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 회)
제 1 장
3
열흘만에 조봉암은 서울경찰청의 사찰과 분실에서 서대문구 현저동의 높은 담벽에 가리워있는 서울형무소로 이송되였다.
사찰과 분실의 침침한 구치소에 홀로 갇혀있다가 이송될 때에야 얼핏 만나본 전우들의 처참한 모습에서 조봉암은 가슴을 저미는 통분을 금할수 없었다.
조봉암은 호동의 출입문앞에서 자기를 기다리다가 깍듯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 형무소 소장에게 몇마디 인사말을 건늬고는 즉석에서 요구사항을 제기하였다.
《소장, 난 오늘 저녁부터 밥을 먹지 않겠소. 그리고 일체 말을 하지 않겠소. 요구사항은 하나요. 감방에 들어온 우리 동지들에 대한 린치를 중지할것!》
그것은 단식에 들어가며 묵비권을 행사한다는 엄숙한 선포였다.
형무소 소장이 그러면 안된다며 성까지 냈다.
조봉암은 아랑곳없이 즉시 행동에로 넘어갔다. 입을 다물고 한번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봉암에게로 담당취조관이 달려왔다. 간수부장이 달려오고 감옥의사가 달려왔다.
달래고 위협하였으나 조봉암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사흘, 닷새… 보리쌀에 콩알이 다문다문 박혀있는 감옥밥과 멀건 무우국이 들어왔다가는 그대로 나갔다.
조봉암이 전우들에 대한 고문중지를 요구하여 단식투쟁에 돌입하고 묵비권을 행사한다는 소식이 한입두입 건너 옆방들에 전해졌다.
전우들속에서 조봉암을 따라 일체 음식을 거절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한주일째 되였을 때는 체포된 진보당핵심전원이 단식에 들어갔다.
이들의 단식투쟁소식이 감옥밖에까지 알려져 여기저기서 항의투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로성팔이 《국회》의장인 리기붕과 내무부 장관 정제관을 상대로 한바탕 론전을 벌렸다.
열흘만에 형무소 소장이 나타나 조봉암에게 요구조건을 수락한다는것을 통보하고 단식을 중지하며 심문에 응할것을 요구하였다.
그제야 조봉암은 식사를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사흘동안 병원에 가있다가 그 다음날 담당검사의 첫 대질심문에까지 응하게 되였다.
그가 수인차에 오를 때 형무소 소장과 호동의 간수부장, 담당간수가 따라나와 첫 검사심문인데 잘하고 오라고 바래워주기까지 하였다.
조봉암은 직업적인 감옥의 파수군들의 정중한 대접을 받으면서 속으로는 쓰거운 웃음을 금치 못하였다.
이놈들한테까지는 리승만의 포악이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다. 권력의 시녀들의 어찌할수 없는 눈치보기요, 꾀바른 생존방식이기도 하다. 리승만의 밑에서 장관노릇도 해보고 부의장도 했다는 전직관념과 아직도 진보당의 당수이며 풀려나오면 다음기 선거에서 리승만을 눌러버리고 옥좌를 타고앉아 열배로 앙갚음을 할수 있다는 우려감때문에 적당히 얄팍한 선심이나마 약삭바르게 묻어두고저 왼심을 쓰는것이다.
담당검사 조인수는 이미 경무대의 입김을 쐬고있는지라 그들과는 판판 달랐다.
조봉암이 호송경찰의 안내를 받아 심문실에 들어서자 새까만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새까만 머리칼에 동백기름까지 발라 단정하게 넘긴 40대중반의 사나이가 문건을 들여다보고있었다.
잠시후에야 문건에서 고개를 들고 문가에 서있는 조봉암에게로 눈길을 박는데 그 눈길이 살이라도 헤집어놓을듯 차고 날카로웠다. 뾰족하게 솟아오른 코끝이 검사의 얼굴인상을 직업에 어울리게 더욱 매섭게 해주었다.
그는 그냥 조봉암을 세워놓고 자기가 담당하게 된 피고를 직업적인 타성으로부터 오는 적의와 무턱대고 생겨나는 경멸과 호기심 그리고 이제 정치의 거물로 공인받는 상대의 귀한 목숨을 마음대로 희롱하게 될 쾌감과 자기 우월감 등 여러가지 의미가 뒤섞인 눈초리로 쏘아보기만 하였다.
조봉암은 잠시 서있다가 상대가 앉으라는 인사말이 없자 맞은편 벽쪽에 붙여놓은 긴 쏘파로 가서 푹신한 등받이에 허리를 붙이고 앉았다.
담당검사는 오른손 두번째손가락을 찌를듯이 내밀었다가 아래로 꺾어 자기앞에 있는 어지러운 나무걸상을 가리켰다. 이쪽으로 옮겨앉으라는것이다.
조봉암은 쏘파에 편안스럽게 앉은채 상대의 표독스러운 눈길을 쳐다보았다.
상대를 압도하는 준엄하고 무서운 기상은 조봉암쪽이였다. 바위같이 듬직한 허리를 쭉 펴고 꼬리가 약간 처진 부릅뜬 두눈에서 야밤에 불줄기를 뿜는 호랑이의 눈처럼 불덩이가 이글이글하였다. 철문처럼 굳게 다물린 입술이 이제 열리면 총탄이 련발로 쏟아져나올듯싶고 무릎우에는 크고 억센 두주먹이 묵직이 놓여있었다. 흡사 바위우에 우뚝 서서 상대를 짓쳐버릴듯 앞발을 쳐든 성난 호랑이의 기세를 방불케 했다.
랭기가 풍기는 상판을 쳐든채 독이 오른 눈으로 쏘아보고있는 조인수는 영낙없이 상대를 물 기회를 노리는 독사같았다. 제아무리 독사라고 한들 호랑이의 발통이 한번 휘둘러대면 일격에 요정날 가련한 존재일뿐이다.
어차피 상대도 되지 않는 호랑이와 독사간의 싸움이였다. 싸움의 결말도 이미 정해져있는듯싶었다.
두사람은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눈싸움을 벌리였다.
맞부딪쳐 쟁강 소리라도 날듯싶은 눈초리를 먼저 접은것은 담당검사였다.
《이름은? …》
그의 퇴매한 물음에 조봉암은 응대조차 하지 않았다.
또다시 차고 답답하고 긴장한 침묵이 흘렀다. 침묵속에 조인수는 상대의 속을 꿰뚫어보고있었다. 례의를 지키라는 훈계가 느껴지자 울컥했으나 역시 참는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굽어든것은 검사였다.
《이름을 물었습니다.》
조인수가 어조를 약간 누그러뜨리며 상기시켰다.
그 정도의 양보로는 조봉암의 굳게 닫긴 입을 열수가 없었다.
옆책상에서 고개를 숙인채 심문기록을 남기기 위하여 펜대를 들고있던 녀서기가 바빠맞아 빼쭉하게 강마른 얼굴을 들었다.
《선생님, 여기 질서가 그렇습니다.》
앞뒤쪽의 처지와 감정을 느끼고 자기가 나서는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녀서기는 고저가 없는 딱딱한 말투로 이렇게 설명하였다.
그제야 조봉암은 여전히 담당검사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은채 비로소 입을 열었다.
《우리 인사는 10여년전에 벌써 했던것 같은데… 그때 당신은 왜놈검사보라고 했더라? … 당신을 다시 이런 자리에서 만나리라고는 생각 못했지. 이 놀음이 퍽 재미있는 모양이구만.》
조봉암은 감회가 새로워진듯 얼굴에 조롱기어린 미소까지 짓고 첫말을 떼였다.
조인수는 삽시에 팽팽하던 볼에 경련이 스쳐갔다. 자기 힘과 재능의 가치에 대한 자신감에 차있던 그의 반들반들한 상판이 그 한마디에 단번에 설익은 말고기처럼 벌개졌다. 온몸이 얼어붙은듯 혀바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왜놈들이 망하던 해였다. 당시 서울에서 검사보노릇을 하던 조인수는 신의주감옥에서 풀려나온 후 인천에서 로동운동을 지도하고있던 조봉암을 잡아넣은 일이 있었다.
그때 조인수는 여러차례의 옥살이로 이미 계산이 된 공산당활동자료를 걸고 조봉암을 어떻게 하든지 교수대로 끌어가려고 악착하게 덤비였다.
그러나 젊은 나이와 검사보라는 하치않은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큰 인물에게 큰 사건을 들씌워 크게 형벌을 주어 법관으로서의 재능과 위세를 한번 떨쳐보려고 했던 젊은 녀석의 무모하기 이를데 없는 큰 야욕은 일제의 패망과 함께 부서지고 조봉암은 석방되였다.
감옥에서 나온 조봉암이 분별없이 날뛰던 놈의 주리를 틀어보려고 찾아보았으나 행적이 묘연하였다. 제주도 한끝 서귀포로 도망쳐서 숨어있었던것이다.
그러던 인간이 친일매국노들을 대량적으로 끌어당겨 반공의 첨병부대로 편성한 미군정의 비호밑에 서울법조계에 나타나 애국자들의 피로 두손을 적셔갔다.
그는 서울지방검찰청에서는 주로 정치사건들을 다루는 제일 관록이 있고 로회한 검사로 평판을 받고있었다. 근래에는 크고 복잡한 사건들을 맡아가지고 통치권의 의도에 맞추어 형벌을 관철시킴으로써 리승만도 관심하는 인물로 되여있다.
이번에 조봉암에 대한 압살공작이 제기되였을 때에 벌써 조인수는 경무대 비서실에서 직접 담당검사로 이름을 찍어서 검찰청에 내리먹이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조봉암이 바로 법조계의 선망을 받고있는 고명한 검사를 인간의 의미를 상기시키는 두세마디로 얼혼이 쭉 빠지게 만들어놓은것이다.
조인수는 수치감을 못이겨 꿋꿋해진 두볼을 차디찬 손바닥으로 몇번 쓸어내리다가 대꾸하였다.
《우리는 아마도 악연인가 봅니다.》
《악연? … 왜 악연이겠나? 필연이지. 우리의 상면은 필연이야. 당신 본이 뭐지?》
《본이요? … 창녕조씨지요.》
조인수가 엉겁결에 대답하였다.
《창녕조씨? 허허, 우린 동성동본이로군. 그러니 당신 말대로 악연은 아니지 않나. 우린 락동강의 기름진 옥토에서 삶의 터전을 가꾸어온 한조상의 피줄에서 돋아났지. 이렇게는 마주앉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이였는데… 조상들앞에서 부끄러운 일이야. 헌데 이보우, 조검사! 우리 조상들이 구천에서 눈뜨고 적아로 마주앉은 두사람을 굽어본다면 누구를 욕할것 같은가?》
《우리 조상들이?!》
조인수의 입이 예상치 않았던 질문에 쩍 벌어진채 굳어졌다.
《임자가 대답을 못하네그려, 허허허…》
조봉암이 조인수를 끌고다니다가 배지기를 떠서 메쳐놓고는 장쾌하게 웃었다.
기가 질려있던 조인수는 조봉암의 웃음에 덩달아 피식 웃다가 급기야 표정을 바꾸었다. 어쨌든 자기는 검사다. 권력을 등에 업은 인간의 정신적여유와 강기를 보여주어야 했다.
녀서기가 덩달아 깔깔거리다가 조인수의 눈총을 받고 뚝 그쳤다.
호방하고도 기상이 꿋꿋한 조봉암앞에서 기실 조인수따위는 제아무리 검찰계의 재사라 꺼덕거려도 발길질 한번에 혀를 가로물고 늘어질판이다.
불시에 조인수가 자리에서 충동적으로 일어나더니 그자신도 걷잡을새없이 꺾어질듯 고개를 떨구었다.
《죄송합니다!》
《허허, 뭘 그러오? 앉게 앉으라구. 죄송할게 없네. 자네는 관복을 입고있고 난 그 관복에 도전한 사람이니 이건 필연일세. 자, 시작해보세. 물어보게나. 아니, 심문해보게나.》
조봉암은 상대를 가볍게 주무르며 미소를 지었다.
조인수는 다시 자기 걸상에 엉뎅이를 붙이고 자기 직분으로 돌아왔다. 어쩐지 자기의 팔다리와 혀와 머리가 다 제것 같지 않다. 꼭 최면술에 걸린듯 말을 듣지 않고 뿔뿔이 제멋대로 움직여 화가 치밀었다.
문득 그의 뇌리에 경무대에 불리워갔던 일이 생각났다. 자기를 밀실에 앉혀놓고 경무대 경호실장 곽영주가 양주 몇잔 걸치게 하며 뇌까리던 말이 지금까지 마약처럼 그를 흥분시키고 현실의 어두운 세계에서 심혼을 취하게 한다.
《이것 봐, 검사! 임자가 맡은 사건은 대통령이 친히 상정시킨 초특급일세. 차후계산은 각하께서 직접 하게 될걸세. 영광이요! 바란다고 차례지는게 아닐세. 이런 사건은 검사나 판사들이 죽을 때까지 맡아볼수 없는 행운의 거위알이야. 조봉암을 깨끗이 제거하면 임자에게 검찰계의 중핵적인 자리가 차례지리라는것을 각하의 이름으로 언명하네. 기회를 놓치지 말라구. 앞으로 재판과 관련한 문제는 내게 직접 이야기하게.》
곽영주는 종이장에 친절하게도 자기의 전화번호까지 적어 내밀었다. 제보다 예닐곱살은 떨어져보이는 젊은 녀석이 지엄스럽게 자네라고 불러주며 다루듯 어깨까지 두드려주는것이 부아를 돋구게 했으나 다시 목을 꺾고 생각하면 기실 황송한 일이 아닐수 없다.
지방검찰청의 검사명함장이나 가지고 사는 주제에 날고 긴다 한들 리승만의 측근중의 측근인물인 경호실장과 마주앉아 대작까지 하는 엄두나 낼수 있으랴.
조인수는 지금도 그 소리가 고막을 쟁쟁하게 울리는듯싶다. 억지로 기운을 추슬러올렸다.
(경무대를 등에 업은 내가 이 무슨 꼴인가. 조상을 거들어 염통을 찌르는 죄인의 말 몇마디에 비맞은 콩새처럼 바들거리다니…)
그는 걸상의 팔걸이를 꽉 틀어잡고 입술을 사려물었다. 점차 맥박이 고르로와졌다. 곧 자기를 회복한 그는 몸에 배인 검사의 행세를 하기 시작하였다. 부름말도 바뀌여져갔다. 죽산선생님으로부터 조선생으로 바꾸기도 하였다. 간혹 한번씩은 기운을 내서 당신이라는 말도 꺼내놓고 상대의 격을 떨구어갔다.
변함없는것은 조봉암쪽이다. 조봉암은 여전히 쏘파에 반석같이 틀고앉아 조인수의 물음에 거침없이 대꾸하였다. 홍안의 시절부터 감방을 북나들듯 해온지라 형리나부랭이들의 습관과 취미며 그들의 약점과 체질적특성을 잘 알고있었다. 그에 대처할수 있는 뚝심과 방법도 도통하고있었다.
조인수는 여러날 조봉암을 심문하였다. 그 어느 문제에서도 손도장을 받아낼수가 없었다. 받아냈다면 보신용권총을 한정 소지했다는것뿐이였다. 그것도 당장 돌려달라고 호통이다.
《생일선물이요. 어쨌다는거요?》
권총이 생겨난 옛적얘기를 간단히 하고는 되물었다.
무기불법소지자는 기껏해야 5년간의 징역형을 받을수 있다. 변호인들이 권총이 생겨난 경위와 보관리유를 걸고 시비를 따지고들면 그것마저도 통할수 없게 될것이다. 그들도 조봉암의 주장을 그대로 외울것이다.
심문은 더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한자리에서 맴돌기만 하였다.
결국 조인수는 진보당의 기본핵심인물들에 대한 취조에 이어 조봉암에 대한 한달 가까운 취조에서 5년정도의 형을 먹일수 있는 죄마저 꾸며내지 못하고말았다.
평화통일주장이나 북관계문제를 놓고도 조인수는 자신만만하게 달라붙었지만 어느 한가지도 트집거리를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 문제들을 제시했다가 조인수는 조봉암의 론리당당하고 명석한 강의를 받는 청강생의 처지가 되여버렸다.
그는 어떻게 하나 말꼬리를 물어채보려고 빈틈을 찾았다. 신경을 도사렸다. 하지만 다 듣고나면 오히려 조봉암의 주장에 끌려들어 공감을 느끼고 세상물정에 비로소 눈이 터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만 당황해졌다.
조봉암의 론리자체가 빈구석이 없다. 너무도 정바르고 명쾌하여 쉽게 리해가 갔다.
조봉암은 담당검사의 앞에서 자기의 사상과 리념을 구태여 감추려고도 하지 않았다. 언제나 락관과 자부심을 잃지 않았다.
조인수가 제기한 까다롭고 미묘한 문제에 대하여서도 구태여 요술을 부려 에돌거나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진실을 가지고 툭툭 빠개보였다.
어느날에는 조인수가 소형반도체라지오를 들어보이며 생각되는게 없느냐고 물었다.
《내가 쓰던것이구만. 왜 그건 집에서 가져왔소? 남의 애용품을 함부로 가져와도 되는거요?》
조봉암은 불쾌한듯 제편에서 따지고 들었다.
조인수는 이미 이걸 걸고 죄상을 눌러놓을 궁리가 돼있었던지라 깔깃깔깃한 어조로 물었다.
《이건 뭣때문에 사용하였는가요? 이것으로 무엇을 청취하였습니까?》
《무엇을 듣다니? 당신은 북의 방송을 들었는가 하는 대답을 듣자고 하는것 같은데 그렇게 써놓구려. 그런데 거기에 더 써놓을게 있소. 난 그걸 가지고 저녁이면 방송을 들으면서 연구를 하고 평가를 하고 학습을 하였소. 리승만의 연설도 들었고 미국의 방송도 들었소. 일본총리연설도 들었소. 그리고 북의 령수의 연설도 들었소.》
《인정하신다는거지요?》
《물론! … 이봐, 검사! 난 정치가야. 적어도 대통령으로 돼서 민중을 이끌고 나갈 큰 목표를 세워놓고 정치활동을 하던 사람이야. 헌데 정치지도자가 미국도 모르고 일본도 모르고 북도 모르는 몽매한 인간이 돼서야 어떻게 당과 민중을 지도할수 있겠나? 그런 인간이 대통령이 되면 이 땅이 어떻게 될것 같은가? 검사도 이 땅의 백성일테지? 정사가 잘되여야 검사도 신수가 편해질테지. 헌데 그 정사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여야 하는지는 임자도 알아야 하네.
이 땅이 부강하고 민중이 세계속에 우뚝 솟으려면 대통령도 정치가들도 그리고 일반 민중도 세계를 보고 세계를 알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네. 리씨조선이 왜 여윌대로 여위다가 끝내는 쪽발이들에게 먹히웠는가? 그건 리씨조선의 통치자들이 력대로 통치의 기둥이 허물어질 집권위기의식때문에 저들부터 세계를 알려 하지 않았고 백성들까지 세계밖에 사는 암매한 무지렁이들로 만들어놓았기때문일세. 은둔국의 운명은 반드시 망국에로 이어지기마련이네.
세계는 하늘에 비행기를 띄우고 땅우에 전차를 우르렁거릴 때 고종은 경복궁에 들어엎디여 밤낮으로 조상제사와 무희들의 춤놀이로 살면서 고작해야 군사들에게 조총 몇자루 안겨주고 나라수비를 시켰지. 백성들도 장님에다가 귀머거리가 돼가지고 원체 세상이란 이런가부다 하고 살아왔구. 그러니 망할수밖에… 그래, 나도 대통령이 되면 고종의 꼴이 돼가지고 이 땅을 영원히 약소국으로 남아있게 할것을 바라나? 지금 리승만이 그렇게 정사를 하고있는데 단언컨대 그것은 망국으로 잇닿은 정사일세! 쇄국은 망국으로 가는 길이야. 외세의존으로 넘어가는 교두보야. 내 이 말도 적어서 리승만에게 보여주게. 백성이 알권리를 막는자는 백성을 영원한 암흑속에 가두어놓고 종당에는 멸망에로 끌고가는 만고의 역적이라고…》
조봉암의 대답이라는게 이러루한즉 그 정의롭고 대범하고 솔직담백한 론조에 조인수따위가 어찌 감히 맞설수 있으랴. 조봉암이 인간세계의 아득한 하늘에서 나래치는 수리개라면 조인수는 고작해야 땅속에서 서식하는 벌레였다.
맞서기는 고사하고 그 인간숭고함의 절정에서 인간의 아름다움과 정의에 대하여 끝없이 펼쳐가는 조봉암의 무한의 열정과 비관을 모르는 신념과 완성미를 갖춘 인격앞에서 조인수는 처음으로 유정한 생의 노래를 듣고있었다. 때일찍 누렇게 변색이 가고 꺼져버렸던 자기의 삶에 비로소 희미하게나마 한줄기의 빛이 비쳐드는것을 의식하고있었다.
조인수는 난생처음으로 참된 삶의 의미를 깨우쳐주는 교사를 만나게 된것이다.
한편 조봉암은 시간이 흐르고 날이 바뀌여갈수록 초조하고 불안한 심경에 휩싸였다. 그를 크게 괴롭히는것은 바깥에서 들어오는 소식과 그로부터 생겨나는 자신에 대한 쓰디쓴 비판의식이였다.
간수나 호송경찰 혹은 담당검사에게서 얻어듣는 소식들을 종합하여보면 지도부전체가 적들의 피습에 철창으로 옮겨지고 진보당은 지방조직들까지 파멸되여가고있다는것이다. 리승만은 공보실장을 내세워 얼토당토않은 리유로 진보당의 해산령을 내려 당은 큰소리 한번 쳐보지 못하고 해산되였다고 한다.
고심참담한 투쟁끝에 세워놓은 당이 된서리에 꽃잎지듯 스러지고말았다는것을 확인한 조봉암은 커다란 실망과 좌절감에 빠져들었다.
(어떻게 만들어낸 당인가. 그 당이 리승만이 뿌려던진 포승에 결박되여 숨을 쉬지 못하고있으니 될법이나 할 일인가!)
조봉암은 춥고 침침한 감방을 거닐며 그건 다 자기가 불민한 탓이라고 가슴을 두드렸다.
이러한 정황을 예상하지 못한바도 아니였다. 특수부를 조직하고 특수당원체계도 만들어놓은것도 그때문이였다. 거기에 견결하고 투쟁력이 강한 핵심들도 박아넣어 이와 같은 경우에 대처하도록 해놓았다. 아래사람들에게 자기의 체험과 우리의 근대력사의 교훈을 들려주면서 철권의 전횡에 맞설수 있도록 경각성을 높일데 대하여 강조하기도 하였다.
돌이켜보면 반대세력들의 이 횡포무도한 백색테로에 맞설수 있도록 옳은 전술과 방법을 가르쳐주고 조직적으로 단련시키며 전반적으로 당의 힘을 키우기 위한 사업을 하지 못하였다. 당이 갖은 고생끝에 이남전역에서 조직을 정비하자 현훈증에 떠서 만세나 부르고 과신과 자고자대의 환희에 휩싸여 돌아갔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얼마나 천진란만한 노릇이였는가! 적은 칼을 벼리고있었는데 우리는 축배나 들고있었으니…)
지금도 조봉암은 하얗게 성에가 낀 돌담벽에 허리를 붙이고 앉아서 때늦은 후회에 속을 태우고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조봉암은 으스러지게 틀어잡은 주먹에 힘을 주며 혼자소리로 강기있게 중얼거렸다.
《싸워야 한다. 철창속도 전투장이다. 나는 단 한순간도 편안하게 살 권리가 없다. 민중은… 그래… 그들은 지금도 나를 부르고있다.》
그는 법정투쟁을 통하여 자기 당의 강령을 옹호하고 공개선전하며 그를 통하여 당의 합법화를 조속히 되찾아올 의지를 가다듬군 하였다.
자신이 있었다. 재판이 시작되면 사회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신문과 방송이 요란스럽게 떠들어댈것이다. 물론 보수계의 돈을 먹고사는 그것들이 고운 소리를 해줄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열에 하나라도 우리의 목소리가 울리고 사회의 일각에 진실이 전해진다면 당재건의 길이 열리고 진보당은 다시금 소리치며 일떠서게 될것이다.
아마도 리승만은 진보당이 이번 《국회》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할것이라는 타산으로 미국의 묵인밑에 서둘러 이런 횡포무도한짓을 벌려놓은게 틀림없다.
이제 《국회》선거나 치르면 한번 세상을 들썩거리게 해놓고 손을 뗄것이다.
이 고비를 넘기자! 슬기롭게, 유익하게 넘기자!
때가 올것이다! 때가 올것이다!
조봉암은 법정투쟁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하여 어느날 자기에 대한 변호인단의 변호를 거절한다고 선언하였다.
담당검사가 제시한 변호인단 성원들을 보니 알만 한 사람들이 여럿이였는데 하나같이 서울법조계에서 량심인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였다. 그들속에는 지난날 일제때부터 애국자들에 대한 변호에 나섰던 사람들도 있었고 해방후에도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변호만을 맡아 그 명성이 널리 알려진 사람들도 있었다.
변호인단은 무려 30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로 조직되였는데 무료변호라고 한다. 전례가 없는 일이였다.
조봉암은 분명 리승만일파의 압력을 받으면서도 자신과 진보당을 위하여 분연히 나서준 그들이 고마웠고 법전문가들의 변호가 유력하다는것도 리해하였다. 하지만 그가 진심이 담긴 그들의 성의를 마다한 리유가 있었다.
조봉암은 자신에 대하여서는 자기의 목소리로 변호하고싶었다.
변호인이란 어디까지나 피고의 대변자이며 피고를 위해 복무하는 법인간이다. 그들은 법정에서 형량을 될수록 높이려는 기소측과 피고를 대신하여 법을 따지고 들며 싸우며 피고를 옹호하고 법기관의 전횡으로부터 피고를 비호해주는것을 자기 사명으로 한다. 그러므로 변호인은 재판에서 커다란 발언권과 영향력을 행사한다.
조봉암도 처음에는 변호인단의 변호에 관심을 가지였다. 법조계인물들의 입을 통하여 객관적으로 자기의 무죄를 립증함으로써 세론에 대고 진보당의 강령을 선전하고 여론의 지지를 얻어내는것이 보다 효률적일것 같았던것이다.
그러나 그는 재판날자가 가까워오자 생각을 바꾸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대신하여 나서는것보다 자기가 직접 자기를 지키고 자기 당을 지키고 법정에서 리승만일파와 대결하고싶었던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