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회)

제 2 장

1

 

서울지방법원의 판사 홍병삼은 요새 친구의 집에서 류숙하고있었다. 리유는 끊임없이 날아드는 전화성화와 방문객들을 피하자는것이였다.

세칭 진보당사건을 담당한 재판장으로 임명되였다는것이 내외에 알려진 때로부터 여기저기서 전화가 뻗닿게 와서 전화기에 불이 날 지경이였다.

전화대상들은 정계와 법조계의 거물급인물들을 포함하여 각이한 정파와 계층의 인물들이였다. 전화내용이나 말투는 각이하였다. 그런데 일치한것은 형량을 얼마나 먹이려 하는가 하는 하나의 문제였다.

그와 관련한 립장도 각이하였다. 종합하여보면 크게 두가지로 묶어진다.

무조건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높다. 리승만일파가 시켜서 하는 전화들이 분명하였다. 《국제간첩단 망책》에 대하여 관대하게 봐주는것은 여하불문하고 《보안법》위반으로 목쳐야 하는 일이니 똑바로 판결해야 한다고 로골적으로 협박이다.

무죄로 석방하고 보상도 해야 한다는 전화도 많다. 두차례나 《대통령》후보로 나섰고 두기나 《국회》부의장을 하였고 민중의 다수표를 받은 야당당수와 당지도부전부를 감옥에 가둔것은 어불성설이니 이것부터 심판을 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해온다.

이번 재판을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겠다는 협박기가 짙은 괴한의 전화도 오고 그분의 머리칼 하나라도 다쳐서는 안된다고 빨리 풀어놓아달라고 하는 강화섬늙은이의 눈물에 젖은 애원도 있다.

전화는 재판날자가 가까워질수록 회수가 늘어났다.

집에 들어와서는 전화소리에 한잠도 잘수가 없었다. 생각던 끝에 전화번호를 몇번 바꾸기도 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전화를 떼버리고말았다.

이번에는 삽짝문이 부서질 지경으로 낮시간이건 밤시간이건 문 두드리는 사람이 늘어났다.

하는수없이 친구의 집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이날 아침 홍병삼은 친구와 함께 아침을 대충 치르고는 불러들인 자동차를 타고 돈암동에 있는 자기 집으로 속옷을 바꾸어 입으려고 왔다.

토벽돌로 지은 두칸짜리 단층집에 들어서니 이른봄이면 해소병이 도져서 늘 콩콩거리는 마누라가 밭은 기침소리를 내며 맞아주었다.

마누라는 장농에서 빨아넣었던 남편의 속옷을 꺼내다가 역증이 나서 한마디 하였다.

《그놈의 재판이 빨리 끝나야지 이거야 어디 사람사는 집 같수?》

《조금만 참소. 닷새후부터는 재판을 시작하오.》

《닷새후? … 닷새후에 시작되면 언제 끝난다우?》

《허허…》

홍병삼은 마누라의 짜증에 웃고말았다. 언제 끝날지는 그도 단언할수 없다.

《오늘 새벽에는 법무부 장관대리하는 사람한테서 서너번씩이나 전화가 왔어요. 급히 만나야겠는데 어데 가있느냐구 좋지 않아해요.》

《법무부 장관대리? … 그 량반은 왜? … 그래서?》

《모른다구 했지요. 대주면 그 집 전화가 또 란리가 나기 시작하겠는데… 집에 들어오면 편히 쉴수가 없어 려관에 가서 쉬는것 같다고 했지요.》

《거 대답 잘했소. 누가 찾든 내 잠자리를 절대로 대주지 마오.》

《왜 이리 복잡해요?》

《뭐, 처음 당하는 일이요?》

홍병삼은 대수롭지 않게 마누라의 말을 받아넘기며 얼른 속옷을 갈아입었다. 처음 겪어보는 일도 아니다.

재판은 사건의 규모나 피고가 저지른 범죄의 류형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거기에 관계하는 사람들은 례외없이 사회여론의 성화를 받기가 례상사이다.

재판이란 인간의 명줄이 걸려있는 문제이다. 재판결과란 결국 인간의 운명을 이리저리 비틀어놓는것으로 끝난다. 따라서 크건 작건 할것없이 인간의 운명을 흔들어놓는 사람들은 어차피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기마련이다. 특히 검사나 판사나 변호인들은 피고와 함께 사회적재판을 또 한차례 받기 십상이다.

홍병삼도 법관옷을 걸친이래 지금까지 늘 사람들의 단련을 받아왔다. 붙어사는 마누라도 늘 곤욕을 치르어온다.

《말 들어보니 조봉암이라는분은 리승만박사와도 앙숙간이라는데…》

《뭐 그렇기야 하겠나.》

홍병삼이 짐짓 시치미를 떼고 딴전을 부렸다.

《얼마나 멕일라구 그래요?》

《허, 거야 난들 알겠소. 여러 사람이 손들어야 하는 일인데. 사회여론도 알아봐야 하구…》

《그래도 리승만이 어찌어찌하라 했다면 따르는수밖에 없지 않나요.》

《허, 당신도 들은 소리가 있는 모양이군. 하지만 아무개가 역모를 했노라고 말을 돌리면 임금이 기어이 사약을 내리던 리왕조때가 아니지. 그래서 법도 있고 법관도 있고 재판도 하는게 아니요.》

홍병삼은 마누라가 내미는 양복까지 받아입으며 일부러 무심한 어조로 응수하였다. 그렇게 퉁퉁 대답하고나니 머리가 거뜬해지는것 같았다. 그래, 시대는 달라졌다. 달라졌다는것을 보여줘야 한다.

마누라는 남편의 무뚝뚝한 대꾸에 흥심이 없어진듯 더 캐묻지 않았다.

《차 한잔 끓여올가요?》

《응, 그렇게 해주오.》

녀인은 얼른 부엌에 나가 련탄불에 찔광이차를 끓여가지고 들어왔다. 찔광이차가 심장에 좋다는 말을 어데서 귀동냥해들은 후로는 가을에 산에 올라가 찔광이를 따다가 떨구지 않고 차를 끓여 대접한다. 재판이란 고도의 신경집중을 요구하는 일로서 무엇보다도 심장이 든든해야 한다는것을 남편과 같이 살아오면서 늘 들어오는 녀인이였다.

홍병삼은 따끈따끈한 구들바닥에 올방자를 틀고앉아 김이 오르는 찔광이차를 훌훌 불면서 한모금씩 천천히 마시였다. 엉뎅이가 뜨끈해오고 가슴속도 달아오르자 소르르 두터운 눈시울이 내린다. 이 자리에 그대로 엎어져 꿈나락에 잠겨들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원체 홍병삼은 이번 재판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여러가지로 구실을 만들어가지고 피해다니였다.

법원의 일부 동료들은 은근히 전례가 없이 규모가 큰데다가 리승만이 크게 주목하고있는 정치적색갈이 진한 이 사건을 맡아 한번 이름을 떨치고 출세의 사다리에 올라서보려고 뒤공작을 하기도 하였으나 홍병삼은 주변에서 권고를 했어도 한사코 도리질을 하였다.

그가 이 사건을 회피한데는 여러가지 리유가 있었다.

홍병삼은 일제시기부터 법조계에 몸을 담아온 사람이다. 일찌기 강원도재판소의 서기로 취직했다가 고학으로 법관고시에 통과하여 도재판소의 말단 서무관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러다가 일본놈소장의 눈밖에 나서 파직되여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가 몇해간 고생하였다.

해방후에 서울로 돌아온 홍병삼은 징용덕을 단단히 보게 되였다. 법조계에서는 흔치 않은 반일적인 인물이라는 상표가 이마에 화려하게 붙은것이다. 인차 고등법원의 판사로까지 고속승진하였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난 후에 한건의 정치재판을 집권세력의 요구대로 하지 않은것이 문제가 되여 서울지방법원으로 좌천되였다.

《법관은 랭혈이 되여야 한다. 이 사람 저 사람의 하정에 동요가 생기고 이쪽저쪽 눈치를 보는 법관은 법의를 벗어놓아야 한다.》

이것이 홍병삼이 평생토록 지켜오는 법신조요, 좌우명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걸 지켜내는수가 없다. 일본놈때도 그러했고 리승만의 통치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량심을 지키고 정의를 따른다는것이 조련치 않았다.

하나의 재판을 치르고나면 여기저기서 항의와 협박이 날아든다. 여러곳으로 불리워다니며 문초를 당한다. 특히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는 재판에는 빈번히 통치권의 입김이 서려들어 법을 흔들고 법관의 량심과 륜리를 얽어매고 어지럽혔다.

홍병삼은 리승만이 집권을 위해 벌리는 정치적추행을 체험하면서 민주주의의 초보적인 요구를 상실한 모순투성이의 법률마저 마구 휘젓고 교란하는 리승만이야말로 법의 파괴자, 법정신의 도전자라는것을 사사건건 절감하여왔다. 이 땅의 법통을 살리기 위하여서는 리승만부터 법정에 내세워야 할노릇이다.

리승만이 미국의 비호밑에 나날이 철권통치를 굳혀가고있는 판에 그에 대한 사소한 반항이나 불만조차 용납되지 않는 사회에서 홍병삼은 달팽이처럼 자기의 행동과 리성에 갑을 씌우고 사는것이 생존의 유일한 현명지책이라고 생각하였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는 지난 여러해동안 정치재판에는 이 구실 저 구실 대면서 될수록 개입하지 않아온다. 주로 살인, 강도 등의 형사사건들만 맡아왔다. 물론 그러한 재판도 머리아픈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였지만 그래도 량심에 저촉될 일도 없고 눈치보기를 하지 않아

마음이 편해서 좋았다.

그렇게 지내며 이제는 법관의 나이로 만년에 이르렀다. 이태가 지나서도 지방법원의 판사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면 법의를 벗고 물러나야 한다. 지금 고려대학교의 도서관 사서로 있는 딸이나 마포구청에서 호구조사를 맡아보는 아들한테 여생을 맡기는수밖에 없다.

평생을 서울법조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청렴결백한 판사로 지내고보니 모아들인 재산이란 토벽돌로 지은 지금 사는 두칸짜리 단층집뿐이다. 벌써부터 마누라는 앞날이 걱정스러워 자주 한숨을 내쉬군 한다.

그런데 한달전에 법원장이 그를 찾았다. 그는 한번 수완을 보일 기회가 마련되였다며 진보당사건을 담당할것을 권고하였다. 덧붙여 한다는 말이 이 사건은 리승만박사가 직접 관심하는 재판이니 맡아안으면 그때부터 벌써 사회적명성을 얻게 되며 재판이 잘되면 퇴직념려는 걱정할게 없다는것이다.

홍병삼은 법원장의 호의를 그 자리에서 거절하였다. 무엇보다도 조봉암은 그가 제일 존경하여온 정치가였던것이다. 그가 내놓은 구호부터 그의 마음에 들었다.

《갈지 못하고서는 살수 없다, 혁신만이 살길이다!》

민중을 위한 세상, 민중이 주인된 세상을 만들겠다고 한다.

민중을 위한 세상-여기에는 홍병삼의 법적인 지조도 량심도 다 있다.

법은 백성을 위하여 존재해야 하며 따라서 백성은 법을 사랑해야 한다. 법이야말로 가난하고 무권리한 백성을 보호해주는 방패이다.

지금 백성은 법을 무서워하고있다. 왜 그렇게 되였느냐. 정치가 민중을 압박하고 수탈하고 억누르는 독재의 수단으로 되고 법이 바로 그 정치의 방패로 변질되였기때문이다. 서울법은 철저히 독재와 권세와 돈있는자들을 지켜주는 파수로 되고말았다.

조봉암의 주장은 정치의 방향각이 다르다. 생산과 분배에서 민중의 리익을 첫자리에 내세우겠다는 조봉암의 주장은 시골의 가난한 유생으로 살아온 홍병삼의 조상들의 처지로부터 구미가 동하는 공약이였다. 더구나 평화통일주장은 그에게 너무나 쉽게 공감이 갔다.

홍병삼의 아들 하나는 군대에 끌려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그런데 리승만은 지금도 《북진통일》만 고창하고있다. 그런즉 리승만의 《북진통일》론에 도전한 조봉암의 평화통일론은 얼마나 공명정대하고 애국적인 방안인가.

하기에 홍병삼은 56년 선거때에 주저없이 조봉암에게 지지표를 바쳤다. 마누라와 아들, 딸, 며느리, 사위까지 다 자기를 따르게 하였다.

진보당이 깨지고 조봉암이 체포되고 그에 대한 모함을 관권과 언론에서 요란스럽게 벌려놓았다. 일명 여론재판을 먼저 벌려놓아 앞으로 벌어질 재판에 압력을 가하려는 통치권의 상투적인 수법이다.

정치성이 짙은 법원의 일부 동료들이 그 사건을 담당하고싶어 뒤공작까지 벌리고있을 때 홍병삼은 속으로는 그들에게 환멸을 금할수 없었다. 그런데 그 사건을 자기가 담당하다니…

홍병삼은 펄쩍 뛸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 재판을 맡을수 없습니다. 리유는 여러가지입니다.》

다음날 해방전부터 면목이 있는 류선민 법무부 장관대리가 그를 자기 사무실로 호출하였다.

류선민은 홍병삼이 이 재판을 맡아야 할 리유를 두가지로 설명하였다.

《이보게, 홍판사! 내 임자가 정치사건들을 다 피해왔다는것을 아네. 이게 바로 이번에 홍판사가 이 정치사건을 맡아야 할 첫째 리유일세. 웃지 말게. 좀 역설적이기는 해도 의미가 있다네.

둘째로, 임자 나이가 이젠 정년나이에 이른 서울지방법원의 원로라는걸세. 거기서 네댓명 재판을 맡아볼 적임자를 천거하여왔는데 다들 40대 초반이야. 이 재판의 무게로 보아 너무 가볍다는게 경무대의 립장일세.

리승만은 임자가 퇴직나이라는데 대하여 매우 중시하였네. 나역시 중시하는데 물론 그 리유야 다를수밖에 없지. 법원에서 천거하여온 인물들은 대체로 지금까지 여론에 너무 악평을 받아온 인물이라 공정성시비를 불러오리라는것이 뻔하다니깐. 그러지 않아도 조인수검사를 붙여놓은것때문에 검찰이나 법무나 뒤소리가 분분한데 재판관까지 권력의 노복이라는 소리가 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자네 아들이 북과의 전쟁판에서 돌아오지 못했다는 사정도 경무대에서 중시하는바일세. 그러니 맡아보게. 임자에게는 퇴직후 문제도 걸려있으니 한번 나서볼만 한 일이라고 생각하네.》

그때 홍병삼은 단호하게 류선민의 권고를 일축하였다.

《나는 리승만박사가 이 재판에 관심한다는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법은 리념우에 있는 개념입니다. 법이 리념에 의해 흔들려서는 안되는 일이 아닙니까? 이거야 법학교수였던 당신이 잘 아시는바가 아닙니까.》

《아, 물론! 난 임자의 그런 법정신이 흔들리지 않으리라는걸 믿네.》

일후로 며칠동안 류선민에게서는 다른 말이 없었고 법원장도 더 보채지 않았다.

그런데 홍병삼에게 난처한 일이 생겼다.

어느날 지난해에 시집을 간 딸이 찾아왔다. 아버지앞에 고등학교 동창친우를 내세우더니 조봉암선생님의 둘째딸 조연경이라고 소개를 하는것이였다. 처녀는 무릎을 꿇고 큰절을 하다가 고개를 들지 못하고 노전우에 엎드려 흐느끼기만 하였다.

홍병삼이 그제야 몇해전까지 드문히 딸과 함께 찾아오던 연경이를 알아보고 그를 부축하여 앉혀놓고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연경이는 그냥 흐느끼면서 자기를 도와달라고, 아버지를 구원하여달라고, 그걸 위하여 선생님께서 재판을 맡아달라고 애원하였다.

처녀의 부탁이 하도 눈물겹고 절절하여 홍병삼은 생각해보겠다고 반승낙을 해서 그를 돌려보냈다.

그날 저녁에는 사위가 법률상담소에 있다는 최금룡이라는 청년을 데리고 왔다. 최금룡은 리승만일파의 비렬한 정치적보복행위와 민중의 동향을 조리있게 분석하기도 하고 이 재판이 서울정치권은 물론 국제사회앞에서 가지는 커다란 의미에 대하여 놀랄만한 박식과 론리를 가지고 력설하였다.

최금룡은 이 재판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정치도덕성을 세상앞에 보여주는 량심재판으로 되여야 한다고, 따라서 서울지방법원에서는 선생님밖에 이 재판을 다룰만 한 도덕적인 지표가 갖추어진분이 없다고, 선생님은 시대의 량심이 법조계에 기대할수 있는 마지막언덕이라고 간곡하게 청원하였다.

사위도 연경이와 최금룡의 청을 들어주시는것이 의로운 결단일것 같다고 번갈아가며 부탁하였다.

홍병삼은 여러날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정치재판을 피해온것을 이 시대 법인의 량심의 결단으로 자기 나름으로 자부를 가지고 살아왔는데 말년에 이르러 정치재판을 맡아안는것이 량심적인 법관의 행위라는 상반되는 주장과 호소에 맞다든것이다.

홍병삼의 마음이 흔들리고 평생 지켜온 좌우명이 허물어지기 시작할 때 물러선듯싶던 류선민이 또다시 홍병삼을 찾아 법원에 나왔다.

류선민은 법원장까지 달고 홍병삼의 사무실에 나타나 법무부의 결정을 정중하게 전달하였다.

《진보당사건에 대한 재판의 재판장으로 서울지방법원 판사 홍병삼을 임명한다.》

그리고는 간단하게 설명하였다.

《홍병삼판사는 오늘중으로 배석판사를 선발하여 법원의 결재를 받은 후 검찰청에서 기소장을 이관받아야겠소. 홍병삼판사의 재판장임명은 재판의 중대성을 고려하여 리승만박사의 합의도 받았소.》

이렇게 되여 홍병삼은 몇해만에 처음으로 그것도 특대형의 정치사건을 맡아안게 되였다. 결국 자기가 지지표를 던졌던 인물을 심판하게 된것이다.

조인수검사가 법원에 제출하여온 기소장을 깐깐히 훑어보면서 그의 고민은 층층 더해만 갔다.

검사가 《리적행위》요, 《반란죄》요, 《국제공산당과의 내통죄》요 하고 크게 떠들거나 혹은 야단스럽게 호들갑을 떨고있는것은 다 선거때에 자기가 정의라고 판단하고 지지하였던 조봉암후보의 공약들이였다.

(내가 지지한 인물과 그의 공약을 재판하게 되다니… 결국 나는 인간 홍병삼의 량심과 정의를 심판하게 되였구나!)

사건을 둘러싼 주변의 움직임과 분위기는 너무도 을씨년스럽다. 얼음장같은 랭기가 뼈속까지 속속들이 저려들게 한다.

언론은 매일처럼 조봉암심문과정에 흘러나온 자료라고 하면서 그가 《간첩》이라느니, 《반란분자》라느니 하고 중구난방으로 떠들고있다. 그끝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고 못박군 한다.

권력측에서는 재판을 사형쪽으로 몰아가야 한다고, 이것은 리승만이 이미 결론한것이라고 매일같이 로골적으로 압력을 가해온다.

경무대 경호실장 곽영주도 드문히 전화를 걸어오는데 조봉암을 죽이는게 정책이라고 지나가는 소리처럼 슬그머니 그루를 박는다.

류선민도 이따금 기소장내용을 물어보면서 퇴직정년나이도 되였으니 마지막으로 소신껏 해보라는 은근한 암시를 해오는데 홍병삼은 그 말의 오묘한 색갈에 대해서는 아직 가늠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할것인가? 어떻게 하는것이 소신껏 하는것인가?

리승만은 정말 조봉암에게 사형을 언도할것을 바랄가?

무엇때문에? 정치적적수라는 리유때문에? … 무슨 리유로? …

그것은 이제 검사와 함께 내가 분석하고 평가하고 대답을 만들어내야 한다.

결국 나에게는 리승만의 의향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로 되는 길밖에 없다.

하지만 나를 이 재판에로 떠밀어준 딸과 사위와 그의 친우들은 내게서 다른것을 바라고있다. 나에게 크게 기대를 걸고있다.

무엇때문에? … 무슨 리유로? …

나의 량심, 나의 법지론을 믿기때문이다.

나는 지금껏 정치재판을 피하는것으로 나의 량심을 지켜왔다. 오늘은 정치재판을 맡는것으로만 나의 량심을 지킬수 있다.

헌데… 헌데… 나는 자기를 재판해야 한다. 내가 진리라고, 정의라고 믿어마지 않았던것을 심판대우에 올려놓고 내가 신뢰했던 인간의 죄상을 따지고 확인하고 형벌을 내려야 한다.

결국 그 형벌이란 조봉암과 더불어 홍병삼에게 내리는 형벌이다. 이건 나자신의 의지와 자존심에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다.

홍병삼은 끝없이 이어지고 착잡하게 뒤엉킨 사색의 미궁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렸다. 손상당한 자존심으로 하여 굴욕감만 더욱 짙어갔다.

재판날자가 박두하여옴에 따라 끝없는 나락에 빨려들어서 법과 정치, 량심과 권력이라는 천평저울우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홀로 탄식하고 속을 썩여온다. 예순이 가깝도록 법수호라는 인생의 표대를 세워놓고 지켜내느라고 모지름을 써오지만 일정때도 리승만치하에서도 법은 지배계급의 통치행위의 장식물에 불과하다는것을 뼈에 사무치도록 절감해왔다. 지금처럼 자기 고민에 빠져 인생을 고달프게 달래여본적은 없었던것 같다.

《이보우, 로친네!》

홍병삼은 차잔을 다 내자 구들우에 내려놓고는 지나가는듯 한 어조로 말을 건늬였다.

《당신은 지난 선거때 누구한테 표를 바쳤더라?》

《거야 뭐, 당신과 같이하지 않았어요? 죽산선생님께 드렸지요. 그건 왜요?》

《아, 그저… 왜 그 사람한테 표를 바쳤나?》

《거야… 당신이 말씀했죠. 그분을 옥좌에 모시면 백성 잘되는 세상도 오구 전쟁도 없어지구 통일도 될거라구요.》

《음… 그래 그렇단 말이요. 후-》

홍병삼은 마누라가 스스럼없이 이어대는 대답에 느닷없이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정의에 대한 백성의 주장은 저렇게도 간단명료하다. 그리고 정직하다.

녀인은 남편의 그 한숨이 불안스러웠던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분을 어떻게 하실라우?》

《글쎄… 재판을 해봐야 알지.》

홍병삼이 또 말끝에 한숨을 달아놓자 녀인은 화증을 덜컥 내고말았다.

《재판은 무슨 재판이예요? 그분을 재판하는건 그분에게 표를 바친 민중모두를 재판하는거예요.》

《뭘? …》

홍병삼은 마누라의 온곱지 않은 소리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허허… 마누라야말로 과시 명관이요. 참, 그 말이 그럴듯해.》

법의를 두른 남편과 함께 늙어가면서 이제는 제법 법세상의 리치까지 쉽게 밝혀내는 마누라의 말이 거침없어 홍병삼은 크게 폭소를 터뜨렸다. 마누라가 참말로 신통한 말을 하였다고 속으로 혀를 찼다. 마누라의 말이 민심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분을 상하게 해서는 안돼요!》

녀인은 껄껄 웃는 령감에게 곱지 않게 눈을 빨며 다짐을 받듯 제 말에 날을 세운다.

홍병삼은 얼른 웃음을 그치고 정색을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을 전해만 줄뿐 언제 한번 남편이 하는 일에 이래라저래라 훈시질을 하지 않던 마누라이고보니 허투루 들어둘 말이 아니다. 상하게 하지 말라-그것이야말로 훌륭한 판결이다. 그러니 량심의 판결은 이미 나와있는셈이다.

홍병삼이 양복저고리까지 꼼꼼히 차려입고 나서는데 전화통이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하였다.

《에- 전화는 왜 살려놓았소?》

홍병삼이 뿌루퉁해서 하는 말에 녀인은 얼른 차잔을 들고 도망치듯 바삐 방을 나갔다.

전화종은 그냥 주인을 부르며 야단스럽게 고아댔다.

하는수없이 홍병삼은 전화를 받았다.

송수화기에서는 애교있는 녀인의 목소리가 노래처럼 흘러나왔다.

《홍병삼판사님댁입니까?》

《그렇습니다.》

《법무부입니다. 장관대리께서 전화하십니다. 기다려주세요.》

서기인듯 한 녀인의 말에 이어 잘 울리는 남자의 굵은 목소리가 울렸다.

《어째 숨박곡질인가, 홍판사?》

류선민이였다. 롱조였다.

홍병삼도 롱조로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너무 살기가 불편해서 밤마다 친구집으로 피난가군 합니다.》

《허허, 그럴테지. 임자 이름이 서울일경에 뜨르르해졌지. 뭐 서울뿐이겠나?》

《시끄럽기만 합니다. 그게 얼마나 큰 부담이 되는줄 아십니까? 그게 바로 재판에 대한 사회적압력이 아닙니까?》

《아아, 뭘 그러오? 그걸 다 복으로 생각하오. 그래 재판이 언제 열린다구?》

《닷새후입니다.》

《립장들이 모아졌소?》

《아직은…》

《기소장을 보면 가늠이야 되겠지?》

《예.》

《배석판사들과 초보적인 합의는 되였을테지?》

《예.》

《유죄판결가능성이 있던가?》

《예.》

《무슨 대답이 그런가? 어디 편치않소?》

류선민이 상대의 짧고 심드렁한 대답에 기분이 상해서 불쾌한 어조로 물었다.

《아니요. 말씀하십시오. 나는 재판을 해보다가 이번처럼 힘들어보기는 처음입니다. 사방사처에서 두드려패니 미처 일일이 대답해줄수가 없습니다. 뭘 보고 뭘 봤다고 떠들어대는 판이라 입다물고있는게 재주인가 봅니다.》

《허허… 그럴수밖에… 해방이래 초유의 법행사니까. 첫 공판땐 경무대 비서실에서도 참가하게 되네.》

《뭣때문에요?》

홍병삼은 자기 어깨를 짓누르는 그 무슨 쇠덩이같은것을 느끼자 도전조로 물었다.

《그 대답을 자신이 내려보게. 그리고… 미국대사관에서도 참석하겠다고 전해왔네.》

《압력인가요?》

《…》

《어느쪽으로 몰아가는 압력인가요?》

홍병삼이 불쾌해서 반발하였다.

《난 리박사의 천거로 감투쓴 사람이요.》

동닿지 않는 대답이다. 그러니 어떻다는건가?

류선민의 동문서답에 홍병삼은 갑자기 심장이 후두둑 급하게 뛰기 시작하였다. 반발의 뜨거운 역류가 머리꼭대기까지 쭉 뻗쳐오르는듯싶었다.

홍병삼은 류선민을 인간적으로 신뢰하고 이 서울법조계에 흔치 않은 법정신의 체현자로서 존경하여왔다.

류선민은 대학교수시절에 자기의 학생들을 데리고 법원을 료해시킬겸 자주 재판을 참관하러 왔다. 그때마다 그와 만나서는 법정신이 결여된 재판이 적지 않다고 특히 정치재판은 대부분이 권력에 아부한다고 하면서 썩고 부패한 사회와 법정륜리를 놓고 개탄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권력기관에서 몇해 감투를 쓰고있더니 류선민이마저도 그 감투에 짓눌려 버둥거리고있는것 같다.

홍병삼은 허우대큰 몸을 쭉 폈다. 상대의 직무나 지위에 주눅이 들거나 심대가 흔들릴 홍병삼이 아니였다. 일찌기 체험해보지 못했던 비장하고도 견결한 기운이 온몸을 휩쓸었다.

《법은 만인에게 공정해야 합니다. 나뽈레옹법전에 있는 한 조항입니다. 언젠가 당신께서도 학생들앞에서 그렇게 가르치던게 기억납니다.》

《그래그래! 헝, 나뽈레옹법전이라… 새삼스럽네. 잘해보게.》

류선민은 홍병삼의 강심을 느꼈는지 서둘러 전화를 놓으려고 하였다.

류선민의 그 말투에 서글픈 메아리가 느껴졌다. 류선민 같은 학자가 아무렴 리승만의 손끝에서 고민없이 지낼수 있을가.

홍병삼은 문득 떠오르는것이 있어 그를 지체시켰다.

《참, 한가지 말씀을 듣는 기회가 생겼으니 제기하겠습니다.》

《말하오.》

《언론이 자중하도록 자갈을 좀 물려주십시오. 그것들이 재판에 앞서 참새무리가 되여 재잘거리며 여론재판부터 벌리니 법관들이 소신을 펴보겠습니까? 아무리 언론의 자유라 해도 이건 너무합니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의 재판은 보류하고 헛소문을 돌리며 찧고 까부는 언론부터 법정에 세우고싶습니다.》

《허허, 대찬성일세. 그놈들 뾰족한 입부리를 망치로 짓조기고싶은 생각은 나도 다를바 없다네. 헌데 이봐요, 홍판사! 유사이래 큰 사건을 맡았다고 너무 기를 돋구는게 아닌가? 괜히 언론과 주먹질해봤자 벌통 쑤셔놓은 격이 될걸세. 더구나 언론의 바람새가 그 진원이 어데겠는가 생각해봐야지. 자, 안녕! 잘해보게.》

서둘러 전화기를 놓는 소리가 났다.

홍병삼은 한동안 전류가 흐르는 소리가 삭막한 전화기에 귀를 붙인채 생각에 잠겼다.

(내가 저 사람의 립장을 난처하게 하였나? … 그래, 너무 밀어대기만 하면 부러질수 있다.)

어쩌면 자기 일생에 마지막으로 나서게 되는 법정이라는 비장한 생각이 뇌수에 들이박혀 떠나지 않는다.

(허 참, 그러니 이거 가운데서 몸살을 앓을건 누구냐?)

이제 퇴직년한이 이태가 남아있다. 원체 이해말이면 4년이라는 판사기간도 끝나게 된다. 그 다음에는… 다시 4년을 임기로 하는 판사직에 류임하거나 승진조동으로 실업은 면할수 있다.

홍병삼은 이러한 인생의 절박한 기로에 서있는 자기를 남조선의 법력사에서 가장 중대사건이라고 하는 정치재판을 담당시킨 류선민의 저의를 아직도 딱히 알수 없다.

통치권을 매번 거드는것을 보면 통치세력의 비위에 맞게 재판을 벌려 안락한 여생을 즐길수 있도록 든든한 담보를 받으라는 암시 같다. 한데 소신껏 해보라는 소리는 다른 의미가 아닌가. 그 어떤 바람세에도 흔들리지 말고 량심을 팔지 않아온 평생을 어지럽히지 말라는게 아닌가.

(어느쪽이 류선민의 진심일가? 어째서 나에게 연막을 치는 말을 보내올가? 량심과 비량심, 정의와 부정의중에서 어느쪽을 선택하라는 말인가?)

한쪽을 지켜보면 권력의 용병이 되여 조봉암을 말살해야 한다는것이니 그 뜻을 따르면 많은것이 약속되여있다. 승진도 부귀영화도 통치세력이 하사할것이라는것이다. 그쪽이란 리승만의 뜻이요, 자유당의 뜻이며 이 땅의 권력을 끌어안고있는 미국의 뜻일것이다. 거기에 도전하거나 거슬리는 일은 이 사회에서는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다. 한갖 지방법원의 판사라는 하바닥존재가 그 거대한 권력의 중압을 뿌리칠수 있을가.

다른쪽을 살펴보면 마지막재판으로 생각하고 정의와 량심의 파수군으로 흔들림이 없이 재판을 해서 영예로운 정년퇴직을 하라는 뜻일수도 있다. 법관의 량심과 순결에 관한 문제이다. 래일에는 스러져도 오늘에는 자기 향기, 자기 색갈을 잃지 말라는것이다. 류선민이고보면 그런 의미를 슬쩍 던져줄수도 있다. 그 뜻을 지키자면 거기에는 인생을 걸고 벌려가는 량심의 결투가 요구된다. 법의가 챙겨주는 록봉도, 호화스러운 래일도 결단코 포기하겠다는 비상한 용단과 배포가 있어야 한다. 결코 도의심이나 용기로써만 풀려지는 일이 아니다.

《후-》

그는 줄당기기를 하고있는 커다란 두 물체의 중간에 서있는 보잘것없는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며 긴숨을 무겁게 내뿜었다. 그 두 물체가 상징하는 의미가 그를 더욱 괴롭혔다. 그것은 량심과 비량심, 인간적인것과 비인간적인것이라는 두 극단이다. 평생토록 소중히 여겨온 삶의 가치가 그 량극에서 오락가락한다. 서로 타협이 될수 없는 유혹과 절망이 걸음걸음에 감겨들어 싱갱이질을 한다.

그는 천천히 토방을 내려 마당에 나섰다.

여느때나 다름없이 그의 마누라가 기침을 콩콩 깇으며 삽짝문을 열어주었다. 등이 휘기 시작한 령감이 어정어정 걸어가는 뒤모습을 측은해서 바래웠다.

홍병삼은 이른봄의 쌀쌀한 바람에 반백의 머리칼을 날리며 뒤를 돌아보지 않고 큰길로 이어진 언덕길을 오른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 높게 들린 푸른 하늘만 쳐다보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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