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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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이 개정되였다.

홍병삼은 오늘 재판에서는 검사측의 증언청취가 진행된다고 알리고 검사가 채택한 증언자들을 일일이 소개하였다.

그들은 이미 증인석에 나오기 전에 법원서기의 선창에 따라 손을 가슴에 대고 재판정에서 오직 진실만을 말할것이며 만약 거짓증언을 하면 법적인 추궁과 벌을 받겠다고 서약하고 나왔다.

맨 처음으로 불리워나간것은 증인석의 제일 앞자리에 큰 배를 내밀고 피고들을 거슴츠레한 눈으로 보고있던 탁준의였다.

검사의 호출을 받은 탁준의는 재판석을 쳐다보며 거드름스럽게 손을 들어보이고는 유유히 증언대의 계단을 올랐다. 원체 보통키에 뼈대가 굵직한 몸통에 살집이 좋아 마치도 가을을 넘기는 살찐 곰을 세워놓은것 같다. 오늘 탁준의는 자기는 미국식이라는것을 강조하듯 잠바를 걸치고 왔다. 다리통은 적어도 아이들의 한아름은 될것 같고 옆으로 삐여져나온 두볼이 피둥피둥 살져 목대를 가리운채 발을 옮길 때마다 흔들거린다.

탁준의는 살진 오리걸음으로 뚱깃뚱깃하며 계단을 다 오르자 숨이 찬듯 연탁의 두 모서리를 꽉 잡은채 피고석에 있는 조봉암을 노려보았다. 호박덩이같은 상판에 어울리지 않게 부어오른듯 살진 눈덕에 짓눌려 맞붙은것처럼 눈꼬리가 가늘고 암팡진 눈에서 차거운 빛이 매섭게 타고있었다.

대틀임을 강조하려는 탁준의의 거드름스러운 거동이나 눈빛에는 자기의 오랜 숙적을 드디여 쓸어눕히게 됐다는 고약한 쾌감과 자기는 얼마든지 조봉암을 물어메칠수 있다는 허장성세와 자신감이 엿보였다. 그것이 너무 로골적이여서 쳐다보는 눈길들이 곱지 않았다.

《시작하시오.》

홍병삼이 검사에게 증인심문을 지시하였다.

조인수가 증인을 향하여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짤막짤막하게 묻기 시작하였다.

《다망한 사업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호출에 응하여주어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증인성함은 탁준의, 민주당지도부 성원이였지요?》

《그렇소. 지금은 새 당을 만드는중이요.》

탁준의의 천연스러운 대꾸에 청중석에서 쉬쉬하는 가벼운 소음이 일어번졌다. 구석구석에서 코바람소리, 휘파람소리, 경멸의 조소가 탁준의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그러나 탁준의는 낯가죽이 두텁기 짝이 없는 인간이라 태연하게 청중의 그 멸시어린 반응을 무시하듯 굽어보고있었다.

탁준의는 민주당에서도 쫓겨났다. 그 무슨 주의주장탓이 아니라 평생토록 버리지 못하고있는 탐위욕때문이였다.

며칠전 민주당내에서 지도부교체가 있었는데 어디 가서나 파쟁에 이골이 나서 집안을 소란하게 하는 탁준의를 소장파가 주동이 되여 최고대표위원직에서 밀어냈다.

그러자 탁준의는 또다시 체질화된 심술기와 변덕이 발동되여 당안의 반대파들을 대상으로 하여 격렬한 싸움을 벌려놓았다.

탁준의는 연단에 나가서 한참 자기를 타매하고있는 당내 소장파의 대표격인 곽상훈을 마이크로 때리고 주석단에 있던 또 한명의 반대파인물에게는 앞에 있던 명패를 집어던지였다. 그런데 그게 신통히 눈통에 맞아 눈알이 튀여나오는 일대 희비극이 벌어졌다.

기회를 노려오던 반대파세력이 오구구 달려들어 탁준의를 무대에서 끌어내리고 모든 공직에서 추방할데 대한 결의안을 제출하였다. 당수인 고병직도 탁준의의 저돌적인 추행에 여러번 접해오면서 밉살스럽게 보아왔던지라 소장파의 결의안에 마지못해 동의하는 시늉을 하면서 손을 들어버렸다.

인간오물장으로 사회적공인을 받아온 민주당에서마저 쫓겨난 탁준의는 근래에는 몇 안되는 졸개들을 끌어모아 신당을 만들어보겠노라고 전전긍긍인데 바로될리 만무다. 평생토록 파쟁만 일삼으며 배속에 오로지 탐위욕과 배신과 심술만 가득차있는 탁준의밑으로 찾아드는 사람이 별반 없었던것이다.

《피고 조봉암을 알고있습니까?》

《알다마다!》

《언제부터 알고있습니까?》

《력사가 있지요. 그게 1925년 조선공산당이 창건될 때요. 난 그때 공산당의 주류를 이룬 한 당파의 책임자였고 조봉암피고는 국제당의 위임을 받은 전권대표격이였소.》

《당신은 조봉암이 해방전에 끝까지 공산주의자로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할수 있습니까?》

《물론! 저자는 누구도 부인할수 없는 공산주의자였소. 그자신도 그걸 부인할수 없을거요. 이 자리에서 구태여 더 론의할 의미가 없는 사실이요.》

탁준의는 살찐 손가락을 앞으로 쭉 뻗쳐 찌를듯이 조봉암을 가리켰다. 조인수는 자기가 어제 랑독한 기소장의 내용을 확증하는 방향으로 질의문답을 재치있게 유도해갔다.

《해방후의 조봉암피고의 정치성향에 대하여 증언할수 있습니까?》

《아, 물론! 저자는 해방후에도 공산주의사상에는 변함이 없었소.》

《1945년 피고 조봉암은 공산당에서 출당, 제명되였습니다. 이것은 피고의 정치적전향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아니요. 절대로 아니요. 그것은 이른바 위장전향이였소. 당에서 출당된것은 당시 공산당 당수였고 그뒤에는 공산주의배신자로 판명되여 죽은 박헌영에 대한 비판을 했던것과 관련되오. 따라서 그가 공산당에서 제명된것은 박헌영의 보복의 결과였지 절대로 정치적전향이라고 인정할수가 없소. 저자는 당시 박헌영과 결별하고 박헌영의 당과 결별하였을뿐이였소. 절대로 공산주의와 결별한것은 아니요. 난 이걸 확언할수 있소.》

탁준의는 스스로 격앙되여 주먹으로 연탁까지 탕탕 두드리기도 하고 조봉암을 향하여 삿대질을 하기도 하면서 기염을 토하였다. 마치도 자기 말에 대한 일체 의혹이나 불만은 용서할수 없으며 그 살진 주먹으로 두드려부시겠다는 기세등등한 자세였다.

《좋습니다. 당신은 여러 기회에 아직도 피고 조봉암은 공산주의자라고 지명공격을 한바가 있습니다. 이를 재확인할수 있습니까?》

《물론 그거라면 난 열번, 백번도 재확인할수 있소. 저자의 리념이 시뻘겋다는것은 저자가 52년 선거와 56년 선거때 내놓은 공약만 가지고도 확증할수 있소. 개인의 자유와 개성이 준수되고 보장되는 사회,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지 않고 각자의 노력에 의하여 빈부의 차이가 없이 균등하고 평화롭게 사는 사회, 한마디로 저자가 간단명료하게 찍어 함축한 민중사회건설, 이걸 엎어놓으면 뭘로 되는가. 그게 바로 인민이 주인이 된다는 사회주의, 공산주의건설이란 말이요. 좀더 해명합시다. 균형적인 경제체제, 균등한 분배, 이건 뭔가? 자유경제, 시장경제에 대한 로골적인 도전으로서 북쪽식계획경제의 재판이란 말이요.

평화통일론 역시 리박사의 <통일론>에 대한 공공연한 반역으로서 북의 통일론의 복사판이요. 지금 저 사람이 평화통일해서 북에 이남을 통채로 넌떡 섬겨주고 붉은 기발까지 날리겠다고 잡두릴 했으니 이게 제정신이요? 이건 거 꼭 거 누구더라? 그래 돈 끼호떼… 돈 끼호떼식사고방식에 빠져있단 말이요. 이를테면 20세기의 서울판 돈 끼호떼요. 그래 이 서울땅에서 평화통일타령을 부르고 중앙청에 북의 기발을 날리겠다고 하는즉 이거야말로 풍차를 향해 달려드는 돈 끼호떼와 뭐가 다른가 말이요.

난 법무장관노릇도 해본 민주당의 최고대표위원경력자로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신봉하는 사람으로서 조봉암은 어제도 공산주의자였고 오늘도 공산주의자라는것을 증언하면서 반공국시에 용납되지 않는 저자를 마땅히 극형에 처하여야 한다는것을 주장합니다. 따라서 저자에 대한 티끌만 한 관용이나 동정도 리적행위로 엄정하게 심판되여야 할것입니다.》

탁준의는 이렇게 입에 게거품을 물고 독살스럽게 떠들다가 두주먹을 들고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청중의 열렬한 박수를 기다리듯 방청석으로 거만스레 눈길을 굴렸다.

어느 구석에서도 그가 기고만장해서 기다리는 박수는 나오지 않았다.

그때 탁준의의 주장에 대답하듯 재판장이 재판봉으로 연탁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증인에게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증언자는 피고의 인격을 모독하는 발언은 자제하여야 합니다. 증인으로서의 직분에 해당하는 발언을 해야 합니다. 피고의 범죄에 대한 법해석과 형벌의 적용은 재판정이 결정합니다. 재판기록에서 우의 발언은 삭제하겠습니다.》

《뭐라구?》

탁준의가 홍병삼의 준절한 경고에 벌컥 화를 내였다. 눈아래로 보아온 법사회의 말단판사로부터 따끔하게 쏘였으니 자존심이 꿈틀거릴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홍병삼은 한마디 너그럽게 훈계까지 하였다.

《여기가 법원이라는걸 리해하여주기 바랍니다.》

그 소리에 탁준의는 자기의 실책에 창피를 느낀듯 어색하게 헤벌쭉 웃었다.

조인수는 심술궂은 탁준의가 재판장의 사리분명한 두세마디 훈계에 호박상을 끄덕거리고 그 실팍한 허리까지 굽석거리는것을 보자 눈살을 찌프렸다. 그는 탁준의를 더이상 증언대에 세워놓았다가는 그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와서 자기마저 궁색하게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탁준의를 증언대에서 끌어내리려 하였다.

《이상입니다.》

조인수가 탁준의를 증언대에 첫번째 증인으로 내세운 리유가 있었다. 서울정치권에서 리승만을 제외한다면 탁준의만치 조봉암을 미워하고 코코에 걸고드는 인물이 없다는 소리를 들은바가 있었던것이다. 조봉암이라면 평생토록 사생결단하고 접어들어왔다는 탁준의다. 조인수는 까닭이 어디에 있는지 그 구체적세부에 이르기까지 딱히는 모르면서도 탁준의가 조봉암의 숙적이라는 리유로 그를 증인으로 채택하였다. 탁준의도 쾌히 법원의 요구에 응해나섰다.

탁준의를 첫번째 증인으로 내세운데는 다른 리유도 있었다. 그가 한때는 민주당의 대표위원으로도 있었고 지금도 민주당에서 쫓겨났다고 하지만 정계에서 상당한 발언권을 가지고있으므로 법정에서 울리는 그의 목소리가 무게가 클것으로 판단하였기때문이였다.

그래도 조봉암을 법정에서 조겨댈수 있는 인물을 하나쯤은 조봉암과 대적이 될만 한 인물로 선정해야 되겠는데 두루 꼽아보니 탁준의가 적중한 인물일것 같았다. 그런데 정작 내세우고보니 탁준의라는 인물은 곰같이 저돌적인 성격과 정치적적수에 대한 질투와 반감만이 사무쳐있는것으로 하여 오히려 기소장을 흐려놓고있었다.

조인수는 여전히 다 쏟아붓지 못한 앙심과 한을 금할수 없는듯 나무로 만든 계단을 쿵쿵 소리를 내며 내리는 탁준의를 바라보면서 자기가 제때에 끌어내렸다고 다행스러워하였다. 이 법정에서는 심술만 가지고 통하지 않는다. 보다 로회한 술수가 있어야 한다. 이런 생각에서 순서를 바꾸어 불러낸것이 서정후였다.

서정후는 자리에서 무겁게 일어나 개화장을 짚으며 계단을 힘들게 올라갔다. 서정후는 조봉암이 체포되였다는 소식이 서울일판을 뒤흔들어놓자마자 부르기도 전에 경찰청과 검찰청에 부지런히 드나들어왔다. 기소장에 올릴 범행자료를 보충해주기 위하여서였다. 이번에 증인으로 나선것도 자청해서 맡아나선것이였다. 자기가 나서면 그까짓 조봉암쯤은 서너마디 안팎으로 기를 쭉 뽑을수 있다고 조인수앞에서 장담하였다.

조인수가 질문을 제기하려고 하는데 홍병삼의 목소리가 울렸다.

《증인은 거기에 놓여있는 걸상에 앉아도 되겠습니다. 그 걸상은 년세많은분이 우리 재판정의 출두요구를 받아들인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서정후증인을 위하여 마련하여놓은것입니다. 앉으십시오.》

홍병삼의 각근한 권고를 받자 서정후는 재판장의 특별례의에 감지덕지한듯 고개를 숙여보이고 《애햄-》 하고 크게 목구멍을 틔우며 걸상에 앉았다. 그리고는 옆구리에 끼고 나간 종이말이를 증언대에 펴놓았다. 증언을 위하여 단단히 마음을 도슬러먹고 품을 놓고 준비를 해온것이다.

조인수가 질문을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이건 이미 사전에 짜맞춤을 해놓은것이였다.

《나는 먼저 서정후증인이 년로한 몸으로 자청하여 본 재판의 증인으로 나서준데 대하여 감사를 표합니다.》

그 소리에 서정후는 검사석을 굽어보면서 손을 들어보이는것으로 화답을 하여보였다.

그러나 서정후의 그 깍듯한 례의는 그의 의도와는 달리 청중의 심리를 묘하게 자극하여 오히려 야릇한 경멸과 조소를 떠돌게 하였다. 그 나이가 됐으면 골방에 틀고앉아있을노릇이지 중뿔나게 사람죽이는 일에 자진하여 출두하다니 로망이 아니고 뭐냐 하는 심리였다.

확실히 서정후는 전전해에 진보당에서 쫓겨난이래 무척 늙어보이고 초췌해보였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노상 탱탱하던 볼은 푹 꺼지고 채수염은 시들어빠진 파뿌리처럼 윤기가 사라지고 안경으로 가리운 두눈도 움푹 꺼져들었다.

다만 그 눈에 아직은 이루지 못한 복수의 갈망만이 남아서 예리한 빛을 내쏘는것만 같았다.

《건강상관계로 몇가지만 묻겠습니다. 증인은 한때 진보당에 몸을 두고있었지요?》

《그랬소. 지나간 일이요. 한데 이봐요, 검사! 난 보다싶이 들을수 있고 볼수 있고 말할수 있소. 물론 기억하고 분석할수도 있소. 더구나 조봉암과 진보당을 두들겨패는 일이라면 난 해종일이라도 여기 앉아서 말할수 있소. 어서 물어보시오. 난 준비가 되여있소.》

서정후의 말에 장내에는 조소의 물결이 또다시 일어번졌다.

재판장의 담담한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감정적인 언급은 피해주기 바랍니다. 증인은 검사의 질문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서정후는 장내의 가벼운 소요와 재판장의 주의까지 받자 멋적은듯 도수높은 돋보기안경을 벗었다 꼈다 하면서 또 밭은기침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조인수가 서정후의 꼴불견에 길게 한숨을 내긋고 입을 열었다.

《진보당에서 나온 리유를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그건 말이요. 그건 조봉암이 싫어서 달아뺐단 말이요.》

서정후는 캥캥거리는 악청으로 대답하였다.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재판장님의 주의도 명심하고요.》

《념려할게 없소. 내 하고픈 소리를 하는거요. 그럼 구체적으로 말해봅세다. 진보당이 좌경정당으로 됐는데 게서 내가 뭘 한단 말이요? 그리고 당기구상 진보당은 개인독재당이요. 애초에 당수 조봉암을 받들기 위하여 무어진 당이란 말이요. 이게 첫째 리유요. 조봉암이 뭐기에 저 사람 말이 그대로 당강령이고 당규범이 된단 말이요? 진보당것들이란 저 사람 말 한마디에 외로 가다가도 우로 가고 뛰다가도 돌따서 간단 말이요. 리승만독재를 청산하자는 구호를 든 당이라는게 당수의 독재에 대하여서는 누구도 입을 다물고있으니 이런 꼴이 한심하지 않는가. 내 한가지만 실례를 들겠소. 내가 <혁신대통합>을 하자고 해서 모두가 진보당을 깨버리고 조봉암도 떼버리자고 합의를 보았소. 저기 앉아있는 간사장노릇 하던 윤기중이랑 조직간사, 선전간사며 아, 그게 좋노라 다들 손을 들었지. 그래 각파 대표들이 모여 결정을 내리고 축배까지 들었다우. 그런데 그렇게 성사되였던 <혁신대통합>이 어떻게 되였는가. 진보당 중앙회의라는데서 저 조봉암이 진보당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나가시오 하니깐 다들 엉치가 얼어붙어 일어나지 못하는거요. 이게 진보당이야. 이게 독재가 아니고 뭐인가!》

서정후가 그날에 사뭇 절통하던 한이 되살아난듯 대머리를 떨며 마루바닥을 소리나게 굴렀다. 그통에 평소에는 지긋한 나이에 어울려 로정객으로서의 인품을 돋보이게 하던 풍신좋은 채수염이 마구 흔들려 턱부리에 달린 흰 누데기처럼 너덜거렸다.

그러자 장내에는 와- 하고 웃음판이 벌어졌다.

늙은 령감이 채수염을 흔들고 발까지 구르는것이 로망든 인간의 발작으로 비쳐졌던것이다.

그러나 서정후는 장내가 술렁거리고 그속에서 웃음까지 터져오르는것이 자기의 말에 대한 청중의 지지와 공감으로 의식한듯 신명이 나서 계속하였다.

《둘째로, 내가 진보당에서 나온것은 변증법적유물론에 립각한 맑스주의리론을 토대로 한 당이라는데 있소. 이건 뭐 그렇게밖에 될수 없지요. 아까 민주당에서 큰 자리 맡아보던 탁준의씨가 말하였는데 난 좀 다른 각도에서 증언하겠소. 당수는 유물론자요, 맑스주의자요. 그러니 당의 체질이 달리될수 있는가.

셋째로, 진보당은 계급정당이요. 로동자, 농민의 당이라는거요. 저 사람이 농지개혁을 내놓을 때에도 농지의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주장했단 말이요. 이게 지주를 죽이는 법이란 말이요.

자고로 선친들이 피땀을 흘려 마련해온 땅을 거저 먹겠다니 이게 도대체 소갈머리가 고약하지 않소? 저 사람이 원체 지지리 못살던 정배살이집안의 후손이니 공짜로 남의 땅 빼앗을 궁리를 하는게 응당한 일이기도 해요. 글쎄, 거 로씨야의 문호 똘스또이를 귀감으로 해서 지주들이 자발적으로 땅을 작인들에게 준다면 거야 좋은 일이다만… 이렇게 놓고보면 진보당이 계급정당이 아니고 뭔가. 계급정당은 우리 사회에 존재가치가 없단 말이요!》

조봉암은 연탁에 펴놓은 발언원고를 뒤적거리며 노기서린 목소리로 떠들어대는 두상의 초췌한 꼴을 아연해진 눈으로 쳐다보았다. 너무나도 상상밖으로 인간성을 잃은 서정후가 불쌍하기 그지없었던것이다.

《가련한 인간!》

입밖으로 이런 말이 튀여나왔다.

저것은 완전한 변질이다. 더럽게 썩고 부패해진 인간이 인간의 허울만 쓰고 단말마적인 발작을 하고있다. 저게 바로 두해전에 자기를 밀어주었던 선거위원장이 맞는가. 명색이 선거위원장이였는데 자기가 지지하고 옹호하고 선전해준 인물과 그 인물이 내세웠던 공약을 걸고 두해가 지난 오늘에 와서 저렇게도 더럽게 강짜를 부려 뒤집고 타매할수 있는가.

탁준의의 증언은 궤변이고 억지주장이고 한풀이이기는 했지만 다소 리해가 가기도 하였다. 그는 벌써 서른해전 사상전향자로서 사회의 버림을 받았다. 지금도 정치가로서는 고사하고 인간으로서의 대접도 받지 못하고있기때문이다. 그러니 기회를 만났다고 기고만장해가지고 덤벼든것이다.

저 인간은 사정이 다르다. 비록 우리곁을 떠나가기는 하였어도 우리에게 아픔을 남겨주기도 하고 후회도 가다듬게 하는 인물로 되여있다. 어떤 때는 이제라도 다시 그에게 손을 내밀어 정치가로서의 여생을 마지막까지 가꾸어주고싶은 련민의 정도 가져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제 보니 저 사람도 인간으로서의 향기를 잃고 송장내를 풍기며 꺼져가고있다.

조봉암은 그래도 정치가로서의 저 인간의 운명을 놓고 책임감을 느끼군 하던 지난날이 떠오르자 쓰거운 자기 환멸을 금할수 없었다.

민주주의운동의 원로라는 의미에서 출신과 재산과 사상적지향은 불문에 붙이고 조국의 력사의 한 구간을 아름답게 장식하도록 기대를 걸었던 인간이 어쩌면 저럴수 있느냐.

문득 언제인가 최금룡이 저 령감을 놓고 연경에게 했다는 뒤소리가 생각났다. 그는 어찌하여 민중세상을 주장하는 선생님밑에 지주로서 권력욕이 고질화된 인물을 받아들이였느냐고, 이것은 승냥이와 사슴을 한우리안에서 키워보자는것이나 같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 금룡이! 넌 참 눈이 밝다. 승냥이와 사슴은 절대로 한 우리안에서 공생공존할수는 없구나. 간에 가붙고 염통에 가붙는 저 인간… 하지만 저것이 저 인간의 본심일가?)

조봉암은 아직도 서정후의 체질에 가량이 되지 않았다. 그의 권력야심이란 한발 비켜서주면 리해가 가는 일이다. 권력에 대한 욕망을 놓고 시비를 캔다면 이 사회에 머리 쳐들고있는 정치가들이 성해 남을게 얼마 없을것이다.

서정후는 연탁에서 눈을 떼고 도수안경을 벗어들었다. 그는 방청석을 의아한 눈으로 둘러보았다.

자리까지 차고 일어난 자기의 열변에 외마디 환성이라도 보내줄것 같은데 청중은 갑자기 다들 목석이 된듯 묵묵부답이다.

(어찌된노릇이야? 이마전에 열이 나도록 소리쳤는데 어느 녀석 하나 손흔들어주지 않으니…)

서정후는 노여움이 부그그 끓어올랐다.

(이거 참, 모두 죽산과 한패당이군. …)

검사의 얼굴도 얼핏 살펴보니 시원치 않아하는 기색이다.

사실 조인수는 지금 서정후의 분별을 잃은 말과 거동을 보면서 저 인간의 출두요청을 괜히 받아들였다고 생각하고있었다.

서정후는 평생을 정치판에서 살아왔다는게 온통 꼬리잡힐 소리뿐이다.

계급정당이라고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주장은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현행헌법을 무시하는 궤변이다. 맑스주의를 리념으로 했다 하여 법정시비를 캘수도 없다. 더구나 계급정당이라고 타매할수야 있는가.

당이란 도대체 뭔가? 계급의 리익을 옹호하고 대변하기 위하여 뭉쳐진 정치집단이다. 서정후의 주장대로 한다면 지주계급의 리익을 대표하는 정당인 민주당도 결국 계급정당이라고 비난을 받아야 할것이 아닌가. 괜히 변호인단에 언질만 주고 기소측을 피동에 빠뜨려놓고있다. 저 인간도 제때에 증언대에서 끌어내려야 한다.

《더 물어볼게 없습니다.》

조인수는 울화가 치밀어올라 화난 어조로 서정후와의 증인심문을 끝내버렸다.

그 소리에 서정후가 무슨 소리냐는듯 확 타올라 소리질렀다.

《물어볼게 더 없다니? 난 할 소리가 이렇게 많단 말이요! 계속 물으라니깐.》

서정후는 아직도 열어보지 못한 서류들과 넘기지 못한 두툼한 발언원고를 검사에게 흔들어보이였다. 한바탕 조봉암에 대한 한을 성토해서 법정을 들었다놓자고 이 시각을 별러왔는데 말꼭지나 떼놓고 이렇게 싱겁게 물러설수 있느냐.

서정후가 이번에 자진하여 남들은 피해서는 증인석에 부등부등 나선데는 리유가 여러가지가 있었다.

조봉암때문에 진보당에서 쫓겨난 수치에 보복하자는것이 첫째 리유다. 그런가 하면 두해전에 초야에 묻혀버린 서정후라는 인간의 배심과 정치력을 한번 과시하여 정치권에 마지막으로 복귀해보고싶은 야망도 있었다.

지금 같아서는 어느 하나도 성취될것 같지 못하다. 성취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자기 몸값이 이 증언대에서 또 한번 추락되여버린것만 같았다.

여론이란 언제나 랭정하다. 바란다고 머리 끄덕여주는게 아니다.

서정후의 부질없는 요청에 장내의 여기저기에서는 비웃음소리만이 들려올따름이다.

《서정후증인, 증인의 적극적인 협조자세에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순서로 넘어가겠습니다.》

재판장이 점잖은 소리로 사의를 표하고 걸상에 앉아버티고있는 서정후를 무시하는데 그 소리도 곱게 들리지는 않았다.

(허, 괜한짓이였군. 검사고 재판장이고 날 골려먹는군.)

서정후는 하는수없이 코그루를 킹킹 박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연탁에 있는 종이장들을 주섬주섬 모아 아무렇게나 끌어안고 증언대를 힘들게 내렸다. 개화장을 후들거리며 한계단씩 내려설 때마다 겨드랑이에 낀 종이장들이 바닥에 떨어졌으나 그는 돌아보지도 않고 증인석의 자기 자리에 가서 《애햄-》 하고 쓰거운듯 건기침을 톺아올리였다. 그는 걸상에 꼿꼿이 앉아 조인수를 잡아먹을듯 사나워진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것으로 땅바닥에 추락하여버린 자기의 존엄과 체면을 살려보려는듯 조인수쪽에서 눈총을 거두지 않았다. 생각 같아서는 자기를 증언대에 세워놓고 마구 희롱한듯싶은 검사녀석을 조봉암의 곁에 나란히 세워놓고 주리를 틀고싶었다.

증인심문은 계속되였다. 최금룡의 차례가 되였다.

증인들중에서 제일 어려보이는 최금룡이 증언대에 오르자 청중은 반신반의하기도 하였으나 활력과 정기가 있어보이는 젊은이에게서 보다 신선한것을 기대하고 바라보았다.

최금룡이 그 어글어글한 눈망울을 굴리며 청중을 돌아보다가 살같이 날아오는 연경의 착잡한 눈길에 부딪치자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마음을 놓소, 연경!)

그 고개짓의 의미가 이러하였으나 연경이는 황황히 눈길을 피하던 그전과는 달리 지꿎게 최금룡의 눈길을 붙잡은채 놓아주지 않는다.

처녀의 애잔한 기대와 불안과 적의를 읽어본 최금룡은 속이 화끈 달아올라 고개를 돌려 피고석을 더듬었다.

조봉암이 너부죽한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바라본다.

최금룡은 조봉암이 보내는 격려의 눈길을 받자 저절로 눈물이 핑하니 앞을 가리웠다. 그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냈다.

(내가 이래서는 안된다! 나는 자기의 사명감을 잊어서는 안된다! 정신을 차려, 최금룡! 너는 지금 돌격선에 나선 전사다! 원쑤들이 너를 지켜보고있는데 무슨 감상에 젖어 눈물이나 짜고있나? 정신을 차려! 너는 전사다! 싸움터에 나섰다!)

최금룡은 이렇게 애상에 잠겨 흔들리고있는 나약한 심대를 힘껏 두드렸다. 그제야 마구 뛰던 가슴속이 가라앉았다. 그는 숨을 길게 들이그으며 심호흡을 몇번 하였다.

조인수의 질문이 먼곳에서 울리는 우뢰처럼 처음에는 몽롱하게, 다음에는 가까이에서 또렷하게 들려왔다.

《증인서약을 했지요? 이름이 최금룡이지요?》

《그렇습니다.》

《고려대학교 법과를 졸업한지 몇년 되였습니까?》

《5년이 되였습니다.》

《대학교시절에 총학생회 회장을 했지요?》

《예.》

《대학졸업후 대학총장선생이 특별히 천거하여 경무대 비서실로 보냈다던데 왜 거기서 나왔습니까?》

점차 최금룡은 자신을 수습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명쾌하게 검사의 질문을 받아넘기기 시작하였다.

잘 생긴데다가 인상도 밝은 청년의 매력적인 모습에 호감이 간 청중은 소리없이 끌려들어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큰 원인이 없습니다. 우리 아버지때문입니다.》

《아버지때문이라구요? 내가 듣기에는 리유가 다르던데요.》

《검사님이 들은 리유란 무엇입니까?》

《리승만박사가 증인의 이름을 싫어해서였다지요? 옳습니까?》

《옳습니다. 검사님, 이것도 증언에 필요한가요?》

《예, 대답해보세요.》

《이미 공개되였지만 내가 이름이 최금룡이지요. 금룡이란 누런 룡이 그려진 옛 임금님들의 관복을 의미한다나요. 리승만박사가 면접시험에서 저의 등을 두드려주다가 이름을 물어보고는 노- 합디다. 그래서 쫓겨났지요. 내가 태여날 때부터 임금옥좌 노리는 놈이라는거지요. 그러니 쫓겨난탓은 저의 이름을 그렇게 지어준 아버지탓이지요.》

지금까지 가슴이 섬찍해지는 주장들로 불안하고 으스스해하던 청중은 검사와 증인사이의 질의응답을 들으며 비로소 가슴을 죄이던 압박감에서 벗어나 미소를 지었다. 소리내여 즐겁게 웃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그 웃음의 바닥에는 진부하기 그지없는 리승만의 소갈머리에 대한 조소와 경멸이 깔려있다.

조인수도 처음으로 재판정에서 희색을 담고 대화를 밀고나갔다.

조인수의 기분이 바뀌여진것은 다른 리유에서였다. 청중의 심리가 재판의 승패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는것을 오랜 검사인 조인수는 잘 알고있었다.

청중으로부터 반감을 사고 비난을 받으면 재판은 검사가 아무리 꾀를 쓰고 요술을 부려도 오리무중에 끌려들기마련이다. 십중팔구 피고들을 기소한 검사측이 오히려 여론의 혹독한 판결을 받아 만신창이 된다.

그러므로 검사란 법과 사건연구에 못지 않게 판사들과 피고들은 물론 청중의 법정심리를 구체적으로 연구하여 파악하며 자기의 의도에 맞게 정서와 분위기를 유도하여나가야 한다고 늘 생각하여온다. 특히 이번처럼 권력층의 정치적요구로부터 출발한 정치재판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제아무리 재판에 앞서 신문과 방송이 야단스럽게 앞발차기를 하여 범죄를 기정사실화하고 재판전에 벌써 판결을 눌러놓았다고 해도 진실을 가려내는 민심의 촉각은 예민하다.

그래서 검사는 가능한대로 재판현장에서 통치권을 대표한 기소자로서 초조하지 말며 여유작작하게 청중의 심리를 이리저리 끌고나가 조작이라는 의심을 가져볼세라 진실이라는 무지개로 그들의 눈과 귀를 흐려놓아야 하는것이다.

그러자면 청중의 마음을 너무 무겁게 죄여놓지 말아야 한다. 필요하면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보낼수 있는 아량도 베풀어 검사의 배심과 기지를 보여주는것도 효과가 큰 재판전술이기도 하다.

조인수는 재판이 열린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청중속에서 코고는 소리가 나고 배석판사마저도 이따금 꺼덕꺼덕 조는것을 보자 당황해졌는데 첫눈에도 예지롭고 영특해보이는 최금룡을 내세움으로써 재판의 활력을 되찾게 되였다고 다행스럽게 생각하였다. 조인수는 화제를 자기가 의도한 방향으로, 복판으로 서서히 끌고갔다.

《좋습니다. 그런데 진보당에 들어간 리유는 무엇입니까? 진보당은 현 집권층에 대한 강한 불만을 가지고있는 도전세력으로 평가되였는데… 경무대에서 그 반대켠으로… 너무도 비약한 리유를 알고싶습니다.》

《저를 정치의 철새라고 규정하고싶은 모양이지요?》

《아니,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요.》

《뭐 그런 의도는 없었고… 저는 법을 전문으로 배운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정치구조를 연구하고싶었습니다.》

《또 다른 의도는 없었습니까? 참, 흐름순서가 바뀌였습니다. 피고 조봉암과의 관계에서 그 무슨 불미스러운것은 없었습니까?》

《아, 그건 저…》

최금룡이 주저없이 대답하다말고 청중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연경의 눈길을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사생활비밀이라면 밝히지 않아도 됩니다.》

조인수의 말에 최금룡은 연경의 얼굴에 시선을 박은채 재빨리 응수하였다.

《여기서 공개하지 못할 비밀은 없습니다. 저는 진보당 당수의 서기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죽산선생님의 둘째사위감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변함없이 죽산선생님을 사모하는 민중의 벗입니다.》

최금룡의 말은 여전히 차분하고 재기있는 정담같았으나 그 소리는 마치도 폭탄터지는 소리처럼 장내를 한번 휘잡아 흔들어놓았다.

여기저기서 사진기렌즈들이 불빛을 번쩍거리였다. 선하품을 련발하던 재판석의 판사들과 청중들은 멋스럽게 생긴 젊은 증인을 경악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조봉암도 사뭇 놀란 기색으로 증언대에서 다소 긴장되기는 했으나 자신감에 넘쳐 가슴을 쭉 펴고 서있는 최금룡을 바라보았다. 주변생활에 한시도 헛눈팔 겨를이 없이 분주하게 돌아치다나니 최금룡에 대하여 너무 등한해왔다는 후회가 지금 이 시각 그를 괴롭혔다.

최금룡에게 혈육지정을 기울여 그의 심경변화에도 마음을 써야 할노릇이 아니였는가. 그가 자기 수하를 벗어나기까지 그의 고민이 오죽했으랴.

어느때인가 조봉암은 그에게 초고완성이 되여가는 진보당강령을 보여주고 소감을 말하라고 한적이 있었다. 젊은 세대의 꾸밈없는 초달을 받고싶었던것이다.

그런데 조봉암과 그의 측근들이 한자한자 심력을 모아 만들어낸 당강령을 보고 최금룡은 랭소부터 지었다. 그리고는 단마디로 평가를 내렸다.

《진부합니다!》

그 혹독한 평가에 조봉암은 순간 아연실색하였다. 그러나 젊은이의 단순하면서도 무례하기도 한 반발에 성을 낼수도 없는지라 허허- 웃고말았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새 세대다운 담대하고 신선하고 강직한 기질이 마음에 들어 어깨까지 두드려주었다.

그러한 청년이 수하에서 자기와 당이 결정적인 싸움에 나섰을 때 싸움터를 도피하는듯싶어 실망을 느꼈다. 더구나 연경이가 그에게서 떨어져나가려고 안타깝게 모지름을 쓰는것을 보고는 어찌할수 없는 운명의 희롱이라고 개탄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지금 그렇게 떠나간 최금룡이 법정에서 리승만일파가 교수대에 끌어가려고 언론까지 풀어놓고 행악을 부리고있는데 증언대에 올라 자기는 조봉암의 사위감이라고 당당하게 선포하여버린것이다. 자기는 죽산을 사모하는 민중의 벗이라고 주장하였다.

(사모하는 민중의 벗? … 사모하는 민중의 벗! 그럼?!)

무심히 최금룡의 말을 되씹어보던 조봉암의 뇌리를 또 한번 강하게 때리는것이 있었다.

56년 선거를 전후하여 자기와 당이 위기에 직면하거나 그 무슨 불의의 위험을 당할 때마다 그의 집으로 여러가지 방법으로 날아들던 투서!

죽산선생님을 사모하는 민중의 벗이라고 출처를 밝힌 긴급통보를 받군 할 때마다 조봉암은 고마움을 금치 못하군 하였다. 지금까지 그 출처가 명백치 않아 인사 한번 보내지 못해왔다.

그런데 이제 보니 어려운 순간마다 요긴한 정보를 보내온 그 고마운 귀인이 바로 다름아닌 저 최금룡이 아닌가.

(아, 최금룡! … 너는 떠나갔어도 우리를 한시도 잊지 않고 성의를 다해 지켜주었구나!)

조봉암은 뜨거운 감격에 가슴이 그냥 화독처럼 달아오르고 눈굽이 찌르르해왔다.

(저런 사람을 연경이가 몰라보다니… 그애가 똑똑하기로 서울일판에 다시없다고들 하더니 눈이 멀었구나. 에참, 애두…)

조봉암은 그냥 속이 후덥고 무엇인가 명치에 맺혀있던 체증이 스르르 풀려지는것을 느끼였다. 그는 흐릿해지는 눈으로 최금룡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쳐다보았다. 감개와 후회와 자책과 같은 여러 갈래의 세찬 감정에 젖어들었다.

(그런데? …)

조봉암은 또다시 의아한 생각에 고개를 기우뚱거렸다.

(최금룡이 어떻게 되여 이번에 조인수의 증인으로 나서게 되였을가? 이제 무슨 말로 조인수의 기소에 증언을 해줄가?)

조봉암은 아직도 청년의 진의를 도무지 가늠할수가 없다. 착잡한 눈으로 최금룡의 당당한 모습을 지켜볼뿐이였다.

조봉암뿐이 아니였다. 최금룡을 보는 각이한 눈길에는 하나의 공통된 심리가 있었다. 조봉암의 사위감이라고, 그를 사모하는 민중의 벗이라고 이채롭고도 다감하게 자기를 소개한 녀석이 어찌하여 미구하여 장인이 될 인물을 물어메치게 될 증언대에 올랐느냐 하는 안타까운 도덕적인 감정이였다.

청중은 커다란 기대와 호기심을 가지고 검사의 증인심문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이것이야말로 조인수가 노린 극적인 화폭이였다.

조인수는 때를 놓칠세라 최금룡을 자기가 그어놓은 선으로 살살 몰아갔다.

《좋습니다. 그러니 증인은 피고 조봉암의 막하인물이였던셈입니다. 따라서 증인의 발언의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할수 있습니다. 먼저 진보당을 나가게 된 리유에 대하여 알고싶습니다.》

《첫째로, 저는 진보당의 강령과 규약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구체적으로 어떤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까? 아까 서정후증인이 증언하였는데 비슷한 견해상리유인가요?》

《아니요. 저는 당이 내세운 목표와 그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적문제에서 현 지배층의 눈치를 지나치게 봐주고있는것이 마음에 차지 않았습니다.》

그 소리에 장내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조봉암은 이제야 비로소 최금룡이 자기 슬하를 뛰쳐나온 리유에 대하여 알고 크게 놀랐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최금룡의 마음의 밑바닥을 읽게 된것이 서글퍼졌다. 겁을 모르는 젊음이 부러워지기도 하였다.

(우리는 어찌하여 검은것을 검다고, 붉은것을 붉다고 툭 찍지 못하는가. 그래, 눈앞에서 얼른거리는 포승들과 칼날이 두렵기때문이지. 부럽구나, 최금룡! 너의 젊음이 부럽다! 기개가 부럽다! 너희들 시절에는 우리 역시 단두대도 감옥도 두려움이 없이 뛰여다녔지. … 허지만 금룡이, 너는 아직 이 사회의 정치의 맥을 너무도 몰라. 우리의 싸움은 기개 하나만 가지고 이겨낼수 있는게 아니란다. 1보전진, 2보후퇴라는 말의 참뜻을 씹어보려면 아직도 네가 비워놓은 장독이 모자란단다.)

조봉암은 이렇게 최금룡을 바라보며 찬탄도 보내고 자책도 해보고 혹은 변명도 해보고 너그럽게 달래주기도 하였다.

《계속하시오.》

홍병삼재판장이 또다시 정중하게 재촉하였다.

《진보당… 아니, 조봉암피고인의 곁을 떠난 다른 리유는 없습니까? 구태여 더 밝히기 힘들다면 사절해도 좋습니다.》

조봉암은 검사가 최금룡에게 진보당을 뿌리치고 떠나간 리유를 끈덕지게 파고드는 리유가 짐작되였다.

최금룡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사상과 리념과 인격에 대하여 흙칠을 하려는데 있다. 재판정과 방청객들에게 조봉암이라는 피고가 이 사회에서 얼마나 위험하며 얼마나 비렬한 인간인가 하는것을 납득시키려고 하는것이다.

조봉암도 최금룡의 대답이 기다려졌다. 그의 발언에서 그려지게 될 자기의 실체에 호기심이 갔다.

(젊은 세대의 깨끗한 눈에 비쳐진 나의 모습은 어떠할가?)

최금룡의 증언에서 그의 진면모도 보다 명료하게 드러날것이다.

방청들도 최금룡에게 호기심어린 시선을 모으면서 쥐죽은듯 고요한 정적속에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있었다.

최금룡은 서두름이 없이 방청석과 피고석을 둘러보면서 증언을 계속하였다.

《사생활문제도 있는데… 재판에 필요하다면 밝히겠습니다. 그까짓, 여기서 말 못할 리유도 없습니다.》

이렇게 말은 했으나 최금룡은 이내 말을 잇지 못하고 또다시 동안을 두고 방청석을 더듬었다. 자기를 지켜보고있는 연경의 눈길을 받자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였다.

최금룡의 눈길은 다시 방청석을 이리저리 더듬으며 아버지를 찾았다. 방청석의 중간에서 최기오의 긴장된 눈길을 드디여 찾아냈다.

최기오가 반백이 된 머리를 두세번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조봉암도 연경도 그리고 자기 집안에 대하여서도 치욕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당부라는것을 최금룡은 아버지의 거동에서 쉽게 짐작하였다.

(불쌍한 나의 아버지! 한생토록 죽산선생님을 친구로 곁에 두고 살아왔건만 그것이 바로 죄가 되여 리승만일파의 검질긴 핍박에 고개 떨구고 살아온 아버지! … 아버지, 용서하십시오! 이 아들은 아버지의 가슴에 또 한번 한을 맺히게 해야 할가 봅니다. 이 불효자식을 부디 용서하십시오!)

최기오도 아들의 안타까움이 서린 눈길에서 그 무슨 계시를 받은듯 모든것을 너의 재량권에 맡긴다고 고개를 힘있게 끄덕여주었다.

최금룡은 아버지의 량해와 고무에서 힘을 얻은듯 분연히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죽산선생님의 둘째따님과의 혼약을 깨고 진보당에서 나오라는 압력을 받아왔습니다. 이러한 압력은 아버지에게서 비로소 시작된것은 아니였습니다. 모기관, 모인물들로부터 아버지가 받아온 압력과 공갈의 연장선이였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죽산선생님과 줄곧 항일운동에 참여하여온 가까운 전우였습니다. 아버지가 해방후에 여러가지 정치적경난을 겪다가 기업활동에 돌아선 후에도 두분의 개인적교분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것이 인연이 되여 저와 죽산선생님의 따님과도 혼약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러루한것때문에 모기관에서는 아버지의 기업활동에 그냥 방해를 하여 기업운영에서 막대한 손실을 내게 하고 도산위기에 처하게 하였습니다. 모기관은 아버지에게 조봉암선생과의 일체 관계를 끊어야 기업활동을 보장할수 있다는것을 로골적으로 강요하였습니다. 결국 아버지를 통한 죽산선생님에 대한 압력이였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가정이 겪는 비극앞에서 동요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지어 모기관은 우리의 혼약까지 파기할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이것은 결국 죽산선생님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려는 저의가 깔린 파렴치한 기도였습니다. 물론 이것이 제가 진보당을 뛰쳐나간 기본리유는 아닙니다.》

최금룡은 말을 마치자 온몸이 수치감으로 달아올랐다. 이것은 두말없이 아버지와 자기의 얼굴의 흠집을 더 깊이 내는것으로 된다.

그러나 리승만일파의 비렬한 책동을 만사람에게 공개하는것으로 조봉암과 진보당에 지원포를 쏴줄수만 있다면 연경의 오해나 여론의 따가운 눈초리쯤은 두렵지 않다.

최금룡이 다시금 청중을 둘러보자 연경은 고개를 떨구었고 조봉암은 의연히 격려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너의 용기가 고맙고 그 말에 깔린 진심을 리해한다는 의미가 담겨져있는듯싶다.

조인수도 예민하게 반응하였다. 그는 최금룡이 청중의 심리를 위험수역으로 끌고가고있다는것을 간파하고 재빨리 화제를 바꾸었다.

《좋습니다. 다음문제, 증인도 진보당의 통일강령작성에 직접 관여하였다는 말을 들은바가 있습니다. 특히 일본을 통하여 북의 통일방안을 입수하여 조봉암에게 주었다는 자료도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말해주기 바랍니다.》

《검사님의 문제제시가 묘한데요? 일본을 통하여 방안을 입수하였다? 그건 검사님의 억측입니까? 아니면 의도적인 유도심문입니까?》

최금룡이 불쾌한 어조로 따지고 드는데 홍병삼이 엄하게 소리쳤다.

《증인, 증인의 질문은 기각입니다. 검사의 질문에 대답하시오.》

최금룡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하였다.

《제가 죽산선생님으로부터 그러루한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56년 선거를 석달 앞두고 선거에 내세울 통일공약을 마련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죽산선생님은…》

그때 홍병삼이 그의 말을 다시한번 가로챘다.

《조봉암피고에 대한 지칭은 법정관례에 따라 불러야 하오.》

그러자 최금룡이 즉시에 단호하게 자기 립장을 밝히였다.

《죽산선생님은 제가 미구하여 약혼하고 안해로 받아들일 녀자의 아버지입니다. 따라서 저에게도 아버지입니다. 제가 법정이라 해서, 법정관례라 해서 조상전래의 례의와 관습을 무시하고 아버지라고 불러야 할분을 피고라고 불러야 옳겠습니까? 그것은 분명코 불륜입니다. 이 법정이 우리의 미풍량속을 무시하고 저에게 불륜을 강요한다면 저는 증인으로서의 법정의무를 포기할수밖에 없습니다.》

최금룡이 서슴없이 재판장의 요구를 일축하여버리자 방청석이 술렁거렸다. 최금룡의 사리분명하면서도 례의가 있고 배심있는 주장이 청중의 호응을 받은것이다.

조인수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칫하면 모처럼 내세운 증인을 놓칠수 있었기때문이였다.

최금룡 같은 증인은 다시 찾아낼수도 없는 가치있는 인물이였다.

《재판장님, 증인의 요구를 받아주는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의 주장은 존중할만 한것입니다.》

그러자 홍병삼이 좌우에 앉아있는 배석판사들을 둘러보며 뭐라고 의논을 붙였다. 배석판사들이 홍병삼의 제의에 동의를 하는듯 고개를 끄덕거리였다.

홍병삼이 자기의 요구를 철회하였다.

《좋습니다. 재판정은 증인과 검사의 요구를 수락하기로 하였습니다. 증인은 계속하시오.》

《하루는 죽산선생님이 저를 불러 통일공약을 빨리 완성하여야 하겠다고 하면서 가능하면 리승만박사가 내세운 <북진통일>방안, 유엔이 내세운 통일방안, 북에서 내세운 평화통일방안 그리고 우리의 통일문제에 대한 다른 나라들의 동향자료를 폭넓게 모아올데 대한 지시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문과 잡지, 방송청취 등을 통하여 지시를 집행하였습니다.

죽산선생님은 이 자료들을 당시 선거대책위원장을 하던 서정후선생을 비롯한 통일공약준비성원들에게 다 륜독시키고 이중에서 가장 합리적이며 공명정대하고 우리의 현실에 알맞는 주장들을 진보당의 안목으로 재조명하고 진보당의 통일강령으로 내놓자고 하였습니다. 일후에 진보당의 통일공약, 나아가서 통일강령이 채택되였습니다.》

《북의 통일방안을 일본에서 증인이 주문해온것인지 아니면 서울을 드나드는 재일교포들로부터 직접 받은것인지 명백히 밝혀주기 바랍니다.》

《통일문제와 관련한 북의 방안은 이미 널리 공개되였습니다. 구태여 일본에까지 손을 내밀 하등의 필요도 없었지요. 저는 일본신문 <산께이신붕>에 실린 자료에서 메모하였습니다. <산께이신붕>은 서울에서도 흔히 찾아볼수 있는 신문입니다. 저는 고려대학교 도서관에서 열람하고 메모하였습니다. 아마 고려대학교 도서관의 열람대장에 지금도 기록되여있을것입니다.》

《좋습니다. 다음문제에로 넘어갑시다. 증인은 피고 조봉암의 개인서기로서 자금수집에도 관여한바가 있다고 합니다.》

《예, 모금사업에 참가한 사실이 있습니다. 자금관계는 제가 맡아보지 않았지만 진보당에 사람들이 기부한 자금을 여러차례 받아온 일이 있습니다.》

《진보당자금제공자들속에서 강무호와 정명갑이란 인물을 만난적이 없었습니까?》

《내가 만났던 기부금제공자들속에는 신분이 의심되는 인물은 없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명단공개를 할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의 중진들에 속하는 그분들의 신상관리를 위하여 삼가하려고 합니다. 다시 부언하건대 그들중에는 현재 구금중에 있거나 정체가 투명치 못한 인물들은 한명도 없었습니다. 어려운 시절에 진보당에 성의를 고여준 그분들에 대한 신의를 지켜 명단공개는 하지 않겠다는것을 법정에 다시 말해둡니다.》

말투는 비록 부드러웠으나 속으로 짱짱 다져진 말에 조인수는 오만상이 되여갔다. 최금룡에 대한 기대가 허물어졌다. 자기가 그에 대한 깊은 파악도 없이 다만 조봉암의 슬하를 박차고 나갔다는 단순한 사실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여 조봉암을 크게 타격하려고 하였는데 오산하였다. 어느 한 대답에서도 득을 본것이라고는 없다.

오히려 자기가 제기한 기소장의 허점을 군소리가 없는 사실자료로 론박하고있는것이다.

조인수는 이것으로 증인심문을 끝낼가 하다가 아직도 그에 대한 미련을 버릴수 없어 하나의 문제를 더 제기하려고 다시 일어났다.

《좋습니다. 마지막문제, 최금룡증인은 조봉암피고의 집에서 이태를 지냈는데 혹 권총소지에 대한 말을 듣지 못했습니까? 바로 이 권총입니다.》

조인수는 뒤에서 검사보가 내미는 권총을 받아 최금룡에게로 들어보였다.

《본 일이 있습니다. 죽산선생님이 언젠가 권총을 닦으면서 권총이 생겨난 사연을 매우 감회깊게 들려준바가 있습니다.》

《그래요? 그에 대하여 들려주기 바랍니다.》

《그게 아마도 55년 가을철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산선생님은 장마철에 녹이 오른 권총을 분해하여 닦으면서 저에게 상해림시정부의 군무총감이였고 우리의 <부통령>을 지낸바 있는 리시영선생으로부터 생일기념으로 받은것인데 만주에서 왜병들이 따라다니기에 두세번 사용한적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권총은 선생님이 상해에서 왜놈들에게 체포되여 신의주감옥에 끌려온 후 저의 장모되시는분이 건사하였다가 조국으로 나올 때 가지고 와서 친정집에 맡겨두었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감옥에서 나온 뒤 권총은 본인 손에 다시 돌아왔다고 합니다.》

《북으로부터 받았다는 말은 들은바가 없습니까?》

《제가 방금 증언한 그대로입니다.》

《총이 생겨난 년도는 정확히 어느해라고 했습니까?》

《1929년이라고 하였습니다. 조봉암선생님은 그 권총으로 만주와 원동일대에서 항일운동을 벌릴 때 여러차례 위기일발의 순간에 여러 놈의 일제헌병들을 쏴눕혔다고 합니다. 그래서 리시영선생님의 선물을 지금도 중히 건사하여온다고 하였습니다.》

《증인은 그것이 무기불법은닉죄에 속한다는것을 알고있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이것은 이제는 고인이 된 옛 지인의 선물이며 왜놈들로부터 자기의 신변을 지켜준 뜻이 깊은 기념이라는 의미로 볼 때 불법으로만 몰아가는게 옳겠는가 하는데는 고려할 여지가 있다고 보아집니다.

더우기 1920년부터 지금까지 죽산선생님에게 가해진 수많은 테로, 협박, 암살미수 등 신변의 위험을 매일매시로 느꼈지만 해방후에는 한번도 사용된적이 없었다는 사실은 불법무기라는 의미를 뛰여넘어 지인의 선물보존이라는 의미가 더 우세하지 않겠는가 하는것입니다.》

조인수는 또다시 최금룡의 증언이 자기의 의도에서 묘하게 빗서나가고있을뿐아니라 오히려 조봉암에 대한 변호로 되고있다고 생각하자 칼칼한 어조로 재판장을 향하여 소리질렀다.

《더 물을 말이 없습니다.》

최금룡은 지나친 긴장으로 하여 조인수가 질의문답을 끝내겠다고 선포하자 간신히 버티고있던 심대가 풀리면서 오금이 매시시하여났다. 그는 갑자기 현훈증이 와서 잠간 지그시 눈을 감고 숨을 가라앉히고나서야 천천히 나무계단을 삐거덕소리를 내며 내렸다.

조인수는 조봉암에 대한 증언청취는 최금룡으로 마감짓고 다음날부터는 기타 피고들에 대한 증언청취를 계속하였다.

수십명의 인물들이 증언대에 올랐다. 대체로 정계와 재계의 인물들이였다.

검찰청에서는 될수록 증인들을 많이 내세워 이번 재판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를 최대한 확산시키라고 강조하여온다. 곽영주도 그게 좋을듯싶다고 한다. 그러나 증언심문이 심화되여갈수록 재판의 분위기는 저조해지고있다. 방청객들은 물론 재판정에 앉아있는 판사들도 흥미를 잃어갔다.

조인수도 방청석에서 자주 눈에 띄우는 조소와 경멸의 분위기에 당황하고 두렵기도 했지만 기울어진 재판을 돌려세우기에는 자기의 힘과 능력이 너무도 부족하다고 개탄하였다.

이제 검사구형에서 리승만일파의 엄격한 지령대로 조봉암에게 사형을 선고하여야 되겠는데 지금 같아서는 도저히 강행할수가 없을것 같았다. 자기의 집요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청중은 재판에 대하여 싸늘한 랭대를 로골적으로 보이고있는것이다.

재판이 시작되였을 때는 말그대로 립추의 여지가 없던 법정에 빈자리가 많아졌다. 신문기자들도 대체로 철수하여버렸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지금도 조봉암이 간첩이라고 같고같은 수작만 반복해서 떠들고있을뿐이다. 사회계의 초점이 쏠리고있는 재판에 대해서는 검사의 기소장내용만 소개하고는 입을 다물고있다.

재판석에 앉은 판사들까지도 알맹이라고는 추려낼게 없는 지루한 강변에 꺼덕꺼덕 졸다가는 때없이 내지르는 증언자들의 고성에 깜짝깜짝 놀라 눈을 두리번거리군 하였다.

재판석이 그 모양이니 청중은 더욱 큰 환멸과 염증이 생겨 어서빨리 검사구형과 판결이 내리기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조인수는 증언을 받아볼수록 자기가 아무리 강짜를 부려도 지배층의 취향에 맞게 재판을 끌고나갈수 없다는것을 똑똑히 깨달았다.

오히려 재판이 심화되여갈수록 이 재판이 애초에 권력의 도전자를 모살하기 위한 정치적요구에 따라 시작된 조작극이라는것을 적라라하게 드러내고있을뿐이 아닌가.

조인수는 기진하였다. 이 사건을 맡아 한번 제 이름 석자를 날려보고 리승만가까이로 성큼 다가서보려고 했던건데 이제 보니 그것은 허무하기 그지없이 어리석은 개꿈이였다고 한탄하였다.

우에서는 정책으로 조봉암에게 극형을 선포하게 되여있다고 번번이 오금을 박고있는데 도대체 어느 조항에 걸고 검사구형을 내려야 하는가.

그의 상급들은 진보당의 평화통일론 한가지만 놓고도 사형형벌이 가능하다고 떠들어온다. 《북진통일》론이 《국시》인데 그에 정면으로 대치되니 역적이 아니냐 하는것이였다. 크게 머리 굴릴것도 없다는것이다.

그런데 그걸 더 깊이 해부해보면 볼수록 리승만의 《북진통일》론의 위험과 부당성만 드러낸다. 반면에 조봉암의 주장과 활동의 정당성을 큰소리없이 선전하는 효과만 줄뿐이다.

그러기에 조봉암은 통일론의가 있을 때부터 흡족해서 들어주고있다.

그 너부죽한 얼굴에 떠오르는 선한 웃음에 접할 때마다 조인수는 속으로 분기가 치밀어 견딜수 없었다.

그래 곽영주와 정제관, 검찰총장에게 통일론의로는 부족하다고 우는소리를 했더니 그 다음에는 《체제전복죄》를 들씌워보라고 해서 재판의 심문각도를 돌려놓았다. 진보당의 비밀당원들과 방조자들을 《국회》에 보내여 제도를 뒤집으려고 했다고 꾸며놓으면 된다는것이다.

우선 그러루하게 가설을 만들어놓기부터 하고 아무리 관계자들을 탐색해보아도 아직까지 그를 립증할만 한 증인은 하나도 찾아낼수가 없다.

점차 조인수는 자기가 지금 정치의 희생물이 되여 이제 한달후에 있게 되는 《국회》선거에서 진보당을 배제시키며 진보당이 전역에 속속들이 뿌리내리기 전에 맹아단계에서 짓뭉개버리는 주역을 맡은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에 빠져들게 되였다.

그렇다면 자기로서는 리승만의 통치권이 부여한 임무를 깨끗이 끝내고있는셈이다. 이미 진보당은 해산되였다. 따라서 《국회》선거에 진보당은 자기 후보들을 내세울수 없게 되였으며 거기에 진출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그런즉 지금처럼 재판을 질질 끌면서 국회선거가 진행될 5월까지 버티기만 하면 내 임무도 끝나는게 아닐가?)

그때 가서 자료가 미흡하여 조봉암과 피고들을 다 석방시킨다고 선포한다면 리승만세력은 그닥 밑질것이 없다. 조봉암과 그 지지세력도 한숨을 내쉬고 검사측과 법정에 공정한 재판을 했노라고 감사해할것이다.

(음… 일은 그렇게 되는거겠군. 이 조인수야 꼭두각시지. 하는수없는 정치의 희생양이지. 그래, 리승만의 눈에 든것만도 영광스러운 행운일테지. 하지만 저것들이 이 조인수를 무슨 꼴로 만든거야? 참, 어리석기란…)

조인수는 한주일간에 걸치는 재판끝에 이런 희한한 판단을 해보면서 자기의 허무한 놀음을 통탄해마지 않았다. 조인수는 7일재판이 끝나자 자기의 보고를 기다리고있는 곽영주와 서울지방검찰청장의 사무실이 아니라 서라벌려관으로 차를 몰아갔다. 거기에는 세해전부터 심심풀이로 상종해오는 정부가 있다. 정신적긴장과 함께 재판에 대한 전혀 새로운 평가로부터 오는 허탈감을 해소하고싶었던것이다.

차라리 이 재판놀음이 자기의 추리대로 된다면 뒤끝이 찜찜하지 않을듯싶다. 지금까지 지배층의 요구에 따라 수많은 사건들을 만들어왔지만 이번처럼 마른나무에서 물짜듯 힘에 부친 고역을 치르기는 처음이다.

그는 이날밤 곤드레만드레 만취하여가지고 녀인의 나긋나긋한 육체가 감겨드는것도 모르고 굳잠에 들어버렸다.

그러나 다음날부터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노상 머리가 찌뿌둥하고 눈에서 정기가 사라졌다. 한생을 권력의 횡포에 아부하여온 자기의 신세가 가엾게 생각되기 시작하였던것이다. 생의 희열을 일조에 잃어버린다는것은 무서운 고통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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