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6 회)
제 2 장
2
최금룡은 조인수의 호출을 받았다.
최기오가 아들의 기색을 살피다가 근심에 젖어 어디에 피신하여있으면서 재판을 지켜보는게 좋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아니요.》
최금룡은 이렇게 단마디로 아버지의 걱정어린 권고를 마다하고 곧 서울지방검찰청으로 향하였다.
그가 검사의 방에 들어서자 양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조인수가 둥글걸상에 앉아 천정을 쳐다보고있었다.
《어, 임자가 최금룡? …》
조인수는 그리 크지 않은 방안을 가득 채우듯 보기 좋은 키꼴에 이목구비가 수려한 젊은이가 문턱을 넘어서자 틀을 차려 인사말인지, 심문조인지 분간 못할 말로 맞아주었다.
《당신은 조인수? …》
첫 수작에 권력의 매운 기운을 풍기는 거드름스러운 검사의 자세에 불쾌해진 최금룡이 조인수의 말본새를 그대로 흉내내며 반문하였다. 그리고는 장난스럽게 픽 웃었다.
그제야 조인수는 상대가 만만하게 대할수 없는 대상이라는것을 알아차린듯 태도를 바꾸어 저도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내가 조인수검사요.》
조인수는 법관지망생이라면 응당 조인수라는 이름정도는 알아야 될노릇이 아닌가 하는듯 여전히 반말투의 말을 붙여오며 상대의 표정을 칼끝같이 예리한 눈길로 살피였다.
《왜 불렀습니까?》
최금룡은 검사가 앉으라는 인사도 없자 벽쪽에 붙어있는 걸상을 일부러 소리가 나게 질질 끌어 검사의 책상앞에 가져다 놓고 몰풍스럽게 털썩 앉았다.
조인수는 상대의 그 저돌적이며 무례한 대응이 재미있다는듯 차거운 얼굴에 여유있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최금룡은 검사의 인상으로 보아 자기를 구속할 심산에서 호출한것은 아니라는 판단이 생겼다.
《이봐요, 뭐 법률상담소에 적을 두고있다고? …》
《…》
《경무대 비서실에 취직했다가 밀려났고 조봉암의 밑에 가서 개인비서노릇 하며 딸과 가까워지고… 진보당을 탈당하고 <량심선언>을 신문에 발표하고 조봉암 딸과도 갈라지고… 그 다음 미국평화원에 취직했다가 법관고시에 합격하여 인천법률상담소, 중구법률상담소로 옮겨앉고… 학생시절에는 대학교총학생회 회장을 한바 있었다는데 지금은 좌익인가, 우익인가?》
최금룡이 뜬금으로 외워대는 조인수의 고저가 없는 말에 툭 쏘아붙였다.
《조검사님, 이건 뭐 심문인가요?》
《아니, 인물료해지. 욕심이 나거던. 내밑에 와서 검사보로 일해볼 생각이 없나?》
《?》
이리저리 둘러치는 검사의 너스레에 최금룡은 잠시 얼떠름해졌다. 얼핏 들으면 실없는 수작 같아보이지만 정확히 재단되고 무엇인가 노리고있다는 느낌이 온다. 역시 조인수는 소문처럼 사람들의 밸굽을 휘저어내는 사찰계의 고급한 사냥개다운데가 있었다.
최금룡의 신경이 바늘끝처럼 예리해졌다.
《나도 이젠 쉰줄을 바라보거던. 이 나이엔 후비를 세워놓고 사는게 로후신상관리를 위해 편한 일이지.》
《어울리지 않는 로파심이군요. 뭐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죄를 너무 많이 지고 사는게 아닙니까?》
최금룡이 아닌보살하고 롱조에 가시를 담아 슬쩍 다쳐보았다.
조인수의 눈에 시퍼런 섬광이 번쩍했으나 그만한 희롱쯤은 개의할바가 아니라는듯 이내 사라졌다.
《역시 고려대를 수석으로 마친 수재의 눈은 명민하구만. 그렇다니깐. 이 자리는 너무도 많은 숙적을 만들어놓고 살아야 하는 자리거던. … 고달파, 고달픈 일이야. 그래서 자네같은 전도유망한 법관을 곁에 두고 지내다가 물러나면 그 그늘밑에 안식처를 마련해놓고 인생로후를 보내야 한다는거지.》
조인수는 그냥 진담인지, 롱담인지 딱히 가늠이 안되는 넉두리를 늘어놓으며 히물거리였다. 그러면서도 쥐눈같이 작은 눈만은 최금룡의 살가죽을 파고들듯 예리하게 반들거렸다.
최금룡은 등골에 소름이 끼쳤다. 로회하고 집요하기로 악평이 자자한 이놈이 도대체 무엇을 노리고 이렇게 지껄일가?
최금룡은 마침내 밸통을 세우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검사님, 내 나이 이제는 이마 한번 쓰다듬어준다고 곱게 웃어주는 때가 아닙니다. 당신의 검사보라니? … 검찰소에서 찾는다기에 어쩐지 을씨년스러운 기분이 들더니 참, 가소롭기 그지없군요. 그래 수하에 두고 애제자로 키워주려고 찾았습니까? 난 바쁘게 지내는 사람입니다.》
최금룡이 세차게 골받이하자 조인수는 여전히 히물떡거리며 손을 들어 앉으라는 시늉을 하였다.
《검사보로 일하는 문제는 좋네. 뒤에 가서 대답을 주게나. 검사라는 자리가 남의 뒤구멍 쑤시는 자리이기는 하지만 사실인즉 사람들과 사회의 안전을 도모하는 자리라는거야 자네도 배웠을테지? 좋네, 그건 앞으로 더 론의해보세. 서울지검(서울지방검찰청)의 결재를 받아 알려줄 일이 있어 찾았네. 뭔가 하니 자네가 조봉암공판에서 법정증인으로 선택되였네.》
《뭐요? … 증인? … 내가 하필이면? …》
최금룡은 증인이라는 소리가 마치도 면상에 날아든 홍두깨처럼 느껴져 후닥닥 놀라 외마디소리를 급하게 내질렀다. 검사측의 법정증인이란 검사가 자기 기소장의 진실을 법앞에서 확증하기 위하여 내세우는 인물이다. 결국 조봉암과 진보당말살을 노린 이 범죄적재판의 공범자로 되여달라는것이 아닌가.
최금룡은 인차 자기를 수습하고 차거운 어조로 캐물었다.
《내가 응하지 않으면? …》
《증인채택이란 법기관의 결정사항이므로 대통령까지도 일단 채택되면 불리워나가게 되여있네. 그거야 법공부를 하고 고시에도 합격한 인물이니 알고도 남음이 있겠는데…》
《음… 나를 인간패륜의 진구렁에 밀어넣는 판이군요.》
《뭐, 그렇게까지 타매할거야 있나? 자네가 <량심선언>까지 하면서 조봉암에게서 물러난 사람이고 더구나… 결별했다면 망설일거야 있나?》
조인수는 최금룡의 고뇌를 리해한다는듯 위로의 말을 해준다는게 그의 사생활에로 접근되자 얼른 말머리를 돌렸다.
최금룡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속으로 쓰겁게 중얼거렸다.
(변호를 하자고 별러왔는데 검사의 증인으로 나서? 일도 맹랑하군.)
그의 뇌리에는 연경이자매의 얼굴부터 떠올랐다. 더구나 효경의 앞에서 아버님의 변호사로 나서겠다고, 자신이 있다고 장담했었는데 내가 검사측의 증인으로 나선다는것을 알면 까무러칠것이다.
이거야말로 패륜이다. 배신이다. 그런데 이제는 철회할수도 없는노릇이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는 자리에 앉아 책상에 팔꿈치를 박고 두손바닥에 턱을 고인채 잠시 착잡한 생각에서 헤여날수 없었다.
만나면 아픈 매부터 들며 사정없이 가슴을 허벼대는 연경이를 그려보느라니 가슴이 얼얼해지도록 고통스러워졌다. 자기가 검사가 기소장에서 마구 들씌워놓을 조봉암의 《범죄》를 객관적으로 증명하여주는 검사측의 증인으로 나섰다는것을 알면 연경이는 또 한번 껑충 놀라 서리맞은 사랑에 여지없이 덧재를 뿌려던질것이다.
조인수는 둥글걸상의 등받이에 뒤목을 걸고 고통의 빛이 력력한 최금룡의 얼굴을 지켜보고있었다.
(증인이라? …)
고개를 천천히 저어 연경이자매의 얼굴을 지워버리고난 최금룡은 이렇게 입속으로 뇌이며 사색을 이어갔다.
번쩍! 한가지 생각이 그의 뇌리를 쳤다.
(꺼꾸로! … 그래… 여지가 있다! 꺼꾸로!)
머리가 핑하니 돌아갔다.
《좋습니다. 그러니 내게서 어떤 증언을 바라십니까?》
최금룡이 마침내 대답을 하자 조인수는 그를 잔뜩 추켜올렸다.
《좋아! 난 자네가 조봉암의 휘하에서 뛰쳐나온것 하나만 가지고도 매우 의미있는 용단이라 생각하네. 자네의 <량심선언>을 다시 보면서 난 자네가 한참호에서 동참을 할수 있다고 확신하였네.》
《검사님, 그건 <량심선언>이 아니였습니다. 기자들이 왜 게서 나왔냐고 해서 한마디 했더니 그것들이 거기다가 달리 색갈을 멕이구 지나치게 비약도 시켜가지고 뉴스감이 되게 했지요. 그것때문에 난 패륜아로 규탄받고있습니다. 돌아보기 싫은 추억입니다. 그걸 가지고서 저라는 인간을 평가하지 말아주기 바랍니다.》
《음- 좋네, 좋아. 너무 흥분할건 없네. 조봉암이야 원체 인격자지. 호걸남아요. 20년대부터 시대의 풍운을 휘감고 살아온 역풍의 정치가라는 말이 우연이 아니지. 존경할만 한 가치가 있는 인물이지. 그래서 자네는 조봉암에 대한 공판을 두고 비애를 느끼나?》
《아니, 그렇게 흑백이라는 단순론리로 사람을 몰아가지 마시오. 난 대학에서부터 최근 몇해사이에 우리 법력사를 두루 살펴보면서 흑백단순론리로 사람을 평가하고 범죄자를 처리하는게 큰 병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음, 뜻이 깊은 분석이요. 임자가 우리 사회 법시행의 모순점을 정통으로 찔렀소. 그러고보면 우리 법조계의 미래가 전도가 있어. 우리야 왜정때 도꾜에 가서 왜제국의 법률이나 배워가지고 그걸 지금껏 우려먹으며 사는 사람들이라 진부하기 그지없지.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 땅의 국체가 이 진부하기 그지없는 두뇌진에 의하여 보호된다는걸 잊지 말아야 하네. 우리는 어차피 이데올로기의 란무장에서 숨쉬는 인생들이니깐.》
《아니, 나라의 질서나 기강은 매 인간들의 량심과 정의에 의하여 지켜지는겁니다.》
《그 말도 지당하지, 옳구말구. 그래서 난 조봉암에게 툭 찍어놓고 말하면 사형을 구형하기로 했네.》
《사형이요?!》
최금룡은 소스라치듯 놀라며 비명처럼 검사의 소리를 받았다. 그 무슨 동정이나 주저도 없이 차가운 어조로 뇌까리는 검사의 소리가 그 무슨 요란한 우뢰처럼 방안을 진동하고 그의 온넋을 강타하였던것이다.
《놀랄건 없네. 이건 뭐 내가 비로소 만들어낸 형벌은 아닐세. 우에서 이미 그렇게 결론해서 떨군거지. 이를테면 정책이거던.
죄목은 뭐인가? 첫째, 통일론이야. 평화통일- 누구들의 주장이지? … 북의 주장이야. 자네가 게 있을 때 통일강령을 채택했다고 하더구만.》
《예, 그것이라면 글쎄… 증언할만 한게 있지요. 그때 여러곳에서 만들어낸 통일방안들을 수집보고한것은 나였지요. 통일강령이 채택되는 과정도 나는 다 지켜보았습니다.》
《그래? … 아주 좋아. 바로 그거야. 자네가 북의 통일방안도 수집하여 조봉암에게 주었다는것, 통일강령이 채택되던 과정-그걸 증언하라는거야.》
《그게 그렇게 중대합니까?》
최금룡은 조인수와 리승만일파의 흉모의 바닥을 파내고싶어서 어리숙하게 따져물었다.
《중대성여부는 법정이 판단하지. 우리는 그저 꺼내놓는거야. 재판정에 문제를 던지는거야.
둘째, 국제간첩단과 접촉한걸세. 이건 물론 자네 몰래 비밀리에 진행된 일이니 넘어갑세.
참, 금전관계를 자네가 맡아보았다는 소리도 있던데…》
조인수는 둘째 사항을 쑤셔만 놓고 어벌쩡하게 넘기는척 하다가 넌지시 옆구리를 건드렸다.
《그건 헛소문입니다. 하지만 돈관계라면 할 말이 좀 있습니다. 내가 몇차례 돈을 받아온적도 있으니까요.》
《그래? … 언제, 어디서? 어떤 용도로? …》
조인수는 최금룡의 입이 생각밖으로 쉽게 열리는듯싶어 끈을 잡아쥐자 그악스레 잡아챘다. 포식해야 할 먹이감의 살멱을 드디여 발통으로 누르게 된 맹수의 희열이 돋친 기세다.
《좀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 대체로 56년 선거를 앞둔 시기였는데…》
《좋네, 아주 좋아! 그걸 증언대에서 다 뱉아놓게.》
조인수는 상대가 벌리던 입을 닫아걸자 크게 실망의 빛을 드러내지 않고 그 정도로 스쳐가는척 하였다.
《셋째, 국회진출을 통한 체제전복… 강령에 그렇게 돼있네. 공산당경력자들을 대리출마시켜 국회를 장악하여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사회주의체제로 뒤집어놓는다는거지. 이게 대체로 기소측이 작성한 조봉암의 죄상일세. 그런즉 자네 증언도 이러한 방향에서 기소측의 론고를 지지, 확인해주는걸세.》
《예, 그렇군요.》
최금룡은 검사가 말을 끝내자 고개를 끄덕거리였다. 그리고 다시 생각을 굴리다가 물었다.
《보수가 있습니까?》
조인수의 작은 눈이 반들거렸다. 너도 어쨌든 인간의 어지러운 허욕을 이겨낼수 없는 작자가 분명하구나 하는 생각에 숨쉬기가 한결 편해지는듯 하였다.
상대의 됨됨이 고결하고 아름다울수록 다루기가 헐치 않고 몸처신도 조심스러워지는 법이다.
조인수는 첫인상에 무엇인가 위압감을 느끼게 하던 최금룡이도 이모저모 두드려보니 이 사회의 악취에 오염된 어디서나 맞다들게 되는 젊은이라는 평가를 내릴수 있었다. 다행스러운 일이였다. 조봉암의 슬하를 벗어난 진짜리유가 이제야 짐작되였다. 외알박이밤알처럼 곯은데 없이 팽팽해보이는 최금룡이 증언을 잘해주겠는지 은근히 우려되는바도 있었는데 저쯤되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것 같다.
조인수는 체면이나 례의따위를 아예 벗어던지고 최금룡을 함부로 하대하며 숨겨진 리면까지 토설하였다.
최금룡은 바로 이걸 노리고있었다.
(이놈이 밸굽까지 드러내게 해야 한다. 어데까지 끌고나가려는가? 어디까지 밀릴수 있는가?)
《물론이지. 보수없는 로동이라는게 우리 사회에서 있을수 있는가. 이번 일을 잘하면 나한테 와서 일할수 있도록 내 노력해주지.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하면 리승만과도 통하는 자리야. 자네같은 인간들에게 꿈에도 차례지지 않는 자리란 말일세. 그러니 이제부터 증언준비를 착실히 해서 조봉암을 단번에 지워버립세. 검사측과 증언이 이가 잘 맞아돌아가야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수 있네. 항간에서는 짜맞추기라고 시비도 하지만 이건 필요한거요. 래일 저녁에 와서 한번 맞추어보자구.》
《그게 뭐 필요할가요? 대체로 륜곽은 잡혔으니 난 검사님의 유도질문에 필요한만큼의 증언을 할수 있습니다. 나도 법전문가라는것을 알아주기 바랍니다. 증언문제로 날 더는 찾지 말아주십시오. 공판정에서 다시 만납시다.》
조인수는 너무도 자신만만해하는 최금룡의 자존심을 더 건드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여 그렇게 하자고 수긍하였다.
최금룡은 빨리 자리를 뜨고싶었다. 조봉암에게 사형을 구형할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숨쉬기조차 가빠졌다.
(이놈들이 기어이 선생님을 꺼꾸러뜨리자는것이구나.)
그는 서울지방검찰청의 우중충한 대문을 벗어나오자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서늘한 바람에 활랑거리는 가슴을 식히였다.
최금룡은 조인수와의 담화를 곰곰히 되살려보았다.
원래 최금룡은 이번에 진보당피고측의 변호인단에 망라되기로 작정하고 변호인단의 책임자와도 미리 약조가 되여있었다. 그리고 슬금슬금 그 준비를 하기도 하였다. 그는 자신이 있었다.
조봉암의 슬하에서 두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을 보내온 최금룡은 조봉암이야말로 북악산과 같은 장엄한 무게를 가진 정치인이며 자기의 주견과 배심을 가지고 역풍을 헤쳐나가는 성인이라는것을 깊이 느끼군 하였다. 그러면서도 인정에 무르고 솔직담백한 인간, 남다른 웅심과 넓은 도량을 가진 선인에게 푹 취해있었다.
그가 그 훌륭한 인간을 떠나온것은 연경이가 만나기만 하면 서슴없이 타매했듯이 조봉암에 대한 탄압의 불똥을 미리감치 피해보려는 타산적인 자기 보호의식때문은 아니였다.
그에게는 벌써 오래전부터 애인에게도 조봉암에게도 토설할수 없는 비상한 꿈과 목표가 있었다. 그 역시 조봉암처럼 사회변혁의 기수가 되려는 꿈이였다.
그래서 그는 벌써 대학시절에 청년투사들이 모여든 해맞이모임이라는 조직에 가입하였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핵심인물로 활약하여왔다.
1956년에 이르러 최금룡과 그의 전우들은 인류의 변혁의 력사를 깊이 연구한 끝에 미군이 남조선을 강점하고있으며 리승만독재가 미제국주의를 업고 살판치고있는 한 《권력의 평화적교체》란 절대로 있을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였다. 오로지 대중적인 항쟁으로써만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사회의 민주화도 달성할수 있으며 미군의 강점도 종식시키고 나라의 통일도 이룩할수 있다는것이다.
조봉암의 곁에서 그를 보좌하면서 해와 달을 넘길수록 최금룡은 그의 투쟁목표에는 선뜻 공감하면서도 그 실현을 위한 방법과 전술을 절대로 긍정할수가 없었다.
조봉암은 의회투쟁의 주창자였다. 이것이 바로 그가 주장하는 제3의 길이요, 제3의 투쟁방식이였다. 십여년간의 반독재투쟁이 평화적인 정권이양의 가능성을 배격하고있었지만 그는 이미 개척한 자기의 길에서 한걸음도 비켜서려는 기미가 없었다.
최금룡은 진보당에 모여드는 사람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난 시기 이러저러하게 정치활동에 관여한 사람들이였다. 태반이 정치의 기류를 타고 모여든 정객들이였다. 조봉암의 높은 인기와 명성에 덕보려고 모여왔는가 하면 리승만이나 자유당의 배척을 받아 화풀이할 곳을 찾아 조봉암의 겨드랑이에 붙어버린 사람들이였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나라의 통일과 민중사회, 민중이 주인이 된 사회건설이라는 조봉암이 추켜든 구호가 아니라 리승만독재종식이라는 원한풀이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러한 인간들을 끌고서는 사회의 근본적변혁을 기대할수 없다는것이 이태동안 최금룡이 관찰하고 분석하고 평가를 내린 결론이였다.
이렇게 되여 드디여 최금룡은 조봉암의 밑에서 뛰쳐나와 조직건설에 전적으로 시간을 바쳐왔다.
최금룡과 그의 전우들은 자기들앞에 세가지 목표를 내세웠다.
민중사회건설! 미군철거! 나라의 평화통일!
그를 위한 투쟁방법과 전술은 유일무이하였다.
대중적항쟁!
전체 청년학생들을 항쟁의 거리에 불러내는것이였다.
이렇게 목표는 웅대하고 전술은 파격적이면서도 그들은 아직 애어린 나무모에 비길만 한 자기들의 조직에 해맞이모임이라는 소박하면서도 서정적인 이름을 달아놓고 애지중지 가꾸어가고있었다.
학생운동권의 주역으로 참여하였던 견결한 청년들이 핵심으로 되여있는 해맞이모임은 지금 서울과 지방의 거의 모든 대학들에 자기의 조직을 확대하여가고있다.
최금룡이 진보당에서 나가자바람으로 기자들의 취재에 응하고 미국평화원과 법률상담소로 거취를 옮겨간것은 자기의 신분을 철저히 안개속에 묻어두기 위한데 있었다. 조봉암의 손끝에서 사위감으로 된 사람이라 경찰의 감시권에 오르면 손발이 묶이워 일하기가 어려워지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최금룡에게서 조봉암은 우상에 가깝게 숭배하는 애국투사였고 때문에 그를 아끼고 지켜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한시도 버리지 않아왔다. 이것은 지극히 정당하고 의로운것이였다.
하느님처럼 신성시되던 리승만독재의 아성이 정계의 첫 공개적이며 합법적인 공격을 받은것은 조봉암에 의해서만 가능하였다. 무소불위같던 리승만의 권위는 조봉암에 의하여 전민중적심판의 도마우에 오르게 되였다.
조봉암과 진보당은 반독재의 기치밑에 민중을 계몽시키고 궐기시켰으며 리승만일파와 그를 부추기는 미제의 책동을 공개적으로 폭로하고 통일에 대한 열기를 부쩍 높였다.
56년 선거에서 조봉암에게 쏠린 과반수의 지지표가 곧 민중의 억눌렸던 정치의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드디여 리승만과 미국놈들이 10여년간 총칼로 다져왔던 반공우익체제에 돌파구가 열린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조봉암과 그의 전우들, 그의 당의 공로이다. 참으로 피로, 담력으로, 슬기로 이룩한 적지 않은 공적이다. 그들은 죽음을 각오한 사생결단의 공개투쟁으로 이 경이적인 변화를 가져온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조봉암은 평화통일론으로 리승만권력을 떠받들고있는 리념적뿌리를 흔들어놓았다.
미국은 어떻게 하든지 리승만을 내세워 남조선사회에 분렬의 고착화와 극우익적인 체제를 변함없을 구조물로 축성해놓고 영원히 지탱해가려고 하고있다. 독재의 유일한 기둥으로 되여있는것이 바로 리승만이 눈을 뜨면 떠들어대는 《멸공북진통일》론이다.
여기에 바로 처음으로 공개적인 포문을 연것도 조봉암이다. 리승만이 조봉암이 날린 이 평화통일이라는 포탄에 얼이 빠져 미쳐날뛰고있는것이다. 그러므로 조봉암과 진보당은 항쟁을 위하여서도 가장 유력한 린접이였고 성심성의를 다하여 밀어주고 아껴주고 감싸주어야 할 귀중한 존재였다.
게다가 인간적으로 볼 때 조봉암은 장래의 자기의 장인이다. 그지없이 자랑하고 존경하고 지켜주어야 할분이다.
그래서 최금룡은 자기의 동지들과 함께 56년 선거에 나선 조봉암의 신변을 지켜주는데 각별한 주의를 돌리고 가능한대로 성의를 고였다.
최금룡의 발기로 청년조직은 고려대학교의 학생조직을 발동하여 끌끌한 학생들로 조봉암의 신변에 대한 경비를 담당하게 하였으며 진보당의 선거운동원이 되여 도시와 농촌을 돌아다니게 하고 조봉암의 선거선전장에 대한 경비사업에도 청년학생들을 인입하게 하였다.
한편으로 최금룡은 권력기관에 들어가있는 조직성원들과 동료들을 움직여 조봉암을 해치려는 리승만일파의 내막자료들을 수집하여 제때에 조봉암에게 전달하도록 하였다.
최금룡자신도 조봉암과 연고관계가 깊은 령사부의 롤만과 내무부의 자문위원으로부터 제공받은 자료들을 가지고 조봉암과 진보당을 지키는 일에 한몫하였다.
이번에도 조봉암과 진보당원들에 대한 재판이 예상되자 조직에서는 심중한 론의끝에 최금룡이 변호사로 나서는데 대하여 지지하고 전적으로 그 사업에 시간을 바치도록 결정하였다.
그런데 조봉암이 주동적으로 변호사절을 제기함으로써 물러서게 되였는데 이번에는 검사측이 자기를 리용해먹으려고 꾀하고있는것이다.
지금 최금룡의 눈앞에는 검사의 엉큼하면서도 독기를 뿜던 눈빛이 그냥 서물거렸다. 듣던바 그대로 로회하기로 해묵은 구렝이요, 포악하기로 승냥이다. 하기는 집권세력이 조봉암이라는 최대의 적수를 자빠뜨리는 놀음의 주역으로 내세운 놈이니 록록치 않을것이다.
그러나 지금 최금룡의 흉곽을 꽉 메우고있는것은 조인수의 피비린 경력이나 그가 떠들던 이른바 조봉암의 죄상따위가 아니였다. 그자의 의기양양하던 기세와 말투였으며 그 표독스러운 눈부리였다.
그놈은 분명 조봉암을 교수대에 올려세우려고 하고있다. 이미 통치권의 정책으로 기정사실화되여있다고 토설하였다. 리승만일파나 그놈들의 부추김을 받고있는 검사는 민중의 지지를 받고있는, 두차례에 걸치는 《대통령》후보를 감히 모살하려고 기를 쓰고 덤비고있다.
하기는 이전에도 흉악무도한 테로의 방법으로 조봉암을 영원히 매장하려고 여러차례 흉계를 꾸며오던 리승만이니 이번 기회에 기어이 숙적을 쓸어눕히려고 하리라는것은 자명하다.
그는 조봉암에게 이 사실이 한시바삐 전달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야 그도 사태의 엄중성을 똑똑히 깨닫고 신중하게 재판에 대처할것이다.
(이길로 연경이부터 찾아가? … 만나서 말해줄가, 투서를 들이밀가?)
《사모하는 민중의 벗?!》
최금룡은 입속으로 중얼거려보며 제 홀로 미소를 지었다.
(연경이가 그 《사모하는 민중의 벗》이 바로 나였다고 하면 그 큰 눈이 어떻게 될가?)
그러나 최금룡은 이내 머리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죽산선생님도 분명 심문과정에 그것을 짐작하였을것이다. 검사가 무엇을 중시하고 무엇을 노리고있는가를 벌써 다 꿰뚫어보고 그에 대처하고있을것이다. 변호를 사절한걸 보면 법정을 무대로 싸움을 벌려놓을 준비를 단단히 하고있는것이 틀림없어.
연경, 아무래두 나때문에 고민을 더해야 할가봐. 미안해, 연경! 어찌겠소, 조직규률이 있는걸. 조금만 더 참아주오. 난 이번에도 괴로운 역을 맡아야 할가보오. …
그래, 난 증언대에 오를것이다. 조인수! 네놈은 나를 헛보았다.)
최금룡은 전차를 타지 않고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그냥 사색을 이으며 시가지의 돌포장길을 뚜벅뚜벅 걸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