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9 회)
제 6 장
2
닷새후에 재판의 결정적인 대목으로 인정되고있는 조봉암과 강치부의 두번째 질의문답이 진행되였다. 닷새동안 강치부를 재판정에 다시 내보내기 위한 준비가 심화되였다.
조인수는 법정을 나서기만 하면 인천의 방첩대아지트에 가서 강치부와 마주앉군 하였다.
조인수는 강치부의 인상문제에 대하여 특별히 강조하고 요구하였다. 직접 연기도 해보이면서 미8군방첩대장이 생명을 담보하고있는데 무엇이 안심치 않아 법정에 나가 물에 빠진 생쥐꼴이냐고 번번이 화를 내기도 하였다.
련 닷새동안 그냥 들볶으며 닥달을 하였다. 막상 재판정에 세워놓으니 조봉암의 미소 한번에 혼이 쭉 뽑힌듯 여전히 후줄그레한 상이였다.
조봉암이 질문을 시작하였다.
《당신이 조봉암을 포섭하였다고 기소장에 한구절 있던데 조봉암을 어떻게 포섭했는가?》
조봉암의 질문에 조인수도 깜짝 놀랐다.
바로 이 문제를 가지고 버드에게 불만을 표시했더랬는데 기소장에 그 대목을 그대로 살려놓다니… 자기가 두세번 검토했는데 하두 부피두터운 문서라 그 구절을 놓쳐버린것이다.
자기의 실수로 조봉암이 벌써 문제의 핵심을 처음부터 찔러들어 저 얼빤한 인간을 단번에 멍청이로 만들어버렸다.
(에, 버드… 이 중대사건의 명줄을 쥐고있어야 할 인물을 좀 눈알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놈으로 골라내지 저따위를 내세우다니… 미국놈들의 재주라는것도 같고같은 초학도수준이거던.)
벌써 강치부가 대답이 궁해져 옆사람도 알아듣지 못하도록 기여드는 소리로 우물거린다. 모의훈련에서 한번도 떠올려놓지 못했던 질문이였던것이다.
《똑똑히 알아듣게 말하시오!》
홍병삼이 강치부가 첫 대답부터 얼친 시늉을 하는게 꼭 시켜서 하는노릇인줄 뻔히 알면서도 화가 나서 검사석을 향하여 소리쳤다.
《그거야… 아, 그렇게 됐지요. … 제가… 참, 그렇게 된거지요.》
강치부가 두서없이 갈팡질팡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되다니… 무엇이 어떻게 됐다는건가? 여기 모인 사람들이 다 알아듣게 설명하란 말이요.》
홍병삼이 답답해서 이렇게 소리쳤으나 강치부는 연신 목덜미에 돋친 땀방울을 손등으로 벅벅 훔칠뿐이였다.
《됐습니다. 다음문제, 당신은 언제 어디서 나에게 북에서 보내는 공작금이나 공작물자를 주었습니까? 한번이라도 있었다면 그 날자와 장소를 대시오.》
《아, 그거야 뭐… 돈을 준 일이야 있었습지요.》
《돈이야 받았지. 여러번, 그것도 많이… 문제는 북쪽사람들이 보내는 공작금이나 공작물자라는 이름을 달아서 준 돈이 언제 있었는가 하는거요.》
《아, 그거야… 내가 북에서 가져온것이니… 거 뭐, 같고같은 소리입지요. 내가 구해다가 내가 직접 준적도 있었습지요.》
홍병삼은 강치부가 명백한 대답을 하도록 설명해주었다.
《말을 가려듣고 똑똑히 대답하시오. 돈을 주었으되 북의 공작금이라고 하면서 준적이 있었는가? 그리고 돈은 북에서 당신이 장사거래로 구해왔는가? 아니면 북의 특수기관사람들이 주는 돈이였는가? … 이렇게 갈라서 대답하라는거요.》
《아, 그거야… 북에서 가져온걸 내가 쓰라고 주었지요. 그저 그렇지요.》
재판장이 또 주의를 주려고 하는데 조봉암이 화제를 바꾸었다.
《됐습니다. 당신은 그냥 외마디대답인데… 누가 당신더러 증언대에 나가서 바보흉내를 내면 된다고 말해준게 아니요?》
조봉암의 소리에 장내에 웃음이 일어번졌다.
《강치부, 지금 임자가 이 자리에서 계속 거짓말로 일관하고있는데 그래서는 안되오. 여기는 법정이요. 당신의 거짓말에 의하여 나와 여기 앉아있는 동지들은 물론이고 당신까지도 파멸된다고 생각해본적이 있소? 자신을 간첩이라고 하다니… 이게 도대체 임자가 한 소리가 옳은가? 정말 자넬 위해서도 안타까운 일이요. 무기징역을 살면서도 왜놈간수들을 답새기던 그때의 강치부는 어데로 가고 그렇게 속대무른 인간이 돼버렸나? 임자, 내 말을 알아듣겠나?》
《그건 저, 심경의 변화와 환경때문에… 사실… 죽을죄를… 죽산선생님을 배신한 결과가 되기는 했지만…》
강치부는 예까지 말하고는 입술만 감빨았다.
《계속하시오.》
홍병삼이 증언대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강치부의 구접스러운 모양을 경멸에 차서 굽어보다가 랭담한 어조로 다그었다.
《그렇지만… 사실인즉…》
강치부는 끝내 여물구지 못하고 어벌쩡하게 입을 다물었다. 그의 속에서 량심과 비량심이 서로 맞붙어가지고 맹렬하게 다투고있었던것이다.
이때 한 젊은 변호사가 일어섰다.
《피고 강치부! 당신이 특무대에 자수한 동기를 알고싶습니다. 우선 당신이 방금 심경의 변화와 환경때문에 죽산선생님을 배신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하여 설명하여주기 바랍니다.》
강치부는 젊은 변호사가 자기 말을 넌떡 걸어채자 우물쭈물하며 미처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또다시 재판석의 독촉이 있었으나 강치부는 여전히 《그건… 그거야…》 하다가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때 조인수가 그를 부추기고 용기를 북돋아주느라고 일어섰다.
《대답을 해보시오. 뭐 대답하지 못할게 있습니까?》
협박기가 짙은 검사의 말에 찔끔 놀란 강치부가 띠염띠염 내리엮기 시작했다.
《진보당사건이 터지고 죽산선생까지 잡혔다고 하니 나는 큰 공포심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죽산선생이 다 자백했다니 가만있다가는 큰일이 나겠구나 해서 자수했지요.》
이것은 이미 조인수와의 재판준비공정에서 수십번 외워두었던 이미 준비된 대사였다. 그 대사마저 청중속에서 조소를 자아냈다. 검사와 증인에게로 쏠린 눈길들은 적의로 번뜩거리고있었다.
법원에서는 2회재판때 경무대 비서실의 압력으로 방청객들의 적지 않은 사람들을 교체하였다. 1회재판에서는 조봉암과 진보당에 관심이 있는 지지파들과 동조자들이 많았으나 2회재판에서는 될수록 반대파세력에게 입장권이 차례지게 하였던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저들이 기대를 걸어야 할 검사나 강치부나 조봉암의 범행을 론해야 할 인물들이 완전히 저기압이 되여 말 한마디도 씨박힌 소리를 하지 못하고 비난거리가 되여버리거나 혹은 강무호나 정명갑이 같이 반대로 통치권의 죄상을 론하고 조봉암을 공공연하게 옹호하여나서자 찍소리 한마디 못하고 조봉암의 지지세력에 눌리워 재판에 흥미를 잃어갔다.
조봉암은 잠시 강치부의 가련한 모습을 지켜보다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강치부의 《범행》이요, 《증거확인》이요 하는것들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꾸며졌는가 하는것이 몇마디의 질의문답으로 백일하에 다 드러났다고 생각하였다.
조봉암은 강치부에 대한 가긍한 생각으로 입을 다물었다.
홍병삼이 물었다.
《조봉암피고인은 더 질문할게 없습니까?》
《질문이요? 질문할것은 많지만 강치부피고인이 심리적압박감으로 해서 변변한 답변을 하지 못하므로 더 괴롭히고싶지 않습
니다.》
《좋습니다. 이상으로 피고 강치부에 대한 질의심문을 마치겠습니다. 다음은 피고들의 최후진술이 있겠습니다. 피고 조봉암, 최후진술을 하시오.》
잠시 자리에 들어와앉았던 조봉암이 다시 나섰다.
이제 피고들의 최후진술이 끝나면 검사구형이 내려질것이다. 그 다음에는 선고재판이 벌어진다. 그러므로 이 재판정에서 발언할 기회는 이것이 마지막이다.
조봉암은 원체 최종발언을 위하여 여러날 준비를 하여왔다. 그러나 이 순간 그는 구태여 자기 위업의 정당성을 더 강조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다만 재판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에게 교훈으로 될수 있는 말을 꼭 해주고싶었다. 강치부와 같은 인간들 그리고 강치부에게서 인간의 존엄과 량심, 지조를 송두리채 빼앗아낸자들에게 심판으로 될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꼭 해주고싶었다.
(어떤 말을 해주는것이 좋을가?)
최후진술이라는 말의 의미에 생각이 깊어졌다.
잠시후 조봉암은 재판장을 쳐다보며 최종발언을 시작하였다.
《나는 옛말 하나로 나의 최후진술을 대신하려고 합니다. 괜찮겠습니까?》
《본 법정은 피고인의 최후진술로 접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옛날 북관땅에 명관으로 소문난 늙은 군수가 부임되여갔습니다. 그가 대청에 틀고앉자마자 숱한 백성들이 명관이 왔다고 그를 찾아와 이전 군수가 악정을 일삼으면서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다 형벌을 들씌웠다고 고발하였습니다.
늙은 군수는 자기도 지난날 많은 죄인들을 다스렸는데 그게 옳았는지 그때에야 가책되는게 있어 한번은 하인들을 상대로 시험하여보았다고 합니다.
늙은 군수는 어느날 새벽에 뜰안에 있는 옹달샘에 금가락지 하나를 떨구어넣고 하인더러 그 샘터를 깨끗이 가셔내라고 분부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하인의 거동을 살피였습니다. 샘터를 가시던 하인은 가락지를 발견하고 주머니에 넣었다가 다 가셔낸 다음 거기에 도로 집어넣는것이였습니다.
하인이 돌아와 샘물터를 다 가셔냈다고 아뢰자 늙은 군수는 대뜸 물었습니다.
<내가 오늘 새벽에 옹달샘에 나갔다가 금가락지를 잃었는데 네가 혹 보지 못했느냐?>
하인은 자기가 보았는데 샘을 가셔내고 도로 넣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면 가져오너라.>
군수의 분부를 받고 하인이 샘터에 가니 가락지는 없었습니다. 군수가 하인이 불리워온 다음 딸더러 금가락지를 찾아 건사하도록 했던것입니다.
하인이 다시 갔다와서 하는 말이 자기가 건사했다가 방금전에 틀림없이 샘에 넣었는데 없어졌다는것이였습니다.
<너밖에 거기에 간 사람이 없었는데 이상하다.> 하면서 군수가 여러번 문초를 했으나 하인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정말 자기는 샘터를 가시고 도로 그 자리에 넣었노라고 같은 대답만 하였습니다.
군수는 화로에 불을 피우고 부저를 달구어오라고 분부를 하였습니다. 하인이 시뻘겋게 단 부저를 가져오자 늙은 군수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봐라! 네가 금가락지를 안가졌다고 우기는데 이제 알아보자. 이 부저가락을 손으로 잡아라. 네가 정직하면 데지 않을게고 거짓말하면 쥐는 순간 아예 타버리고말것이다. 어떻게 하겠느냐?>
그러자 하인은 <군수님 말씀이 옳으시다면 쥐겠나이다.> 하고나서 서슴없이 부저가락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손이 타지 않을수가 있겠습니까? 손이 타들기 시작하자 하인은 얼굴이 새까매지면서 <제가 가졌나이다.> 하고 거짓자백을 하였습니다.
이것을 본 늙은 군수는 한숨을 크게 쉬고나서 하인의 손바닥에 준비해둔 초약을 발라주면서 탄식하였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수다한 사람들에게 형벌을 내렸는데 그들중에는 악형에 못이겨 거짓자백을 하여 억울한 루명을 쓴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겠으니 나야말로 죄인이로구나. 그 사람들이 지금도 나를 원망하겠으니 내가 무슨 명관이겠느냐. 이 시각부터 나는 관복을 벗겠노라.> 하고는 동헌대청을 떠났다고 합니다. 허허허…
나의 말을 마지막까지 들어주어 감사합니다.》
조봉암이 말을 그치자 장내는 물을 뿌린듯 잠잠해졌다.
방청객들은 물론이거니와 법정에 있는 법관들과 경찰들까지 숨소리를 죽이고 조봉암의 고담에 심취되여 그 말의 메아리를 음미하고있었다.
의미심장한 여운과 교훈을 주는 조봉암의 이야기에서 청중은 법관의 륜리를 생각하며 권력을 등에 업은 포악한 탐관오리들의 악정에 울고있는 무고한 이 시대의 인간들의 처참상을 그려보았다. 그리고 이 재판에서 보이고있는 권력의 더러운 흉모와 비도덕성에 대하여 치솟는 분노를 금치 못하고있었다.
《좋은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우달수의 눈에는 감사의 정이 함뿍 어려있었다.
조봉암은 가벼운 미소로써 그의 인사에 대답하였다.
조봉암의 호걸다운 기백과 담력이 사람들의 심금을 크게 울리고있었다. 자기의 위업에 대한 철석의 믿음과 자부심이 없다면 삶과 죽음이 문턱을 사이에 두고 오락가락하는 이 법정에서 고담풀이를 한다는게 엄두나 낼 일인가.
강치부의 증언은 사실상 그에게는 죽음에 대한 선고였다. 그러나 조봉암은 눈앞에 덮쳐든 이 위험천만한 반대세력의 모략앞에서도 배심을 가지고 사람들을 차분하게 훈계해가며 인간의 륜리와 법도를 가르치고있는것이다.
갑자기 사내의 통곡소리가 울려퍼졌다. 강치부가 소리내여 울기 시작하였던것이다.
조봉암은 강치부의 그 울음소리에 가슴이 찢어지는듯 아팠다. 그는 비분이 서린 눈으로 강치부를 돌아다보며 인간의 의미를 생각하였다. 인간의 육체뿐아니라 매 사람들의 심혼까지 제놈들의 권력과 부귀와 리해관계를 위함이라면 서슴없이 파멸시키고 죽탕쳐놓고야마는 악귀같은 통치배들과 그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간신무리들에 대한 분노를 금할수 없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게 하자면 이놈의 세상부터 뒤집어놓아야 한다.
조봉암은 감방에 돌아와서도 강치부의 통곡이 그냥 고막을 울리고 가슴을 토막토막 저며내는것 같았다.
그는 누기찬 담벽에 등을 붙이고 그냥 강치부의 얼굴을 눈앞에 떠올려놓았다. 여러 생각에 잠겨있던 조봉암은 뙤창가에서 울리는 새소리에 착잡한 생각에서 깨여났다.
《진- 진진- 진- 진진-》
그 청아한 우짖음에 조봉암의 얼굴이 금시 밝아졌다.
녹쓴 쇠살창이 여러대가 가로질러간 뙤창턱에 두마리의 동박새가 조봉암에게 인사를 하듯 감방을 들여다보며 챙챙 여문 명랑한 소리로 우짖는다.
조봉암은 동박새를 위하여 준비한 먹이를 한줌 들고 뙤창가로 다가가 창턱에 펴주었다.
그러자 파랗고 희고 노란색갈이 아롱아롱한 새들은 작은 부채같은 꽁지를 들까불며 조봉암을 향해 녹두알같은 눈을 돌돌 굴린다. 그리고는 기묘한 부리로 부지런히 쪼아먹기 시작하였다.
그가 다가가면 겁이 나서 포르릉 깃을 치며 날아가던 새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잘게 부스러뜨린 먹이를 매번 한줌씩 대접하는 조봉암과 이제는 친숙해졌다.
조봉암이 새들에게 말린 보리밥을 잘게 타개서 주게 된데는 사연이 있었다.
새들이 처음 나타났을 때 조봉암은 그 귀여운 친구들이 찾아온게 무등 반가워서 먹던 밥을 한숟가락 놓아주었다. 그런데 새들이 날아간 다음에 보니 헤집기만 하였지 그대로 남아있었다.
원래 동박새는 벌레를 잡아먹는 새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였으나 더우기는 보리쌀알들이 굵어서 새들이 먹지 못하는것 같았다. 그래 밥을 말리웠다가 손바닥으로 비벼 좁쌀알보다 잘게 타개서 주어보았다. 그랬더니 새들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쪼아먹었다.
동박새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어김없이 찾아와 수인생활의 고독과 만가지 고뇌에 시달리는 조봉암에게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마련하여주군 한다.
겨울에는 성에가 하얗게 끼고 여름에는 습기가 차서 물기가 번들거리는 콩크리트담벽안에서 하루가 한해맞잡이로 지루한 낮과 밤들을 홀로 보내는 조봉암에게서 동박새들과 보내는 시간이 유일한 락이였다.
조봉암이 누워있으면 저들이 왔다고 즐겁게 지저귀며 그를 불러낸다. 아침에 와서는 간밤에 잘 지냈나요 문안을 하는것 같다. 이렇게 저녁에 와서는 낮에 별일이 없었나요 묻는것 같았다. 시름겨운 일을 당하고 낯빛이 어두우면 무슨 일이 있었느냐 살뜰히 념려해주고 밝은 얼굴로 맞아주면 무슨 좋은 일이 생겼느냐 들까부는것 같다.
《별일이 없었다. 그런데 좀 고달프구나.》
조봉암은 동박새들에게 시름겨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새들은 모이를 쫏다말고 눈알을 대록거리며 쳐다본다.
《리유가 뭐냐고? … 응, 내 친구가 페인이 됐더라. 너들처럼 자유롭게 날지도 못하고 너들처럼 제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래, 그 사람은 너희들보다 썩 못난 바보가 됐더라.》
새들이 꽁지를 달싹거리며 조잘거린다.
《그게 누구냐구? … 강치부라구, 무슨 큰뜻은 없이 살았어도 마음씨는 무던한 사람이였단다. 감옥살이도 함께 하구… 내 시중도 들어주구… 그런데 그 사람이 겁이 나서 바보가 돼버렸구나.》
새들은 조봉암의 말을 알아듣기나 한듯 또 뭐라고 조잘거린다.
《그래, 용서해주어야지. 너들이 부럽구나. 마음껏 창공을 날구 마음껏 노래하구… 어떤 사람들은 왜 그 모양일가? 만물들중에서 가장 령험하다고 하면서도 어째서 너희들처럼 화목하지 못하고 서로 물고뜯고 미워하고 거짓말까지 하고…》
새들은 조봉암의 말을 새겨듣는듯 눈알을 굴리다가 서로 뾰족한 부리로 상대의 깃털을 비다듬어주고 비둘기알만 한 대가리를 맞비비기도 한다.
《사람들은 정말 못난이들이예요. 우릴 좀 보세요. 얼마나 다정한 한쌍인가.》
마치도 새들은 조봉암에게 이렇게 화답하는것 같았다.
새들은 아마 그런 식으로 서로 애무해주며 사랑의 정을 나누는 모양이다.
《음- 그래그래, 너희들은 자랑할만 하지. 사람들모두가 너희들처럼 정직하고 너희들처럼 성실하고 너희들처럼 정갈하고 너희들처럼 깨끗하다면 우리 인간세상도 이다지 어지럽지 않을게다. 인간해방이라는게 별게 아니다. 너희들이 저 푸른 하늘을 날아예듯 자유롭고 너희들이 자기 노력으로 배를 채워가는것처럼 로동에 근면하고 너희들만큼 다정하게 살아가도록 평화로운 안식을 주는거란다. 헌데 그게 쉽지 않구나.》
조봉암이 시름겹게 중얼거리자 새들은 또 뭐라고 들까불었다.
《허, 이제는 가보겠다구? 그래, 어서들 너희 보금자리를 찾아가거라.》
새들은 조봉암의 손짓에 포르릉 하고 날아오르더니 하늘에서 한바퀴 돌고는 멀리로 사라졌다.
새들이 홀연히 사라지자 조봉암은 어둠이 실리는 뙤창밖을 우두커니 내다보며 시름겨운 생각에 갈마들었다.
죽음의 나락같은 감방의 적막이 그의 몸에 칭칭 서려들었다. 여기서는 순간순간이 한해와 맞먹는 고독과 절망을 주며 인간의 넋을 문드러지게 한다. 평생을 거슬러보면 이런 생활이 이제는 수십년에 달하건만 이 죽음의 마굴에서 습관될수 없는것이 감방의 적막이다. 처절한 고독과 비애와 울분이 수인들의 신경을 바늘끝처럼 예리하게 만들어주는것이다. 그런데 동박새들이 이렇게 즐거움을 주니 이는 례사롭지 않은 행운이다.
그가 새들이 사라진쪽에서 그냥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뙤창가에 서있는데 등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돌아서니 언제 들어섰는지 오리발에 살짝곰보인 간수부장 김정두가 하얀 보자기로 싼 꾸레미를 들고 서있다.
《또 동박새와 얘기하시였군요.》
《허, 들었소?》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착한 마음 새들도 다 알지요.》
간수들은 조봉암을 찾아 매일처럼 날아오는 한쌍의 새들과 조봉암이 정을 주고받으며 가까이 사귀는것을 신비롭게 보아온다.
《참, 명물들이요. 저 쪼꼬만것들도 정을 주니 저렇게 따르지 않소. 난 정말 저 새들이 귀엽소.》
《에, 선생님같은 큰분에게 그렇게 자심한 감정이 있다는게 놀랍습니다.》
《허, 무슨 소리… 내가 왜 저 동박새들을 좋아하는지 아오? 저 새들은 나쁜 벌레를 잡으며 일년내내 우리 땅에서 산다오. 아마도 착한 마음에 이 땅과 이 땅 주인들에게 정이 들었나보오.》
《매일 두번씩 어김없이 죽산선생의 감방에 찾아드는 새라고 내 한마디 했더니 이젠 감옥에 소문이 짜합니다. 새들도 인물값을 옳게 매긴셈이지요. 모두들 저 새들을 보고 죽산조라 한답니다. 우리 간수들도 그렇게 부르지요.》
《죽산조? … 허허, 김부장이 벌감에 갇힐 일 했구려.》
《그까짓, 선생님을 위한 일이라면 벌감에 한번 들어가보는거지요.》
그들은 즐겁게 웃었다.
《이건 따님이 가져온겁니다. 맏따님말입니다. 내외분이 함께 왔습디다.》
《그렇소? … 매번 간수부장에게 수고를 끼치는구만.》
조봉암은 효경이 가져온 차입품을 받아들며 감사를 표하였다. 집에서 한주일에 한번씩 속옷도 빨아오고 식료품도 가져오는데 늘 김정두가 들고 온다.
《뭘요, 제가 해야 할 일인데요. 이제는 이런 심부름도 끝나갑니다.》
《왜, 조동인가? 어데로 승급하는가?》
《승급이라니요? 퇴직할 날이 눈앞인데… 게다가 저같은 놈을 누가 써주겠다고 하나요? 간수부장자리 딴것만도 내게는 너무 과남하지요.》
《헌데 끝나간다는 그 소리는?》
《아, 선생님도 이제는 바깥세상을 보시게 되였다 그 말씀입지요.》
《엉, 그래서? …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오.》
《강치부, 그 자식때문에 말입니까?》
《어, 임자가 어떻게 그것까지 알고있나?》
《모를리 있나요. 사실은 우리 미결수호동의 간수들처럼 재판에 대하여 눈을 밝히는 사람들이 없지요. 선생님이 법정에서 하셨다는 명관옛말도 다들 전해들었습지요. 우리 간수들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먹고살자니 다른 재간이 없어 더러운노릇을 하지만 눈에 정 곰팽이 쓴거는 아니지요.》
《음, 그 말이 그럴듯 하오.》
조봉암은 간수부장의 말이 리해되였다. 동정이 가기도 하였다. 누구인들 이 음침하고 살벌한 곳에서 해종일 눈을 부라리며 악을 쓰는노릇을 재미나 하겠느냐.
《아무렴, 선생님에게 족쇄를 채운것부터 큰 오산이였지요. 될탁이 있습니까? 아까 강치부라는 작자가 여기 끌려왔는데 우리 간수들도 얻어들은 소리들이 있어서 그놈을 개몰듯 해댔지요. 저도 그쪽 호동에 그 자식이 어떤 놈인가 구경을 가보니 그냥 꺼이꺼이 울고있습디다.》
《울고있더라구? … 간수부장, 그러지 말게. 그 사람 너무 박대할게 없네. 그 사람을 험하게 다루지 말라고 아래사람들을 신칙해주게. 불쌍한 사람이야.》
《허 참, 선생님은 이렇다니깐요. 선생님의 마음이 이렇게 비단결인줄 그놈이 알겠는지… 하여간 선생님, 재판은 이미 이긴 재판이 분명해요. 어진 사람에게는 적이 없다고 한다는데 선생님이 그렇습니다. 은혜를 원쑤로 갚는 그런 작자까지 걱정해주시는데… 무죄석방에 보상까지 내려지지 않는가 두고보십시오. 감히 누구를 묶어놓고 함부로 트집을 걸어?! 안되지요, 안되구말구요!》
간수부장은 제가 화가 나서 견딜수 없다는듯 목청을 돋구었다.
《허허허…》
조봉암은 간수부장이 제잡담 열이 올라 떠드는 소리를 받아주며 유쾌하게 웃었다. 그도 새로운 정황에 맞다들었으나 자기의 승리, 진보당의 승리를 굳게 믿고있었다. 간수부장까지 이제는 공공연하게 추파를 던지는것도 우연이 아닌것 같다.
조봉암에게는 강치부가 그냥 울고있다는 소리도 무심히 들리지 않았다. 그의 심장이 흔들리고있으며 어쩌면 어제날의 자기를 되찾을수 있을거라는 희망도 보인다. 량심과 비량심이라는 상반되는 극에서 오락가락하고있을 강치부의 울음소리가 들리는것만 같다.
어떻게 도와줄수 없을가. 가까이에 있으면 《정신을 차려라!》고 한마디 귀띔을 해줘도 그에게 힘이 되고 의지가 되련만 호동이 다르다나니 손을 써볼수가 없다.
조봉암은 그냥 강치부에 대한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