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회)

제 4 장

3

 

다음날 오후 2시 30분무렵에 호출당한 증인들이 줄레줄레 들어섰다.

법원서기가 그들이 도착하는 차제로 등록을 하고 자기 방에서 개별적으로 서약을 시켰다. 증인들은 3시가 되자 증인석으로 안내되여 명함표를 내놓은 걸상에 가서 앉았다.

증인들의 표정은 각양각색이였다.

탁준의는 도착한 순간부터 이를 사려물고 기회를 노리고있었다. 이제 증언대에 올라 등뼈가 휘여지게 때려줄 심산이다.

서정후는 화가 나서 못 견디겠다는듯 연방 캥캥거렸다. 그러다가는 채수염을 비비꼬며 검사증언때와는 달리 기가 눌려 어제날의 자기의 동료들인 피고들을 흘겨본다.

증인석에 출두한 공보실장은 매우 착잡하고 불안한 속을 가리우고 방청들앞에서 태연한 자세를 보여주느라고 한장의 신문을 펴들고 거기에 눈길을 묻고있었다. 신문글자는 하나도 보지 않은채 조봉암이 어떤 질문을 할것인가 하는 문제에만 골몰하고있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진보당을 불법으로 해산시킨 리승만의 하수인이다. 그에 대하여 따지고들면 해볼 소리가 없다. 떠나오기전에 수하측근들을 불러놓고 지혜를 합쳐보았으나 어느 놈 하나 자기 상전을 구원해줄 신통한 말거리를 꺼내놓지 못하였다.

공보실장은 두번째로 증언대에 오르게 되여있었다.

(에, 하여간 부딪쳐보자! 죽을 수가 나면 살 수도 생기겠지.)

공보실장은 이렇게 입속으로 중얼거리고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3시가 가까워온다.

이 시각 홍병삼도 자기 방에서 초조한 심정으로 시계를 들여다보고있었다. 아직까지 정제관과 그의 마누라가 나타나지 않은것이다.

(이 자식, 그냥 버티고있나? 시끄러워지겠군.)

정제관이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면 할수없이 재판을 중지하고 그놈을 끌어내는 한차례의 지겨운 놀음을 벌려야 한다.

일단 결정된 문제이니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그러자면 법원을 움직이고 법무부를 움직여야 하며 《국회》도 움직여야 한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숱한 힘과 노력을 바쳐야 한다.

재판을 파기하고 임기만료전 퇴직을 선언할 준비까지 되여있지만 그렇게 되지 말았으면 하는것이 그의 심정이였다. 재판도 자기 손에서 깨끗이 결속하고 임기후 퇴직도 무난하게 관례대로 하는게 소원이다.

그런데 5분전 3시에 바깥에서 김을 뽑는 자동차소리가 났다. 려현주가 접수실에서 정제관내외를 맞아가지고 들어왔다. 법원장이 뒤에서 따라왔다.

홍병삼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맞이하였다.

《자네 나에게 기어이 망신살이 뻗치게 하겠다면서?》

정제관이 홍병삼에게 만나자바람으로 증난 어조로 빈정거렸다.

《증인신청은 내가 하는게 아닐세. 다 알면서 뭘 대낮에 건주정을 하는가?》

홍병삼이 뚝뚝하게 퉁을 놓았다. 그는 정제관의 등뒤에서 가늘게 다듬은 눈섭을 올리고 자기를 쏘아보는 녀인에게 깍듯이 인사말을 하였다. 그들은 구면이였다.

《아주머니, 오래간만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만나게 되여 미안합니다. 법관의 고충을 리해하여주기 바랍니다.》

《괜찮아요.》

녀인은 내쏘듯 한마디로 응수하고는 걸치고 온 수박색 덧옷을 벗어들었다.

《저 사람을 따라가서 증인서약부터 해야겠소. 시간이 없소.》

홍병삼이 이렇게 말하자 정제관이 불쾌한 어조로 받았다.

《나도 꼭 증인서약을 해야겠소?》

정제관은 자기뒤에 엉거주춤 서있는 법원장을 돌아보았다.

백발의 머리를 떠인 법원장이 대답하기 난감한듯 홍병삼에게로 눈길을 주었다.

《례외가 없소.》

홍병삼은 정제관이 시비조로 걸고드는 말을 가볍게 일축하고는 서기에게 지시하였다.

《이분들을 증인서약을 시킨 뒤 자기 자리에 모셔가오.》

개정시간이 되자 법원장은 떠나가고 홍병삼은 시커먼 법의를 두르고 재판정으로 나갔다.

《전체 기립!》

법원서기의 구령에 따라 법정에 모여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일어나 재판장을 맞이하였다.

홍병삼은 잠시 자기 자리에 서서 법정을 한바퀴 빙 둘러보았다.

그는 증인석에 서있는 사람들을 특별히 한사람한사람 깐깐히 훑어보고야 자리에 앉았다.

《착석!》

모든 사람들이 걸상들을 삐걱거리며 자리에 앉는 소리가 소란스럽게 났다.

정제관은 처음에는 증인석에 비좁게 마누라와 나란히 앉게 된것이 멋적어졌으나 생각을 고쳐가진듯 거만한 눈길로 피고석을 굽어보았다.

그의 옆에 옹송그리고 앉은 그의 마누라는 도살장에 끌려나온 소상인데 방청석과 가슴에 번호판을 붙인 피고들을 바라보다가 기겁한듯 눈을 감고 남편의 팔을 꽉 잡고있었다.

《이제부터 피고의 자체변론에 대한 증언청취가 있겠습니다. 조봉암피고, 시작하시오.》

조봉암이 정제관과 그의 처를 첫번째 증인으로 호출하자 정제관내외가 증언대에 올라갔다.

마주치는 눈길들이 고울리가 없었다. 적의가 서린 눈길들이 무수한 방전의 불꽃을 튕기며 오고갔다.

한쪽은 리승만과 버드의 사냥개가 되여 날뛰는 흉악한 강도무리의 괴수요, 한쪽은 리승만과 그의 충견들을 통치권에서 들어내려고 하는 애국집단의 기수이다.

조봉암이 그 서슬찬 눈길과는 달리 례절있게 인사말을 하였다.

《나는 먼저 현직 내무부 장관으로서 재판정의 출두요구에 응해준 정제관씨와 부인에게 사의를 표합니다. 특히 부인께서 심장탈로 고생한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법정의 요구를 모처럼 받아주신데 대하여 고맙게 생각합니다. 참, 부인! 요새는 심장병이 어떠한지요?》

조봉암이 인사말을 부드럽게 꺼내놓다가 병문안부터 하자 녀인은 대답을 해야 할지 망설이였다. 그는 남편에게서 허락을 받고싶은듯 정제관의 얼굴을 말끄러미 쳐다보았다.

정제관도 제 녀편네가 대답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쉬이 가늠이 되지 않아 《흠-》 하고 크게 코소리만 냈다.

청중도 야릇한 긴장을 느끼는데 홍병삼이 한마디 하였다.

《부인, 대답하시오. 그것은 증인에 대한 첫 질문입니다.》

그 소리에 녀인은 고개를 까딱거려보이고는 조봉암을 향하여 시답지 않게 대답하였다.

《뭐, 그저 그러루하지요. 그건 왜 물으세요?》

녀인은 자기의 심장병에 대해 숱한 사람들앞에서 캐묻는것도 어처구니없었지만 그것이 증언이라는 어마어마한 법정개념에 속한다는것도 괴이하여 되물어보았다.

숱한 아첨쟁이들과 간신들의 거짓요사와 아양에 안하무인이 되여있는 자기를 애당초 죄인다루듯 하는 법정자체가 아니꼽기 그지없었다. 우선 부르는 호칭부터 《사모님》이라든지 《부인님께서》라고 되여야겠는데 증인이라고 아무렇게나 불리우는게 기분을 잡치게 하였다. 남편의 후광을 입어 존대와 호령에 습관된 녀인이라 그가 알고있는 정치란 의미는 아부와 지배라는 단순한 세계였던것이다.

도대체 조봉암이 누구며 그들이 왜 재판을 받고있는가를 심오하게 리해할수도 없었고 또 리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떠나오기 전에 남편으로부터 이제 재판정에 가면 진보당의 당수인 조봉암이라는 죄수의 두목이 뭐라고 물어볼수 있는데 대답할만한 질문이면 대답해주고 그렇지 않으면 입을 다물고 도리질을 하면 된다는 말을 듣고 왔다.

녀인의 오만이나 변덕은 제 집안에서나 남편이 틀고앉은 내무부에서나 통하지 여기서는 절대로 용인되지 않는다는것을 아직은 인식하지 못하고있었다.

《부인, 증인에게는 질문할 권리가 없습니다. 당신에게는 질문에 대답해야 할 의무만이 있습니다.》

홍병삼이 엄격한 어조로 재판정의 질서를 무시하는듯싶은 오만무례한 녀인에게 따끔하게 경고하였다.

《증인의 질문은 기각합니다. 증인에 대한 질의를 계속하시오.》

《심장병은 어떻게 되여 생긴거지요? 선천적인것입니까?》

《선천적인것이라는 말을 다시한번 풀어주세요.》

《예, 이를테면 타고난 병인가 하는겁니다.》

《뭐라구요?! 그러니 난 타고난 병신이라는것인가요?》

녀인이 발끈해졌으나 홍병삼의 눈길이 또다시 엄해지는게 두려워서 몸을 흠칫거리더니 정제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또 퉁을 맞지 말고 대답하구려.》

정제관이 대수롭지 않은 기색으로 무뚝뚝하게 일렀다.

《타고난 병이 아니예요. 아들, 남편을 전쟁터에서 잃은 녀인들치고 심장탈이 없는 사람이 몇 되겠어요? 난 자그만치 전쟁에 세 아이를 내보냈는데 다 돌아오지 못했어요. 흑-》

녀인은 이렇게 거침없이 대답하다가 그만 흑흑 흐느껴울기 시작하였다.

조봉암이 흐느끼는 녀인을 측은하게 바라보다가 그가 진정되기를 기다려 례절바르게 위로하였다.

《그렇군요. 참, 안되였습니다. 위로의 말씀을 어떻게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들들이 또 있습니까?》

《예, 아들 둘에 딸 하나가 있지요.》

《부인, 가령 말입니다. 이제 또 전쟁이 터지면 그애들을 마저 전쟁터에 내보내겠습니까?》

《뭐예요?! … 또 전쟁? … 또 전쟁한단 말이예요? 신물이 나요. 전쟁, 전쟁! … 얼마나 많은 떼죽음이 나고 얼마나 많은 과부들과 고아들이 생겼다고 그 더러운 전쟁을 또 해요? 나는 절대로, 이제 전쟁이 세번, 다섯번 벌어져도 우리 애들은 싸움터에 내보내지 않겠어요. 전쟁을 일으키겠으면 일으킨 사람들이나 하라고 해요. 난 전쟁을 저주해요! 남자들은 미쳤다니깐! 모여앉으면 전쟁, 전쟁! … 전쟁이 뭐 아이들 놀음이나요?》

녀인은 조봉암을 향해 행악질을 하면서 두손으로 가슴을 텅텅 두드렸다.

《진정하라구. 길게 말할게 있소? 녀자는 말 안하는게 수라고 했어.》

정제관이 옆에서 처의 팔을 잡으며 나무람하였다.

조봉암이 녀인과 한담이나 하듯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어떤 사람들은 싸움을 해서 통일하자고 합니다. 나라를 통일하는 방법에는 전쟁밖에 없다고 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부인은 어차피 자기 남편과 아들딸들을 군대에 내보내야 할것입니다. 국방은 모두의 의무이니깐요. 그걸 외면할수 있습니까? 특히 당신은 <북진통일>을 국시로 내세운 행정부의 주요공직자의 부인이 아닙니까? <북진>이란 북과 전쟁을 하자는것입니다.》

《듣기 싫어요! 미친놈들의 미친 수작이예요. 당신들이나 전쟁을 하겠으면 해보라요. 난 우리 애들을 절대로 전쟁터에 내보내지 않겠다는걸 맹세해요. 제 새끼들을 다 죽이고 통일해서는 뭘 해요? 안돼요, 절대로! 절대로!》

《부인, 자중하여 대답하기 바랍니다. 당신옆에는 내무부 장관이 서있습니다.》

《흥, 그런 수작이나 하자고 날 여기 불러냈나요? 내무부 장관이 어쨌다는거예요. 이 사람이 전쟁하자고 꾀입디까? 나 원, 별꼴 다 보겠다. 당신은 전쟁에 자식을 몇이나 바쳤어요? 전쟁하자는 소릴 그렇게 쉽게 하다니요? 그러니 재판을 받지. 재판을 열번 받아도 싸요, 싸! 전쟁하자는 놈들은 다 저렇게 붙잡아다가 족쇄를 채우고 재판을 해야 해요.》

녀인은 심장탈이 크게 발작한듯 입에 거품을 물고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그때 조인수가 자리에서 솟구치듯 일어났다. 다름아닌 《북진통일》론의 주창자의 첫째가는 심복의 마누라가 그 위험성과 무익성을 마구 파헤치고있는것이다. 《북진통일》론을 정면에서 배격하고 타매하고있는것이다. 저대로 놔두었다가는 이 재판전체를 훌떡 뒤집어놓을것 같았다. 제때에 제지시키고 입에 걸쇠를 채워야 한다. 그렇지 않다가는 조봉암이 저 녀인의 입을 통하여 《북진통일》론의 해독성과 평화통일론의 정당성을 끝까지 파헤치려고 할것이다. 뿐더러 극형을 언도해야 한다는 기소장의 핵심적인 명분도 뒤집어놓을것이다. 아니, 이미 저 녀자가 그렇게 해놓았다.

《증인심문을 중지하기 바랍니다. 증언자의 건강을 고려해야 합니다.》

바빠맞은 조인수의 말에 홍병삼도 응했다.

《동의합니다.》

재판장이 말하자 조봉암도 선뜻 접수하였다.

《부인은 전쟁하자는 놈들은 다 붙잡아다가 족쇄를 채우고 재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벌써 오래전에 한 의로운 지사가 독재의 칼날에 목을 내대고 부르짖은 금언이 생각납니다. <리유여하 불문하고 전쟁을 일으키는자 천하역적이노라!>

질문을 마치겠습니다. 부인, 감사합니다. 좋은 말을 해주어 고맙습니다.》

조봉암의 점잖으면서도 반석같은 의지와 무게가 실린 인사말에 녀인은 동그란 두눈에 새파란 불찌를 날리며 코방귀로 대답하였다.

《흥!》

녀인의 무례하고도 저속한 자세에 청중속에서는 또 한차례의 조소의 잦은 파도가 굼실거렸다.

《부인, 휴계실에 가서 주인의 증언이 끝날 때까지 휴식하다가 함께 돌아가시면 되겠습니다. 이건 현직장관의 바쁜 업무를 고려하여 재판정에서 특별히 취한 조치입니다.》

홍병삼이 이렇게 녀인을 걱정하여 례절있게 권고하자 놀랍게도 녀인은 독살스럽게 뇌까렸다.

《됐어요. 난 여기 앉아서 우리 주인이 문초를 당하는걸 보겠어요.》

《여기서 뭘 본다는거야?》

정제관이 증을 냈으나 녀인은 대척도 하지 않고 옆으로 가로퍼진 뚱뚱한 몸을 걸상에 풍덩 맡겨버렸다.

세도집 마님행세를 하는 녀인의 거만한 태도에 경멸의 조소를 보내는 가벼운 웃음소리가 또다시 장내에 물결쳤다.

《계속하시오.》

조봉암이 준비한 서류를 들고 질문을 시작하였다.

《지난해말에 경찰은 부산에서 정명갑이라는 재일교포가 국제공산당의 지시를 받고 부산일대에서 암약하다가 체포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올해 2월경 수사발표에서 경찰은 정명갑이 여러차례 나의 동지 우달수를 통하여 나와 진보당에 보내는 지령문을 전달하였고 나와도 한차례 만났다고 밝히였습니다. 옳습니까?》

《그런 일이 있었지요.》

《지난달초에 자주평화통일협의회 회원 강무호가 체포되였다고 합니다. 그후의 수사발표에서는 강무호가 나를 포섭하여 북의 로동당에 입당시켰으며 나를 여러차례 만나 북의 지령과 공작자금을 전달하였다고 밝히였습니다. 사실입니까?》

《그런 일이 있었지요.》

《지난해 11월말 진보당 간사 정태영이 북의 공작원으로 흡수되여 나에게 여러차례 <북의 지령문과 공작자금을 전달하였다.>고 발표하였습니다. 확인합니까?》

《예.》

《지난 1월 15일 조봉암이 간첩이라는것을 자수하고 자진하여 구속되였으며 진보당 당원들에 대한 수사에 협력하기로 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인정합니까?》

《예, 인정합니다.》

《지난해 1월 21일 조봉암의 집에서 국제공산당의 지령을 수행하기 위한 결사가 조직되였으며 국제공산당에 보낸 메쎄지부본이 집수색시에 나왔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인정합니까?》

《예.》

《지난 2월 초 경찰의 과잉수사와 여론재판에 대하여 검찰대변인이 경고하였다고 하는데 알고있습니까?》

《예.》

《지난 1월 말 경찰예심단계에서 조봉암과 진보당은 경무대의 정책으로 죽이게 되여있다고 나의 동지들을 협박하였다고 하는데 알고있습니까?》

《예, 아니 그건 알아봐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증인 정제관씨! 기소장에는 우와 같이 이미 경찰이 발표한 자료들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강무호, 정명갑이라는 이름만 있습니다. 증거와 증인은 경찰이 은페하고있는것 같은데 언제 제시할수 있습니까?》

《알아봐야겠습니다.》

《좋습니다. 피고들도 방청객도 경찰이 이런 내용의 증거물을 한시바삐 자기 눈으로 확인하기를 바라고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명백히 찍고 넘어갈 사항이 있는데 그것은 피고 조봉암이 경찰에 자진출두하였지만 간첩자수라는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것이라는것입니다.

다음문제, 한가지만 더 질문하겠습니다. 에- 이런 문제입니다. 나와 진보당간부들에 대한 구속에서 법적절차를 밟았는가요?》

《물론이지요. 구속령장이 발부되였습니다.》

《당신이 결재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사건이 중대사건이니만치…》

《구속령장을 발부할 때 취지는 무엇이였습니까? 그리고 당신이 나와 진보당간부들의 처리문제를 중요사건으로 인정한 리유는 무엇입니까?》

《그건… 에- 그건 첫째는, 당신들 진보당이 내세운 평화통일론이 국시에 위반되며 북당국의 립장을 그대로 받아물었으므로 <보안법>위반죄에 속한다는것과 둘째로…》

《가만가만… 그 문제만 다시 확인합시다. 통일에 대한 국시란 어떤것입니까?》

《거야… 다 아는 사실이 아닙니까? 우리의 통일정책은 이미 대통령이 수십차례에 걸쳐 내외에 천명하였습니다. <북진통일>이지요.》

《<북진통일>이란 북을 무력으로 공격하여 정복한 다음 통일을 한다는것이 기본골자이지요?》

《이를테면… 명백한 문제요.》

《그렇다면 당신은 자기 부인에게도 구속령장을 발부해야 되지 않을가요? 당신의 부인은 방금전에 당신이 제창하고 리승만이 수십차례 언명한 국시를 정면으로 배격하고 저주하였습니다. 인구의 반수에 달하는 녀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였습니다. 당신도 방금전에 자기 부인의 증언을 청취하였지요? 당신의 부인은 전쟁을 주장하는자들은 모조리 쇠고랑을 채워서 재판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음-》

리승만과 《국회》의 이름까지 걸고 자못 장중한 어조로 대답을 준 정제관은 사개가 빈틈없는 조봉암의 질문에 말문이 막혀 코김만 길게 뿜어던질뿐이였다. 조봉암이 잠시 그 꼴을 쳐다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부인은 진심으로 전쟁을 반대하였으며 평화를 달라고 절규하였습니다. 증인, 대답해보시오. 난 당신의 대답을 꼭 들어야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당신은 마땅히 자기 부인에게도 리적행위, 북동조죄로 구속령장을 발부하고 족쇄를 채워 우리곁에 세워야 되지 않을가요? 아니면 당신 부인 주장대로 전쟁을 주장하는 당신이 쇠고랑 차고 여기 피고석에 나앉아야 되지 않을가요? 어느쪽인가요?》

그제야 내막을 알아차린 정제관의 녀편네가 사색이 되여 남편을 쳐다보았다.

조봉암이 던진 올가미에 걸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하던 정제관은 조봉암과 그냥 일대일로 대거리를 벌려봐야 패배의 진창에 더 깊숙이 빠져들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당초 체면깎이게 됐다는 불쾌감부터 앞서 《그까짓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법정문턱을 넘어선게 크게 후회되였으나 때늦은것이였다. 이대로 피동에 빠지다가는 숱한 청중은 물론 이 재판을 예리하게 지켜보고있는 여론앞에서 현역 내무부 장관이라는게 웃음거리로 희화되고 참담한 패배자로 락인이 찍힐것이다. 소식이 당장 경무대로 날아가겠는데 리승만이 곱게 봐줄리도 없다.

정제관의 머리가 재빨리 회전하였다. 이런 자리에서는 억지놀음이 으뜸가는 묘수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뇌리에 떠올랐다. 리승만까지 인정하는 모사의 두뇌가 이런 일에서는 꽤 기민한데가 있었다.

그는 용기를 내여 무턱대고 강짜를 부려 공세로 넘어가기로 결심하였다.

정제관은 어조를 적당히 높여가지고 소리지르기 시작하였다.

《당신 아직도 기가 펄펄 살아 제멋대로구만. 도대체 나와 마누라 세워놓고 무슨 희극을 벌려놓는거요? 누굴 세워놓고 어거지요? 재판장! 이건 신성한 법정에 대한 우롱입니다. 난 정식으로 항의합니다. 난 더이상 증언에 응할수 없습니다.》

홍병삼이 분별을 잃어버린듯싶은 정제관의 꼬락서니를 쓰겁게 지켜보다가 빈 도람통소리처럼 야단스럽기만 할뿐 감투 믿고 허세만 부리며 우뚤거리는데 불과한 그를 심판대에 그냥 세워놓고싶은 얄궂은 심사도 발동되여 그의 기를 꾹 눌러놓았다.

《당신의 항의는 유감스럽지만 기각합니다. 당신은 방금전 증인석에 나서기 전에 법정질서를 준수할것이며 불응할 때는 법정추궁과 형벌을 받겠다고 서약하지 않았습니까? 여기는 내무부가 아니라는데 대하여 당신에게 상기시킵니다. … 법정교란죄는 죄상에 따라 10년까지의 금고형을 받을수 있습니다. 당신이 다시한번 증언서약을 준수하지 않고 함부로 법정을 문란시키면 즉시 구속령장을 신청하겠다는것을 언명합니다.》

《흥!》

정제관이 홍병삼의 엄한 경고에 속이 배배 꼴려가지고 그냥 울화를 터치려 하자 조봉암이 제지하였다.

《아, 좋습니다. 이상으로 정제관씨 부부에 대한 증언을 끝내고저 합니다. 정제관씨, 감사합니다.》

조봉암은 궁지에서 벗어나보려고 어울리지 않는 연기를 하고있는 정제관을 점점 깊이 빠져드는 수렁에서 건져주었다. 그쯤하면 정제관이나 그의 마누라가 저들에게 부여한 과제를 괜찮게 수행한셈이다.

그런데 정제관은 정작 목에 감겨들던 올가미를 늦추어주자 증언탁의 모서리를 꽉 틀어잡은 손을 풀지 못하고있었다.

《퇴정하시오. 두분은 이미 말한대로 돌아가도 되겠습니다.》

홍병삼이 다시 지시해서야 정제관은 얄팍한 입술을 부르르 떨며 녀편네를 달고 계단을 힘겹게 내렸다. 출입문쪽이 아니라 증인석으로 가서 무너지듯 앉아 그냥 씨근덕거렸다. 법원서기가 그에게로 뛰여와서 뭐라고 소근거리였다. 그는 그제야 얼쳐서 초점을 잃은듯 한 눈을 디룩디룩 굴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제관은 마누라에게 한팔을 맡긴채 어정어정 출입문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문고리를 잡고 출입문을 반대쪽으로 당기느라고 그냥 헛기운을 쓰다가 옆에 서있던 경찰이 다가와서 열어주어서야 문밖으로 나갔다. 호랑이에게 쫓기는 시라소니처럼 얼혼이 쭉 빠져 마당에 서있는 자동차에로 허둥지둥 걸어갔다.

정제관내외가 떠나가자 장내에는 마치도 허세를 부리던 장수를 단칼에 쓰러뜨린것 같은 통쾌한 분위기가 떠돌았다. 피고들은 물론이거니와 방청객들도 조봉암과 더불어 그 장쾌한 싸움을 치른듯 후련해 하였다.

통치권의 실세인물이라 기회가 생길 때마다 자화자찬하던 폭압세력의 우두머리와 조봉암이 맞붙을 때부터 손에 땀을 움켜쥐고 그 결말을 두려움속에 기다려왔다. 그런데 조봉암이 거연하고도 신축성있는 자세를 조금도 흐트림이 없이 세도가의 왕초로 악명을 떨치고있는 인물을 궁지에 몰아넣고 조겨대자 누구라 없이 자리에서 떨쳐일어나 만세라도 부르고싶은 심정들이였다.

조봉암의 소리없는 주장이 모두에게 되새겨지면서 청중의 심중을 파고들었다. 사람들은 내무부 장관과 그의 마누라의 비명에서 전쟁은 비극이요, 평화는 모두의 갈망이다, 전쟁을 통한 통일이란 우리 민족의 또 하나의 대참변이며 평화통일이야말로 민족의 지혜와 문명성과 도덕성 그리고 정치가들의 지성과 원숙성과 민족헌신을 최상의 경지에서 과시하는 전민족적쾌거이라는 조봉암의 신념과 의지를 확인하고있었다. 그것은 또한 민족의 대승리를 의미하는 평화통일을 거역하는자는 대역부도한 배달민족의 역도임을 다시금 이 법정에서 공공연히 주장하는 조봉암의 선언이였다. 그런자들은 이 땅에서 생존할 권리를 박탈해야 한다는 그의 열렬한 호소이기도 하였다.

조봉암은 말을 마치자 청중석을 돌아보았다.

또다시 청중석에서는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경탄과 공감과 고무의 눈길들이 집중되였다. 비록 조봉암이 구태여 더 설명을 하지 않았으나 그의 지혜와 명석한 론리, 자신만만한 주장과 그 어떤 공갈에도 흔들림없는 견결한 의지가 온 장내를 도도히 굽이치고있었다.

《평화통일주장에 대한 변호는 더이상 제기할 필요가 없다고 보면서 다음증인을 호출해주기 바랍니다.》

조봉암은 리승만패당과 미국놈들이 제일 혼비백산해서 떠들어왔고 검사측이 《리적》이요, 《북동조죄》요 하며 기본초점을 모아 품을 들인 평화통일주장에 대한 기소를 이렇게 짧은 시간에, 그것도 멋들어지게 군사설이 없이 쳐갈겨버렸다.

두번째로 나선것은 공보실장이였다. 공보실장은 이목구비가 번듯하게 생긴 사나이였다. 리승만과 버드의 요구에 따라 진보당에 대한 해산명령을 내림으로써 진보당에서 이제 보름후에 있게 되는 《국회》선거에 한명의 후보도 내놓지 못하도록 만든것으로 해서 조봉암의 분노를 사고있었다.

조봉암은 그가 증언대에 오르자 단도직입으로 따지고들었다.

《진보당해산령은 언제 내렸습니까?》

《예, 그건 지난 1월 중순입니다.》

《해산시킨 리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진보당이 우리 법과 유엔결의에 위반되는 통일방안을 주장하였고 특히 북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기때문이며 둘째로, 진보당이 체제전복을 기도하였기때문이며 셋째, 국제공산당의 조종밑에 활동하였기때문입니다.》

《당신이 렬거한 리유들에 대하여 그 부당성은 이미 확인되였고 또 앞으로도 론단될것이므로 당신과는 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조봉암의 소리에 공보실장은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는 재판정에서 그에 대하여 따지고든다면 설득력있게 엮을 자신이 없었던것이다.

《그런데… 그 범행자료는 어데서 통보받은 자료에 기초하였습니까? 혹은 본 재판에 앞서 강행된 여론재판을 분석한 증인의 자체판단이였습니까?》

《자체판단이라니요? 하나의 큰 정당해산을 명령하는데 그렇게 허술하게 할수 있겠습니까? 난 검찰에서 통보받았습니다. 난 그에 기초하였습니다.》

《검찰의 통보가 법적효력을 가지고있는가요?》

《거야 뭐, 글쎄… 난 법조인은 아니니까… 재판의 결과가 다르게 나온다면야…》

《좋습니다. 이건 비유하면 앓는 환자를 두고 아직 확인이 나오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환자가 죽기를 바라는 의사의 말 한마디에 기초하여 서둘러 관속에 넣어 매장해버리는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경우에 그의 말을 듣고 환자를 매장한 사건이 범죄에 속하지 않을가요? 당신이 법관이라면 묵인할수 있겠습니까?》

《거야 뭐, 글쎄… 글쎄…》

공보실장은 이렇게 연신 갑자르기만 하였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뿌질뿌질 내돋은 땀을 벅벅 닦다가 입을 다물어버리는것으로써 궁지에서 벗어나려고 오그랑수를 썼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본 재판에서 만약 그 리유라는것이 무죄로 판결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

공보실장이 그냥 침묵을 지키자 홍병삼이 무겁게 경고하였다.

《증인은 답변을 해야 합니다. 옳다, 아니다… 립장을 밝혀야 합니다.》

그러나 공보실장은 연탁만 멀거니 내려다볼뿐이였다.

조봉암은 속시원하게 한바탕 독재자의 주구배의 상통에 실컷 욕바가지를 들씌워주고싶었다.

저따위 버러지같은 간신배들이 통치권에 틀고앉아 아무런 통치철학도 없이 정치를 롱락하고 민중을 주무르고 언론마저 《빨갱이몰이》에로 부추기고있지 않는가.

저따위 무골충같은자들이 씨글거리니 리승만독재가 날에 날을 따라 더욱 기승을 부리고있다. 백성앞에서 티끌만 한 반성도 개심도 없이 무지막지한 철권통치로 이 땅을 세계에서 가장 힘이 없고 헐벗고 굶주리는 인간지옥으로 끌고간다.

독재자와 강점자가 내뱉은 턱찌끼에 기생하여 호의호식으로만 만족하고 백성의 혈세로 차례지는 록봉에 대한 아무런 사명감도 없는 저따위 바보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절대로 이 땅이 흥할수 없고 백성이 맘편히 복락할수 없다.

조봉암은 자기도 모르게 밸집이 거세게 꿈틀거려 자신을 다잡을수 없었다. 이 숨막히는 법정에서 상대도 안되는 서푼짜리 졸개와 이러쿵저러쿵하는 자신이 허무하고 시간과 기력이 너무도 아까웠다. 하기는 저놈도 이쯤이면 재판에서 자기의 과제를 해낸셈이다. 머저리같은 꼬락서니로 리승만일파의 불법, 무법을 반증한것이다.

조봉암은 치밀어오르는 구토감을 뱉아버리듯 경멸조로 소리쳤다.

《이만하겠습니다. 더 론의해볼 가치가 없습니다. 다음증인을 불러주십시오.》

공보실장은 허리를 쭉 폈다가 조봉암을 향하여 저도 모르게 허리가 부러지도록 앞으로 꾸벅 절을 하였다. 계단을 내리는데 좌우로 넘어질듯 휘청휘청하는게 그러다 계단에서 굴러떨어질것 같아 보는 사람이 다 조마조마하였다.

《탁준의증인, 증언대에 오르기 바랍니다.》

증인석에 앉아있던 탁준의가 뚱뚱한 몸을 패기있게 세우더니 공보실장과는 대조가 되게 계단을 위풍당당하게 쿵쿵 구르며 성큼성큼 올라갔다. 언제나처럼 양복우에 걸친 미군잠바우에서 떡호박같이 둥근 머리가 춤추듯 앞뒤로 흔들렸다.

탁준의는 증언대에 올라서자 표표한 눈길을 조봉암에게 박은채 악청을 내질렀다.

《피고 조봉암, 그래 덤벼들어요.》

그리고는 재판장을 향하여 시답지 않게 한마디 하였다.

《시작하시오.》

청중을 깔보고 재판장까지 무시하는 그의 방자한 행동이 사람들을 격노하게 하였다.

청중의 심리를 부정적으로 자극하는 탁준의의 기고만장한 꼴불견에 조인수도 눈살을 찌프렸다.

조봉암은 증언대에 선 탁준의를 잠시 지켜보다가 질문을 시작하였다.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수십년간에 걸치는 대결의 결산을 오늘 비로소 치르게 된다는 생각이 앞섰던것이다.

《증인은 1925년도 공산당이 창립된 후 어느 분파를 책임지고있었습니까?》

《그걸 몰라서 묻소?》

탁준의가 질의문답에서 주도권을 잡아야 되겠다고 생각한듯 역습을 들이대였다.

탁준의를 못마땅하니 쏘아보던 홍병삼이 기다린듯 엄하게 주의를 주었다.

《탁준의증인! 증인의 대답은 질문자만 듣자는게 아닙니다. 대답하시오!》

탁준의는 상통에 비하면 어방없이 작은 암팡진 눈으로 홍병삼을 힐끗 쳐다보고나서 퉁퉁한 볼을 심술스럽게 실룩거리다가 하는수없이 짤막히 대답하였다.

《엠엘이였소.》

《엠엘이란 정확히 그 의미가 무엇이였습니까?》

《엠엘이란 맑스와 레닌의 첫 자음을 따서 지은 이름이요.》

탁준의가 여전히 조봉암에게서 사나운 눈길을 거두지 않은채 반말질을 함부로 하자 홍병삼이 더는 참을수 없어 그 건방진 자세에 공세를 들이댔다.

《증인, 재판정에서 례의를 보여야 합니다. 법원의 질서와 도덕을 한때 법무부 장관까지 한 증인은 잘 알고있으리라고 봅니다.》

탁준의는 재판장의 눈빛이 서리발같이 날이 서자 태도를 달리하여 고개를 묵묵히 끄덕이였다. 그도 홍병삼이 지방법원의 판사라고 깔보던 현직 내무부 장관을 여지없이 답새기는것을 방금 목격하였던것이다.

《조선공산당은 무엇을 지향하여 무어졌습니까?》

《로동자, 농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 바로 피고가 주장하는 민중사회였지요. 공산주의를 지향했지요.》

탁준의는 심술스럽게 대꾸하였다.

《조선공산주의운동에서 종파의 조상쯤 되는 당신과 엠엘파는 당시 공산주의운동의 령도적지위를 차지하기 위하여 무진 애를 썼던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때 국제당의 위임을 받았던 나에게는 당신이 공산주의위업에 대한 충실성과 의지를 소리높이 열창하던 모습이 선합니다. 당신은 당시 엠엘파의 당면투쟁과제를 어떻게 설정하였습니까?》

《일제타도, 조선독립이였지요.》

《최종목적은?》

《거야… 음… 공산주의건설이였지요.》

《증인이 일제에게 혈서를 써서 충성을 맹세하고 자기가 내세운 공산주의리념을 버리고 투항변절한것은 어느때에 있은 일이였습니까?》

《뭐요?!》

탁준의의 입이 크게 벌어지고 눈살이 꼿꼿해졌다.

그의 평생의 오욕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되였었다. 바로 거기서부터 인간말세의 치욕스러운 배신자의 락인이 그의 호박상과 몸뚱이에 추잡한 락서를 휘갈겨버린듯이 그냥 덧새겨져 이제는 그 수치스러운 얼룩을 깨끗이 씻어낼수가 없게 되였다.

탁준의는 가장 어지러운 인생의 급소를 찔러든 조봉암을 노려보며 한동안 이발을 빠등빠등 갈았다. 더럽게 살아온 평생이 세상면전에 낱낱이 드러나게 된것이였다.

《대답하시오.》

홍병삼이 또다시 재촉하였다.

《1927년이였소. 그때 조선공산당의 주요역원들은 거지반 다 체포되였소.》

《거지반 다 체포되였지만 거지반 다 투항변절한것은 아니였소. 당신은 그때부터 조선독립과 일제타도를 당면과제로 내세운 공산주의자들의 대오에서 전향하여 친일파로 돌아섰다는거지요?》

《음- 딴은 그렇게도 말할수 있수다.》

탁준의는 하는수없이 어지러운 과거를 시인하였다.

《증인은 피고 조봉암이 전향하지 않은것을 걸고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때 일본놈들에게 투항변절하여 반일과 조선독립을 당면목표로 내세웠던 공산주의대오에서 전향하였고 친일분자로 된것을 지금도 잘한 일로 간주합니까?》

조봉암은 탁준의의 정체를 끈질기게 발가벗기여놓고 따지고 들었다.

《음- 그건… 그건…》

탁준의는 삽시에 수치와 울분으로 하여 상통이 시뻘겋게 익어들었다. 그가 연방 혀밭은 소리를 내지르며 허우적거리자 조봉암은 멸시하듯 스쳐넘겼다.

《좋습니다. 대답하기 거북하면 이 문제는 이로써 끝냅시다. 너무 상심할것은 없습니다. 나는 다만 사상전향에 대한 증인의 견해를 알고싶을뿐입니다. 다음문제…》

그때 조인수가 그를 구원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며 조봉암의 말허리를 꺾었다.

《재판장님! 질문을 중지하였으면 합니다. 저건 인신모독입니다. 은페된 인권유린입니다.》

《기각합니다.》

홍병삼이 랭정하게 일축하여버렸다.

사람들의 경멸적인 시선들이 탁준의에게 집중되였다.

지금까지 정계에서 반공의 체질을 자랑하고 다니던, 민주당의 두세번째 서렬의 지도인물이였던 탁준의의 정체가 여지없이 발가진것이다. 그렇게도 위엄있어보이던 인물이 한꺼풀 벗겨내니 비렬하기 그지없고 퀴퀴한 냄새가 풍기는 인간쓰레기였다.

탁준의는 방금전까지 보여주었던, 안하무인격이던 거만한 자세는 어데로 갔냐싶게 수치와 굴욕감으로 입술을 푸들푸들 떨며 그 둔한 몸을 힘겹게 버티고있었다.

《백범 김구선생은 언젠가 한 집회에서 왜정때 끝까지 민족의 기개를 떨친것은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이라고 말한바 있습니다. 그 집회에 당신도 참가한것 같은데 들은 기억이 납니까?》

《예.》

탁준의의 호박상이 점점 아래로 떨어지고 목소리도 목구멍으로 꺼져드는듯 힘도 없고 열도 기진하여진듯싶었다.

《당신은 그들을 배신했던 과거를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고있는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다음문제, 증인은 인간의 자유와 개성을 억압하는것을 자유민주주의체제의 근간이라고 생각합니까?》

탁준의는 조봉암의 질문의 의미를 놓고 그게 또 자기를 몰아가는 함정이 아닐가 굴려보다가 다소 기운을 짜내서 소리질렀다.

《아니요!》

《좋습니다. 증인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와 압박을 옳다고 인정합니까?》

《반대요!》

《당신이 중진으로 있던 민주당에서는 각자가 자기 노력으로 살아가며 빈부의 차이를 없애며 다같이 유족하고 화목하게 사는 사회건설을 당규에 대한 위반이라고 규정하였습니까?》

《객적은 론의지요.》

《착취가 없고 압박도 없고 그 어떤 계급도, 그 어떤 독재도 없는 사회가 어떻습니까?》

《이루 말할게 있소.》

《각자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수요에 따라 분배를 받는 사회는 어떻습니까?》

《도대체 당신이 나에게서 뭘 노리는거요? 그런 세상이 어디 있소?》

《있소! 있단 말이요!》

조봉암이 엄하고도 장쾌한 어조로 복더위에 소나기를 퍼붓듯 시원하게 대답을 던져주었다.

《그게 바로 당신이 소시적에 정의라고 생각하고 나섰던 공산주의요! 공산주의… 난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오. 우리가 25년도에 일본놈들의 눈을 피하여 아서원에서 공산당창당을 선포하고 축배잔들을 찧던 일이 말이요.

그때 당신은 축배잔을 높이 들고 이렇게 웨쳤소.

<공산주의는 인류의 청춘이다! 인류의 리상이고 나의 꿈이다. 나는 비록 유산자이지만 인간의 정의를 지켜, 력사의 진보를 따라 평생을 공산당원으로 살것이다! 공산주의 만세!>

그날의 당신의 목소리는 우렁찼고 당신의 모습은 고결하였소.

나 역시 그때 당신의 만세선창에 목소리를 합쳤고 그날부터 줄곧 그 리상의 세계를 위하여 살아왔소. 그리고 한시절에 그 대오에서 추방되였던것을 가슴아프게 생각하여왔소. 지금도 난 공산주의자로 살지 못한 자신을 타매하군 하오. 방금전에 당신은 바로 그 공산주의리념을 인정하고 옹호하였소. 그런데 당신은 그렇게 목청껏 웨치던 그 입으로 <공산주의 타도!>를 웨치고있습니다.

얼마나 모순적이요. 어느것이 당신의 진실이요? 만세요, 타도요? 또 당신은 자기의 전향에 나나 나의 동지들이 목소리를 합쳐주지 않았다고 목을 달아매라고 또 웨치고있습니다. 이것은 사상의 자유, 결사의 자유에 대한 민중의 기본권을 유린하는 행위라고 보는데 증인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음-》

탁준의의 입에서는 대답이 아니라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대답을 하시오.》

홍병삼이 대답이 궁한 증인이 딴전을 피우는것 같아서 재촉했으나 탁준의는 여전히 맥풀린 신음소리를 낼뿐이였다. 신음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더위먹은 돼지처럼 헐떡거리기 시작하였다. 비게살 두터운 볼에 푸드득 경련이 일고 혈색이 좋던 이드르르한 상판이 삽시에 혈기가 꺼져 배추속처럼 헐끔하여졌다.

탁준의는 후들거리는 주먹을 들더니 왼쪽가슴을 몇번 맥없이 두드렸다. 미구에 그 큰 호박상을 버티고있기가 힘에 부친듯 고개를 푹 꺾으며 혼자소리로 두덜거렸다.

《어, 망신살은 내게 뻗쳤군. 당초에 나서는게 아니였는데…》

완전히 얼이 빠져 입속으로 중얼거린 소리가 패배자의 항복선언처럼 장내에 울렸다.

《좋습니다. 더 묻지 않겠습니다. 다만 당신에게 한가지 권고할게 있소. 나나 당신이나 인생의 락엽지는 시절에 사는 사람들이요. 그러니 한생을 되돌아보며 삶의 참의미에 대하여 새겨보기를 바라오.》

조봉암이 쓰거운 미소를 지으며 준엄한 훈계를 던져주었다.

그 말이 청중들에게는 마치도 너같은 인간쓰레기와 더이상 상대하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사람들은 인간성이 파멸되여버린 너절한 전향자를 향하여 조소와 환멸의 눈길을 보냈다.

탁준의는 올라가던 때와는 달리 사처에 살에 맞아 피흘리고 죽탕이 된듯 게나른해져서 한계단, 한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렸다. 그는 자기 자리에 가서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다. 수치와 모멸과 왈칵 터쳐놓을수 없는 울화에 스스로 질식된듯 그 큰 몸을 외로 스르르 기울이더니 쿵- 소리를 내며 걸상에서 땅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쭉 뻗쳐오른 혈압으로 뇌수의 피줄이 터지면서 심장쇼크가 왔던것이다. 멱을 찔리운 돼지처럼 방바닥에 뻐드러진 탁준의는 초점을 잃은 눈으로 허공을 멍해서 쳐다보며 간신히 신음소리를 냈다.

《조… 조봉암…》

탁준의는 인차 부그그 거품을 토하며 사지를 한번 꿈틀거리고나서 쭐 늘어졌다. 평생을 파쟁과 전향과 매국의 진창에서 권세와 명예와 부귀영화를 탐하여 추하게 헤매온 탁준의는 이렇게 죄많은 인생을 끝내가고있었다.

탁준의의 꼴을 내려다보던 홍병삼은 급히 휴정을 선포하였다. 그는 탁준의를 병원으로 긴급후송하도록 하고 어수선해진 장내도 정리하도록 하였다.

피고가 아니라 피고를 물어메치겠다고 나선 증인이 극심한 정신적핍박에 너부러진것도 서울지방법원이 생긴이래 처음 맞다든 일이였다. 이 재판은 여러모로 력사에 희한한 비화들을 수두룩이 남기게 되였다.

일류명사들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내리내리 조봉암의 부드러운 질의에 파김치처럼 여지없이 문드러지는것을 보는 청중들은 그 소속과 당파에는 관계없이 시간이 갈수록 신비와 경탄속에 인간성의 고귀함과 그 승리를 목격하고있었다.

증언자들은 인간의 정의와 량심을 지켜 불사신같이, 배심 든든해서 기지있게 다불리는 조봉암앞에서 그자신들도 미처 의식하지 못한채 이 재판의 부당성과 리승만일파의 죄악을 고발하였다.

결국 조봉암은 이미전에 결심하였던대로 재판정을 새로운 투쟁무대로 만들어버린셈이다. 그는 자기의 변론과 증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진보당의 위업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선전하였으며 미제와 리승만의 전횡과 모략에 대하여 무자비하게 타격하였다.

조봉암은 타격도수를 늦추지 않았다. 탁준의에 이어 오른 증인들은 모두 진보당의 지지자들이였다. 그들은 조봉암이 말구멍을 틔워놓기만 하면 즉시에 리승만을 공개적으로 맹렬히 공격하고 기소장에 오른 사건들과 론거들을 뒤집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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