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6 회)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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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대좌는 조인수가 물러가자 강치부의 담당취조관을 불러들였다. 처음에는 수고했노라고 양주도 한잔 권하고 잔등도 두드려주었다. 림처한더러 조인수가 말해준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설명하여주게 하였다.
중령의 말이 끝나자 버드는 상을 주라던게 언제였더냐싶게 두사람을 싸잡아 화를 내고 욕지거리를 퍼붓기 시작하였다. 한달 가까이 시간을 주었는데 아직도 이 꼴이냐고 앞탁을 두드리며 한바탕 눈을 사납게 굴리였다. 욕사발을 들씌운 끝에 버드는 취조관에게 물었다.
《강치부가 아직도 코를 세우는가?》
《예, 한 대목을 넘기는게 사실인즉 악전고투입니다.》
취조관이 풀이 죽어가지고 변명조로 대답하였다.
사실 방첩대로 강치부를 끌어오고 그에게 《북의 련락관》이라는 감투를 씌우는게 헐치 않았다. 우선 인천첩보대에서 강치부를 데리고있던 상관들이 자기 사람을 순순히 놔주지 않았다. 겨우 끌어왔는데 그냥 덤벼든다. 그들은 무시로 인천방첩대장의 문을 발길로 차고 들어와 방첩대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을러멨다. 강치부는 자기들이 보증할수 있다고, 구속령장도 발부하지 않고 끌어가는 법이 어데 있느냐고, 방첩대가 무슨 명분으로 첩보대의 사람을 재판에 올리느냐고, 그를 만나게 해달라고 그냥 림처한중령을 들볶았다. 그래 림처한은 버드까지 동원시켜 첩보대의 압력을 무마시키고 시급히 강치부의 범행자술서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강치부도 순순히 응할리 만무였다. 북의 특수기관에 포섭됐다는 자료를 날조하여 달구어대니 한길되게 뛰면서 취조관과 떡떡 맞섰다. 아무리 들구쳐야 자기는 북을 위해 일한적이 없으며 더구나 조봉암선생과의 관계는 백번 죽어도 너희들이 만들어낸 문서장대로 인정해줄수 없다고 완강하게 버티였다.
하는수없이 방향을 바꾸어 협조를 부탁하였다. 조봉암의 위험성에 대하여 열번, 스무번 그냥 떠들면서 이제는 그를 죽이도록 경무대의 정책이 서고 어찌하든 죽을 사람이니 신의를 버리는건 사람 할짓은 아니지만 나라를 위하여 나서달라고 애걸도 하였다.
려운형이나 김구를 살해한 범인들도 불러들였다. 미국이 있는 한 그들의 부귀영달은 일생토록 담보될것이며 후손들도 복락을 누릴것이라고 떠들어댔다. 미국이 강치부의 여생을 담보한다는 버드의 필적과 수표가 있는 《합의서》까지 만들어가지고 집요하게 구슬렸다. 그까짓 한번 무대에 나서는셈 치고 재판에 나가보라고 부추겼다.
어느날에는 버드까지 수하장교들 여럿을 거느리고 나타나 강치부의 괴로운 처지에 대하여 《동정》하고 《위로》하면서 이번 재판이나 치르고는 미국에 가서 살게 해주겠다고 《정중하게 약속》하였다.
집요하게 들이대는 회유와 협박과 고문앞에서 끝내 강치부는 육체도 정신도 갈기갈기 찢겨져 취조관이 불러주는대로 대답하는 페인이 되여갔다. 악전고투라고 한 취조관의 대답이 우연이 아니였다.
취조관과 형리들은 버드가 만들어낸 대사들을 한구절을 외우게 하기 위하여서도 여러 밤을 밝히며 얼리고 때리느라 제놈들도 기진맥진하군 하였던것이다.
그러나 조인수에게서 여지없이 혹평을 받은데다가 취조관의 꼴기없는 대답을 듣자 버드는 눈을 희번득거리며 취조관의 대답을 걸어챘다.
《악전고투라고? … 그러니 더는 전진시킬수 없다는건가?》
《아, 아닙니다. 그런건 아니고… 오늘 저녁부터 곧 수정작업에 착수하겠습니다.》
취조관은 버드의 불량한 눈에 겁이 나서 목을 움츠리며 얼른 대꾸하였다.
《오늘 밤은 다치지 말아. 드라마를 그만큼 해주었으니 상을 주어야지. 한상 푸짐히 차려주라구.》
취조관은 제꺽 머리를 조아렸다. …
버드는 요사이 자기가 점차 초조해지는것을 느끼군 한다.
어제 다울링대사를 만났는데 그는 히물거리며 빈정거렸다.
《대좌, 어째 일이 여의치 못한것 같구려. 재판정에서 조봉암만세소리가 나올 형편이라더구만. 리승만이 조봉암을 재판하는게 아니라 조봉암이 리승만을 재판한다면서? … 리승만은 자기가 파놓은 함정에 제가 코박게 되였단 말이요. 이제는 우리 미국의 차례요. 당신의 연극이 실패하는 경우 미국도 그 재판정에서 심판을 받게 된다는것을 잊지 마오.》
그것은 국방성을 걸고드는 국무성의 일종의 조롱이고 협박이기도 하다. 남조선에서 언제나 진짜 실세행세를 하는것은 국방성과 중앙정보국이다. 국무성의 전권대표들은 국방성이 마구 토해놓은 정책을 옹호해주거나 정책실패를 가리워주는 정도의 역할에 언제나 불만해 하고있지만 어찌할수 없다. 고작해야 사사건건 국방성이 저질러놓는 탈선과 망동을 백악관에 고자질하고 국회에 상정시켜 국방성의 뒤통수를 쪼아주고 군복쟁이들의 권위를 최대한 추락시키는데 극성을 부리군 한다.
버드는 《흥!》 하고 코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기는 하였으나 속은 편안하지 않았다.
주일미군사령관이 보내온 무전지시문도 떠올랐다.
《리승만의 요구대로 조봉암사건을 다 결속한 다음 직무인계를 할것. 주일미군사령부도 당신의 공작에 의의를 부여하고있음.》
너의 몸무게는 사건의 결속으로 재확인할것이며 그에 따라 차후 거취가 달라질수도 있다는 위협적인 암시도 짙게 깔려있는 지시문이다.
그런가 하면 미8군사령관은 그의 보고를 받고나서 사건에 미군방첩대장이 너무 깊이 말려들었다고 질책하였다. 비밀권의 종심이 보장되지 않아 미국의 영상을 어지럽힐수 있다는것이였다.
버드가 재판의 필요성과 이와 관련한 국방성의 명령서를 상기시키려 하자 벌컥 성을 내기까지 하였다. 당신은 지금 꼭두각시의 끈을 쥐고있는 조종사가 아니라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대사를 치는 꼭두각시노릇에 더 흥미를 가지고있는것 같다고 눈을 부라렸다. 그런 일이라면 너의 별과 직무가 합당치 않다는 된꾸중이다.
버드는 그 말이 정당하다고 인정하였다. 자기가 리승만이 배설해놓은 진구렁에 분별없이 성큼 뛰여든것이 실책이였다.
버드는 이제 와서 그 진구렁에서 솟아오르는수가 없었다. 그는 자기가 그냥 조봉암모살작전을 진두에서 지휘해야 할 필요성으로 실책을 변명하고 자신을 위로하기도 하였다.
(조봉암을 영원히 매장해버리는것은 서울의 공산화를 막는 최우선적인 과제이다. 이것이야말로 미군방첩의 첫째가는 직분이 아니냐. 도대체 미군방첩대가 왜 존재하는거야? 이곳에 공산주의방파제를 굳건히 세워놓는거요, 미국과 리승만세력을 보호하고 지켜주는게 아니냐. 조봉암과 같은 인물을 저 정제관따위가 지워버릴수 있다더냐.)
통치권의 《실세》요, 《두뇌회전이 기민한 모사》라고 리승만이 극구 춰주던 정제관은 아무리 좋게 봐주자고 해도 멍텅구리임에 틀림없다. 신통한 사건 하나도 꾸며내지 못하고 만들어냈다는 사건들은 법정에 내놓기 바쁘게 만신창이 되여버리군 한다.
리승만이 너무도 많은 정치적적수들을 만들어놓고 독선과 전횡으로 정책작성과 집행에서 오유만을 련발하고있으니 그 두상의 옥좌를 지켜주는게 여간 베차지 않는 고역이다.
생각 같아서는 선행자들처럼 고목같은 두상을 제거하여버리고 주구교체놀음을 벌리는것이 후련할것 같은데 아직까지도 리승만같은 미국의 노복을 골라내지 못하고있다. 현재 서울에는 리승만처럼 봉건적인 군주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친미적인 우익보수세력을 묶어세울수 있는 아귀센 인물도 없다. 울며 겨자먹기로 미워도 싫어도 아직도 송장내가 나는 리승만을 밀어주는수밖에 없다. 따라서 리승만을 지켜주는 일에 손쉽게 비켜줄수도 없는게 미군방첩의 처지이다.
자신도 이제는 강치부를 내세울데 대한 줄거리를 만들어내고 일을 괜찮게 끌고왔으니 구워놓은 게다리를 남에게 양보하기도 싫다. 차후 비밀봉쇄를 위하여서도 여러 사람을 개입시키는것은 재미가 적다.
리승만은 만날 때마다 재판정형에 안달아하면서 빈번히 누런 금덩이를 챙겨주는데 서울을 떠나기 전에 어차피 그 값도 치르어야 한다.
지금도 버드는 주일미군사령관의 지시문과 다울링의 경고를 되새겨보며 그에 도전하듯 복합적인 리유로 사건에 얽혀든 자신을 옹호하고 변명하였다.
《중령! 한주일이요, 한주일! 검사와 한 약속을 지켜야지.》
버드는 림처한중령에게 다짐을 두었다.
《해내겠습니다.》
《이제부터 강치부를 너무 험하게 다루지 마오. 생사기로에 세워놓고 삶에 대한 유혹으로 나꾸는게 기본이야.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해서 재판정에 내보낼 때는 신수가 멀쩡해야 하오. 잘해보오. 다리를 절게 한것이 문제야. 당신네는 아직도 사람다루는 재간이 부족해.》
《예, 너무 걱정마십시오.》
《좋소. 난 가겠소. 나에게 하루 두번씩 정형보고를 하되 문건보고를 해야겠소. 다시 강조하건대 비밀봉쇄요. 비밀류출에 대하여서는 누구나 례외없이 방첩대의 지하실에서 톡톡히 덕을 보게 된다는것을 명심하시오.》
버드는 소름이 끼치는 말로 두사람과의 대화를 끝냈다. 버드는 조인수의 심중이 리해되였다. 지금 재판을 보는 사회계의 시각이 매우 랭소적이다. 조봉암의 체포를 전후하여 극성을 부리던 언론은 재판이 시작되자 숱한 기자들에게 사진기까지 메워 법정에 들어서게 했으나 기소측이 수세에 빠지자 일체 입을 다물고있다.
드문드문 재판이 열렸다는 소식이 작은 활자로 독자들에게 간단히 전해지고있다. 거기에 한두구절 피고들이 얼이 빠진것 같다느니, 증인들의 증언열의가 대단하다느니, 조봉암이 모든걸 시인했다느니 하는 얼토당토않은 얼빠진 설명이 소개될뿐이였다.
어쩌다가 《경향신문》이 조봉암이 자체변론을 하고 증인심문도 했는데 기소쪽이 밀린감이 있더라고 사실은 극히 참새의 눈물만 한 동정의 빛을 보여주었을뿐인데 이게 말썽이 되여 신문주필과 담당기자가 여기저기 불리워다니기까지 하였다.
버드와 정제관이 언론에 자갈을 물리기는 해도 법정의 메아리를 완전히 봉쇄할수는 없었다. 법정에 참석한 사람들의 눈과 귀와 입은 제아무리 폭압이 기승을 부린다고 하여도 다 틀어막을수 없었던것이다.
법정에서 용기있게 떨쳐나 자신들의 무죄와 통치권의 간계와 불법을 타매하는 조봉암과 피고들의 기상과 열변들은 서울은 물론 남조선전역의 하늘땅을 크게 뒤흔들고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