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0 회)
제 6 장
3
반년가까이 끌어온 지방법원재판이 구형재판으로 넘어갔다.
검찰청장은 조인수에게 경무대 비서실의 명령이라고 못박고는 사실여부에 관계없이 조봉암에게 사형을 구형하라고 지시하였다.
조인수는 재판정형을 상기시키면서 그렇게 되면 검사측이 여론의 비난을 받게 되며 설사 자기가 그렇게 한다고 하여도 재판장 선고에는 하등의 영향도 주지 못할것이라고 난색을 보이였다. 그리고는 강치부를 제외하고는 가볍게 형벌이 적용된 검사구형초고를 보여주었다.
검찰청장은 그 문건을 던져버리고 발칵 성을 내였다.
《당신 어쩌자구 그래? 경무대 비서실의 명령이라는게 어느 구멍에서 나온지 몰라서 그따위 망발이야? 지금 어데 체면을 생각할 때인가?! 당신, 이것대로 했다가는 너 죽고 나 죽고 다 망할 판인데 무슨 껄렁한 수작이야? 무조건 그렇게 구형해버려! 경무대가 좋다면 좋은거지 뭘 눈치보기 하겠나? 우리가 사형으로 구형해놓은걸 재판정에서 무죄로 해버리겠으면 마음대로 뒤집어버리라고 해! 그놈들이 우리대신 목대가 분질러지고말텐데 잘코사니지 뭐야?!》
이렇게 되여 조인수는 검사구형에서 눈을 찔끔 감고 조봉암과 강치부에게 《간첩죄》, 《체제전복기도죄》, 《무기불법소지죄》를 적용하여 사형을 구형하였다. 나머지의 피고들에게도 무기징역과 15년이상의 징역형을 구형하였다.
조인수의 검사구형은 피고인들과 청중속에서 분노를 격발시켰다.
조인수는 여러달 끌어온 지겹고도 복잡다단한 싸움에서 드디여 물러서는 홀가분한 심정으로 법정을 나섰다. 웃사람들의 꼭두각시놀음만 했다는 께름직한 생각이 자존심을 그냥 건드려놓기는 했지만 검사란 원체 그런 족속인걸 하고 자기를 위로하였다.
이제 반드시 재판장이 자기와는 판판 다르게 선고를 내리리라는것이 찐덥지 못한 속에 위안으로 되기도 하였다.
재판의 결속은 전적으로 재판장의 몫이다. 늘 체험해오는 검사의 심리인데 재판장이 어떻게 선고를 내리든지 관심할바가 아니였다. 사형에 처하든 무죄석방을 선고하든 재판장의 몫이니 검사가 피대를 돋구어서 되는 일도 아니다. 그는 법정을 나설 때 뒤에서 검사에 대한 맹렬한 규탄의 목소리와 자기를 야유하는 휘파람소리가 귀가 멍멍해지도록 뒤따라왔으나 눈길을 허공으로 들고 태연하게 걸어나갔다.
세상사람들은 누구나 이 재판에서 패한것은 자기, 조인수라고 할것이다. 마땅한 일이다. 세상일이 귀찮아졌다. 그는 마당에 서있는 자동차가 보이자 도망치듯 걸음을 빨리 하였다.
조인수는 난생처음으로 자기라는 존재가 자기의 의지밖에서 허우적거리고있다는 괴이한 허탈과 야릇한 환각에 휘말려들었다. 자동차에 몸을 실었어도 조인수는 지꿎게 덮쳐드는 악몽에 휘말려들었다. 엄혹하고 타협없는 진실이 뇌리를 집요하게 거머쥐고 자기의 삶을 모조리 부정하는듯싶었다. 지금껏 그가 지탱하였던 그 어떤 기둥뿌리가 일조에 빠져달아나버리고 속대가 없는 허울만 남아 거들거리는듯싶다.
하기는… 이 조인수에게 애당초 자기 한생을 지켜주는 그 무슨 표대가 있었던가. 그 어데 내세울만 한 삶의 가치라는게 있었더냐.
어찌할수 없는 법조인의 숙명이라고 애써 그 잔혹한 속박에서 벗어나보려고 강하게 변명을 해보았으나 그럴수록 자기의 인생에 대한 굴욕과 수치감은 더 심혼을 어지럽힐뿐이였다.
(그래, 나야 소인배이니깐…)
조인수는 원통하지만 인정하여야 했다.
저쪽은… 인간중에서도 크게 무게가 실린 거물이다. 이쪽은 흥… 세상의 어둑시그레한 뒤골목에서 뭇사람들의 뒤구멍이나 쑤시며 살아가는 쟁인바치이다. 결국 이 싸움은 원체 비교가 안되는 거물과 소인배의 결투이다. 다만 이 소인배는 권력가의 힘을 등에 업고 거드름을 빼고 그 무슨 거인흉내를 내보고싶어할따름이다.
(흥!- 더럽군. 세상살이가 왜 이리도 고달프냐.)
조인수는 느닷없이 김빠진 웃음을 터뜨렸다.
구형재판이 있은 때로부터 두달이 지나갔다.
그동안 홍병삼은 그치지 않고 걸어오는 전화와 방문객들을 피하느라고 처음에는 전화를 끊어버리고, 출입문을 안으로 채우고, 밥을 사무실로 날라다 먹다가 나중에는 지방법원들에 숨어다니면서 선고재판을 준비하여왔다.
홍병삼은 지방에 나가서도 자기와 배석판사들이 철저하게 밀봉생활을 하도록 하였다. 어떤 때는 쌀과 술을 한배낭씩 짊어지고 설악산속 사찰에까지 숨어들어가 재판기록을 한조항한조항 더듬기도 하였다. 여기에는 최창섭이 배후세력에게 협의정형을 수시로 알려주어 부단히 압력을 가해오고있는 사정도 있었다.
세사람은 여러달에 걸치는 재판기록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그 매 구절들을 하나하나 점검하면서 끊임없이 론쟁을 하고 티각태각거리기도 하였다.
드디여 피고들에게 판결을 선고하는 재판이 열렸다.
홍병삼이 만장의 긴장한 눈길에 묻혀 배석판사들이 합의한 판결문을 들고 일어섰다. 전례없이 오래 끌었고 속을 썩여온 재판을 결속하자고 하니 속이 후둑후둑 떨렸다.
어차피 홍병삼은 이번 재판에 자기의 운명을 걸었다.
량심을 지켜냈다. 정의를 따라 최선을 다하였다. 일생의 마지막결투였다. 민중의 뜻을 따랐다. 끝내 의로운 애국동량을 지켜냈다.
그는 재판결과로 오는 책임도 걸머질 각오가 되여있었다.
분명 선고가 내리면 그 시각부터 리승만일파가 맹렬한 포화를 들씌워올것이다. 임기도 이것으로 끝장이 날것이다. 생계보장에 대한 담보도 잃게 될것이다. 거리에 내몰리면 그 시각부터 실업자요, 동냥살이를 시작해야 한다.
자기에게, 조봉암에게 가해지던 모해가 감겨들수도 있다. 자기를 어쩌면 조봉암과 내통한 《진보당의 특수당원》이라고도 조작할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간첩방조자》 혹은 《간첩》으로 만들려고 할수 있다.
그의 사무실 책상안에는 이미 퇴직신고서가 작성되여있었다. 선고재판이 끝나면 동시에 법원에 제출할 결심이였다. 그 다음에는 진보당에 들어갈 생각이였다. 아마 재판이 끝나면 자동적으로 진보당의 해산명령이 취소될것이다. 진보당이 움직이면 래년도 선거에 나설것이다. 그러면 자기 문제도 다시 론의될것이다.
홍병삼은 잠시 방청석을 한바퀴 둘러보고 피고들을 한명한명 일별하였다. 그의 눈길은 조봉암의 모습에서 박힌듯 움직이지 않았다.
(저 강직하고도 깨끗한 인간이 이 홍병삼이라는 인간을 어떻게 평가할가? 본의든 타의든 인생길을 돌아보면 얼룩점이 적지 않다. 하지만 판사생활의 마지막장에 후회를 남기지 말자고 고민을 했는데 저 사람이 알아줄가?)
조봉암과 같은 성인앞에 자기의 깨끗한 량심을 바치게 된것은 어찌 보면 일생의 행운이기도 하지만 자기 마음의 전부를 바칠수 없게 된것이 미안쩍기 그지없다. 무혐의석방에 당국의 보상을 선고해야 되겠는데 배석판사 최창섭의 완고한 저항으로 성취할수 없었던것이다.
최창섭은 여러 세력이 지켜보고있는 이 재판을 그런 식으로 끝내면 이제 재판이 다른 식으로 벌어질것이며 자기들의 운명도 파멸될것이라고 그냥 시비하고 우는소리를 하였다. 조봉암에게만이라도 반드시 유죄가 내려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강치부건이 있는 이상 그리고 무기소지죄도 있는 이상 유죄가 가능하며 형벌을 내린다고 법륜리에 저촉되는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그냥 대들었다. 지어 당신은 임기퇴직으로 초야에 묻히면 다지만 법관생활의 어제보다 래일이 더 길게 남아있는 자기나 려현주는 어떻게 하느냐고 아프게 물고늘어졌다.
하는수없이 홍병삼은 고민끝에 조봉암을 무혐의석방할데 대한 주장을 관철시키지 못하였던것이다.
홍병삼은 자기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였노라고 자기의 량심앞에 대답할수가 있었다. 자기는 폭압의 마수를 무릅쓰고 조봉암에게 지지표를 바친 수백만 사람들의 지지와 기대를 지켜냈다.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하였다고 자부심을 가질수가 있었다.
입술을 깨물고있던 홍병삼은 이윽고 장중하게 선언하였다.
《판결문!》
그 말이 마치 얼음쪼각이 돼서 청중의 달아오른 가슴들에 서늘하게 날아가 박혔다.
홍병삼은 조봉암을 비롯한 피고들의 이름과 주소와 직무를 쭉 렬거하고나서 판결내용을 또박또박 읽어내려갔다.
《피고 조봉암의 <간첩죄>, <간첩방조죄>, <무기불법소지죄>, 피고 우달수의 <보안법>위반죄, 피고 윤기중 기타 인물들의 <간첩방조죄> 등과 피고 강치부의 <간첩 및 간첩방조죄>에 관하여 본 법정은 검사 조인수의 기소장에 근거하여 합동심의하고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피고 강치부에게는 사형, 피고 조봉암에게는 징역 5년을 언도한다. 판결선고된 구금일수중 피고 조봉암에 대하여 160일, 피고 강치부에 대하여 100일을 각각 본형에서 삭감한다. 압수된 권총 1정은 조봉암으로부터 몰수한다. 본건 공소사실중에서 조봉암피고의 평화통일론에 따르는 <북동조죄>, 국회진출을 통한 <체제전복기도>, 외부세력과의 접촉설에 따르는 <간첩 및 간첩방조죄>는 무죄로 한다. 기타 피고인들의 <간첩련루죄>, <보안법>위반죄도 무죄로 한다.
판결리유
유죄부분
제1. 피고 강치부는 미군소속 인천첩보대에서 남북왕래밀무역상인으로 있던중 <북의 특수기관에 포섭>되여 <북을 위하여 복무>하였다는것을 전부 시인하였다.
제2. 피고 조봉암은 왜정시기 당시 상해림시정부 군무총감이였던 전 <부통령> 리시영으로부터 생일선물로 권총을 받아가지고 해방후에도 허가없이 소지하여온바 개인의 선물이라는 상징적의미가 있지만 법령 제5호를 위반하였다.
법률에 비추어보건대 강치부의 간첩죄는 <보안법> 제1조 2항, 3조 2항에, 조봉암의 <무기불법소지죄>는 법령 제5호 2조에 의하여 실형을 언도한다.》
홍병삼은 계속하여 기타 피고들에게 무죄를 언도한 리유에 대하여 밝혔다. 그는 마지막으로 공작금문제에 대하여 법률적으로 해석하였다.
《피고 강치부는 피고 조봉암에게 공작금을 주었다고 주장하였고 피고 조봉암은 생활보조 및 당활동지원명목으로 개인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았을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설사 피고 강치부가 북의 공작금을 주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피고 조봉암이 북의 공작금이라는것을 알고 받았다고 하여도 그 돈이 간첩활동에 리용되지 않고 생활보조 및 진보당의 활동에 리용되였다면 진보당활동이 사회의 정치적발전과 민족중흥에 복무하여온 이상 리적행위나 반국가적범죄로는 성립될수 없다. 이런 경우의 공작금에는 적성국으로부터 얻어낸 로획물 혹은 전리품이라는 법적개념이 적용된다.》
재판장이 검사측의 기소와 재판의 전과정에 대하여 상당히 깊이 연구하고 심도깊이 분석하였다는것이 구절구절에서 느껴졌다. 어쩌면 판결문의 매 조항들은 담력과 리성과 지성을 담보로 하는 대담한 분석이다. 어지럽기 그지없는 서울법조계에 저와 같은 재판장이 있었다는것이 신기할 정도로 희한한 일이였다.
조봉암이 이런 생각을 하는데 우달수가 슬그머니 손을 끄당겼다.
《선생님! 5년 형기는 안될 말입니다. 항소를 해야 합니다.》
《아니, 필요없소. 우리는 이겨냈소. 5년이란건 두고봅시다.》
홍병삼이 판결문랑독을 마쳤을 때 청중은 우뢰같은 박수로써 조봉암과 그의 전우들의 승리를 환영하였으며 재판장의 량심의 결단에 대한 지지를 표시하였다. 청중의 박수소리는 오래동안 그치지 않고 법정을 진감하였다. 이것은 서울의 법력사에서 있어본적이 없는 광경이였다.
조봉암과 그의 전우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열렬한 축하를 보내고있는 청중에게로 돌아서서 손을 흔들었다.
조봉암은 가족들을 향하여 활짝 웃음을 지어보였다.
《상심말아라.》
그 소리에 가족들은 환희의 눈물로 옷자락을 적시며 울었다.
류선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그만 주저앉았다. 그렇게도 일구월심 기다려오던 승리의 선언이련만 그를 접하는 순간 한해가까이 가슴을 죄여온 탕개가 스르르 풀리면서 천근만근 무거워진 몸을 지탱할수가 없었던것이다. 드디여 이겼다는, 드디여 그분을 살려냈다는 가슴벅찬 승리의 도취감에 심장은 금시 파렬이 될듯 급하게 뜀박질하고 온몸에 기쁨의 파도가 넘쳐흘렀다. 지금껏 가슴속깊이 묻어두고 사람들앞에서 보인적 없었던 더운 눈물이 동막이가 터져나간듯 하염없이 쏟아져내렸다.
효경이와 연경이가 얼른 류선녀의 팔을 하나씩 잡고 조봉암과 마주서도록 부축여주었다.
《고맙습니다!》
류선녀는 간신히 이 자리에서는 동닿지 않을듯싶은 인사말을 입에 올리고는 눈물에 함뿍 젖은 두눈에 행복의 미소를 담았다.
그의 심장은 뜨겁게 속삭이고있었다.
(선생님! 5년이 아니라 10년, 20년이라도 저는 기다리겠습니다. 당신이 계시면 이 류선녀는 행복할겁니다!)
이렇게 입속으로 뇌이는 그의 얼굴은 마치도 아침빛을 머금고 꽃망울을 활짝 터친 들장미처럼 더없이 아릿답고 싱싱해보였다.
조봉암은 기쁨이 피여오른 류선녀의 모습에서 심중의 고백을 읽었는지 힘있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조인수는 재판이 끝나자 보좌하여온 여러명의 검사, 검사보들을 먼저 떠나보내고나서 홍병삼을 만나러 그의 방으로 찾아갔다.
홍병삼은 자기 방에서 배석판사 려현주와 함께 마른 오징어를 펴놓고 술잔을 기울고있었다. 려현주의 강권에 못이겨 자리에 앉아 술잔을 받았던 배석판사 최창섭은 배가 아프다고 끝내 사절하고 떠나갔다. 홍병삼은 최창섭이 이제 돌아가면 그를 뒤에서 조종하고있던 법원장이나 다른 기관의 사람들로부터 줄기합을 받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측은해지기도 하였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조봉암에게 내린 5년간의 징역형은 사실 최창섭의 몫이다. 그만하면 최창섭으로 하여금 뒤에서 끈을 쥐고있는자들에게 할 말이 있게 해준셈이다.
《어, 조검사! 어서 들어오시오.》
홍병삼은 조인수를 반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최창섭이 앉았던 자리에 그를 끌어다 앉히고 술을 부었다. 그에게 술잔을 권하며 너그럽게 물었다.
《조검사, 불쾌하오?》
조인수가 술잔을 받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입가에 어설픈 미소를 지었다.
《검사님, 패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려현주가 서울검찰계에서 명성이 있는 조인수를 위로하듯 물었다.
《아니, 판결은 법의 승리입니다.》
조인수는 솔직하게 시인하였다.
술수가 있고 배짱이 세기로 유명짜한 검사의 소리에 두 판사는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예상밖이였다. 진심인가? 이게 진심이라면 조인수는 어떤 인간이냐?
인간이란 참으로 오묘하기 그지없다. 다름아닌 서울검찰계의 반공검사의 대표자로 공인되여있는 조인수가 이렇게 자기의 기소를 뒤집어놓은 재판정의 판결을 아무런 불만도 없이 받아들이다니…
《고맙소. 난 조인수검사가 우뚤해서 내 면상에 신발짝이라도 벗어던질것으로 생각했는데… 자, 듭시다.》
홍병삼이 잔을 찧으며 유쾌한 어조로 말하였다. 조인수가 잔을 쭉 들이키고나서 피씩 웃었다.
《저는 홍판사님을 존경합니다. 이번에 선배님은 마땅한 판결을 내려주었습니다.》
《하, 그렇다? 뜻밖인걸! 고맙소!》
《조검사님, 패배를 너그러이 승복해주니 우리도 다행스럽고 마음이 놓입니다. 그렇게 하는게 법관으로서 배포가 어지간해서는 안되는 일이지요. 사실 이번 재판의 기소를 누가 맡든 정치재판으로 되는수밖에 없었을겁니다. 선거자 다수의 지지표를 법정에 세운다는것부터 수치스러운 일이 아닙니까.》
려현주판사가 검사의 태도가 상상밖이여서 친절하게 위로하였다.
《이번 판결은 조봉암선생의 승리입니다.》
조인수는 려현주판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다가 짤막하게 대꾸하였다.
홍병삼도 예상밖으로 조인수가 판결을 진심으로 접수하자 괴롭게 고백하였다.
《조검사, 난 그분에게 5년 실형을 언급한것도 가슴이 아프오.
너무도 주변기류가 거칠어 당신네 기소측 립장을 비롯해서 여기저기의 체면을 살려주느라고 그렇게 됐소. 어쩌겠소? 그렇게라도 수다스러운 매문쟁이들과 웃사람들의 입구멍을 틀어막아야지. 우리가 그쯤으로 그쳤으니 나머지 일은 진보당사람들이 할게요. 그러면 2심이 벌어질것이고 내가 내린 5년 형벌도 없어지게 될거요.》
조인수가 려현주가 쳐드는 술병을 손으로 막고는 술잔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홍판사님, 너무 괴로워마십시오. 사형을 5년으로 떨군다는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이번 재판이 어떤 재판이였습니까? 리승만이 원고로, 조봉암이 피고로 된 재판이였지요. 그런데 조봉암이 이겼으니 통치권을 뒤집어엎은 이런 재판이 있을번 한 일입니까? 제가 걱정하는것은 선배님의 신변입니다.》
《각오하고있소. 조검사도 아마 이제부터 더 힘들어질거요.》
《저도 각오하고있습니다. 하지만 두렵습니다. 경무대가 이렇게 물러서겠는지, 미국이 이렇게 주저앉겠다고 하겠는지… 그 사람들이 나를 또 궁지에 몰아갈겁니다.》
《미국이? … 여기에 미국이 무슨 상관이란 말이요?》
홍병삼이 다소 어성을 높이며 뜨아한 어조로 반문하였다.
《하, 미국이 나서지 않고 이런 중대사건이 벌어지겠습니까? 미국은…》
조인수는 쓰겁게 웃으며 처연한 어조로 뒤말을 꺼내다가 이내 삼키였다. 이 순간 그의 눈앞에 버드의 흉한 상판이 떠올랐던것이다. 속이 으스스해왔다.
홍병삼은 그를 법원의 정문까지 바래주었다.
홍병삼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조인수가 불쌍해보였다. 이제 제일 곤욕을 치를 사람은 저 사람이다. 여기저기 불리워다니며 온갖 수모를 다 당할것이다.
조인수가 미처 뒤말을 잇지 못하고 퉁퉁 꺼내던 말이 그에게 새로운 불안을 안겨주며 다시 귀전에서 맴돌았다.
(정말 리승만이 조봉암사건을 이것으로 끝내버리려 하겠는가? 그런데 미국놈들이 어째서 상관한다는거야?)
홍병삼은 뻐스정류소로 걸어가는 조인수의 뒤모습이 행인들속에 묻힐 때까지 그냥 한자리에 서서 새롭게 엄습하는 위험을 생각하고있었다.
조인수검사의 우려와 홍병삼의 불안은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