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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향도》중에서
장편소설
서 해 전 역
박 태 수
(제 17 회)
제 3 편
13 왼손으로 허리를 눌러 짚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겨 벽에 걸린 조국의 지도앞에 서계시였다. 광활한 아시아대륙을 짊어진채 서해를 걷어차고 일본렬도를 짓밟으며 금시 태평양으로 뛰여나갈것같은 조국땅… 바야흐로 또 한해가 저물어가는 이 시각 지도우에서 조국땅 방방곡곡을 헤아려보시는 그이의 눈앞으로 생동하는 산 현실인양 한해동안에 마련된 대기념비적창조물들이 우렷이 떠오른다. 그렇다. 이해에도 조국은 거대한 변혁과 진보를 이룩하였다. 먼먼 북변의 새별군과 무산으로부터 서해곡창 연백벌에 이르기까지 이해에도 조국땅우에는 얼마나 많은 재부가 이룩된것인가. 완공된 큼직큼직한 대상만 꼽아도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71돐을 계기로 4월 13일에 봉화갑문을 준공하였다. 7월에는 대동강발전소가 조업하고 9월에는 검덕에서 제3선광장이 완공되고 평양에는《충성의 다리》가 일떠섰다. 아직 완공을 보지 못한 기본건설대상들에서 이룩한 성과도 결코 작다고는 볼수 없었다. 국토를 넓히고 나라의 면모를 개변시키는 대자연개조사업을 맡아나선 간석지건설자들은 대계도간석지와 룡매도간석지를 비롯한 간석지건설장들에서 물막이제방공사와 함께 개간된 간석지들의 내부망건설을 적극 다그쳐 서해바다 100여개의 섬들을 륙지와 련결시키고 수만정보의 간석지를 풍년대지로 전변시켰다. 대상건설인가 하면 자연개조사업이기도 한 발전소건설도 례외가 아니였다. 새로운 수력자원개발방식의 본보기로 일떠서고있는 태천발전소건설장에서는 건설자들의 헌신적인 로력투쟁으로 수십리구간의 물길굴뚫기공사와 언제공사, 시설물공사 등 전반적건설이 계획보다 l∼2년 앞당겨졌다. 그러나 매사가 다 락관적이기만 한것은 아니였다. 뜻대로 되지 않는 불안스러운 대상들도 있었다. 지금 그이의 시선이 머무른, 서해변의 남포지구와 은률군을 련결하는 갑문건설이 바로 그러하였다. 남포갑문건설을 시작한지도 이제는 벌써 3년, 그 3년동안 우리의 군인건설자들과 과학자, 기술자들이 이룩한 성과는 물론 대단한것이였다. 그러나 이미 해놓은 일이 제아무리 많다 해도 앞으로 해야 할 공사과제는 그보다 훨씬 더 방대하였다. 가물막이의 완성은 물론 후속공사들인 가물막이언제안에 있는 천만㎥의 물푸기, 수백만㎥의 감탕을 쳐내고 다시 20여만㎥의 토량을 처리해야 하는 갑실기초굴착, 무넘이언제를 포함한 3개의 갑실공사, 대형회전다리를 비롯한 운영설비조립, 대형함형부재에 의한 기본언제마감막이… 남은 2년동안에 그 모든 공사과제를 수행하는가 못하는가 하는것이 지금은 전적으로 가물막이에 달려있었다 남포갑문건설에서 가물막이공사가 돌파구로 되는 리유는 바로 그때문이였다. 그러나 년말이 달포밖에 남지 않은 (바다가 얼어붙지 않아 실제로 공사를 할수있는 기간은 한달 되나마나하였다.) 지금까지도 가물막이는 완성을 보지 못함으로써 이후 전망까지도 매우 어둡게 한다. (그렇다. 남포갑문건설에서는 아직도 최후의 돌파구를 뚫지 못하고있다!) 집무탁앞으로 걸어가신 그이께서는 송수화기를 들어 국가건설위원회 위원장을 찾으시였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것은 위원장이 아니고 위원장의 서기였다. 《위원장동무는 어디 갔습니까?》 《어제아침에 남포갑문건설장으로 나갔는데 아직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이께서는 전화를 돌려 인민무력부장을 찾으시였다. 그러나 방이 비여 련계를 가지지 못하고 총참모장을 찾았다. 총참모장은 무력부장이 남포갑문건설장에 나가면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급히 올려달라던 보고를 지금 전달하려던 참이였다고 하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갑문건설장에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사고라니, 무슨 사고말이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저으기 놀라시며 다우쳐 물으시였다. 총참모장은 전신보고를 받다보니 아직 사고의 전말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있다고 전제하며 남포갑문건설장에서 보내온 전문을 그대로 읽었다. 총참모부 앞 함형부재장에서 사고 발생, 16명의 인원 부상, 그중 3명 생명위급. 구급치료대책 요함. 11월 21일 11시 54분 극히 압축된 짧은 전문이여서 사고의 원인은 알수 없었지만 열여섯명의 인원이 부상을 입고 생명이 위급한 사람이 셋이나 된다면 작은 사고가 아니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다급한 어조로 물으시였다. 《그래 구급대책은 세웠습니까?》 《군의국장이 치료조와 같이 내려갔습니다.》 《그게 언제쯤입니까?》 총참모장은 방금전이라고 하였다. 《알겠습니다.》 송수화기를 놓으신 그이께서는 책임서기를 불러 즉시 남포갑문건설장에 갔다와야겠다고 하시였다. 인민군전사-군인건설자들을 만나야 했고 현지일군들의 정신적타격도 헤아려봐야 했다. 김정일동지께서 승용차로 남포갑문건설장에 도착하신것은 오후 해가 벌써 서쪽으로 기운 3시 50분경이였다. 그이께서는 부상당한 군인들부터 만나보실 계획이여서 건설관리국 군의소로 곧장 들어가자고 하시였다. 인민무력부장이나 국가건설위원회 위원장과 리영선부부장도 거기에 있기가 쉬웠다. 그러나 정작 가보니 군의소에는 부상자들도 일군들도 다 없었다. 중좌인 군의소 직일관의 말이 부상자들은 이미 남포시병원으로 후송되고 인민무력부장일행의 승용차들은 언제공사장쪽으로 내려갔는데 혹시 정무원지휘부에 가있을지도 모른다는것이였다. 중좌의 추측은 옳았다. 차를 돌려 정무원지휘부로 내려가니 인민무력부장과 국가건설위원회 위원장은 거기 윤상설부위원장의 방에 있었다. 물론 송철만국장도 앉아있었다. 예견한 그대로 모두 낯색이 무겁고 의기소침해진 그들 매 일군들과 인사를 나누고 장탁에 마주앉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우선 사고가 발생한 경위에 대하여 문의하시였다. 송철만국장이 구체적이면서도 간단명료하게 설명하였다. 《그러니 부재의 충돌을 자기희생적으로 막았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숱한 군인들이…》 함형부재장에서 발생한 사고를 곧 자신의 불찰로 생각하는듯 송철만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경위는 그렇고… 몸을 다친 군인들은 어떤 상태에서 후송되였습니까?》 그에 대해서는 리영선이 대답했다. 《경상자들은 의식도 회복하고 크게 문제될것 같지 않은데 대대장을 포함하여 세명은 매우 위급한 상태로 실려갔습니다.》 그 말에 무력부장이 보충하였다. 《특히 위급한건 대대장인가 봅니다. 통나무가 부러지면서 가슴을 때려 흉곽이 상한데다 골절된 갈비뼈가 심장을 다친것 같습니다.》 상태가 그 정도면 대대장의 생명은 구원하기 어려울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용감하고 헌신적인 군인을 잃는다는것은 너무도 가슴아픈 손실이였다. 아직 살아있는지 몰라도 가능한껏 손을 써봐야 한다고 생각하시며 그이께서는 전화기 가까이에 서있는 리영선에게 지급으로 평양을 찾게 하시였다. 부부장이 전화를 거는 사이에 그이께서는 담배갑을 꺼내 모두에게 일일이 권하시였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과 달리 담배를 받는 윤상설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얼굴도 컴컴하게 질리고 눈빛이 어두웠다. 발생한 사고때문이기는 하겠지만 한생 별의별 일을 다 겪어보았을 사람치고는 다소 의외였다. 순간 그이께서는 부위원장의 아들이 이 건설장에 있고 대대장이였다는데 생각이 미치시였다. 그렇다면 지금 사경에 처했다는 그 용감한 대대장이 그의 아들이였는가?… 필경 그런것 같다고 생각되는 순간 평양이 나와 송수화기를 넘겨받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보건부장을 찾으시였다. 보건부장과의 통화는 인차 이루어졌다. 먼저 남포갑문건설장에서 군인들이 부상을 입은 경위와 상태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하신 그이께서는 유능한 외과의사들로 강력한 치료대를 무어 빨리 남포시인민병원에 내려보낼데 대해 지시하시였다. 《… 나는 부장동무가 치료대와 같이 내려와주었으면 합니다. 대대장을 꼭 살려내야 합니다. 치료와 관련하여 걸리는 문제가 있으면 지체말고 나한테 알리시오. 서둘러야겠습니다. 그리고 이걸 명심하시오. 나는 그 대대장과 부상당한 열여섯명의 군인들중 어느 한명이라도 잘못되는 경우… 보고를 받지 않겠습니다.》 보건부장은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였다. 통화를 끝내고 송수화기를 놓은 김정일동지께서는 먼 배경으로 철판묶음을 달아올린 기중기팔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창가에 시선을 주며 다소 흥분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남포갑문건설에 동원된 군인들은 모두가 영웅들입니다. 수천t짜리 함형부재가 충돌하는것을 막자고 그렇게 한몸을 내던질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우리 군인들밖에 없습니다. 그건 전쟁시기에 가슴으로 적의 화구를 막는것과 다름없는 소행입니다.》 그이께서는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다시 말씀을 이으시였다. 《이번 일은 사고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게 왜 사고입니까? 사고라는 말은 사실과 맞지도 않으며 그것이 사고로 된다면 그 대대장동무를 비롯한 우리 군인들의 영웅적소행에 흠집이 생길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번 일은 사고가 아니라 예견 못한 하나의 비상한 전투정황입니다. 그런 정황에서 그 대대장을 비롯한 우리 군인들이 대중적영웅주의를 발휘한것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봐야 옳습니다.》 갑자가 흑- 하는 흐느낌소리가 났다. 윤상설이 손바닥에 얼굴을 눌러붙인채 울음을 참느라고 어깨를 떨고있었다. 리영선이 《부위원장동무.》하고 가볍게 나무라며 그이께 말씀드리였다. 《지금 말씀하신 그 대대장이 부위원장동무 아들입니다.》 《나도 짐작하고있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몸을 일으켜 윤상설의 등뒤로 다가가시였다. 그리고 손을 들어 들먹거리는 그의 어깨를 어루쓸며 갈린 목소리로 위로하시였다. 《그는 영웅입니다. 장한 아들을 두셨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전… 기뻐서… 기뻐서 그럽니다. 변변치 못한 녀석을 그토록 높이 내세워주시니… 죽은들 무슨 한이 있겠습니까.》 《그러지 마시오. 아들이 죽는다고 생각해선 안됩니다. 내 말을 믿으시오. 그는 죽지 않습니다. 그런 억센 심장을 가진 영웅이 그리 쉽게 죽겠습니까?》 《고맙습니다. 그렇게… 믿겠습니다.》 이 눈물겨운 분위기를 돌려세우려고 무력부장이 헌헌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을 놓소, 부위원장. 내 우리 군의국장한테 단단히 일렀소. 한사람이라도 죽으면 군사재판에 넘기겠다구… 게다가 보건부장까지 내려온다니 죽은 사람도 살려놓을게요.》 무력부장의 말에 방안의 무겁던 분위기는 얼마간 가셔지는듯 싶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밖으로 나오시였다. 일군들이 그이를 바래우러 나왔다. 승용차에 다가서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여전히 전사들에 대한 걱정으로 무거워진 마음을 어쩔수 없으신듯 승용차너머로 바다쪽을 바라보다가 뒤돌아서시더니 《부위원장동무, 국장동무.》하고 부르시였다. 《부상당한 전사들을 직접 봐야겠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들의 손이라도 한번 쥐여보고 가야겠습니다. 그러니 지금 남포병원에 같이 가봅시다.》 그이께서는 송철만과 윤상설이더러 자신의 차에 오르도록 권하시고나서 친히 운전석에 오르시였다. 이윽고 승용차는 남포병원을 향해 질주해갔다.
오전 아홉시경. 쏟아지는 진눈을 맞으며 사십m가 넘는 긴 팔을 하늘로 내뻗친 130t기중기선이 두척의 200마력예선에 끌리워 대동강을 거슬러오르고있었다. 기중기선에는 선원들외에도 해상돌격대장 정대철과 그의 수하에 있는 연공, 잠수병들이 10여명이나 타고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갑판에 떨쳐나와 삿대며 널판자며 쇠망치따위로 배전에 달라붙는 얼음장을 떼버리느라고 역사질이였다. 어제밤 서해지구는 중국 산동반도를 휩쓴 태풍의 영향을 받아 바람이 몹시 불었다. 날이 밝아서야 알게 되였는데 마감막이를 위해 전날 남포조선소에서 운반해다 부통에 실은채로 고정시켜놓았던 최종막이수문이 바람에 밀려 어디론가 떠가버렸다. 소동이 일어났다. 작업선들은 물론 련락정과 고무뽀트들까지 총동원하여 금산포와 남포, 은률쪽 대안들을 훑으며 찾던중에 남포시당을 통해 행방불명된 수문이 대보리근방에 밀려올라가 강기슭에 뒤집혀져있다는 련락이 왔다. 기중기선은 지금 그것을 건지러가는 길이였다. 솜동복우에 병사용외투를 덧입은 정대철은 외투주머니에 두손을 깊이 찌른채 선수쪽 갑판우를 뚜벅뚜벅 오고가며 목적지에 가서 해야 할 일들을 두루 생각해보았다. (… 강기슭에 뒤집혀져있다면 보나마나 밤새 꽉 얼어붙었을테니 우선 얼음까기부터 해야 할것이다. 오늘같은 날은 위험하므로 잠수작업은 될수록 피해야 한다. 쇠바줄로 수문밑둥을 걸어당기느라면 견인고리를 찾던가 바로 세울수도 있을것이다. 발전선과 양수기를 제창 가지고오는걸 그러지 않았는가?) 그때 기중기선을 끌고있는 오른쪽 예선이 문득 뚜- 하고 목쉰 고동을 울렸다. 왼쪽 예선도 같은 소리로 그에 화답하였다. 이어 두 배는 약속이나 한듯 기관을 끄고 서서히 전진을 멈추었다. 대보리까지는 아직 멀었는데 웬일인가싶어 정대철은 선장실을 올려다보았다. 선장은 머리가 희끗희끗 센 60전후의 몸이 다부진 사람인데 벌써 다랍쁘를 밟으며 갑판으로 내려오고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저게 안보이우다?》 선장의 수염더부룩한 턱이 가리키는 기중기팔을 올려다보고서야 정대철은 재미없는 정황에 맞다들었음을 직감하였다. 진눈까비가 어지럽게 쏟아지는 거기 전방의 회뿌연 공간속에 강을 가로질러건너간 여러줄의 고압송전선이 보였다. 한선에 수만v의 전압이 걸려있는 송전선인데 진눈이 달라붙으면서 한껏 늘어나 금시 강물에 닿을것처럼 무겁게 드리워져있었다. 《날을 잘못 고른것 같수다.》 앞에 있는 두척의 예선보다도 더 멀리 뻗어나간 기중기팔끝을 올려다보며 하는 선장의 말이였다. 정대철은 여러모로 송전선의 높이를 가늠해보았지만 닿을것 같기도 하고 닿지 않을것 같기도 하고 잘 알수 없었다. 그러나 송전선을 늘일 때 이런 경우를 타산하지 않을수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전진하자고 하였다. 그러나 선장은 응하지 않았다. 《안되우다. 설사 닿진 않는다 해도 안정한계를 벗어나 류전이라도 되는 날엔 세 배에 산 목숨이 하나두 남지 않수다.》 세 배가 다 쇠바줄로 련결되여있으니 류전이 가져올 후과는 그렇게 처참할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선장은 인차 대답하지 않았다. 부시럭거리며 솜옷주머니에서 마라초쌈지를 꺼내 한대 말아붙이고야 입을 열었다. 《별수 없을것 같수다. 돌아갔다가 이 눈이 멎구 고압선이 좀 들린 다음에 와야지.…》 정대철은 선장의 의견에 동의할수 없었다. 바다가 얼어붙기전에 마감막이를 결속하려고 온 끝살부리가 바글바글 끓고있는판에 그렇게 늘쩡거린다는것도 말이 안되거니와 위험하다고 먼발치에 서서 쳐다보다가 되돌아간다는것이 우선 배짱에 맞지 않았다. 《이렇게 합시다. 내 보기에도 복판은 위험합니다. 그러나 저기 은률쪽은 선이 좀 들렸습니다. 그러니 배를 저쪽 대안에 바싹 붙여가지고 통과하면 일없을것 같습니다.》 《그쪽은 물밑에 암초들이 많수다.》 선장의 말이였다. 《암초들이 있겠지요. 하지만 백m만 극복하면 됩니다. 그 백m를 극복할 자신마저 없다면 선장동무, 미안합니다만 배를 우리 군인들한테 맡기고 선원들을 데리고 내리시오. 우린 그저 돌아갈수 없습니다.》 선장이 끝내 응하지 않는 경우 정대철은 실지로 그렇게 할 작정이였다. 그러나 선장의 얼굴은 벌써 노여움으로 이그러졌다. 《여보시우, 군대라구 사민들을 너무 업수 보지 마슈. 사민은 가슴에서 피가 안뛰구 맹물이 뛰는줄 아시오?》 《내 말이 지나쳤다면 량해하시오. 그러나…》 《됐수다.》 선장은 담배꽁초를 끼워쥔 손으로 가슴앞 허공을 뻑 내리긋고는 영필이라는 젊은 선원을 불러 두 예선의 선장들을 데려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고무쁘트가 내려지고 두 선장이 실려와 은률쪽 기슭으로 통과할데 대한 설명을 듣고 필요한 협동신호들을 약속하였다. 드디여 배들은 전진을 시작하였다. 기중기선 선장과 함께 선수갑판 바로 기중기팔밑에 두발을 벌려짚고선 정대철은 긴장한 눈길로 전방을 감시하였다. 은률쪽기슭이 가까와짐에 따라 강수면에 거의 닿을것 같던 고압선이 떠오르며 공간을 드러냈다. (그러면 그렇겠지. 아마 암초도 없을것이다.) 불행은 바로 그때 찾아왔다. 이제는 예선들과 기중기팔끝이 고압선밑에 거의 당도했을것이라고 생각할무렵 갑자기 발밑에서 어떤 둔한 물체가 드-윽 하고 배밑창을 긁었다. 동시에 배가 흠칫 몸을 떨며 멎어섰다. 《암초에 부딪치지 않았습니까?》 다른것일수 없다는것이 명백했지만 정대철은 얼결에 그렇게 물었다. 《부딪쳤으면 좋겠는데 올라앉은것 같수다.》 배가 암초우에 올라앉았다는것이 어떤것인지는 정대철이도 모르지 않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배가 모재비로 뒤집히거나 더 나쁘기는 허리가 뭉텅 부러져나가는수도 있다. 다행히 작업선은 그런 형편에까지엔 이르지 않고 배머리가 암초우에 조금 올라앉았을뿐이였다. 그러나 그 조금 올라앉은 기중기선을 내려앉히는데 근 두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돌아갈수밖에 없다는것이 누구에게나 명백해졌다. 그때껏 선미쪽에서 얼음밀어내기를 하던 박선봉이 한가지 제기할 문제가 있다면서 정대철에게 만나줄것을 요청해온것이 바로 그때쯤이였다. 《말하시오. 뭔지…》 정대철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병사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대좌동지, 제가 저 기중기팔끝에 올라가겠습니다.》 얼음장과 씨름하느라고 솜옷앞섶이며 무릎이 화락하게 젖은 박선봉의 엉뚱한 제의였다. 정대철은 의아한 눈으로 병사를 쳐다보았다. 《거긴 왜 올라가?》 《이건 제가 연공을 할 때 얻은 경험인데… 고압선이 저렇게 처져내리긴 했지만 밑에서 올려다보기와 다릅니다. 그리고 기중기팔끝에 올라가 직접 수평으로 보면 배가 통과할수 있는지 없는지 정확히 알수 있습니다.》 정대철은 병사의 제의가 좀 모험적이기는 해도 충분히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의견을 묻는 의미에서 선장을 쳐다보았다. 선장은 멀리 눈내리는 희뿌연 하늘가로 사라진듯 싶은 기중기팔끝을 이윽히 올려다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대철은 그것을 동의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며 박선봉을 돌아다보았다. 《아주 좋은 생각이요. 팔끝에 올라가 수기신호로 배를 지휘하면 될것 같소. 하지만 동무는 안돼.》 《왜 저는 안됩니까?》 《글쎄 안돼. 연공들도 있는데 동무야 잠수병이 아닌가?》 정대절은 고압선이 팔끝에 닿지 않는다 해도 선장의 말대로 고압선이 안전한계를 넘어 류전되는 경우를 생각했다. 류전이 약하여 배에까지는 미치지 않는다 해도 진눈을 맞으며 기중기팔끝에 올라간 사람은 위험할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친애하는 김정일동지의 은총을 입어 잃어버렸던 생을 금방 되찾고 첫 임무수행의 길에 나선 병사를 그런 위험속에 내맡길수 없었다. 그러나 박선봉은 자기도 한때 연공이였으며 자신이 생각해낸 일이기때문에 제가 올라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고집을 부렸다. 나중에 그는 눈부리를 벌겋게 달구어가지고 울먹거리며 이런 말까지 하였다. 《대좌동지, 대좌동진 저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제발 막지 말아주십시오. 저는 다른 동무들보다 백배로 일을 더 해야 하고 남들이 못하는 어려운 일도 저는 해내야 합니다. 대좌동지, 허락해주십시오. 저는 이전의 사고꾸러기 박선봉이 아니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사랑속에 새로 태여난 박선봉입니다.》 정대철은 병사의 절절한 요구를 더 막을수 없었다. 《좋아, 그럼 올라가라구. 하지만 반드시 무사히 내려와야 해?》 《고맙습니다. 대좌동지!》 박선봉의 목소리는 감동에 젖어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가 기중기팔로 올라가려니 이번에는 연공들이 막아나섰다. 그들은 자기들이 있으면서 잠수병에게 연공작업을 맡긴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면서 제마끔 제가 올라가야 한다고 우기며 옥신각신하였다. 정대철이 그러는 병사들을 설복하다못해 성까지 내서야 겨우 진정시키고 박선봉을 기중기팔에 오를수 있게 하였다. 기중기팔에 사다리가 따로 없는 조건에서 지그자그로 널직널직 붙어있는 산형강을 짚으며 배가 동요하는데 따라 그냥 흔들거리는 60°이상 되는 경사를 올라간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게다가 내리는 진눈까비에 젖고 얼어서 여간 미끄럽지 않았다. 아차 실수에 허연 얼음장들이 둥둥 떠도는 수십길 강물에 곤두박힐수 있었다. 그런대로 물에 떨어지면 별문제지만 얼음장우에 떨어지면 살아나기 힘들었다. 하지만 선봉은 그러한 위험이나 생명에 관한 문제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기여오르는데만 전심하였다. 높이 오를수록 바람세가 더 사나와졌다. 짐작에 이제 겨우 절반거리나 돌파했음직한데 벌서 팔다리에 맥이 없으면서 등골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한순간 그는 힘을 주었던 오른발이 쭐 미끌면서 하마트면 떨어질번 했다. 눈앞에 있는 가름대를 날쌔게 끌어안았기에 망정이지 떨어졌기가 십상이였다. 그는 가름대를 붙안은채 공포로 뛰노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얼마간 쉬였다. 그리고 다시 배밀이로 전진을 시작하자 하나하나의 쇠가름대를 넘을적마다 수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두-울… 세-에-엣…》 그렇게 쉰한개를 세고서야 드디여 기중기팔끝에 도달할수 있었다. 그러나 보다 큰 위험은 아직도 앞에 있었다. 꼭대기에 올라오며 점차 좁아진 가름대사이에 의지하고선 그는 등뒤 혁띠에 꽂았던 수기를 뽑아 손바닥처럼 작게 느껴지는 배들을 내려다보며 약속된 신호를 보냈다. 이윽고 배들이 전진을 시작하였다. 극히 미속이였다. 선봉은 긴장한 눈길로 전방을 감시하였다. 점차 굵어지며 서서히 다가오는 네갈래의 희끄무레한 고압선… 이제는 거의 팔뚝만큼 굵어보인다. 그런데 왜 선들이 높아지질 않는가. 거리가 줄어들면 좀 더 높아보여야 할것이 아닌가? 이 상태로는 팔이 걸릴수 있다. 정지신호를 보내야 한다. 개판이군!… 하지만 그는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신호기발을 쳐들려는 순간에 고압선이 눈높이에서 조금 올라가는감을 느꼈던것이다. 그렇구나! 조금 더… 사이 뜬다. 그는 그 공간이 몇m 되겠는가를 가늠해보았다. 4m?… 아니 칠팔m는 된다. 아니다. 5m정도밖엔 안된다!… 그러는 사이에 송전선은 눈앞으로 바싹 다가왔다. 이제는 고압선에서 잉- 하는 전류 흐르는 소리마저 들렸다. 정지신호를 보내도 때가 늦었다. 배가 기관을 멈춘다해도 타력으로 선에 가닿을것이다. 그 다음, 그 다음엔 어떻게 되는가? 그에 대답하듯 윙- 하고 고압선이 더 크게 울었다. 그 울음소리에 실려 팔뚝같이 굵은 고압선이 곧추 그의 이마를 겨누고 달려왔다. 아, 내가 또 무슨 사고를 저질렀는가?… 선봉은 이제 불과 몇초후면 머리우에 떨어질 벼락을 기다리며 눈을 감았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인가? 예감한 삼사초가 훨씬 지났는데도 벼락은 떨어지지 않고 조용하였다. 들리는것은 명주필을 째는것 같은 앙칼진 바람소리와 웅- 웅- 하는 고압선의 울음뿐이였다. 눈을 떴으나 고압선은 보이지 않았다. 얼결에 몸을 돌리니 고압선은 벌써 저만치 뒤쪽에 가있었다. 그러니 통과했단 말인가? 정말 닿지 않고 무사히 지나왔단 말인가?… 선봉은 약속된 신호조차 잊어버리고 멍- 하니 멀어져가는 송전선만 바라보았다. 그러는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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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이 백오십명을 넘는 과학자돌격대에서 혼자 녀성인 관계로 유정은 사랑도 많이 받지만 그대신 출장이 잦았다. 오늘 그가 출장으로 받은 과업은 연구소에 들어가 가물막이제방안에서 물을 퍼낸 조건을 가상하여 밀물때의 최대수압이 조립된 철배의 매 알통에 미치는 값을 콤퓨터로 구해오는것이였다. 마감공사가 눈앞에 박두함에 따라 요새 연구사들속에서는 일시 잦아들었던 가물막이제방안의 수압에 대한 문제가 다시 론의에 올랐다. 유지되던 수압균형이 파괴되면서 밀물에 제방이 어떤 영향을 받겠는가 하는것이였다. 새삼스러운 론의가 아니고 이제와서 공사를 달리 진행할수 있다고는 생각지도 않지만 그래도 돌격대지휘부에서는 다시한번 과학적계산으로 그 안정성을 확인할 결심이였다. 유정은 과업을 선선히 접수했다. 임무가 중요한것은 딴 문제로 하고 이전같으면 출장이 잦은것이 싫어서도 좀 피탈질을 해보았겠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군인들속에서 오래 일하면서 임무접수와 집행에 대한 그들의 무조건적인 정신을 배웠다고 할지, 어쨌든 그는 요새 자신이 비로소 참다운 사회성원으로 성숙하고 신상에 부닥쳐오는 크고작은 개개의 일들에 대한 중요함과 책임감을 새삼스럽게 느끼는것 같았다. 돌격대참모장의 방을 나와 식당에서 점심부터 먹은 그는 숙소에 돌아와 출장준비를 하였다. 자습하는 외국어원서며 사전과 갈아입을 옷가지들을 넣으니 가방이 벌써 배가 불러 화장통을 넣을 자리가 없었다. 그래 화장품은 평양에 들어가 사서 쓸 셈으로 쟈크를 채우고 일어나 세수를 한 다음 간단히 화장이나 하려고 거울앞에 나섰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수건으로 무심히 얼굴의 물기를 닦아내던 그는 갑자기 《어마.》하고 놀랐다.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해빛에 가무스레하게 탄 량쪽 눈귀에 가는 실주름이 잡힌것을 발견했던것이다. 그럴수가 없다고 애써 부정하며 그는 바삐 수건을 놓고 손가락에 힘을 주어 량눈귀를 비벼보았다. 그래도 주름살은 없어지지 않고 눈을 약간 쪼프리면 골이 더욱 깊어지고 그옆으로 보면 주름살이 또 박히였다.… 원 세상에, 벌써 주름살이 생기다니… 스스로 어이없는 생각을 금치 못하며 가는 한숨을 내쉰 그는 화장통에서 살결물병을 꺼내들고 마개를 비틀었다. 공부를 많이 하고 지성을 쌓은 녀자들이 흔히 그렇듯이 유정은 지금까지 얼굴치장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성에 눈뜬 대학시절은 그 시절대로 학업에 바빴고 졸업후 연구소에 배치된 뒤로는 연구과제에 쫓기다보니 맵시같은데 신경을 써볼 겨를이 없었다. 다행스러운것은 부모님덕분에 그리 밉지 않은 용모와 맑고 흰 살결을 가진것이라고 할지, 거기에 고뿔도 모르는 건강체라 세수만 해도 분을 바르고 연지를 찍은것처럼 보여서 때로 오해를 사거나 동무들의 시샘을 받기가 일쑤였다. 그렇던 얼굴이 여기 갑문건설장에 와서 볕에 타고 바다바람에 좀 거칠어졌다싶었는데 어느새 눈귀에 주름살이 박힌것이다. 하기는 이젠 스물여섯살, 설을 쇠면 또 한살을 먹는다. 중학시절의 동무들속에는 두 아이의 어머니가 수두룩하고 대학동창들도 거의 다 결혼하였다. 그런 까닭에 어머니 또한 편지마다 걱정이고 채근이다. 어쩔셈이냐? 누가 사랑하여 일생의 동반자로 삼겠다는 사람이 그리도 없느냐? 연구사를 그만두더라도 금년은 절대로 그냥 넘기지 못한다.… 합성수지연구로 40대에 학사가 된 어머니는 딸이 성장함에 따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늘 이렇게 교양했었다. 너를 사랑해준다고 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사랑의 감정과 좋은 사람이라는 개념은 서로 다르다. 그러니 감정으로 결심하지 말어라, 아침에 만난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것은 저녁에 평가하는것이 좋다, 서둘러 한 결혼앞에는 흔히 불행이 기다리고있다는것을 명심해라 등등… 그러던 어머니가 스스로 자신의 계률을 어기면서 독촉하게쯤 되였으니 왜 눈귀에 주름살인들 생기지 않으랴! 아무리 건설장이라도 이제부터는 화장도 좀 하고 몸을 가꾸어야겠다고 생각하며 크림이니 향분이니 눈섭연필이니 하는것들을 쥐고 놓고 하는 그의 눈앞으로 윤건호대대장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유정은 이번 출장길에 소좌를 만나볼 결심이였다. 그가 오늘 돌격대참모장이 주는 출장임무를 기꺼이 접수한 리면에는 그러한 계획도 감추어져있었다. 《그가 과연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 불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소좌를 비롯한 3명의 중상자들이 남포시병원에서 1차수술을 받고 평양으로 후송된것은 한달전이였다. 후송될 당시까지만 해도 그들의 생명은 구원하기 힘든것으로 설명되였다. 그러나 수술결과가 대단히 좋아서 생명의 위험이 멀리 떠난것은 물론 2차수술만 성공하면 원상회복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측이였다. 비록 멀리 떨어져있고 풍문으로 한쪼각씩 전해져오는 소식일망정 유정은 비상한 관심속에 윤건호소좌의 그러한 수술결과를 주시하고있었다. 군인의 몸으로 건설장에서 대학과정을 공부하는 사람, 자기를 사랑하여 손목을 잡으려던 사나이… 하늘에 엷은 구름장들이 널려있고 바람불던 그 밤을 유정은 잊을수 없었다. 더욱 잊을수 없는것은 충돌직전의 함형부재를 구원하기 위하여 군관혁띠를 풀어내치면서 대대군인들에게 자신을 따를것을 명령하며 통나무를 안고 바다에 뛰여들던 소좌의 거인같은 모습이였다. 그 억센 사나이가 지금은 침대에 누워 두번째 수술을 기다리고있었다. 유정은 미안하고 죄스러운 생각을 금할수 없었다. 그에게는 부재충돌이라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한것도 그때문에 소좌와 대대군인들이 바다에 뛰여들어 부재를 구하고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되였던것도 다 자신의 불찰,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기때문에 일어난 결과처럼 생각되는것이였다. 지금 유정은 왜 그날 자신이 소좌앞에서 손을 움츠리였던지를 곰곰히 생각해본다. 처음에는 놀라고 당황했었다. 다음에는 눈을 뜬 리성의 요구였으니 자신의 리상인 과학사업이 기다리고있다는 그것이였다. 군관을 사랑한다는것은 곧 과학사업을 그만둔다는것을 의미하였다. 그러니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소좌는 지금 육체적고통과 함께 이루지 못한 사랑의 쓰라림도 겪고있을것이다. 어쩌면 그 쓰라림이 육체의 아픔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왜 그를 사랑하면 안된단 말인가? 과학자라고 군관을 사랑하지 못할 까닭이 무엇인가? 사랑의 력사속에는 한 녀성을 위해 왕위를 버린 사나이들도 있다고 한다. 참된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먼 례를 들것도 없다. 전선에서 피를 흘리고 돌아온 영예전상자들을 위해, 군사복무과정에 몸을 다치고 돌아온 사나이들을 위해 고이 간직해온 순결한 사랑을 바친 녀성들이 이 나라에는 얼마나 많고 많은가? 그런 녀성들에게 나름의 꿈과 아름다운 인생계획이 없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죄악으로 될것이다. 그래 그들이라고 왜 아름다운 꿈을 꾸지 않았고 결혼한 뒤에도 처녀시절처럼 아무 구애됨이 없이 이루고싶던 인생계획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그 꿈과 계획을 사랑과 바꾸었다.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동정심의 발로?… 아니면 녀성본능의 리기조차 넘어선 자기희생으로?… 아니, 아니다. 그렇게 풀이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성스러운 조국을 위해 자기의 피와 살을 서슴없이 바친 용감한 사나이들- 영웅들에 대한 우리 녀성들의 매혹에 기초한 하나의 아름답고 비상한 사랑으로 설명해야 할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왜 그들처럼 사랑하지 못한단 말인가? 이 갑문건설도 총포성없는 전장이고 바다의 전역이라고 한다. 그 전장에서 부딪치는 수천t짜리 부재사이에 몸을 던진 영웅을 사랑하는것이 그래 연구사업보다 못하단 말인가?… 생각이 깊어감에 따라 유정은 스스로 격렬한 감정에 불타올랐다. 그는 어째선지 자신이 윤건호소좌를 사랑하는것이 이제는 응당한 일로까지 생각되였다. 바로 그때 마당에서 쿵쿵 땅 울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리며 능금이가 뛰여들어왔다. 《뭘해요, 언니?》 상념속에 깊이 빠져있던 탓에 유정은 제때에 대답을 못했다. 그러거나말거나 신을 마구 벗어던진 능금은 기쁜 소식을 하나 알려주려고 뛰여왔노라면서 활발한 성미그대로 그리 작지 않은 궁둥이를 침대에 쿵- 내던졌다. 그러나 인차 유정이 가방을 꾸려놓은걸 보고는 눈이 덩둘해졌다. 《어마나, 또 출장가요?》 유정이 그렇다고 하자 처녀는 당장 토라진 목소리로 《으-음》하며 불만을 드러냈다. 혼자 있기가 싫다는 소리였다. 《그래 기쁜 소식이라는건 뭐냐?》 《싫어, 안대줄래.》 그는 뾰로통해서 침대밑에 드리운 발까지 굴렀다. 유정은 웃지 않을수 없었다. 《넌 그저 심술쟁이총각으로 태여나야 꼭 알맞을걸 그랬어.》 그제야 능금의 얼굴에 웃음이 피여났다. 《언니, 그 함형부재사이에 뛰여든 대대장 있지요? 윤건호소좌… 그 소좌동지에게 영웅칭호를 준대요.》 《그건 누가 그래?》 《군대건설국장동지가 우리 종합과장동지한테 말하는걸 들었어요.…》 유정은 생각에 잠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송철만중장이 말했다면 그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아, 영웅… 그 동무가 영웅이 되면… 유정은 영웅메달을 가슴에 단 윤건호를 상상해보았다. 그리고 그옆에 자기 아닌 어떤 다른 처녀를 세워보았다. 상상속의 처녀건만 행복에 겨운지 방그레 미소를 짓는다. 순간 유정은 질투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안돼! 그건 안돼! 그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야!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있어.…) 그렇게 마음속으로 부르짖으며 그는 자신의 희고 연연한, 아직 그 어떤 사나이에게도 준적이 없는 깨끗한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