 해!》
《항소요? … 항소란 흔히 피고들의 법적권리로 되여오는데 검사항소란 좀 무리가 될듯싶습니다.》
《그건 또 무슨 떨떨한 소리야? 내 이미 한시간전에 검찰총장에게 말해두었네. 당장 검사가 판결에 불복한다고 고등법원에 항소를 제기하도록 하게! 뭐, 검사가 항소를 제기하는 례도 있다구 하더구만. 조봉암의 숨구멍을 틀어막을 때까지 2심이요, 3심이요 내처 벌려놓게.》
《예, 글쎄 그게 위법이라고는 볼수 없습니다.》
《이봐, 법무! 임자가 그렇게 어정쩡하니 임자 수하것들도 그 꼴 아니야? 뭐 그놈의 법정은 온통 복닥판이라면서? 조봉암의 목을 치라고 오라를 지웠는데 조봉암만세가 터져나올 지경이라니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고?》
《그렇게까지야… 원체 이번 재판에 미묘한 문제가 많은데다가 조봉암이 너무 드센 인물이여서…》
《신성한 법정이 이따금 벌둥지처럼 소란스러워진다는데 그래도 일없다는거나?》
《글쎄, 법정에 정숙이 보장되여야 하지만 방청객들도 자기의 찬반의사와 감정을 박수나 웃음으로 표시할수 있는 권리는 법적으로 정당화되여있습니다. 따라서 일부 문명한 유럽의 법전들에는 법정방청객들도 배심의 도덕적 한표를 행사한다고 명문화되여있습니다.》
《흥, 모를 소리… 배심의 도덕적 한표라는건 무슨 괴망한 소리나? 법정에서야 도덕이 아니라 법이 우선시돼야지.》
《거야 지당한 말씀입지요.》
《여러말할것없이 1심법관들을 모조리 립건해서 뒤를 캐봐. 법관들이라 하여 무제한의 자유가 보장된다는건 안될 일이야. 그따위 판사들을 처리하는 방법이 있을게 아니야? 그놈들의 목을 쳐서 분명 시뻘개지고있는 류선민의 법조계에 선풍을 되게 불게 해야겠어.》
리승만은 직성이 풀리지 않아 그냥 안절부절하였다.
《각하, 두번째, 세번째 재판을 벌릴데 대한 각하의 엄명을 제가 받들어 조처하겠습니다. 그런데 공연히 1심법관들을 자극하는것은 득책이 아닐줄 압니다.》
류선민은 홍병삼의 목숨이 경각에 이른듯싶어 급해맞아 허리를 굽실거리며 조심스럽게 주장을 폈다.
《득책이 아니라구? 그래두 그놈들 모가지를 비틀어서 다시는 대통령의 뜻을 거슬러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세워놓아야 해! 법관들의 죄상을 따지는 법도 있을테지? 없으면 이제라도 만들어내! 법조계에 잠입한 마녀들을 사냥해야 해!》
리승만은 류선민의 조심스러운 의견에 성깔이 돋쳐 그냥 씨근덕거렸다.
류선민이 정말 리승만이 법조계에 한바탕 마녀사냥의 미친 회오리를 일으켜놓을가봐 조마조마해서 물러서지 않고 이번에는 어조에 저력을 담아 주대를 세워보았다.
《각하, 법관들의 죄상을 따지는데는 탄핵소추라는 법조항이 있기는 하나 법관징계위원회라는 기관의 심의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법관징계위원회가 다 고명한 법관들이 모여있는 곳이라 일단 내린 판결을 놓고 법관을 처리하자고 하지 않을겁니다. 각하의 령에 상반되는 결과가 징계위원회에서 또다시 나오게 되면 괜히 각하의 체면만 상하게 할것 같습니다. 특히 이번에 나선 재판장은 임기만료자인데다가 법조계와 사회여론에 명망인물로 공인되여있어 법관징계위원회가 동정적인 태도를 보여줄게 명백합니다. 2심판결이 이제 예견된다면 더구나 1심판결에 참여한 법관들을 징계하는건 여러가지 구설수를 몰아와 여론을 크게 자극할 일이라 득책이 아닐줄로 압니다.》
《흠… 그래? 임자 소린 무슨 수작인지 알아듣지 못하겠어. 안돼!》
《지금 항간에 당초에 평화통일론이나 국회진출을 문제삼아 진보당을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이번 사건을 터지게 한것부터 시대착오였다고 하는 소리도 무성합니다. 이제 법관들 구속처리까지 해놓으면 이 모든게 다시 물망에 올라 여론을 반대로 몰아갈것이 걱정스럽습니다. 그래도 그 사람들이 조봉암의 수족을 5년간이나 묶어놓게 하지 않았습니까.》
《5년? …》
《5년이면 다음기 대통령선거에서도 각하의 출마가 담보되지 않겠습니까?》
《다음기? … 그 다음에는… 이를테면 다음다음기 선거는 어떻게 할고?》
《다음다음기라구요? 그러면…》
리승만이 떠벌이는 수작에 두상의 심사를 너누룩하게 해주려고 그냥 자기주장을 펴보이던 류선민이 속이 덜컥하여졌다. 그는 어이가 없었다.
지금 리승만이 나이가 여든넷이다. 다음기면 여든여덟이요, 다음다음기라면 아흔둘이다. 그러니 아흔둘 되는 때도 《대통령》감투를 쓰고 앉아있겠다는노릇이다.
류선민은 너무도 아연하여 리승만의 두툼한 입술과 아직도 살점이 깎이지 않은 볼따귀며 주먹코를 멀거니 쳐다보았다.
(과연 질겨빠진 두상태기로구나! 권력에 환장을 해도 짐작이 있지 이거야 너무하지 않느냐. 에- 송장내나는 미치광이, 로망든 바보… 하기는 그밑에서 하수인노릇 해먹는 놈도 같고같은 얼치기지… 저게 정말 로망들지 않구서야 해볼 수작이냐? 백성을 숫보구 수하인물들을 업신여겨도 분수가 있어야지. 아흔줄에도 정사를 다스리겠다는 안하무인이 어데 있어? 나라마다 흥망성쇠가 있고 사람마다 밀물과 썰물의 시절이 있다는걸 리승만이 정말 모르고있을가? 오르다가 진하면 주저앉아 꺼져버리는게 인간의 생이라는데 이걸 모르고 염라국에 들어설 때까지 옥좌에 그냥 버티고있겠다니 이게 애당초 로망이 아니고 뭐야?!)
류선민은 울컥울컥 붐비여오르는 분노와 경멸을 주체하느라고 주먹에 힘을 주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목젖너머로 치밀어오르는 울화를 삭이였다.
(하는수 없다. 미쳐난 늙은 호랑이의 비위를 거슬려놓아야 리볼것은 없다. 피해서는수밖에 없다. 이제 조금만 더 두상태기의 심술통을 찔러놓으면 당장 이봐라- 하고 옆방에서 주인의 령을 기다리는 사냥개처럼 권총을 차고 령감의 호통을 기다리고있는 경호실장 곽영주를 불러들일 판이다. 그러면 만사가 끝나버린다. 당장에 오라를 지고 지하감방에 끌려가 빛도 보지 못한채 숨질수도 있다. 옛날부터 정배살이섬으로 소문난 흑산도에 끌려가 문둥병자들과 함께 살다가 까마귀밥이 될수도 있다.
저놈은 악한이다. 주먹이 센 악한이다. 울면서도 후추알 삼키는수밖에 없다. 더구나 아직은 밸통을 세워볼 때가 아니다. 감정을 이겨내야 한다. 랭철하게… 랭철하게…
나까지 걸려들면 조봉암의 목에 조여든 올가미는 누가 풀어주겠는가. 장관이 장관구실하고 사람이 사람다운 흉내를 내며 살기 위해서도 이 늙다리를 어서바삐 들어내야 한다. 그런 날을 앞당겨오자면 어찌하든 조봉암을 살려내야 한다. 조봉암이야말로 저 로망든 두상을 들어낼수 있는 서울정치권의 유일한 인물이다. 조봉암이 다시 일떠서야 서울정사도 제 모양을 갖추게 된다.)
가슴속에서는 독재자에 대한 분노가 끓고 조봉암에 대한 동정이 차들고있었으나 그의 입에서는 다른 소리가 튀여나갔다.
《각하, 제가 알아서 조처하겠으니 너무 심뇌하지 마십시오. 각하가 튕겨준것처럼 이제 2심, 3심도 있으니 판결이 이걸로 끝나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류선민은 지금은 자존심을 접고 허리를 굽히는수밖에 없어 요령있게 침바른 소리 한마디 더 했다.
그제야 리승만은 안색이 다소 풀려 어조를 바꾸었다.
《음… 우리 법에 항소법도 있구 2심, 3심도 있다는게 참말로 다행일세. 그걸 보면 우리 법도 민주가 철철 넘치는거야. 이번에는 차질이 없도록 임자가 솜씨를 보이게. 장관록봉 거저 생기는게 아니야. 참, 듣자니 임자 동생이 아직도 조봉암을 보러 재판정에 다닌다면서? 임자도 알고있나?》
《예, 저도 자주 찾아 욕설을 퍼붓군 하는데 워낙 심한 성격이여서…》
류선민은 리승만이 다 알고 꺼내놓는 수작이라 솔직하게 토설하는수밖에 없었다. 이내 자기 말에 주를 달아놓았다.
《하지만 저도 그러하지만 그애도 조봉암과 더 깊어진 사이는 아닙니다. 이건 제가 장담할수 있습니다.》
《음- 그런가? 수하인물들 몇이 임자네 동생과 조봉암관계를 꼬집으면서 임자에게 이번에 장관자리 주는걸 한사코 반대하였네. 당초에 법무를 제껴놓고 이번 사건을 매듭지어야 했을 노릇이라고 칭원을 하기도 한다는걸 알아두게. 그 사람들 걱정이 괜한 로파심이라는걸 임자가 보여줘야 할걸세.》
리승만은 이렇게 은근히 위협을 해놓고는 초인종을 눌러 비서를 찾았다.
《내무를 들여보내!》
인차 정제관이 나타나 문턱앞에서 허리를 두세번 연신 꺾었다.
《흥!》
리승만은 죄인꼴로 서있는 정제관을 쏘아보다가 코방귀부터 힝하니 불어던졌다.
《어찌된 일이야? 그 꼴 보기도 역겹군. 조봉암의 목치기는 여반장이라 하더니 왜 그 꼴이야?》
리승만에게서 류선민은 학벌이나 지성에 있어서 그리고 법조계에서 차지하는 발언권에 있어서 함부로 하대를 붙이지 못할 존재였으나 경찰망둥이패를 거느리고 막된짓만 하고있는 정제관따위는 기분나는대로 휘둘러놓아도 되는 심복부하이다.
정제관따위는 허리를 굽실거릴수록 차례지는 회초리가 더 굵어진다는것을 모르고있는 위인이였다.
《법도 있고 경찰도 있고 군대도 있는데 그 악독한 공산당을 살려놓다니… 임자 장관감투는 돈으로 사놓은 당상이야?》
《그래도 각하, 하여간 5년동안은 옥에 처넣게 되지 않았습니까?》
정제관이 리승만이 마구 줴던지는 욕설이 하도 듣기가 민망스러워 류선민을 흘끔 돌아보고는 억울해서 한마디 넌지시 비쳐보았다.
그런데 그 소리가 오히려 리승만을 더 사납게 날뛰게 건드려놓았다.
《그건 무슨 소리야? 이봐, 내무! 갇힌 호랑이는 호랑이가 아니라던가? 철창속에 갇혀 울부짖는 소리가 더 요란하게 천지간을 진동시킨다는걸 몰라? 내 일전에도 임자보구 그런 소리 한것 같은데… 임자네가 괜히 설 다친통에 시골의 망아지같던 조봉암을 하늘의 불가사의한 우상으로 버쩍 치켜올렸어. 사냥개는 매놓고 기르면 더 사나워진다고 했는데 5년후에 그 입살드센 놈을 철창에서 풀어놓아 천하를 한손아귀에 휘여잡게 당초에 계산한게 아니여?》
《각하, 그럴리야 있겠습니까? 저희들이 너무 급하여 일을 서두르다나니 이렇게 되였습니다. 사실 저희들은 사형감이 되게 꾸며서 법무쪽에 넘겨주었는데 법관선정부터 소홀히 된것 같습니다. 그러니 재판이 개판이 되여…》
정제관은 지금까지 졸개들과 함께 제 방에서 류선민이 바지저고리라고 귀먹은 험담을 퍼붓다가 끌려왔는데 리승만이 소낙비처럼 퍼붓는 욕을 그냥 듣자니 슬그머니 약이 올랐다.
그래 옆쏘파에 허리를 붙이고 늘어진 눈거죽을 내리깔고 속으로는 깨고소해하는듯싶은 류선민을 꼬집어들었다.
그 소리에 류선민이 감고있던 눈을 번쩍 뜨고 즉시에 윽박질렀다.
《내무, 그게 무슨 실없는 험구요? 각하가 책망을 하시면 곱게 들을줄도 알아야지 면전에서 남의 상판에 흠집을 만들어 제 먹을 욕을 넘겨씌운단 말이요? 거 심보가 시커멓지 않은가.
그래 말해보자오? 휑하게 구멍이 난 채를 가지고 와서 고기낚아달라고 하면 고기가 걸려든다오? 내가 봐도 첫눈에 걸려드는 흠집투성이를 넘겨주면서 교수대에 올려세우라니 세상눈은 어떻게 막아낸단 말이요? 그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울수 있다던가. 5년형을 멕인것도 상당한데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고작하여 허물잡기인가. 법관선정 잘못했다는 수작은 걷어치우시오. 홍병삼이 아니고 정병삼이, 고병삼이 했더라도 그 꼴, 그 꼴일거요. 사람이 제멋에 산다고 해도 막말을 함부로 하는게 아니요. 더구나 각하앞에서…》
류선민은 리승만에게서 받은 수모를 새길수 없어 속을 끓이던 참이라 정제관의 말같지 않은 소리를 듣자 기다린듯 말끝을 나꾸어채가지고 벼락같이 달려들었다. 그는 정제관이 대꾸할새가 없이 마음껏 역정을 부리고 다시 입질을 못하게 호되게 답새겨 기를 죽여버렸다.
자기쪽으로 책임을 떠넘기는 정제관의 약빠른 수작에는 밸이 꼬였으나 시어미역정에 개배때기 찬다고 리승만에게 퍼붓지 못한 분노를 일시에 들씌워버린것이였다.
리승만이 장관이라는 사람들이 도끼눈을 해가지고 맞붙은 꼴이 한심스러웠던지 책상을 주먹으로 두세번 쳐서 갈라놓았다.
《됐소, 됐다니깐… 다들 자기 책임을 똑바로 하면 이런 일이 없었지. 이런 땐 권태구가 있어야 하는건데… 그 사람이 비명에 죽은게 아까워. … 음-》
리승만은 제가 제껴버리게 한 권태구의 죽음을 걸고 정제관을 다불렀다.
《내 방금전에 버드대좌를 만나 긴급협의를 했네. 그 사람 의견을 받아들여 만들어낸 방안인즉 들어보게.
우선은 저 법관놈들을 저대로 놔두면 경무대의 립장이 달라진것으로 세간에 전해질걸세. 이렇게 되면 다음재판도 그 꼴이 될수 있네. 그러니 법원에 마지광의 패거리를 들이밀어 반공기개를 한바탕 과시하게 하자는거야. 떨떨해있는 법관놈들에게 법의를 둘렀다고 제멋대로 찧고 까부는게 아니라는걸 보여주어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것도 좋지. 좋기는 그놈들 아예 릉지처참해버려야 속시원하겠는데 그건 좀 두고보세.
다음에는 내 방금 법무에게도 말해주었네만 검사가 고등법원에 판사놈들 판결이 오심이라고 항소를 해서 2심재판을 속개하는거야. 이번에는 알알이 여문 녀석들을 판사로 내세워 조봉암을 깨끗이 없애버리는 일을 매듭지어야 해.
그까짓 여론이 무성해지면 조봉암의 수하놈들은 다 풀어놓아도 괜찮아. 진보당이란 벌떼무리와 같아서 녀왕벌 하나만 홀쳐 죽여버리면 뿔뿔이 흩어지고말걸세. 보라구, 진보당중앙이 통채로 감옥에 가 엎디여있는데 산골부락에까지 뿌리내렸다던 진보당이 찍소리 하나 없지 않는가? 어떤가, 내무?》
《예, 고견입니다. 각하만이 내놓을수 있는 명처방입니다.》
정제관은 말끝을 길게 뽑으며 개올리였다.
류선민은 리승만앞에서 굽신거리는 정제관을 보면서 속으로는 또다시 일어번질 피비린 선풍을 예상하며 진저리를 쳤다.
어쩐지 류선녀의 희맑은 얼굴부터 떠올랐다.
떠나오기 전에 류선녀가 전화로 고맙다고, 오빠의 수고로움을 잊지 않겠노라며 울먹거렸다. 그래 옥살이 5년은 자기가 맡아 해제하여보겠으니 념려말라고 장담까지 했는데 리승만은 이렇게 그 사람을 기어이 도륙을 내고야 직성이 풀릴 잡도리다.
(에, 두상태기! 이제는 그만큼 눌러놨으면 풀어줄노릇이지. 악만 남아 기어이 해보겠다니 그 고약한 소갈머리로 정사를 어떻게 다스리겠나?)
류선민은 이렇게 커다란 좌절감을 느끼며 속깊이 통탄해하고있었다.
《법무도 이번에는 손탁이 드세게 일을 처리하여주게. 사회의 치안이 걸려있는 중대사건인데 뒤날에 풍문이 어지럽게 남는다고 걱정하게 되였나? 일단 쓰러뜨리면 좀 소리가 나겠지만 지나가면 바람은 잦아들기 마련일세. 정치놀음이라는게 그런거야. 정치라는게 백성속여먹는 일이라는 말이 헛말이 아닐세.》
《그런데 각하… 저…》
류선민은 하나의 생각이 번개치듯 떠올라 흥정을 붙여보기로 결심하였다. 밑져야 본전이다.
《뭔고?》
《전날에…》
류선민은 얼굴에 난색을 지어보이고 일부러 말을 힘들게 번지였다.
《우물쭈물할게 없네. 내앞에서는 잴게 없네.》
《조봉암을 처형하여버리면 그 수습이 문제가 아니겠는지… 미국어른들이 좋아할러는지 아직 질정이 안됩니다. 전번 검사구형에서 조봉암에게 사형을 주고 그밖의 피고들에게 중형을 구형했을 때 미국무성이 동북아시아담당 차관보를 내세워…》
류선민이 리승만의 결심을 틀어보려고 미국을 거들어대자 리승만이 팔을 쭉 뻗쳐가지고 휘휘 내저어 말허리를 끊었다.
그건 리승만도 다 알고있는 일이였다.
미국무성은 벌써 조봉암에 대한 재판이 열리기 전에 동북아시아담당 차관보를 내세워 다음과 같이 립장표명을 하였다.
《조봉암의 리념적주장은 리승만과 다르지만 그가 체제전복활동에 관여했다거나 리적행위를 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한다. 이번 조봉암체포는 1952년의 부산정치파동시기 반대파에 대한 체포소동과 거의 비슷하다. 현 집권세력은 전번 선거에서 진보당과 그 후보를 실추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여왔다. 이 체포도 조봉암의 개인적인기와 그가 내세운 평화통일 및 민주주의강령에 대한 현지 주민들의 지지의 급속한 상승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준다.
만약 현 집권세력이 평화통일주장을 반역으로 재판에서 선언한다면 이 문제에 대한 미국과 유엔의 정책을 범죄적인것으로 해석하는것으로 되며 유엔총회에서 조선문제해결을 위한 미국의 립지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것이다.》
그때로부터 며칠후에 서울의 여러 신문들의 1면 상단에 큰 활자로 미국대사 다울링이 《국회》의장이며 자유당대표인 리기붕을 만나 《조봉암의 사형을 막아야 한다는데 대하여 강도높이 건의》하였으며 리기붕은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보도를 실었다.
미국무성 동북아시아담당 차관보는 구형재판에서 검사가 사형을 구형하였을 때 또다시 기자회견장에 나타나 이렇게 발표하였다.
《조봉암에 대한 사형구형은 공산당선전을 고무하고 중립국가뿐아니라 자유우방국들로 하여금 미국의 대조선정책에 대한 비난을 크게 야기시키고있다. 프랑스대사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공식외교대표들이 이러한 국가적립장들을 표명하여왔다. 미국무성은 조봉암이 사형선고를 받지 않도록 영향력을 행사할것을 현지대사관에 엄격히 지시하였다.》
류선민은 리승만이 벌리고있는 흉계에 제동을 걸고싶어 이러루한 일들을 상기시켜본것이다.
그러나 리승만은 《헛허-》 하고 구새먹은 진대나무를 두드리는듯 한 소리로 크게 웃기부터 하였다.
《이봐, 법무! 임자 영국 가서 뭘 배웠다구?》
《예, 옥스퍼드대학에서 법률을 배웠습니다.》
《미국에 가서는 어느 학과를 다녔더라?》
《법률을 연구하였습니다.》
《법률박사라? 그래 이 서울땅에서 법률이라면 임자와 겨룰이 없다고 하던데 정치의 오묘한 리치에는 아직 눈이 트지 못했구만. 정치에는 법률과는 다른 속성이 있는거야.
거 내무도 굴뚝처럼 버티고 서있지 말고 앉으라구. 내 좀 바쁘지만 아무래두 임자들앞에서 정치라는 학문의 한페지를 강의해야 할가부네.》
정제관이 리승만의 호의에 감지덕지해서 쏘파에 조심스럽게 엉덩이한쪽을 붙이였다.
리승만은 앞에 있는 차잔을 들어 걸탐스럽게 마시고는 두사람을 상대로 자못 장엄하게 궤변을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미국무성의 립장이요, 정책이요, 엄한 지시요 하는게 뭔가? 그건 다 미국정치의 겉면이요, 치장물에 불과한걸세. 그러면 이번 우리 재판을 놓고 미국정치의 뒤면-이를테면 속심은 무어냐?
이걸 투시해보는게 정치가의 지혜야. 그건 말일세, 이 우남과 일맥상통하는거라 한마디로 조봉암을 제껴버리라는거야.
아무렴 이 우남이 고집불통이요, 변덕쟁이요, 독재요 하지만 미국이 손들어주지 않으면 병졸 하나 움직여낼수 있대? 어림도 없는 소리야. 하물며 거물을 제껴버리는 대사를 미국의 결재없이 할수 있는가.
그러면 조봉암문제에서 미국무성의 진속이 어데서 출발하느냐 이거야. 그건 미국의 반도정책, 나아가서 미국의 세계제패정책이야. 미국은 어찌하든 동아시아에서 랭전체제가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고있소. 그런데 조봉암이라는 작자가 우둔하게도 제3의 정치리념이요, 민중세상이요 하면서 그걸 교란시키고 미국을 난처하게 하고있단 말이요. 경제정책도 미국의 자유경제원칙과 대립되는 북의 균등분배요, 협동조합이요 하는 주장을 펴고 민족자주의 주장으로 미국을 그냥 자극하고 압박하는거야.
이른바 평화통일문제 놓고 미국의 뒤면을 살펴보게. 외적으로는 조봉암의 주장이 미국이나 유엔의 반도정책에 보조를 같이하고있는것처럼 보이지. 하지만 우리 반도에서 긴장이 완화되고 남과 북이 대화와 교류를 해서 평화통일로 나가면 미국의 랭전구조체계가 허물어지고말걸세. 그리고 서울에 와있는 미군도 물러가야지. 여기 남아있을 명분이 송두리채 없어지는데야 저들이 남아있을 체면이 되나. 그렇게 되면 미국것들은 다들 반도에서 쫓겨가고 련이어 일본에서도 발을 뽑고 대만에서도 물러나게 될걸세.
그런즉 조봉암이나 진보당을 그냥 저 모양대로 풀어놔주면 제일 급해날건 미국사람들이야. 그까짓 이 우남은 늘그막에 정사에 진맥을 다 뽑을게 없이 훌훌 털고 내 살던 하와이쯤에 가서 여생을 보내면 다지만 미국이야 유라시아대륙의 동쪽진지를 잃어버리게 되는데 그거야말로 큰일이구말구… 미국의 속심이라는게 이거야. 이게 정치야.
그럼 왜 미국무성이 제법 기가 올라 헌수작을 하며 서울쪽에 대고 실없이 눈을 빠는건가? 이게 바로 정치의 앞면이라는거야. 최소한의 체면절차라도 밟아본다는거지. 자유와 민주의 아성이라고 으시대는 제놈들의 낯짝 깎일가봐 세상여론과 숨박곡질을 하는거란 말일세. 거사가 끝난 뒤 저희들이 몰리게 되면 우리도 최선을 다했노라고 해볼 소리를 지금부터 착착 마련하자는거란 말일세.
내 아까 정치라는게 백성 속이는거라고 남의 소리 빌어 해봤는데 이렇게 놓고보면 미국의 정치라는게 뭐인지 임자들도 알거네. 정치란 결국 안으로는 백성을 속이고 밖으로는 여론을 속이는 재간일세.
프랑스대사소리가 나온즉 나도 생각이 나네. 인천에 와있던 롤만이라는 작자가 버드에게 쫓겨가서 아마 저희들 족속인 프랑스대사관을 쑤셔놓았겠지. 떨것도 없고 걱정할것도 없어. 판결보고를 받자 맨 처음 달려온게 누군지 아나? 바로 미군의 방첩대장 버드야. 버드인즉 어깨의 계급장이 가볍다 할지라도 이번 조봉암사건에서는 미국의 흑막세력을 대표하는 실세인물일세. 그 사람이 이 방에 와서 여러 말을 하고 갔는데 꾹 쥐여짜면 두어마디야. 제껴야 한다, 무조건! 더는 여론에 귀기울일게 없다. …
내 말 알아듣겠나, 법무? 이제는 뭐가 뭔지 정치의 량면이 리해가 되나, 내무?》
리승만은 미국정치의 앞뒤면에 대한 장광설을 신명이 나서 들려주고 갑자기 두사람을 몰아대듯 번갈아가며 오금을 박았다.
《참말로 심오한 해석이옵니다. 각하의 박식이 부럽습니다. 저 같은거야 미국어른들의 정치의 오묘한 속내를 상상이나 해볼수 있겠습니까?》
정제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요사를 떨었다. 사실 정제관은 리승만의 장황한 설교에 취해들어 미국놈들도 엉큼하기 그지없지만 그놈들의 안팎다른 속통을 쉽사리 가려내고 자기에게 리롭게 써먹을줄 아는 리승만의 내흉스러운 수작도 희한하도록 놀랍게만 생각되였다.
정제관과는 달리 류선민은 고개를 두세번 끄덕거렸을뿐이였다. 자기가 마지막으로 짜냈던 계책마저 리승만의 궤변에 재론해볼 여지가 없게 되자 분노로 치를 떨었다.
어찌하든 대통령이란 그 나라 정치의 리념과 힘을 대표한다. 권력의 도덕성과 문명도를 상징한다. 따라서 통치권자의 일거일동은 철두철미 엄정한 리성과 고도의 지성, 뜨거운 감성에 려과된것이여야 한다. 절제가 없는 정치, 감정이 앞서는 권세에는 세상의 경멸과 백성들의 원성과 력사의 버림만이 차례질뿐이다. 바로 그러한 페단때문에 대통령은 그 하나의 두뇌만 아니라 가장 고급한 두뇌진이 모여들어 보좌하는것이다.
류선민의 눈에 비쳐든 리승만은 너무도 독선적이고 너무도 사기적인 정치의 패륜아였다.
두상태기가 폭압의 정치를 10년토록 하고나더니 점점 더 안하무인이 되여 도무지 주변인물들의 충언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날이 갈수록 권력의 뒤골방에 틀고앉아 정제관과 같은 소수의 요설과 아부에 떠받들리여 그저 제놈의 권세를 종신토록 붙잡고있을 궁리만 하고있다.
결국 리승만은 자기가 설자리를 자기스스로 최소한으로 좁히고있으며 그 비좁은 공간에서도 운신조차 힘들어하고있다. 그는 자기식의 황당하기 짝이 없는 궤변과 주장으로 자신의 눈까지 어둡게 하고있고 선과 악에 대한 초보적인 분별도 잃어가고있다. 그는 10년간의 전횡을 부리고나서 측근에 포진되여있는 정상배들의 요설에 넘어가 이 땅의 모든 재물은 마땅히 독재자의 개인소유나 다름없으며 백성들모두가 자기의 노예로 되여야 하며 자기의 궤변이 그대로 진리이고 정의이며 자기의 일거일동이 백성의 행동좌표라고 인식하고있다. 그는 이 땅에서 생겨나는 모든 사회악이 철저히 군주로서의 자기의 정치에서 빚어지기 시작한다는것을 조금도 리해하지 못하고있다.
류선민의 고민은 리승만의 정체를 능히 해부하여보면서도 소신있게 도전할수 없을뿐더러 이제는 자기 자리에서 비켜설수조차 없는데 있었다.
서울대학교 총장의 천거로 리승만에게서 차관임명장을 받고 법무부일을 총괄하게 되였을 때 류선민에게는 꿈이 있었다. 그것은 세상여론에 관권의 시녀로 락인이 찍혀져있고 부정부패의 마굴처럼 알려져있는 법무행정을 일신하여보는것이였다.
이에 대하여 임명장을 받을 때 넌지시 비쳤는데 리승만은 쾌히 그에게 손을 들어주었다.
《한번 소신을 펴보게. 총장 말이 임자야말로 서울법조계에 흔치 않은 법정신의 체현자라고 하더구만. 법무부를 들었다놓게.》
류선민은 우선 이미 세워진 법문서들을 검토하여 독소조항들을 거세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와 함께 이미 악명을 떨친 재판문건들을 재심의하여 부정부패를 찾아내고 그에 기초하여 법집행에서 공정성을 확립할것을 시도하였다.
류선민의 과감한 법무부일신은 첫걸음부터 난항에 부닥쳤다.
법무부 직원들은 물론 지방법원의 말단판사들까지 류선민을 《법기능혼란》과 《통치체제의 무력화》로 걸고들었다. 나중에는 《집단항의》, 《집단상소》, 《집단사퇴》놀음으로 도전하였다.
뿐더러 리승만은 류선민의 노력과 의지에 로골적으로 제동을 걸었다. 모난 돌이 정에 먼저 맞는다며 이따금 으름장을 놓기도 하였다.
사면팔방에서 가해지는 압력과 공갈에 류선민의 손아귀가 그만 풀리고말았다. 결국 법무부의 일신은 시작점으로 되돌아갔다. 법의를 제놈들의 재물뫃기와 권세에 써먹는 부패한 판사들을 눈 펀히 뜨고 보면서도 어느 한놈도 내쫓지 못하였다.
해와 달을 넘기면서 점차 류선민도 정치의 더러운 악취에 오염되기 시작하였다. 나중에는 리승만이 하사한 감투를 쓰고서는 어차피 두리둥글하게 살아야 하며 상명하복이라는 통치권의 계률에 익숙되여야 한다는 체념에 빠져들었다.
(아아, 이래서 청렴한 선비도 권세와 재물에 맛들면 사람되기를 그만둔다고 하지 않는가!)
요새 류선민은 자기라는 인간의 한생에 대하여 자주 돌아보며 한숨을 내쉰다.
무엇을 위해 살아왔더냐? 잘 먹고 잘 입고… 너무도 속물적인 대답이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려나? 목표가 묘연하다. 어지럽게 란무하는 난파에 표류할뿐이다.
너의 삶에서 소중하다고 생각되는건 무엇이냐? …
세상에 대고 한번 소리쳐볼만 한 자부심은 무엇이냐? …
무릇 후손들이 너, 류선민의 뫼앞에서 자기 조상의 한생을 놓고 어떻게 평가할것 같으냐?
세도? 향락? 명예? 부귀? 치욕? …
솔직한 대답을 내리기가 두려워진다. 아무리 자신을 변명하고 에돌고 미화하여보아야 추하고 굴욕적이며 입에 담기 역겨운 락인만이 두드러져오를뿐이다.
그는 이따금 조봉암의 옆에 자기를 슬그머니 세워본다. 혹은 조봉암의 옆에 류선녀도 세워놓고 자기도 그옆에 나란히 서보기도 한다. 류선민이라는 인간의 모습을 더듬어본다.
류선민, 너는 과연 어떤 작자냐? …
그러면 자기 모습이 너무도 부실하기 그지없어 눈이 감겨진다.
부끄럽다. 죄스럽다. 골이 빠개지듯 아파난다. 다닥다닥 흠집도 많은 내 모습…
하지만 그 모습을 새롭게 다듬을 용기도 힘도 재주도 없으니 어찌한단 말인가?
그 해결책이 예 있다는듯 리승만의 목소리가 또 한번 머리속을 휘저어놓았다.
《내무는 이제 곧 버드대좌를 찾아가게. 거기 가서 그 사람이 하라는대로 움직이게.》
리승만은 자기의 오른팔로 치부하는 총리 버금가는 권세인물을 서슴없이 미군대좌의 부하정도로 눌러놓고는 어서 물러가라고 손을 내흔들었다.
그들이 두상의 넌질넌질한 지청구에서 벗어나는게 후련해서 서둘러 방을 나서는데 리승만이 《법무!》 하고 류선민을 불러세웠다.
《항소기간이 얼마라구?》
《열흘정도입니다.》
《열흘까지 갈게 있나. 래일중으로 당장 검찰의 이름으로 고등법원에 상소하도록 하게. 거기서 1심판결을 파기하고 사형선고를 내리게. 그러면 조봉암이 또 재판을 대법원으로 끌고 갈테지?》
《미상불 그렇게 될겁니다.》
그것은 류선민도 이미 생각해두었던 일이다.
《대법원 원장이 누구더라? 김병로는 물러났지?》
《예.》
《천만다행일세, 허허… 그놈이 그냥 대법원 원장자리에 있었다면 크게 랑패할번 했군. 그놈이 이번에도 이 우남과 맞섰더라면 야단이였겠는데 참말로 다행이야.》
리승만은 제풀에 좋아서 벌쭉거리기까지 하였다.
김병로란 대법원이 생긴이래 올해초까지 줄창 그 자리를 지켜온 사람이였다. 헌법을 작성하는데 중심인물로 나선것으로 하여 서울에서 류선민과 함께 법리론의 권위자로 공인되여온다.
처음에는 리승만의 단짝친구로 법률고문의 역할도 맡아하다가 점차 사이가 소원해지고 56년 선거를 치른 후에는 아예 앙숙간이 되고말았다. 리승만이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해먹으려고 노는 꼴이 너무 간악하고 치사스러워 두상의 전제정치를 더이상 법으로 받들어줄수 없었던것이다. 더구나 막역지우이기도 한 신익희가 분명 리승만의 간계로 비명횡사했다는 설이 나돌자 격노하였다.
김병로의 동향을 알아차린 리승만은 지난해말부터 김병로의 실각설을 여론에 내돌리게 하여 스스로 해직신고를 내도록 슬그머니 사방에서 압력을 가하게 하였다. 그리고는 큼직한 훈패 하나를 주어 골방으로 밀어던져버렸다.
《미국무성의 체면은 좀 봐주세. 아무튼 그 사람들과 덧나서는 좋을게 없네. 이번에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너무 떠들지 말도록 하게. 정제관이네가 밖에서 벅적 들썩거리게 하면서 임자네는 뒤에서 앙큼하게 버티고있다가 일사천리로 일을 내밀게. 올해도 지나가는데 다음핸 59년이야. 그 한해 넘기면 60년 선거놀음을 또 해야 하네. 다그치세.》
《예.》
《그리고 말일세. 앞으로 대법원에서 항소심을 할 때를 예견해서 지금부터 판사들을 잘 골라보게. 다 선정이 되면 내게로 올려보내게. 내가 이번에는 그 사람들을 직접 결재해주겠네.》
《예.》
류선민은 무겁게 대답하고 자리를 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