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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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재판에서는 첫 증인으로 서정후가 지명되였다.

서정후에게는 검사측 증인으로 자청했을 때처럼 걸상에 앉아서 증언할수 있다는 혜택이 차례졌다.

서정후는 이번에 또다시 법원의 호출을 받은 때부터 깊은 고민에 빠져 끙끙 앓아왔다. 그러지 않아도 일전에 검사측 증인으로 나선것을 놓고 주변인물들의 눈길이 곱지 않다는것을 알고있는 그였다.

친교가 깊은 진보당의 한 원로인물은 일부러 집으로 찾아와서 나무람하였다.

《해도 너무했어. 티각태각은 해도 어쨌든 우리는 죽산과는 동지가 아니였는가. 임자는 수렁창에 빠져든 사람에게 막대기를 내밀진 못할망정 꼭뒤 누르는짓을 했소. 그 사람은 우리 한까지 합쳐 리승만과 맞붙어오다가 저렇게 되였는데 리승만쪽에 붙어서 그 사람에게 욕된 일을 했으니 이보다 더한 망녕이 어데 있겠소. 그래 침뱉고 돌아선 그 두상한테 다시 갈텐가. 령감나세 어떻게 된다구 세상사람들앞에서 제 상판에 흠자리 내며 그런 일에 삐쳐들었나? 임자는 혼맹이가 빠져버렸어!》

련이어 날아오는 여러 사람의 지청구를 들으며 서정후는 조봉암과 사귀여온 나날들을 괴롭게 더듬어보았다.

어느날에는 서울대학교에 다니고있는 증손주가 더욱 충격적인 사실을 전하여주었다. 증조할아버지가 주도하였던 야권통합운동이 미군방첩대의 고안품이였다는것이였다. 증손주녀석이 자기 눈치를 살살 봐가며 이 사실을 그대로 실토하였을 때 서정후는 여러시간 온몸에 강직이 와서 한바탕 복닥소동을 일으켰다.

그후로 서정후는 서울을 떠나 고향집에 내려가 일체 바깥출입을 하지 않아왔다.

신창균이 언젠가 울분에 차서 내지른 소리처럼 골방에 틀고앉아 장죽을 물고 그가 평생토록 애독하여오는 로씨야의 문호 똘스또이의 소설들을 뒤적거리였다. 지금껏 복잡다단한 정치판에 부대껴오면서 그 어떤 힘이나 유혹에 굽힘없이 초지일관하게 자기를 지켜왔다는 자부심 하나만은 자랑스러웠는데 늙마에 와서 미국놈들의 간특한 장난에 속아넘어 개노릇을 한셈이 아닌가.

(심운 같은 여우한테 감쪽같이 업히워 미국것들의 장단에 승이 나서 돌아치다니… 로망도 이런 로망이 어데 있단 말인가. 이 서옹이 권력야심으로 눈에도 귀에도 곰팽이가 껴있었구나. 그런데 이번에는 조봉암이 증인으로 불러냈다니 이를 어쩐단 말이냐!)

우선 두려웠다. 그 사람이 이제 자기를 세워놓고 마구 휘둘러대겠으니 이번에는 상판이 흠자리정도가 아니라 아예 만신창이 될것만 같았다. 정계와 통치권에서 제노라 하던 여러 인물들이 줄레줄레 증언대에 올라 죽탕이 된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그의 불안은 더욱 짙어갔다.

어쩔수없이 서울로 다시 올라온 서정후는 밤샘까지 해가며 증언준비를 하였다. 측근인물들속에서 모사로 불리우는 사람들까지 여러명 불러다가 조봉암의 질문을 예상하여 답변서를 만들게 하였다. 그것이 완성되면 서너번씩 읽고 머리에 새겨넣느라고 고심하였다. 대체로 56년 선거와 진보당의 창립을 전후하여 생겨난 일들과 진보당의 강령에 대한 시비들이였다.

그는 특히 검사의 증인으로 나서가지고 한 발언들에 대하여 조봉암이 맹공격을 들이댈것으로 예상하고 이 부분에 대한 증언에 특별히 힘을 넣었다.

호명을 받은 서정후는 번쩍거리는 개화장의 끝으로 나무계단을 꾹꾹 찍으며 어정어정 증언대에 올랐다. 그는 조항별로 따로따로 묶어놓은 답변서를 쑤셔넣은 가방까지 무겁게 들고있었다.

서정후는 걸상에 앉아 가방에서 답변서를 꺼내 쉽게 가려낼수 있도록 연탁우에 조항별로 가지런히 펴놓았다. 그 다음에는 개화장의 손잡이에 턱을 걸어놓고 길게 드리운 채수염을 내리쓸며 눈길을 아래로 떨구고있었다.

조봉암은 두번째로 법정에 불리워나온 늙은이가 측은한듯 한동안 바라보다가 미안쩍은 말투로 부드럽게 인사말부터 꺼냈다.

《서옹과 말해본지가 이슥합니다. 건강은 어떠하신지요? … 년세 많으신분을 증언대에 모시여 미안합니다. 한가지만 묻겠습니다. 증인이 현재 전라도에 소유하고있는 땅이 얼마나 됩니까?》

예상밖의 왕청같은 물음에 서정후는 당황하여졌다.

(그 무슨 거창하고 예리한 론박으로 곤경에 빠뜨려놓고 탁준의처럼 얼혼을 쭉 뽑을것이라고 타산하고 신경을 곤두세우고있는데 이건 무슨 꿍꿍이수작일가? 건강이 어떻소, 미안하오… 이게 나보고 하는 인사가 옳으냐?)

탕개를 한껏 죄였던 속이 삽시에 헝클어지고말았다.

(저 사람이 갑자기 땅소리는 왜 꺼낼가?)

실없는 수작이 수상쩍었다. 그러나 조봉암의 진지한 눈빛은 실없는 수작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대답을 기다리고있다.

《한 오백정보 될가말가 하오.》

서정후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였다.

《농지개혁때 농민들에게 내놓고도 그렇게 된다는겁니까?》

《뭐, 그때 농사군들이 사가지기는 했는데 땅이 생긴다고 농사가 저절로 되나요? 역축이 있나, 비료가 있나, 물은 어데서 길어다 쓰겠소? … 땅 사느라 빚진 돈은 어떻게 물어주며… 도로 우리 집으로 돌아오는수밖에.》

《예, 리해되는 일입니다. 식솔은 몇입니까?》

《열두어명 됩네다.》

《정보당 소작료 세률은 어느 정도입니까?》

《우리는 소작료를 썩 감면하고있습지요.》

《예, 소작료세률이 낮다니 소작인들이 좋아하겠습니다.》

《그럼요. 여부가 있나요. 난 다른 지주들과는 판판 달라요. 아, 그러문요. 나야…》

서정후의 소작료세률이 다른 지주들보다 낮은것은 사실이다. 그건 민중세상을 제창하는 조봉암과 진보당에 들락날락하면서 받은 감화의 결과라고 할수 있었다. 농민세상 위한다는 진보당에 몸을 두고 소작료세률을 높이는건 아무래도 속에 켕기는 일이였던것이다. 그리고 민심을 얻자니깐 선심을 쓰는수밖에 없었다.

《정보당 소작료를 얼마나 받습니까?》

《평뜨기를 해서 받으니 벌마다 다른데 대체로 스무섬정도 될는지요.》

《그러니… 만섬가량이 되는 셈입니다. 열두식구에 만섬이라…》

《고아원과 양로원에 기부금도 내고 공회당도 짓고…》

《예, 알고있습니다. 자선과 인도주의란 아름다운것이지요. 서옹은 지난날 나의 가까운 동지였고 독립운동의 선배였습니다. 52년도 서옹이 리승만의 모해를 받고 암살미수범으로 몰렸다가 옥살이에서 풀려난 뒤에 나를 찾아왔던게 생각납니까? 여생을 독재를 반대하여 우리와 함께 가겠다고 했지요? 로병은 지팽이를 짚고 끝까지 따라가겠노라 맹약을 하던게 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때의 서옹의 모습은 참, 존경이 갔습니다. 감사합니다. 더이상 물어볼게 없습니다.》

조봉암이 이렇게 말하며 머리까지 깍듯이 숙여보이자 령감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땀을 뽑으며 한바탕 맹렬한 설전을 벌려놓을줄 알고 탁준의꼴이 되지 말자고 방금전 남몰래 심장진정제알약까지 얼른 삼켰는데 이게 고작이야?)

땀뽑을 일도 없었고 자기가 미처 열을 올릴 기회도, 시비거리도 없었다. 그는 여러 사람이 모여들어 밤을 패며 준비하여준 답변서를 주섬주섬 모아놓으며 허거픈 웃음을 지었다. 조봉암이 정을 담아 감회깊은 어조로 첫 인연이 맺어지던 때를 회고하는 바람에 장작개비처럼 말라빠진 가슴에도 더운것이 고즈넉이 차들었다.

(그래, 그때 난 저 사람의 지팽이가 돼주겠노라 했지. 저 사람과 함께 독재를 쳐없애고 사회평정을 해보겠노라 기세가 충천했었지. …)

서정후는 연탁우에 쌓인, 이제는 아무런 쓸모도 없게 된 문답서를 가방에 되는대로 쓸어넣었다. 이 자리에서까지 자기를 변명하자고 묘하게 꾸며댄 불륜, 패륜의 횡설수설이 빼곡이 들어찬 종이장들이였다. 그는 별안간 가슴팍을 호되게 후려치는 철퇴를 의식하였다. 온몸으로 짜릿한 전류가 지나가는것만 같았다. 코마루가 저려났고 눈부리가 따가와졌다.

(지팽이는 고사하고 심운의 풍에 놀아 저 사람을 물어메치자고 했지… 음… 그리고 지금은…)

《허, 이 종이장들은 괜한것이였군. 나하고 할 소리가 그게 다란 말이요?》

서정후는 이렇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듯 조봉암을 멀거니 내려다보며 물었다.

《서옹, 년세많은분을 더 괴롭히고싶지 않습니다. 원체는 서옹이 당을 떠난 후 한번 찾아뵙고 위문도 하려고 별러왔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렇게 법정에서야 문안을 드립니다.》

《당수!》

서정후는 별안간 이미전에 자기 입에서 사라졌던 호칭을 불렀다.

《내게 정말 더 할 말씀이 없으시오?》

서정후의 목소리가 가볍게 떨렸다.

《부디 건강에 류의하여 더 오래 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땅이 좋게 달라지는걸 꼭 보시기를 희망합니다.》

《허어- 사람두… 어휴, 욕이라두 한바탕 해줄거지. 그런걸 못난 이 늙은인 방금전까지만 하여도… 내가 참 권세놀음에 환장이 됐소. 송충이도 솔잎먹는 송충이가 따로 있고 가랑잎먹는 송충이가 따로 있다 했거늘 내가 일찍 제 금새 알고 덤벼야 하는건데… 이보우, 당수! 내 절을 받아주오.》

서정후가 꺼이꺼이 탄식을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조봉암을 향하여 허리를 깊이 숙였다.

순간 마치도 그 누가 구령이나 내린듯 요란한 박수소리가 장내를 진감하였다. 그것은 단두대가 기다리고있는 이 살벌한 법정에서 신의를 저버린 인간이라고 하여도 례의를 잃지 않고 도량을 베풀어 덞어지고 꺼져가는 심장도 움직이고야마는 참인간에게 보내는 인간세상의 꾸밈없는 례찬이였다. 그리고 인생의 락조마저 마지막빛을 거두고있는 시절에 와서야 비로소 참과 선을 찾아낸 로정객의 환생에 보내는 뭇인간들의 인사였다.

다만 서정후만이 자기 말끝에 불쑥 터져오른 그 박수소리의 의미를 채 가려내지 못한채 지절지절한 눈굽을 비비며 청중을 둘러보고있었다. 그러나 오래오래 살라는 조봉암의 덕담만은 무등 고마워 채수염을 휘휘 내저었다. 그는 개화장을 뚜벅뚜벅 짚으며 계단을 내리면서도 조봉암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이때로부터 두달후에 있은 일이다.

평생토록 무익한 권력야심과 끝없는 정쟁에 진이 다 뽑힌 로정객 서정후는 조봉암보다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갔다.

그는 눈을 감기전에 량심의 가책에 시달리다가 자기의 마지막시간을 지키고있는 자식들에게 물었다.

《죽산이 어찌됐느냐?》

《아직 감방에 있습니다.》

《그 사람을 풀어놔라. 그 사람 목치면 천벌받는다. 리승만에게 옛 글방친구 서정후부탁으로 전해라.》

이것이 젊은 시절에 우국지심과 정의에 떠밀려 만석군의 울타리를 뛰여넘어 곡절많은 정사에 나섰던 로정객이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긴 말이였다. 인간의 운명이란 참으로 천태만상이다. …

홍병삼도 이번에는 조봉암에게 열렬한 애정을 보내주고있는 청중의 흥분된 모습을 감동깊이 지켜볼뿐 제지시키지 않았다.

조인수는 개화장에 몸을 싣고 오를 때보다는 한결 거뿐해진 걸음으로 계단을 내리는 서정후를 멍청해진 눈으로 바라보면서 완전히 기가 눌려있었다. 그는 그 무슨 불가항력적인 힘에 떠밀려 제가 파놓은 함정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고있음을 실감하고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과 초조감이 덧쌓여지면서 시들해졌다. 재판의 끈을 잡고있는것은 틀림없이 자기도 재판장도 그리고 막뒤에 숨어있는 정제관이나 리승만이 아니다.

이 법정의 주인은 조봉암이다. 자기나 재판장은 조봉암이 든든히 잡고있는 끈에 매여 그가 원하는대로, 그가 손가락을 튀기는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조봉암이 자진출두하여 수갑을 받았다고 하였는데 바로 이것을 노리여 싸움의 무대를 이곳에 옮겨놓은것이 분명하다. 리승만이 제가 쳐놓은 덫에 제가 걸려들고말았다.

정계와 여론의 예리한 불꽃이 튀고있는 이 법정에서 진보당의 새로운 정치전이 조봉암의 계략에 따라 그의 일방적인 승리를 거듭하며 벌어지고있는것이다.

이제 돌아서자니 이미 사방은 굳게 닫겨져있고 그 깊이가 헤아릴수 없는 심연으로 그냥 빠져드는수밖에 없게 되였다. 용을 쓸수록 감겨든 포승줄은 더 팽팽히 죄여들뿐이다.

재판장의 호명에 따라 또 한명의 증인이 증언대에 오른다.

조인수는 완전히 이제는 겁에 질려 증언대를 바라보았다. 이거야말로 자승자박이다.

얼굴이 새까맣게 타고 백발을 떠인 강화도의 농사군이 그 누구의 옷을 빌려입은듯 후렁후렁한 양복을 걸치고 증언대에 올랐다.

간밤에 늦게야 강화도경찰서가 특별히 주선해준 경비정을 타고 바다를 건너온 바위쇠는 조봉암의 집에서 잠을 자면서 자매로부터 재판소식을 들었다. 아침을 일찌기 치른 바위쇠는 그들자매와 함께 법원에 왔던것이다.

평생에 처음으로 이렇듯 어마어마한 법정의 증언대에 올라 수백쌍의 호기심짙은 눈초리를 받아보는 바위쇠는 눈앞이 어찔해왔다.

속에서는 방망이가 후둑후둑 뛰놀고 저도 어쩔새없이 발밑으로 온몸의 기력이 다 새여나가듯 오금이 소르르 물러앉는것만 같았다. 목구멍이 꺽 막히고 혀가 꿋꿋해져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래서는 안된다고 온몸을 한번 기운을 주어 부르르 떨었다. 애써 눈을 크게 떴다. 마치도 의지할만 한 후견인이라도 찾듯 어리어리한 눈길로 허둥거리며 방청석과 재판정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누구라 없이 근엄한게 자기를 탐탁치 않아하는듯싶어 바위쇠는 은근히 심사가 비틀어졌다.

(가만있자. 내가 왜 이래… 강화도민대표로 뽑혔던 내가 왜 이꼴이야? 배라먹을! 저 사람들보다 이 바위쇠가 귀 한쪽이 없길 하나, 입이 삐뚤어졌나? 말도 하기 전에 얼쳐버리다니… 정신차려라! 이 바위쇠는 적어도 강화민중대표다! … 젠장, 죽산은 어데 있나?)

바위쇠는 이렇게 두덜거리며 속을 강하게 도슬러먹었다.

조봉암이 친구의 까마스름한 얼굴을 반갑게 바라보다가 정을 담아 불렀다.

《바위쇠, 증언대에 세워서 미안하오.》

바위쇠는 조봉암의 말소리를 찾아 소시적 동갑친구를 찾아보고는 마음이 급해 두손부터 앞으로 쭉 내밀었다. 그제야 입술이 뻥끗 열리고 혀가 제대로 돌아갔다.

《죽산! 어찌된 일이시오? 강화사람들이 소식듣고 원통해서 통곡하오!》

바위쇠가 주름살이 가닥가닥 잡힌 얼굴을 흔들며 눈물에 젖어 인사를 하였다.

조봉암은 옛친구의 입에서 금시라도 통곡이 터져나올듯싶어 이내 화제를 바꾸었다.

《두어가지 물어보겠습니다. 집에 식솔은 몇분인가요?》

《일곱이외다.》

《무슨 일로 생계를 이어갑니까?》

《감밭 500평에다가 농한기에는 고기도 잡습지요.》

《감밭은 댁의겁니까?》

《웬걸요. 강화섬의 감밭이야 예로부터 모두 윤강달네거지요. 죽산도 아시지 않소. 윤씨집안이 왜정때도 강화감을 다 끌어안고 떵떵거렸지요.》

《고기배는 댁의겁니까?》

《웬걸요. 두 자식이 농한기면 매생이를 세내가지고 섬근처에서 전복을 따고 미역도 걷고 밀려드는 고기도 낚으며 근근히 살아갑지요.》

《감밭에서 한해에 낟알로 환산하면 얼마나 보상을 받습니까?》

《열섬이 될가말가 합니다.》

《고기잡아 얻는 수입은 얼마나 됩니까?》

《쌀섬으로 하면 두어섬이 되나마나 해요.》

《그러니 쌀 열두섬이라… 일곱식솔에 일년 농량으로 될수 있습니까?》

《원, 어림두 없지요. 예나제나 농사군은 뼈빠지게 일해도 입에 풀칠조차 힘들지요. 더구나 근래에 와서는 하루하루 살아가는게 전쟁 한가지라오.》

《예, 다른 문제… 증인도 56년 선거에 참가했습니까?》

《그럼요.》

《누구를 지지하여 표를 바쳤습니까?》

《에, 그건 뻔한 일입지요. 사실말이지 농사군들의 하정을 알아주고 농사군세상을 만들겠다고 하는게 과연 누구들이요? 진보당말고 어데 있쉐까? 우리 농사군들이 자고로 눈이 곯고 귀가 먹고 입다물고 살아오지만 뉘가 제 사람인가는 가려볼줄 안다우. 뉘가 농사군들을 사람값으로 쳐주고 뉘가 자기를 위해주는지를 안단 말이우다. 젖먹이애들이 제 어미 가려보는것과 같습지요.》

《이제 두해가 지나면 또 선거가 있습니다. 그때는 어느쪽에 표를 던져주겠습니까?》

《물어보나마지요. 진보당이지요. 죽산어른이올시다.》

바위쇠가 거침없이 대답하였다.

그리고는 속이 타서 웨치듯 말을 이었다.

《죽산! 죽어서는 안되우. 어떤 쓸개빠진 놈들이 진보당도 깨고 죽산도 그냥 물어먹을라구 한다는데 원, 세상두… 죽산이 죽으면 우리 농군들은 어찌하오? 불쌍한 고향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죽지 마오. 살아서 농군세상 기어이 만들어주오! 여러분네들, 우리 농사군들 사정을 알아주시우! 저분을 좀 지켜주오!》

바위쇠는 동가슴을 텅텅 두드리며 너무 절통해서 비오듯 쏟아져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벅벅 닦았다.

조인수가 야단스럽게 걸상을 삐거덕소리가 나게 뒤로 차던지며 일어났다.

《발언중지를 요청합니다. 이건 정치선동입니다.》

《기각합니다.》

《재판장! 이건…》

검사가 다시 고아대려고 하는데 그들을 번갈아 보던 바위쇠가 벽력같이 고함을 쳤다.

《이놈아!》

자기 입에 덮어놓고 걸쇠를 채우려고 덤벼드는 검사의 훼방질에 화증머리가 불끈해졌던것이다. 분명 저 이마빼기가 반질반질하고 눈꼬리가 불량스러운 놈이 이 재판정에서 자기 친구 죽산을 물어메치려고 제일 그악을 떨고있다는 판단이 가자 조인수를 향하여 도리깨를 휘둘러대듯 줄욕을 퍼부었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관청에 들어선 수닭처럼 어리어리해있던 바위쇠가 아니였다.

《이놈아! … 네놈은 어떤 놈이기에 요행 농사군이 한마디 해보는걸 가지고 트집질이냐?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구 농사군들이 그냥 밟혀죽기만 할줄 알았더냐? 내 평생에 하고픈 소리 많아도 속에 재만 가득차서 입다물고 살아온다. 언제인가 한번은 제 소리 한번 뻥끗 내고싶었는데 마침이다. 이놈아! 백성을 이렇게 숫보구 정사라는게 웬말이냐?》

바위쇠는 이렇게 기운을 다 짜내여 소리지르고는 움푹하게 우그러든 가슴을 쩍 내밀고 재차 또 한마디 들이댔다.

《검사! 너 배꼽 한번 보자!》

《배꼽? … 무슨 배꼽말이요?》

《무슨 배꼽이라니… 배꼽이라는데!》

《그거는 왜?》

《글쎄 좀 보자.》

《도대체 무슨 말을 하자는거요?》

바위쇠가 꼬리, 대가리없이 던진 배꼽소리에 얼떠름해졌던 조인수는 얼결에 손을 배아래로 가져가며 화를 냈다.

《나 검사 배꼽 보고나서 한마디 더 할테다!》

어쩌면 두사람이 실없는 재담을 하는것 같은데 표정을 보면 량쪽의 서슬이 너무도 딩딩하다.

바위쇠가 검사의 배꼽을 봐야 되겠다고 그냥 우겨대자 조인수는 재판정에서 무슨 실성한 잠꼬대냐는듯 눈을 부라리지만 아직도 한손은 배꼽우에 가있다.

두사람이 쏘아보며 을씨년스러운 법정에서 배꼽소리를 입에 담고 그냥 줄당기기를 하자 청중속에서 폭소가 터져나왔다.

아마도 법정이 이토록 웃음바다가 된것도 서울지방법원이 생겨나 처음 보는 일일것이다.

홍병삼도 난데없이 떠오른 배꼽소리에 씨물씨물 웃다가 장내를 정돈해야 한다는 책임을 느끼고 서둘러 재판봉을 쥐는데 바위쇠가 강기있게 말을 계속하였다.

《네놈은 배꼽을 보여주지 못할테지? 배꼽이 쑥 기여들어갔을테니깐. 늬 족속들은 배꼽살에 빌기가 섰을테니 배꼽이 보일탁이 있나? 내 배꼽을 한번 봐라. 참외배꼽같은 내 배꼽을… 이게 농사군의 배꼽이야!》

이렇게 소리치더니 제 몸 같은것은 둘이라도 들어갈것 같은 저고리를 훌떡 걷어올리였다. 그러자 등에 가붙은 엷은 배가죽에 달랑 붙어있는 참외배꼽같은것이 드러났다.

또다시 장내에 웃음이 한돌기 휙 돌아갔다. 그러나 이번의 웃음은 순간이였다.

청중은 당파나 주의주장에 관계없이 막바지인생의 푹 꺼져든 배가죽에 붙어있는 누런 배꼽을 보자 그 어떤 류다른 아픔과 수치를 느꼈던것이다. 무산자의 송곳같은 눈총에까지 접하자 누구라 없이 이름할수 없는 비애와 죄의식 그리고 련민과 분노에 입을 다물고 고개를 떨구었다.

《검사! 촌사람 로망한다 눈총 쏘지 말고 어디 한번 대답해봐! 백성의 배꼽살 이렇게 해놓구 무슨 나라일 타령인가.

내 옛책을 보니 백성이 여위면 나라도 여윈다고 했더라. 백성의 배꼽살이 두터워야 농사도 잘되고 부역도 잘되고 나라도 든든해진다고 했더라.

백성의 배꼽 누가 이렇게 참외배꼽처럼 되게 하였나? 이제 누가 백성의 배꼽 제대로 되게 해주겠나? 우리 농사군들은 다 회계가 돼있다구. 그런 귀인은 죽산이야, 저 죽산어른이야!》

바위쇠는 이렇게 마디마디에 강약을 찍어가며 소리쳤다. 이것은 그가 난생처음으로 관권을 향하여 공개적으로 던진 저주와 분노의 도전장이였다.

청중은 불현듯 닥쳐든 광풍을 맞은듯 흠칫거리다가 조롱박같이 졸아든 까무잡잡한 얼굴에 몽당수염이 우습강스럽게 다보록한 섬사람을 신비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후렁후렁한 옷우에 앙상한 목이 위태롭게 솟아있다. 바짝 마른나무가지처럼 여윈 몸의 어느 구석에 그렇게도 담대하고 드센 기상과 담력이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백성의 배꼽살이 두터워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는 참으로 가난한 농사군들만이 내놓을수 있는 세상의 심오한 철리가 깃들어 청중의 심금을 쩌릿이 울려놓았다.

사람들은 줄줄이 끌려올라갔다가 어깨가 축 처져내려오는 체통 큰 인물들의 꼬락서니에 신물이 나있었다. 그들은 다 서울정계와 권력층의 핵심부를 상징하여온 요로명사들이라 자처하여온자들이였다. 정의와 진실앞에서 체면과 존엄따위는 일조에 꺼져버린 패자의 몰골들이 용렬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제 하고픈 소리를 제 배짱대로 쏟아놓으며 검사를 답새기는 바위쇠를 보자 속들이 후련해지고 그의 뒤말이 기다려졌다.

바위쇠의 말이 이어졌다.

《이제 죽산이 죽는 날이면 강화사람들이 들고일어나는 날이다. 갈아보자는 소리가 너무 신통해서 숱한 매를 맞으면서도 그 뜻을 따랐는데 갈아보기는 고사하고 우리 농군들이 표를 드린 저 죽산마저 죽이겠다고 설쳐대니 될말이냐. 빌어도 안되고 소리쳐봐도 안되니 그 다음에는 우리 농군들도 막수가 있다. 호미, 낫을 벼려들고 나쁜 놈들 찍어넘기는 막수가 있다! 우리 강화사람들은 예로부터 쟁기쓰는 법을 잘 안다. 이걸 명심해라! 네놈이 분명 죽산을 죽이자는 놈 같은데 똑똑히 명심해둬라! 이게 내 하고픈 소리다!》

조봉암은 자기 가슴을 후려때리는 충격을 뿌듯이 느끼였다.

(누가 저 바위쇠처럼 자기의 맺힌 한을 명백하게, 두렴없이 토해놓은적이 있었던가. 지금까지 서울정치권의 어느 인물이 저렇게 사회의 모순을 적라라하게 발가놓고 그 해결책을 명쾌하게 내놓은적이 있었던가. 그 누가 이 땅의 주인으로서의 사명감을 저보다 더 절절하고 진실하게 토로할수 있다더냐. 참으로 훌륭하고 의미심장한 철학이다. 바위쇠는 농사군들은 막수가 있다고 당당하게 주장하고있다. 제발 죽지 말라고, 그 뜻을 버리지 말라고 피어린 훈계로 나를 엄하게 채찍질하고있는것이다.)

고향친구의 부르짖음에 조봉암은 크게 격동되였다.

조봉암이 가슴속에 차드는 감동을 터치고싶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조인수가 앞질러 일어나더니 큰소리로 떠들었다.

《재판장! 다시한번 요구합니다. 발언을 중지시켜야 합니다. 저건 란동입니다.》

《기각합니다. 증언자는 자기나름으로 진실을 밝히고있을따름입니다. 증인의뢰인은 자기의 무죄를 립증할수 있는 증언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기소측도 자기 기소장의 객관성, 진실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증언을 요구하였고 이미 일정을 마친것이 아닙니까?》

홍병삼은 앞으로 있을수 있는 반대세력들의 압력을 타산하여 미리 쐐기를 단단히 쳐박았다.

그는 지금 재판의 결과를 확고히 내다보고있었다.

지금까지 재판을 받고있는것은 사실상 검사이며 리승만세력이다. 조봉암에게 사형은 고사하고 무혐의석방이 가능할뿐아니라 기소측은 피고인들에게 명예회복과 함께 상당한 정도의 물질적, 도덕적배상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기소측이 제기한 범행은 어느 한 조항도 범죄로 성립될수 없다는것이 명백하여졌다.

그는 지금 재판정에서 초조와 불안에 휩싸여 엉치가볍게 일어서군 하는 조인수가 가련하게만 보였다. 괜히 정치권에 추파를 던져 벼락승진이라도 하고픈 허욕에 사건을 맡아 우쭐거리다가 피고들이 마음대로 주물러놓은 메주덩이가 되여 세인의 조소와 멸시를 소낙비처럼 받고있는것이다.

조봉암은 완전히 이 재판정을 자기의 정치활동의 현장으로 만들어놓고 사자처럼 용맹하게, 지혜롭게 승리만 거듭하고있다. 그에게서는 피고라는, 중죄인이라는 죄의식이나 굴욕감은 티끌만치도 보이지 않는다.

조봉암은 마치도 무변광대한 누리를 휩쓰는 가을바람처럼 거침없이 자유분방한 론리와 자기 위업의 정당성을 펼치고있다. 적수들을 불안과 패배에로 몰아넣고 벗들에게는 더욱 커다란 사랑과 믿음과 기대를 듬뿍 안겨주고있다.

조인수가 여러달에 걸쳐 하얀 명주같은 인간에게 함부로 찍어놓은 온갖 더럽고 무섭고 기괴한 락인으로 해서 을씨년스럽기만 하던 법정이 공기조차 맑게 정화되고 피고석으로 날아가던 일부 적의와 질시의 눈초리들도 따스해지고있다.

홍병삼은 적지 않은 재판을 주관하여왔지만 지금처럼 자신조차 피고의 주장에 선생의 수업을 받는 어린 학생처럼 심취되고 그 무한의 열정과 인격에 사랑에 빠진 련인들마냥 매혹되여버린적이 없었다.

그의 변호와 증인심문에는 감히 도전할수 없는 진리와 힘과 기백이 넘치고있었다. 몸과 마음에 살풋이 감겨드는 5월의 훈향과 같은 부드럽고 아련하고 섬세한 애교까지 느껴진다.

그에게 피고라고 부르는것조차 신성하고 사랑스럽고 거룩한 그 무엇을 모독하는것처럼 생각되여 그렇게 부를 때마다 송구스럽기 그지없고 서슴어진다.

그럴수록 홍병삼은 재판장으로서의 본도를 지키느라고 애썼다. 재판을 지켜보고있는 기소측이나 피고측에 언질을 잡힐수 있는 일체의 언행을 철저히 경계하고있었다.

재판이 지금의 추이로 끝나는 경우 리승만일파의 도발이 자기에게 직접적으로 가해지리라는것은 이미 각오하고있는바이지만 퇴임을 앞둔 때라 념려되는바도 컸다.

며칠전에 사위와 아들을 불러놓고 퇴직할 의향을 밝히니 다들 무거운 표정들이였다. 그들의 심정이 리해된다. 국민소득이 세계에서 제일 꽁무니에 있는 서울에서 말단공무원의 보잘것없는 급료라도 일단 잃고나면 동냥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다.

마누라더러 두칸중에 한칸은 세방으로 내주어보라고 말은 해두었지만 시변두리에 있는 집이고보니 그게 큰 도움으로 될것 같지 않다.

요즈음에는 저도 어쩔새없이 법원에서 퇴근할 때는 구두방이나 자전거수리방에 들려 그 자리에 들어앉아있는 자신을 그려보며 쓸쓸히 웃어보기도 한다.

그러루한 고민도 있기에 홍병삼은 기소측이 다시 추설수 없게 차분하고도 근기있게 답새기고있는 조봉암의 담력과 기지가 고맙기 그지없었다. 피고들이 떨떨하고 겁에 질려있으면 도와줄래야 도와줄수 없는것이 법관들의 고충이기도 하다.

조봉암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증언자에게 훌륭한 배꼽철학을 내놓은데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조봉암은 증언대에서 가슴에 꿍져있던 소리를 다 토해놓고 속이 후련해서 장내를 굽어보는 소꿉친구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보내였다. 그는 정중한 어조로 증인심문을 결속하였다.

《증언자의 주장은 철학입니다. 그렇습니다. 철학입니다! 통치자와 백성의 사명감과 륜리를 절절하게 일깨워준 우리 사회, 우리 시대의 훌륭한 정치철학입니다. 내 잊지 않고 증언자의 가르침을 페부에 새기렵니다. 이상입니다.》

조봉암이 증인심문을 끝내자 장내에 우렁찬 박수소리가 이어졌다.

바위쇠는 그 열광적인 박수에 게면쩍은 생각이 든듯 방청석을 내려다보며 얼굴을 붉혔다. 그는 자기에게 박수를 보내는 청중을 향하여 두세번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는 증언대를 내렸다.

조봉암은 련이어 사흘에 걸쳐 증인심문을 이어갔다.

내무부는 법원의 강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국제공산당의 파견원으로 조봉암과 련결시킨 강무호와 정명갑이라는 미지의 인물은 끝내 내놓지 않았다. 간첩들이므로 아직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함부로 증언자로 내세울수 없다는 얼토당토않은 구실만 내들었다.

조봉암은 구태여 그들까지 불러내지 않아도 자신과 진보당의 무죄를 증명해냈고 리승만집권세력의 전횡과 압제와 모략적흉모를 법정을 통해 폭로규탄하려던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였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일단 시작한 포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뜻밖의 일이 생겨나 주춤거렸다.

증언청취를 끝낸다고 조봉암이 재판장에게 선언한 그 순간이였다.

돌연 방청객의 맨뒤쪽에서 그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산!》

조봉암이 고개를 돌려보니 흰 두루마기를 걸친 로성팔이 자리에서 일어나고있었다.

모두의 눈길이 로성팔에게 쏠리였다.

《죽산! 나 로성팔이요. 증인이름에 내 이름 하나 더 불러주소!》

로성팔은 장대처럼 가늘고 긴 허리를 꼿꼿이 펴고 한팔을 조봉암에게 뻗치며 승기가 나서 간곡하게 부탁하였다.

장내가 또다시 술렁거리기 시작하였다. 한번 내세워보자고 소리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조봉암은 로성팔의 말에 인차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 벙그레 웃기만 하였다.

로성팔이 또다시 장내를 찌렁찌렁 울리는 목청으로 부르짖었다.

《죽산! 왜 웃기만 하는거요? 나도 좀 하고픈 소리가 있단 말이요. 내 이름 석자 어서 불러주오.

재판장! 내 청원 받아주소. 난 원체 이 재판자체를 인정할수 없소. 그건 이 재판이 죽산 한사람만이 아니라 우리모두를 피고로 세워놓았기때문이요. 당신네는 과연 죽산이 만사람의 사랑을 받고있고 민심을 대표하고있다는것을 모른단 말이요? 이 서울땅에 명사라 하는 정치가들이 많았지만 저 죽산처럼 백성의 사랑을 두터이 모은 사람이 누구였소? 그러니 그를 재판하는게 뭘 의미하는거요?》

조봉암은 로성팔의 흥분이 리해되고 그의 두터운 정에 가슴이 뭉클해왔다. 로성팔이 이제 증언대에 나서면 어떤 말을 하겠는가 짐작이 된다.

(정치가로서 황혼이 짙어서야 비로소 제 한생의 오욕에 침을 뱉고 나선 인간, 강점자의 앞잡이, 독재의 하수인이라는 치욕을 씻을 길 없어 은둔이라는 대문에 빗장을 지르고 돌아앉아버린 인간, 하지만 가슴속에 꿍져둔 독재자에 대한 증오와 울분을 터뜨릴수 없어 심장을 끓이고있는 인간이다. 저 인간이 증언대에 오르면 리승만의 목을 치라고 피타게 절규할것이다. 미국놈들을 몰아내라고 주먹을 흔들것이다. 로성팔은 십분 그렇게 할수 있는 강직한 기질과 굵은 심대를 가진 사나이다.)

조봉암은 아직은 그자신과 재판을 위하여서도 그가 자제하게 하는것이 리로울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재판장을 난처하게 만들수 있고 잘돼가는 재판을 중도에서 중단시킬수도 있다. 그래 그에게 다시한번 미소를 지어보이며 정을 담아 인사말을 보냈다.

《청파! 그 말 한마디면 수천마디의 증언을 대신할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때 홍병삼까지 끼여들어 로성팔의 제기를 일축하였다.

《기각합니다. 당신의 제기는 재판절차와 진행에 위반됩니다.》

《제길할! 례외라는것도 있지 않는가!》

로성팔이 큰소리로 두덜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조봉암의 증언청취가 끝나자 변호인단이 장문의 변론으로써 조봉암을 제외한 열명의 피고들의 무죄를 증명하였다.

변호인단은 기소장에 있는 모든 사건들과 조항들은 물론 어설프거나 사리에 맞지 않는 론조와 문장과 단어에 이르기까지 법조항을 가지고 걸고들며 그 부당성을 끈질기게 파헤쳐놓았다. 그들의 변론은 무려 열흘동안이나 이어졌다.

이어 피고들의 법정발언이 또 장내를 들었다놓았다. 우달수나 윤기중을 비롯한 10명의 피고들은 원래 모두가 그 어떤 론적과도 맞설수 있는 당의 리론가들이고 선전자들이였으며 배짱이 있고 혈기왕성한 열혈의 인간들이였다. 특히 윤기중과 우달수는 이미 왜정때부터 법조계에 몸을 담아왔고 해방후에도 재판관으로, 변호사로 항간에서 이름이 뜨르르한 법전문가요, 웅변가들이다.

게다가 벌려온 투쟁이 하나같이 정의롭고 도덕적인것으로 하여 막힘이 없었고 꾸밈도 없었다. 그들은 진실그대로, 거기서 우러나오는 정의와 진리로 리승만일파들을 단죄하였다.

조봉암의 주장이 시내물처럼 차분하고도 정감이 가게 흘렀다면 그들의 법정발언은 입을 열기 바쁘게 노호하는 격랑을 일으켜 청중의 가슴을 왈랑거리게 하였다. 그들은 한사람같이 리승만일파에 대한 강도높은 공세로 법정을 들썩하게 했고 법정의 곳곳에 옹크리고있는 조인수와 리승만졸개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법정은 그대로 리승만의 독재와 사회적부패를 발가놓고 타매하는 열의인들의 성토장으로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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