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 회)
제 2 장
3
룡산에 있는 미강점군사령부의 버드대좌의 방에 진보당사건에 관계하고있는 통치권의 중요인물들이 모여들었다. 이중에는 장관급으로는 류선민과 정제관이 있었고 그밖에 검찰총장과 치안본부장이 참가하였다.
버드는 그들이 원탁주위에 둘러앉자 접대부를 불러들여 커피를 한잔씩 대접하고는 누구라 없이 거드름스럽게 물었다.
《형량을 얼마씩 먹이려는가?》
며칠후에 열리게 되는 진보당사건에 대한 공판에서 조봉암과 기타 성원들에게 어느 정도의 형벌을 적용하겠는가 하는것이였다.
검찰총장이 맨 처음 대답하였다.
《우리 검찰은 조봉암에게 사형, 기타 피고들에게는 무기, 장기의 옥살이를 구형하기로 하였습니다.》
《사형?!》
버드가 놀랍다는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자 버드가까이에 앉아있는 정제관이 검찰총장의 말을 보충하였다.
《그건 우리 경찰에서도 예견하였고 주장하였던바입니다. 조봉암에게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습니다. 우리 경찰이 이미 구멍이 될만 한것들을 죄다 막아버렸지요.
평화통일이라는게 도대체 뭡니까? 국시위반이지요. 게다가 북의 사주를 받은 간첩활동의 결과입니다.
우리 경찰은 국제간첩단과의 접촉사실도 만들어… 아니, 찾아냈습니다. 그러니 간첩련루자, 북에 대한 동조, 고무, 찬양 등의 극형에 해당하는 범죄가 구성됩니다. 그밖에 신성한 국회에 자기 사람들을 보내여 체제전복을 기도한 범죄도 찾아쥐게 되였습니다. 그러니 사형에 처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정제관이 일사천리로 내리엮는 소리에 버드는 히물히물 웃었다. 잘은 지껄인다는 로골적인 조롱이였다.
정제관은 말이발같은 버덩이를 드러내고 히물거리는 버드의 상통이 불쾌하기 그지없었으나 짐짓 머리우에 있는 전등을 쳐다보며 꿈틀거리는 밸을 진정시켰다.
만날 때마다 눈에 피발이 서서 바보요, 아메바요 욕설을 퍼붓던 버드가 비웃음이건 코웃음이건 웃어주는것만 하여도 다행스러웠다. 저 양놈의 머리칼이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쭈뼛이 일어서고 불량스러운 노랑눈에 독이 오르고 두꺼비처럼 두터운 입술에서 침방울이 마구 튕기기 시작하면 상대가 누구든 초죽음을 당하기 마련이다. 저놈이 소란을 피우면 덩달아 경무대도 소란스러워지며 리승만이까지 나서서 들볶아대고 개욕을 퍼붓는다.
정제관은 버드의 상통이 저 정도이니 이제 리승만에게 불리워가도 곤욕스러운 처지는 면하게 될것 같아 안도의 숨이 나갔다. 하지만 버드가 이따금 어깨를 으쓱거리기도 하고 고개를 내두르기도 하면서 그냥 웃어대자 밸이 뒤틀리기 시작하였다.
(저 작자가 뭐가 어째서 그냥 히물떡거리는거야? 뻔한 거짓말이니 어처구니없다는건가? 그럼 뭐 어때? 이거야 늬들이 시켜서 하는짓이요, 그렇게 몰아가기를 바라서 하는 일이 아니냐? 이놈아, 대통령이 이 일때문에 너희한테 귀한 돈을 한아름 안겨준걸 내 모르는줄 아느냐? 우린 뭐 노상 귀가 없고 눈이 없는줄 아느냐?)
정제관이 이렇게 속으로 부르고 쓰며 기분이 잡쳐서 툴툴거리는데 류선민이 비꼬인 어조로 제밥에 재를 쳤다.
《그게 당신네 소망이겠지? …》
《그건 무슨 소리요?》
《법정계산서는 썩 다르게 나오고있다 그 말이요.》
《법정계산서? … 어떻게요?》
정제관은 아직도 학자냄새를 풍기며 리승만앞에서까지 도고한 자세를 감추지 않는 류선민을 마뜩지 않게 돌아보며 따지듯 물었다.
《당신네가 제일 문제시한것이 통일문제요. 이를테면 조봉암의 통일정책이 반체제적이라는거요. 헌데 통일론시비로 리적으로 몰아갈수는 없구 국제공산당이란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이며 체제전복기도도 찾아내기 힘들다는거요. 그건 언론에서 시비할 정도는 되겠지만 아직은 범죄로, 더구나 사형을 선고할만 한 명분으로는 되지 않는다는거요. 그러니 최고형으로는 조봉암에게 징역 몇년, 죄명은 불법무기소지, 그것도 법해석에 따라 달라질수 있소. 개인선물이라는것이 확증되면 그 조항마저 범죄로 성립할수조차 없게 된다는거요.》
《뭐요?!》
정제관이 비양스럽게 내뱉는 류선민의 말에 골이 나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류선민은 너같은 놈의 투정질따위는 개의치 않는다는듯 버드쪽으로만 고개를 돌리고 느릿느릿한 말투로 계속하였다.
《물론 이건 지금까지 법원이 검사의 론고와 피고들의 주장을 분석한데 기초한 예비적결론이요. 하여튼 며칠후에 공판이 시작되니 지켜봅시다.》
류선민이 그냥 늘어빠진 말투로 설명하자 정제관이 그에게 삿대질을 해가며 말에 가시를 돋혀가지고 달려들었다.
《법무는 도대체 어느쪽이요? 리박사의 지시를 받고도 그렇게 어정쩡한 립장을 가질수 있소? 법원이 그렇게 선고를 내리면 우린 재판장부터 모조리 잡아다가 교수대에 끌고 갈테요!》
《재판장들까지? 저런? … 무슨 죄로?》
《직무태만! 명령불복!》
《허허, 대단하구만. 어디 그 사람들 죄를 만들어보우. 직무태만, 명령불복? … 흥, 그건 당신네가 져야 하는거요. 당신네는 애초에 구속령장을 발부할만 한 죄도 꾸며내지 못했는데 알맹이가 없는 빈소리만 가지고 재판이 성립되는가. 리박사의 령을 받았으면 제대로 해야지. 어림도 없소. 소리를 요란하게 내고 한달동안 그 사람들을 달구어 만들어낸게 고작 권총 한자루가 아닌가? 이거야말로 호수물 퍼내고 새우 한마리 낚은 격이라… 허허, 직무태만과 명령불복죄는 당신네한테 지워야 할거요.》
류선민이 여전히 코살을 찡긋거리며 배포유하게 비꼬듯 껄껄 웃었다.
정제관은 더욱 암팡스럽게 걸고들었다.
《법무의 그 태도가 의심스럽소. 도대체 어느쪽이요? 간첩동조죄-이건 <보안법>에서 골자란 말이요!》
《허허… 그럼 이 류선민이도 간첩동조죄에 걸어보구려. 그리고 어느쪽인가 구태여 대답한다면 난 리박사쪽이요. 리박사가 관여해서 만들어낸 법의 편이요. 난 위법자들이라면 그 누구라도 법정에 세워놓아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는 헌법의 문지기란 말이요. 그러니 내무도 입건사, 눈건사, 귀건사를 잘하는게 좋겠소. 당신들이야말로 세계법사에 없는 망탕짓을 하여 대통령과 우리 민족의 존위를 떨어뜨리고 동맹국인 미국의 영상까지 심히 더럽혔은즉 체제모독, 특정인물과 기관의 권위훼손, 직권람용, 안보위기조성, 민심소요격발, 류언비어류포, 내부동란선동, 기타 등등의 죄목으로 오라지고 형장에 나설수 있소. 그러니 제 입이라 해서 마구 벌리는게 아니요, 허허…》
류선민은 모래불에 건져놓은 물고기처럼 할딱거리는 정제관을 손바닥우에 올려놓고 그냥 다불러댔다.
두사람의 대조가 뚜렷한 기질과 속깊이를 헤아리고있던 버드도 흐아- 하고 큰 입을 쩍 벌리고 바스러지게 웃었다.
류선민이 정제관을 이리저리 후려치는것이 어찌 보면 갈갬질하는 아이의 버릇을 가르치려고 무릎을 꿇어앉히고 엉덩이를 찰싹찰싹 쳐가며 일부러 혼뜨검을 주고 되게 엄포를 놓는것처럼 보여 흔들거리는 웃음주머니를 참을수 없었던것이다.
그통에 검찰총장도 비주름히 따라웃는데 정제관과 치안본부장은 분노와 수치를 못이겨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얼굴이 컴컴해졌다.
좌중에 웃음이 잦아들자 정제관이 속이 내려가지 않아 《이보시오, 법무!》 하며 또 달려드는것을 버드가 시끄럽다는듯 손부리로 원탁을 딱딱 쪼아대서 제지시켰다.
《그만두시오!》
버드는 앙칼진 고함으로 두사람을 갈라놓았다. 앞으로 튀여나온 눈딱부리가 당장 상대를 물어삼킬듯 사납게 희뜩거렸다.
《당신이 뭘 했다고 여기 와서 행악이요? 이제야 기소장을 겨우 넘긴 주제에… 나 역시 법무부 장관대리의 견해에 동감이요. 자칫하면 당신이 포승을 받을수 있소. 난 당신들, 경찰과 검찰의 재간에 손을 들었소. 일을 꾸미겠으면 어디를 때려도 곯은데가 없이 땅땅 여무지게 해야지. 당신네처럼 사방에 구멍이 숭숭 하고 텅 빈 깡통소리만 내게 하니 어떻게 일을 맵시있게 마무리할수 있겠소? 당신에게 경고하오. 당신이 우리 미국과 리승만각하의 면상에 감탕칠을 해주고있단 말이요. 그래 당신 목 하나로 그걸 씻어버릴수 있는가? 내 하나 당신에게 물읍시다. 조봉암이 국제공산당과 련계가 있다니 대체 상대가 어떤 놈이요? 당신이 꿈속에 봐둔 초인이요? 대체 국제공산당본부는 어데 있고 그 당수는 누구요?》
버드가 경멸적으로 내던지는 채찍에 얻어맞아 후줄근해졌던 정제관이 그 소리에는 해볼 소리가 있다는듯 올빼미눈같이 올롱한 눈을 바로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인이 아니라 살아움직이는 인물이지요. 강무호라고 전쟁때 북에서 흘러온 놈이 있지요. 접촉설이 있습니다.》
《강무호? 으하하… 나도 들었소. 내앞에서도 강무호가 간첩이라고 주장하고싶소? 당신네 내무에도 내 사람들이 곳곳에 박혀 거짓과 진실을 다 가려내여 보고한단 말이요. 당신 부하들이 당신을 업어넘기고있는것 같은데 내가 당신에게 그 사람의 진실을 밝혀주지. 그는 전쟁때 함흥쪽에서 내려온 사람이란 말이요. 그런걸 우리가 곁에 두고 써먹었단 말이요. 헌데 그 사람이 남에서 살아보면서 머리가 달라졌거던. 당신네가 너무 정사를 개죽으로 써놓군 하니 그 사람이 반기를 들고 통일운동에 나섰던거요. 이를테면 당신들의 사회가 너무도 어지러워 다시 공산주의로 돌아간셈이지. 그런 사람을 법정에 내세우면 그 강무호라는 인간이 내가 북의 간첩이요, 조봉암을 포섭하라는 임무를 받고 밀파되였소, 그래서 조봉암을 낚았소 하고 증언이라도 해줄것 같은가?
음, 음… 당신네 머리통은 어떻게 돼먹었는지… 그래 내앞에서 아니라고 또 우겨볼 잡도리요?》
《그래서 고문대도 있고 곤봉도 있는거 아닙니까. 우린 해내고야말겁니다.》
정제관이 조롱기가 다분한 버드의 추궁에 그만 역증이 나서 반발하였다.
《흠- 흠-》
버드는 그냥 코소리로 정제관의 호언장담을 일축하였다.
《미스터 정, 제발 정신을 차리시오. 사람들을 세난 아이들처럼 여기며 인형놀이같은거나 만들어가지고 세상에 내놓으니 빈번히 망신만 당하지 않나. 당신네 대통령도 골치가 아프겠소. 이젠 당신들은 물러나시오. 당신들은 총소리도 내기 전에 이미 패했소.
조봉암이 어떤 사람인가. 그는 지금 감방에서 독서를 하고 체조를 하면서 새로운 전투에 나설 준비를 갖추고있소. 벌써 한달밖에 안되였는데 열두권의 책을 보았고 통방신호로 자기 조직성원들에 대한 세뇌교육을 시키고있소. 당신이 이런걸 알고나 있소? 흠, 놀랄건 없소. 헌데 뭐 강무호라는 인간이 어떻다구? 강무호가 간첩이야? 으하하, 내무는 이젠 비켜서시오!》
버드가 너털웃음치며 그냥 정제관을 조롱하다가 마지막말은 명령조로 딱 잘라맸다.
《그러면? …》
정제관은 물러나라는 소리에 떨떨해서 눈알이 뱅그르르 돌아갔다.
《손을 떼란 말이요. 이제부터 뒤치닥거리는 내가 맡아주겠소. 이건 대통령과도 합의가 된 문제요. 다만 당신네 경찰곤봉이 필요하거나 머리수가 필요할 때면 알려주겠으니 그땐 당신이 직접 맡아서 집행하도록 하시오. 알겠습니까?》
버드는 오금을 박았다.
《그건? … 아, 그래도…》
정제관은 이제 와서 물러선다는것이 너무도 억울한 일이여서 버드의 말을 쾌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만을 드러내보였다.
(조봉암사건을 통채로 넘기라는건데 그럴수는 없다. 그동안 경찰이 제 낯짝 깎이우는 일을 얼마나 많이 치러왔는가! 조봉암과 진보당의 목을 조이느라고 나도 장관감투를 쓴이래 반나마 기운을 뽑아낸것 같다. 그때문에 리승만에게서 당한 모욕과 수치는 또 얼마나 지겨웠던가. 그런데 겨우 열매를 익혀놓으니깐 너희들은 비켜서라는게 무슨 고약한 심보냐. 분명 이제부터는 저들의 각본에 따라 저들이 연출하고 저들이 출연도 다 맡겠다는 수작이 틀림없다. 결국은 저 양놈이 리승만이 안겨준 딸라값을 남이 애써 가꾼 열매로 치르자는 속셈이 헨둥하다. 저들이 도대체 훈수질 몇번을 제외한다면 품 몇자루 바쳤다고 다 익혀놓은걸 통채로 꿀꺽해버리자는거야?)
정제관은 분통이 터지게 억울해도 뻐꾹소리 한마디 낼수 없었다.
버드의 노랑눈에서 불찌가 펑끗 일었다.
정제관은 그 매서운 눈총에 온몸이 짜릿해져서 얼른 대답을 주었다.
《알겠습니다, 각하! 우리는 그럼 물러서겠습니다.》
버드는 그제야 그에게서 서리찬 눈빛을 거두고 다른 사람들을 좀 부드러워진 눈으로 둘러보았다.
《좋습니다. 최대의 비밀을 요하는 공작이므로 관계자들을 엄선하고 비밀관계를 특별히 해야 하는데로부터 그런 조치를 취하기로 한것입니다. 그러니 소외감은 갖지 말기 바랍니다. 내 일 네일을 가르지 말고 리대통령의 요구를 앞세워야 합니다.》
버드는 자기가 지나쳤다는 때늦은 후회에 떠밀려 한결 여낙낙하게 정제관에게 량해를 구하였다. 등치고 배만져주는 격이다. 버드는 정제관을 그 정도로 달구고 여유있게 쓰다듬어주고는 류선민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부터 법무나 검찰은 나와 련계를 가지고 재판정형과 전망을 실태그대로 통보해주어야겠습니다. 물론 나도 그에 대한 자료원천은 가지고있지만 재판을 맡아보는 담당자들의 견해를 제때에 알아야겠습니다.》
류선민은 눈길은 창밖으로 보내면서 고개를 무겁게 한번 내리찧었다.
때없이 그의 시야에 누이동생의 모습이 선히 떠올랐다.
(에이 참, 팔자도망은 하지 못한다더니 선녀가 꼭 그 꼴 아니냐.)
지금 와서 동생생각을 하면 언젠가 선녀가 그 집으로 들어갈 때 해두었던 우스개소리까지 다 후회가 된다.
《얘, 선녀야! 가인박명이라는 말 괜히 생겨난줄 아느냐? 죽산을 따라다니다가 이제 네 신세 어떻게 되는가 봐라. 죽산은 지금 호박 쓰고 돼지굴로 들어가고있다. 왜 너까지 부디부디 풍랑속에 뛰여드는거냐?》
(결국 일은 꼭 내 말처럼 되고말았구나. 새망스럽게 그런 소리는 왜 앞질러 했나.)
결국 조봉암은 반대세력의 모함에 걸려들어 결단이 나게 되였다. 오랜 세월 끌어온 동생의 사랑도 깨지게 되였다.
이번에 동생이 홍병삼을 재판장으로 세워달라고 울면서 부탁할 때 류선민은 안타까이 사정까지 하였다.
《좋다. 그 일은 내가 나서주마. 하니깐 이제는 네가 내 부탁 들어다오. 뭔가 하니… 어찌겠니. 다행히도 네가 아직은 그 사람에게 매달린 몸은 아니니 그 집에서 나오거라. 그리고 이번 일을 마감으로 그 사람과 깨끗이 인연을 끊어라. 그건 불륜도 아니고 욕된 일도 아니다. 내 말 이번에는 제발 새겨들어라.》
《좋아요. 오빠의 말씀 명심하겠어요. 그렇지만 오빠도 저의 말을 새겨들어줘요. 그분이 옥에서 풀려나오는 날까지 난 그 집을 지키겠어요.》
류선민은 절대로 동생의 마음을 되돌려세울수 없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조봉암과의 관계문제에서 자기의 뜻을 한사코 거스르는 동생이 얄밉고 야속했다. 한편 조봉암에게서 물러서면 만사가 깨끗해지련만 그와 더불어 고행을 함께 하려는 동생의 갸륵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
원체 류선녀가 대학에서 가르치는 가정학이라는것은 그 의미를 범속하게 풀이한다면 훌륭한 주부, 교양있는 어머니, 현숙한 안해에게 필요한 지식과 품성을 가르치는 학문이다. 교단에서 쌓은 높은 지성이 타고난 미모와 결합되여 이미전부터 서울 상류계층의 화제거리에 드문히 오르던 동생이다.
류선민은 동생이 이러루한 풍문에 떠받들리우는것이 처음에는 기쁘게 생각되였으나 차츰 걱정이 커갔다. 그것이 류선녀의 일생을 괴롭히고 복잡하게 만들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동생이 재가를 힘들게 할거라는 우려에서 벗어날수가 없었다. 기실 재물 있고 권세 좋고 인격도 있는 숱한 청혼자들이 다가들건만 한번 만나고나면 두번다시 만나지 않는다.
그렇게 도고하기로 이를나위 없던 동생이 조봉암을 한번 접해본 그때부터는 자존심을 다 허물어버리고 기꺼이 그의 가까이에 다가서버렸다.
류선민도 조봉암을 찾아다녔는데 그 역시 한두번 상종해본 다음부터는 류선녀가 반해버린 까닭을 십분 리해하게 되였다.
류선민의 눈에도 조봉암은 이지러져가는 이 사회의 쉽지 않은, 격이 높은 인간으로 비쳐졌던것이다. 조봉암은 확실히 신념이 강하고 지략이 있는 정치가일뿐아니라 속씀이 대범한 사내였다.
류선민은 한편으로는 동생을 위하여서도 조봉암을 어떻게 하나 구출해내야겠다고 속다짐을 하여온다.
서울법조계에서 유일하게 량심과 뼈대있는 판사로 보아온 홍병삼을 기어이 재판장으로 밀어주었고 그더러 주변의 입김에는 개의치 말라는 암시도 조심스럽게 던져주었다. 권총소지죄만이 유죄부문에 해당된다고 하기에 한두해 감방에서 일시 미친바람을 피하도록 했다가 적당한 구실로 감형을 시켜주면 된다.
그런데 형세는 조봉암에게 그냥 불리하게만 흘러가고있다. 미군방첩대까지 끼여들어 리승만과 짝자꿍이를 치며 그냥 조봉암을 모살하겠다고 별러대니 장차 이 일이 어떻게 끝나게 될는지 불길하기만 하다.
(선녀! 이제 봐라, 패가망신하는걸.)
류선민은 그냥 창밖의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이렇게 속깊이 탄식하였다.
문득 들려온 초인종소리에 류선민은 생각에서 깨여났다.
버드가 원탁에 있는 초인종단추를 눌렀던것이다.
방문이 열리더니 미군옷을 입고 가죽잠바를 걸친 사십대의 사나이가 들어와 버드에게 경례를 하였다.
《알고지내시오. 미군 인천방첩대장 림처한중령입니다. 이분들은… 뭐 대체 알고있겠지?》
몸매 갈람하고 눈이 가느스름한 중령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로 절도있게 돌아서며 깍듯이 경례를 붙인다.
《나가보시오.》
버드는 중령의 인사가 끝나자 인차 방에서 내보냈다.
《앞으로 저 중령이 우리의 거사에 깊이 관여하게 될것입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이번 재판이 서울사회를 살려내는 장거라고 말하고싶습니다. 공산주의에로 기울어져가는 민심을 자유민주주의방향으로 되돌려세우는 매우 중대한 사변적인 거사입니다.
지난해에 서울을 시찰하고 간 미국회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은 지금 서울의 정치는 윁남처럼 확고히 공산화의 궤도를 따라 움직이고있다고 개탄하였습니다. 공산화의 기수는 바로 조봉암과 그의 당입니다. 그러므로 권력의 중추를 이루고있는 당신들은 리유여하 불문하고 조봉암을 타격함으로써 사회적안정을 도모하고 리승만박사의 집권기반을 완벽하게 하여 반공방파제로서의 서울의 국제적지위를 높이며 우리 미국과의 동맹체제를 고수해야 합니다.
당신들은 1심재판은 문도 열기 전에 패했다는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2심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2심에서는 절대로 패자가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자, 이만 돌아들 가시오.》
버드는 제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버드가 이 일에 발벗고 나서는 리유가 있었다. 버드는 이제 몇달후에 승급조동으로 일본에 간다. 이 소식을 들은 리승만이 주일미군사령관에게 우는소리를 하였다.
주일미군사령관은 버드의 소환기일을 늦추어주면서 이번 사건을 어떻게 마무리하는가에 따라 방첩전문가로서의 버드대좌의 자질을 재평가할것이라고 오금을 박았다.
리승만은 이미 버드에게 약속하였다. 사례는 충분히 하겠다고… 버드도 장담하였다. 반공보루를 다지는 일이므로 서울에서의 마지막봉사로 접수하고 조봉암을 깨끗이 청산하여버리겠다고…
두 놈팽이의 배꼽이 이렇게 맞아떨어졌다. 버드에게 있어서 이번 일이야말로 공사와 사사가 묘하게 얽혀진 천재일우의 기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