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8 회)
제 3 장
1
넓다란 법정이 터지도록 방청객들이 밀려들었다.
로동자, 농민, 지식인들을 비롯한 진보당원들과 그 지지자들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세력권에 속하는 사람들도 입장권을 내흔들며 법정에 들어섰다.
기자완장을 두른 신문과 방송기자들이 남먼저 자리를 차지했고 자유당과 권력층의 인물들도 호기있게 문턱을 넘어섰다.
연경의 자매와 김봉무와 류선녀도 가족들이 자리잡은 곳으로 안내되였다. 그들은 중죄인인 조봉암의 가족이라 하여 가족석에서도 제일 앞줄 가운데자리가 차례졌다. 그들은 이미 수시로 만나온 윤기중과 우달수, 신창균의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모두가 긴장되고 흥분한 기색들이였으나 조봉암가족의 차분한 모습들을 보자 친동기간처럼 반기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방청석에서 여러 사람들이 연경의 자매를 보자 따뜻하게 눈인사를 보내오고 손을 저어보이기도 하였다. 그중에는 최금룡의 아버지 최기오의 갱핏한 얼굴도 보였다. 절통해마지 않아하던 최기오가 연경의 눈길을 받자 착잡하면서도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민주당의 최고위원으로 최근에 자기 영향밑에 있던 소장파의원들을 데리고 탈당하여 진보당으로 자리를 옮기려 하다가 진보당이 깨지는 바람에 그냥 눌러앉아 대세를 지켜보고있는 곽상훈도 연경의 눈길을 붙잡자 미소를 지어보였다.
시커먼 안경을 쓰고 앉아있던 로성팔도 연경에게 마음을 놓으라는듯 두주먹을 쳐들어 흔든다.
로성팔이나 곽상훈은 그동안 경무대에도 드나들고 권력층의 우두머리들을 찾아다니며 조봉암과 그 지지자들을 당장 석방하라고 요구하였다.
방청석에는 외국사람들도 여러명 앉아있었는데 눈이 부실듯이 시원하고 얼굴빛이 류달리 말쑥한 연경이가 조봉암의 둘째딸이라는 말을 얻어듣고 연방 사진기의 조명불빛을 날리며 손을 흔들어주기도 한다.
연경은 그들의 말없는 인사와 격려에 속이 더워올라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저쪽에 대고 허리를 곱게 숙여 례의를 표시하였다.
9시가 가까워오자 시커먼 옷을 입은 경찰들이 수십명이나 들어와 법정을 에워싸고 말뚝쥐처럼 늘어섰다.
경찰들은 금시라도 혼란이 생기면 덮쳐들듯 방망이를 틀어잡고 사나운 눈찌로 법정을 채운 사람들을 훑어본다.
피고석 좌우에는 검사석과 변호단석이 있는데 한자리도 비지 않고 꽉 채워졌다.
마지막으로 증인들이 나타나 증인석이라고 패쪽을 붙인 좌석으로 줄레줄레 들어왔다.
맨 처음으로 지팽이를 짚은 로인이 두툼하게 지어입은 조선바지저고리에 흰고무신을 신고 증인석으로 들어서며 방청객들을 두리두리 살폈다. 그는 진보당의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진보당의 2인자격으로 있으면서 분렬책동을 하다가 쫓겨난 서정후였다.
서정후는 연경이의 놀란 눈길을 피해 고개를 돌려버렸다.
(저 령감은 왜 저기에 나타났을가?)
연경은 예감이 나빴다. 저 령감한테서는 절대로 도움이 되는 소리를 기대할수 없다. 지금도 채수염을 후들후들 떨며 회의장에서 쫓겨가던 서정후의 모습이 선하다. 아버지와 진보당을 업고 《대통령》자리를 타고앉아보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그게 좌절되니 코코에 진보당일에 훼방을 놓으면서 나중에는 미국놈들과 리승만일파의 모략의 하수인이 되여 당을 깨려고 적지 않은 사람들까지 거느리고 달아난 사람이다.
신창균은 뒤날 서정후에 대하여 《정치의 사꾸라》라고 신랄하게 락인을 찍어놓기까지 하였다. 지조도 신념도 없이 자기의 리해관계를 쫓아 이 당, 저 당에 기웃거리며 변덕을 부리는 인간이라는것이다.
서정후의 옆에는 개털로 목깃을 두른 밤색외투를 입은 민주당의 최고대표위원이던 탁준의가 기세등등해서 여기저기다가 주먹을 흔들어주고있다.
연경은 그 인간에 대하여서도 잘 알고있다.
탁준의는 아버지가 제일 인간적으로 경멸하는 리념의 배반자다. 그 역시 조선공산당시절부터 아버지를 물어먹지 못해 전전긍긍해오고있다. 저 사람의 입에서도 좋은 소리라고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을것이다.
증인석을 살펴보던 연경의 그 큰 눈이 휘둥그래졌다. 언제 들어왔는지 최금룡이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있었던것이다.
연경이는 그 무슨 못 볼것을 보기나 한듯 깜짝 놀라 얼른 눈길을 내리깔았다.
최금룡이 아버지의 변호를 맡는다고 하여 코웃음을 쳤는데 검사의 증인으로 채용되여 아버지가 제일 싫어하는 저 인간페물들과 나란히 앉아있다니…
연경이는 분노로 두방망이질하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한손으로 가슴팍을 꽉 눌렀다.
《연경이, 침착해! 그리고 지레 억측을 말아요.》
어느새 연경의 속을 헤아린 류선녀가 가만히 속삭이였다. 류선녀도 최금룡이를 증인석에서 보았는데 그도 연경의 놀라움과 다를바 없었으나 처녀의 지나친 흥분이 그 무슨 일이라도 칠것 같아 념려스러웠던것이다.
갑자기 증인석의 맞은편에 있던 작은 출입문이 열리고 그쪽에서 또 한무리의 경찰들이 쓸어들어 피고석까지 줄지어섰다.
출입문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출입문으로 류선녀가 한뜸두뜸 정성을 담아 지은 흰 무명솜저고리에 무명솜바지를 입고 가슴에 수인번호를 단 조봉암의 침착한 모습이 나타났다.
조봉암은 법원서기의 안내를 받으며 경찰들이 지켜선 복도를 거쳐 법정안에 들어섰다.
그러자 만장의 눈길이 그쪽으로 쏠리고 사진기들의 렌즈들이 그에게로 집중되여 불빛을 번쩍번쩍거렸다.
조봉암은 방청석을 향하여 함뿍 미소를 지어보이며 수갑을 찬 손을 높이 들어 인사를 보냈다.
연경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류선녀가 급히 그의 옷자락을 잡아앉혔다.
아까부터 이쪽을 노리고있던 경찰 한놈이 급히 달려왔다.
《주의! 다시한번 질서를 위반하면 퇴정시킨다!》
연경이 고개를 끄덕이자 경찰은 방망이를 추스르며 자기 위치에로 돌아갔다.
계속 피고들이 들어오고있었다.
우달수, 윤기중, 신창균 등의 순서로 들어왔는데 하나같이 멍들고 여위였으나 태연자약하고 당당하게 걸어와 법원서기가 가리키는 자리에 가서 앉는다.
피고들이 자리를 차지하자 담당호송경찰들이 수갑을 풀어가지고 나갔다.
존경하여마지 않던 자기의 당수를 여러달만에 보게 된 전우들의 눈가에 물기가 핑하게 돌았다. 감방벽을 사이에 두고있으면서도 그들은 법정에 와서야 처음으로 만나볼수 있었던것이다.
그들은 주먹을 들어올리고 혹은 허리를 굽히면서 일부는 벌쭉 웃어보이며 자기들의 변함없는 충의와 신념과 의지를 조봉암에게 전해왔다.
조봉암은 전해듣던대로 가혹한 고문의 흔적이 력력한 전우들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자 가슴이 아팠으나 그들의 몸에서 발산하는 그 전투적기상과 락관이 그지없이 대견하고 흡족하고 반가웠다. 그는 자기 옆자리에 앉은 우달수의 손을 슬그머니 더듬어잡고 조용히 인사말을 건네였다.
《고생했소!》
《건재하신 당수를 뵙게 되여 기쁩니다.》
《힘들었겠소.》
《이겨냈지요.》
조봉암도 투지만만한 우달수의 모습에서 전우들의 불굴의 신념과 기개를 찾아볼수 있게 된것이 기뻐 얼굴가득히 선한 미소를 지었다.
《옆으로 전해주오. 동지들에게 나의 인사를 보내오. 잘 싸워봅시다. 여기도 전투장이요.》
그러자 우달수가 고개를 끄덕이고 옆에 있는 윤기중에게 속삭이였다.
《옆으로- 죽산의 인사! 여기도 전투장!》
그러자 조봉암의 맥박과 숨결이 전우들의 심장에 이어져 한바퀴 돌아갔다.
맨 마지막 피고석에 앉아있던 조직간사가 조봉암쪽을 향해 주먹을 불끈 쳐들어보였다.
그때 아버지의 뒤모습에서 물기어린 눈길을 떼지 못하던 연경이 자기도 어쩔새없이 《아버지!》 하고 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이 신호가 된듯 가족전체가 일어서고 뒤따라 방청석을 꽉 메운 방청객들과 기자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조봉암이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려 딸들에게 정찬 눈길을 보내다가 방청석을 향하여 허리를 깊이 숙여보였다. 방청객들이 그에게로 손을 들어보이거나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방청석, 착석! 착석!》
벽을 따라 늘어서있던 경찰들이 드디여 일거리를 찾은듯 곤봉을 휘두르며 일어선 사람들에게로 달려들었다.
조봉암이 앉자 방청객들도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아까 연경에게로 와서 눈을 부라리던 경찰이 또다시 달려왔다.
《주의, 두번째! 일어섯! 퇴정이다! 알았는가?》
경찰은 연경의 팔을 틀어쥐며 소리쳤다.
그러자 류선녀가 경찰을 향하여 부드러우나 저력있게 타일렀다.
《아가씨는 죽산선생님의 둘째따님이요! 경찰도 사람이니 아버지를 여기서 만나는 아가씨의 아픈 마음을 리해하여주세요.》
싹싹하면서도 위엄이 느껴지는 류선녀의 소리에 경찰은 주춤거리다가 물었다.
《거긴 누굽니까?》
《나? …》
류선녀가 금시 얼굴빛이 빨갛게 익어 선뜻 대답을 못하는데 연경이가 큰소리로 대답하였다.
《우리 어머니세요.》
그러자 경찰은 연경의 팔을 놓아주고 다시 주의를 주었다.
《세번째는 용서가 없다.》
연경이 고개를 끄덕이자 경찰은 자기 자리에로 돌아갔다.
그들이 주고받은 소리를 듣고난 조봉암이 고개를 돌리다가 류선녀의 눈길을 붙잡았다. 두사람의 눈길이 허공에서 얼싸안았다. 조봉암의 얼굴에 잠시 고마운 빛이 떠올랐으나 인차 그 빛갈이 지워졌다.
조봉암은 고개를 한번 가로젓고는 다시 재판석을 향하여 자세를 바로잡았다. 고맙기는 해도 절대로 받아들일수 없다는 그의 무언의 뜻에 접한 류선녀가 순간 두눈에 물안개가 뽀얗게 서려들어 고개를 떨구었다.
《진정하세요.》
연경이가 제가 급해나서 류선녀의 손목을 꼭 잡으며 속삭이였다.
효경도 류선녀의 한쪽 손목을 잡고 위로하였다.
《아버님의 마음을 리해하여주세요.》
류선녀가 목메인 어조로 말하였다.
《그래그래, 난 선생님의 마음을 다 알아요. 걱정말아요.》
조봉암이 일부러 류선녀의 정을 피하려고 했으나 그 녀자의 가슴속사랑은 바닥없이 깊고 부드럽고 따뜻한것이여서 그 어떤 야속하고 억울한것이라 해도 쉽사리 받아주고 묵새기는것이였다.
《재판장이 등단하겠습니다.》
법원서기가 알렸다.
이어 시커먼 법의를 두른 재판장 홍병삼이 두명의 배석판사들을 달고 피고석에서 한길쯤 높게 위치한 재판석으로 위풍당당하게 걸어나왔다.
《기립!》 하는 구령소리가 났다.
그에 따라 법정에 들어앉은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홍병삼은 재판장자리를 차지하자 인차 앉지 않고 검사석으로부터 피고석, 변호단석과 증인석, 그 다음에는 방청석과 그들을 에워싸고있는 경찰들까지 천천히 둘러보았다.
꾹 닫아붙인 입술과 만장을 위압하는듯 한 엄격한 눈길이 시커먼 법의에 어울려 삽시에 법정을 얼어들게 하였다. 어느 놈이 질서위반자냐 당장 들어낼테다 하고 엄포를 놓는것만 같았다. 어쩌면 법과 법관의 위엄을 과시하는것 같기도 하다.
홍병삼은 한동안 조각상같은 자세로 서있다가 두팔을 들어 배석판사들더러 앉으라는 시늉을 하면서 자기 자리에 앉았다.
다시 《착석!》 하는 소리가 났다.
나무걸상에 앉는 소리가 한동안 부산스럽게 들렸다.
홍병삼이 앞탁에 놓여있는 문건철을 눈앞에 당겨놓고는 노란 에나멜칠을 한 아이들 장난감같은 재판봉을 들어 앞탁을 세번 두드렸다.
장내는 금시 물뿌린듯 잠잠해졌다.
홍병삼은 마이크를 당겨놓고 손가락으로 몇번 튕겨보고나서 첫 발언을 법관답게 무게와 위엄을 담아 장중하게 하였다.
《지금부터 서울경찰청에서 의뢰하였으며 서울지방검찰청에서 소송을 제기하여온 피고들인 조봉암, 우달수, 윤기중, 신창균, …에 대한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본 재판의 재판장으로는 서울지방법원 판사인 홍병삼-제가 담당했으며 배석판사들로는…》
그러자 홍병삼의 호명에 따라 그의 좌우에 앉아있던 배석판사들이 일어섰다. 계속하여 홍병삼은 조인수검사와 그를 보좌하고있는 검사보들을 소개하고 30명으로 구성된 변호인단을 일일이 소개하였다.
《… 피고 조봉암에 대한 변호는 본인의 요청과 법원의 합의에 따라 피고 본인이 담당하게 됩니다. 다음과 같은 문제에 대하여 여기 모인 전체 참가자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려고 합니다. 법정안에서 일체 불미스러운 말과 행동은 불허합니다. 필요없이 고함을 지르거나 남을 위협하거나 가해를 하는 경우 법정교란죄에 해당하여 즉시 퇴정시키며 동시에 그에 따르는 형벌이 가해집니다. 지금부터 법원의 절차에 따라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인 담당검사 조인수씨가 기소장을 제기하겠습니다. 조인수검사, 기소장을 제기하시오.》
이렇게 되여 남조선에서 사상최대의 불법재판으로 력사에 치욕을 남긴 《조봉암과 진보당사건》재판이 시작되였다. 홍병삼이 장중한 어조로 호명을 하자 검사석에 긴장하게 앉아있던 조인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청중의 시선이 일제히 상판이 둥글고 눈이 만만치 않게 올롱하게 생겨먹은 검사에게로 쏠렸다.
조인수는 재판정을 향하여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옆에 앉아있는 검사보가 주는 두툼한 기소장을 받아들었다. 그는 서울사회계의 이목이 쏠려있는 재판의 첫 포문을 자기가 열어놓는다는 자부심과 함께 이제 자기가 쏘아버린 포탄의 파편이 자기의 머리우에 꺼꾸로 날아와 우박처럼 쏟아져 자신도 영원히 꺼꾸러질수 있다는 비장한 생각에 쉽게 입을 떼지 못하고 급하게 들뛰여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고 안깐힘을 다하였다.
이윽고 머리를 들고 재판장을 향하여 던진 첫말은 그자신도 놀라울 정도로 떨리였다.
《존경하는 재판장각하!》
조인수는 다시 기소장에 눈길을 묻고 숨소리를 가라앉히려고 애를 썼다. 그는 입술을 혀끝으로 몇번 적시고는 기소장의 두번째 줄을 재빨리 읽었다.
《나,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조인수는 지난 1월 중순 북동조리적행위, 체제전복기도, 간첩행위로 구속된 전 진보당위원장 조봉암과 부위원장 우달수, 간사장 윤기중을 비롯한 열명의 피고들에 대한 서울경찰청의 심문조사보고에 기초하여 조사를 하여왔으며 지난달초에 서울지방법원에 기소하였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기소한 열명의 피고들에 대한 범죄사실에 대하여 본 재판에 제기하겠습니다.》
조인수는 자기의 목소리가 지나친 흥분과 불안과 초조감에 휩싸여 그냥 떨리고 입안마저 말라들자 자기딴에도 화가 나고 어처구니없었다.
숱한 재판을 밀어오며 배짱을 키워오고 쇠덩이처럼 심장을 굳혀온 이 조인수가 오늘은 어찌된 일인가.
아무리 마음을 다잡고 심장을 다독거려도 그냥 몸이 떨리고 목소리는 의연히 기분나쁜 쇠소리만 낸다.
그는 피고들을 보지 않으려고 기소장에 고개를 묻고 그냥 거기 써놓은 글줄을 기계적으로 읽어내려갔다.
지금 자기는 지난 10여년간 남쪽사회를 정의의 사도처럼 풍미했던 거물을 쓰러뜨리려 하고있다. 바로 그 인간의 생명을 완전히 말살하기 위하여 여러날에 걸쳐 사건들이 탐색되여 만들어지고 거기서 법적분석과 평가를 뽑아냈다. 그런데 자기의 주장, 자기의 기소, 자기의 론고는 그로써 끝나는 일이 아니다.
두말할것없이 이 자리에서 재판장과 판사들을 법정론리와 사실로 납득시켜야 한다. 그뿐인가. 우선은 이 법정에 모여든 방청객들의 공감을 얻어내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그치지 않는다. 세상여론을 달래주어야 한다. 사건과 론거의 힘으로 이제 거세게 벌어질 피고들과 변호인단 그리고 법정과 법정밖에서 이 재판을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있는 조봉암지지자들의 필사적인 저항을 일격에 짓부셔야 한다.
상대는 리승만을 두차례나 맞붙어 압도해버린 중량급인물이며 수하사람들도 하나같이 쟁쟁하다. 우달수, 윤기중, 신창균… 입에 올리기만 해도 기가 질리는 강쇠같이 강한 인간들이다. 리론과 웅변까지 겸비되고 막강한 사회적영향력을 가지고있으며 항일과 그에 이은 민주화투쟁의 화려한 정치경력의 소유자들이다. 숙맥같은 인간은 하나도 없다.
기소장랑독이란 첫 포성을 울려놓는 이 결전의 서막일따름이다. 록록치 않은 저들과 이 대결의 참호에서 오직 혀바닥을 유일한 무기로 삼고 피어린 싸움을 벌려야 한다.
어차피 나는 저들에게 죽음과 중형을 구형해야 한다. 이것은 이미 경무대의 결심과 의지로서 한갖 검사나부랭이에 불과한 자기가 재론할 문제가 아니다.
정치재판이란 언제나 통치자의 구미에 맞는 정치의 제물을 마련해주는것으로서 검사는 다만 통치자의 의향에 따라 말하고 주장하는 나팔수일따름이다.
이제 나는 통치권과 백성을 지켜나섰다는 신성한 사명감으로 나자신을 위로하며 저들에게 생명의 종말을 선포해야 한다. 등뒤에 리승만이 있고 자유당이 있으며 거대한 구조물인 권력이 검사라는 하수인을 내세워놓고 저 인간들과 생사를 건 판가리결전을 벌려놓았다.
조인수는 이런 생각에 묻혀 기소장을 읽어내려가면서도 자기의 몸에 총탄처럼 날아와 팍팍 박히는 피고들과 방청객들의 분노와 실망의 눈길을 의식하고있었다.
그 눈길들이 두려워 그는 그냥 기소장에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였다. 점차 속도를 늦추어 느릿느릿 말마디를 씹어가며 기소장의 페지들을 넘기고있었다.
여러달 눈에 피발까지 서며 검사보들을 때려몰아 만들어낸 기소장이였으나 이렇게 심판대에 올리느라니 제 생각에도 온통 허점투성이여서 이마에 땀줄이 서기 시작하였다.
이제 자기가 내뱉은 숱한 사건들과 그 세부들은 물론 말마디마디가 피고들과 그의 변호사들과 혹은 판사들에 의하여 재검토되고 심판을 받을것이다. 말마디 하나때문에 꺼꾸로 기소될수도 있고 사건전체가 뒤집혀질수도 있다.
더 무서운것은 력사의 법정이다. 력사야말로 가장 공정하고 가장 랭철하고 무자비한 재판관이다. 오늘의 재판결과는 이 시대에 한정되는것이 아니다. 후세의 인간들은 력사의 흑막에 가리워진 진실과 거짓을 들추어 정의와 불의를 다시 갈라놓는다. 그리고 량심의 법정에 다시 올려놓고 가장 엄정한 선고를 내리게 될것이다.
그래 조인수검사여, 그대는 세월이 멀리 흘러간 뒤에도 오늘의 기소장을 책임질수 있겠는가. 그대가 구형하게 될 그 형벌들을 책임질수 있겠는가.
그때에 가서도 그대는 자기 손으로 써넣은 기소장이 자기의 두뇌와 자기의 심장으로 씌여진것은 아니라고 후손들을 납득시킬수 있으며 력사가 내리는 엄정한 심판을 피할수가 있겠느냐.
자기가 만들어낸 구형은 정치의 롱간으로 생겨난 법의 후안무치한 사생아였다고 변명할수 있는가. 자기도 권력의 무쇠주먹에 란타당한 피해자였다고 빠져나갈수 있을가.
자기의 기소에 의하여 벌어진 재판이 사실은 목을 겨눈 칼날밑에서 꾸며진 정치재판극이였으며 자기는 그들이 대본을 만들고 연출한 조작극의 주역배우에 불과했다고 력사를 달래일수가 있겠는가.
조인수는 기소장을 번져가자 이러한 절박한 생각들이 그냥 꾸역꾸역 뇌리에 감겨들어 평소에는 그리도 거침이 없던 언변이 자주 토막이 나고 그냥 속통이 졸아들었다.
《잠간!》
홍병삼이 불쑥 조인수의 기소랑독을 중지시켰다.
《조인수검사, 물을 한모금 마시오.》
홍병삼은 긴장과 흥분으로 떨고있는 조인수를 불안스럽게 내려다보다가 그냥 떠듬거리는 그에게 동정이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조인수는 기다리기라도 한듯 후- 하고 숨을 내그으며 두툼한 문건철을 앞탁에 내려놓았다.
그 숨소리가 그대로 울리여 청중들에게 묘한 반응을 일으켰다. 쓰거운 조소의 물결이 방청석을 가볍게 휩쓸었다.
뒤에 앉아있던 검사보가 그에게 얼른 물고뿌를 내밀었다.
조인수는 꿀꺽꿀꺽 소리가 나게 고뿌의 물을 다 마셔버렸다.
《고맙습니다.》
《계속하시오.》
조인수는 다시 기소장을 들고 방금 읽어내려가던 대목을 찾느라고 글줄을 오르내리훑었다. 그제야 그는 자기가 지금까지 조봉암의 해방전경력에 대하여 소개하여왔다는것을 알았다. 눈과 입은 기소장에 묻혀 움직이고있었으나 생각은 왕청같은 곳에서 헤매고있었던것이다.
(가만… 내가 왜 지금까지 조봉암의 해방전경력을 장황하리만큼 소상하게 렬거하는거야? 그가 공산주의자라는것을 납득시키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건…)
조인수는 기소장에 적어놓은 경력을 그대로 읽어내려가다가 새로운 자체모순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 조봉암은 벌써 10대의 어린시절부터 항일운동에 나섰던 사람이다. 3. 1봉기에 나섰다가 감방에 끌려가 옥중고초를 겪었다.
출옥후에는 인차 공산주의운동에 뛰여들어 조선공산당창건의 주동인물로 되였고 일후에는 국제당의 대표로서 조선에서의 공산주의운동을 지도하였다.
상해림시정부에도 참여하였고 만주와 원동, 상해와 도꾜 등 대륙의 광야와 이역의 곳곳을 발이 닳도록 뛰여다니며 조선에서 일본제국주의를 격멸하기 위해 분투하였다.
일본놈들의 야만적인 고문대에 무시로 올라 고초를 겪었고 감옥에도 들락날락하였다. 그 다난한 세월에 온갖 우여곡절속에서도 전향을 하지 않고 공산주의자로서 끝까지 항일의 기치를 들었다. …
이게 재판의 성격에 어울리는 기소인가.
원래는 이러한 경력소개를 통하여 그가 공산주의자였음을 밝히고 따라서 그는 이 땅에서 머리들고 살수 있는 존재명분을 이미전에 상실하였다는 결론을 도출해내려 한것이였다. 막상 읽어내려가다보니 오히려 민족이 낳은 한 견실한 반일애국자의 초상을 재판정에 내놓게 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뿐이 아닌것 같다. 자기는 지금 공산주의자로서의 지조를 지키는 길이 곧 조선독립의 기치를 지키는 길이였으며 조봉암이 그를 위하여 얼마나 간고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야 했는가를 구체적인 사실을 렬거하면서 증명하고있는것이다.
결국 자기의 입으로 수많은 고초를 이겨내면서 신념과 지조를 버리지 않고 민중의 기수로 활약하여온 조봉암의 평생을 찬미하고있었다.
조인수는 자기의 심장을 압박해오는 기막힌 모순에 경악하며 숨이 가빠나 무춤 기소장랑독을 멈추고 처음으로 피고석과 방청석을 둘러보았다.
확실히 피고들의 얼굴에는 긍지와 자부심과 희열이 번쩍거리고있다.
방청객들의 표정은 각이하지만 대체로 커다란 경탄과 놀라움으로 자기의 기소를 받아들이는것 같다.
(이래서는 안되겠는데… 이거야말로 제가 놓은 덫에 제가 치인 격이 아닌가. 기소의 근본취지부터 탈선이군, 탈선이야.)
그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당황해졌다.
뒤에 앉아있던 검사보가 자기 상전이 겪고있는 심리적인 불안과 고충을 헛짚고 또다시 얼른 고뿌에 물을 따라 내밀었다.
조인수는 상대를 향하여 눈을 거칠게 희번득거리면서도 고뿌를 나꿔채고는 단숨에 목구멍에 부어넣었다.
숨을 가다듬고난 조인수는 이번에는 자기가 만들어낸 기소장을 벌컥벌컥 번지며 뎅강뎅강 뛰여넘기 시작하였다. 서둘러 해방직후에까지의 조봉암의 경력을 소급하여오른 조인수는 농림부 장관시절을 거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 청중들에게는 자기의 의도와는 달리 정반대의 효과를 줄것 같다.
그 시절에 토지의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주장했다는것으로부터 다시 이어져갔다.
빈고농들을 위해 농업공동조합을 조직하려고 했다는 사실, 그뒤로 《국회》부의장으로, 《대통령》후보로 두차례나 출마하여 리승만의 도전자로 나섰다는 사실…
그것 역시 엮을수록 자기 민중을 위해 바쳐진 한 인간의 로심초사와 헌신이 비껴있다. 지사의 애국애족의 넋이 빛발치고있는것이다.
조인수는 서둘러 징검다리를 건느듯 또 뛰여넘었다. 조봉암의 경력을 자상히 그려놓아야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민중의 권리와 리익의 대변자로서의 민중지도자의 위신만 높여주게 된다는 우려때문이였다.
(내가 왜 당초에 이 엄청난 탈선을 예상하지 못하였을가. 기소장이 검찰청은 물론 리승만까지 이르는 경무대 비서실과 서울대사관까지 한바퀴 돌아오며 숱한 수정과 윤색을 받아왔는데 그 머저리들이 왜 이 단순한 탈선은 잡아내지 못하였을가.)
끝내 조인수는 경력에 대한 기소를 서둘러 끝내고 종합적인 결론을 뽑아낸 페지를 읽어버렸다.
《에- 이와 같이 피고 조봉암은 일제시기부터 극악한 공산주의운동가로서 조금도 개심의 여지가 없이 살아왔습니다. 공산주의는 절대로 우리 사회에서 용납이 되지 않으며 그것은 우리 사회의 국시로 되는 반공이데올로기와 헌법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입니다. 검사의 본 공소에서 피고의 이러한 경력을 구체적으로 언급한것은 이제 제기할 피고의 범행의 세계관적기초를 밝히고저함에 있습니다.》
조인수는 드디여 그의 경력을 이렇게 비교적 명확하게 마무리지었다. 이 구절만은 마음에 들었다. 그 누구든 이러한 결론을 뽑아낸데 대하여서는 이의를 표시하지 못할것이다.
그는 잠시 말을 끊고나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와 턱부리에 맺힌 땀방울을 꼼꼼히 닦으며 청중을 둘러보았다.
송곳 들 자리없이 법정을 메운 청중은 당파나 소속에 관계없이 자기의 기소에 심취되여 숨을 죽이고있는것 같았다. 어쩌면 점차 자기의 기소가 청중의 심금을 틀어잡기 시작하였으며 자기와 법정이 하나의 유기체가 되여 호흡을 하고있는것 같다.
조인수는 속이 차분히 가라앉고 자신감을 되찾기 시작하였다.
어제 저녁 밤늦게 재판이 시작되는것과 관련하여 양주병을 한 상자 싣고 온 곽영주가 잔을 부어주며 씨부렁거리던 소리가 귀전에 다시 울리였다.
《임자는 이 사건으로 력사적인 인물로 되였네. 력사에 제 이름 석자를 금문자로 올리게 됐다는걸세. 잘해보게. 하지만 상대가 상대이니만치 허리띠를 풀어놔서는 안되네. 승하면 기우뚱거리던 이 사회를 구원한 리승만박사의 충신으로 되는거요, 패하면 이 사회를 새로운 비극과 도탄에로 몰아넣은 역신으로 되는걸세.》
은근히 상벌을 시사하던 곽영주가 지금 법정을 들여다보면 흡족해할것이다.
(그래, 그렇구말구… 나는 지금 력사적인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였다. 오늘 저녁이면 신문과 방송들이 조인수라는 서울의 말단검사의 이름을 온 세상에 실어갈것이다. 나에게는 력사적인 드라마를 성공작으로 끌고나갈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있다.)
조인수는 죄여맨 허리띠의 압박감을 떨쳐버리듯 배에 힘을 주었다.
(나는 력사적인 소임을 해낼것이다!)
《계속하시오.》
홍병삼이 검사의 열띤 모습을 지켜보다가 그가 시간을 지체시키고있는것이 짜증나서 재촉하였다.
제멋에 겨워있던 조인수는 흥이 깨져 재판장을 흘끔 쳐다보았다.
이 력사적인 드라마에 어찌되여 저렇게 숙맥과 같은 인간이 자기와 어깨를 겨루게 됐는지 리해되지 않는다.
만년판사가 돼서 퇴임을 눈앞에 둔 인간, 여적 한번도 재판에서 상류급에 속하는 재판이라고는 맡아보지 못한 어리무던한 법관이 이 력사적의미를 가지는 재판에 자기와 나란히 주역으로 선정된것부터가 기분이 잡치는 일이다.
법무부가 장관대리감투를 평생을 서생으로 살아온 인간에게 씌웠다고 하더니 정치적감각이라고는 꼬물만치도 없는 백치들만 모여든게 분명하다.
조인수는 재판장의 기분따위는 아랑곳없다는듯 서두름이 없이 또다시 검사보에게 손을 내밀어 물고뿌를 받아가지고 천천히 한모금 마시였다.
《피고 조봉암의 범행은 크게 세가지로 설명할수 있습니다.
첫째, 통일론의에서 국시로 세워진 <북진통일>론에 상반되는 평화통일론을 대치시킴으로써 북의 평화통일론에 동조하고 리적행위를 한것입니다.
둘째, 진보당을 결성하고 대통령후보로 출마하고 자기에게 맹종맹동하는 인물들을 국회에 진출시켜 체제전복을 시도한것입니다.
셋째, 민중을 위한 세상을 만든다고 제창하면서 수탈없는 경제, 균형적인 분배가 실현된 사회건설이라는 구호밑에 공산사회건설을 꾀한것입니다.
이러한 목적달성을 위해 조봉암을 비롯한 피고들은 이북에서 파견된 일당들과 정상적인 련계를 가지고있었다는것이 본 재판에서 심판을 받아야 할 주범죄에 속합니다.
이밖에 무기를 불법소지한것도 추가로 범죄가 되고있습니다.》
조인수는 이렇게 조봉암의 《범행》을 굵직하게 분류하고나서 구체적으로 사건들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분석을 가했다.
조인수는 처음으로 조봉암의 평화통일론이 북에서 제기한 통일론과 일치하다는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1955년 4월에 북의 최고인민회의에서 남쪽의 《국회》에 보내온 통일방안과 그 실현을 위한 방도를 밝힌 편지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