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제 1 장

4

 

문득 뙤창에서 새소리가 들려왔다.

지겨운 생각에서 헤매이고있던 조봉암은 꿈결에서처럼 들려온 새소리에 금시 머리속이 맑아졌다.

살창을 가로세로 댄 손바닥만 한 뙤창으로 두마리의 새가 조봉암을 그 녹두알만 한 눈알을 대굴대굴 굴리며 내려다본다.

조봉암은 고독에서 벗어나 문득 날아든 귀엽게 생긴 새들이 반가워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봉암은 점심에 남겼던 보리밥을 들고 그쪽으로 발볌발볌 다가갔다. 그가 보리밥을 조심스럽게 창턱에 내미는데 새들이 위험을 느꼈는지 포르릉 노란 날개를 펴고 날아갔다.

《아뿔싸!》

조봉암은 아쉬운 눈으로 날아가는 새들을 점도록 바라보며 랑패스러워 하였다.

그는 다시 방안을 천천히 거닐며 끊어진 사색을 이어갔다. 팔을 머리우로 곧추 올렸다가 뒤로 힘껏 제치기도 하며 감방안을 두세바퀴 돌았을 때 감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키가 작고 허리통이 굵은 땅딸보가 시누런 금이발을 드러내며 들어섰다. 이 호동의 간수부장인 김정두였다.

《죽산선생님, 춥지요?》

김정두는 허리를 굽석거리며 넉살좋게 인사를 하였다.

이마에 얼기설기 주름이 잡히고 머리칼에 서리가 내불린것을 보면 쉰고개를 넘어선지가 이슥해보인다. 일제시기부터 이 서대문형무소에서 간수노릇을 해온 사람이다. 그때 독립운동자들의 심부름을 해준게 있어서 해방후에도 간수자리를 그냥 차지하고있다가 몇해전에 호동간수부장자리를 따냈다고 한다.

김정두가 중죄인으로 취급받게 된 조봉암에게 허리를 굽석거리며 개올리는데는 그로서의 면밀한 타산이 있었다. 조봉암쯤 되는 인물은 대체로 풀려나가기 십상이다. 풀려나가면 그 무슨 자리를 차지하든지 신세질만 한 처지가 된다. 감옥에서 정을 묻어주면 그 정이 후날에는 수십배가 되여 되돌아온다는게 김정두의 지나간 간수생활에 터득한 이른바 진리이고 요령이다. 해방직후에 자기 동료들이 무리매를 얻어맞고 쫓겨날 때 김정두가 그런대로 밥통자리를 지키게 된것은 그가 도와준 정치범들이 애국자들을 도와주었다는 문건에 련명으로 좋은 소리 한마디씩 보태주었기때문이였다. 그가 지금 번쩍거리고있는 금이발도 그러루한 품팔이로 얻어낸것이였다.

김정두가 조봉암을 여러날째 살펴보니 그 기상이 너무도 꿋꿋하고 그 인격이 너무도 깨끗해서 죄수라는것이 전혀 실감이 가지 않았다. 소문을 들은바도 있지만 지내놓고보니 소문에 비할바가 아니다.

이런 명망인물을 왜 리승만이 감옥에 잡아왔을가?

그에 대한 대답을 누구에게서 귀동냥한것이 있다.

이제 5월에 있을 선거에서 저 사람이 천하를 끌어안을것 같으니깐 리승만이 선손을 썼다는것이다. 저 사람이 전번 《대통령선거》에서 리승만의 협잡으로 개표에서 지기는 했지만 다음번에는 외수없이 리승만을 밀어제낄거라는 확신성있는 예측이였다.

숱한 사람들을 교수대에로 보낸 조인수검사도 저 사람앞에서는 고양이앞에 나선 생쥐꼴이 돼서 설설 기고있다고 쉬쉬하는데 몇번 목격한바도 있다.

그래 진보당의 다른 수감자들은 얼마전까지 차고 때리고 물고문, 불고문을 하였지만 조봉암에게만은 어느 녀석 하나 눈 한번 부라리지도 못한다고 한다.

괜히 한을 만들고 노염을 사놓았다가 옥좌에 오른 조봉암이 《이놈들!》 하고 호령할것 같으면 그 액운을 무슨 수로 피할수 있으랴.

이런 기묘한 요령과 직업감각이 조봉암에게 끌려드는 리속밝은 타산을 부채질하였던것이다.

조봉암은 그에게로 돌아섰다.

《오, 김부장이구만. 무슨 일이요?》

《검사가 선생님을 뵙자고 합니다. 제 방에 왔기에 제가 모시러 왔습니다.》

《하, 그래요? 갑시다.》

조봉암은 선선히 응하며 덧저고리를 걸쳤다.

(검사는 왜 저녁시간에 날 찾아 감옥까지 왔을가? 전례없는 일이다.)

《혼자 계시여 무척 적적하지요?》

《어쩌겠소. 당신네들이 그렇게 하는걸 참아내야지.》

《사실은 제가 함께 들어온 진보당사람들을 두세명 들여보내 선생님 시중이라도 들어주도록 하자고 했는데 형무소장이 딱 자르는군요. 선생님의 신상관리는 우의 사람들의 관심속에 있으니 거기에 제기해서 결재를 받아야 한다나요.》

《고맙소. 하지만 너무 신경쓰지 마시오. 괜히 나때문에 간수부장이 졸경을 치르겠소. 남좋은 일 하려다가 상하기나 하면 피차에 불편하고 미안스러운 일이 아니겠소.》

《그까짓 괜찮습니다. 간수부장자리 무슨 금덩이주고 바꾼 자리라고 이 나세에 눈치보며 살겠습니까?》

《허허… 그 말 한마디 듣기가 좋소. 사람이란 제멋에 살아야지. 그런데 그 살아가는 멋에는 반드시 량심과 정의가 비껴야 하거던.》

조봉암은 간수부장의 어깨를 툭툭 쳐주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들은 미결수호동의 한끝에 자리잡은 김정두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조인수가 담배를 피우다가 그들이 방안에 들어서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담배불을 재털이에 비벼끄고나서 조봉암에게 자기앞에 있는 나무걸상을 가리켰다.

《앉으시지요.》

조봉암이 그가 권하는 걸상에 앉자 조인수도 자리에 앉았다.

《한가지 묻고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조봉암은 덤덤한 표정으로 그를 볼뿐이였다.

《조선생이 변호인단의 변호를 거절하였다는데 사실여부를 알고싶습니다.》

그 소리에 조봉암은 빙그레 미소를 짓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왜서입니까?》

조인수가 여전히 메마른 어조로 따지고 들자 조봉암은 그제야 짜증이 난듯 되물었다.

《왜 검사가 그 문제에 신경을 쓰는거요?》

조인수는 조봉암의 퉁명스러운 반격을 받자 짜장 볼이 불카해졌다. 네놈이 그 일에 무슨 상관이야 하는 조봉암의 속말을 알아들었던것이다.

조인수는 속이 뒤집어질듯 한 분노를 느꼈으나 참는수밖에 없었다. 아마 여느 사람들 같으면 《네놈의 고약한 말버릇 예서 통할것 같으냐.》 하고 벌떡 일어나 배허벅에 발꿈치를 날렸을것이였다.

상대가 조봉암이기에 심문할 때마다 조인수는 이런 검사로서의 모욕을 참아내야 한다. 어쩌면 그에 습관되여가고있는듯싶은 자기의 처지에 당황하고 스스로 분개하게 된다.

하지만 다른 수가 없다. 어서빨리 기소장을 끝내고 재판정에 제출해야 하는것이다. 우에서는 기소장을 넘겼느냐고 매일같이 불같은 독촉이다. 사실 이제 시간도 얼마 없다.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생겨나 또 조인수를 불안하게 하고 경무대 경호실장까지 전화로 욕설을 가하여오게 하였다. 조봉암이 자기에 대한 변호를 배격하였다는것이였다. 그가 자기에 대한 변호와 증인채택, 증언자와의 질의응답을 직접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경무대 경호실장은 법정에서 조봉암의 목소리가 나지 않게 하라고, 당장 서울지방법원에 조봉암의 제기를 기각시키게 하라고, 검사항의를 하라고 전화로 몰아댔다. 이건 상부의 뜻이라는것이다.

상부란 의미가 조인수를 당황하게 하였다. 리승만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재판의 세부들에 이르기까지 그렇게도 관심하고있다는 자체가 조인수에게는 하나의 무형의 결박이고 중압이였던것이다.

조인수가 그 소리 듣고 서울지방법원에 가서 사실을 확인하여 보았다.

아직도 서울지방법원에서는 앞으로 재판을 담당할 재판관을 선정하지 못하고있었다. 맨 처음에는 법원의 판사들이 여러명 자청해나섰는데 법무부에서 부결한 뒤로는 다들 이 구실 저 구실 대면서 꼬리를 사린다는것이다. 홍병삼판사가 제기되였지만 그도 몸상태가 좋지 못하여 사건을 담당할수 없다고 피해선다고 한다.

법원장에게 경무대의 입김을 넌지시 시사하면서 본인의 변호사절을 기각시키는것이 필요하다고 제기하여보았다.

나이가 지숙해보이는 서울지방법원 법원장은 그러한 절차는 피고의 권리에 속하는 문제이므로 이번 사건의 사회적문제성을 고려하여 기각시키는게 무리라고 난색을 보였다.

돌아오면서 다시 생각하여보니 조봉암이 변호를 사절하는 리유가 껄끄럼하였다. 지금까지 공판정에서 변호인단과 맞서리라고 생각하고 검사론고를 빈틈없이 준비하여왔는데 주피고인과 맞서게 된것이다. 그렇게 되면 조봉암과의 대결이 심문장으로부터 법정에로 무대만을 바꾸게 될뿐이다.

조인수는 자신이 없었다. 지금 심문장에서도 밀리는것은 조봉암이 아니라 자기, 조인수다. 원래 사실적근거와 론거가 희박한데다가 상대의 주장이 빈틈이 없고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피고와 검사가 오히려 뒤바뀌여지고있는 형편이다. 이제 법정에 가서 조봉암과 맞선대도 그 결과는 뻔하다.

조인수는 변호를 사절한 조봉암의 의도가 헤아려져 더욱 불안스러웠다. 조봉암은 자기를 대표로 내세운 리승만과의 정면대결을 법정에서 벌려놓으려고 할것이다. 그렇게 되면 리승만세력이 궁지에 몰릴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에서 리승만의 립장을 대변하고있는 경무대 경호실장 곽영주가 소식을 듣기 바쁘게 호령질하고 리승만이 안절부절하는게 우연이 아니다.

조인수는 어차피 그들의 꼭두각시로 나선 자기의 처지를 통감하였으나 그에 도전할수도 없는 형편이다. 그래 자신없는 일이였으나 조봉암에게 말해보는수밖에 없었다.

《조선생, 피고들이 자기들의 죄를 경감시키기 위해 변호인들의 도움을 받는것은 무엇보다도 피고자신들을 위한 권리행사입니다. 그런데 왜 선생은 그걸 포기합니까?》

조인수는 고저가 없는 딱딱한 말투로 설명하고 물었다.

조봉암은 얼굴에서 미소를 거두지 않고 다소 의아쩍어하는 기색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네가 요사를 떠는 리유가 뭔가 하는 표정이다.

그때 옆에 서있던 김정두가 대화에 끼여들었다.

《하, 그건 검사님의 말이 옳을듯 한뎁쇼. 괜히 피고인들이 집 팔고 재물을 날리면서 변호사를 채용하겠습니까? 제가 알건대 이번 진보당사건을 맡은 변호인단은 서울과 지방의 가장 이름이 있는 변호사들로 무어졌는데 무료변호를 하겠다고 했답니다.》

《나도 들었소.》

《그런데 왜 마다합니까? 그 사람들의 힘까지 빌면 이모저모로 도움이 될것이 아닙니까. 저도 재판정에 몇번 가봤는데 변호사가 재주있으면 5년, 10년은 량반 헌갓 벗기듯 대수롭지 않게 벗겨줍디다.》

《거야 그렇지요. 사실 조선생 변호인단은 내가 맞서기가 너무도 베찬 법조계의 선배들로 무어졌습니다. 솔직한 말로 난 지금 그들과의 법정언쟁이 두렵기도 합니다.》

조인수가 김정두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가장 솔직한 말을 꺼냈다는듯 차거운 얼굴에 미소까지 흘렸다.

(흠- 고양이가 쥐 생각해주는군. 이놈아, 넌 공판정에서 나와 직접 맞서기가 베차다는거지? 그래도 하는수 없다. 네놈은 어쨌든 나와 맞서야 한다. 네가 리승만을 등에 업고 얼마나 버티는지 어디 두고볼테다!)

조봉암은 이렇게 속으로는 조인수에게 쓰겁게 대답을 주면서도 벙시레 웃었다.

《조검사, 난 지금도 자신을 피고라고 생각하지 않소. 그런즉 아직은 변호인단의 변호를 받고싶지 않단 말이요. 난 나의 목소리로 나의 주장을 밝히고싶소. 난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하여 자기의 감정, 자기의 음색, 자기의 법의식을 가지고 나의 주장을 더해주거나 덜어주는걸 바라지 않소. 이것이 리유라면 리유요.》

조인수는 조봉암의 결심을 돌려세울수 없다는것을 느끼자 자기도 모르게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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