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2 회)
제 4 장
2
오후시간에 홍병삼은 할 일이 없게 된 배석판사들을 일찌감치 집으로 보내놓고 기소장을 다시한번 훑었다. 그는 담배를 입에 물고 한조항한조항 더듬으며 깊은 사색에 잠겨들었다. 오전시간에 법정을 한손에 거머쥐고 검사의 기소장을 일격에 짓뭉개버리던 조봉암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홍병삼은 이미 재판은 확고히 조봉암쪽으로 기울어졌다고 확신하였다. 이제는 매일처럼 법원에 찾아오기도 하고 전화로 묻는 딸에게 좋은 대답을 할수 있게 되였다고 생각하였다.
딸은 그냥 재판이 어떻게 될것 같냐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해온다.
《서뿔리 말해주는게 아니다.》
홍병삼은 딸이 물을 때면 이렇게 퉁명스럽게 대답하군 한다.
또 전화가 오거나 찾아오면 마음을 늦춰서 말해줄수 있게 되였다.
《지켜보자. 그 사람은 큰사람이다. 쉽게 넘어지기야 하겠느냐?》
이 정도의 대답이면 딸의 안색이 밝아질것이다.
홍병삼의 가슴도 어느 정도 트인다. 그가 다시 기소장에 시선을 묻으려고 하는데 문이 열렸다.
법원서기가 이마살을 잔뜩 찌프리고 들어왔다.
《무슨 일이요?》
《저… 내무부 장관실에서 법정출두를 사절하였습니다.》
《사절이라니? … 장관실의 어느 놈이? …》
홍병삼이 서기의 말에 버럭 역증을 냈다.
《장관서기라는 녀자가 통보 듣더니 딱 짜릅니다.》
《서기년이? … 그게 어떻게 돼먹은 계집이냐? … 법정이 뭔지 알기나 하고 재세야?》
홍병삼은 밸머리가 우쩍 들려서 기소장을 소리나게 덮어버리였다.
《경찰이라는게 한다는짓이…》
아무데서나 경찰과 검찰, 법원은 사회치안을 담당하는 3대기둥으로 되여있다. 헌데 이들사이는 늘 앙숙간이다. 서로 치안문제에서 주도권을 잡으려고 암투를 벌린다. 게다가 경쟁의식이 강한 체질적본성에다가 주종관계가 석연치 않아 자주 뒤바뀌여 줄넘기기를 하면서 마찰을 빚기가 일쑤이다.
경찰은 검찰과 법원을 저희들이 만들어낸 구멍을 막아주는 방패막이정도로 아는가 하면 검찰은 경찰이나 법기관쯤은 마음대로 주물러댈수 있는 불가사의한 존재처럼 으시댄다.
그런가 하면 법기관은 경찰이나 검찰우에 군림한 제왕처럼 우쭐해가지고 경찰이나 검찰을 하청업체처럼 얕보고 법집행에서 안하무인격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에게 똑같은 의식이 지배하고있으니 그것이 바로 통치자에 대한 경쟁적인 굴종의식이다.
이 삼각관계의 병페와 대립은 여기 서울에서도 매우 우심하게 나타나고있었다.
《뭐라고 한대?》
홍병삼은 경찰기관 우두머리의 반응이 부정적이라는데서 대뜸 눈빛이 거칠어졌다.
《뭐 장관서기가 장관에게 비쳐보고 하는 말이 틀림없는것 같은데 지방법원이 함부로 자기네 각하를 호출하느냐고 양양거립니다.》
《그래?! … 흥, 그 자식이 헛살았군. 왜놈밑에서 대학물까지 먹으며 법도 배웠다는 정제관이 법의 맛이 어떤가는 모르고 살아왔거던. 알았어.》
홍병삼은 손등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한바탕 경찰의 우두머리를 걸고 치안기관의 코대를 꺾어버릴 일거리가 생겨난것이다.
(흥! 어디 한번 조봉암의 앞에 와서 초죽음을 당해보라지.)
홍병삼이 담배갑에서 한대 뽑아 입에 물자 서기가 얼른 불을 달아주었다.
홍병삼은 연기를 피워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홍병삼과 지금 내무부의 큰 주인으로 틀고앉은 정제관은 경기고등학교 동창들이였다.
집안이 가난하였던 홍병삼은 학비를 대느라고 공부가 끝나면 신문을 팔고 물지게를 지거나 쌀지대를 메고 서울 골목길을 누비고 다녔다.
그런데 정제관은 산골지주인 애비가 다달이 보내주는 학비를 가지고 어린 나이에 벌써 술집에 드나들고 부자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서울논다니들을 끼고 다니였다. 그래 입학할 때는 그리 낮은 점수가 아니였는데 학교기간에 난봉을 피우다가 학교졸업도 겨우 하였다. 그후에는 애비돈줄로 일본과 미국에도 나가 법을 배운다고 돌아치더니 해방무렵에는 양양에서 경찰서장노릇까지 하였다. 해방이 되자 고향사람들의 매타작에 걸려 할딱거리다가 숨이 겨우 붙어 살아났다. 리승만이 왜정시기 경찰들을 자기 주변에 끌어들일 때 가까이에서 경호관으로 있다가 두상의 눈에 들어 벼락승진을 하였다.
홍병삼은 서울에서 재판관계로 그를 상대하게 될 때마다 벼슬살이에 기세충천한 꼴이 보기 싫어 이내 돌아서버리군 하였다.
홍병삼은 반나마 남아있는 담배를 놋으로 만든 재털이에 비벼 버리고 결심을 밝혔다.
《자동차를 보내서 배석판사들을 불러내시오. 다음, 서기는 곧 법무부 장관실에 내무부 장관의 법정출두를 요구하는 각서를 작성하시오. 빨리 움직이시오.》
홍병삼은 서기가 방에서 나가자 다시 기소장을 훑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도 천하가 제것이노라 떠들어대던 정제관의 면상을 어떻게 후려치겠는가 하는것을 곰곰히 생각하였다.
창문으로 흘러드는 해빛이 벽의 허리까지 기여오를무렵에 서기가 문건을 깨끗이 타자까지 쳐가지고 들어왔다.
《배석판사들이 도착하였습니다.》
서기는 그의 책상에 서류를 놓으며 보고하였다.
《들여보내시오.》
서기가 돌아서서 나가는데 돌연 전화종소리가 맵짜지게 났다. 서두름이 없이 전화기에 다가가 신호단추를 누르니 귀에 익은 류선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홍판사인가? … 나 류선민일세. 그래 재판은 잘되여가나?》
《예, 그럭저럭 일정대로 밀고나갑니다.》
《오전재판을 얼음판에 박밀듯 밀어제꼈다면서? …》
홍병삼은 찬사인지 질책인지 선뜻 분간이 되지 않는 상대의 너글너글한 말에 주빗이 미소를 지었다. 기소장에 오른 이른바 범행자료를 누구든 쉽게 납득시키는 사리정연하고도 빈틈이 없는 론거로 갈기갈기 찢어버린 조봉암의 틀이 잡힌 름름한 모습이 언뜻 눈앞을 가리웠던것이다. 그러나 그는 짐짓 시치미를 떼고 딴전을 부려보았다.
《꽤 소식통이 빠르구만요. 오늘 재판을 페정한지 얼마 안되고 보고서도 제출하지 않았는데 그쪽에까지 소식이 날아가다니요.》
《임자 그 재판이 지금 행정권의 첫번째 중대보고사항이라는걸 모르는것 같군. 경무대에서 먼저 전화가 왔네.》
《경무대에서까지요?》
《명심하게! 그리고 정신을 바싹 차리게. 임자 일거일동도 첫째가는 관심사라는걸… 헌데 오후에는 휴정이라면서?》
《속도를 늦추라는건 그쪽에서 보내온 신호가 아닙니까. 조봉암이 하루반으로 예견된 변론을 한시간도 안되게 해놓고 <이상 끝!> 하니 법정일정도 흔들렸지요.》
《변론을 한시간도 안되게 했다구? 소문이 그르지 않군. 그 사람이 아예 넋이 빠져 지레 손을 들었다는건가?》
《글쎄요.》
홍병삼은 또다시 아닌보살을 하였다.
《문제는 재판의 질이란 말이요.》
류선민은 아리숭한 소리를 하였다. 재판의 질이라는 의미는 광폭적이다.
홍병삼은 류선민의 속심을 알고싶어 따져물었다.
《재판의 질이라구요? … 그 의미를 정확하게 풀이해줄수 없습니까?》
《임자 어찌된셈인가?》
류선민이 대뜸 화를 냈다. 그러나 이내 언성을 낮추고 한마디 한마디를 침착하게 힘을 주어 설명하였다.
《내가 전일에 명백히 지시하지 않았나. 임자의 임기만료, 퇴임직전의 거사라고… 소신껏 하라구. 이젠 뒤를 돌아볼나위가 없게 됐다는건가?》
《원, 무슨 말씀이십니까? 퇴진을 해도 명예로운 퇴진을 해야 할것이고 임기만료되여도 오점을 남겨서야 안되지요. 나는 이런 뜻으로 접수했습니다. 재판의 질문제? … 그 의미에 대하여 말해주십시오.》
홍병삼은 일부러 미욱하게 게정을 부리며 류선민의 속심을 헤쳐보았다.
그러나 상대는 여전히 골뱅이처럼 속주머니에 껍질이 단단한 갑을 씌우고 옹송그린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임자의 퇴임후의 생존보장이 리박사의 결재에 달려있다는걸 잊지 말게. 재판의 질이란 무엇이겠나? 리박사의 취향에서 탈선되지 않는거지.》
《그러니 극형에로 재판을 몰아가라는건가요? 거야 검찰의 기소가 완벽하게 꾸며진다면야 달라질게 있겠습니까. 하여튼 재판하여봅시다. 이제 겨우 열흘정도 넘기지 않은 재판을 두고 우에서 너무 왈가불가해서는 안될줄로 압니다. 이 홍병삼이더러 남이 치는 장단에 궁뎅이춤 추라고 하는거야 아니겠지요? 나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홍병삼은 이렇게 입가에는 쓰거운 웃음을 짓고 태연자약하게 대답을 주었다. 그는 여느때없이 정중하게 전화를 받고 선택된 말마디로 조심스럽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류선민의 고달픈 심경이 리해되였다. 류선민은 전화 한통으로 리승만앞에서 자기 체면을 살려보려는것이다. 더 길게 대화를 해야 리승만심복졸개들에게 전화도청이 걸려들어 말꼬리가 밟힌다는 위구심에 서둘러 전화를 끊어버리려고 한다.
《잘해보게.》
《가만!》
홍병삼이 문득 생각나는것이 있어서 전화를 끝내려는 상대방을 제지시켰다.
《마침 잘 만났습니다. 문건발송도 방금 하였는데 자체변론에 나선 피고가 신청한 증인이 법정호출에 불응하고있는 문제가 제기되였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요? 누가 감히 법정호출을 거절한다는거요? 당신네 법원이 떨떨해! 그런 놈들은 따라가서 오라를 지워서라도 내세워야 해! 어떤 놈인가?》
《내무부 장관 정제관씨입니다.》
《뭐라구? … 내무부 장관? 하하하, 그거 멋있겠소.》
류선민이 전화통에 대고 통쾌한듯 폭소를 터뜨렸다.
《그런데 법원의 결정으로 본인에게 통고하였는데 출두할수 없노라 화부터 낸다고 합니다.》
《하하하… 조봉암! 역시 대틀이야, 대틀! 담통이 그쯤되니 리박사께서 힘들어할수밖에… 그러하니…》
류선민이 잠시 말을 끊었다.
류선민이 전화통을 든채 말을 끊은 리유가 있었다. 그의 옆에서 류선녀가 그들의 전화를 속을 조이며 듣고있었던것이다.
류선녀는 오전재판이 끝나자 곧장 오빠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형님을 도와 밥상을 차려놓고 오빠를 기다렸으나 나타나지 않았다.
그 시간에 류선민은 경무대에서 찾아온 경호실장과 함께 호텔에 가서 점심을 나누면서 재판과 관련한 협의를 하고있었던것이다.
경호실장은 이날 재판에 직접 참가하여 조봉암의 변론을 듣고 법정의 분위기를 목격하고난지라 매우 흥분되여있었다. 한마디로 재판이 리승만박사가 그어놓은 선에서 벗어나고있다고 까박을 붙였다. 장관대리가 영향력을 행사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고 슬그머니 이마를 톡톡 튀겨주기도 하였다.
그렇게 하고 헤여졌는데 청사로 돌아오니 접수실에서 류선녀가 기다리고있었다.
류선민은 동생을 데리고 본청사의 뒤에 있는 별실에 가서 오전에 진행된 재판정형을 구체적으로 청취하였다.
류선녀는 조봉암의 변론과 그에 대한 청중의 반응을 전하고나서 오빠의 손목을 잡고 간절하게 부탁하였다.
《오빠, 난 정말 인간다운 인간을 보았어요. 그런분을 모해하는건 범죄라는걸 오빠도 명심해요. 오빠는 그런분을 모해하는 일에 손을 어지럽히지 말아주세요. 동생으로서 난 이 소리 하고싶어 왔어요. 지금까지는 그분을 위하여 오빠를 찾아왔지만 오늘은 오빠를 위해 찾아왔어요. 죽산선생에 대한 재판으로 오빠의 이름이 덞어지는게 나는 정말 싫어요.》
류선녀는 정말 이날은 그에게 더이상 애원하지 않았다. 도와달라는 말도 없었다.
이렇게 되여 경무대 경호실장과 동생의 새짬에 끼여들어 머리를 싸잡고있던 류선민이 동생이 보는 앞에서 전화기를 들었던것이다.
그는 자기의 복잡한 심중을 헤아려보고있는 류선녀를 흘끔 돌아보고나서 전화를 계속하였다.
《그런데 말이요, 홍판사! 그건 좀 고려해야 되지 않겠소? 우리 재판력사에 내무부 장관을 법정증인으로 내세운적이 있었던가? 그것도 지방법원의 증언대에 말이요.》
이건 도청을 하고있을 정제관의 부하들에게 던지는 소리이기도 하였다.
《장관님! 지방법원이라는 초라한 존재와 법정은 별개의 의미인줄로 압니다. 법정에서는 지방법원의 이름이 아니라 법의 이름으로 판결이 내려집니다. 법에 성역이 있어서는 안된다는것을 당신께서도 잘 아시면서 동요합니까?》
《아, 거 뭐 동요까지야 뭘… 그렇게 야박하게 날 벼랑턱에 세우지 말게.》
홍병삼이 강한 어조로 들이대는 바람에 부아가 나서 주춤거렸다.
《이것은 법의 권위이며 법정의 권위입니다. 누구의 체면이나 얼굴이나 보고 눈치놀음할것 같으면 애당초 진보당이라는 거대야당과 조봉암이라는 정치거물을 어떻게 심판한다는것입니까? 이것은 헌법의 상징인 통치권자로서의 리박사의 존엄을 실추시키는 행위가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이건 재판의 질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까놓고 말한다면 조인수검사가 기울어지고있습니다. 원체 조봉암피고에게 대적이나 되는 인물입니까? 이러한 때 정제관장관이 증언대에 직접 올라 조봉암과 맞붙는다면 재판의 형세가 근본적으로 바뀌여지리라고 확신합니다.》
홍병삼 역시 지금 자기들의 전화대화를 특수요원들이 다 듣고 인차 정제관이나 리승만에게까지 보고하리라는것을 짐작하고있었으며 류선민이 더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배수진을 치느라고 일부러 엄포를 놓았다.
《좋소, 좋소! 너무 어마어마하게 닦아세우는구만. 임자같은 배짱꾸러기가 이번 재판을 주관하게 된게 다행일세. 하여간 좋네. 그 사람을 언제까지 가게 하면 되겠나?》
《오후 3시에 개정합니다. 그런데 30분전에 와서 증인서약을 해야 하니 2시 30분까지는 도착시켜주십시오.》
《증인서약? … 그건 좀 생각해봐야 되지 않을가?》
《안됩니다. 제가 또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성인들의 말로 괴롭혀야 할가요? … 장관과 함께 부인도 꼭 2시 30분에 법정에 도착하도록 해주십시오.》
《부인? … 그건 또 뭐요? 부부동반 드라이브시켜주자는거요? 하필이면 그 스산한 재판정에 말이요. 정제관의 녀편네가 가겠다고 할가? 그 녀자가 입심이 드세기로 소문났다고 하던데…》
《와야 합니다. 그 역시 조봉암이 자체변호인자격으로 제기한 증인신청이고 이미 법정이 합의를 준것입니다. 그들이 첫 증언자로 선정되였으니 두분이 출두하기 전에는 오후재판을 개정할수 없다는데 대하여 류의하여주십시오. 입심이 세다니 더욱 적중한 증언자가 되겠군요. 나도 정제관장관을 좀 압니다.
만약 두분이 끝내 증언에 응하지 않는다면 법정명령위반, 공무집행방해죄로 그들부부에게 구속령장을 신청, 발급하겠습니다. 조봉암피고가 사실은 대통령까지 법정증인으로 호출하였습니다. 사태가 복잡해질가봐 적당히 구실을 만들어 기각시키기는 했는데 정제관이야 허허…》
《저런, 리승만박사까지? … 조봉암이 배짱꾸러기야. 알겠소, 알겠소! 너무 세도쓰며 위협을 하진 마우. 그것 참 볼만 하겠군.》
류선민은 법관의 엄격한 요구에 더 할 말이 없어 이렇게 중얼거리며 전화를 놓아버렸다. 전화를 끊고 잠시 숨을 돌리고난 류선민은 제풀에 흥이 나서 한참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전화를 들었다.
《내무부 장관을 찾아!》
인차 전화가 련결되였다.
그런데 상대는 첫마디부터 볼부은 소리다.
《당신네가 정말 이럴 내기요? 홍병삼, 그 자식이 평생토록 말단판사노릇 하다가 정치재판 한번 맡더니… 미련한 송아지 백정 모른다는 말 있소. 우쭐해가지고 누굴 감히! 난 안 가겠소! 안 가겠단 말이요! 그리 아오!》
정제관은 열이 올라 제잡담 밸머리를 쳐들고 떠들어댔다.
류선민이 히죽거리며 사납게 갈갬질을 하는 사냥개를 길들이듯 먹이를 던져주며 여유있게 몰아세웠다.
《이거 천하를 거느린 정장관답지 않게 뭘 그렇게 역증부터 내시오? 그 사람들이 고충이 많소. 검찰이 내세운 검사들이 밀린다더구만. 하기사 우리 검사들이라는게 조봉암과 맞설만 한 재목감이 있소? 이러한 때 정장관같이 법도 알고 치안을 총괄하는 무게있는분이 나서야 기울어져가는 재판을 역전시킬수도 있다는거요. 당신이 붙잡아들인 사람이니 한번 가서 봐주는것도 좋지 않을가?》
《그래, 정 우리 량주를 그 증언대에 세워놓아야 재판에서 이길수 있다는거요? 꼭 이 사람을 망신시켜야 되겠는가 말이요.》
《어째서 그렇게만 한곬으로 생각하시오? 망신을 시킨다니, 자신이 없다는 소리요? 우리를 좀 도와줄셈 치고 나서주오. 일단 법정합의가 된 이상 거절하면 거 좀 불편할수도 있소.》
《불편?》
《그 사람들이 법정호출을 거절했다고 떠들어대면 어떻게 될것 같소? 시끄러워질수 있소. 조봉암이 아니라 장관량주가 뉴스인물이 될수 있소. 경무대에까지 그 소식이 전해져보오. 좋을게 뭐 있소? 내 생각에는 한번 정장관이 나서서 조봉암을 얼이 빠지게 답새기는것도 좋을듯싶구만. 그러면 대통령께서도 좋아하실거요. 과시 학식이 있는 장관이 다르다고 할거요.》
류선민이 참새에게 굴레를 씌우듯 살살 어루만지기도 하고 바늘끝으로 이마를 꼭꼭 찌르기도 하면서 몰아가자 정제관도 손을 드는수밖에 없었다.
류선민은 전화를 다 하고나자 아슬아슬한 심리전을 치르고난듯 길게 숨을 내그으며 류선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가봐라. 에 참… 세상일이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나를 리해하여다오. 그 사람이 대틀은 대틀이다. 내무부 장관을 증언대에 올리려 하다니… 대통령까지 증언대에 세울려고 했다면서? 허 참, 그래서는 어쩌자는건지…》
류선녀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거려보이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류선녀가 떠나가자 류선민은 전화로 홍병삼을 찾았다.
《홍판사, 당신의 지시를 집행하였소.》
《지시라니요? … 그러면…》
《그렇소. 정제관이 처를 데리고 제시간에 도착할거요. 잘해보시오.》
《고맙습니다.》
전화를 마친 홍병삼이 인기척에 돌아서서 이미 방에 들어와있는 배석판사들에게 물었다.
《내가 전화받는걸 들었소?》
《들었습니다.》
《돌아가도 되겠소. 내무부 장관이 우리 법정의 출두요구를 거절한다고 하여 대책을 토론하자고 불렀소. 불응하면 법적구속까지 제기하자고 해서 임자들을 불렀는데 법무부 장관대리가 설득시킨것 같소. 두고보자구. 재판이 어떻게 될것 같소?》
홍병삼은 재판장을 맡은이래 처음으로 이런 질문을 젊은 배석판사들에게 던져보았다. 이들이 앞으로 판결문을 작성할 때 범죄의 유무, 죄상에 따르는 형벌의 유무를 확정하게 된다.
《론의할 여지도 없다고 봅니다.》
홍병삼의 말이 떨어지게 바쁘게 자기 립장을 표명한것은 홍병삼이 자기의 애제자로 각별히 정을 들여 키우는 올해 서른에 나는 젊은 판사 려현주다. 전쟁후에 대학을 졸업하고 법원서기로 취직하였다가 두해전에 법관고시에 통과되여 판사로 되였다. 법리론에 밝은데다가 법원에서 제일 강직하고 대가 바르며 의협심이 있는 판사로 알려져있다.
려현주자신도 취직해서부터 홍병삼의 사람됨을 가려보고 자기를 제자로 받아달라고 하여 두사람은 25년이라는 나이차이를 초월하여 믿고 따르는 허물없는 사이가 되였다.
홍병삼은 이번 특대형정치사건을 담당하게 되였을 때 배석판사로 려현주의 이름부터 쪼아박았다. 법원의 여러 사람들이 반대를 해서 마지막에는 자기도 물러서겠다고 들이대여 관철시키고야말았다. 재판을 공명정대하게 치르자면 그와 같이 제 목소리를 낼줄 아는 조력자가 필요하였던것이다.
그보다 열살이나 우인 배석판사 최창섭은 법원장이 특별히 홍병삼에게 붙여준 배석판사이다. 서울법조계에서 흔히 볼수 있는 세도군이며 아첨쟁이며 협잡군이다.
《재판이 잘되는것 같지 않습니다. 재판장님이 좀 방향을 틀어야 하지 않을가요?》
이것이 최창섭의 대답이다.
《방향을 틀다니?》
홍병삼이 의미심장한듯싶은 최창섭의 말에 시치미를 떼고 퉁명스럽게 반문하였다.
최창섭은 조심스럽게 대답하였다.
《우리가 주피고인의 자체변론과 증인심문권을 준것이 잘못되지 않았는가싶습니다. 그렇게 되니 재판정이 어차피 주피고인의 선전마당으로 되는수밖에 없게 되였습니다.》
최창섭은 왜정말기에 헌병보조원으로 있다가 법관시험을 치르고 북쪽 어느 지방의 판사노릇을 해먹다가 해방이 되자 친일파로 몰려 남으로 솔가도주하여온 사람이다.
그는 이번에 검사측이 제출한 기소장에서 빈구석과 허약한 론점들을 찾아내여 부단히 검사에게 알려주어 기소장을 완성하도록 암암리에 도와주었다. 이게 홍병삼의 눈에 걸려들어 쫓겨날번까지 했다. 법원의 압력으로 겨우 눌러앉게 되였다.
자기도 도와나선 문제의 기소장에서 숱한 허물들이 연방 드러나 검사쪽이 차츰 밀리면서 재판의 결말이 뻔드름해지자 최창섭은 그만 심술이 잔뜩 동한 모양이다. 그를 첩자로 등록하고 기밀비까지 다달이 주고있는 특무기관에서는 재판을 역전시키기 위해 재판장을 움직여보라는 독촉을 매일처럼 보내오고있다. 홍병삼은 이러한 사실은 모르고있었으나 최창섭이 더러운 끈에 매달려있다는것은 육감으로 느끼고 경계하고있었다.
《그러니? … 이미 법원과도 합의한 문제를 뒤집자는거요? 우리가 결정해놓고 우리가 변경시킨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소. 법원의 권위에 관한 문제요. 이제는 때늦은 일이기도 하거니와… 피고에게 자체변호를 승인한것은 결코 법정관례에 어긋나는 일로 될수 없소.
재판에서 중요한것은 기소측과 피고측의 립장이 남김없이 정확히 드러나게 재판을 끌고나가는거요. 그래야 가장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결을 내릴수 있소. 자칫 헛눈을 팔거나 그 무슨 뒤공론에 귀를 기울이다가는 언젠가는 반드시 꺼꾸로 자기가 쇠고랑을 차게 된다는것을 명심해야 하오.》
홍병삼은 최창섭이 다시 막후권력의 입김을 되받아 내뱉지 않도록 훈계를 하였다. 자갈을 단단히 물려야 했다. 그냥 코코에 걸고들면 시끄러운 일이였다.
《옳습니다. 재판장님의 말씀이 지당합니다. 저도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려현주가 홍병삼의 말에 선뜻 공감을 표시하는데 최창섭은 언짢은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기만 하였다.
홍병삼은 최창섭이 원체 안속이 시커멓다는것을 알고있는지라 보다 엄하게 신칙하였다.
《임자들에게 부탁할게 있소. 내 전일에도 두세마디 했지만 결심재판할 때까지 일체 초대에 응하지 말며 타인들과의 접촉을 불허해야겠소. 반드시 만나야 할 때는 나에게 제기하고 우리 세명의 합의를 받아야 하오. 잠자리를 옮길 때도 같소.
엄정과 중립을 지켜야 하오. 이게 법관의 량심이고 법관으로서 자기를 지켜내는 좌우명이요. 알겠소?》
홍병삼은 최창섭을 쏘아보며 다짐을 받았다.
《알았습니다.》
최창섭은 량볼에 밤 한알씩 물고있는듯 불룩해있다가 마지못해 시들하게 대꾸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