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1 회)
제 4 장
1
재판이 시작되여 한주일이 지나갔다.
홍병삼은 이날 재판을 10시부터 시작하였다.
리유가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중대사건이 너무 속도가 급하게 다루어지고있다는 법무부의 강한 불만이 전해져왔던것이다.
홍병삼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 지금까지 진행되여온 재판정형을 깐깐히 점검하여보았다.
한주일의 재판을 돌이켜보면 검사의 기소장랑독에 사흘 걸리고 나머지 기일은 검사가 호출한 검사측 증인들에 대한 심문으로 채워졌다.
검사측에서 여느때없이 증인들을 많이 불러들여 오히려 시간을 늦잡는다고 두세번 주의도 주었는데 속도가 급하다는 소리가 괴이쩍다.
홍병삼은 사건심리의 속도를 늦추고 재판을 완만하게 끌고가라는 우의 지령이 있은것으로 추측되였다. 무엇인가 재판을 질질 끌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 모양이다. 막뒤에서 새로운 놀음이 준비되고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 홍병삼은 배석판사들과 협의하고 이날부터 개정시간을 한시간 뒤로 미루며 페정시간은 한시간 당기게 재판의 일과를 조절하였다. 점심시간은 두시간으로부터 세시간으로 늘구었다.
홍병삼은 다시 빈자리가 없어진 방청석을 둘러보며 흡족해졌다. 방청객들이 줄어드는것은 재판이 흥미진진하게, 청중의 호기심과 기대를 자극하도록 진행되지 못한다는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는데는 재판장의 수완에도 많이 달려있다.
이날 방청석이 꽉 찬것은 조봉암이 자체변호를 하게 되기때문이다. 그 소식이 전해져 기자들이 앞을 다투어 달려오고 방청객들도 물밀듯이 밀려든것이다.
법정이 다 정돈되자 홍병삼은 이날의 재판일정을 알려주었다.
《오전부터 조봉암피고인의 요청에 따라 진행되는 자체변론이 있겠습니다. 증언청취는 래일 오후 3시부터 하겠습니다. 먼저 조봉암피고인, 증언자들을 신청하시오.》
홍병삼의 호출에 따라 며칠동안 전우들과 함께 그 두툼한 입을 무겁게 다물고 반석처럼 앉아있던 조봉암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봉암은 잠시 재판석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장내를 드르릉 흔드는 웅건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본인은 증언자로 다음과 같은 인물들을 불러줄것을 요청합니다. 첫째 증언자는 리승만박사입니다.》
《리승만박사?!》
홍병삼이 덴겁을 한듯 큰소리로 물었다.
《리승만박사?!》
방청객들은 그 소리를 속으로 혹은 입밖에 받아불렀다. 장내가 바람맞은 갈대숲처럼 우실거렸다. 이거야말로 구경거리다.
리승만을 증언대에 불러내다니… 보통사람의 담으로 궁냥이나 해볼 일인가.
사람들은 저저마다 그 무슨 굉장한 일이 터질듯싶은 야릇한 호기심과 이 제도에서 호랑이수염과도 같은 존재인 리승만을 자기의 변론에 대한 증언자로 불러낸 조봉암의 담과 기개에 경악하였다.
조봉암이 자기의 증언자신청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왜냐하면 이 재판은 결국 나와 리승만과의 여러해에 걸치는 대결의 연장입니다. 따라서 반드시 리승만을 증언대에 세워놓고 우리의 대결에 대한 법의 엄정한 심판을 받아야 할것입니다.》
조봉암의 설명이 끝나자 다시금 장내가 웅성거리고 여기저기서 찬탄의 목소리가 들렸다.
홍병삼이 급해맞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10분간 휴정을 선포합니다.》
홍병삼은 이렇게 소리치고는 좌우의 배석판사들을 거느리고 황황히 뒤문으로 빠져나갔다.
휴정이 선포되자 기다린듯 방청석은 벌둥지를 쑤셔놓은듯 소란스러워졌다.
웃음소리, 웨침… 그런가 하면 어느 구석에서는 《죽산이 미쳤다!》는 비웃는 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그 소리는 인차 여럿의 함성에 쑥 기여들었다.
《리박사를 증언대에 세우는게 옳다!》
《죽산은 역시 죽산이다!》
《두사람을 맞세워보자!》
《그게 민주주의다! 죽산, 해내라!》
열기띤 부르짖음은 그냥 장내를 들었다놓았다.
홍병삼이 10분후 배석판사들을 데리고 들어섰다.
방청석의 소요는 일시에 멎고 수백의 눈길이 홍병삼의 입에 모아졌다.
《재판을 계속하겠습니다. 피고인의 증언자신청은 기각되였습니다.》
《기각리유는? …》
《국회의 과반수동의가 없이는 대통령을 재판정에 내세울수 없습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첫 증언자신청은 철회하겠습니다.》
조봉암은 선선하게 홍병삼의 립장을 받아들였다.
《두번째 증인으로는 내무부 장관과 그의 부인을 신청합니다.》
《내무부 장관? … 부인까지? …》
홍병삼이 또다시 아연해진 표정이였으나 인차 고개를 끄덕이였다.
《접수합니다.》
《그 다음에는 전 민주당 최고위원 탁준의…》
《탁준의? … 그는 이미 기소측의 증인으로 증언을 한바 있습니다. 증언은 철저히 변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호응을 모색하기 위한 변호측의 법적권리행사입니다.》
홍병삼이 극히 실무적인 어조로 설명하였다. 그는 조봉암이 무엇인가 오산하고있다고 인정하였던것이다. 증언은 그를 신청한 인물의 지지자, 적어도 동정자로 되여야 하는데 온통 가장 철저한 도전자들만 계속 불러대니 그 밑바닥에 깔린 의도가 리해되지 않았던것이다.
조봉암이 증언의 필요성을 혼돈하고있거나 그 어떤 탈선된 전술에 유혹되여 그에게 유리하게 흐르고있는 재판추이를 역전시 켜놓을지도 모른다.
그래 홍병삼이 실무적인 어조로 경종을 울려놓았는데 당자는 여전히 고집스럽게 주장하였다.
《알고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전 진보당 선거위원장이였던 서정후…》
홍병삼은 조봉암의 요구에 더는 개의치 않고 접수한다고만 짤막하게 대답하였다.
조봉암은 강화도의 고향친구인 바위쇠의 이름도 불렀다.
그밖에 1954년도에 스위스의 제네바 나숑궁전에서 통일문제를 의제로 열렸던 남북통일회담에 참가했던 남측대표의 이름과 《국제간첩단 망책》들이라고 하는 강무호와 정명갑이라는 이름도 있어 이채를 띠였다.
그의 증인신청이 끝나자 다시금 장내가 세차게 술렁거리고 검사석에서도 저희들끼리 수군거리는것이 보였다.
조인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항의하였다.
《재판장님! 이것은 재판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행위입니다. 증인신청을 다시 하도록 고려하여야 합니다.》
《기각합니다.》
홍병삼이 조인수의 항의를 즉시에 묵살하여버렸다.
조인수가 뭐라고 또 발언하려고 하자 홍병삼이 무뚝뚝하게 그의 말을 가로챘다.
《재판정은 이미 피고 조봉암의 증언자신청을 접수하였습니다. 서기석에서는 즉시 증언자들에게 래일 오후 3시까지 법정에 출두하도록 조직사업을 하시오. 현재 서울부재중이여서 참석할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서면질의를 제기할수 있으며 가능한 대리인을 참여시킬수 있습니다. 다음순서로 넘기겠습니다. 조봉암피고, 자체변론을 시작하기 바랍니다.》
이때 변호인단의 단장이 조봉암을 위하여 준비하였던 변호원고를 들고와서 조봉암에게 내밀었다.
《고맙습니다.》
조봉암이 변호인단 단장에게 사의를 표하고는 두툼한 원고를 뒤적거려보다가 자기 걸상에 가져다 놓았다. 이윽고 그는 우렁찬 목소리로 변론을 시작하였다.
《기소자측이 제기한 공소와 증인들의 증언을 주의깊게 들었습니다. 그걸 들으면서 우리 피고인들은 당국이 구체적인 범죄가 있기때문에 우리를 립건한것이 아니라 어떠한 목적하에 일정한 가설을 세워놓고 범죄를 구성해보려는 시도에서 본 재판을 벌리고있다는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재판장님! 이것은…》
조인수가 이렇게 부르짖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검사, 이것은 항변이 아니라 변론입니다.》
《난 검사로서, 기소측의 대표로서 기소전반을 부정하는 저런 식의 변론을 스쳐보낼수 없습니다. 항의합니다.》
《항의를 기각합니다. 피고측은 기소장을 전반이든지 혹은 부분적이든지 부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검사의 명분이 없는 항의는 재판에 혼란을 준다는것을 경고합니다. 변론을 계속하시오.》
홍병삼은 커다란 무게를 담아 검찰청이라는 배경을 믿고 함부로 갈개는 검사를 꾹 눌러놓았다.
조인수는 론리가 명백한 재판장의 설명에 더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첫째문제, 진보당의 통일정책이 반체제적인 리적행위로, <보안법>의 대상으로 된다는 기소측의 주장에 대하여 언급하겠습니다.
우리 진보당의 통일강령은 전쟁을 반대하며 평화를 갈망하며 우리의 힘과 슬기로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는것을 기본요점으로 하고있습니다. 우리 민중은 동족상쟁의 참변으로 무수한 희생과 불행을 당한 쓰라린 체험을 가지고있습니다.
그러면 이 땅에서 다시금 민족과 국토를 황페화시키는 제2의 전쟁을 통일이라는 미명으로 용납할수 있는가?
그 어떤 대의명분을 세우든지 우리는 이 땅에 땅크가 진동하고 총탄이 우박치듯 쏟아져 동포의 피가 강물이 되여 흐르는것을 묵인해서는 안됩니다. 기소장과 일부 증인들의 증언을 듣고나면 평화라는 말을 북녘에서 쓴다고 하여 우리 진보당이 통일이라는 단어앞에 붙여놓은 평화라는 말이 반체제적이요, 리적행위요 하고 주장하고있는데 이건 유치한 말의 유희일뿐입니다. 평화란 말은 북녘만이 점유하는 전매특허물이 절대로 아닙니다. 평화와 자유와 평등은 전인류사적가치를 가진 세계의 공용어이며 유엔의 3대원칙이고 목표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기소측은 전쟁을 원합니까?
우리 당의 통일정책은 유엔결의와 54년도에 열린 남북제네바통일회담정신에도 전적으로 부합됩니다. 유엔총회들에서 우리의 통일문제를 놓고 어떤 결의들이 채택되였는지 더듬어봅시다.》
이렇게 열변을 토해가던 조봉암은 자기 걸상에 놓은 원고를 들추어서 여러건의 서류를 꺼내들고 다시 마이크앞에 나섰다. 그는 서류를 한건한건 들어보이면서 변론을 계속하였다.
《1953년 제8차 유엔총회는 <조선문제의 해결에서 평화적원칙을 고수한다.>라고 결의하였습니다. 54년에 열린 제9차 유엔총회는 <조선의 통일은 조속히 평화적으로 실현되여야 한다.>라고 결의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55년에 열린 제10차 유엔총회결의안입니다. 역시 조선문제해결에서 평화의 원칙을 강조하였습니다. 56년에 열린 유엔총회도 조선의 평화통일을 반대하는 움직임에 대하여 강력히 규탄하는 결의를 채택하였습니다.
제네바에서 열린 조선전쟁유관국들의 대표들이 모인 정치회담에서도 나라의 통일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실현해야 한다는것을 절대절명의 기본원칙으로 합의하였습니다. 그 회담에 리승만박사의 특사로서 우리 남측의 대표도 참가하여 평화적인 통일문제해결을 지지하여 연설하였으며 평화통일헌장에 리승만박사의 위임에 따라 수표를 남기였습니다. 결국 리승만박사도 평화통일을 지지하고있다는것을 반증합니다. 따라서 마땅히 리승만박사도 <보안법>상의 리적행위, 북과의 내통죄, 국시위반죄로 이 재판정에서 나, 조봉암과 함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아니면 이 조봉암의 평화통일론이 범죄로 될수 없다는 증언이라도 해주어야 합니다.
나나 우리 동지들이 목숨을 내걸고 평화통일을 자기 당의 기치로 추켜든데는 이렇듯 그 구호야말로 우리 민족을 살리고 남과 북이 공동으로 번영하며 우리 후손들도 길이 번성해갈 유일무이한 길이기때문입니다.》
조봉암이 이렇게 만면에 배포유한 미소를 담고 방청석으로 돌아서서 손을 들어보이자 누가 시작했는지 우뢰같은 박수가 터졌다.
조봉암의 변론내용을 열심히 메모하고있던 기자들도 박수의 열풍에 합세하였다.
홍병삼도 조봉암의 조리있는 변론에 심취되였다. 그는 조봉암과 하나의 박동으로 뛰고있는 청중을 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이내 재판정의 정숙과 중립을 보여주어야 할 자기의 직분을 의식하고 재판봉으로 앞탁을 몇번 두드렸다.
《정숙! 정숙! … 선동적인 변론은 자제하기 바랍니다.》
홍병삼이 소리쳐서도 열광에 휩싸인 청중의 환호가 계속되자 그때까지 회의장의 분위기에 압도되여 말뚝쥐처럼 꼿꼿이 서있던 경찰들이 우두머리의 신호에 따라 일제히 경찰방망이를 휘두르며 방청석으로 뛰여들었다.
그제야 뜨거운 지지와 공감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던 법정은 조용해지고 조봉암의 저력있는 목소리가 다시 법정을 흔들었다.
《둘째, 우리가 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변란을 기도하였다는 기소측의 주장에 대하여 언급하겠습니다.
기소장에는 우리가 국회와 지방의회들에 우리 당원들을 진출시켜 현 집권층을 뒤집어엎으려고 하였다고 하면서 이것을 <변란>으로, <체제전복죄>라고 고발하였습니다.
우리 진보당은 통치권력장악을 자기의 당면목표로 한다는것을 구태여 숨기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현 정권을 독재정권이라고 락인을 찍어놓았고 공개적이며 합법적인 선거를 통하여 뒤집어엎을것을 민중앞에 약속하였습니다. 민중은 지지표로 우리 당의 이 약속을 지지하였습니다. 우리 당의 존재는 바로 이를 위하여 필요한것이며 오직 이를 위한 투쟁속에 력사적인 사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합법적인 정당의 합법적인 주장과 합법적인 운동을 <체제전복죄>로 몰아붙일수 있겠는가?
나는 벌써 52년도에 우리 동지들과 함께 리승만에게 도전하여 나섰을 때부터 더는 살수 없으니 갈아보자는 선거구호를 내걸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민중의 과반수가 지지하였습니다. 우리가 두차례의 선거에서 득표에서는 이기고 개표에서는 패했다는 소린 나나 나의 전우들이 만들어낸 허구가 아닙니다. 민중의 목소리였고 세론의 공인된 평가였다는것은 여러분들도 잘 아는 우리 력사의 멀지 않은 과거입니다.
그렇다면 당신들 기소측은 우리 당의 이 구호를 지지하여 표를 던져준 과반수의 민중에게도 반란동조죄를 들씌워 이 재판정에 끌어내야 하지 않겠는가?
이 법정에 참가한 여러분들속에는 우리를 지지했던분들도 있을것입니다. 그래, 리승만독재정치를 미워하고 배격하고 뒤집어야 한다는 주장과 운동을 <체제전복기도>로 수갑을 채울수 있는가?》
장내를 뒤흔든 조봉암의 사리정연한 변론에 분노한 목소리들이 일제히 화답하였다.
《아니요!》
장내는 또다시 조봉암에 대한 지지와 사랑과 경탄의 박수와 환호에 휩싸였다.
홍병삼은 조봉암이 꼭 자기가 하고싶던 소리를 대신해주는듯싶어 속이 후련하기 그지없었으나 이제 여기저기서 다그어댈 압력과 협박을 예상하여 재판봉으로 앞탁을 치고 정숙을 보장하여달라고 청중을 향하여 부탁하였다.
그때 조인수가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재판장님! 항의합니다! 이런 식의 재판은 상식이전입니다. 우리 법력사에 일찌기 없었던줄로 압니다. 피고인의 자체변론을 중지시켜줄것을 강력히 제기합니다. 이것은 변론이 아니라 선동입니다.》
《이건 바로 너희들이, 너를 내세운 리승만일파가 만들어낸 력사의 졸작이요, 정치만화다. 너도 한번 저렇게 방청객들을 움직여서 박수 한번이라도 받아봐라.》
홍병삼은 생각같아서는 이렇게 박아주고싶었다.
법력사에 없는 일이라는 지적은 옳다. 하지만 너희들이 사회에 대고 눈 감고 아웅하며 달려든것자체가 애초에 어리석은 오판이였다. 재판놀음이 생겨나 수천년력사를 넘어오지만 이렇게도 후안무치하고 날강도적인 재판이 언제 있었더냐.
하지만 홍병삼은 회의장을 수습해야 할 자기의 책임을 다시금 통감하며 위엄있게 경고하였다.
《기소측의 항의를 고려하겠습니다. 변론자에게 주의를 줍니다. 변론에서 지나치게 선동적인 론조가 반복될 때에는 발언을 중지시키겠습니다. 변론을 계속하시오.》
《아니, 재판장! 검사로서 나는 주의가 아니라 발언중지를 제기하였습니다.》
조인수는 재판장을 향하여 눈을 부릅뜨고 대들었다. 그는 자기의 기소장이 조봉암의 길지 않은 변론으로 벌써 완전히 만신창이 되고 엉터리로 날조된 대본이라는것이 여지없이 드러나자 수치를 더는 참아낼수 없었던것이다. 그리고 재판장이라는 사람이 은근히 조봉암을 두둔하고 부축해주는듯싶어 분통을 터뜨린것이였다.
권력을 등에 진 조인수의 불만과 거만하고 조야스러운 태도는 방청객들의 비난과 배격을 면치 못하였다.
《재판장은 피고의 변론을 막지 말라!》
맨 뒤쪽에 앉아있던 로성팔이 더는 참을수 없는듯 다치면 터질듯 한 방청객들의 심지를 대변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목이 갈린 탁성으로 장내를 짓누르듯 요구하였다.
홍병삼은 법정을 뒤흔드는 청중의 열광적인 요청에 힘을 얻어 법관답게 감정이 없는 메마른 어조로 조인수의 항의를 가볍게 물리쳤다.
《기각합니다.》
조봉암은 태연자약하게 검사석을 지켜보다가 변론을 계속하였다.
《셋째, 나와 진보당이 국제공산당 파견원들과 련계를 가지고있으며 그들의 조종밑에 움직이고있다는데 대하여 대답을 하겠습니다.
물론 이 조항도 변론할 여지가 없이 터무니없는 날조주장입니다. 이 문제의 정확한 해명은 내가 아니라 기소측이 나의 배후인물들로 둔갑시켰고 나 또한 증인으로 채택한 강무호, 정명갑이라는 인물들이 이제 저 증언대에서 기소측의 주장의 진위를 밝히게 될것입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언급은 더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다만 우리 당 통일강령작성시에 북녘의 통일방안을 우리가 입수하여 연구하고 참고한데 대하여 <북의 지령수수죄>, <북과의 내통죄>로 규정하고있는데 대하여 얘기하겠습니다.
우리가 통일강령을 만들면서 통일문제의 상대인 북측이 제기한 통일방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있다면 이보다 세상을 웃기는 일이 어데 있겠습니까. 나와 나의 동지들은 통일과 관련한 문제에서 리승만의 <북진통일>론도 자자구구 따져가며 연구하고 유엔의 결의도 중시하였고 제네바회담정신도 연구하였으며 북의 통일방안도 따져가면서 연구하였다는것을 숨기지 않습니다. 여기서 가장 합리적이고 공명정대한 조항들을, 우리 현실과 우리 민중이 접수할수 있는 내용들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였다는것도 비밀이 아닙니다.
그리고 나는 라지오를 가지고 밤늦도록 북녘방송을 들었으며 미국의 소리방송도, 일본의 도꾜방송도, 서울방송도 들었다는것을 숨기지 않습니다. 이에 대하여 나는 검사에게 밝힌바가 있습니다.》
조봉암은 이미 검사심문시에 반도체라지오사용과 관련하여 주장했던바를 다시 강조하였다.
《넷째, 내가 공산주의자로서 전향하지 않았고 우리 진보당이 계급정당이라는데 대하여 언급하겠습니다.
나는 일평생 세월의 년대들을 넘어오며 굶주리고 헐벗고 무권리한 생산자계급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그리워하였고 그런 사회를 건설하는 투쟁에 나의 평생을 하루같이 바쳐왔습니다. 나의 이 꿈과 리상은 어제도 오늘도 전향하지 않았으며 래일에도 내 심장이 뛰는 한 절대로 전향하지 않을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법정이 전향하지 않는 공산주의자라고 평가한다면 나는 굳이 부인하지 않을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평생토록 원하여온 민중세상을 공산주의로 굳이 부르고싶다면 그렇게 부르라고 합시다. 그렇다면 저는 영광으로 받아들이렵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실상 이 조봉암은 타의든 본의든 일찌기 공산주의대오에서 물러섰고 아직도 자신을 공산주의자라고 량심을 가지고 부를수 없습니다.
나는 우리 진보당이 로동자, 농민의 계급정당을 지향하였다는것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계급사회에 계급의 리익을 대변하는 계급정당이 출현하는것은 정상적인 정치행위입니다. 민주당은 지주계급의 당이며 자유당은 지주, 자본가와 관료배들의 당입니다. 따라서 나는 우리 당을 농민과 로동자, 지식인들을 비롯한 민중의 권익을 대변하는 계급정당이라고 불러준다면 그 역시 나와 우리 당에 대한 최대의 표창으로 고맙게 받아들이고저 합니다. 그러나 실상 저는 부끄럽게도 진보당을 계급정당으로 만들지 못하였습니다.
다섯째, 무기문제.
우리 집에서 나왔다는 보신용 권총은 이미 증언에서 밝혀진 그대로입니다. 독립운동가였던 리시영선생의 선물인 그 총은 지난 30년가까이 나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 총에서 세발의 총탄이 발사되였는데 동북땅의 로령과 할빈에서 나를 추격하던 왜놈헌병오장놈 셋이 그 총탄을 받고 사살되였습니다. 나는 독립운동선배의 정과 뜻이 어려있고 나의 오늘을 지켜주었던 그 권총을 내 인생의 벗으로 아껴왔습니다. 나는 우리의 초대<부통령>도 한바 있는 리시영선생님의 개인선물을 본인에게 돌려주기를 희망합니다. 그 총은 나의 리념과 활동에 여러가지 상징적의미를 가지는 기념품입니다.
재판장님, 방청으로 참석하신 여러분! 저의 변론을 주의깊게 들어주신데 대하여 사의를 표합니다. 이상으로 변론을 마치려고 합니다.》
조봉암이 다시 고조되여가던 변론을 여기서 뚝 자르고 돌아서자 장내는 숨소리 하나없이 고요해졌다.
조인수도 그리고 재판석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깜짝 놀랐다.
시계를 보니 불과 한시간도 넘지 않았다. 적어도 다음날 오전까지는 채우리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시간은 오전 11시, 이날 재판이 시작되여 불과 한시간이 걸린 셈이다.
재판에서 흔히 변론은 기소장보다 더 길고 지루하게 라렬되는게 상례다. 그것은 기소장에서 검사가 밝혀놓은 피고의 범죄를 부인하거나 가볍게 하자면 기소장보다 세배, 네배의 품과 시간이 소모되여야 하는것이다.
그런데 조봉암은 검사가 기소장에서 여러날에 걸쳐 펼쳐놓은 사실들과 분석과 주장을 한시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극히 일반적인 론거로 대치시켜놓았다.
청중은 통쾌한 심정으로 조봉암이 극히 함축된 변론으로 련 사흘에 걸쳐 발표한 검사의 기소장을 완전히 압도하였다고 인정하면서 그에 열렬히 공감하고 지지하고 축하하고있다.
홍병삼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못 시원스럽게 선언하였다.
《오늘재판은 이것으로 끝내겠습니다. 래일재판은 오후 3시에 개정하려고 합니다.》
홍병삼의 선언을 받아 법원서기의 구령소리가 법정을 흔들었다.
《전원 기립!》
법원서기의 구령소리마저 청중들에게는 유쾌하게 들렸다.
청중은 한증탕속에 있다가 얼음물 한바가지씩 들이킨 후련한 심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홍병삼은 가벼운 걸음으로 재판정을 떠나갔다.
이어 조인수가 보조검사들을 거느리고 옆문으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호송경찰들이 기다린듯 들어와서 자기가 호송을 담당하고있는 피고들에게로 다가가 수갑을 채웠다.
《선생님!》
조봉암에게서 줄곧 시선을 떼지 않고있던 류선녀의 부름이였다.
조봉암이 호송경찰이 내미는 수갑을 받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목소리의 임자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저 여기 있어요, 선생님!》
류선녀가 눈물로 함씬 젖은 눈가에 웃음을 담고 자기를 알렸다.
호송경찰이 수갑을 도로 내리우고 가만히 한마디 하였다.
《잠간 만나보시지요.》
조봉암이 호송경찰이 비켜주자 류선녀와 마주섰다.
《선녀선생, 또 오셨구려!》
《!》
뜨겁고 애절한 눈길들이 오고갔다.
북받쳐오르는 정에 목이 꽉 잠겨든듯 류선녀는 얼굴을 싸쥐고 흐느꼈다.
《아버지!》
뒤미처 연경이와 효경이가 목메여 아버지를 불렀다.
《효경아! 연경아! 너무 걱정말아!》
조봉암이 조용히 미소를 지어보이며 딸들을 위로하였다.
효경이가 머리를 끄덕이는데 연경이가 입에 흘러드는 눈물을 감빨다가 빠른 말씨로 오연히 부르짖었다.
《걱정하지 않아요. 아버지, 막 자랑스러워요!》
그때 부녀간의 눈물겨운 상면을 지켜보며 자리를 뜨지 않고있던 많은 방청객들이 일제히 그들에게로 우렁찬 박수갈채를 보내주었다.
《선생님!》
저으기 당황해난 호송경찰의 부름에 조봉암이 이내 그에게로 돌아섰다.
《그래그래, 떠나야지. 이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지 말아야지. 선녀선생, 잘 있소! 얘들아, 다시 만나자!》
조봉암은 이렇게 그들에게 속삭이고는 두팔을 내밀어 수갑을 받았다.
그들이 떠나가자 류선녀와 효경이자매 그리고 김봉무가 힘찬 박수를 보내고있는 방청객들에게로 돌아서서 조봉암을 대신하여 여러번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였다.
박수소리는 오래동안 그칠줄 몰랐다.
청중의 요란한 박수갈채에 묻힌 자매는 속깊이 웨치고있었다.
(아버지!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자랑스럽습니다! 불의에 꺾임없는 그 불굴의 모습, 권력앞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그 모습… 수갑은 찼어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 산악같은 모습이 너무나 장해요!)
류선녀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의 마음을 전하고있었다.
(죽산선생님! 선녀는 이제야 선생님의 참모습을 보게 됩니다. 선생님을 위함이라면 열번, 백번 꺼져도 한이 없을 저의 마음까지 받아주시여 더 힘내주세요!)
그때 등뒤에서 그들을 찾는 웅글은 목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
최기오가 흐려진 표정을 하고 서있다.
《이 늙은이를 용서해다오.》
《아버님!》
자매는 눈물이 글썽해서 최기오를 반기였다.
《너의 아버지는 영웅호걸이다! 불사신이다! 그야말로 죽산이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오지.》
《아버님, 고맙습니다.》
연경이가 그에게 깊이 허리를 굽혔다.
《얘야!》
최기오가 그의 어깨를 잡아주며 다시금 심심히 속죄를 하였다.
《난 늬 아버지와 한생을 겪어왔지만 아직도 아버지를 다는 모르고있었구나. 이제라도 그 뜻을 따르자니 때가 늦었구나. 내 너희 아버지와 늬들앞에 부끄러운 속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참…》
《아버님, 고맙습니다. 저도 저의 아버지가 구속되기 전에 아버님과 전화로 말씀하시는것을 다 들었습니다. 아버님께서 저희들때문에 마음고생하시는것도 잘 알고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어허- 늬두 아버지닮아 속씀이 하늘같구나. 효경아, 연경아! 금룡이도 용서해주려마. 그애가 무슨 정신에 검사놈의 증인으로까지 나섰는지 모르겠구나. 한바탕 욕질이라도 해주고싶은데 그날부터 집에 통 들어서지 않는구나.》
최기오는 하나의 시름거리에 맞다들어 풀이 죽어 중얼거렸다.
뒤에 서있던 김봉무가 최기오를 위로하였다.
《아버님, 아직은 금룡의 증언을 속단하기 이릅니다. 검사의 증언자로 나서기는 했지만 다 듣고보니 검사놈의 기소장의 허점을 드러내서 죽산아버님의 무죄를 론증해준것으로 판단이 갑니다. 난 이태동안 아드님과 가까이 지내면서 금룡의 사람됨을 알고있습니다. 좀더 지켜봅시다. 아직은 아드님을 탓하지 말아주십시오. 그 사람은 무엇인가 바다같은것을 안고있는것 같습니다.》
《그렇다구? … 음… 임자 말 참 듣기가 좋네. 고맙네그려. 죽산을 닮아 모두들 속이 비단결이구나. 연경아, 너두 그렇게 생각하느냐?》
최기오는 김봉무가 진심에서 우러나온 위로에 답답하던 속이 열려 연경에게로 돌아서며 물었다.
《예, 저도 그 비슷한 생각입니다. 저도 사실은 그 사람이 증인석에 앉아있기에 속이 좋지 않았는데 증언은 예상밖의 효과를 남기였습니다. 아마도 그 사람이 원체 그것을 노리고 증언대에 오른것 같습니다. 그러니 아버님, 너무 상심마십시오. 저도 그 사람을 잘못 생각하여온것 같습니다.》
《그래? … 고맙구나!》
최기오는 연경에게서 손을 떼고 품속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냈다.
《나도 여전히 죽산을 지지하는 이 땅의 백성으로 살련다. 효경아, 이걸 받아다오. 이 돈이 많지 않으나 우선 죽산과 죽산의 친구들에게 닭곰을 두세마리씩 해서 올려다오. 모두들 무척 상했더구나. 가슴이 아파 난 자꾸 눈물만 나더라. 저눔들이 기어코 명을 끊어놓겠다고 그악을 부리는데 힘을 내서 이기자면 오장륙부부터 든든해야 한다.》
《아버님, 전번에도 돈을 보내오셨는데 번번이 이러시면… 아버님의 기업이 허물어지고있다는데…》
《일없다. 다 허물어질 때까지 버티여보느라면 다들 풀려나오겠지. 그 다음에는 그 사람들이 권력의 자리에 올라 민중세상 만들고 통일도 하고 무너진 내 공장도 다시 세워주지 않으리, 허허허… 어서 받아라. 부자집이 망해도 3년은 간다는데 허물어져도 내 이제 10년은 견딜만 하다.》
최기오는 헌헌하게 웃으며 기어이 돈봉투를 효경이에게 안겨주었다.
《아버님! 이 신세를 어떻게 다…》
《얘, 섭섭하게 신세라는 말 하지 말아다오. 늬 아버지네가 저렇게 고생고생하는게 제 잘살자고 하는 일이냐? 난 죽산과 평생의 지기다. 그리고 우리가 어디 남남이냐. 사돈간이니 한식솔이 아니냐. 난 언제나 죽산을 받들어왔다. 내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련다. 재판은 이긴 재판이니 과히 걱정 안해도 되겠다. 아무렴, 누구를 감히 건드려보겠다구…》
그는 자매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거려주다가 한결 밝아진 얼굴로 돌아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