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 《불멸의 향도》

 

     장편소설

 

                                                    정 기 종

 

( 제 3 회 )

 

제 1 장

 

1

 

된추위가 시작되던 12월의 어느날 성진제강련합기업소 당책임비서로 부임된 전진욱은 밤이 깊도록 공장구내철길을 따라 걷고있었다. 발밑에서는 먼지오른 시꺼먼 눈더미가 버석거렸다. 날씨는 맵짰다. 밤하늘을 떠이고있는 산마루에서부터 삭풍이 불어치며 숨죽은 공장구내를 회오리처럼 휩쓸다가는 바다쪽으로 빠지군 했다.

별안간 걸음을 멈추었다. 도당책임비서가 하던 말이 귀전에 쟁쟁하였다.

《여보, 책임비서. 꽤 해낼수 있겠소?》

도당에서부터 공장까지 차를 같이 타고올 때엔 그런 말이 없었는데 공장사람들에게 새로 온 책임비서를 소개하고 돌아가기에 앞서 찬바람만 휩쓰는 구내를 빙 둘러보고는 으시시 몸을 떨면서 그렇게 물었던것이다.

《좀 말해보오. 응? 꽤 해낼것 같애?》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엇을 말할수 있으랴. 그러나 도당책임비서는, 거의나 아버지벌 되는 사람인 그는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 모양이였다.

아마도 남들의 눈에 비쳐지는 전진욱은 공업대학(공장대학) 교원이나 의사로 보일런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창나이때 대학동창생들은 틀림없이 그가 어느 산골중학교 물리교원으로 배치될것이고 머리에 서리가 불릴즈음엔 꼭 공훈교원이 될거라고 롱삼아 예언하군 했다. 하여 그는 동창생처녀들에게 우스개소리로 이렇게 말한 일도 있었다.

《어째 나한테 사랑의 쪽지편질 보내는 처녀는 하나도 없소?... 아하- 내가 어느 중학교 물리교원으로 배치될거라구 하니까 탐탁치 않아보이는 모양인데 이제 두고보라구요. 인차 교장선생이 되지 않나.》

어떤 경우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유쾌한 익살군, 쾌남아로 유명한 전진욱이였다. 그러나 중임을 떠안고 공장을 돌아보려니 매운 연기를 마신것처럼 숨이 막히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도당책임비서도 그의 유연해보이는 어깨에 숨죽은 공장을 떠맡기고 가려니 속이 편치 않았을것이다.

《왜 말이 없소?》

《뭐 말할거나 있습니까.》

《어쨌든 해내겠지?》

《해내야지요.》

《그럼 잘 있소.》

《안녕히 가십시요.》

그리고는 마음이 무거워 구내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의 운전사가 차를 몰고 따라왔으나 손짓으로 돌아가라 하고는 정처없이 걸음을 옮겼다.

너무도 생소해진 공장이였다. 한때 도당에서 일하던 시기에 그는 이 공장을 맡아본적이 있었다. 그후 김책제철련합기업소로 조동되면서 걸음이 끊어졌는데 그 몇해가 바로 《고난의 행군》시기였다.

생소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공장의 자랑이던 1강철직장의 전기로들까지 숨을 죽이고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슴이 쓰려나고 눈시울이 때끔거렸다. 혹독한 추위때문일수도 있다. 세찬 칼바람이 공장구내를 뒤덮고있는 탄가루며 석회석, 슬라크가루를 회오리처럼 말아올려 검은 눈보라로 뿌려치군 했다.

한순간 그는 걸음을 멈추고 굳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후에 알아보니 60여명이였다.) 철길우에서 한덩어리가 되여 바줄을 끌고있는것이였다. 구령도 어기영소리도 없다. 불똥을 뚝뚝 떨구는 홰불이 앞뒤에서 철길을 비쳐줄뿐 모두 얼어든 몸을 가까스로 움직이고있었다.

홰불에 비쳐진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그을음과 석탄먼지에 얼룩진데다가 피기가 없었다. 보이지 않는 회초리처럼 후려치는 찬바람을 막으려는듯 목을 잔뜩 움츠린 사람들이 해여진 솜신발로 얼어붙은 철길바닥을 허비며 헐금씨금 용을 쓰고있었다.

그는 마치 자석에 끌린듯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이걸 왜 사람이 끕니까?》

대답이 없었다. 누구도 그에게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 그럴 여유가 없었고 말할 힘조차 없는 사람들이였다. 가쁜숨을 헐떡거리며 서로 의지하고 말없는 구령속에 하나같이 호흡을 맞추며 필사의 힘을 다 짜내고있었다. 그들이 죽기내기로 용을 쓰고있다는것을 그는 조금후에야 알게 되였다.

《어디까지 끌구 갑니까?》

그의 물음에 누군가 짜증기어린 소리를 거칠게 내뱉았다.

《넨장, 보구두 모르오?》

《?》

어떤 이름할수 없는 창피감과 함께 서글픔도 느껴졌다. 바로 그때 앞에서 홰불을 비쳐주던 사람이 다가왔다. 솜옷모자를 눈우에까지 눌러썼는데 몹시 여윈 소년같아보였다. 그 애가 가는 소리로 말했다.

《이건 석회석을 실은 방통입니다.》

소년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가 묻는 말에 짜증을 부린데 대한 사죄의 의미로 우정 말해주려고 온것 같았다. 그러나 그 애와 더 말을 주고받을수 없었다. 앞에서 거쉰 목소리가 날아온것이였다.

《넌 게서 뭘하니?》

그 거쉰 목소리의 임자도 홰불을 들었는데 작업을 지휘하는 늙은이같았다. 그가 사람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밑을 잘 보라구. 철다릴세.》

후에 안 일이지만 구내철길은 연 수십km나 되였다. 가로세로 얼기설기 뻗어간 그 철길은 수많은 강과 홈타기, 도로와 습지를 지나는데 눈으로는 잘 알리지 않는 올리막과 내리막도 있어 자칫하다가는 추락사고가 나거나 내리막에서 제동을 걸지 못해 바줄을 끌던 사람들이 차바퀴밑에 깔리는 끔찍한 일이 생길수도 있었다. 사실 그런 위험이 여러번 있었다고 한다.

전진욱은 그들사이에 끼우려 했다. 그러자 누군가 거친 숨소리를 내뿜으며 물었다.

《거긴 뉘기요?》

순간의 망설임은 있었으나 그는 자기를 숨기고싶지 않았다.

《제 새로 온 책임비섭니다. 방금 왔습니다.》

《?...

헉- 헉 하던 거친 숨결의 파도가 멎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허리를 펴고 그 자리에 굳어졌던것이다. 본의아니게 책임비서를 모욕적으로 대하고 노엽혔다는 생각에 얼어붙어버린것 같았다. 허나 그것도 한순간, 앞에서 홰불을 쳐들고있던 늙은이의 거쉰 목소리가 또 날아왔다.

《이건 뭐야. 아지미무릎에 올라앉았나? 어째 다들 얼이 빠진것처럼 멍청해서 그래?...

그가 옳았다. 화차가 멎어서면 다시 출발하는데 몇갑절 더 진땀을 뽑아야 하는것만큼 책임비서가 왔다고 해서 수인사를 하느라고 지체할수는 없는것이다. 하여 사람들은 일시에 입김을 내불며 다시 바줄을 잡고 용을 쓰기 시작했다.

전진욱은 그들사이에 끼여들었다. 누구도 만류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들어설 자리를 내주기까지 했다. 그들은 그들대로 새로 온 책임비서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 한번 중떠보고싶은 생각도 없지 않을것이다. 이럴 때 굳이 만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능먹은 아첨쟁이이거나 심보고약한 사람일수도 있다.

전진욱은 그들속에 끼워 기차방통을 끌면서 이렇게 물동량을 끌어들이고 내가기를 벌써 3년나마 하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디젤유도 없고 석탄도 없어 기관차들이 멎어섰다는것이다.

그는 별안간 심장이 맹렬히 뛰고 숨이 차오르는것을 느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이것을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두고 《성강의 모습》이라고 자랑할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확실히 성강이 달라!》하고 감탄하며 신문에 내자고 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라면 또 몰라도 세상에 널리 알려진 성강에서,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나 다 할수 있는 성강에서 인력으로 기차방통을 끌게 할수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어려운 나라사정을 구실로 무턱대고 《결사전》을 부르짖으며 머리를 짜고 지혜를 모으면 얼마든지 기술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문제도 무리하게 사람들을 동원하여 인해전술을 벌리군 한다. 그리고는 결사관철의 의지가 있는 손탁이 센 일군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실리는 없이 혹사만이 있는 일판, 개별적일군들의 몸값이나 올리는 그런 일판이 과연 어디에 필요하단말인가?... 여기서도 그렇다. 물동을 실은 기차방통을 사람의 힘으로 끌어서야 과연 몇차지의 강철을 뽑을수 있겠는가?!... 자랑은커녕 커다란 수치가 아닐수 없다.

기차방통을 2원료직장안에까지 끌어갔다. 나중엔 온몸이 얼고 맥이 빠져 말할 힘조차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또 그것을 밤새워 부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턱없이 많은 연체료를 물어야 하는것이다.

샐녘이 되니 전기가 왔다. 전진욱은 비로소 아까 자기를 우정 찾아와 말을 걸어준 사람이 나어린 소년이 아니라 애젊은 녀자임을 알아보았다. 동실한 턱과 눈언저리에 시꺼먼 손자리가 났어도 가무스레한 얼굴에 두눈이 곱게 웃는 아련한 처녀였다.

《책임비서동지,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

목소리는 더 고왔다.

《처년 여기서 무슨 일을 하나?》

...

처녀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외로 돌렸다. 그를 대신하여 아까 물풍스럽게 짜증을 부리던 사람이 역시 퉁명스럽게 말했다.

《체네라니요. 애까지 달린 안깐이요.》

《안깐》이란 함북도사람들이 녀인들을 홀대하여 부르는 말이다. 아마 《안칸》에 있는 사람이란 뜻에서 생겨난 말일것이다.

전진욱은 저으기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아 그렇소?... 이거 참 안됐구만.》

녀인은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책임비서동지. 오히려 전... 고맙습니다.》

무엇이 고맙다는것일가? 녀인은 인사하고 물러갔다. 알고보니 그 녀인의 이름은 서옥영이였다. 데리고있는 딸은 벌써 세돌이 되여온다고 한다. 홀로 사는 녀자의 몸으로 남들처럼 시장에 나앉은것이 아니라 집에서 제일 거리가 먼 《ㅈ철》공장에 다니는데 가끔 방통을 끄는 일까지 도와나선다고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했다.

전진욱은 서옥영이라는 그 이름을 기억에 새겨두었다.

그때 송근우기사장이 차를 타고 달려왔다.

《아 책임비서동무, 이제야 겨우 찾았군요.》 그는 다짜고짜 전진욱을 잡아끌었다. 《중앙당에서 전화가 왔수다. 과장동지라는군요.》

《과장?》

그는 머리를 기웃거렸다.

알고보니 오래전부터 인연이 깊은 과장이였다. 이제 금방 40고개에 올라선 젋은 나이였지만 전개력있는 일군으로 알려져있었다. 그는 전진욱에게 부임 첫날의 인상에 대하여 자세히 묻고나서 맡은 일에서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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