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회)

제 5 장

1

 

재판이 선고재판에 이르렀을 때 홍병삼에게로 경무대 비서실에서 긴급지시가 떨어졌다. 경호실장 곽영주가 직접 걸어온것이였다. 재판을 휴회하라는것이다. 개정날자는 후날에 보자고 하였다. 법무부를 통하여 지시가 떨어지게 해달라니 당신이 지시를 받았다고 그쪽에 통보해주라고 퇴매지게 을러멨다.

홍병삼은 다 기울어진 재판을 놓고 분명 딴꿍꿍이가 있다는 직감이 생겨났다. 그러나 경무대의 지시가 엄격히 내린 이상 법원에 보고하고 집행하는수밖에 없었다.

무기한의 휴회가 선포되자 방청객들이나 피고들이나 할것없이 뜨아한 기색들이였다. 재판이 결속될무렵에 무슨 까닭이 없이 일방적으로 선포된 휴정이라 모두 착잡한 생각을 하며 흩어져갔다.

이날 조인수는 자기를 보좌하여온 검사들과 검사보들을 거느리고 서라벌려관으로 갔다.

거기서 그들은 고배의 술잔을 권커니작커니 하면서 패배한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하였다. 처음에는 조인수와 그의 보좌관들의 이름이 신문사들과 방송국들에 매일처럼 들락날락하며 법조계의 별들로 사뭇 빛을 뿌렸다. 검찰총장까지도 이틀건너로 조인수의 사무실에 들려 어깨를 두드려주고 가군 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따금 전화로 재판정형을 물어오는데 욕설과 추궁과 멸시가 너무 심해 전화종소리만 나도 등골이 으스스한게 귀찮기만 하다.

《패작이다!》

조인수나 그의 패거리들은 괴롭지만 이걸 인정하는수밖에 없었다. 그래 쓰디쓴 술로 권력의 시녀로 자청하여나섰다가 졸지에 권력의 눈밖으로 추락하여버린 저들의 처지가 한심스러워 《우리는 할만큼은 했다.》며 서로 위로도 하고 속풀이도 하였다. 이제는 아무리 날고뛰여도 여기저기 뚫어진 구멍을 땜질하는수가 없다.

그들은 하루밤을 지겹기 그지없는 재판놀음에서 벗어나 술집요부들을 방에 불러들여 질탕거리며 도락으로 보냈다.

조인수가 아침에 깨여나 아침상을 받는둥마는둥 하고 부랴부랴 사무실에 나오니 뜻밖의 손님들이 기다리고있었다.

그들은 서울검찰청 청장과 또 한명의 사복쟁이였는데 청장이 그를 미8군의 인천방첩대 대장 림처한중령이라고 소개하였다. 머리를 짧게 깎고 목이 앙바틈한 방첩대 대장은 미8군방첩대장의 지시에 따라 진행되는 공작이 있으니 자기와 동행할것을 요구하였다.

조인수는 모략과 음모의 소굴로 악명을 떨치고있는 미8군방첩대의 공작이라는 소리에 한순간 머리칼이 쭈빗이 일어섰다. 두려운 생각이 앞서 자기 상관을 돌아보니 그도 영문을 모르고있는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뿐이였다.

(이놈들이 날 어째보자는거야? …)

불길한 예감부터 앞섰다.

이번 재판을 뒤에서 리승만과 함께 미8군방첩대장 버드대좌라는 인물이 함께 조종하고있다는 말을 누구에게선가 들은적이 있다.

(그 버드란 놈이 제놈의 의도대로 재판이 되지 않으니 나를 그 책임을 지워 제껴버리자는것이 아닐가? 좋기는 삼십륙계 줄행랑을 놓는것인데 곁에 청장까지 붙어있으니 꼼짝 못하고 따라가는수밖에 없다.)

조인수는 단통에 사지가 나른해져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느럭느럭 마당에 세워놓은 풍차에 올랐다.

풍차에 올라서도 림처한중령은 입을 다물고 싸늘한 표정을 지은채 한마디의 설명도 없었다.

차는 한강대교를 넘어서자 인천쪽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에잇,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지! 죽기보다 더한 일이야 있을라구.)

조인수는 급하게 뛰노는 박동을 이렇게 배심있게 진정시켜보느라고 입속으로 중얼거려보기도 했다.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지옥으로 가까이 다가서는듯 한 환각에 쿵당거리는 가슴은 좀체로 진정할수가 없었다.

그는 재판에 내놓은 기소장들을 다시 상기해보기도 하였다. 재판의 전과정에 있었던 자기의 발언과 행동에 대하여서도 되살려보았다.

(기소장의 내용이란 처음부터 마지막글귀까지 강짜로 만든것인데 그만 하면 웃사람들에게는 흠잡힐게 없이 미끈하게 된것 같다. 기소장대로 확증만 된다면 리승만이 바라는대로 외수없이 조봉암이나 진보당은 열번도 깨지고 꺼질수 있게 되여있다. 그런데 상대가 너무 유력한 인물이고 워낙 기초가 허약하기 그지없는 재판이라 몰리는수밖에 없게 되여있다. 이것은 우리 검찰의 탓이 아니다.

그 첫째가는 책임은 경찰이 져야 한다. 온통 허점투성이인 예심보따리를 넘겨주고 이걸 가지고 극형을 구형하라고 했으니 조인수가 날고뛴들 당해내는 재주가 있느냐. 그리고 이번 재판이 지게 된것은 애초에 리승만이 너무 급히 서둘러대서 하여튼 잡아들이고 제껴보자는 식으로 엄청난 일을 망탕 벌려놓았기때문이다. 급히 먹는 밥에 목이 멘다는 말이 있지 않느냐.

나를 조겨야 얻어쥘것이란 쥐뿔도 없다. 난 할 소리가 많다. 난 할만큼 다했다. 흥, 그런데 풍차에 끌려 어데로 가나? 나를 어쩌자는거야?)

이렇게 속으로 부르고 쓰며 뿔도 세우고 위로도 해보며 정치의 시녀가 당해야 하는 비참한 결말을 놓고 탄식도 하는데 차가 단김을 뽑는 새된 소리를 지르며 멈춰섰다. 기수없는 뭇생각이 들락날락하던 조인수는 림처한중령을 따라 자동차에서 내리다가 겁질린 어조로 물었다.

《여기는 어데입니까?》

《인천이요.》

《인천?》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크지 않은 독립가옥이 눈앞에 덩둘하게 안겨올뿐 주위를 살펴보니 무성한 솔숲에 잡관목이 우거져있고 소음 하나 없는 적막강산이다.

차를 막아선 철대문에는 방첩대표식을 한 군복을 입고 철갑모를 쓴 미군병졸이 카빈총을 들고 지키고있다.

중령이 병졸에게 증명서를 보여주자 철대문이 좌우로 소리없이 벌어졌다.

《들어갑시다.》

중령의 소리에 조인수는 더욱 속이 한줌만 하게 졸아들었다.

(올것이 왔구나. 이건 분명 심문장이구나.)

조인수는 직업의식으로 오는 직감이 불길해서 두다리가 휘청거렸다. 그는 자기를 향하여 활짝 열려진 단층건물의 대문이 꼭 지옥의 문처럼 생각되여 소름이 끼치고 가슴이 그냥 오싹오싹해졌다. 그러나 할 말은 해야 되겠다고 허세를 부리면서 발끝에 힘을 주어 걸었다.

집에 들어서니 밖에서 보기와는 달리 꽤나 호화스럽게 꾸린 집이였다.

조인수는 중령을 따라 넓은 복도를 지나 서양향수내가 지독하게 풍기는 방으로 들어갔다.

크고 화사하게 꾸려진 방이였다. 한쪽벽은 설악산의 아침풍경을 그린 커다란 산수화가 차지하고있었다.

깡뚱하게 무릎우로 들린 치마에 볼룩한 젖가슴이 드러나보이도록 요염하게 옷차림을 한 애된 접대부가 방안에서 그들을 마중하였다.

중령은 혼이 절반은 빠져버린 조인수를 세워놓은채 인차 방에서 나갔다.

《앉으시죠.》

접대부는 조인수에게 눈웃음을 치며 쏘파를 권하고는 인차 커피를 끓여왔다. 접대부는 조인수에게 무릎을 살짝 꺾어보이며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커피잔을 차탁에 조심스럽게 놓아두고 말없이 돌아섰다.

《여기는 뭘 하는 집이요?》

조인수는 처녀의 곰상스러운 태도에 불안하던 속이 어느 정도 진정되여 물었다.

《이제 알게 될거예요.》

접대부는 조인수의 질문에 빨갛게 연지를 바른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대답은 피하고 방안에서 나갔다.

(흥, 저년도 특수기관의 물을 먹는다고 재세군.)

그런데 접대부의 태도나 김이 실실 오르는 커피잔을 보면 여기가 지옥같지는 않다.

(어데일가? … 날 어쩌자는것일가? …)

조인수가 어수선한 속을 달래며 한모금한모금 뜨거운 커피를 조심스럽게 마시는데 중령이 키가 크고 허리통이 굵고 첫인상이 무척 사나워보이는 미국인대좌와 함께 나타났다. 왼쪽귀밑으로 쭉 뻗어내린 칼자리가 대좌의 상통을 더욱 스산하게 보이게 한다.

《조인수검사, 인사하시오. 미8군방첩대장 버드대좌이시오.》

조인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버드대좌에게 허리를 가벼이 숙여보였다.

조인수는 비로소 속이 풀리였다. 미군부의 고위인물까지 이 적막강산에 나타난것을 보면 방첩대가 자기에게 주먹세례를 보일것 같진 않았던것이다.

워낙 방첩대라면 검찰에서 이골이 난 사람들까지 등골에 서리부터 돋게 하는 폭력과 모략의 대명사처럼 불리운다.

항간에서는 검찰을 보고는 족제비요, 여우요 하지만 악마의 왕초로 소문났던 김창룡이 길들인 군특무대의 방첩대들은 승냥이나 메돼지라고 부른다.

수틀리면 잡아넣고 필요에 따라 사람들의 안팎모양을 바꾸게 한다고 무서워하는 곳이 검찰이나 경찰을 꼽기 전에 군특무대로 일러준다. 김창룡의 특무대솜씨란 왜놈사무라이들과 미군방첩대에서 익힌것이다.

버드가 조인수의 인사에 건성 손을 들어 답례하고는 서투른 조선말로 물었다.

《재판이 잘되여갑니까?》

조인수는 버드가 매일 재판정형을 보고받는다는 말을 듣고있는지라 솔직하게 대답하는수밖에 없었다.

《그리 씨원치 못합니다.》

《내가 알건대 이번 재판의 결말에 대하여 경무대가 이미 눌러놓았다고 하던데…》

《예, 저도 듣고있습니다. 헌데…》

조인수는 난색을 보이였다. 뻔히 다 알고 묻고있는 이 대좌에게 감추고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대로 말해주자니 한방망이 얻어맞을것 같아서 망설여졌다. 그래 말끝을 얼버무리는데 버드가 툭 불거져나온 눈으로 무섭게 그냥 자기를 쏘아본다.

《재판전망이 투명치 못합니다. 원래 경찰이 넘겨준 범행자료라는게 따지고 들면 허약하기 그지없습니다. 사실 그걸 가지고 재판을 지금까지 벌려오는게 간단치 않습니다. 게다가 피고들의 법적대응이 만만치 않습니다. 조봉암이 산전수전 다 겪어온 거물급인데다가 그의 주변인물들도 이러루한 싸움에 훈련된자들입니다.》

조인수는 솔직하게 자기의 고충을 설명하였다.

자기 감각으로 볼 때 이제는 기울어진 재판이다. 누구의 연출로 되였든지 이번 놀음은 수습할 여지가 없는 졸작이다. 당초에 이런 재판을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라도 대담하게 용단을 내려 물러서는게 상책이다.

그는 서울통치권에 미국대사에 못지 않게 발을 푹 잠그고있으며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있는 이 대좌에게 사태를 정확히 파악시키도록 해야 되겠다고 속을 도사렸다.

괜히 미련이나 가지고 승산없는 모험을 벌려갈수록 그 후과는 더욱 치명적이다. 서울은 물론 세상여론이 죽가마 끓듯 할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자기 체면은 그까짓 송사리정도이니 누구 돌아다볼 여지가 없겠지만 미국이나 리승만의 상판이 진창에 곤두박히게 될뿐이다.

리승만의 격노가 어데로 쏟아지겠는지 뻔하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으로 될것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그냥 섶을 지고 불속에 통채로 뛰여들지 말고 정확하게 사태를 투시하고 더 깊은 함정에 빠지기 전에 발을 뽑을 결단을 내려야 한다.

조인수는 이렇게 하는것만이 자기라는 초라한 운명의 파멸도 다소 막아낼수 있다고 짐짓 비장하게까지 생각하였다. 이러한 결단은 이 버드만이 실행할수 있는것이다.

버드는 검사가 용기있게 주장하는것이 마음에 드는듯 하마처럼 투박하게 생긴 상통을 두세번 주억거렸다.

《음… 그렇단 말이요. 그래, 그렇지만… 당신 말이 옳은듯 해.》

버드는 이렇게 주절거리며 털이 부시시한 손등으로 앞탁을 여러번 두드렸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넓은 방안을 길고 든든한 다리로 천천히 옮기며 무겁게 거닐었다.

그는 잠시 두팔을 가슴에 낀채 노랑눈알을 굴리다가 조인수앞에 다가앉았다.

《옳소, 당신 솔직해서 말할 재미가 있소. 당신네 내무부나 검찰량반들은 걱정말라고 침바른 소리만 하는데 당신은 솔직하고도 용기가 있는 검사요. 배짱이 마음에 드오. … 옳소, 당신 주장이 옳소. 그건 내가 이미 예견했던 그대로요. 당신들은 서뿔리 일을 시작했소. 그 정제관이라는 인간이 대통령의 눈에 들어볼라구 서둘러 불집을 터뜨려놓았단 말이요.

그런데… 검사선생, 이제 와서 물러서면 안되오. 사태를 역전시켜야 하오. 당신을 만나보고나서 주역들을 바꿔치울 생각이였는데 결심을 달리했소. 당신이 끝장을 보시오. 내가 직접 당신을 돕겠소.》

《예? … 대좌님이 직접…》

조인수는 달갑지 않은 관심과 믿음에 어리뻥뻥해졌다.

(이 대좌가 직접 돕는다는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무엇으로 나를 도와준다는것인가? 제가 이제 날고 긴다고 다 찌그러진 집을 한어깨로 받들어세울수 있다더냐. 무슨 배짱으로 허장성세하느냐?)

《검사선생!》

버드가 조인수의 안속을 짐작한듯 영어로 말을 이었다.

중령이 버드의 말을 통역하였다.

《당신이 맡은 이번 재판은 사실상 이 서울을 공산주의위협으로부터 지켜내는가 못하는가 하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있는 중대사입니다. 당신도 지난해에 서울을 방문한 중앙정보국장 덜레스가 지금 서울은 폭발전야에 있다고 언급한것을 기억하고있을것입니다. 덜레스의 서울방문보고서가 지금 우리 미국의 서울관계자들에게 돌아가고있는데 반향이 매우 심각합니다. 국방성은 서울에서 공산주의요소를 적시에 뿌리뽑는것이 거대한 정치적파멸을 막을수 있는 유일한 미봉책이라고 간주하고있습니다. 여기서 당신이 가장 책임적인 전구를 맡았습니다.》

조인수는 저 하나를 앉혀놓고 그 무슨 강당에라도 나선듯 자못 엄숙하게 주절거리는 버드의 희떠운 소리가 지겹게 느껴져 시들하게 응수하였다.

《사건의 필요성이야 나도 알지요. 중요한 재판이라는것을 몰라서 재판이 몰리는게 아닙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문제는…》

《그 문제라는걸 난 이미 리해하였소. 중요한 사건에 상응한 자료가 구비되지 않았다 그거지요? 그래서 담당검사인 당신도 재판결과에 대하여 비관적으로 예상한다는거겠고…》

조인수는 버드대좌가 자기 목줄을 감아쥐고 무슨짓을 하려는가고 촉각을 곤두세웠다.

(나를 불러놓고 이런 싱거운 시비나 붙이자는것은 아닐것이다. 보매 나를 검토할것 같지는 않다. 검토라면 취조관을 세워놓으면 될노릇이지 자기가 직접 나서지는 않을것이다. 무엇일가?)

조인수는 아직도 버드의 속궁리가 짚이우지 않아 호기심도 동하고 불길한 예감도 생겨나 그냥 신경줄이 팽팽해지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버드의 말에는 될수록 뼈대를 세워서 응수하였다. 버드에게 절대로 약점을 잡히거나 말꼬리를 물리는 일이 있을가봐 걱정이 앞섰던것이다.

《바로 그겁니다. 우리의 고충을 리해하여주시니 감사합니다.

나는 20년가까이 검사노릇을 해왔지만 이번과 같은 허술한 재판을 담당하기는 처음입니다. 난 이제라도 사표를 제출할 용의가 있습니다.》

《사표? … 음, 당신문제도 꽤 심각하군. 당신의 립장과 고민이 리해됩니다.》

버드는 검사의 고충이 십분 리해된다는듯 고개를 끄덕거리였다.

《좋습니다. 나는 당신을 도와주겠다고 아까 약속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간단한 막간극을 감상하고 계속하기로 합시다. 중령, 준비되였소?》

《예, 준비가 되였습니다. 대좌님께서 검토하신 다음 고견을 주십시오.》

중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보고하였다.

《좋소. 시작하시오. 헌데 조검사가 잘 봐주기 바랍니다. 비평도 많이 내놓고…》

림처한중령이 벽쪽으로 가서 새빨간 불빛이 보이는 단추를 눌렀다.

그러자 한쪽벽을 차지하고있던 산수화가 량쪽으로 갈라져 사라지고 거기에 시커먼 유리가 나타났다. 맞은편 방에 불이 켜지면서 거기에 앉아있는 두사람이 보였다. 아마 이쪽에서는 들여다볼수 있으나 저쪽방에서는 이쪽을 볼수 없도록 되여있는 특수유리벽인듯싶었다.

《심문을 시작하시오.》

림처한중령이 마이크를 들고 지시하였다. 방안에는 앞방에 앉아있는 두사람이 주고받는 말이 옆에서 듣는것처럼 똑똑하게 들렸다.

한사람은 군복을 입었고 그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고급양복에 넥타이까지 맨 신사이다.

군복쟁이가 묻고 양복쟁이가 대답한다.

《당신 이름은?》

《강치부요.》

《나이는?》

《올해 쉰여덟이요.》

《현 소속과 직무는?》

《인천첩보대에서 남북왕래밀무역을 하고있소.》

《북의 특수기관에는 언제부터 포섭이 되였습니까?》

《전쟁전이였소.》

《포섭된 경위를 간단히 설명해보시오.》

《내가 어느해 가을에 개풍에 간적이 있었소. 그때는 북쪽사람들과 밀무역을 조금씩 하는게 묵인될 때였소. 거기서 북의 특수기관의 요원에게 련행되여 평양에 가서 고위인물들을 만나 심문을 받았소. 그들은 내가 미군첩보대에서 복무한다는것을 다 알고있었소. 나는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수밖에 없었소.》

《그들이 요구한것이란 어떤것입니까?》

《그들은 내가 조봉암선생과 해방전부터 가까이 지내왔다는것을 다 알고있었고 이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있었소. 처음에 그들은 조봉암선생에게 평양에 있는 친지들이 보내는 문안인사만 전해달라고 부탁하였소.》

《그밖에 다른 임무는 받지 않았는가요?》

《첫번째 심문때에는 받지 않았소. 그들은 다만 남북왕래밀무역을 계속하라고 하면서 필요하면 지원을 줄수도 있다고 하였소. 실상 그뒤로 매번 물고기나 개성인삼을 비롯하여 교역물자를 쉽게 마련하여주었소.》

《몇번 만났습니까?》

《그후로는 북에 들어갈 때마다 그들을 만났소. 나를 매우 호의적으로 대하여주었고 북의 여러곳을 참관도 시켜주었소. 솔직히 말한다면 북에 체류하면서 내가 퍽 달라진것 같기도 해요. 그곳이 이곳보다 나은 점이 많으니깐요. 사람들도 좋아보이고 살아가기도 여기보다 썩 나아요. 내가 첩보부사람으로서 보는대로 평가하고 분석하는데 습관되여있고 또 그렇게 교육받았다는것을 리해하여주기 바라오.》

《좋습니다. 우리의 협의가 그냥 진실하게 계속되였으면 합니다. 그후로는 어떻게 됐습니까?》

《한해가 지나서 그들앞에서 정식 서약서도 쓰고 로동당에도 들어가고 밀봉교육도 며칠씩 받군 했지요. 점차 임무도 달라지더군요.》

《그들이 점차 주었다는 임무는 어떤것입니까?》

《처음에는 조봉암선생에게 문안을 전했다고 하니 수고했다고 하더군요. 어느해 봄날 조국통일위원장이라는 고위간부가 나를 만나주더군요. 그는 내가 그동안 큰 수고를 했다면서 이제부터 조봉암선생에게 보내는 지시문을 전달하고 조봉암선생의 답신을 받아오라는 과업을 줍디다.》

《당신은 어디서 조봉암을 만나 지시와 답신을 교환하였습니까?》

《장소는 중국료리점인 아서원과 인천해수욕장, 신라호텔의 차점, 약수동의 약수터, 탑동공원, 남산주봉의 팔각정 등으로서 자주 바꾸군 했지요. 지령전달과 사업보고는 비밀관리상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하여 구두로 전달하고 청취하였습니다.》

두사람은 마치도 재담이나 하듯이 장시간에 걸쳐 양복쟁이가 조봉암과 만난 과정을 자상하게 주고받았다. 양복쟁이는 마지막으로 지난 3월초에 또다시 북에 갔다가 조봉암의 구명운동을 벌릴데 대한 지시와 공작금으로 인삼 두상자, 순금으로 만든 혁띠고리 하나를 받아가지고 왔다고 《고백》하였다.

이상으로 그들의 심문은 끝났다.

앞방의 불이 꺼지고 말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유리벽이 다시 산수화로 소리없이 가리워졌다.

세사람은 잠시 자기 생각에 잠겨있었다.

조인수는 심장이 쿵쿵 크게 방아질을 하는것 같았다.

(또 한차례의 피비린 드라마가 무대에 오르겠구나. 이건 엄청난 일이구나, 엄청난 일… 이래서 재판을 무기한 연기하였구나. 음-)

몸이 으스스 떨렸다. 이제 이 무서운 각본을 자기가 연출해야 한다. 군복쟁이를 대신하여 바로 이 조인수가 저 강치부라는 작자를 데리고 무대에 올라야 한다. 조봉암… 이제는 당신이 죽는수밖에 없구려…

조인수가 머리를 혼미하게 하는 착잡한 생각에 빠져드는데 버드가 넌지시 물었다.

《어떻습니까, 검사? … 이 정도로 넘겨받는다면 당신네 재판이 리박사 의도대로 돼갈가요?》

조인수는 상대를 향해 쓰거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다들 바빠났다. 리승만도 미국도 조야스러워진것이 사실이다. 노상 뒤에서 면사포를 쓰고 틀고앉아 좌로, 우로 하고 삿대질만 하던 미국이 드디여 그 면사포를 벗어던지고 직접 무대에 나선것이다. 그럴수록 자기 어깨에 걸린 중압이 더욱 뻐근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자기도 모르게 배심이 생겨나는것 같았다.

(어차피 엄청난 간계의 주역으로 나선 이상 훌륭한 연기를 보여줘야 한다. 저쯤이면 희망이 보인다. 확실히 미국놈들이 하는짓이 다르다. 폭이 크고 심도가 있다. 무엇보다도 완력적이다. 저건 분명 날조극일것이다. 저런 대본을 만들어내는게 보통사람들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안목이 넓어야 하고 술수가 좋아야 하며 그보다 앞서 심장이 커야 한다. 헝, 양놈들… 저러루하니 세계를 통채로 삼키겠다고 윽윽거리는게 아닌가.)

조인수는 경악할만 한 탄복의 세계에 심취되였다. 그러나 랭정을 애써 유지하며 자기 면상을 쏘는듯 파고드는 버드에게 그리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였다.

《그럴듯은 합니다.》

그 소리에 두억시니처럼 못생긴 버드의 상통이 훤해졌다.

《하, 그래요? … 음- 첫 관객의 관평이 좀 린색하기는 하지만 그만 하면 좋구만. 중령! 당신네가 수고했소. 공로를 세웠소. 상을 크게 주겠소.》

《감사합니다, 대좌님!》

림처한중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를 하며 버드의 후한 평가에 화답을 하였다.

조인수가 버드를 향하여 직통으로 찔렀다.

《어데까지 진실입니까?》

그 소리에 기겁한 두사람은 볼이 부어 동시에 소리쳤다.

《뭐요?!》

조인수는 상대인물들의 지어낸듯 한 놀라움과 분개에 개의치 않고 매끄러운 어조로 되물었다.

《어데까지 진실입니까? 혹은 몇프로의 진실을 모찌브로 선택하여 프로트를 세웠습니까?》

《뭐요? … 당신 우리를 어떻게 보구 그따위 허망한 수작이요? 여기가 어딘줄 아는가? 대좌님이 누구신줄 알고 함부로 험담이야?》

림처한이 사납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당장 씹어버릴듯이 밸을 썼다.

조인수는 여전히 딱장벌레처럼 물러서지 않고 차거운 어조로 맞받아 되알지게 대꾸하였다.

《동업자가 되자면 피차에 마음의 문을 열어놓아야 합니다. 당신네는 왜 나를 여기에 끌어왔고 저런 희비극을 구경시켰습니까? 승리를 바라서였겠지요? 다시 묻겠습니다. 어데까지 진실입니까?》

《하, 그건… 검사선생이 그걸 꼭 알아야 되겠는가?》

버드가 두사람의 예리한 론쟁에 끼여들어 느슨한 어조로 물었다.

《내가 그걸 모르고 저대로 넘겨받는다면 또다시 구멍이 숭숭 난 대본으로 여론의 질타를 면할수 없을것입니다. 관객을 다 잃고말것입니다. 나는 더이상 머저리가 될수 없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나는 이 사건을 맡은것으로 하여 얻는것보다 잃은것이 더 많습니다. 대답해주십시오. 어데까지 진실입니까? 나는 이걸 알아야 접수할수 있습니다.》

또다시 중령이 조인수를 답새기고싶어 입을 벌리려 하는데 조인수의 얼굴을 뚫어지게 쏘아보던 버드가 손을 들어보였다.

갑자기 허파에 탈난 놈처럼 낄낄 웃기 시작하였다. 상대의 진가가 이제야 가늠이 되였던 모양이다.

《역시 검사는 검사구만. … 검사란 어떤 환경에서도 감정의 포로가 돼서는 안되지. 어, 당신에게 이 거대한 중대사건이 맡겨진게 리해가 가오. 난 당신의 리성적이고 책임적인 태도가 마음에 드오.》

버드는 타협조로 조인수의 매끌매끌한 반발을 받아주었다. 이 사람과는 어벌쩡하게 넘어갈수 없다는것을 즉시에 간파하였던것이다. 이제 다시 검사의 심기를 건드려놓으면 당장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릴것이 분명했다. 버드의 태도가 일변하였다.

《노… 노… 검사선생, 난 당신이 당신네 대통령과 남조선의 안전에 대한 우리의 봉사와 헌신을 리해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의 사명에 대한 지원에 대하여 고맙게 평가하여주기를 바랍니다.》

버드는 이렇게 유화적으로 조인수의 예리해진 속을 떠보고 풀어주느라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저들의 흑막은 쉽게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조인수는 버드의 음흉한 계교에 의연히 한걸음도 비켜서지 않고 자기의 립장을 흔들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던진 후리그물에서 벗어나려는 상대를 집요하게 몰아넣었다.

《다시 묻고싶습니다. 진실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입니까? 그래야 완벽한 대본을 만들어낼수 있습니다. 세상의 눈과 귀를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눈감고 아웅하는 식으로는 절대로 통할수가 없습니다. 이왕 한배를 탄 동업자가 됐으면 서로 상대를 신뢰해야 하지 않을가요?》

드디여 모략과 암투와 질시의 어두운 비정의 세계에서 오염이 되여있는 세 놈팽이의 속구구가 맞아떨어졌다. 버드와 림처한은 한치의 뒤걸음이나 주저가 없는 조인수의 지꿎은 추격전에 손을 드는수밖에 없었다.

버드가 고개를 끄덕이는것으로 방안의 팽팽하던 분위기가 일시에 화락하여졌다.

《좋습니다. 우리도 동업자라는 말이 듣기가 좋습니다.》

중령이 이렇게 태도를 바꾸며 탁우에 있는 초인종단추를 눌렀다.

접대부가 준비하고 기다리고있은듯 초인종소리가 나기 바쁘게 세개의 잔에다가 노르끄레한 양주를 부어 거기에 얼음쪼각을 띄워가지고 들어왔다.

버드가 잔을 들었다.

《우리의 공동사업의 성공을 위하여!》

그들은 인차 실무적인 론의에 들어갔다.

《림처한중령, 검사선생의 말이 옳소. 동업자에게 속을 닫아매서야 안되지. 그대로 말해주시오.》

《알았습니다.》

림처한이 명령을 받자 실무적인 어조로 줄줄 내리엮었다.

《이름은 강치부, 인천첩보대 경리과에 소속된 배사공. 해방전 신의주감옥에서 복역할 때 조봉암에 의하여 죽을판에서 살아난 연고가 있소. 감옥살이리유는 살인미수였소. 마을지주한테 낫을 들고 덤벼들었다고 하오. 강치부는 조봉암을 생명의 은인으로 여기면서 설날이면 그를 찾아가 자금방조를 해주군 했소. 전쟁전에 밀수차로 38도선을 몇번 넘나든 일이 있었는데 북의 발전상과 로동당의 정책들을 조봉암에게 알려주기도 하였소. 이것이 이 드라마의 소재요. 아니, 전부요. 자, 연극의 첫 관객으로서 다시한번 관평을 해보시오.》

조인수는 또다시 속이 메슥메슥해왔다. 자기가 너무나 엄청나고 비렬한 모략극의 꼭두각시노릇을 계속하게 된것이다. 완전히 생나무를 찍고 맑은 샘물에 진거름을 퍼부어놓고도 꺼꾸로 형벌을 들씌워주어야 한다.

(오, 운명이여, 너는 왜 이다지도 걸음걸음 악취풍기는 랭혹한 세계에서 발을 뽑지 못하고 그냥 허우적거려야 하느냐. 돈때문이더냐, 감투때문이더냐.)

조인수는 그냥 속깊이에서 치밀어오르는 역기를 억지로 눌렀다.

《이 대본은 언제 작성되였습니까? 그리고 강치부는 언제 구속되였습니까?》

조인수는 버드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까끈하게 물었다.

버드가 마치도 맹금의 발톱처럼 사정없이 멱통을 조여드는 조인수의 지꿎은 눈길을 피하려고 애썼다.

이 대본의 착상과 작성은 철두철미 버드의 몫이였다. 버드는 지금 자기의 방첩생활 30년을 총화해보는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이번 사건에 개입하였다. 이제 도꾜로 영전해가면 주일미군사령관이 자기가 시간말미까지 주고 처리하라고 한 이 사건에 대하여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묻겠는데 조봉암에게 패하고 왔다면 무슨 체면이 서겠는가. 백악관쪽에서도 소란을 피울것이 분명하다. 백악관이 부아통을 터뜨리면 자기 어깨에 있는 대좌계급장도 성해나지 못할것이다.

《나는 원래 이미전에 조봉암을 제거하여달라는 리승만의 부탁을 받고 움직이려 하였지만 백악관의 결론을 받지 못하여 미루어왔소. 그래 지난해에 조봉암을 오래동안 보호해주고있던 롤만을 쫓아버리고 때를 기다렸소. 그러던차에 당신들이 먼저 선불질을 해서 벌둥지를 우선 쑤셔놓았단 말이요. 그제야 백악관도 이 기회에 조봉암을 완전히 제거하여 서울의 공산화를 막아야 한다는 나의 제기를 승인하고 작전개시를 명령하였소.

그런데 당신들의 기소장을 한통 가져다가 연구하여보니 당신이 아까 인정한것처럼 온통 구멍투성이였소. 당신들의 기소장을 가지고서는 조봉암이나 그의 동료들을 교수대에 끌어가기는 고사하고 머리칼 하나 잘라버릴수 없더란 말이요. 그래서 우리가 이 드라마를 직접 꾸며내게 된거요. 이게 다요.

검사선생, 관평해보시오! 꺼릴게 없소, 줄거리대본은 물론 연기에 이르기까지. 피차에 동업자이니 혹평일수록 더욱 좋소.》

버드가 시원스럽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자 조인수는 자신감이 생긴듯 거리낌없이 자기 립장을 꺼내놓았다.

《당신네의 각본에도 구멍이 적지 않습니다. 나는 저대로는 넘겨받을수 없습니다.》

《의견을 말하시오. 그래서 관평을 하라는게 아니요. 대좌님께서 혹평을 하라고 하셨는데 마음껏 허점을 들춰내시오.》

중령은 이 대본의 주필자인 버드에게 아첨기어린 미소를 보내였다.

버드도 그 말이 실말이라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총적으로 당신들의 방안은 단수가 낮습니다.》

《뭐라구?! 단수가 낮다구?》

림처한이 자기들이 품을 들여온 놀음을 한마디로 혹평하는 조인수의 말에 발끈해서 소리치자 버드가 손을 들어 제지시켰다.

버드는 짐짓 소학생을 달래는 선생처럼 누긋한 어조로 말하였다.

《이것 보오, 검사! 이게 뭐 헐리우드의 엉터리 간첩잡이영화나 살록크 홈스의 술래잡기요? 당신네의 그 허술하기 짝이 없는 재판에 뭘 단수고 뭐고 론할게 있는가. 한 인물이 법정에 나타나 내가 이러루한 연고로 북의 정보원노릇 하다가 조봉암까지 끼고돌았다고 몇마디 주절거리면 되는 일 아니요? 문제를 너무 심각하게 몰아 바람들새없이 만들어도 그게 오히려 짜맞추기했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란 말이요. 채를 치면 드문드문 걸려드는것도 있어야 하는거요. 알겠소? 이게 고단수야. 하여간 좋소. 당신의 불만을 들어봅시다. 다 털어놓으시오.》

버드는 이렇게 조인수의 말을 몰밀어 배격하면서도 방안의 웃사람답게 아량을 보이였다.

조인수는 두사람이 엇갈려보여주는 거만한 태도에는 개의치 않고 눈을 가르써뜨고 앉아있다가 입을 열었다.

《첫째, 강치부가 조봉암을 포섭했다는것이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조봉암은 거물입니다. 저런따위의 설유에 넘어가 남의 장단에 놀아날 졸부가 아닙니다. 나는 여러달 그와 상종하면서 똑똑히 깨달았습니다. 당신들은 아직 그 사람을 직접 대상하지는 않았지요? 거물이라는 의미를 심도깊게 다각적으로 리해하는것이 필요합니다. 좋기는 조봉암이 북의 사상과 체제에 추파를 보내는것을 강치부가 다리를 놓아주는 정도로 역할을 하였다고 하는게 좋을듯싶습니다.

둘째, 강치부를 올해 3월에 구속했다고 하는데 재판에서 밀리게 되니깐 얼렁뚱땅 새로운 드라마에 착수했다는 세간의 눈총을 받을수 있습니다.

셋째, 조봉암과 같은 중량급인물이 강치부따위에게 구두로 사업보고를 했다는것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넷째, 강치부가 북의 특수기관 련락관으로 된데 대하여 여기 방첩대가 언제부터 의심하고 추적하여왔다는 경과가 없습니다.

이러루한것은 절대로 비약해서는 안되는 중대요소들입니다. 사소한 세부의 허구성이 진실이라는 드라마의 생명력을 잃게 한다는것을 잊어서는 안될줄로 압니다.

한가지… 중요한 문제가 매우 어설픕니다. 강치부가 3월에 북에 가서 조봉암의 구명운동을 지시받고 왔다고 하였습니다. 북에서 자기네 사람으로 포섭한 조봉암이 체포되였는데 련락관으로 있는 강치부에게 그런 지시를 할수 있으며 강치부 역시 접수할수 있는가요? 당치않습니다.》

조인수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얄궂은 웃음을 지었다.

버드는 그 웃음이 얄밉기 그지없으나 참을수밖에 없었다. 비평자의 입부리가 살차다고 푸념질하는것은 얼치기문사들이다.

조인수는 자신있게 덧붙였다.

《당신들이 만약 북에 잠복시킨 지하망의 망책이 체포되였다면 현지에 있는 련락관에게 어떤 지시를 주겠습니까? 잠행, 잠적… 혹은 탈출을 명령하겠지요?》

《옳소!》

버드가 손등으로 앞상을 쳤다.

《가만… 문제가 그로써 끝나는게 아닙니다. 구명운동에 대한 당신들의 착상은 좋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담당자입니다. 그 임무는 조봉암의 측근이나 강치부가 아닌 제3자가 맡아안아야 될것입니다, 그러되 그들을 잘 알고있는 3자… 이상입니다.》

버드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조인수의 지적이 너무도 정확하고 흠잡을 여지가 없다. 그 명민한 두뇌와 안목에 우선 탄복되였다.

버드는 조인수의 반들반들한 이마를 자못 경탄의 눈으로 살펴보다가 찬사를 아낌없이 쏟았다.

《검사선생! 당신의 재능이 참 놀랍소. 내 지금껏 당신같은 재사를 처음 보오. 당신은 검사로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인재요. 당신이야말로 타고난 첩보요, 방첩이요. 이제라도 주소를 바꾸는게 어떻소?》

버드는 자기가 오래전부터 무르익혀왔고 여러 사람들의 지혜로 합쳐진 대본의 치명적인 약점을 즉석에서 면바로 드러낸 조인수의 통찰력에 그냥 혀를 차며 진심으로 탄복하여마지 않았다.

한갖 지방의 검사가 미8군방첩대의 모사진이 모여들어 한달이나 낮과 밤을 이어가며 쥐여짜낸 지혜를 단숨에 압도하다니… 상대방의 지위나 영향력이나 권세에 주눅이 들지 않고 제 주장을 거침없이 펴내는 그 밸통도 여간 드살차지 않다.

동료들이 모여앉으면 조선사람이 간단치 않다고, 지혜가 있고 담이 있다고, 이제 이 사람들이 무섭게 용을 쓰며 일어날 때가 올것이라고 두려움속에 떠드는게 우연한 일이 아니다.

버드는 눈섭 한오리 까딱하지 않고 자기에게 주저없이 면박을 가하고있는 상대한테서 신비의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조인수는 버드의 칭찬에는 랭소를 지은채 물었다.

《언제쯤 완성시켜 넘겨줄수 있습니까?》

《보름후…》

《안됩니다. 보름까지 기다릴수 없습니다. 휴정을 선포하였지만 큰 까닭없이 일주일이상은 기다릴수 없습니다. 이것은 법정의 질서입니다.》

《법정질서? … 그까짓건 무시해도 좋소. 도대체 당신네가 법을 만들어놓구 그 법대로 해온게 얼마 된다구 그따위 걱정을 하는거요? 그래서 내가 재판의 무기한 연기도 지시했는데 보름이면 어떻고 한달이면 어떻다는거요?》

버드가 조인수의 단호한 일축에 울화가 치밀어오른듯 머리빡을 조야스럽게 흔들었다.

버드의 무례한 반응에 조인수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싸늘하게 반박하였다.

《기소측을 이렇게저렇게 자꾸 곤경에 몰아넣어야 리될것은 없습니다. 변호인단이 결심공판을 빨리 개정하라고 이제 삼사일 지나면 압력을 가해올것입니다. 무기한 연기의 의미를 따지고들겁니다. 그 요구에 대한 대답까지 당신들이 마련해줄수 있습니까?》

《음-》

버드는 법전문가의 랭담한 요구가 드팀이 없자 골이 나기는 했으나 심중해졌다. 또다시 뒤걸음을 치는수밖에 없었다.

《좋소. 최대로 당겨봅시다.》

《한주일이상은 늦출수 없습니다. 나에게도 얼마간의 준비시간을 주어야 할게 아닙니까? 당신들은 나에게 어물쩍해서 넘겨버리면 다지만 난 강치부와 함께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 또다시 재판정에서 세상을 웃기면 그 결과는 우리의 통치권에 커다란 타격으로 될것입니다. 당신들은 우리 기소자들의 고충을 리해하여주어야 합니다.》

《옳소. 당신의 고충이 리해되오.》

버드는 드디여 타협조로 대꾸하였다.

《한주일이요. 한주일후에는 정식 당신들에게 완성된 줄거리와 인물을 넘겨주겠다는것을 약속하오. 당신의 비평이 해소된 대본을 말이요.》

《좋습니다. 또 한가지… 앞으로 저 강치부라는 인물처리는 어떻게 결심하고있습니까?》

《결심? … 거야 법에 넘기니 당신네 결심에 맡겨야지. …》

《우리 결심? … 그러면? …》

조인수는 그 올빼미같은 눈이 화등잔처럼 타올랐다. 한줄금의 세찬 떨림이 몸을 쩌르르 가르며 지나갔다.

그럼 이자들은 저 인간마저 매장해버리려고 하는가. 저들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38도선까지 넘나들며 돈을 벌어주고 물고기를 잡아준 인간을 흉계의 미끼로 써먹고 서슴없이 단두대에 올리려고 잡도리한것이다.

조인수는 주린 배를 채우려고 날뛰는 허기진 승냥이와 맞다든듯 진저리가 쳐졌다. 필요하다면 이 조인수의 목까지 물어메칠 악귀들이다.

조인수는 검사노릇을 하면서 숱한 사람들의 피로 손을 적셔왔지만 이번처럼 너무도 무고한 사람들에게 생억지로 죄를 씌워 마구잡이로 도살장에 올려보내려고 후안무치하게 포졸노릇을 해본적이 없었던것 같다.

조인수는 자기가 몸을 바쳐온 서울 법사회의 너무도 어지럽고 너무도 랭혈적이며 너무도 사기적인 생리를 다시금 실감하게 되였다. 미국놈들의 사악한 본성도 더더욱 똑똑히 꿰뚫어볼수 있었다. 그는 머리통이 한방망이 얻어맞은것처럼 지끈지끈해왔다.

(민주와 자유의 사도들이라고 입버릇처럼 자화자찬하는 미국놈들이야말로 법도 인정도 담쌓고 사는 죄악의 마귀들이다. 필요하다면 제 녀편네마저 가볍게 벼랑에서 차던질 패덕한들이다. 그럼 너는? … 너 조인수는 저 무리들과는 질이 다른 선인이란 말이냐? 천만에… 너야말로 저들앞에서 꼬리쳐야 하는 사냥개에 불과하지.

어차피 큰 힘에 붙어사는게 이 조인수의 운명이니 구태여 돌아보지 말지어다. 운명이여, 되돌아서기에는 너무 늦었다. 발을 뽑기엔 네가 빠져든 함정이 너무 깊고 너무 더럽다. 뼈속까지 슴배인 인간말세의 악취를 네 이제 어디 가서 무슨 수로 가셔낸단 말이냐. 힘을 내라! 용기를 내라! 괜스레 골머리 아파할게 없다. 운명이 향한대로 앞으로!)

그는 신경을 바늘처럼 해가지고 상대방의 진속을 더 헤쳐보고싶어 그냥 따지고 들었다.

《그럼 그 인간도 매장하여버리는것으로 이 드라마를 결속하자는겁니까?》

《뭘 그러오, 검사? 당신네를 지키는 싸움이요. 칼물고 피투성이 돼서 싸워야 하는 결투란 말이요. 거물을 쓰러뜨리는데 벌레같은 인생 몇을 밟아버린다고 누가 뒤덜미를 잡겠다고 하겠소? 당신이 걱정할건 없소.》

조인수는 버드의 위압적인 대답에 어금이를 지그시 깨물었다.

(버드의 말이 옳다. 수십, 수백만의 좁쌀같은 목숨들이 위인들이라 자처하는 극소수의 제왕들의 권력과 위엄과 취미에 따라 손가락질 한번으로 스러지고 짓밟히우는게 인간세상이다. 법력사에 희귀하기 그지없는 이번의 재판도 결국은 리승만이나 이 버드의 정치적야욕이나 그 어떤 리해관계를 위하여 생겨난것이다. 나 또한 나의 리해관계로부터 이 사건을 맡아안았고 사건의 기초가 무엇이건 미국과 통치권의 요구에 맞게 처리해가고있는것이다.

내가 사는 세상이란 이렇게 굴러온것이요, 이렇게 더러운것이니 다르게 살수 없는 나 또한 응당 더러운 포졸이 돼야 하는것이다. 그까짓 내게 강치부란 무슨 존재이며 조봉암이란 무슨 상관이랴. 강치부를 내세워 조봉암을 꺼지게 해야 한다면 조인수는 그렇게 하는것이다.)

조인수는 가슴 한 귀퉁이로 삐죽이 내미는 죄의식과 그로부터 파생된 실오리같은 련민과 인간의 더운 피를 의식하자 인차 사냥개다운 영악스러운 이발로 사정없이 물어뜯고는 악마가 내미는 죄악의 손을 잡았다.

바로 이 순간 그의 귀전을 때리는것이 있었다.

《… 우리 조상들이 적아로 마주앉은 두사람을 구천에서 눈뜨고 굽어본다면 누구를 욕할것 같은가?》

이것은 이번 사건의 첫 심문장에서 조봉암이 꺼내놓은 말이였다.

《음-》

조인수는 버드의 손을 잡은채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한숨을 내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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